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지금으로부터 650년쯤 전, 자와섬에 마자파힛이라는 부유한 왕국이 있었어요.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던 탄툴라르라는 시인이 그곳에서 수타소마라는 왕자에 관한 아주 긴 시를 썼답니다.
수타소마는 전쟁을 벌이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궁전을 몰래 빠져나와 산속에서 명상하고 기도하려 했지요. 가는 길에 코끼리 머리를 한 괴물, 커다란 뱀, 배고픈 암호랑이를 만났어요. 왕자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어요. 신비한 정신의 힘과 보살핌, 다정한 마음으로 그들을 이끌었고, 셋은 모두 왕자의 제자가 되었지요. 암호랑이가 새끼를 잡아먹지 않도록 자기 몸을 내주기까지 했답니다.
이야기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은 사람을 잡아먹는 푸루사다 왕이에요. 그는 무시무시한 신에게 왕 백 명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신은 그 왕들 대신 수타소마를 요구해요. 큰 싸움 끝에 식인 왕을 사로잡고 있던 분노가 그에게서 빠져나가요. 그러자 수타소마는 붙잡힌 왕들이 풀려나도록 자기 목숨을 내놓아요. 그 용기와 자비가 너무도 커서 무시무시한 신마저 굴복하고, 왕들은 집으로 돌아가요.
유명한 한 구절에서 신들은 시바와 부처가 달라 보여도 사실은 하나라고 말해요. ‘다르지만 하나’라는 뜻이지요. 고대 자와어로는 ‘비네카 퉁갈 이카’예요. 수백 년 뒤 인도네시아는 이 말을 나라의 표어로 골랐어요. 오늘날에는 여러 섬과 언어와 종교의 사람들이 한 나라를 이룬다는 뜻으로 쓰여요.
이 시가 지금까지 남은 것은 발리섬 사람들이 야자잎 조각에 손으로 베끼고 또 베꼈기 때문이에요. 발리에서는 지금도 이 시를 노래로 읊는답니다.
한눈에 보기
- 다른 이름
- 『푸루샤다샨타』(Puruṣādaśānta), ‘길들여진 푸루사다’
- 지은이
- 음푸 탄툴라르. 마자파힛 궁정의 불교 시인
- 연대
- 시 안에 연도가 없다. 보통 하얌 우룩(라자사나가라) 치세의 1365–1389년 사이로 보며, 탄툴라르의 『아르주나위자야』보다 뒤일 가능성이 크다
- 언어·형식
- 고대 자와어 카카윈. 장단음절에 바탕을 둔 인도 기원 운율로 쓴 4행 연
- 분량
- 148편, 약 1,210연
- 줄거리
- 부처의 화신인 수타소마 왕자가 식인 왕 푸루사다와 그의 수호신 칼라를 자비로 귀의시킨다
- 유명한 구절
- 제139편 제5연 “bhinnêka tunggal ika, tan hana dharma mangrwa”. 인도네시아 국가 표어의 출처
- 전승
- 주로 발리에서 야자잎(론타르) 사본과 후대의 종이 사본으로 필사되어 전해졌다
쉬움
『수타소마』는 어떤 작품인가
『수타소마』는 스스로 음푸 탄툴라르라고 부른 시인이 14세기 후반에 지은 고대 자와어 서사시다. 그는 마자파힛 궁정에 속해 있었다. 마자파힛은 동부 자와의 브란타스강 유역을 근거지로 한 왕국으로, 당시 하얌 우룩 왕 아래에서 국력이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이 시는 카카윈이라는 갈래에 속한다. 카카윈은 고대 자와어로 쓰되 산스크리트 운율 규칙을 따르는 긴 궁정시다.
주인공 수타소마는 하스티나의 왕자로, 부처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맞서는 큰 적은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가 된 왕 푸루사다다. 이 작품은 ‘길들여진 푸루사다’라는 뜻의 『푸루샤다샨타』라는 다른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제목이 이야기의 절정을 가리킨다. 식인 왕은 죽임을 당하지 않고 왕자의 자비에 길들여진다.
