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차카 (토머스 모폴로의 소설)

Chaka (세소토어, 1925)

1925년 · 모리자, 바수톨란드

한 문장으로

『차카』는 레소토의 작가 토머스 모폴로가 세소토어로 쓴 소설로, 줄루 왕 샤카의 삶을 상처 입은 소년이 위대한 정복자가 되는 동안 인간다움을 잃어 가는 어두운 이야기로 그려 냈다.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차카』는 약 200년 전 아프리카 남부에 살며 강력한 줄루 왕국을 세운 실제 왕 샤카에 관한 이야기예요. 하지만 역사 교과서는 아니에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지어낸 소설이고, 아주 슬프게 끝나는 전설이나 옛이야기 같아요.

이야기 속 차카는 괴롭힘을 당하다가 아버지에게까지 쫓겨난 소년이에요. 그는 아주 용감하게 자라요. 사람들을 구하려고 혼자서 사자와 하이에나를 물리치지요. 그런데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자, 세상은 불공평하고 힘만이 중요하다고 마음먹어요.

그러다 이사누시라는 수수께끼 같은 치료사이자 마법사를 만나요. 이사누시는 그를 위대한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끔찍한 대가를 요구해요. 차카는 한 걸음씩 강해질수록 한 걸음씩 잔인해져서, 끝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해치고 말아요.

작가 토머스 모폴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둘러싸인 작은 산악 나라 레소토 출신이에요. 그는 100여 년 전 자기 모국어인 세소토어로 이 책을 썼어요. 사람들은 이 책을 권력을 무엇보다 원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고하는 세계의 위대한 비극들과 견주어 왔어요.

인쇄소를 운영하던 선교사들이 이 책을 망설이는 바람에 책이 나오기까지 15년이 걸렸어요. 마침내 1925년에 출간되자 유명해졌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어요.

한눈에 보기

지은이
토머스 모코푸 모폴로(1876~1948). 바수톨란드(지금의 레소토) 출신 교사·작가
언어
세소토어(남소토어)
집필
1907~1910년 무렵. 원고는 1910년에 제출
출간
1925년 12월, 바수톨란드 모리자의 파리복음선교회 산하 모리자 세수토 도서보급소
갈래
역사소설이자 비극. 소토·줄루 구전 전통과 기독교 도덕관을 함께 끌어온다
소재
줄루 왕국의 건설자 샤카(1787년 무렵~1828)의 삶을 허구로 재구성
번역
영어(1931 F. H. 더턴, 1981 대니얼 P. 쿠네네), 프랑스어(1940), 독일어, 아프리칸스어, 스와힐리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등
의의
아프리카어 문자 문학의 이정표. 2002년 20세기 아프리카 최고의 책 12권에 선정

쉬움

『차카』는 어떤 작품인가

『차카』는 토머스 모폴로가 레소토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부에 사는 바소토 사람들의 언어인 세소토어로 쓴 소설이다. 19세기 초 작은 줄루 족장국을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 콰줄루나탈의 강력한 왕국으로 키운 통치자 샤카의 일생을 다룬다. 세소토어로는 그의 이름을 ‘차카(Chaka)’로 적기 때문에 이 제목으로 알려졌다.

소설은 차카가 문제 많은 출생과 어린 시절을 거쳐 전사이자 왕으로 떠오르고, 끝내 이복형제들에게 암살당하기까지를 따라간다. 역사와 전설과 창작이 뒤섞여 있다. 많은 사건이 샤카에 관한 전승에 바탕을 두지만, 마법사 이사누시와 그의 두 하인, 차카가 사랑한 놀리와 같은 중요한 인물은 모폴로가 지어낸 것이다.

모폴로는 1907~1910년 무렵 이 책을 썼지만 출간은 1925년에야 이루어졌다. 이 작품은 흔히 아프리카 언어로 쓰인 최초의 위대한 소설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재능 있는 인간이 야망 때문에 파멸하는 모습을 그렸기에, 독자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나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이야기와 견주어 왔다.

[1][2][7]

쉬움

토머스 모폴로와 모리자

토머스 모코푸 모폴로는 1876년 12월 22일 당시 영국 보호령이던 바수톨란드 마페텡 지방의 하 코자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고, 그는 1833년부터 바소토 사이에서 활동해 온 프랑스 개신교 선교회인 파리복음선교회(PEMS)가 세운 학교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모리자의 성경학교에서 공부하고 교사 훈련을 받았다. 레소토 최초의 파리복음선교회 선교 거점인 모리자는 세소토어 인쇄·출판의 중심지였다. 1898년부터 모폴로는 모리자 세수토 도서보급소에서 일하며 선교회의 세소토어 신문 『레셀리냐나 라 레소토』와도 관계를 맺었다. 그곳에서 그는 글쓰기를 권하는 선교사와 편집자들을 만났다.

