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누군가를 왜 좋아하는지처럼 정말 중요한 것을 말로 설명하려는데, 말이 모자란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젊은이는 이런 문제를 아주 깊이 생각했어요. 말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을까?
그는 자기 생각을 아주 짧은 책에 적었어요. 책 이름은 아주 긴 라틴어, 『트락타투스 로기코-필로소피쿠스』예요. 우리말로는 『논리철학논고』라고 해요. 이 책은 보통 책처럼 장으로 나뉘어 있지 않아요. 번호가 붙은 문장들이 블록 쌓기처럼 쌓여 있어요. 1번이 가장 큰 블록이고, 1.1이 그 위에, 1.11이 또 그 위에 놓이는 식이에요.
첫 문장은 이래요. “세계는 일어나는 일의 전부이다.” 세계는 ‘고양이가 매트 위에 있다’ 같은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에요. 비트겐슈타인은 문장이 사실의 그림이나 모형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했어요. 탁자 위의 장난감 자동차와 트럭으로 실제 교통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보여 줄 수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문장 속 낱말들의 배열이 세계 속 사물들의 배열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그릴 수 없는 것도 있어요.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아름다운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같은 것이에요.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것은 사실을 말하는 보통 문장으로는 전혀 말할 수 없다고 했어요.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래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에요. 많은 독자는 오히려 그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제1차 세계 대전 때 병사로 싸우면서 공책에 썼어요. 나중에 그는 생각을 많이 바꾸어 아주 다른 책을 썼어요. 그래도 『논리철학논고』는 지금까지 철학자들을 궁금하게 하고 영감을 주고 있어요.
한눈에 보기
- 지은이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 오스트리아 태생 철학자, 뒤에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 집필
- 약 1913~1918년. 케임브리지와 노르웨이에서 한 메모, 제1차 세계 대전 복무 중의 공책을 바탕으로 함. 서문 말미에 ‘빈, 1918년’
- 초판
- 1921년, 독일어 「논리철학논문(Logisch-philosophische Abhandlung)」으로 빌헬름 오스트발트의 학술지 『자연철학 연보』(라이프치히)에 실림
- 영어판
- 1922년 런던 키건 폴. 독일어·영어 대역. C. K. 오그던이 프랭크 램지의 도움으로 번역, 버트런드 러셀 서문
- 제목
- 라틴어 제목은 G. E. 무어가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Tractatus Theologico-Politicus)』을 본떠 제안
- 형식
- 일곱 개의 주요 명제와 번호 붙은 하위 명제(1, 1.1, 1.11 …). 80쪽이 채 안 됨
- 주제
- 그림 이론, 논리적 형식, 진리 함수, 말하기와 보여 주기, 언어의 한계, 윤리와 신비
- 영향
- 빈 학파와 논리 실증주의, 논리·언어에 대한 분석철학. 뒤에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비판
쉬움
『논리철학논고』란 무엇인가?
『논리철학논고』(흔히 『논고』 또는 라틴어 약칭 『트락타투스』, 인용 약호 TLP)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생전에 펴낸 유일한 철학책이다. 대부분의 판본에서 80쪽이 채 안 될 만큼 짧지만, 20세기 철학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저작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언어와 생각이 세계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묻는다. 한 문장이 어떤 것에 관한 것이 되고,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비트겐슈타인의 답은 놀라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철학의 전통적인 문제 상당수와 윤리·미학·종교는 그 한계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서문에서 책의 뜻 전체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릇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또 그는 철학의 문제들을 본질적으로 최종 해결했다고 대담하게 주장한 뒤, 이것이 그 문제들을 해결해도 얼마나 적은 것이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준다고 덧붙인다.
라틴어 제목은 ‘논리적·철학적 논고’라는 뜻이다. 케임브리지의 철학자 G. E. 무어가 영어판을 위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제목을 본떠 제안했다. 원래 독일어 제목은 그저 「논리철학논문」이었다.
