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르네 데카르트는 1596년 프랑스에서 태어났어요. 호기심이 많았지만 몸이 약해서, 학교 선생님들은 그가 아침에 침대에 누워 생각하도록 허락해 주었대요. 데카르트는 평생 이 습관을 지켰고, 좋은 생각이 침대에서 많이 떠올랐다고 말했어요.
데카르트는 어릴 때 배운 것 가운데 틀린 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대담한 생각을 했지요. 사과 바구니에 썩은 사과가 섞여 있을까 걱정된다고 해 봐요. 가장 좋은 방법은 사과를 모두 쏟아 하나씩 살펴보고, 좋은 것만 다시 담는 거예요. 데카르트는 자기가 믿는 모든 것에 이렇게 하기로 했어요.
그는 물었어요. 내 눈을 믿을 수 있을까? 물속에 넣은 곧은 막대가 굽어 보이듯 눈은 가끔 나를 속여. 내가 깨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꿈이 진짜처럼 느껴질 때도 있잖아. 힘센 속임꾼이 모든 것에 대해 나를 속이고 있다면? 그러다 그는 어떤 속임꾼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을 찾았어요. 의심하는 동안에도 자신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생각하고 있다면 존재해야 하지요. 이 생각은 라틴어로 흔히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곧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써요.
데카르트는 뛰어난 수학자이기도 했어요. 모눈을 이용해 직선이나 원 같은 도형을 숫자와 방정식으로 나타내는 방법을 보여 주었지요. 그래서 그래프를 그리는 좌표를 그의 라틴어 이름 카르테시우스(Cartesius)를 따서 ‘데카르트 좌표’라고 부르기도 해요.
데카르트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었던 네덜란드에서 20년쯤 살았어요. 말년에는 크리스티나 여왕을 가르치러 스웨덴에 갔는데, 추운 겨울에 병이 나서 1650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철학자들은 지금도 그의 생각, 특히 마음과 몸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두고 논쟁하고 있어요.
한눈에 보기
- 생애
- 1596년 3월 31일 프랑스 투렌 지방 라에(현재의 데카르트시) ~ 1650년 2월 11일 스웨덴 스톡홀름
- 주요 활동
- 주로 네덜란드 공화국, 1628년경~1649년
- 분야
- 철학(형이상학·인식론), 수학, 물리학, 광학, 생리학
- 주요 저작
- 『방법서설』(1637), 『제1철학에 관한 성찰』(1641), 『철학의 원리』(1644), 『정념론』(1649)
- 언어
- 프랑스어와 라틴어
- 핵심 사상
- 방법적 회의, 코기토, 심신 이원론, 기계론적 자연학, 해석기하학
- 교육
- 예수회 라플레슈 학원, 푸아티에 대학 법학 학위(1616)
- 유산
- 흔히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림. 데카르트주의 전통의 창시자
쉬움
데카르트는 누구인가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과학자였다. 그는 흔히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옛 책의 권위가 아니라 생각하는 한 사람의 마음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해, 모든 지식을 새롭고 확실한 토대 위에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문장, 그리고 마음과 몸이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견해로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해석기하학을 만드는 데 기여한 수학, 그리고 물리학·광학·천문학·생리학에서도 활동했다. 데카르트에게 이 모든 것은 한 그루 지식의 나무에서 뻗은 가지였다.
데카르트는 갈릴레이와 케플러의 시대, 곧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물려받은 자연관이 도전받던 과학 혁명기에 살았다. 그는 새로운 과학에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면서도, 그것이 신과 영혼에 대한 믿음과 어긋나지 않기를 바랐다.
