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랭스턴 휴스는 음악을 사랑한 시인이었어요. 글을 쓸 때면 클럽과 거리에서 들려오는 블루스와 재즈에 귀를 기울였고, 시가 그 음악처럼 들리도록 애썼어요. 슬프면서도 웃기고, 느리면서도 빠르게요.
휴스는 1901년 미국 한가운데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이 헤어지는 바람에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을 캔자스의 할머니 댁에서 보냈어요. 할머니는 노예제에 맞서 싸운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휴스는 자주 외로웠고, 책이 친구가 되어 주었어요.
아직 10대였을 때, 휴스는 기차를 타고 거대한 미시시피강을 건너다가 「흑인, 강을 말하다」라는 시를 썼어요.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까지 세계의 큰 강들을 수천 년 동안 알아 왔다고 상상하는 시예요. 이 시가 실리자 휴스는 이름을 알리게 되었어요.
휴스는 뉴욕시의 할렘이라는 동네에 살았어요. 1920년대에 수많은 흑인 예술가와 음악가와 작가가 이곳에 모였어요. 이 신나는 시기를 ‘할렘 르네상스’, 곧 ‘할렘의 부활’이라고 불러요.
그 시절 미국의 흑인들은 법과 관습 때문에 자주 부당한 대우를 받았어요. 학교, 식당, 일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했지요. 휴스는 그런 불공평함을 썼지만, 춤추고 웃고 가족과 함께하고 꿈꾸는 평범한 기쁨도 썼어요. 그의 가장 유명한 시 가운데 하나는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꿈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요.
휴스는 시뿐 아니라 소설, 희곡, 어린이책, 신문 칼럼도 썼고 온 세계를 여행했어요. 사람들은 그를 ‘할렘의 계관시인’이라고 기억해요.
한눈에 보기
- 생애
- 1901년 2월 1일(미주리주 조플린. 본인은 1902년이라고 밝힘) – 1967년 5월 22일(뉴욕시)
- 근거지
- 1920년대부터 뉴욕 할렘. 이스트 127번가 20번지의 집은 뉴욕시 기념물로 지정
- 운동
- 1920년대 할렘 르네상스를 이끈 목소리이자 20세기 미국 문학의 주요 인물
- 시집
- 『지친 블루스』(1926), 『유대인 전당포에 맡긴 좋은 옷』(1927), 『꿈을 지키는 사람』(1932), 『할렘의 셰익스피어』(1942), 『지연된 꿈의 몽타주』(1951), 『너희 엄마한테 물어봐』(1961)
- 산문·희곡
- 장편 『웃음이 없지는 않은』(1930), 단편집 『백인들의 방식』(1934), 브로드웨이 희곡 『물라토』(1935), ‘심플’ 연작, 자서전 『큰 바다』(1940)와 『방랑하며 궁금해하다』(1956)
- 문체
- 재즈·블루스 시. 평범한 흑인 미국인의 목소리와 말투
- 주제
- 흑인의 자긍심과 역사, 인종차별과 분리, 노동계급의 삶, 음악, 지연된 꿈, 민주주의
- 수상
- 『웃음이 없지는 않은』으로 하먼 금메달, NAACP 스핑건 메달(1960)
쉬움
랭스턴 휴스는 누구인가
랭스턴 휴스는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며, 1920년대 뉴욕 할렘을 중심으로 꽃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예술·음악·문학 운동인 할렘 르네상스의 가장 유명한 시인이다. 40년 넘는 활동 기간에 그는 시, 장편과 단편 소설, 희곡, 노랫말, 어린이책, 역사서, 번역, 자서전,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진 신문 칼럼을 펴냈다.
휴스는 블루스와 재즈의 리듬을 문자로 된 시에 들여온 첫 시인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 언어로 썼고, 가정부, 짐꾼, 피아노 연주자, 젊은 학생 같은 평범한 흑인 미국인의 삶이 예술의 주제가 될 만하다고 믿었다. 그의 시는 소리 내어 읽도록 쓰였고, 그는 미국 곳곳과 해외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그의 작품은 흑인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인종차별·불평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함께 담고 있지만, 동시에 유머와 다정함과 희망으로 가득하다. 그의 시구들은 미국 문화와 민권 운동의 일부가 되었다.