시는 148편, 약 1,210연에 이르는 대작이며, 주인공이 드러내 놓고 불교적인 몇 안 되는 카카윈 가운데 하나다. 모험과 사랑, 전투와 종교적 가르침이 어우러지지만, 무엇보다 제139편의 한 구절로 유명하다. 시바의 진리와 부처의 진리가 ‘다르지만 하나’, 곧 ‘비네카 퉁갈 이카’라고 말하는 대목으로,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국가 표어가 되었다.
쉬움
줄거리: 싸우기보다 내어 주는 왕자
수타소마는 하스티나의 마하케투 왕의 기도에 응답하여 태어나는데, 그는 바로 지나, 곧 부처 자신이다. 모두가 그가 왕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왕자는 오직 깨달음만을 바라다가 어느 밤 궁전을 몰래 떠난다. 산으로 가는 길에 그는 위험한 존재 셋을 만난다. 코끼리 머리를 한 악귀 가자왁트라, 거대한 뱀, 그리고 굶주려 제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암호랑이다. 그는 정신의 힘으로 악귀를 굴복시키고, 뱀을 구하고, 암호랑이에게 자기 몸을 내주어 죽었다가 되살아난다. 셋은 모두 그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는다. 인드라 신이 아름다운 여신으로 변장해 그를 세속으로 되돌리려 하자, 수타소마는 우주적 부처인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드러낸다.
수타소마는 뒤에 사촌인 카시의 왕 다사바후를 만나 그의 누이 찬드라와티와 혼인하고, 하스티나로 돌아와 왕위에 오른다. 한편 푸루사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본래 왕이었으나 사람 고기를 맛본 뒤 그 맛에 빠져 악귀가 되었다. 다리의 상처 때문에 중병을 앓던 그는 회복하면 시간과 죽음의 무서운 신 칼라에게 왕 백 명을 바치겠다고 서원한다. 건강을 되찾은 그는 세상의 왕들을 하나씩 사로잡아 마침내 백 명을 채운다. 그러나 칼라는 그 왕들을 거부하고 수타소마를 요구하고, 푸루사다는 하스티나로 진군한다.
수타소마는 스스로 몸을 내주려 하지만, 동맹들은 맞서 싸우겠다고 고집한다. 이틀에 걸친 격전에서 시바의 분노한 모습인 루드라의 화신이 된 푸루사다가 하스티나의 군대를 무너뜨린다. 수타소마가 몸소 루드라와 마주하자, 그에게 던진 불길은 불사의 감로로 바뀌어 쓰러진 이들을 되살리고, 격노한 신은 세상을 끝내는 겁화(劫火)로 변한다. 신들이 나서서, 수타소마는 부처이고 부처와 시바는 다르지 않다고 루드라에게 일깨운다. 바로 이것이 유명한 연의 맥락이다. 수타소마의 명상의 힘으로 루드라가 푸루사다의 몸을 떠나고, 제정신이 든 식인 왕은 화해를 청한다.
그러자 수타소마는 칼라에게 가서 붙잡힌 백 명의 왕을 풀어 주는 대가로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그를 향한 칼라의 공격은 모두 실패하고, 마침내 이 신도 굴복한다. 수타소마는 하스티나로 돌아오고, 뒷날 왕비와 함께 고행의 힘으로 하늘에 오르며, 그들의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는 번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시가 전하는 교훈은 자비가 힘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쉬움
음악처럼 짜인 시: 카카윈이라는 형식
카카윈과 자와 문학의 관계는 카비야와 산스크리트 문학의 관계와 같다. 둘 다 세련된 궁정시다. 모든 연은 4행이고, 각 행은 인도 운율학에서 가져온 장음절(구루)과 단음절(라구)의 정해진 배열을 따른다. 까다롭기로 이름난 샤르둘라비크리디타처럼 한 행이 19음절인 운율도 있다. 한 편 안에서는 운율을 바꾸지 않고, 시인은 분위기에 맞추어 편마다 운율을 바꾼다.