쉬움
생애
데카르트는 1596년 3월 31일 투렌 지방의 라에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은 지금 그를 기려 ‘데카르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갓난아기 때 어머니를 여의고 주로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1606년 또는 1607년에 새로 세워진 예수회 라플레슈 학원에 들어가 고전어와 수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웠고, 1616년 푸아티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1618년 그는 귀족 자원병으로 나사우의 마우리츠 군대에 들어가 네덜란드로 갔다. 브레다에서 네덜란드 학자 이사크 베이크만을 만났는데, 베이크만은 수학을 물리 문제에 적용해 보라고 그를 북돋웠다. 1619년 11월 10일 밤, 독일에 머물던 그는 세 가지 생생한 꿈을 꾸었고, 이를 통일된 학문을 세우는 데 삶을 바치라는 계시로 받아들였다.
여러 해 동안 여행하고 공부하며 파리에서도 지낸 뒤, 데카르트는 1628년 말 네덜란드 공화국에 정착했다. 그는 조용함과 자유를 중시해 암스테르담, 레이던, 위트레흐트, 에흐몬트 같은 도시를 자주 옮겨 다니며 20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았다. 하녀 헬레나 얀스 반 데르 스트롬과의 사이에서 딸 프랑신을 얻었으나, 프랑신은 1640년 다섯 살에 열병으로 죽었고, 그는 깊이 슬퍼했다.
1649년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철학을 배우려고 그를 스톡홀름으로 초청했다. 여왕은 혹독한 스웨덴의 겨울에 이른 새벽 수업을 좋아했다. 데카르트는 폐렴으로 보이는 병에 걸려 1650년 2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뒤에 프랑스로 옮겨졌다.
쉬움
방법: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방법서설』(1637)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이 받은 교육 이야기를 들려주며 왜 만족할 수 없었는지 설명한다. 선생들은 많은 의견을 가르쳤지만, 철학자들은 거의 모든 문제에서 의견이 갈렸다. 확실한 답을 주는 것은 수학뿐인 듯했다. 그는 수학의 확실성을 모든 분야로 넓힐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방법을 네 가지 규칙으로 요약했다.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을 만큼 명석하고 판명한 것이 아니면 참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문제를 될 수 있는 한 많은 부분으로 나눌 것,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순서에 따라 생각할 것, 그리고 빠뜨린 것이 없도록 완전히 검토할 것.
『방법서설』은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쓰였다. 라틴어를 배우지 못한 여성을 포함해, 교양 있는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책은 방법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 주려고 광학, 기상학, 기하학에 관한 과학 논문 세 편과 함께 출간되었다.
의심하고 다시 쌓는 동안에도 데카르트에게는 살아갈 방식이 필요했다. 『방법서설』 제3부에서 그는 ‘잠정적 도덕’을 제시한다. 나라의 법과 관습을 따르고 어려서부터 믿어 온 종교를 지킬 것, 숲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한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듯 행동에서는 되도록 굳고 단호할 것, 그리고 운명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려 하고 세상의 질서보다 자신의 욕망을 바꾸려 할 것.
중급
『성찰』: 회의, 코기토, 그리고 신
데카르트의 가장 중요한 철학 저작인 『제1철학에 관한 성찰』(라틴어, 1641)은 엿새 동안의 여섯 성찰로 짜여 있다. 제1성찰에서 그는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의심할 이유를 찾는다. 감각은 때로 속이고, 자신은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며, 2 더하기 3은 5라는 단순한 진리에 대해서조차 자신을 속이는 전능한 ‘악령(genius malignus)’을 상정해 본다. 이 철저한 회의는 결론이 아니라 도구다. 그 목표는 회의를 견뎌 내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제2성찰에서 그는 아무리 속더라도 속기 위해서는 자신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는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참이다.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표현은 『방법서설』에 프랑스어(je pense, donc je suis)로, 『철학의 원리』에 라틴어(ego cogito, ergo sum)로 나온다. 이어서 그는 이 ‘나’가 무엇인지 묻고, 생각하는 것, 곧 의심하고 이해하고 긍정하고 부정하고 원하고 상상하고 감각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녹이면 감각적 성질이 모두 바뀌는 밀랍 조각을 예로 들어, 그는 물체조차 감각이 아니라 지성으로 안다고 주장한다.