첫 책 『동쪽으로 가는 나그네(Moeti oa Bochabela)』는 『레셀리냐나』에 연재된 뒤 1907년에 출간되었다. 잔인한 사회를 떠나 창조주를 찾아 나선 젊은이가 기독교를 만나는 이야기로, 아프리카 언어로 출간된 최초의 소설로 널리 인정받는다. 두 번째 소설 『피트셍』(1910)은 20세기 초 레소토를 배경으로 기독교적 결혼을 그린 사랑 이야기다.

『차카』는 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소설이다. 1910년 개인적인 추문으로 모리자를 떠난 모폴로는 여러 해 동안 남아프리카의 광산 노동자 모집인 등으로 일했고, 다시는 소설을 내지 않았다. 1933년 국경 너머 남아프리카에 농장을 샀지만, 흑인의 토지 소유를 대부분 금지한 1913년 원주민토지법 때문에 큰 손해를 보았다. 그는 1948년 9월 8일 테야테야넹에서 가난 속에 세상을 떠났다.

[2][6]

쉬움

줄거리

차카의 아버지인 족장 센장가코나는 관습을 어기고 결혼 전에 난디와의 사이에서 차카를 얻는다. 나중에 윗자리 아내들이 아들을 낳자 그들은 차카의 출생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하고, 센장가코나는 굴복해 차카의 상속권을 빼앗고 그와 어머니를 박해한다. 소년은 다른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조롱당하지만, 한 여성 치료사가 약과 강가의 의례적 목욕으로 그를 강하게 만든다. 어느 새벽 물속에서 뱀 같은 거대한 괴물이 솟아올라 그를 휘감았다 사라지고, 큰 힘을 약속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청년 차카는 다른 이들이 달아날 때 사람을 덮친 사자를 죽이고, 뒤에는 소녀를 물어 간 하이에나를 죽인다. 그의 용기는 이복형제들의 질투만 키운다. 싸움 끝에 아버지가 그를 죽이라고 명령하자 그는 달아난다. 광야에서 홀로, 세상에 정의란 없고 힘이 곧 법이라고 느끼던 그는 자기 비밀을 다 알고 있는 강력한 점술사이자 주술 의사 이사누시를 만난다. 이사누시는 그에게 야망을 불어넣고, 피 흘리기를 즐기게 하는 약을 쓰고, 짧은 찌르는 창을 만들어 준다.

차카는 음테트와족의 대족장 딩기스와요의 군대에 들어가 이름난 지휘관이 된다. 이사누시가 보낸 기묘한 두 하인, 잘생기고 사나운 말룽가와 큰 귀를 가진 첩자 은들레베가 모든 일을 돕는다. 그는 딩기스와요의 누이 놀리와를 사랑하게 되고, 놀리와도 그를 사랑한다. 딩기스와요의 지원으로 이복형을 물리치고 아버지 부족의 족장이 된다. 딩기스와요가 적 즈위데에게 죽자 차카는 그 자리를 잇고, 자기 나라를 ‘하늘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아마줄루라고 부른다.

이사누시는 더 큰 왕권을 주겠다고 하면서 대가를 요구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몇 달 동안 속으로 싸우던 차카는 자기 아이를 가진 놀리와를 죽인다. 서술자는 이 순간 그에게 남아 있던 인간다움의 마지막 불씨가 꺼졌다고 말한다. 그의 통치는 공포 정치가 된다. 겁먹은 병사들을 처형하고, 자기 자식들을 죽이고, 충성스러운 장군들을 불가능한 임무에 내보내고, 끝내 어머니까지 죽인다. 죽은 이들의 악몽에 시달리던 그는 마침내 이복형제 딩가나와 음흘랑가나의 창에 찔려 죽고, 이사누시가 나타나 대가를 요구한다.

[7][1]

중급

역사 속 샤카

실제 샤카 카센장가코나는 1787년 무렵 줄루 족장 센장가코나와 난디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러 전승은 그와 어머니가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 다른 부족 사이에서 자랐고, 결국 음테트와족 딩기스와요의 군대에서 복무했다는 데 일치한다. 1816년 무렵 그는 당시 작은 집단이던 줄루의 족장이 되었고, 딩기스와요가 은드완드웨족의 즈위데에게 죽은 뒤 줄루를 이 지역의 지배 세력으로 키웠다.

