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바뤼흐 스피노자는 163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조상은 포르투갈에 살던 유대인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유대인에게 크리스트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벌을 주었기 때문에 도망쳐 나왔대요. 암스테르담에서는 자유롭게 유대교를 믿을 수 있었고, 어린 바뤼흐는 공동체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아주 잘했어요.
자라면서 스피노자는 선생님과 이웃들이 걱정할 만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성경은 정말 신이 한 글자 한 글자 쓴 걸까? 신은 하늘 위 왕좌에 앉아 화를 내는 임금님 같은 존재일까? 스물세 살 때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그를 쫓아냈어요. 공동체 사람 누구도 그와 말하거나 그가 쓴 글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지요.
스피노자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들로 옮겨 다니며 현미경과 망원경에 쓰는 유리 렌즈를 갈아서 돈을 벌었어요. 셋방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생각하고 글 쓰는 데 시간을 보냈지요. 유럽 곳곳의 과학자와 학자들이 그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의 가장 큰 생각은, 신은 세상 바깥에 있는 사람 같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 곧 자연 전체라는 것이었어요. 모든 일은 줄지어 선 도미노처럼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요. 그는 사람이 자유로워지는 길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해서 분노·두려움·질투에 휘둘리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가장 유명한 책 『에티카』는 정의, 규칙, 증명이 차례로 나오는 기하학 교과서처럼 쓰였어요. 너무 논란이 될 책이어서 1677년 그가 마흔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에야 출판되었지요.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를 역사상 가장 용감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아요.
한눈에 보기
- 생애
- 1632년 11월 24일 ~ 1677년 2월 21일
- 활동지
- 네덜란드 공화국의 암스테르담, 레이던 근처 레인스뷔르흐, 보르뷔르흐, 헤이그
- 배경
- 암스테르담의 포르투갈계 유대인(세파르디) 상인 집안. 1656년 공동체에서 파문
- 직업
- 철학자. 광학 렌즈를 갈아 생계의 일부를 꾸림
- 주요 저작
- 『에티카』(1677, 사후 출간), 『신학정치론』(1670, 익명), 『정치론』(미완), 『지성교정론』
- 핵심 사상
-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 유일 실체, 필연성, 코나투스, 세 종류의 인식, 이해를 통한 자유, 사상의 자유
- 언어
- 라틴어(네덜란드어·포르투갈어·에스파냐어·히브리어도 사용)
- 영향
- 급진 계몽주의, 독일 관념론과 낭만주의, 성서 비평, 자유주의 정치사상, 현대 심리철학
쉬움
스피노자는 누구인가
바뤼흐 스피노자(포르투갈어로 벤투, 라틴어로 베네딕투스. 세 이름 모두 ‘축복받은 이’라는 뜻이다)는 르네 데카르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함께 17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다. 이성이 실재의 참된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흔히 이들과 함께 ‘합리론자’로 묶인다.
스피노자는 몇 가지 대담한 주장으로 기억된다. 실체는 오직 하나뿐이며, 그것은 신이라고도 자연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모든 일은 이 실체의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 참으로 우연한 것은 없으며, 원인 없는 선택이라는 뜻의 자유의지도 없다. 정신과 신체는 서로 다른 두 사물이 아니라 한 사물을 두 방식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최고선은 이것을 이해하는 데 있으며, 그 이해는 그가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라 부른 고요한 기쁨을 가져온다.