쉬움
번호 붙은 문장으로 지은 책
『논고』는 번호가 붙은 짧은 단락들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명제는 1부터 7까지 일곱 개다. 마지막 7을 뺀 각 명제 뒤에는 소수점 번호가 붙은 설명이 따른다. 2.1은 2에 대한 설명이고, 2.12는 2.1에 대한 설명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각주에서 이 번호가 각 명제의 논리적 무게와 강조점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일곱 개의 주요 명제가 책의 뼈대다. 쉽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1. 세계는 일어나는 일의 전부이다. 2. 일어나는 일, 곧 사실은 사태들의 존립이다. 3.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이 생각이다. 4. 생각은 뜻이 있는 명제이다. 5. 명제는 요소 명제들의 진리 함수이다. 6. (모든 명제의 일반 형식을 나타내는 공식) 7.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문체는 압축적이고 신탁 같아서, 논증이라기보다 잠언 모음에 가깝다. 러셀이 주장에 대한 논증을 붙이라고 권하자, 비트겐슈타인은 그러면 책의 아름다움이 망가진다고 답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독자는 추론 과정을 스스로 재구성해야 하고, 이것이 해석이 크게 갈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대략 말하면 이 책은 세계(명제 1~2)에서 출발해, 생각과 문장이 세계를 그리는 방식(3~4), 논리(5~6)를 거쳐, 마지막으로 언어의 한계, 곧 자아와 윤리, 신비, 그리고 침묵(6의 끝과 7)에 이른다.
중급
세계, 사실, 그리고 그림 이론
『논고』는 세계가 무엇인지에서 시작한다. 세계는 사물들의 모음이 아니라 사실들의 모음이다. 사실은 더 단순한 ‘사태(Sachverhalt)’들로 이루어지고, 사태는 단순한 대상들의 결합이다. 대상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며, 대상들이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논리적 공간’을, 실제 결합이 세계를 이룬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순한 대상의 예를 하나도 들지 않는데, 이것이 이 책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의미의 그림 이론’을 편다. 명제는 가능한 사태의 그림이다. 명제의 요소(이름)는 대상을 대신하고, 명제 속 이름들의 배열은 대상들이 실제로 배열될 수 있는 방식을 나타낸다. 실제로 그렇게 배열되어 있으면 명제는 참이고, 아니면 거짓이다. 비트겐슈타인은 파리의 한 재판에서 장난감 모형으로 교통사고를 재현했다는 기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림이 현실을 나타내려면 현실과 무언가를 공유해야 한다. 바로 논리적 형식이다. 그러나 이 공유된 형식 자체는 그려질 수 없다. 명제는 자기 밖으로 나가 자기가 어떻게 나타내는지를 기술할 수 없다. 논리적 형식은 명제 안에서 ‘스스로를 보여 준다’. 말할 수 있는 것과 보여 줄 수밖에 없는 것의 구별은 책 전체를 꿰뚫는다.
그림 이론은 문장이 거짓이어도 뜻을 가질 수 있는 이유, 그리고 처음 듣는 문장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는 그 부분들과 그것들의 결합 방식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학이 안고 있던 실제 문제였고, 『논고』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았다.
중급
논리: 진리 함수, 동어반복, ‘논리 상항’
비트겐슈타인은 의미 있는 모든 명제가 요소 명제들을 ‘아니다’, ‘그리고’, ‘또는’, ‘만약 …이면’으로 결합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복합 명제의 참거짓은 오로지 요소 명제들의 참거짓에 달려 있다. 『논고』는 이를 보여 주는 진리표 방법을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했는데, 미국의 논리학자 에밀 포스트도 거의 같은 무렵 독자적으로 이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는 ‘논리 상항’(‘아니다’, ‘또는’ 같은 말)이 어떤 대상도 대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신의 ‘근본 사상’이라고 불렀다. 논리학은 특별한 논리적 대상이나 세계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그릴 수 있는 모든 언어가 갖추어야 할 구조를 비추어 줄 뿐이다.
