코스 · 정류장 16곳
임진왜란 1592~1598: 열여섯 정류장으로 보는 7년 전쟁
1592년, 일본을 막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대군을 보냈고, 명이 조선을 도우러 나섰다. 전쟁은 1598년까지 이어졌다. 육지에서는 북쪽 함경도까지, 바다에서는 주로 남해안에서 싸움이 벌어졌으며, 전쟁은 세 나라 모두를 바꾸어 놓았다.
이 코스는 히데요시의 계획부터 마지막 해전,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의 국교 회복까지 열여섯 정류장으로 전쟁을 따라간다. 각 정류장에서는 다음 정류장과의 연결을 설명하며, 지도 링크를 누르면 해당 연도의 지도를 볼 수 있다. 날짜별 전쟁 지도는 임진왜란 글에 있다. 같은 이야기를 유튜브 시리즈 「지도로 보는 임진왜란」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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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7–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히데요시는 1590년 일본 통일을 마무리했지만, 명 정복 구상은 이미 1585년에 밝혔다. 그는 조선에 협력을 요구했고, 조선이 이를 거부한 뒤 1592년에 침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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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1598년
임진왜란
전쟁 전체를 한눈에: 왜 일어났는지, 두 차례 침략(1592~1593, 1597~1598)으로 어떻게 펼쳐졌는지, 무엇을 남겼는지. 먼저 읽어도 좋고, 전투를 다 본 뒤 돌아와도 좋다.
- 3

1592년
탄금대 전투(충주 전투, 1592)
부산에 상륙한 지 보름쯤 뒤, 일본군은 충주에서 신립의 군대를 무찔렀다. 이 패배로 한양으로 가는 길이 열렸고, 한양은 며칠 뒤 함락되었다.
- 4
1592년
한산도 대첩
일본군이 육지에서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는 동안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바다에서 이겼다. 1592년 여름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 함대를 크게 무찔렀고, 이 승리는 조선이 서쪽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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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1598년 · 여수 전라좌수영 (조선)
이순신
이 승리들을 이끈 장수는 누구였을까? 그의 생애, 『난중일기』, 거북선, 그리고 그가 오늘날 그렇게 기억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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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진주대첩(제1차 진주성 전투, 1592)
1592년 가을,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했다. 김시민이 이끈 수비군이 성을 지켜 내어, 그 뒤의 곡창 전라도를 지켰다.
- 7
1593년 · 벽제관 남쪽 여석령, 고양 (조선)
벽제관 전투
1593년 초 명군은 평양을 되찾았다. 그러나 한양으로 진격하던 명군 선봉이 벽제관에서 패하면서, 전쟁은 교착과 협상으로 접어들었다.
- 8

1593년
행주대첩
벽제관 전투 얼마 뒤, 권율의 군사와 승병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의 거듭된 공격을 막아 냈다. 약 두 달 뒤, 일본군은 강화 교섭에 따라 한양에서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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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1593)
일본군이 남해안으로 물러난 뒤, 히데요시는 1592년 진주에서의 패배를 되갚으라고 명령했다. 1593년 여름, 진주성은 치열한 공방 끝에 함락되었고 피해는 참혹했다.
- 10

1597년
칠천량 해전
명과 일본의 강화 교섭이 깨지고, 1597년 일본이 다시 쳐들어왔다(정유재란). 칠천량에서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은 거의 무너졌다.
- 11
1597년
남원성 전투(1597)
바닷길이 열리자 일본군은 전라도로 들어왔다. 조선군과 명군이 지키던 남원성은 며칠간의 포위 끝에 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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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직산 전투
북진하던 일본군은 직산 근처에서 명군과 맞붙었다. 전투의 승패에는 논란이 있다. 이후 일본군은 안성과 죽산을 노략질했지만, 한양을 공격하지 않고 남쪽으로 물러났다.
- 13

1597년
명량 해전
다시 지휘를 맡은 이순신은 전선 13척을 모아, 물살이 거센 명량에서 훨씬 큰 일본 함대를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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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제1차 울산성 전투
일본군은 남해안에 새로 쌓은 성들에 틀어박혔다. 양력 1598년 1~2월, 명군과 조선군은 울산왜성을 포위했지만 함락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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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노량 해전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군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노량에서 조선과 명의 수군이 전쟁의 마지막 싸움 가운데 하나를 치렀고, 이순신은 이 싸움에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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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1811년 · 에도(일본 에도 막부) — 한성(조선)에서 부산·쓰시마를 거쳐
조선통신사
전쟁이 끝난 뒤 조선과 새로 들어선 에도 막부는 1607년 국교를 되살렸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 사절단이 열두 차례 일본에 갔으며, 마지막 사절은 쓰시마까지만 갔다.
이 코스는 각 글에 적힌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