제3성찰과 제5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하나는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었을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의 관념에서 출발하는 증명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한 존재의 본질에 존재가 속한다는 증명(존재론적 논증의 한 형태)이다. 신은 완전하므로 속이지 않으며, 따라서 명석판명하게 지각한 것은 믿을 수 있다. 제4성찰은 오류를 의지가 지성보다 더 멀리 나아간 결과로 설명한다.
제6성찰에서 그는 마음과 몸이 실제로 구별된다고 논증한다. 자신을 연장 없이 생각하는 것으로, 몸을 생각 없이 연장된 것으로 명석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음이 배 안의 선장처럼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배고픔이 보여 주듯 몸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중급
수학과 기계론적 우주
『기하학』(1637)에서 데카르트는 기하학 문제를 대수 방정식으로 옮겨 풀 수 있고, 방정식을 곡선으로 나타낼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대수학과 기하학의 이 결합은 해석기하학, 나아가 미적분학의 토대가 되었다. 미지수에 알파벳 끝 글자(x, y, z)를 쓰고 거듭제곱을 위첨자로 나타내는 등 지금도 쓰는 표기 습관도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오늘날의 ‘데카르트 좌표계’는 이 작업에서 발전했지만, 완전한 현대적 형태는 그 뒤에 갖추어졌다.
물리학에서 데카르트는 자연 전체를 운동하는 물질로 설명하려 했다. 그에게 물질은 곧 연장이다. 빈 공간은 없고, 물체는 접촉을 통해서만 서로 작용한다. 그는 관성 원리의 한 형태를 포함한 운동 법칙을 세웠고, 행성의 운동을 거대한 물질의 소용돌이(와동)로 설명했다. 뒤에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이론이 와동설을 대체했지만,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설명 방식은 17세기 과학을 형성했다.
광학에서는 굴절 법칙(사인의 비로 표현)을 발표하고 무지개를 설명했다. 해부학과 생리학도 연구해 동물을 해부했고, 몸을 신경 속 ‘동물 정기’의 흐름으로 움직이는 기계로 묘사했다. 그는 동물이 마음 없는 복잡한 기계라고 주장했는데, 이 견해는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고 지금도 그렇다.
중급
시대 속의 데카르트: 갈릴레이, 교회, 네덜란드 공화국
1630년대 초 데카르트는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 운동하는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를 그린 대작 『세계』를 쓰고 있었다. 1633년 로마 종교재판소가 지구가 움직인다고 가르친 갈릴레이를 단죄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출판을 포기했다. 이 책은 그가 죽은 뒤에야 나왔다.
데카르트는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철학이 가톨릭 학교에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고, 『성찰』을 소르본의 신학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갈등도 불렀다. 네덜란드 공화국에서는 위트레흐트 대학 총장이던 개혁파 신학자 히스베르투스 보에티우스가 데카르트 철학이 신앙에 위험하다고 공격했고, 1642년 대학은 이를 단죄했으며, 뒤이어 격렬한 팸플릿 논쟁이 벌어졌다. 그가 죽은 뒤인 1663년에는 그의 저작이 가톨릭 금서 목록에 올랐다.
그래도 인쇄소와 대학, 비교적 관용적인 분위기를 갖춘 네덜란드 공화국은 데카르트가 가장 잘 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무역과 과학의 중심지이기도 해서, 그는 유럽 곳곳의 학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편지의 상당수는 과학자들 사이 서신의 중계소 노릇을 한 파리의 수도사 마랭 메르센을 거쳤다.
중급
반론과 답변, 그리고 엘리자베트와의 서신
데카르트는 드문 일을 했다. 『성찰』을 출간하기 전에 다른 사상가들에게 돌려 읽게 하고, 그들의 반론을 자신의 답변과 함께 인쇄한 것이다. 반론자 가운데에는 신학자 요하네스 카테루스, 메르센,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 신학자 앙투안 아르노, 철학자 피에르 가상디, 예수회 수사 피에르 부르댕이 있었다. 『반론과 답변』은 이 저작의 중요한 일부다.