샤카는 짧은 찌르는 창(이클와), 근접 전술, ‘황소 뿔’ 진형, 나이에 따른 연대 편성 같은 군사 개혁을 이룬 인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 난디가 1827년에 죽자 폭력적인 대규모 애도가 벌어졌다고 전한다. 1828년 9월 24일 샤카는 이복형제 딩가네와 음흘랑가나에게 시종 음보파의 도움을 받아 암살당했고, 딩가네가 왕위에 올랐다.

샤카의 성격에 관해 알려진 많은 내용은 그의 말년을 겪은 헨리 프랜시스 핀, 너새니얼 아이작스 같은 몇몇 유럽 상인에게서 나왔는데, 이들에게는 그를 피에 굶주린 폭군으로 그릴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제임스 스튜어트 문서』 같은 자료로 수집된 줄루 구전은 더 복잡한 모습을 보여 준다. 역사학자들은 19세기 초 아프리카 남부를 휩쓴 전쟁과 이주의 물결인 음페카네를 두고도 논쟁한다. 옛 서술은 그 책임을 대체로 샤카에게 돌렸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역사학자 줄리언 코빙 등은 이런 견해가 과장되었고 식민 지배의 이해에 봉사했다고 주장했다.

모폴로의 소설은 이런 전승에 창작을 더했다. 놀리와, 이사누시, 말룽가, 은들레베는 역사 기록에 근거가 없고, 차카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것처럼 많은 역사학자가 의심하는 주장을 사실처럼 제시하기도 한다. 모폴로가 쓴 것은 역사서가 아니라 도덕적·심리적 드라마였다.

[3][5][4]

중급

집필, 지연, 출간

모폴로는 아직 모리자에 있을 때 『차카』의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생애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09년 무렵 나탈로 가서 샤카의 무덤 일대 등 샤카와 관련된 곳을 찾고 구전을 수집했다. 그는 원고를 마쳐 1910년 모리자 도서보급소에 제출했다.

출판을 쥐고 있던 선교사들은 불편해했다. 모폴로의 앞선 두 책은 분명한 기독교 우화였지만, 『차카』는 전통 신앙과 점술과 주술을 분명히 단죄하지 않은 채 생생하게 묘사했고, 이교도 전사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샤카의 폭력을 미화하는, 아니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기독교 개종자들에게 적절한 읽을거리인지 의심한 선교사들도 있었다. 원고는 약 15년 동안 묵혀 있다가, 모폴로가 선교회를 떠난 지 한참 뒤인 1925년에야 인쇄되었다.

학자들은 이 긴 기다림 동안 원고가 고쳐졌는지 묻는다. 원고의 내력이 충분히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출간본이 모폴로의 원래 글을 얼마나 반영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지연은 모폴로가 소설 쓰기를 그만둔 이유로도 자주 거론된다. 이런 출발에도 책은 널리 팔려, 1962년까지 세소토어판만 4만 부 넘게 찍혔다.

[1][2][9]

중급

주제: 야망, 운명, 인간다움의 상실

『차카』의 핵심은 상처 입은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향해 잔인함을 돌리는지에 대한 탐구다. 모폴로는 아버지의 배신, 이복형제들의 박해, 사회의 불의라는 차카가 변해 가는 원인을 꼼꼼히 보여 준다. 독자는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하면서도 그가 되어 가는 모습에 몸서리친다. 공감과 단죄 사이의 이 균형이 이 책을 강렬하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사누시와의 거래는 소설의 전환점이다. 이사누시는 도덕적 굴복을 대가로 권력을 주고, 그 값은 한 걸음씩 올라가 마침내 놀리와의 목숨을 요구한다. 비평가들은 흔히 이사누시를 파우스트 전설의 메피스토펠레스에, 차카의 길을 예언에 부추겨진 야망 때문에 살인과 광기로 치닫는 맥베스에 견주었다. 대니얼 P. 쿠네네의 해석은 또 한 겹을 보탠다. 이사누시, 말룽가, 은들레베를 차카 자신의 성격, 곧 야망과 사나운 자존심과 경계하는 의심이 따로 몸을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술자의 목소리는 기독교 도덕에 물들어 있다. 모폴로는 ‘죄’를 말하고 차카의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찼다고 묘사한다. 동시에 소설은 아프리카의 신앙, 약, 조상의 영을 작품 세계 안의 실제 힘으로 다루는데, 선교사들이 불편해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이 소설이 결국 기독교의 관점에서 차카를 단죄하는지, 아프리카적 의미의 비극적 영웅으로 제시하는지를 두고 비평가들의 견해가 갈린다.