그는 정치사상가이기도 했다. 1670년 『신학정치론』에서 국가는 시민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과 성경에 관한 그의 견해는 매우 위험하게 여겨져, 그는 죽은 뒤 백 년 넘게 무신론자로 비난받았다. 그러나 후대는 그를 근대 세속 사상, 성서학, 민주주의 이론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쉬움
암스테르담에서 보낸 젊은 날
스피노자는 1632년 11월 24일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미하엘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서 말린 과일 등을 들여오는 상인이었다. 집안은 암스테르담의 포르투갈계 유대인 공동체에 속했다. 이 공동체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서 크리스트교로 강제 개종당한 이들(콘베르소)의 후손들이 비교적 관용적인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와서 유대교로 돌아온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머니 한나 데보라는 그가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스피노자는 공동체의 탈무드 토라 학교에서 히브리어, 성경, 유대교 주석을 배웠다. 그러나 랍비가 되기 위한 상급 과정은 마치지 않았다. 형이 죽은 뒤 그는 가업을 도왔고, 1654년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동생 가브리엘과 함께 사업을 꾸렸다.
1650년대 초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학교를 운영하던 전직 예수회원이자 급진적 정치 견해를 지닌 프란시스퀴스 반 덴 엔덴에게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라틴어를 통해 스피노자는 데카르트 철학, 고전 문학, 새로운 과학을 접했다. 또 교회 위계를 거부하고 자유롭게 모여 종교를 토론하던 크리스트교 집단인 메노파와 콜레기안파 사람들과도 가까워졌다.
쉬움
헤렘: 공동체에서 쫓겨나다
1656년 7월 27일, 암스테르담 포르투갈계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당시 스물세 살이던 스피노자에게 헤렘, 곧 파문을 선고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파문문은 유난히 가혹하다. 그의 ‘끔찍한 이단’과 ‘괴물 같은 행위’를 말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그를 저주하고, 공동체 구성원이 그와 소통하거나 한 지붕 아래 머물거나 가까이 가거나 그가 쓴 글을 읽는 것을 금했다.
역사학자들은 그 이단에 훗날 그의 책에 나오는 생각들, 곧 전통적 의미의 영혼 불멸을 부정하고, 신이 계명을 계시하는 입법자가 아니라고 보며, 모세의 율법이 더는 구속력이 없다고 본 생각 등이 들어 있었으리라고 본다. 공동체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구성원들의 삶은 네덜란드 당국의 관용에 달려 있었고, 내부에서 드러나는 종교적 급진주의는 그 관용을 위협할 수 있었다.
스피노자는 화해를 구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유대인 공동체를 떠났지만 어떤 크리스트교 교회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름을 라틴어식인 베네딕투스로 쓰기 시작했고, 철학에 바친 조용한 삶을 시작했다. 헤렘은 끝내 철회되지 않았다. 21세기에 재검토 제안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급
철학자의 삶: 레인스뷔르흐, 보르뷔르흐, 헤이그
1661년 무렵 스피노자는 콜레기안파의 중심지였던 레이던 근처 마을 레인스뷔르흐로 옮겼다. 그곳에서 『신, 인간, 인간의 행복에 관한 소론』을 쓰고 『지성교정론』을 다듬었으며 『에티카』를 쓰기 시작했다. 1663년에는 헤이그 근처 보르뷔르흐로 옮겨, 생전에 자기 이름으로 낸 유일한 책인 『데카르트의 철학 원리』 해설서(부록 「형이상학적 사유」 포함)를 펴냈다.
스피노자는 렌즈를 갈아 돈을 벌었다. 이는 새로운 광학과 연결된 숙련 기술이었고,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같은 과학자도 그의 솜씨를 인정했다. 시몬 요스턴 더프리스, 야리흐 옐레스 같은 친구들의 후원도 받았다. 그를 따르는 모임은 『에티카』 초고를 돌려 읽으며 토론했고, 그는 런던 왕립학회 서기 헨리 올덴부르크와 과학·종교·철학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았다.
1670년 그는 헤이그로 옮겨 생을 마칠 때까지 셋방살이를 했다. ‘재앙의 해’라 불리는 1672년, 프랑스가 공화국을 침공했고 헤이그에서 성난 군중이 정치가 요한 더빗과 그 형 코르넬리스를 살해했다. 훗날 라이프니츠가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현장 근처에 ‘가장 비열한 야만인들(ultimi barbarorum)’이라고 쓴 벽보를 붙이려다 집주인에게 말려졌다고 한다. 1673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철학 교수직 제안을 받았으나, 철학할 자유가 제약될 것을 염려해 사양했다.
