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더니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고, 가족은 나를 무서워하고, 그런데도 회사에 늦을까 봐 걱정해야 해요. 카프카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 『변신』은 이렇게 시작해요.
카프카는 약 100년 전, 지금은 체코의 수도인 아름다운 옛 도시 프라하에 살았어요. 그는 독일어로 말하고 독일어로 글을 썼어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노동자를 돕는 사무실에서 일했고, 밤늦게까지 깨어 이야기를 썼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상한 꿈 같아요. 어떤 이야기에서는 한 남자가 체포되지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아요.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한 남자가 언덕 위의 성에 가려고 계속 애쓰지만 끝내 닿지 못해요. 규칙이 말이 안 되는데도 등장인물들은 끝까지 애를 써요.
카프카는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엄한 아버지를 무서워해서, 자기 마음을 설명하는 아주 긴 편지를 아버지에게 쓰기도 했지요. 결핵이라는 폐병에 걸려 겨우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카프카는 죽기 전에 가장 친한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발표하지 않은 원고를 모두 태워 달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 브로트는 태우지 않고 책으로 펴냈고, 온 세상 사람들이 카프카를 읽게 되었어요. 지금은 규칙의 미로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고 어리둥절한 상황을 가리켜 ‘카프카스럽다’는 말까지 써요.
한눈에 보기
- 생애
- 1883년 7월 3일(프라하) – 1924년 6월 3일(빈 근교 키를링 요양원)
- 고향
- 오스트리아-헝가리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 1918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 언어
- 독일어로 창작. 체코어도 능숙했고 말년에는 히브리어를 공부했다
- 직업
- 법학 박사(1906). 1908~1922년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재해보험공사 직원
- 생전 발표작
- 『관찰』(1912), 「판결」(1913), 『변신』(1915), 『유형지에서』(1919), 『시골 의사』(1919/20), 『단식 광대』(1924) 등 짧은 산문과 단편
- 사후 출간
- 막스 브로트가 엮은 장편 『소송』(1925), 『성』(1926), 『실종자(아메리카)』(1927)와 일기·편지
- 주요 주제
- 알 수 없는 권력과 관료제, 죄와 심판, 아버지와 아들, 고립, 몸, 의미의 추구
- 유산
- 문학적 모더니즘의 핵심 작가. ‘카프카스러운(Kafkaesque)’이라는 말이 여러 언어에 자리 잡았다
쉬움
프란츠 카프카는 누구인가
프란츠 카프카는 거의 평생을 프라하에서 산 독일어 작가다. 살아 있을 때는 얇은 단편집 몇 권만 냈을 뿐이고 아는 사람도 소수의 독자에 그쳤다. 그가 죽은 뒤 미완성 장편 세 편과 수많은 글이 출간되었고, 불과 수십 년 만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논의되는 작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카프카의 이야기는 흔히 있을 수 없는 일에서 출발하지만, 그 일을 차분하고 정확한, 거의 사무적인 문장으로 전한다. 외판원이 흉측한 벌레로 깨어난다. 은행 직원이 서른 살 생일 아침에 무슨 죄인지 알려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체포된다. 측량사가 한 마을에 도착해 자기를 불렀다는 성의 관리들에게 닿으려고 소설 내내 애쓰지만 실패한다. 이 기묘함은 끝까지 설명되지 않고, 인물들도 좀처럼 의문을 품지 않은 채 그저 버텨 나가려 한다.
독자들은 이 이야기에서 여러 가지를 읽어 냈다. 얼굴 없는 관료 조직의 힘, 이유도 모른 채 심판받는 느낌, 현대 도시의 고독, 강한 아버지 앞에 선 아들의 불안, 이방인으로 산다는 경험 등이다. 카프카 자신이 쉬운 해설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지금도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다.
쉬움
생애: 프라하, 가족, 그리고 사무실
카프카는 1883년 7월 3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체코어를 쓰는 유대인 시골 마을에서 가난하게 자라 프라하에서 잡화점을 크게 일군 사람이었다. 어머니 율리 뢰비는 독일어를 쓰는 교양 있는 유대인 집안 출신이었다. 남동생 둘은 아기 때 죽었고, 프란츠는 여동생 셋, 엘리·발리·오틀라와 함께 자랐다.
그는 엄격하기로 이름난 구시가 독일어 김나지움 등 독일어 학교를 다녔고, 프라하의 독일어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해 1906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만난 작가 막스 브로트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첫 후원자였고, 훗날 그의 유고 관리인이 되었다.