아르노는 오늘날 ‘데카르트의 순환’이라 불리는 문제를 제기했다. 데카르트는 명석판명한 지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다시 신의 존재로 명석판명한 지각이 참임을 보증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홉스와 가상디는 마음이 정말 비물질적인 것일 수 있는지 물었다. 아르노는 코기토가 아우구스티누스의 한 논증과 닮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1643년부터 데카르트는 헤이그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뛰어난 철학자 보헤미아의 엘리자베트 공주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공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마음에 연장이 없고 몸은 접촉으로만 움직인다면, 마음은 어떻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가? 데카르트의 답변과 공주의 후속 질문은 철학사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대화 가운데 하나다. 이 논의는 감정과 그것을 다스리는 법을 다룬 『정념론』(1649)으로 이어졌다.
중급
영향과 유산
데카르트주의는 공식적인 단죄에도 불구하고 17세기 후반 유럽의 대학과 살롱으로 빠르게 퍼졌다. 니콜라 말브랑슈, 바뤼흐 스피노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들이 그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비판하고, 변형했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체계를 세우기 전에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 해설서를 썼고, 라이프니츠는 부분적으로 데카르트 자연학과 논쟁하며 자기 철학을 다듬었다.
18세기 영국의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은 본유 관념과 순수 이성을 통한 지식이라는 데카르트의 믿음에 도전했고, 이마누엘 칸트는 뒤에 합리론과 경험론의 갈등을 풀려고 했다. 철학 교과서는 흔히 이 이야기를 ‘대륙 합리론’(데카르트·스피노자·라이프니츠)과 ‘영국 경험론’(로크·버클리·흄)의 대결로 가르쳐 왔지만, 오늘날 많은 역사가는 이 구분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본다.
20세기에도 데카르트는 흔히 비판의 표적으로서 중심에 있었다. 에드문트 후설은 자신의 현상학을 일종의 새로운 ‘데카르트적 성찰’이라 불렀고, 길버트 라일은 이원론을 ‘기계 속의 유령’이라는 교설이라며 비꼬았다. 의식과 인공지능을 둘러싼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의 논쟁도 여전히 마음과 물질에 대한 데카르트식 구분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그의 수학은 과학과 공학의 기본 도구가 되었다.
심화
학계의 논쟁: 코기토, 순환, 이원론
코기토는 추론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숨은 전제(“생각하는 것은 모두 존재한다”)를 가진 삼단논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제2답변』에서 이것이 삼단논법으로 연역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단순한 직관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철학자들은 지금도 코기토가 추론인지, 직관인지, 수행적 행위인지, 그리고 그것이 실체적 자아를 확립하는지 아니면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 보여 주는지를 논쟁한다.
데카르트는 순환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 해석자들은 여러 답을 내놓았다. 신의 보증은 지금 명석하게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된 논증에만 적용된다는 해석, 데카르트가 추구한 것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안정된 체계일 뿐이라는 해석, 그리고 순환은 실재하며 치명적이라는 해석이다. 이 문제에 관한 문헌은 방대하며, 모두가 동의하는 해결책은 없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정확히 무엇인가? 일부 학자는 데카르트를 마음과 몸이 인과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엄격한 ‘실체 이원론자’로 읽는다. 그에 따르면 이 상호작용은 뇌 속의 송과선에서 매개되는데, 데카르트는 송과선을 영혼의 주된 자리로 여겼다. 다른 학자들은 마음과 몸의 ‘실체적 결합’에 관한 그의 말을 강조하며, 그에게 인간은 참된 통일체, 나아가 마음과 몸과 나란히 놓이는 제3의 원초적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상호작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그의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미해결 문제로 남아 있다.