쉬움
외로운 어린 시절과 한 편의 유명한 시
제임스 머서 랭스턴 휴스는 1901년 2월 1일 미주리주 조플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서전에서 1902년생이라고 적었지만, 후대 연구는 1901년을 뒷받침한다. 부모는 그가 태어난 직후 헤어졌다. 아버지 제임스 휴스는 미국의 인종차별에 좌절해 쿠바를 거쳐 멕시코로 떠났고, 어머니 캐리 랭스턴은 일자리를 찾아 자주 옮겨 다녔다.
랭스턴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캔자스주 로런스에서 할머니 메리 패터슨 랭스턴과 함께 보냈다. 할머니의 첫 남편 루이스 셰리든 리어리는 1859년 노예제에 맞선 봉기를 일으키려 한 존 브라운의 하퍼스페리 습격에 가담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투쟁과 존엄에 관한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의 역사의식을 빚었다. 휴스는 훗날 이 시절을 외로웠다고 회상하며 책이 피난처였다고 말했다.
10대에는 어머니와 함께 일리노이주 링컨에 살다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로 옮겨 센트럴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곳에서 학교 잡지에 글을 쓰며 칼 샌드버그와 월트 휘트먼 같은 시인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자유시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20년 멕시코의 아버지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가던 그는 세인트루이스 근처에서 미시시피강을 건너며 몇 분 만에 봉투 뒷면에 「흑인, 강을 말하다」를 썼다. 이 시는 화자를 유프라테스강, 콩고강, 나일강, 미시시피강과 이어 고대 아프리카의 역사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현재를 하나로 묶는다. 1921년 6월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잡지 『크라이시스』에 실린 이 시로 그의 문학 인생이 시작되었다.
쉬움
할렘과 할렘 르네상스
1921년 휴스는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했다. 공학을 공부하길 바란 아버지를 만족시키려는 뜻도 있었다. 캠퍼스에서 인종차별을 겪은 그는 1년 만에 학교를 떠났지만, 대학 바로 북쪽 동네인 할렘과 사랑에 빠졌다.
20세기 초 수십만 명의 흑인 미국인이 남부 농촌을 떠나 북부 도시로 옮겨 갔는데, 이를 ‘대이동’이라고 부른다. 할렘은 교회, 클럽, 극장, 신문, 정치 운동이 모인 흑인 미국의 문화 수도가 되었다. 클로드 매케이, 카운티 컬런, 조라 닐 허스턴, 진 투머, 제시 포셋 같은 작가, W. E. B. 듀보이스와 앨레인 로크 같은 사상가, 듀크 엘링턴과 베시 스미스 같은 음악가들이 폭발적인 창작을 이끌었다. 이를 할렘 르네상스 또는 ‘뉴 니그로’ 운동이라고 부른다.
할렘에 자리 잡기 전 휴스는 여행을 다녔다. 1923년에는 서아프리카로 가는 배의 선원으로 일했고, 1924년에는 파리에서 흑인 미국인 재즈 연주자들이 공연하는 나이트클럽의 설거지꾼으로 살았다. 뒤에는 워싱턴 D.C.에서 일했는데, 호텔 식당 보조로 일하던 그가 시인 베이첼 린지의 접시 옆에 자기 시 몇 편을 두고 갔고 린지가 이를 공개적으로 칭찬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925년 그의 시 「지친 블루스」는 전미도시연맹의 잡지 『오퍼튜니티』가 연 공모전에서 1등을 했다.
휴스는 이 운동의 젊은 스타가 되었다. 1926년에는 월리스 서먼, 조라 닐 허스턴 등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잡지 『파이어!!』를 만들었다. 이 잡지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나이 든 흑인 지도자들이 품위 있다고 여기는 선을 넘어 더 자유롭게 쓰려는 젊은 세대의 선언이었다.
중급
『지친 블루스』와 블루스 시
휴스의 첫 시집 『지친 블루스』는 백인 작가이자 사진가 칼 밴 벡턴의 도움으로 1926년 앨프리드 A. 크노프 출판사에서 나왔다. 표제시는 레녹스 애비뉴의 클럽에서 밤늦게 블루스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그리며, 블루스 노랫말을 시 안에 그대로 엮어 넣는다. 블루스의 형식과 정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최초의 문학 시 가운데 하나다.