보험 회사 아시쿠라치오니 제네랄리에서 1년쯤 일한 뒤, 1908년 반관반민 기관인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들어갔다. 공장과 채석장의 사고 예방과 위험에 관한 보고서를 쓰는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아 여러 번 승진했다. 오후에 일이 끝나는 자리였지만 그는 일 때문에 너무 지쳐 글을 쓸 수 없다고 자주 불평했고, 소설의 상당수는 밤늦게 쓰였다.
카프카는 끝내 결혼하지 않았다. 1912년부터 1917년까지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베를린 여성 펠리체 바우어와 두 번 약혼했고, 율리 보리제크와도 잠시 약혼했다. 1920년부터는 체코 언론인이자 번역가인 밀레나 예센스카와 주로 편지로 이어진 뜨거운 관계를 맺었다. 1923년에는 정통파 유대인 집안 출신의 젊은 여성 도라 디아만트를 만나 몇 달 동안 베를린에서 함께 살았는데, 이것이 그가 프라하를 오래 떠나 산 유일한 시기였다.
1917년 8월 카프카는 결핵 진단을 받았다. 오랫동안 병가를 내다가 1922년 연금을 받고 퇴직했다. 병은 목으로 번져 먹고 마시는 일조차 고통스러워졌다. 그는 1924년 6월 3일 빈 근교 키를링의 요양원에서 마흔 살로 세상을 떠났고, 프라하의 신(新)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쉬움
체코 도시의 독일어 쓰는 유대인
카프카 시대의 프라하에는 여러 세계가 겹쳐 있었다. 주민 대부분은 체코어를 썼고 체코 민족의식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보다 적지만 영향력 있는 소수가 독일어를 썼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가 카프카 집안 같은 유대인이었다. 곧 카프카는 소수 속의 소수였다. 체코인 사이의 독일어 사용자였고, 독일어 사용자 사이의 유대인이었다. 게다가 반유대주의가 사방에 퍼져 있던 때였다.
카프카는 체코어를 잘했고 체코 문학도 읽었지만 글은 오직 독일어로 썼다. 그의 독일어는 맑고 정확하다는 평을 자주 듣는데, 프라하의 독일어가 다른 지역의 일상 독일어와 얼마간 떨어져 있었던 것도 한 이유로 꼽힌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지자 프라하는 새로 생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가 되었고, 카프카도 많은 독일어 사용자처럼 새 나라의 국민이 되었다.
유대교와의 관계는 생애에 걸쳐 변했다. 집안은 신앙을 느슨하게 지켰고 그는 10대에 무신론자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1911년 동유럽에서 온 이디시어 유랑 극단에 매료되면서 유대 문화와 시오니즘에 관심을 키웠다. 말년에는 히브리어를 공부하며 팔레스타인 이주를 꿈꾸었다. 그가 죽은 뒤 세 여동생은 모두 홀로코스트로 목숨을 잃었고, 밀레나 예센스카도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 이 역사는 후대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읽는 방식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중급
주요 작품
작가 카프카의 전환점은 1912년 9월 22일에서 23일로 넘어가는 밤, 단편 「판결」을 단숨에 써 낸 일이었다. 젊은 아들과 늙은 아버지의 대화가 갑자기 고발로 바뀌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익사형을 선고하며, 아들은 곧바로 그 선고를 따른다. 카프카는 일기에 글은 오직 이렇게, 몸과 영혼이 완전히 열린 상태에서만 써야 한다고 적었다. 이 작품은 펠리체 바우어에게 헌정되었다.
몇 주 뒤인 1912년 11~12월에 그는 『변신』을 썼다. 부모와 여동생을 부양하던 외판원 그레고르 잠자가 ‘흉측한 해충(ungeheueres Ungeziefer)’으로 깨어난다. 처음에는 가족이 어떻게든 견디려 하고 여동생 그레테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지만, 가족은 점점 그를 짐으로 여긴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다친 그레고르는 홀로 죽고, 가족은 안도하며 앞날을 계획한다. 1915년 출간된 이 작품은 카프카가 완성작으로 여긴 글 가운데 가장 길다. 그는 출판사에 표지에 벌레 자체를 그려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1914년에 쓰기 시작한 『소송(Der Process)』은 어느 날 아침 죄목도 모른 채 체포된 은행 간부 요제프 K.의 이야기다. 그는 출근도 자유롭게 하지만 다락방과 셋집 건물에서 열리는 수수께끼 같은 법정에 삶이 조금씩 잠식당한다. 소설에는 우화 「법 앞에서」가 들어 있다. 시골 사람이 평생 법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 앞에서 문지기에게 막혀 기다리다가, 죽기 직전에 이 문은 오직 그를 위한 것이었다는 말을 듣는다. 카프카는 이 우화를 생전에 따로 발표했다.