심화
자료, 전기, 방법
데카르트 저작의 표준판은 샤를 아당과 폴 타느리가 엮은 『데카르트 전집(Œuvres de Descartes)』(1897~1913)이며, 학자들은 그 권수와 쪽수(‘AT’)로 인용한다. 널리 쓰이는 영어 번역으로는 존 코팅엄, 로버트 스투토프, 두걸드 머독이 옮긴(서간 권은 앤서니 케니 참여) 세 권짜리 『데카르트 철학 저작집』이 있다. 데카르트는 편지에서 자기 견해를 밝히거나 고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방대한 서간은 필수 자료다.
가장 유명한 전기적 세부 가운데 일부는 아드리앵 바이예의 『데카르트 씨의 생애』(1691)에서 나왔다. 바이예는 1619년의 꿈을 기록한 수첩 등 지금은 사라진 자료를 볼 수 있었지만, 인물을 이상화하기도 했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그의 서술을 조심스럽게 다룬다. 스티븐 고크로저의 『데카르트: 지적 전기』(1995)는 데카르트 철학을 그의 과학 작업의 맥락 속에 놓은 널리 쓰이는 현대 연구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문제는 잘 알려진 사실조차 얼마나 불확실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전통적인 설명은 스웨덴의 겨울에 걸린 폐렴이다. 2009년에 발표된 비소 독살 가설은 주목을 받았지만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유해는 1660년대에 프랑스로 옮겨졌다가 뒤에 다시 이장되었고, 파리에 보존된 한 두개골은 전통적으로 그의 것으로 여겨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심화
오늘날 데카르트 읽기
오늘날 철학사가들은 데카르트를 과거와 완전히 단절한 고독한 창시자라기보다, 예수회에서 배운 후기 스콜라 철학과 대화한 인물로 읽는다. 실체, 양태, ‘형상적’ 실재와 ‘표상적(객관적)’ 실재 같은 그의 많은 용어는 새로운 방식으로 쓰였더라도 스콜라 철학의 어휘에서 왔다.
과학사가들은 데카르트가 『철학의 원리』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썼듯, 그에게 형이상학은 뿌리이고 자연학은 줄기이며 의학·기계학·도덕은 가지인 한 그루 나무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철학 수업에서 흔히 그러듯 『성찰』을 그의 과학 작업과 떼어 읽으면 이 목표가 가려질 수 있다.
최근 연구는 보헤미아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나 여왕, 그리고 후대의 데카르트주의 사상가들처럼 그의 철학과 씨름한 여성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며, 마음·몸·동물·이성에 관한 그의 생각이 의학, 윤리학, 인공지능 논쟁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살핀다. 여러 전통의 비판자들은 고립되고 몸에서 떨어진 자아라는 데카르트적 그림을 문제 삼았고, 다른 이들은 일인칭 관점은 없앨 수 없다는 그의 통찰을 옹호한다.
핵심 개념
- 방법적 회의
-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을 찾기 위해,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일부러 의심하는 방법.
- 코기토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다른 모든 것에 대해 속고 있더라도, 생각하는 동안 나는 존재한다는 확실성.
- 명석판명한 지각
- 데카르트의 진리 기준. 마음이 흐림 없이 완전히 분명하게 파악한 것은 믿을 수 있으며, 속이지 않는 신이 이를 보증한다.
- 심신 이원론
- 마음(생각하며 연장이 없는 것)과 몸(연장되어 있으며 생각하지 않는 것)이 서로 다른 실체라는 견해.
- 기계론적 철학
- 생명체를 포함한 자연 현상을 물질 입자의 크기, 모양, 운동으로 설명하는 입장.
- 해석기하학
- 대수학과 기하학을 결합해 곡선을 방정식으로, 방정식을 곡선으로 나타내는 수학.
- 합리론
- 감각 경험보다 이성이 확실한 지식의 주된 원천이라는 입장.
기록
- 1596년 — 3월 31일 프랑스 투렌 지방 라에에서 태어난다.
- 약 1606년 — 예수회 라플레슈 학원에 입학한다(1606년 또는 1607년).
- 1616년 — 푸아티에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는다.
- 1618년 — 나사우의 마우리츠 군대에 들어가 브레다에서 이사크 베이크만을 만난다.