블루스는 남부 흑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음악 형식으로, 둘째 줄이 첫 줄을 되풀이하고 셋째 줄이 이에 답하는 세 줄 연을 자주 쓴다. 고통과 유머와 버티는 힘이 뒤섞인 정서로, 휴스가 나중에 책 제목으로 쓴 표현대로 하면 ‘울지 않으려고 웃는’ 음악이다. 휴스는 이 패턴을 지면으로 옮겨 흑인의 말과 노래의 소리를 붙잡았다.
두 번째 시집 『유대인 전당포에 맡긴 좋은 옷(Fine Clothes to the Jew)』(1927)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제목은 돈이 떨어지면 좋은 옷을 전당포에 맡긴다는 할렘의 표현에서 왔는데, 당시 전당포 주인 가운데 유대인이 많았다. 이 시집은 매춘부, 노동자, 도박꾼, 가사 노동자를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그렸다. 흑인 언론 상당수는 저속하고 인종의 이미지를 해친다고 공격했지만, 전기 작가 아널드 램퍼새드는 훗날 이 책을 휴스의 가장 빛나는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이 시기의 유명한 시로는 부엌에서 밥을 먹으라고 쫓겨난 흑인 하인이 언젠가 식탁에 앉을 것이며 자기도 미국이라고 선언하는 「나도」, 그리고 어머니가 아들에게 자기 인생은 수정 계단이 아니었지만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말하는 「어머니가 아들에게」가 있다.
중급
「흑인 예술가와 인종의 산」
1926년 6월 휴스는 잡지 『네이션』에 에세이를 발표했고, 이 글은 젊은 흑인 작가들의 선언문이 되었다. 그는 일부 중산층 흑인 미국인이 백인 문화를 흉내 내며 사실상 ‘되도록 덜 흑인답고 되도록 더 미국인답게’ 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욕망이야말로 진정한 흑인 예술의 길을 가로막는 ‘인종의 산’이라고 했다.
휴스는 이에 맞서 평범한 흑인들의 문화, 특히 재즈와 블루스와 영가를 예술가에게 가장 풍부한 원천으로 찬양했다. 그리고 젊은 흑인 예술가들은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각자의 검은 피부를 지닌 자아를 표현하겠다고 선언하며 글을 맺었다. 백인들이 좋아하면 좋고, 싫어해도 상관없다. 흑인 독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 에세이는 흑인 미국 예술이 본질적으로 백인 미국 예술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 조지 스카일러의 글에 대한 반론이기도 했다. 흑인 예술이 독자적이어야 하는지, 정치적이어야 하는지, 품위를 지켜야 하는지, 자유로워야 하는지를 둘러싼 이 논쟁은 할렘 르네상스 내내 이어졌고, 1960년대 흑인 예술 운동 같은 이후의 흐름으로도 이어졌다.
중급
대공황, 급진주의, 여행
휴스는 1929년 펜실베이니아의 역사적 흑인 대학인 링컨 대학교를 졸업했다. 몇 해 동안 그는 조라 닐 허스턴도 후원한 부유한 백인 후원자 샬럿 오스굿 메이슨의 지원을 받았다. 메이슨은 그가 자신이 ‘원시적’이라고 여긴 흑인의 정신을 쓰기를 바랐고, 둘의 관계는 1930년 고통스럽게 끝났다. 비슷한 무렵 휴스와 허스턴은 함께 쓴 희극 『노새 뼈』의 권리를 두고 다투다 우정이 끝났다.
캔자스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는 소년 샌디를 그린 장편 『웃음이 없지는 않은』(1930)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하먼 문학 금메달을 받았다. 대공황기에 휴스의 정치관은 왼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남부의 흑인 대학을 돌며 낭독회를 열었고, 앨라배마에서 강간 누명을 쓴 흑인 소년 아홉 명 ‘스코츠버러 소년들’을 옹호하는 글을 썼으며, 급진적인 시를 발표했다.
1932~1933년 그는 미국의 인종 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자는 초청을 받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일행과 함께 소련에 갔다. 영화는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휴스는 남아서 소련령 중앙아시아를 여행했다. 그는 아이티, 쿠바, 일본, 중국도 방문했고, 1937년에는 스페인에서 흑인 신문의 특파원으로 내전을 보도했다. 그는 흑인 미국인과 카리브해·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의 아프리카계 사람들 사이의 연결에 매료되었고, 니콜라스 기옌,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같은 시인을 번역했다.