이 책은 권력과 민족에 대해서도 성찰한다. 차카는 한 민족을 만들고 자랑스러운 이름을 주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백성을 파괴한다. 음페카네 전쟁에 대응하며 모셰셰 1세가 세운 왕국의 후손인 바소토 독자들에게 차카의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7][1][10]

중급

언어와 형식

모폴로는 풍부하고 리듬감 있는 세소토어로 썼다. 그는 구전 이야기와 찬양시의 자원을 끌어온다. 반복, 동사와 부사의 겹쓰기, 그리고 소리나 움직임이나 느낌을 흉내 내는 특별한 표현어인 표의음(ideophone)이 그것이다. 이런 기법 덕분에 새벽 강에서 괴물이 나타나는 장면 같은 대목이 생생하고 극적으로 살아난다.

서술자는 자주 한 걸음 물러서서 논평하거나 관습을 설명하거나 사건의 의미를 되새긴다. 청중에게 말하는 이야기꾼 같기도 하고 교훈을 끌어내는 설교자 같기도 하다. 비평가들은 『차카』가 모폴로의 앞선 소설보다 직접적인 설교가 적지만 강한 도덕적 틀은 유지한다고 본다.

소설은 차카를 사자, 코끼리, 들판의 짐승이라 부르는 찬양의 이름과 묘사도 쓰는데, 이는 아프리카 남부 찬양시의 영웅적 언어에서 온 것이다. 쇠약해지고 악몽에 시달리는 마지막 순간에도 서술자는 이 영웅적 어조로 그를 부르며, 이것이 그의 몰락에 비극의 장엄함을 더한다.

[7][9]

중급

번역과 영향

첫 영어 번역은 F. H. 더턴이 옮겨 1931년 국제아프리카연구소를 위해 『차카: 역사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1940년에는 프랑스어 번역이 나왔고, 이후 독일어, 아프리칸스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스와힐리어 등으로도 옮겨졌다. 1981년 바소토 출신 학자 대니얼 P. 쿠네네가 새롭게 완역한 영어판을 냈고, 지금 가장 널리 읽히는 판본이다.

프랑스어 번역을 통해 차카는 네그리튀드 운동과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는 극시 「차카」에서 왕을 민족의 해방을 위해 사랑을 희생해야 하는 시인 영웅으로 그렸다. 말리의 세이두 바디앙이 희곡 『차카의 죽음』에서 그랬듯, 다른 작가들도 샤카를 아프리카의 저항과 단결의 상징으로 다시 상상했다. 남아프리카 시인 마지시 쿠네네는 훗날 줄루어로 서사시 『위대한 황제 샤카』를 썼다.

『차카』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아프리카 책 가운데 하나로 꾸준히 꼽히며, 2002년에는 ‘20세기 아프리카 최고의 책 100선’에서 상위 12권에 들었다. 레소토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물론 세계의 아프리카 문학 강의에서 널리 가르치며, 1950년대 이후 영어·프랑스어로 쓴 아프리카 문학의 물결보다 훨씬 앞서 아프리카 언어로 진지한 현대 문학이 쓰이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1][3]

심화

비평의 쟁점

기독교 우화인가, 아프리카의 비극인가. 초기 유럽 독자들은 흔히 『차카』를 이교의 악을 보여 주는 기독교 도덕 우화로, 심지어 아프리카 통치자에 대한 식민주의적 고정관념을 확인해 주는 책으로 읽었다. 당대 바소토 독자 가운데 일부는 전통 종교를 생생하게 그렸다는 이유로 모폴로를 반기독교적이라고 비난했고, 다른 이들은 이 책이 깊이 기독교적이라고 보았다. 후대 아프리카 비평가들은 구전 서사시에 뿌리를 둔 점을 강조하며, 차카를 아프리카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자기 선택 때문에 몰락하는 비극적 영웅으로 보았다. 오늘날 많은 비평가는 이 소설이 이런 관점들을 해소하지 않고 긴장 속에 붙들고 있다고 본다.