고대 자와어를 이 틀에 맞추려면 대단한 솜씨가 필요했다. 고대 자와어는 산스크리트가 아니라 말레이어·발리어와 가까운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언어지만, 산스크리트 낱말을 아주 많이 받아들였다. 시인들이 이런 차용어를 아낀 까닭 가운데 하나는, 길이와 음절 무게가 서로 다른 동의어를 제공해 운율 맞추기라는 퍼즐을 풀기 쉽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자와에서는 9세기 무렵부터 카카윈이 지어졌고, 대개 870년 무렵으로 보는 고대 자와어 『라마야나』가 가장 오래된 대작이다. 카카윈은 소리 내어 읊도록 지은 시이며, 발리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읊는다. 탄툴라르는 이 기예의 대가였다. 『수타소마』는 아주 복잡한 것까지 포함해 여러 가지 운율을 구사한다.
중급
하얌 우룩의 궁정과 시의 연대
마자파힛은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보낸 몽골 원정군이 실패로 끝난 직후인 1293년에 세워졌다. 도읍은 동부 자와의 오늘날 트로울란 부근에 있었다. 라자사나가라라는 왕호를 쓴 하얌 우룩은 1350년 열여섯 살에 즉위해 13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스렸고, 1364년까지는 재상 가자 마다가 그를 보좌했다. 마자파힛이 가장 강성했던 이 시기에 궁정은 시바교와 불교 두 전통의 시인·사제·사원 건축가를 함께 후원했다.
탄툴라르가 이 궁정에서 지은 카카윈으로는 라마 이야기 계열의 『아르주나위자야』와 『수타소마』 두 편이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는 『수타소마』가 싱하사리 왕 크르타나가라의 증손자인 라자사나가라의 후원 아래 지어졌다고 본다. 탄툴라르는 불교도였다. 시는 첫머리 가까이에서 지금 같은 말세, 곧 칼리 유가에는 승리자들의 주인(지나파티)이 내려와 악을 물리친다고 선언하고, 마지막 편들에서는 스스로를 불교 이야기(바우따 차리타)라고 부른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시 자체에서 완성 연도가 보고된 적이 없어 학자들은 연대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페. 요. 조트뮐더가 제시하고 많은 학자가 따른 1365–1389년이라는 범위는 『수타소마』를 『나가라크르타가마』(1365년 완성)보다 뒤, 하얌 우룩의 죽음보다 앞에 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문헌학자 수포모는 『아르주나위자야』를 1374–1379년 무렵으로 보았고, 일본 학자 아오야마 도루는 두 시를 『아르주나위자야』에서 『수타소마』로 이어지는 순서로 읽는다. 두 견해가 모두 옳다면 『수타소마』는 1370년대 말이나 1380년대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합리적인 추론일 뿐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며, 1365–1389년이라는 ‘무렵’ 연대가 그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궁정은 머지않아 달라진다. 하얌 우룩이 죽은 뒤 조카 위크라마와르다나가 왕위를 잇자 하얌 우룩이 후궁에게서 얻은 아들 브레 위라부미가 계승권을 다투었고, 왕실의 두 갈래는 1405–1406년 레그레그 전쟁을 벌였다. 아오야마는 화해의 이상을 담은 『수타소마』를 왕실 안에서 커지던 이런 긴장을 배경으로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급
한 궁정의 두 불교 시인: 『수타소마』와 『나가라크르타가마』
『수타소마』와 가장 가까운 문학적 이웃은 『나가라크르타가마』다. 지은이 자신은 이 작품을 ‘지방들의 묘사’라는 뜻의 『데사와르나나』라고 불렀다. 1365년 음푸 프라판차가 완성한 이 시의 지은이 역시 하얌 우룩의 궁정과 관계있던 불교도였다. 두 시는 같은 언어와 같은 운율 형식으로, 같은 왕가를 위해, 수십 년 안쪽의 간격을 두고 쓰였다.
그런데도 둘은 이보다 더 다를 수 없을 만큼 다르다. 프라판차는 도읍, 왕의 순행, 조상 제례, 마자파힛을 우러렀다는 땅들처럼 실제 장소와 사건을 묘사한다. 탄툴라르는 신화 속 인도를 무대로 한 오래된 불교 전설을 다시 쓴다. 함께 읽으면 같은 궁정 문화의 두 얼굴이 보인다. 한 시인은 카카윈을 역사와 찬양 쪽으로, 다른 시인은 종교적·정치적 이상 쪽으로 이끌었다. 어느 쪽도 상대 작품을 언급하지 않는다.