논리학의 명제는 ‘비가 오거나 오지 않는다’처럼 사실이 어떠하든 참인 동어반복(토톨로지)이다. 모순은 사실이 어떠하든 거짓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둘 다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세계의 논리적 구조를 보여 준다고 한다. 수학도 마찬가지로 사실을 진술하기보다 보여 주는 등식들로 이루어진다. 이 견해는 논리와 수학이 현실을 기술해서가 아니라 형식이나 의미 덕분에 참이라는 뒷날의 생각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명제 6은 요소 명제들에 ‘…도 아니고 …도 아니다’라는 하나의 결합 부정 연산을 되풀이해 적용하는 방식으로 모든 명제의 일반 형식을 하나의 공식으로 제시한다. 이 공식이 ‘모든’과 ‘어떤’에 관한 진술까지 포함한 논리 전체를 정말 만들어 낼 수 있는지는 논리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논쟁되었다.
중급
언어의 한계: 자아, 윤리, 신비
의미 있는 명제가 가능한 사실의 그림이라면, 의미 있어 보이는 많은 문장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의 본질이나 논리적 형식, 가치에 관한 철학적 진술은 어떤 가능한 사태도 그리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 이론의 체계가 아니라 활동, 곧 생각을 명료하게 하는 일이라고 결론짓는다. 철학의 문제 대부분은 우리 언어의 논리를 잘못 이해해서 생긴다.
5.6번대에서 그는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고 쓴다. 또 주체, 곧 ‘나’는 세계 안에 있지 않고 세계의 한계라고 말한다. 눈이 자기가 보는 시야의 일부가 아닌 것과 같다. 유아론에 관한 이 대목은 책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다.
6.4번대와 6.5번대에서 책은 윤리, 미학, 죽음, 삶의 의미로 향한다. 세계의 뜻은 세계 밖에 있어야 한다. 윤리의 명제는 있을 수 없다. 윤리와 미학은 하나다. “세계가 어떻게 있느냐가 신비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한 것이다.” 가능한 모든 과학의 물음에 답이 나오더라도 삶의 문제는 전혀 건드려지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끝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자기 명제들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명제들을 딛고 올라선 뒤 그것들이 무의미함을 알아차리고, 사다리를 오른 뒤에는 사다리를 던져 버려야 한다. 그래야 세계를 올바로 보게 된다. 그리고 명제 7, 침묵이 온다. 그는 1919년 출판을 타진하던 루트비히 폰 피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책의 요점은 윤리적이며, 책은 쓰인 부분과 쓰이지 않은 모든 것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중급
출판과 번역
출판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여러 출판사가 거절했다. 1919년 12월 비트겐슈타인은 헤이그에서 러셀을 만나 원고를 한 줄 한 줄 함께 검토했고, 러셀은 출판을 돕기 위해 서문을 써 주기로 했다. 그러나 서문을 읽은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이 자기 생각을 오해했다고 여겨, 그 서문을 붙인 출판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일을 러셀에게 맡겼다.
독일어 원문은 마침내 1921년 화학자 빌헬름 오스트발트가 편집하던 『자연철학 연보』 14권에, 러셀 서문의 독일어 번역과 함께 실렸다. 인쇄에는 오류가 많았고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못마땅해했다.
1922년 이 책은 C. K. 오그던이 편집한 총서의 하나로 런던의 키건 폴에서 독일어와 영어를 마주 보게 배치하고 러셀의 서문을 붙여 출간되었다. 번역은 주로 젊은 케임브리지 수학자 프랭크 램지가 준비했고, 비트겐슈타인이 자세한 수정 의견을 보내 검토했다. 두 번째 영어 번역인 데이비드 피어스와 브라이언 맥기니스의 번역이 1961년에 나와 지금은 흔히 더 많이 쓰이며, 2020년 이후에도 새 번역이 여럿 나왔다.
책의 초기 원고본은 1965년 철학자 게오르크 헨리크 폰 브리크트가 빈에서 발견해 1971년 『원논고(Prototractatus)』로 출간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전시 공책은 1961년 『1914~1916년 일기(Notebooks 1914–1916)』로 출간되었다. 이 자료들로 학자들은 책의 생각과 번호 체계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따라갈 수 있다.
