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정류장 14곳
400~700년 동아시아와 세계: 왕국·믿음·법
대략 400년부터 700년 사이, 한반도의 여러 왕국과 일본, 중국은 서로에게서 배우며 나라의 틀을 세웠다. 불교와 문자, 율령, 관리를 뽑는 방법이 사신과 장인이 오가는 같은 바닷길을 따라 퍼졌다. 같은 시기 서쪽 멀리에서는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 왕조가 법을 새로 정리하며 메소포타미아를 두고 다투었고, 마야의 도시 티칼은 전성기를 맞았다.
이 코스는 장소·인물·사건 열네 가지를 대체로 시대 순서대로 따라간다. 정류장마다 앞뒤 정류장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짧게 적었으니, 같은 세 세기를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다. 정류장을 누르면 전체 글을 읽거나 그해의 지도로 바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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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412년
광개토대왕
고구려의 광개토왕(재위 391~412)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나라의 경계를 넓혔다. 아들이 414년에 세운 비석은 한국사에서 가장 오래된 긴 역사 비문이며, 그 가운데 왜(倭)에 관한 한 구절은 지금도 한국과 일본 역사학자들이 서로 다르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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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기원전 400년 – 899년 · 과테말라 북부 페텐 (무탈 왕국)
티칼
같은 수십 년 동안 태평양 반대편에서는 마야의 도시 티칼이 멀리 멕시코 중부의 테오티우아칸과 접촉하며 크게 바뀌었다(비문은 테오티우아칸과 이어진 세력이 378년에 도착했다고 적는다). 동아시아의 왕국들처럼 티칼의 왕들도 비문과 기념물로 자기 쪽의 역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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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529년 · 웅진, 지금의 공주 (백제)
무령왕릉
다시 한반도로 오면,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된 백제 무령왕(523년 사망)의 무덤은 한 왕국의 교류가 얼마나 멀리 닿았는지 보여 준다. 중국 남조 양나라식 벽돌 무덤, 일본산 금송으로 만든 관, 그리고 왕의 이름과 장례 날짜를 새긴 지석이 함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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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27년 · 경주 (신라)
이차돈
불교는 한반도 곳곳으로 퍼지고 있었지만 신라의 귀족들은 이를 반대했다. 527년에 처형되어 신라 최초의 순교자로 기억되는 이차돈의 이야기는 신라 조정이 새 믿음을 받아들인 순간을 알려 준다. 다만 이 이야기는 수백 년 뒤에 쓰인 역사책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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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534년 · 콘스탄티노폴리스 (동로마 제국)
로마법대전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바로 같은 해(529~534년), 비잔티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천 년에 걸친 로마법을 한 묶음의 법전으로 정리하게 했다. 동아시아의 왕들도 글로 쓴 율령을 들여오고 있었으니, 둘을 견주어 보면 큰 나라를 다스리는 같은 문제를 전혀 다른 전통이 어떻게 풀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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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579년 · 크테시폰 (사산 제국)
호스로 1세 아누시르반
유스티니아누스의 큰 맞수는 페르시아 사산 왕조의 호스로 1세(재위 531~579)였다. 그는 세금과 군대를 고치고 외국 학자들을 맞아들였으며,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를 두고 비잔티움과 싸웠다. 두 제국의 긴 전쟁은 이슬람이 일어나기 직전 두 나라를 모두 지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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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554년 · 사비, 지금의 부여 (백제)
백제 성왕
무령왕의 아들 백제 성왕(재위 523~554)은 538년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일본에 불상과 경전을 보냈다. 이것이 일본 불교의 전통적인 출발점인데, 사료에 따라 538년 또는 552년으로 적는다. 그는 554년 신라와 싸우다 전사했고, 오랜 동맹국이던 신라의 성장은 두 나라의 관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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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596년 · 아스카 (야마토, 일본)
아스카데라
백제가 전한 불교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사찰 아스카데라(588년 창건)로 이어졌다. 백제에서 건너간 승려와 목수, 기와 장인, 화공이 절을 짓는 데 참여했다. 이 절은 새 믿음이 여러 기술과 함께 한꺼번에 일본에 들어왔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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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622년
쇼토쿠 태자
야마토 조정에서는 쇼토쿠 태자(574~622)가 604년의 17조 헌법을 만들고 수나라에 사신을 보냈다고 전한다. 다만 주요 기록이 백 년쯤 뒤에 쓰였기 때문에, 그가 직접 한 일이 어디까지인지는 논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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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618년 · 낙양 (수나라)
과거제
589년 중국을 다시 통일한 수나라는 600년대 초 글로 치르는 시험으로 관리를 뽑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당과 그 뒤 왕조에서 커졌고, 한국은 10세기부터, 베트남도 이를 받아들였다. 동아시아가 오래 함께 나눈 대표적인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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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10–635년 · 서퍽주 우드브리지 근처 (이스트앵글리아 왕국)
서튼후
620년대 무렵 유라시아 서쪽 끝, 이스트앵글리아의 앵글로색슨 왕은 서튼 후에서 길이 27미터의 배에 묻혔다. 투구와 금 장신구, 비잔티움의 은그릇, 프랑크 왕국의 동전이 함께 나왔으니, 먼 곳과의 교류가 아시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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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42–665년 · 평양 (고구려)
연개소문
다시 동쪽으로 오면, 고구려의 장군 연개소문은 642년에 권력을 잡고 645년 당나라의 대규모 침공에 맞섰다. 중국 역사책은 그를 폭군으로 그리지만 현대 한국의 서술은 나라를 지킨 인물로 높이 평가하는 일이 많다. 한 사람이 얼마나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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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646년 · 나니와, 셋쓰 (야마토, 일본)
다이카 개신
같은 해인 645년, 야마토 조정의 정변으로 시작된 다이카 개신은 당나라를 본보기로 일본을 새로 짜려 했다. 땅을 나라가 관리하고, 호적을 만들고, 중앙 집권 정부를 세우는 것이 목표였다. 개혁이 한꺼번에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얼마나 나중에 기록에 덧붙여졌는지는 지금도 학자들이 논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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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904년 · 장안, 오늘날 시안 (당나라)
대명궁
이 모든 실타래는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모였다. 634년에 짓기 시작한 대명궁은 신라와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사신을 맞았다. 그 전각에 서면, 이 코스가 지나온 세계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코스는 각 글에 적힌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