두 시는 종교 어휘도 공유한다. 『나가라크르타가마』는 하얌 우룩의 증조부인 선왕 크르타나가라가 죽은 뒤 여러 모습으로 신격화되었다고 하며, 그 가운데 하나가 시바와 부처를 합친 ‘시바–부처’다. 『수타소마』는 시바와 부처의 최고 진리가 하나라는 생각을 시로 표현한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두 텍스트를 나란히 놓고 마자파힛 지배층이 두 종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읽어 낸다. 『수타소마』가 더 늦은 작품이라는 통념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추론에 기대고 있다.
중급
마자파힛의 시바와 부처
시바교와 불교는 탄툴라르보다 여러 세기 앞서부터 자와에서 나란히 존재했다. 중부 자와에서는 시바교 사원 프람바난과 불교 기념물 보로부두르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 782년의 산스크리트 비문인 클루락 비문은 이미 브라흐마·비슈누·시바의 힌두 삼신을 불교의 틀 안에 놓았다.
동부 자와에서는 두 종교의 관계가 더 가까워졌다. 싱하사리의 마지막 왕 크르타나가라(1292년 사망)는 분노존을 중심으로 한 밀교를 닦았고, 죽은 뒤 시바로도 부처로도 기려졌다. 마자파힛 국가는 시바교와 불교 성직자를 나란히 후원했다. 고고학자 에디 세디야와티에 따르면 찬디 자고 같은 사원은 불교 예배상에 두 전통 모두에서 따온 부조 연작을 함께 갖추었다.
『수타소마』는 이 관계를 가장 유명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제139편에서 겁에 질린 신들은 푸루사다의 몸에 들어간 루드라에게 말을 건넨다. 그들은 수타소마가 부처이며 부처는 시바와 다르지 않다고 일깨우고, 이어지는 연들에서 우주의 부처들을 시바교의 신들과 짝지은 뒤(아촉불은 이스와라, 불공성취불은 비슈누 하는 식으로) 부드럽고 자비로운 시바–부처의 진리로 돌아오라고 간청한다. 제5연은 다음 두 행으로 끝난다(필자 번역).
“그러므로 지나(부처)의 진리와 시와(시바)의 진리는 하나이니, / 다르지만 하나이며, 다르마에는 둘이 없다.” (mangka ng Jinatwa kalawan Śiwatatwa tunggal / bhinnêka tunggal ika, tan hana dharma mangrwa)
여기서 다르마는 가르침, 또는 궁극의 진리를 뜻한다. 요점은 신학적이다. 불교도와 시바교도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예배하지만, 가장 높은 차원에서 그들이 구하는 것은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로 녹아든 단일 종교를 뜻하는지, 아니면 공동의 정상에 합의한 두 전통을 뜻하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아직 논쟁 중이다(‘여러 관점’ 참조).
중급
전투 장면에서 국가 표어로
약 다섯 세기 동안 이 구절은 주로 발리에서 시를 읽는 이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식민지 시대에 헨드릭 케른을 비롯한 네덜란드 문헌학자들이 본문 일부를 출판했다.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 무함마드 야민이 이 표현을 받아들여, 1945년 독립 준비 위원회 논의에서 제안했다.
독립 뒤 이 말은 술탄 하미드 2세가 디자인한 국가 문장 ‘가루다 판차실라’의 발톱이 움켜쥔 띠에 새겨졌다. 1950년 8월 17일로 소급 시행된 1951년 정부령 제66호(국가 문장에 관한 규정)가 이 표어 띠를 규정한다. 2000년 1945년 헌법 제2차 개정으로 신설된 제36A조는 국가 문장이 ‘비네카 퉁갈 이카’라는 표어를 단 가루다 판차실라라고 정한다.