중급
그 뒤의 비트겐슈타인과 책의 영향
철학을 끝냈다고 믿은 비트겐슈타인은 물려받은 재산을 나누어 주고, 1920년부터 1926년까지 오스트리아 니더외스터라이히의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그 뒤 수도원 정원사로 일했고, 누나 마르가레테를 위해 빈에 모더니즘 양식의 집을 설계하는 일에 참여했다.
그사이 『논고』는 열성적인 독자를 얻었다. 빈에서는 모리츠 슐리크를 중심으로 한 철학자·과학자 모임, 뒷날의 빈 학파가 1920년대 중반 이 책을 한 줄씩 읽었다. 그들은 이 책을 논리 경험주의의 근거로 읽었다. 의미 있는 진술은 논리의 동어반복이거나 경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주장이며, 형이상학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슐리크, 프리드리히 바이스만, 루돌프 카르나프를 만났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의 중요성을 두고 그들과 생각이 달랐고, 때로는 철학 토론 대신 타고르의 시를 읽어 주었다.
1929년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로 돌아왔다. 그는 『논고』를 박사 논문으로 제출했고, 러셀과 무어가 심사했다. 이후 그는 언어를 여러 활동, 곧 ‘언어 놀이’의 집합으로 보는 새로운 철학을 펼쳤고, 이는 그가 1951년 세상을 떠난 뒤 『철학적 탐구』로 출간되었다. 그 서문에서 그는 첫 책에서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논고』는 여러 방식으로 분석철학을 형성했다. 논리 실증주의를 통해, 논리를 동어반복으로 보는 관점을 통해, 언어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그림을 통해, 그리고 철학을 명료화 활동으로 보는 생각을 통해서다. 마지막 침묵에 매혹된 예술가와 작곡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심화
스스로를 무의미하다고 하는 책을 어떻게 읽을까
해석의 핵심 문제는 책의 결말이다. 책의 명제들이 무의미하다면 이 책은 어떻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는가? G. E. M. 앤스컴의 『비트겐슈타인의 논고 입문(An Introduction to Wittgenstein’s Tractatus)』(1959)과 뒷날 P. M. S. 해커로 대표되는 전통적 또는 ‘형이상학적’ 독해는, 이 책이 말할 수는 없지만 보여 줄 수 있는 논리·세계·가치에 관한 진정한 통찰을 전하려 한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 『논고』에는 말할 수 없는 진리가 담겨 있고, 그 무의미는 깨우침을 주는 무의미다.
1980년대 말부터 코라 다이아몬드와 제임스 코넌트가 특히 발전시킨 ‘단호한(resolute)’ 독해, 또는 ‘새 비트겐슈타인’ 독해는 이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무의미는 그냥 무의미이며, 말할 수 없는 진리란 없다. 이 책의 목적은 치료적이다. 독자가 형이상학적 문장들을 이해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 뒤, 실은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내어 그런 식으로 철학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게 한다. 서문과 결말이라는 ‘틀’이 본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려 준다는 것이다.
단호한 독해를 비판하는 이들은 비트겐슈타인이 편지와 대화에서 중요한 것을 전하려 했다고 스스로 말한 점을 이 독해가 무시하고, 책의 정교한 논리 이론을 쓸모없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중간 입장을 취한다. 이 논쟁은 ‘전기’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계를 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단호한 독해는 연속성을, 전통적 독해는 더 뚜렷한 단절을 본다.
그 밖에도 단순한 대상의 정체(감각 자료인지, 공간의 점인지, 다른 무엇인지, 아니면 비트겐슈타인이 일부러 열어 두었는지), 『논고』와 프레게·러셀의 관계, 윤리적 대목에 끼친 쇼펜하우어와 톨스토이 종교 저술의 영향, 그리고 이 책이 카를 크라우스의 언어 비판이나 아돌프 로스의 건축 같은 빈 문화에 얼마나 속하는지가 논쟁거리다.