영웅인가, 폭군인가. 샤카의 정치적 의미는 역사에 따라 바뀌었다. 식민주의 저술가들에게 그는 흔히 야만의 상징이었고, 줄루 민족주의와 범아프리카주의자들에게는 아프리카의 군사적 천재성과 단결의 상징이 되었다. 모폴로의 소설은 두 방향으로 모두 읽혔고, 상고르 같은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이를 재해석했다. 줄루 왕에 대해 쓴 바소토 기독교인 모폴로가 역사 인물로서의 샤카에 얼마나 관심을 두었는지, 아니면 권력과 양심이라는 보편적 물음에 더 관심을 두었는지도 학자들 사이의 쟁점이다.

선교회의 통제. 15년의 지연 때문에 『차카』는 선교회 출판사가 초기 아프리카 문학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제약했다는 논의의 핵심 사례가 되었다. 파리복음선교회는 모폴로에게 교육과 인쇄소와 독자를 주었지만, 무엇을 찍을지도 결정했다. 대니얼 쿠네네 같은 비평가들은 모폴로가 기독교 가르침과 소토 문화 사이에서 어떻게 길을 찾았는지, 출판의 제도적 조건이 텍스트를 어떻게 빚었는지를 살폈다.

[1][9][10]

심화

근거, 판본, 연구

기본 텍스트는 1925년 모리자에서 나와 이후 여러 차례 다시 찍힌 세소토어판이다. 원래 원고와 출간 지연에 관한 서신을 온전히 볼 수 없기 때문에, 학자들은 선교회 기록, 모폴로의 전기, 후대의 증언으로 출간 과정을 재구성한다. 편집 과정에서의 수정 가능성이 여전히 열린 문제로 남아 있는 이유다.

초기 번역은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더턴의 1931년 영어판은 대체로 덜 완전하고 모폴로의 문체에서 멀다고 평가되며, 『줄루인 차카』(1949)는 축약본이었다. 쿠네네의 1981년 번역은 표의음과 반복까지 포함해 모폴로의 문체에 충실한 완역을 목표로 했고, 작가와 텍스트에 관한 해설을 곁들였다. 쿠네네는 모폴로의 모든 작품에 대한 요약과 비평(1967)과 단행본 연구 『토머스 모폴로와 세소토어 문자 산문의 출현』(1989)도 썼다.

더 넓은 연구로는 모폴로를 세소토어·코사어·줄루어·암하라어 문학사 속에 놓고 아프리카 언어 문학의 중요성을 확립하는 데 이바지한 앨버트 제라르의 『네 개의 아프리카 문학』(1971)이 있다. 모폴로의 창작과 역사를 가르려면 핀과 아이작스의 신뢰성, 음페카네를 둘러싼 논쟁 등 샤카에 관한 역사 연구와 소설을 견주어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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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야망의 비극
더 큰 권력을 향한 차카의 욕망이 사랑과 가족, 끝내 자신의 인간다움까지 희생하게 만든다.
이사누시와의 거래
도덕적 굴복을 대가로 권력을 받아들이는 계약. 흔히 파우스트 전설과 비교된다.
상처와 복수
어린 시절의 거부와 불의가 ‘힘이 곧 정의’라는 차카의 믿음을 빚는 과정.
지어낸 인물들
이사누시, 말룽가, 은들레베, 놀리와는 허구의 인물로, 차카 자신의 여러 면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글로 옮긴 구전 전통
세소토어·줄루어 구전 예술의 반복, 표의음, 찬양의 언어를 활용한다.
기독교 세계와 아프리카 세계
서술자는 죄를 말하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아프리카의 신앙과 약이 실제 힘으로 작용한다.
아프리카 언어의 문학
20세기 초에 이미 아프리카 언어로 중요한 현대 문학이 쓰였음을 보여 준다.

기록

  1. 약 1787년 — 샤카가 줄루 족장 센장가코나와 난디의 아들로 태어나다.
  2. 약 1816년 — 샤카가 줄루의 족장이 되다.
  3. 1828년 — 샤카가 이복형제 딩가네와 음흘랑가나에게 암살당하다.
  4. 1833년 — 파리복음선교회가 모리자에 선교 거점을 세우다.
  5. 1876년 — 12월 22일 토머스 모폴로가 바수톨란드 하 코자네에서 태어나다.
  6. 1907년 — 모폴로의 첫 소설 『동쪽으로 가는 나그네』가 출간되다.
  7. 약 1909년 — 모폴로가 샤카를 조사하러 나탈을 여행하다.
  8. 1910년 — 모폴로가 『차카』 원고를 제출하고 모리자를 떠나다. 『피트셍』 출간.
  9. 1925년 — 12월 『차카』가 모리자에서 세소토어로 출간되다.
  10. 1931년 — F. H. 더턴의 영어 번역이 나오다.
  11. 1948년 — 9월 8일 모폴로가 테야테야넹에서 세상을 떠나다.
  12. 1981년 — 대니얼 P. 쿠네네의 영어 완역본이 출간되다.