단편집 『백인들의 방식』(1934)은 흑인과 백인 미국인의 관계를 아이러니와 쓰라림으로 들여다본다. 희곡 『물라토』는 1935년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려 1년 가까이 공연되었는데, 1950년대 이전 흑인 작가의 브로드웨이 연극으로는 손꼽히게 오래 공연된 작품이다. 1936년에 쓴 시 「미국을 다시 미국이 되게 하라」는 아메리칸드림이 가난한 사람, 흑인, 원주민, 이민자에게는 한 번도 현실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하며 그것이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중급
‘심플’, 『지연된 꿈의 몽타주』, 그리고 말년
1942년 휴스는 가장 중요한 흑인 신문 가운데 하나인 『시카고 디펜더』에 주간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는 ‘심플’이라 불리는 제시 B. 셈플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할렘의 평범한 사내 심플은 술집에서 화자와 전쟁, 인종 분리, 여자, 집주인, 정치를 이야기한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예리한 심플의 입담은 큰 인기를 끌었고, 칼럼은 『심플, 속내를 말하다』(1950)를 시작으로 여러 권의 책으로 묶였다.
1940년대 후반 휴스는 작곡가 쿠르트 바일, 극작가 엘머 라이스와 함께 브로드웨이 오페라 『거리 풍경』의 노랫말을 썼다. 이 수입으로 할렘 이스트 127번가 20번지의 집을 샀고,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지연된 꿈의 몽타주』(1951)는 1940년대의 빠르고 조각난 새 재즈인 비밥을 본뜬 짧은 시들로 이루어진 책 한 권 길이의 연작이다. 할렘의 낮과 밤을 지나며 영화의 몽타주처럼 목소리와 순간을 포착한다. 후렴은 거듭 ‘지연된 꿈’, 곧 계속 미뤄지는 평등의 약속으로 돌아온다. 가장 유명한 시 「할렘」은 ‘지연된 꿈은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해, 그 꿈이 ‘햇볕 속 건포도처럼’ 말라 버리거나 폭발할지 모른다고 암시한다. 로레인 핸즈베리는 1959년 희곡 『태양 속의 건포도』의 제목을 이 구절에서 따왔다.
휴스는 끝까지 왕성하게 작업했다. 『재즈 첫걸음』(1955) 같은 역사서와 어린이책을 쓰고, 흑인 시와 아프리카 시의 선집을 엮고, 가스펠 연극을 쓰고, 『너희 엄마한테 물어봐』(1961)에서는 시와 음악 지시를 결합했다. 그웬덜린 브룩스와 앨리스 워커 같은 젊은 작가들도 지원했다. 그는 1967년 5월 22일 수술 뒤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할렘의 숌버그 흑인문화연구센터 바닥 아래, ‘강’이라는 이름의 코스모그램 문양 밑에 안치되어 있다.
중급
영향과 유산
휴스는 흑인의 구어와 음악이 진지한 문학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데 이바지했다. 흑인 예술 운동의 시인들, 퍼포먼스와 스포큰 워드 시인들, 힙합 아티스트들이 그의 재즈·블루스 시학을 이어받은 후예로 여겨진다. 그의 시는 미국 학교에서 가장 널리 가르치는 시 가운데 하나다.
그의 영향은 국경도 넘었다.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와 에메 세제르 같은 프랑스어권의 네그리튀드 작가들은 그를 흑인 문화의 자기 긍정의 본보기로 읽었고, 그의 작품은 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카리브해에서 널리 번역되고 읽혔다. 1960년대에는 아프리카 문학 선집을 엮어 새 세대 아프리카 작가들을 미국 독자에게 소개했다.
‘지연된 꿈’, ‘나도 미국이다’ 같은 그의 시구는 민권 운동과 공적 담론에서 거듭 인용되어 왔다. 할렘의 랭스턴 휴스 하우스는 1981년 뉴욕시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이스트 127번가의 그 구간은 ‘랭스턴 휴스 플레이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심화
쟁점: 정치, 품위, 사생활
정치와 매카시 시대. 1930년대에 휴스는 「안녕, 그리스도」(1932) 같은 노골적으로 급진적인 시를 쓰고 여러 좌파 운동을 지지했지만, 공산당에 가입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1953년 그는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상원 소위원회에 불려 나갔다. 그는 자기 견해가 바뀌었다고 증언하며 초기 글 일부와 거리를 두었다. 이것이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었는지, 진짜 생각의 변화였는지, 고통스러운 타협이었는지를 두고 비평가와 전기 작가들의 견해가 갈린다. 이 일로 그는 젊은 급진주의자들과 일부 멀어졌고, 보수 진영의 공격도 계속되었다.