1922년에 쓰기 시작한 『성(Das Schloss)』은 K.라고만 불리는 측량사가 성의 관리들이 다스리는 눈 덮인 마을에 와서 자기 지위를 인정받으려 끝없이 애쓰는 이야기다. 1912년에 시작한 『실종자(Der Verschollene)』, 흔히 『아메리카』로 불리는 작품은 카프카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미국으로 건너간 유럽 소년을 그린, 비교적 희극적인 소설이다. 세 장편 모두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 밖에도 죄수의 몸에 판결문을 새겨 처형하는 기계에 헌신하는 장교를 그린 『유형지에서』(1919), 짧은 글을 모은 『시골 의사』(1919/20), 우리 안에서 굶는 것을 구경거리로 삼는 공연자를 그린 『단식 광대』(1924),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적은 긴 편지로 끝내 전해지지 않은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1919년 작성)가 중요하다.
중급
카프카는 어떻게 쓰는가
카프카의 가장 두드러진 기법은 있을 수 없는 일을 일상의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다. 『변신』은 그레고르가 어떻게, 왜 변했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 문을 여는 법, 놓친 기차, 집안의 빚 같은 현실 문제에 매달린다. 이 밋밋하고 정확한 문체 때문에 부조리한 상황이 섬뜩할 만큼 실감 나게 다가온다.
서술은 대개 한 인물 곁에 바짝 붙어 있고, 그 인물은 독자만큼만 안다. 요제프 K.와 측량사 K.는 정보를 모으고 계획을 세우고 자기 입장을 논리적으로 주장하며 상황을 풀어 보려 하지만, 설명 하나하나가 또 다른 지연이나 또 다른 관리로 이어질 뿐이다. 문장 하나하나의 논리는 분명한데 전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카프카는 우화, 단편(斷片), 아포리즘 같은 짧은 형식도 사랑했다. 1917~1918년 시골 마을 취라우에서 요양하며 진리와 죄와 희망에 관한 번호 붙은 아포리즘을 썼다. 「법 앞에서」나 「황제의 전갈」 같은 짧은 글은 의미를 하나로 못 박을 수 없는 현대의 종교적 우화처럼 읽힌다.
놓치기 쉽지만 유머도 그의 글에서 중요하다.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가 친구들 앞에서 『소송』의 첫 장을 낭독하다가 너무 웃어서 계속 읽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오늘날 많은 독자는 그의 작품을 종교·철학 문학의 전통뿐 아니라 슬랩스틱과 이디시 연극의 전통에도 닿아 있는 희비극으로 본다.
중급
주제: 법, 죄, 아버지, 이방인
법과 권력. 카프카는 법률가로 교육받았고 평생 큰 행정 기관에서 일했다. 그의 소설에는 강력하지만 숨어 있는 법정, 관리, 서류, 위계가 가득하다. 인물들은 최고 권력자를 결코 만나지 못하고, 자기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하급 관리나 변호사, 전령만 상대한다. 많은 독자가 여기서 현대 관료제, 나아가 그가 죽은 뒤 등장한 전체주의 국가를 예언한 모습을 보았다. 물론 카프카는 그런 국가들이 나타나기 전에 이 작품들을 썼다.
죄와 심판. 「판결」, 『소송』, 『유형지에서』에서는 분명한 범죄 없이 사람이 고발되고 처벌받는다. 고발당한 사람은 흔히 자기 죄를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이 죄가 종교적인지, 심리적인지, 사회적인지, 실존적인지를 두고 비평가들의 견해가 갈리며, 텍스트는 여러 읽기를 동시에 허락한다.
아버지와 아들. 위압적인 아버지는 「판결」과 『변신』에 등장하고,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는 헤르만 카프카 앞에서 평생 느낀 무력감을 그린다. 정신분석 비평은 이 점을 크게 부각했지만, 카프카 자신은 정신분석을 자기 작품의 열쇠로 삼는 데 회의적이었다.