1676년 라이프니츠가 헤이그로 찾아와 며칠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피노자는 1677년 2월 21일, 마흔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결핵 같은 폐 질환으로 보이며, 렌즈를 갈 때 나온 유리 가루가 병을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 친구들은 그해 곧바로 미간행 원고들을 라틴어판(『유고집(Opera Posthuma)』)과 네덜란드어 번역판으로 펴냈는데, 표지에는 저자 이름 대신 머리글자만 실었다.
중급
시대 배경: 네덜란드 황금시대
스피노자는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살았다.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네덜란드 공화국은 세계적 무역망과 활발한 출판업, 비교적 폭넓은 종교적 관용을 갖춘 유럽 최대의 상업 강국이 되었다. 암스테르담은 세파르디 유대인, 개신교 이견자, 여러 종류의 망명자를 받아들였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하위헌스의 시대였다.
그러나 관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공인 교회인 개혁교회는 힘이 셌고, 많은 설교자가 종교적 견해를 엄격히 통제하려 했다. 정치는 관용과 상인 엘리트의 지배를 지지한 요한 더빗의 공화파 정권과, 정통 칼뱅파 성직자들과 손잡은 오라녜 가문 지지파로 나뉘어 있었다. 급진적 종교관을 네덜란드어로 출판한 스피노자의 친구 아드리안 쿠르바흐는 1668년 투옥되어 1669년 옥중에서 죽었다. 드러내 놓고 자유사상을 펴는 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 준 사건이었다.
지적으로 스피노자의 세대는 새로운 과학과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았다. 데카르트는 오랫동안 네덜란드에 살았다. 데카르트 철학은 명석판명한 관념 위에 지식을 새로 세우겠다고 약속했고, 네덜란드 대학들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방법과 용어를 받아들였지만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
중급
『에티카』 1: 신 즉 자연
『에티카』의 원제는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처럼 다섯 부가 모두 정의와 공리로 시작하고, 거기서 정리를 증명하며, 따름정리와 주석(스콜리움)을 붙인다. 스피노자는 이 형식이 독자로 하여금 수사가 아니라 이유를 따라가게 하리라 기대했다. 다섯 부는 차례로 신, 정신의 본성과 기원, 감정(정서)의 기원과 본성,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의 힘, 지성의 힘 또는 인간의 자유를 다룬다.
제1부는 실체, 곧 자기 안에 있고 자기를 통해 파악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것이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인 신이라고 논증한다. 나머지 모든 것은 이 실체가 존재하는 방식인 ‘양태’다. 별, 바위, 사람, 생각은 신 바깥에 따로 서 있는 사물이 아니라 하나인 신의 변용이다. 스피노자는 때때로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이라고 쓰는데, 그래서 그의 견해는 흔히 범신론이라 불린다. 다만 이 명칭이 맞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스피노자의 신은 무한히 많은 속성을 지니며, 인간은 그 가운데 연장(물질적임)과 사유 두 가지를 안다. 신은 목적을 위해 행동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 가운데 고르지 않으며, 상을 주거나 벌하지도 않는다. 삼각형의 성질이 그 정의에서 따라 나오듯 모든 것은 신의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 제1부 부록에서 스피노자는 자연이 인간의 목적에 봉사하고 신이 폭풍과 질병을 벌로 내린다는 믿음이 인간의 무지와 자기중심적 상상에서 나온다고 비판한다.
중급
『에티카』 2: 정신, 감정, 자유
정신과 신체. 사유와 연장은 하나인 실체의 두 속성이므로, 인간의 정신과 신체는 ‘때로는 사유 속성 아래에서, 때로는 연장 속성 아래에서 파악된 하나의 같은 것’이다. 정신은 신체의 관념이다. 이를 흔히 평행론이라 부른다. 모든 물리적 사건에는 그에 대응하는 정신적 사건이 있지만 어느 쪽도 다른 쪽의 원인이 아니다. 이로써 스피노자는 비물질적 영혼이 어떻게 물질적 신체를 움직이느냐는 데카르트의 난제를 피했다.