재현과 품위. 『유대인 전당포에 맡긴 좋은 옷』 이래 일부 흑인 비평가는 가난, 음주, 성을 그린 휴스의 작품이 백인의 고정관념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휴스와 그를 옹호한 이들은 평범한 삶을 정직하게 그리는 것 자체가 존엄이라고 답했다. 후대 학자들은 이 갈등을, 백인 후원자와 출판사에 일부 기대면서 독립적인 흑인 예술을 규정하려 한 할렘 르네상스의 핵심 문제로 본다.
성 정체성. 휴스는 결혼하지 않았고 연애에 관한 직접적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아이작 줄리언의 영화 『랭스턴을 찾아서』(1989)를 비롯해 일부 학자와 예술가는 그를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 작가로 읽고 몇몇 시에서 암호화된 의미를 찾았다. 아널드 램퍼새드는 증거가 결정적이지 않으며 휴스가 대체로 무성애자였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문제는 열려 있고, 작품 해석에서 이를 얼마나 중시할지에 대해서도 학자들의 의견이 다르다.
단순함과 기교. 휴스가 쉬운 말로 썼기 때문에 한때 비평가들은 그를 모더니스트가 아닌 민중 시인이나 대중 시인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최근 연구는 그의 형식 실험, 몽타주와 음악적 구조의 활용, 그리고 더 난해한 작가들과 나란히 국제 모더니즘 안에서 그가 차지하는 자리를 강조한다.
심화
사료와 전기
휴스는 두 권의 자서전을 남겼다. 1930년까지를 다룬 『큰 바다』(1940)와 1930년대를 다룬 『방랑하며 궁금해하다』(1956)다. 둘 다 생생하고 중요한 자료이지만 공들여 다듬은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휴스는 사생활과 정치에 관해 많은 것을 빼놓았고, 자기 출생 연도부터 시작해 사건을 단순화하기도 했다.
원고, 수천 통의 편지, 스크랩북을 포함한 그의 문서는 주로 예일 대학교 바이네키 도서관의 제임스 웰던 존슨 컬렉션에 있어, 학자들이 자서전을 검증하고 보완할 수 있다. 아나 봉탕, 칼 밴 벡턴과 주고받은 방대한 편지도 출간되었다.
표준 전기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아널드 램퍼새드의 두 권짜리 『랭스턴 휴스의 생애』(1986, 1988)다. 휴스의 시는 처음 발표된 뒤 시집에 실리면서 고쳐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자들은 『크라이시스』, 『오퍼튜니티』, 『시카고 디펜더』처럼 처음 실린 신문과 잡지도 살핀다. 『시 전집』(1994)과 여러 권짜리 작품 전집 덕분에 그의 글쓰기 전체의 폭과 변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핵심 개념
- 블루스 시
- 블루스의 형식과 반복과 정서를 빌려 슬픔과 유머와 버티는 힘을 함께 담은 시.
- 재즈 시
- 『지연된 꿈의 몽타주』처럼 재즈의 리듬, 즉흥, 끊김을 본뜬 시.
- 인종의 산
- 흑인 예술가가 자기 것을 표현하기보다 백인 문화를 흉내 내도록 만드는 압력을 가리킨 휴스의 비유.
- 지연된 꿈
- 흑인 미국인에게 거듭 미뤄져 온 평등과 기회의 약속.
-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
- 노동자, 가정부, 음악가, 학생의 일상어로 쓰며 그들의 삶을 예술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대한 태도.
- 디아스포라의 연결
- 「흑인, 강을 말하다」처럼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아프리카, 카리브해, 라틴아메리카와 잇는 시선.
- 민주주의의 비전
- 「나도」와 「미국을 다시 미국이 되게 하라」처럼 미국의 이상에서 배제된 이들을 위해 그 이상을 되찾으려는 목소리.
기록
- 1901년 — 2월 1일 미주리주 조플린에서 태어나다.
- 1920년 — 미시시피강을 건너는 기차에서 「흑인, 강을 말하다」를 쓰다.
- 1921년 — 이 시가 『크라이시스』에 실리다.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하다.
- 1923년 — 선원으로 서아프리카에 가다. 이듬해 파리에서 지내다.
- 1926년 — 『지친 블루스』와 에세이 「흑인 예술가와 인종의 산」을 발표하다.