이방인과 몸. 카프카의 주인공은 흔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다. 마을에 온 측량사, 미국에 간 이민자,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사람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운 원숭이, 굴속에 숨은 짐승이 그렇다. 몸은 변하고, 병들고, 굶주리고, 새겨진다. 이 이미지들은 중부 유럽 유대인의 경험, 질병, 현대 노동자의 소외, 그리고 소통 자체의 어려움과 연결되어 읽혀 왔다.
중급
막스 브로트와 원고의 운명
카프카는 막스 브로트에게 일기, 원고, 편지, 그림을 읽지 말고 태워 달라는 쪽지 두 장을 남겼다. 브로트는 이미 그런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카프카에게 말한 적이 있었고, 실제로 태우지 않았다. 그는 1925~1927년 『소송』, 『성』, 『아메리카』를 엮어 펴냈고, 이어 단편집·일기·편지를 출간했다. 다만 카프카 자신이 이미 많은 원고를 없앴고, 일부는 베를린에서 도라 디아만트의 도움을 받아 태웠기 때문에 적지 않은 글이 사라졌다.
브로트의 판본은 카프카를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그를 읽는 방식도 규정했다. 브로트는 미완성 장들을 배열하고, 소설에 제목과 완결된 모습을 부여했으며, 카프카를 종교적 구도자로 해석했다. 후대 학자들은 그의 편집 방식 일부를 비판했고, 1980년대부터 원고에 바탕을 둔 비평판이 나와 카프카 자신의 철자와 구두점, 미완의 상태를 되살렸다.
1939년 독일군이 프라하를 점령하자 브로트는 카프카의 원고가 든 가방을 들고 팔레스타인으로 탈출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뒤에 영국 옥스퍼드로 옮겨져 지금 보들리 도서관에 있다. 『소송』의 원고는 1988년 경매에서 팔려 지금 독일 마르바흐의 독일문학기록원에 있다. 브로트가 비서 에스터 호페에게 남긴 원고는 이스라엘에서 오랜 소송의 대상이 되었고, 2016년 이스라엘 대법원이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의 소유라고 판결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중급
영향과 유산
카프카의 명성은 제2차 세계대전 뒤 빠르게 커졌다. 1930년대부터 나온 윌라·에드윈 뮤어 부부의 영어 번역과 프랑스어 번역이 그를 국제 독자에게 소개했고, 전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작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알베르 카뮈 같은 실존주의 작가들은 그를 부조리의 안내자로 보았고, 다른 이들은 전체주의의 예언자로 읽었다.
세계 곳곳의 작가들이 그의 영향을 이야기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여러 차례 그에 관해 썼는데, 특히 에세이 「카프카와 그의 선구자들」에서 모든 작가는 자기의 선구자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고 주장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변신』을 읽고 소설이 사실주의의 규칙을 깨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사뮈엘 베케트, 브루노 슐츠, 필립 로스, 아베 고보, 그리고 제목부터 그의 이름을 딴 『해변의 카프카』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은 다양한 작가에게서 확인된다.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카프카는 오랫동안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1963년 리블리체에서 열린 학술 대회는 그의 소외라는 주제가 사회주의 사회에도 해당한다고 주장했고, 흔히 ‘프라하의 봄’ 개혁 운동의 전조로 평가된다. 오늘날 프라하는 박물관과 기념물, 문학상으로 그를 기린다.
‘카프카스러운’이라는 형용사는 이제 여러 언어에서 악몽처럼 복잡하고 비논리적이며 관료적인 상황을 가리킨다. 일부 비평가는 이런 대중적 쓰임이 우스꽝스럽고 다정하며 깊이 모호한 카프카의 작품을 납작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심화
해석을 둘러싼 논쟁
카프카만큼 서로 경쟁하는 해석을 많이 불러낸 현대 작가는 드물다. 브로트를 따른 초기 독자들은 그를 신의 은총을 찾는 종교적·신학적 작가로 보았다. 성과 법정은 숨은 신의 형상으로 읽힐 수 있었다. 1940~1950년대 실존주의 해석은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그린 작가로 보았다. 마르크스주의와 사회학적 비평은 소외된 노동과 관료적 지배를, 정신분석 비평은 아버지 콤플렉스와 몸을 강조했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카프카: 소수 문학을 위하여』(1975)는 큰 전환점이었다. 두 사람은 카프카가 ‘소수 문학’을 썼다고 주장했다. 소수자가 주류 언어(프라하의 독일어)를 그 언어의 영토에서 떼어 내듯 사용하며,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만들고 집단적 가치를 부여하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숨은 상징의 의미를 찾는 대신 카프카의 텍스트가 욕망과 권력의 기계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따라가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중부 유럽 유대인의 동화, 시오니즘, 이디시 문화, 반유대주의라는 맥락에서 카프카를 읽고, 홀로코스트가 그의 수용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묻는다. 발터 벤야민은 1934년 에세이에서 신학적 환원과 심리학적 환원을 모두 경계하며 우화의 몸짓과 끝내 풀리지 않는 성격에 주목했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카프카의 작품이 하나의 열쇠로 열리지 않는다는 데 동의한다. 『소송』에서 신부가 「법 앞에서」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여러 해석을 내놓듯, 카프카의 텍스트는 해석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해석의 실패를 연출한다. 그래서 끝없는 논쟁 자체가 카프카의 글이 하는 일의 일부라고 보는 비평가도 있다.