심화
텍스트, 번역, 증거
『논고』 연구자들은 여러 층의 증거를 다룬다. 1913년의 「논리학 노트」와 1914년 노르웨이에서 무어에게 구술한 메모, 남아 있는 전시 공책(여러 권 가운데 세 권이 전한다), 『원논고』 원고, 타자 원고와 수정된 인쇄본, 그리고 러셀·오그던·피커와 전쟁 때 사귄 친구인 건축가 파울 엥겔만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원논고』 연구로 소수점 번호 체계가 차츰 쌓여 올라갔음이 밝혀졌고, 일부 학자는 이 책을 쪽 순서대로가 아니라 번호별 설명을 따라 나무처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번역 자체도 해석의 문제다. Sachverhalt(오그던은 ‘원자 사실’, 피어스·맥기니스는 ‘사태’로 옮김), Bild(‘그림’), Sinn(‘뜻’), unsinnig(‘무의미한’) 같은 핵심 용어는 어떤 영어 낱말을 고르느냐에 철학적 입장이 실린다. 오그던·램지 번역은 더 직역에 가깝고 때로 어색하며, 피어스·맥기니스 번역은 더 매끄럽지만 덜 충실하다는 평도 있다. 오그던 번역에 대한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수정 의견은 그의 의도를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다. 한국어로도 여러 번역이 나와 있어, 같은 용어를 어떻게 옮길지가 역시 문제가 된다.
전기적 맥락도 해석에 영향을 주었다. 레이 몽크의 전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천재의 의무(Ludwig Wittgenstein: The Duty of Genius)』(1990)는 전쟁 시기의 윤리적·종교적 위기가 책의 마지막 쪽들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강조했다. 일부 철학자는 전기가 논리적 내용의 문제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하고, 다른 이들은 비트겐슈타인 스스로 책의 요점이 윤리적이라고 했다고 응수한다.
출간 100년이 지난 지금도 『논고』는 논리철학의 전문 저작이면서 동시에 말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한 명상이라는 점에서 드물다. 빈 학파에서 단호한 독해자들까지 이어지는 수용사는 짧고 어려운 텍스트 하나가 어떻게 서로 대립하는 독해 전통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핵심 개념
- 사실들의 세계
- 세계는 사물이 아니라 사실의 총체이며, 사실은 단순한 대상들의 결합이다.
- 그림 이론
- 의미 있는 명제는 가능한 사태의 논리적 그림이며, 사물이 그림대로 있으면 참이다.
- 말하기와 보여 주기
- 논리적 형식은 언어로 진술할 수 없고 명제의 구조 속에서 스스로를 보여 준다.
- 진리 함수
- 복합 명제는 요소 명제로 만들어지며, 그 참거짓은 부분들의 참거짓에만 달려 있다.
- 동어반복으로서의 논리
- 논리학의 명제는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언어의 구조를 드러낸다.
- 활동으로서의 철학
- 철학은 학설이 아니라 생각을 명료하게 하고 언어에 대한 혼동을 없애는 활동이다.
- 언어의 한계
- 윤리, 미학, 삶의 의미, 신비는 말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일 수 있다.
- 사다리
- 책의 명제들은 딛고 올라선 뒤, 이해하고 나면 던져 버려야 할 사다리다.
기록
- 1889년 — 4월 26일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빈에서 태어난다.
- 1911년 — 케임브리지로 가서 버트런드 러셀에게 논리학을 배운다.
- 1913년 — 노르웨이에서 홀로 연구하며 「논리학 노트」를 구술한다.
- 1914년 —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에 자원입대하고 전시 철학 공책을 쓰기 시작한다.
- 1918년 — 휴가 중 책을 완성한다. 11월 이탈리아군의 포로가 된다.
- 1919년 —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 헤이그에서 러셀과 원고를 검토한다.
- 1921년 — 독일어 원문이 『자연철학 연보』에 실린다.
- 1922년 — 독일어·영어 대역판이 런던 키건 폴에서 나온다.
- 1929년 — 케임브리지로 돌아가 『논고』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
- 1951년 — 4월 29일 케임브리지에서 세상을 떠난다.
- 1953년 — 『철학적 탐구』가 유고로 출간되어 『논고』의 생각을 비판한다.