용어 풀이

세소토어
레소토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부에서 쓰는 남소토어. 반투어의 하나다.
바소토 / 모소토
레소토의 사람들(바소토). 한 사람은 모소토라고 한다.
바수톨란드
1966년 독립하기 전 영국 지배 아래에서 레소토를 부르던 이름.
파리복음선교회
1833년부터 레소토에서 활동하며 학교와 모리자 인쇄소를 운영한 프랑스 개신교 선교회(PEMS).
점술사(상고마·이사누시)
아프리카 남부 전통에서 조상의 영과 소통하며 불행의 원인을 진단하는 치료사. 이사누시라는 이름이 이 말에서 왔다.
표의음(ideophone)
소리, 움직임, 감각을 생생하게 흉내 내는 말. 반투어와 구전 이야기에서 흔하다.
찬양시
족장, 전사, 조상을 기리는 아프리카 남부의 전통 구전시(줄루어 이지봉고, 세소토어 리토코).
음페카네
19세기 초 아프리카 남부의 전쟁과 이주의 시기. 그 원인을 두고 논쟁이 있다.
네그리튀드
1930년대부터 프랑스어권 흑인 작가들이 아프리카의 정체성과 문화를 긍정한 운동.
역사소설
과거를 배경으로 실제 인물·사건과 허구를 섞은 소설.

묻고 답하기

『차카』는 실제 이야기인가요?

일부만 그래요. 샤카는 실제 왕이었고 소설은 그의 삶의 큰 줄기를 따라가요. 하지만 마법사 이사누시와 차카가 사랑한 놀리와를 비롯한 많은 인물과 사건은 토머스 모폴로가 지어낸 거예요.

왜 ‘샤카’가 아니라 ‘차카’인가요?

모폴로가 쓴 세소토어에서는 왕의 이름을 ‘차카(Chaka)’라고 적어요. 줄루어와 영어에서는 보통 ‘샤카(Shaka)’라고 써요.

출간까지 왜 15년이나 걸렸나요?

모리자 인쇄소를 운영하던 선교사들은 이 책이 전통 신앙과 주술을 분명히 단죄하지 않고 이교도 전사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은 점을 불편해했다. 지연의 전모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이사누시는 누구인가요?

끔찍한 대가를 받고 차카에게 위대함을 약속하는 수수께끼의 점술사다. 비평가들은 그를 파우스트 이야기의 메피스토펠레스와 비교하며, 차카 자신의 마음의 일부로 읽기도 한다.

『차카』가 최초의 아프리카 소설인가요?

아니다. 모폴로 자신의 『동쪽으로 가는 나그네』(1907)가 아프리카 언어로 출간된 최초의 소설로 흔히 꼽힌다. 다만 『차카』는 아프리카 언어로 쓴 가장 이른 위대한 소설 가운데 하나다.

『차카』는 다른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특히 프랑스어 번역을 통해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와 세이두 바디앙 같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들은 샤카를 아프리카 저항의 상징으로 다시 그렸다.

이 소설은 역사 속 샤카를 정확히 보여 주나요?

그렇지 않다. 샤카에게 적대적인 기록을 포함한 전승과 출판물에 기대고 많은 창작을 더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이 소설을 사료가 아닌 문학으로 다룬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Chaka (novel). Wikipedia
  2. Thomas Mofolo. Wikipedia
  3. Shaka. Wikipedia
  4. 샤카. 위키백과
  5. Mfecane. Wikipedia
  6. Morija. Wikipedia
  7. Daniel P. Kunene, The Works of Thomas Mofolo: Summaries and Critiques (Occasional Paper No. 2). African Studies Center,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1967
  8. Thomas Mofolo, trans. Daniel P. Kunene, Chaka (English translation). Heinemann (African Writers Series), 1981
  9. Daniel P. Kunene, Thomas Mofolo and the Emergence of Written Sesotho Prose. Ravan Press, 1989
  10. Albert S. Gérard, Four African Literatures: Xhosa, Sotho, Zulu, Amharic.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1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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