심화
사료: 원고, 일기, 전기
카프카에 관한 지식은 유난히 사적인 기록에 많이 기대고 있다. 1909년 무렵부터 1923년까지 쓴 일기, 공책, 그리고 펠리체 바우어·밀레나 예센스카·막스 브로트·가족 등에게 보낸 수천 통의 편지다. 펠리체와 밀레나가 그에게 보낸 편지는 남아 있지 않아 우리는 한쪽 목소리만 듣는다. 이 기록들은 풍부하지만 출판을 염두에 둔 글이 아니었고, 카프카가 상대에 따라 자신을 다르게 드러냈다는 점도 보여 준다.
수십 년 동안 독자들은 브로트의 판본과 그가 1937년에 낸 전기에 의존했는데, 이 전기는 성자 같은 종교적 카프카를 그렸다. 1982년부터 S. 피셔 출판사가 낸 비평판과 이후의 원고 영인본 덕분에 학자들은 카프카가 지운 부분, 장 순서의 여러 가능성, 미완성 단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소송』의 장 순서는 카프카가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집자마다 다르게 재구성했다.
현재 가장 충실한 전기는 라이너 슈타흐의 세 권짜리 전기로, 브로트의 유품을 포함해 새로 공개된 자료를 이용해 카프카의 일상과 사회적 세계를 재구성했다. 슈타흐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보험공사에서 쓴 업무 문서도 활용했는데, 이 문서들은 카프카를 고뇌하는 예술가만이 아닌 꼼꼼하고 유능한 공무원으로 보여 준다.
아직 불확실한 점도 많다. 사라진 원고에 무엇이 있었는지, 미완성 장편을 어떻게 끝맺으려 했는지, 원고를 정말 없애고 싶었는지 등이다. 그가 거절할 것이 뻔한 친구를 유고 관리인으로 골랐다는 점에서, 브로트에게 한 부탁이 진심이었는지를 두고 학자들은 지금도 논쟁한다.
핵심 개념
- 카프카스러움(Kafkaesque)
- 숨은 권력이 지배하는, 악몽처럼 혼란스럽고 비논리적인 상황. 카프카의 소설에서 나온 말이다.
- 알 수 없는 권력
- 큰 힘을 지녔지만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 결코 닿거나 이해할 수 없는 법정, 성, 관청.
- 죄 없는 죄
- 무엇을 했는지 듣지 못한 채 고발되고 심판받으며, 끝내 자기 죄를 받아들이는 인물들.
- 담담한 기괴함
- 있을 수 없는 사건을 차분하고 정확한 일상 언어로 서술해 도리어 현실처럼 느끼게 하는 기법.
- 우화
- 「법 앞에서」처럼 깊은 교훈을 품은 듯하지만 하나의 의미로 정리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
- 아버지와 아들
- 헤르만 카프카와의 어려운 관계를 반영한, 압도적인 아버지라는 반복되는 형상.
- 소수 문학
- 소수자가 주류 언어로 쓰는 문학을 가리키는 들뢰즈와 과타리의 용어. 프라하 독일어로 쓴 카프카가 대표적 예다.
기록
- 1883년 — 7월 3일 프라하에서 헤르만과 율리 카프카의 아들로 태어나다.
- 1906년 — 프라하 독일어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다.
- 1908년 —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들어가다. 첫 산문이 잡지 『히페리온』에 실리다.
- 1912년 — 펠리체 바우어를 만나다. 하룻밤(9월 22~23일)에 「판결」을, 11~12월에 『변신』을 쓰다. 『관찰』 출간.