감정. 모든 사물은 자기 존재를 지속하려고 애쓴다. 스피노자는 이 노력을 코나투스라 부르며, 인간에게서 이것은 욕망의 본질이다. 기쁨은 더 큰 행위 능력으로 옮겨 가는 것, 슬픔은 더 작은 능력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사랑, 미움, 희망, 두려움, 시기, 연민 같은 다른 모든 감정은 욕망·기쁨·슬픔에 그 원인에 대한 관념이 더해져 이루어진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행동과 욕구를 ‘선, 면, 입체를 다루듯’ 다루겠다고 말한다.
예속과 자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 원인에 떠밀릴 때 감정은 ‘수동(정념)’이고 우리는 예속 상태에 있다. 사물의 원인을 참으로 이해하는 ‘적합한 관념’을 형성할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진다. 스피노자는 인식을 세 종류로 나눈다. 상상(의견, 소문, 막연한 경험), 이성(공통 성질과 법칙에 대한 인식), 직관지(개별 사물이 신의 본성에서 어떻게 따라 나오는지 보는 것)이다. 더 많이 이해할수록 정념의 지배를 덜 받는다.
지복. 『에티카』의 마지막 부분은 모든 것을 신에게서 따라 나오는 것으로 이해할 때 함께 오는 기쁨인 ‘신에 대한 지적 사랑’과, 어떤 의미에서 정신이 영원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지복은 덕의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다. 책은 이렇게 끝난다.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문 만큼 어렵다.”
중급
종교와 정치: 『신학정치론』
『신학정치론』은 1670년 거짓 출판지를 달고 익명으로 나왔다. 부제가 밝히듯, 이 책의 목표는 철학할 자유를 허용해도 경건함과 공공의 평화가 해를 입지 않으며, 오히려 그 자유를 없애면 둘 다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었다.
스피노자는 성경을 다른 고대 문헌처럼 그 언어, 역사, 저자를 연구해 성경 자체로부터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모세가 모세오경 전체를 쓴 것이 아니며, 예언자들은 지성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상상력이 생생한 사람이었고, 자연법칙을 깨뜨리는 것으로서의 기적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그가 보기에 성경의 핵심 메시지는 정의와 사랑으로 신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뿐이며, 철학적 진리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정치에서 그는 토머스 홉스처럼 국가를 자연권과 힘 위에 세웠지만 더 자유주의적인 결론을 끌어냈다. 누구도 자기 판단을 남에게 넘겨줄 수 없으므로, 생각을 통제하려는 정부는 위선과 반란만 낳는다. “국가의 목적은 실로 자유다.” 그는 민주정을 가장 자연스러운 정부 형태로 보았다. 미완의 『정치론』은 군주정·귀족정·민주정을 분석하다가 민주정 장에서 끊긴다.
책은 큰 소동을 일으켰다. 개혁교회 교회회의들이 규탄했고 1674년 홀란트 당국이 금서로 지정했으며, 유럽 전역에서 무신론 선언문으로 공격받았다. 그래도 이 책은 널리 읽혔고, 근대적 성서 역사비평과 표현의 자유론의 토대를 놓았다.
중급
영향: ‘무신론자’에서 ‘신에 취한 사람’으로
죽은 뒤 약 백 년 동안 ‘스피노자주의자’는 무신론자나 유물론자를 뜻하는 욕이었다. 피에르 벨의 영향력 있는 『역사비평사전』은 스피노자의 인품은 칭찬했지만 그의 체계는 터무니없다고 공격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사상은 자유사상가들 사이에서 몰래 퍼졌다. 역사학자 조너선 이스라엘은 스피노자가 민주주의, 평등, 세속 이성을 내건 ‘급진 계몽주의’의 중심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1785년 독일에서는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가, 존경받던 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이 자신이 스피노자주의자라고 고백했다고 밝히면서 ‘범신론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으로 스피노자는 독일 철학과 문학의 중심에 섰다. 괴테, 헤르더, 셸링, 헤겔이 모두 그와 깊이 씨름했다. 헤겔은 철학을 하려면 먼저 스피노자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고, 시인 노발리스는 그를 ‘신에 취한 사람’이라 불렀다.