그 과정에서 뜻이 바뀌었다. 시에서 이 구절은 시바교와 불교라는 두 종교의 길, 그리고 궁극의 진리 차원에서 둘이 같다는 점을 가리킨다. 국가 표어로서는 흔히 ‘다양성 속의 통일’로 옮기며, 종족·언어·지역·종교 등 거대한 군도의 온갖 차이에 적용한다. 인도네시아 학교는 이를 가정에서 국가에 이르는 일상의 관용 원칙으로 가르친다. 시바와 부처의 합일에 관한 14세기의 사색이 이렇게 많은 민족을 한데 품겠다는 20세기 신생 국가의 약속이 되었다.
중급
아시아를 건너온 오래된 불교 이야기
탄툴라르가 주인공을 지어낸 것은 아니다. 수타소마와 식인 왕(인도 문헌에서는 칼마샤파다 또는 사우다사)의 이야기는 불교 세계 곳곳에서 전해졌다. 팔리어 『자타카』(본생담)의 「마하수타소마 자타카」(제537화), 아리야슈라의 산스크리트 『자타카말라』 제31화, 여러 한역 경전에 나오며, 벨기에 학자 에티엔 라모트는 아잔타와 버마 파간의 유약 벽돌에 새겨진 묘사도 꼽았다. 이들 판본에서 보살의 으뜸 덕목은 진실함이다. 그는 식인 왕에게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그 신의가 식인 왕을 바꾼다.
이 이야기는 탄툴라르보다 여러 세기 전부터 자와에 알려져 있었다. 800년 무렵 새긴 보로부두르 제1회랑의 『자타카말라』 부조에는 수타소마 이야기를 담은 판 넷이 있고, 그 가운데 하나는 식인 왕이 왕자를 등에 업고 데려가는 장면이다.
이 이야기는 인도 문헌과 한역 경전 20여 종에 전한다. 아오야마 도루는 그 가운데 11종을 고대 자와어 판본들과 꼼꼼히 비교해, 탄툴라르가 팔리어 자타카에서 기본 줄거리를 가져오되 다른 불교 문헌과 힌두 서사시의 모티프로 새로 짰다고 결론지었다. 그 결과는 사실상 새로운 자와 작품이다. 주인공은 단순한 보살이 아니라 우주적 부처인 비로자나불의 화신이며, 탄툴라르는 식인 왕을 시바와 이어진 신 칼라의 숭배자로 만들어 시바교의 세계를 이야기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15세기나 16세기에 엮였을 것으로 보이는 후대 자와의 신화 백과 『찬타카파르와』에는 이 이야기를 줄인 산문판이 들어 있다. 아오야마는 이 판본이 이야기를 일직선의 에피소드 순서로 단순화하고 추상적 교리를 소박한 도덕적 훈계로 바꾸었으며, 이는 그림자 인형극에 맞추려 한 것일 수 있다고 보았다.
중급
발리의 야자잎: 사본, 판본, 독자
탄툴라르 당대의 사본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대부분의 고대 자와 문학처럼 『수타소마』도 발리를 거쳐 전해졌다. 발리는 마자파힛과 문화적으로 긴밀했고, 자와의 궁정들이 이슬람으로 돌아선 뒤에도 그 문학을 계속 베꼈다. 알려진 사본은 거의 모두 발리 것으로, 발리 문자로 론타르 야자잎 조각에, 그리고 근래에는 종이에 썼다. 열대에서는 야자잎이 썩기 때문에 이 텍스트는 거듭 새로 베껴 써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발리 문자로 쓴 『수타소마』 론타르 한 벌이 족자카르타의 소노부도요 박물관에 있다.
발리에서 『수타소마』는 지금도 주요 카카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독회 모임(세카 베바산)에서 읊고, 한 행씩 발리어로 옮기며 토론하고, 그림자 인형극에서 일부 장면을 공연한다. 문헌학자 스튜어트 롭슨은 발리 독자들이 『라마야나』는 언어의 아름다움 때문에, 『수타소마』는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로 고른다고 관찰했다.