- 1914년 — 펠리체 바우어와의 첫 약혼을 깬 뒤 『소송』을 쓰기 시작하다.
- 1915년 — 『변신』이 출간되다.
- 1917년 — 8월 결핵 진단을 받다. 취라우에 머물며 아포리즘을 쓰다.
- 1919년 — 『유형지에서』 출간. 전하지 못한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쓰다.
- 1922년 — 『성』을 쓰기 시작하다. 보험공사에서 연금을 받고 퇴직하다.
- 1923년 — 베를린에서 도라 디아만트와 함께 살다.
- 1924년 — 6월 3일 빈 근교 키를링에서 세상을 떠나다. 곧이어 『단식 광대』가 나오다.
- 1925년 — 막스 브로트가 『소송』을 펴내고, 이어 『성』(1926)과 『아메리카』(1927)를 출간하다.
용어 풀이
- 오스트리아-헝가리
- 합스부르크 왕가가 다스린 다민족 제국. 1918년까지 보헤미아와 프라하를 포함했다.
- 보헤미아
- 오늘날 체코 공화국 서부의 역사적 지역. 중심 도시는 프라하다.
- 중편소설(노벨레)
- 단편보다 길고 장편보다 짧은 소설. 『변신』이 그 예다.
- 우화
- 도덕적·영적 진리를 가르치거나 암시하는 짧은 이야기.
- 아포리즘
- 생각이나 진리를 짧고 날카롭게 표현한 문장.
- 유고 관리인
- 작가가 죽은 뒤 발표되지 않은 글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사람. 카프카의 경우 막스 브로트.
- 모더니즘
- 현대의 경험을 표현하려고 전통 형식과 결별한 20세기 초의 예술 운동.
- 결핵
- 주로 폐에 생기는 심각한 전염병. 카프카 시대의 주요 사망 원인이었다.
- 비평판
- 원고를 바탕으로 텍스트를 재구성하고 이문(異文)과 수정 내역을 기록한 학술 판본.
- 이디시어
- 중부·동유럽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전통 언어. 독일어를 바탕으로 히브리어와 슬라브어 요소가 섞였다.
묻고 답하기
카프카가 정말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이야기를 썼나요?
네. 『변신』(1915)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흉측한 해충’으로 깨어나요. 카프카는 그것이 어떤 생물인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고, 책 표지에 그려서도 안 된다고 했어요.
카프카는 왜 자기 글을 태우라고 했나요?
그는 자기 작품 대부분에 만족하지 못할 만큼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하지만 거절하겠다고 이미 말한 막스 브로트에게 그 일을 맡겼기 때문에, 그 부탁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의문을 품는 학자도 있다.
카프카는 독일 작가인가요, 체코 작가인가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어 체코슬로바키아에 살며 독일어로 쓴 프라하의 유대인이다. 독일어 문학, 체코·프라하 문화, 유대 문학에 동시에 속한다.
‘카프카스럽다’는 무슨 뜻인가요?
규칙도, 누가 책임자인지도 알 수 없는 혼란스럽고 위협적이며 터무니없이 관료적인 상황을 말해요.
카프카의 장편은 완성된 작품인가요?
아니다. 『소송』, 『성』, 『아메리카』 모두 미완성이다. 『소송』에는 마지막 장이 있지만 나머지 장의 순서는 편집자가 정해야 했다.
『소송』은 전체주의를 예언한 작품인가요?
1945년 이후 많은 독자가 그렇게 읽었지만, 카프카는 전체주의 국가가 등장하기 전인 1914~1915년에 이 작품을 썼다. 법, 종교, 심리, 현대 제도 일반 가운데 무엇에 관한 작품으로 읽을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진다.
카프카의 원고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주로 옥스퍼드의 보들리 도서관, 『소송』 원고가 있는 마르바흐의 독일문학기록원,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Franz Kafka. Wikipedia
- 프란츠 카프카. 위키백과
- The Metamorphosis. Wikipedia
- The Trial. Wikipedia
- The Castle (novel). Wikipedia
- Letter to His Father. Wikipedia
- Max Brod. Wikipedia
- Kafkaesque. Wikipedia
- Reiner Stach (trans. Shelley Frisch), Kafka: The Decisive Years. Harcourt, 2005
- 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trans. Dana Polan), Kafka: Toward a Minor Literature.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6
함께 보기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도덕적 책임, 빈곤, 신앙, 근대 도시의 압박을 탐구한 러시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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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