후대 사상가들은 저마다 다른 스피노자를 찾아냈다. 19세기 과학자들은 그의 자연주의를 높이 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의 질서 있는 조화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고 말했다. 니체는 그에게서 선구자를 보았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은 그를 유물론자로 읽었으며, 질 들뢰즈는 그를 기쁨과 역량의 철학자로 그렸다. 현대 심리철학에서는 그의 심신론을 이중 측면론이나 중립 일원론과 비교하며, 안토니오 다마지오 같은 신경과학자는 그의 감정론을 끌어다 쓴다.
유대인들의 반응도 변해 왔다. 일부 유대 사상가는 그를 배신자로 여겼지만, 특히 19세기 이후 다른 이들은 그를 세속 유대인의 영웅이자 근대 유대 사상의 창시자로 되찾았다. 그와 유대교의 관계에 관한 논쟁은 지금도 이어진다.
심화
해석을 둘러싼 논쟁
실체와 양태. 유한한 사물은 신 안에 어떻게 ‘내재’하는가? 피에르 벨은 사물이 신의 속성(성질)이라는 뜻으로 읽고, 그러면 신이 기쁘면서 슬프고, 튀르크인이면서 독일인이 된다는 불합리가 생긴다고 비판했다. 에드윈 컬리는 양태가 주어의 성질로서가 아니라 인과적으로 신에 의존한다는 해석을 내놓아 벨의 반론을 피했지만, 스피노자 자신의 언어에서 너무 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츠하크 멜라메드 같은 학자는 양태가 실체에 내재한다는 해석을 옹호하며 그 결과가 정합적이라고 본다.
속성. 속성은 실체의 객관적 특징인가, 아니면 지성이 실체를 지각하는 방식일 뿐인가? 해리 오스트린 울프슨과 연결되는 ‘주관주의’ 해석은 속성을 ‘지성이 실체에 대해 지각하는 것’으로 정의한 대목을 강조하지만, 최근 해석자 대부분은 ‘객관주의’ 해석을 따른다. 이 문제는 하나의 실체가 어떻게 실제로 구별되는 여러 속성을 가질 수 있는지와 직결된다.
범신론인가, 무우주론인가, 자연주의인가? 어떤 이들은 스피노자가 자연을 신격화했다고(범신론), 또 어떤 이들은 신을 자연 속으로 해체했다고(무신론 또는 자연주의) 읽는다. 헤겔은 그가 유한한 세계를 신 속에 사라지게 한 ‘무우주론’을 폈다고 비판했다. 스피노자의 ‘신’이 전략적으로 쓴 종교 용어인지 진지한 형이상학적 주장인지, 박해를 피하려고 얼마나 조심스럽게 썼는지도 논쟁거리다. 후자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행간 읽기’ 논제가 제기한 문제다.
정신의 영원성. ‘정신의 무언가는 영원한 것으로 남는다’는 『에티카』 끝부분의 정리들은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해 왔다. 어떤 이는 개인 불멸론으로, 대다수는 정신이 지닌 참된 관념의 비인격적 영원성으로 읽으며, 체계의 나머지와 긴장 관계에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결정론과 도덕적 책임의 양립 가능성, 그의 정치학이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인지 권력에 대한 현실주의 이론인지를 두고도 비슷한 논쟁이 있다.