현대 연구의 이정표는 수위토 산토소의 영어 번역 판본 『수타소마: 자와 금강승 연구』(1975)다. 케이트 오브라이언은 2008년 새 영어 번역과 연구를, 드위 워로 레트노 마스투티와 하스토 브라만툐는 2009년 인도네시아어 번역을 냈다. 야코프 엔싱크는 『찬타카파르와』판(1967)과 세 존재에 대한 수타소마의 가르침(1974)을 연구했고, 조트뮐더의 『칼랑완』(1974)은 지금도 표준 개설서다.
현대의 판본과 번역은 저마다 다른 발리 사본을 골라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에, 낱말의 세부와 그에 따른 해석에는 열린 문제가 많다.
중급
같은 시기 세계에서는
마자파힛은 중국과의 만남에서 태어났다. 1289년 쿠빌라이 칸의 사신 멍치가 크르타나가라에게 복속을 요구하자, 크르타나가라는 그의 얼굴을 훼손해 돌려보냈다. 1292–1293년 원나라 함대가 도착했을 때 크르타나가라는 이미 죽은 뒤였다. 그의 사위 라덴 위자야는 원군을 이용해 경쟁자를 물리친 다음 그들을 몰아내고 마자파힛을 세웠다. 역사가들은 크르타나가라와 쿠빌라이가 비슷한 형태의 밀교를 후원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케이트 오브라이언은 나아가 수타소마는 크르타나가라를, 푸루사다는 쿠빌라이 칸을 가리키는 알레고리로 이 시를 읽자고 제안했는데, 흥미롭지만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탄툴라르가 시를 쓰고 있었을 무렵 마자파힛은 중국의 새 왕조를 상대하고 있었다. 『명실록』은 1370년 10월 자와 왕의 사신이 조공을 바쳤다고 적는다. 1380년 11월 홍무제는 자와의 사신을 돌려보내며, 중국 사신을 꾀어내 죽였다고 자와와 삼불제(三佛齊, 수마트라의 팔렘방) 왕을 꾸짖는 조서를 함께 보냈다. 이 일은 1370년대 말 마자파힛이 팔렘방에 힘을 행사한 사건과 이어져 있다. 시에서는 안쪽만 바라보는 듯한 하얌 우룩의 궁정도 중국까지 닿는 바다 세계의 일부였다.
수타소마 이야기 자체가 자와를 더 넓은 불교 세계와 잇는다. 이 이야기는 팔리어·산스크리트 문헌, 한역 경전, 그리고 아잔타와 버마 파간과 보로부두르의 이미지로 전한다. 이 판본들이 어떤 경로로 이어졌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탄툴라르는 불교 아시아 곳곳에서 전해지던 이야기를 골라 새로 빚음으로써, 곧 약속을 지키는 인도의 보살을 시바와 부처를 화해시키는 우주적 부처로 바꿈으로써 자기 시를 그 공동의 전통 안에 놓았다.
두 종교가 하나의 정상을 나눈다는 자와의 생각도 이어졌다. 발리에서는 오늘날에도 시바교 사제와 불교 사제가 같은 힌두 공동체를 섬기며, 이 관행은 자와의 힌두–불교 궁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심화
여러 관점
혼합인가 공존인가? 예전 학계는 두 신앙이 하나로 녹아든 ‘시바–부처교’를 자주 이야기했고, 일부 미술사학자는 다섯 부처를 시바의 여러 모습과 동일시한 것을 힌두교와 불교가 하나의 종교 체계로 합쳐진 것으로 설명한다. 다른 전문가들은 생각이 다르다. 인도학자 얀 혼다와 인도네시아 학자 하르야티 수바디오는 이를 ‘연합’이라고 불렀다. 두 전통이 최고 원리를 동일시했을 뿐 사제와 의례와 사원은 따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토머스 헌터는 크르타나가라가 시바–부처와 동일시된 것이 융합 종교가 아니라 정치·종교적 패권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주장했고, 안드레아 아크리는 ‘자와의 혼합주의’라는 관념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며 시바교가 우세했던 오랜 공존을 강조한다.