- 1961년 — 피어스·맥기니스 번역과 전시 공책 『1914~1916년 일기』가 나온다.
- 1971년 — 1965년 발견된 『원논고』가 출간된다.
용어 풀이
- 명제
- 세계에 대해 참이거나 거짓인 무언가를 말하는 문장.
- 사태(Sachverhalt)
- 단순한 대상들의 결합. 사실을 이루는 기본 단위.
- 논리적 형식
- 그림이 그 대상과 공유하여 표상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
- 진리 함수
- 그 참거짓이 구성 명제들의 참거짓에만 달린 명제.
- 동어반복(토톨로지)
- ‘p이거나 p가 아니다’처럼 어떤 경우에도 참인 명제.
- 진리표
- 구성 명제들의 참거짓 조합마다 복합 명제의 참거짓을 적은 표.
- 논리 실증주의
- 논리적 참과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진술만 의미가 있다고 본 빈 학파의 철학.
- 유아론
- 자기 마음이나 자아만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견해. 『논고』는 이를 특별한 의미로 다룬다.
- 단호한 독해
- 『논고』에 말할 수 없는 진리란 없으며 형이상학적 혼동을 치료하려는 책이라고 보는 해석.
- 분석철학
- 논리와 언어, 논증의 명료함을 중시하는 철학 전통.
묻고 답하기
이 책에는 왜 번호가 가득한가요?
각 문장이 다른 문장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 주려고요. 2.1은 2에 대한 설명, 2.11은 2.1에 대한 설명이에요. 번호는 논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요.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뜻한다’는 무슨 뜻인가요?
대략, 내가 의미 있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기술될 수 있는 세계의 모양을 정한다는 뜻이에요. 그 한계 너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어요.
비트겐슈타인은 윤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나?
아니다. 윤리를 사실 진술로 환원하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말할 수 있는 것 밖에 두었다. 그는 이 책의 요점이 윤리적이라고 했다.
책은 왜 자기 문장을 무의미하다고 하나?
책의 문장들이 논리적 형식과 언어의 한계처럼, 책의 이론에 따르면 보여 줄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 문장들은 던져 버릴 사다리다.
비트겐슈타인은 생각을 바꾸었나?
그렇다. 후기 철학, 특히 『철학적 탐구』는 그림 이론과 언어에 숨은 단일한 논리적 형식이 있다는 생각을 버렸다. 다만 일부 주제는 이어졌다.
정말 참호 속에서 썼나?
상당 부분은 1914~1918년 군 복무 중, 최전방에서도 공책에 초안을 썼다. 다만 핵심 생각은 1912~14년 케임브리지와 노르웨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빈 학파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나?
논리 경험주의의 토대로 읽었다. 의미 있는 진술은 논리적이거나 경험으로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들이 말할 수 없는 것의 중요성을 놓쳤다고 보았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Anat Biletzki, Anat Matar, Ludwig Wittgenstein.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Ian Proops, Wittgenstein’s Logical Atomis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Duncan J. Richter, Ludwig Wittgenstein (1889–1951).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 논리철학논고. 위키백과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위키백과
- Vienna Circle. Wikipedia(영어)
- Ludwig Wittgenstein,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Ogden translation). Project Gutenberg
- Ray Monk(레이 몽크), Ludwig Wittgenstein: The Duty of Genius. Jonathan Cape, 1990
- G. E. M. Anscombe(앤스컴), An Introduction to Wittgenstein’s Tractatus. Hutchinson, 1959
함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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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 카프카불확실한 상황과 이해하기 어려운 권력 앞에 놓인 사람들을 그린 프라하 출신 독일어 작가.
- 바뤼흐 스피노자자연과 인간의 자유, 이성과 종교의 관계를 엄밀하게 탐구한 네덜란드 철학자.
- 이마누엘 칸트지식, 도덕적 의무, 판단에 관한 논의로 근대 철학의 방향을 바꾼 프로이센 철학자.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인도와 세계 여러 지역의 독자들에게 읽힌 벵골어 시인·작가·교육자.
-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리케이온을 세우고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자연학을 두루 저술했다.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