심화
전기 자료와 텍스트
스피노자의 생애에 관한 지식은 한정된 자료에 기댄다. 파문문을 비롯한 암스테르담 유대인 공동체와 시의 기록, 그와 주고받은 편지(약 88통이 남아 있으며 대부분 철학적 문제를 다루고, 상당수는 친구들이 출판하며 손질했다), 야리흐 옐레스 등이 쓴 『유고집』 서문, 숭배자가 쓴 것으로 장막시밀리앵 뤼카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초기 프랑스어 전기, 그리고 헤이그의 같은 집에 하숙하며 스피노자를 알던 사람들을 인터뷰한 루터파 목사 요하네스 콜레루스의 1705년 전기가 그것이다. ‘가장 비열한 야만인들’ 일화나 회당 앞에서 칼에 찔릴 뻔했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전언이므로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텍스트에도 문제가 있다. 『에티카』의 집필 연대는 일부만 알려져 있다. 편지를 보면 1660년대 초에 한 판본이 있었고, 1675년 출판 계획을 포기했음을 알 수 있다. 『소론』은 19세기에 발견된 네덜란드어 필사본으로만 전한다. 2010년 학자 렌 스프라위트와 피나 토타로는 바티칸 도서관에서 『에티카』의 필사본을 찾아냈다. 이 작품의 유일하게 알려진 필사본으로, 1670년대에 가톨릭 당국에 넘겨진 것이다. 인쇄본과 세부가 달라 작품이 어떻게 수정되었는지 보여 준다.
현대 연구는 카를 게프하르트의 1925년 판과 새로운 프랑스 대학출판부(PUF) 판 같은 비판 정본, 에드윈 컬리의 영역 전집 등에 기댄다. 스티븐 내들러의 전기 『스피노자: 한 생애(Spinoza: A Life)』(1999)는 암스테르담 공동체에 관한 기록 연구를 종합했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스피노자를 역사 바깥의 고독한 천재로 보기보다 네덜란드·유대·데카르트적 맥락 속에서 읽기를 강조한다.
핵심 개념
-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
- 무한한 실재는 하나뿐이며, 신이라 부르든 자연이라 부르든 같은 것을 가리킨다.
- 실체 일원론
- 실체는 오직 하나이고, 모든 개별 사물은 그 실체의 양태, 곧 존재 방식이다.
- 필연성
- 모든 것은 신의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 우연도, 원인 없는 자유의지도 없다.
- 심신 동일성
- 정신과 신체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속성 아래에서 본 하나의 사물이다.
- 코나투스
- 각 사물이 자기 존재를 지속하려는 노력. 인간에게는 욕망이며 모든 감정의 뿌리다.
- 이해를 통한 자유
- 감정의 원인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형성해 수동을 능동으로 바꿀 때 자유로워진다.
- 철학할 자유
- 국가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하며, 이를 억누르면 경건과 평화가 모두 해를 입는다.
- 성경의 역사적 읽기
- 성경은 다른 문헌처럼 그 언어·역사·저자로부터 해석해야 한다.
기록
- 1632년 — 11월 24일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다.
- 1654년 — 아버지 미하엘이 죽고, 동생 가브리엘과 함께 가업을 꾸린다.
- 1656년 — 7월 27일 암스테르담 포르투갈계 유대인 공동체가 그에게 헤렘(파문)을 선고한다.
- 약 1661년 — 레인스뷔르흐로 옮겨 『소론』과 『에티카』 초고를 쓴다.
- 1663년 — 보르뷔르흐로 옮기고 『데카르트의 철학 원리』 해설서를 펴낸다.
- 1670년 — 『신학정치론』이 익명으로 출간되고, 헤이그로 이사한다.
- 1672년 — ‘재앙의 해’. 요한 더빗과 코르넬리스 더빗이 헤이그에서 군중에게 살해된다.
- 1673년 —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직 제안을 사양한다.
- 1674년 — 홀란트 당국이 『신학정치론』을 금서로 지정한다.
- 1676년 — 라이프니츠가 헤이그로 스피노자를 찾아온다.