- 1927년 — 『유대인 전당포에 맡긴 좋은 옷』을 펴냈다가 흑인 언론의 비난을 받다.
- 1929년 — 펜실베이니아의 링컨 대학교를 졸업하다.
- 1930년 — 장편 『웃음이 없지는 않은』을 펴내다.
- 1932년 — 소련과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다.
- 1935년 — 희곡 『물라토』가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리다.
- 1942년 — 『시카고 디펜더』 칼럼을 시작하고, 곧 ‘심플’이 등장하다.
- 1951년 — 『지연된 꿈의 몽타주』를 펴내다.
- 1953년 — 매카시 상원의원의 소위원회에서 증언하다.
- 1967년 — 5월 22일 뉴욕시에서 세상을 떠나다.
용어 풀이
- 할렘 르네상스
-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 할렘을 중심으로 꽃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학·예술·음악·사상 운동.
- 대이동
- 1910년 무렵부터 1970년 무렵까지 수백만 명의 흑인 미국인이 남부 농촌에서 북부·서부 도시로 옮겨 간 일.
- 블루스
- 미국 남부 깊숙한 곳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만든 음악 형식. 되풀이되는 세 줄 연을 자주 쓴다.
- 비밥
- 1940년대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이 발전시킨 빠르고 복잡한 재즈 양식.
- 인종 분리
- 학교, 교통, 주거, 공공장소에서 인종에 따라 사람을 강제로 갈라놓는 제도.
- 구어(버내큘러)
- 격식을 갖춘 문어와 달리 평범한 사람들이 날마다 쓰는 말.
- 후원자
- 예술가에게 돈을 대는 부유한 지지자. 때로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함께 건다.
- NAACP
- 1909년 설립된 민권 단체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 기관지가 『크라이시스』였다.
- 네그리튀드
- 1930년대부터 프랑스어권 흑인 작가들이 아프리카의 정체성과 문화를 긍정한 문학·정치 운동.
묻고 답하기
랭스턴 휴스를 왜 할렘의 시인이라고 부르나요?
평생의 많은 시간을 할렘에서 살면서, 그 시대 어느 시인보다 할렘의 사람들과 거리와 음악과 꿈을 많이 썼기 때문이에요.
「흑인, 강을 말하다」는 어떤 시인가요?
화자가 유프라테스강, 콩고강, 나일강, 미시시피강 같은 역사의 큰 강들을 알아 왔다고 말하며 흑인 미국인을 수천 년 인류 역사와 이어 주는 시예요. 휴스가 10대 때 썼어요.
‘지연된 꿈’은 무슨 뜻인가요?
자꾸만 미뤄지는 꿈이에요. 휴스는 미국이 흑인에게 계속 미뤄 온 평등의 약속을 이 말로 표현했어요.
휴스의 시는 어떻게 음악과 닮았나요?
블루스의 되풀이되는 줄과 재즈·비밥의 리듬과 갑작스러운 끊김을 빌려 왔고, 때로는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 시를 낭독했다.
휴스는 공산주의자였나요?
1930년대에 여러 좌파 운동을 지지하고 급진적인 시를 썼지만 공산당에 가입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1953년 매카시의 소위원회에서 증언하며 초기 작품 일부와 거리를 두었다.
『유대인 전당포에 맡긴 좋은 옷』은 왜 논란이 되었나요?
많은 흑인 비평가는 가난한 노동계급의 삶을 솔직하게 그린 이 시집이 흑인의 이미지를 해친다고 느꼈다. 휴스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실을 그리는 일을 옹호했고, 후대 비평가들은 이 책을 높이 평가했다.
휴스의 자서전은 얼마나 믿을 만한가요?
귀중하지만 선별적이다. 사생활과 정치에 관해 많은 것을 빼놓았기 때문에, 학자들은 아널드 램퍼새드가 전기에서 한 것처럼 편지와 문서 자료와 대조해 읽는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Langston Hughes. Wikipedia
- 랭스턴 휴스. 위키백과
- The Negro Speaks of Rivers. Wikipedia
- The Weary Blues. Wikipedia
- Fine Clothes to the Jew. Wikipedia
- Not Without Laughter. Wikipedia
- Montage of a Dream Deferred. Wikipedia
- Harlem Renaissance. Wikipedia
- Arnold Rampersad, The Life of Langston Hughes (2 vols.). Oxford University Press, 1986–1988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