평등인가 불교 우위인가? 시는 스스로를 불교 이야기라고 부르고, 주인공은 부처이며, 굴복하는 쪽은 루드라와 칼라라는 시바교의 힘이다. 조트뮐더와 그 뒤의 주리아티는 이를 불교의 승리로 보면서도, 유명한 연은 두 길이 같은 목적지에 이른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다른 이들은 결말을 정복이 아니라 화해로 읽는다. 시바의 분노는 파괴되지 않고 가라앉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시는 포용과 함께 자기 전통을 맨 위에 두는 위계를 동시에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치적 해석. 아오야마는 왕의 무력을 다룬 『아르주나위자야』에서 자비와 왕가 사이 혼인을 다룬 『수타소마』로의 이동을, 왕실의 경쟁이 커지던 시기에 시인이 내놓은 평화의 제안으로 해석한다. 푸루사다를 쿠빌라이 칸과 잇는 오브라이언의 알레고리도 정치적 해석의 하나다. 대중서와 교육 자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얌 우룩이 힌두교도와 불교도의 공공연한 갈등을 막으려고 이 시를 짓게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시나 여기서 인용한 전문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현대의 해석으로 다루어야 한다.
표어의 민족주의적 읽기. 인도네시아의 건국자들에게 이 구절은 다원적 국민국가의 비전을 표현했고, 국가는 그 넓은 뜻으로 이를 가르쳐 왔다. 맥락 속에서 읽으면 이 연은 분명히 신학적이며, 교육학자 무함마드 이맘 파리시는 현대의 표어가 국가의 문화 정책에도 봉사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에디 세디야와티는 마자파힛의 이런 표현들 자체가 한 국가 안의 종교적 다양성을 다스리려는 창의적 해답이었다고 보았으니, 현대의 쓰임은 시의 정신을 배반했다기보다 넓힌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발리와 자와에서 이루어진 면담 연구는 보통 독자와 사제, 인형극 연희자 들이 지금도 이야기와 표어를 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심화
증거와 방법: 연도 없는 시 읽기
이 텍스트는 지어진 지 여러 세기 뒤 발리에서 만든 사본으로 주로 알려져 있어, 판본마다 이문(異文)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유명한 연조차 현대 출판물마다 조금씩 다르게 인용된다. 번역도 엇갈린다. ‘tan hana dharma mangrwa’에서 다르마는 진리로도, 가르침으로도, 종교로도 읽힐 수 있다. 산토소는 이를 ‘진리에는 이원성이 없다’로 옮겼고, 인도네시아어 번역은 흔히 ‘두 갈래인 진리는 없다’고 쓴다. 둘 다 불이(不二)를 말하지만, 다르마를 어떤 낱말로 옮기느냐에 따라 독자가 이 대목을 이해하는 결이 달라질 수 있다.
연대 추정은 추론의 사슬에 기댄다. 상한 1389년은 왕의 죽음에서, 하한 1365년은 『나가라크르타가마』가 먼저라는 가정에서, 1370년대 말이나 1380년대라는 더 좁은 범위는 수포모의 『아르주나위자야』 연대에 그 작품이 먼저라는 가정을 더해서 나온다. 고리 하나하나가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원천 비평이 두 번째 방법이다. 아오야마는 인도·중국·자와 판본을 비교해 팔리어 줄거리가 어떻게 자와의 이야기가 되었는지 보여 주었고, 엔싱크 등은 교리 대목과 그 안의 밀교적 불이(不二) 사상을 연구했다.
끝으로 이 시는 비문, 사원 부조, 『나가라크르타가마』, 후대 발리의 관행과 함께 읽어야 하는데, 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관점을 지닌다. 카카윈은 왕실과 사제 엘리트의 시각을 대변하므로, 14세기 자와의 보통 사람들이 종교를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려 주지 못한다.
핵심 개념
- 힘보다 자비
- 수타소마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힘과 자비와 자기희생으로 이긴다. 식인 왕도, 칼라 신도 파괴되지 않고 귀의한다.
- 불이(不二)
- 겉보기에 맞서는 것들이 궁극에는 하나라는 밀교의 생각. 시는 이를 시바와 부처에, 또 부처와 왕이라는 역할에 적용한다.