- 1677년 — 2월 21일 세상을 떠나고, 그해 『에티카』가 실린 『유고집』이 나온다.
- 1785년 — 독일의 범신론 논쟁으로 스피노자가 철학 논쟁의 중심에 선다.
용어 풀이
- 헤렘
- 유대인 공동체에서 내리는 공식적인 파문·추방.
- 세파르디 유대인
- 조상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살던 유대인.
- 실체
- 스피노자에게서 자기 안에 있고 자기를 통해 파악되는 것. 오직 신만 해당한다.
- 속성
- 지성이 실체의 본질로 지각하는 것. 인간은 사유와 연장을 안다.
- 양태
- 실체의 변용 또는 존재 방식. 개별 물체나 관념 등.
- 정서(아펙투스)
- 신체의 행위 능력의 변화와 그 변화에 대한 관념. 곧 감정.
- 코나투스
- 각 사물이 자기 존재를 지속하려는 노력.
- 적합한 관념
- 대상을 그 원인을 통해 온전히 파악하는 관념. 참된 인식과 자유의 바탕.
- 기하학적 방법
- 에우클레이데스처럼 정의·공리·증명된 정리로 철학을 전개하는 방식.
- 범신론
- 신과 우주가 같다고 보는 견해.
- 합리론
- 감각 경험만이 아니라 이성이 지식의 주된 원천이라고 보는 입장.
묻고 답하기
스피노자는 왜 공동체에서 쫓겨났나요?
파문문은 ‘끔찍한 이단’이라고만 하고 내용을 밝히지 않아요. 역사학자들은 영혼 불멸의 부정, 신이 율법을 주었다는 것의 부정, 유대 율법의 권위 거부 등이 포함되었으리라고 봐요.
스피노자는 신을 믿었나요?
네, 하지만 선택하고 기도에 응답하고 사람을 심판하는 인격신은 아니었어요. 그에게 신은 자연이라고도 부른 하나의 무한한 실재예요. 비판자들은 이를 무신론이라 했고, 숭배자들은 깊이 종교적인 견해라고 했어요.
『에티카』는 왜 수학책처럼 쓰였나요?
모든 주장을 분명한 출발점에서 한 단계씩 증명해서, 독자가 말솜씨나 권위가 아니라 이유에 설득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스피노자는 정말 렌즈를 갈았나요?
네. 새로운 광학과 연결된 숙련 기술이었고 과학자들도 그의 솜씨를 인정했어요. 수입의 일부였지만 친구들의 후원에도 기댔어요.
모든 것이 필연이라면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나요?
스피노자는 우리가 달리 행동할 자유는 없다고 봐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정념에 떠밀리지 않고 자기 이해에서 나오는 행동을 할 때, 다른 의미에서 자유롭다고 말해요.
벨과 컬리의 논쟁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요?
유한한 사물과 신의 관계에 관한 논쟁입니다. 벨은 양태를 신의 성질로 읽고 불합리를 지적했고, 컬리는 인과적으로 의존하는 결과로 읽었으며, 다른 학자들은 세련된 내재 해석을 옹호합니다.
스피노자는 민주주의자였나요?
그는 민주정을 가장 자연스러운 정부 형태라 부르고 사상의 자유를 옹호했지만, 권리를 힘에 근거 짓는 현실주의적 정치 이론도 폈습니다. 그의 사상이 얼마나 민주주의적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습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Steven Nadler, Baruch Spinoza.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Justin Steinberg, Spinoza’s Political Philosoph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Spinoza, Benedict De.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 Baruch Spinoza. Wikipedia
- Ethics (Spinoza book). Wikipedia
- Theologico-Political Treatise. Wikipedia
- Pantheism controversy. Wikipedia
- Steven Nadler, Spinoza: A Lif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 Jonathan I. Israel, Radical Enlightenment: Philosophy and the Making of Modernity, 1650–1750.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 Edwin Curley (ed. and trans.), The Collected Works of Spinoza, Volume I.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5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