- 1619년 — 11월 10일 통일 학문의 구상을 불러일으킨 세 가지 꿈을 꾼다.
- 1628년 — 그해 말 네덜란드 공화국에 정착한다.
- 1633년 — 갈릴레이 단죄 소식을 듣고 『세계』의 출판을 보류한다.
- 1637년 —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을 붙인 『방법서설』을 펴낸다.
- 1641년 — 『반론과 답변』을 함께 실은 『제1철학에 관한 성찰』을 펴낸다.
- 1644년 — 『철학의 원리』를 펴낸다.
- 1649년 — 『정념론』을 펴내고 스톡홀름으로 간다.
- 1650년 — 2월 11일 스톡홀름에서 세상을 떠난다.
용어 풀이
- 인식론
- 지식을 연구하는 철학 분야.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묻는다.
- 형이상학
- 신, 마음, 물질처럼 실재의 근본 성격을 연구하는 철학 분야.
- 실체
- 데카르트에게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 마음과 물체는 피조된 실체의 두 종류다.
- 연장(延長)
- 길이·너비·깊이를 가짐. 데카르트에게 물질의 본질이다.
- 악령(genius malignus)
- 데카르트가 회의를 끝까지 밀고 가려고 상정한 가상의 전능한 속임꾼.
- 존재론적 논증
- 완전한 존재라는 관념 자체에 존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신이 존재한다는 논증.
- 송과선
- 뇌 한가운데의 작은 샘. 데카르트는 이곳을 영혼과 몸이 상호작용하는 주된 자리로 보았다.
- 스콜라 철학
- 중세와 근대 초 대학에서 가르친 철학.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 신학에 바탕을 두었다.
- 데카르트적(Cartesian)
- 데카르트의 라틴어 이름 카르테시우스에서 온 말. ‘데카르트 좌표’, ‘데카르트적 이원론’처럼 쓴다.
묻고 답하기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무슨 뜻인가요?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고, 의심도 생각의 한 가지예요. 그러니 생각하는 동안에는 내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이에요.
데카르트가 그래프를 발명했나요?
방정식과 도형을 잇는 방법을 보여 주었고, 이것이 오늘날 쓰는 좌표 그래프로 이어져 그의 이름을 딴 ‘데카르트 좌표’가 되었어요. 완전한 현대적 형태는 뒤의 수학자들이 다듬었어요.
데카르트는 왜 네덜란드에서 살았나요?
네덜란드 공화국의 조용함과 자유, 좋은 출판 환경을 중시했고, 프랑스에서의 번잡함과 일부 종교적 논란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데카르트는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고 보았는가?
그는 동물을 마음이나 사유가 없는 복잡한 기계로 보았다. 그가 동물의 느낌을 어디까지 부정했는지는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며, 이 견해는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다.
‘데카르트의 순환’이란 무엇인가?
아르노가 제기한 반론으로, 데카르트가 명석판명한 지각으로 신을 증명하고 다시 신으로 명석판명한 지각을 보증한다는 비판이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마음은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가?
그는 마음과 몸이 뇌의 송과선을 통해 상호작용한다고 보았지만, 엘리자베트 공주는 연장 없는 마음이 어떻게 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지 캐물었고, 그의 답은 지금도 논쟁 중이다.
데카르트는 독살되었는가?
전통적인 견해는 폐렴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2009년 독살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Gary Hatfield, René Descarte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Descartes’ Epistemolog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Descartes’ Physic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Descartes and the Pineal Gland.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Descartes, Rene: Mind-Body Distinction.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 René Descartes. Wikipedia
- Discourse on the Method. Wikipedia
- Elisabeth of the Palatinate. Wikipedia
- John Cottingham, Robert Stoothoff, Dugald Murdoch (and Anthony Kenny, vol. 3) (trans.), The Philosophical Writings of Descartes (3 vol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1991
- Stephen Gaukroger, Descartes: An Intellectual Biography. Clarendon Press,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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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