- 비네카 퉁갈 이카
- ‘다르지만 하나’. 시에서는 시바교와 불교의 진리가 같다는 뜻이고, 현대 인도네시아에서는 다양한 국민의 통합을 뜻한다.
- 왕으로서의 부처
- 수타소마는 부처의 화신이자 통치자다. 마자파힛 궁정에서 종교적 권위와 왕권을 하나로 묶은 이상이다.
- 자와화
- 탄툴라르는 인도 자타카의 줄거리를 가져와 새 에피소드, 시바교의 인물, 자와 궁정의 가치로 다시 짜서 사실상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 궁정 문화로서의 시
- 『나가라크르타가마』처럼 『수타소마』도 불교도가 왕실 후원자를 위해 쓴 시로, 일상생활보다 엘리트의 이상을 반영한다.
기록
- 약 800년 — 중부 자와에 보로부두르가 세워진다. 『자타카말라』 부조에 수타소마 이야기가 들어 있다.
- 1293년 — 라덴 위자야가 원나라 원정군을 이용해 경쟁자를 물리친 뒤 몰아내고 마자파힛을 세운다.
- 1350년 — 하얌 우룩이 라자사나가라라는 왕호로 즉위한다.
- 1364년 — 재상 가자 마다가 세상을 떠난다.
- 1365년 — 프라판차가 『나가라크르타가마』(『데사와르나나』)를 완성한다. 『수타소마』 연대의 통상적 하한이다.
- 1370년 — 자와 왕의 사신이 명나라 조정에 조공을 바친다.
- 약 1374년 — 탄툴라르가 『아르주나위자야』를 짓는다(수포모는 1374–1379년 무렵으로 봄). 『수타소마』보다 앞섰을 가능성이 크다.
- 1389년 — 하얌 우룩이 세상을 떠난다. 『수타소마』 성립의 가장 늦은 시점으로 보인다.
- 1405년 — 왕실의 두 갈래가 맞선 레그레그 전쟁이 시작된다(1405–1406).
- 1945년 — 무함마드 야민이 인도네시아 독립 논의에 ‘비네카 퉁갈 이카’라는 표현을 들여온다.
- 1975년 — 수위토 산토소가 영어 번역을 갖춘 판본을 펴낸다.
- 2000년 — 개정 헌법 제36A조가 ‘비네카 퉁갈 이카’를 국가 문장의 표어로 명시한다.
용어 풀이
- 카카윈
- 장단음절의 인도 운율로 4행 연을 짓는 고대 자와어 궁정시.
- 구루와 라구
- 무거운(긴) 음절과 가벼운(짧은) 음절. 카카윈 운율의 기본 단위다.
- 편(푸푸)
- 한 가지 운율로 쓴 카카윈의 한 단락. 『수타소마』는 148편이다.
- 론타르
- 론타르 야자의 말린 잎 조각에 쓴 사본. 발리의 일반적인 책 형태다.
- 보살
- 남을 위한 자비로 행동하며 부처가 되는 길을 걷는 존재.
- 자타카(본생담)
- 부처의 전생 이야기. 수타소마 이야기는 팔리어 모음집의 제537화다.
- 지나
- ‘승리자’라는 뜻의 부처의 칭호. 지나트와는 부처의 진리 또는 본성을 뜻한다.
- 칼라
- 시바와 이어진 시간과 죽음의 무서운 신. 푸루사다는 그에게 왕 백 명을 바치겠다고 서원하지만, 칼라는 대신 수타소마를 요구한다.
- 다르마
- 가르침, 법, 또는 궁극의 진리. ‘tan hana dharma mangrwa’는 이 진리가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 찬타카파르와
- 신화와 지식을 모은 후대의 고대 자와어 모음집으로, 수타소마 이야기의 축약 산문판을 담고 있다.
묻고 답하기
수타소마는 실제 인물인가요?
아니요. 부처의 전생을 다룬 불교 설화의 전설적 주인공이에요. 시인 탄툴라르와 그가 섬긴 왕들은 실제 인물이었어요.
푸루사다는 실제 왕이었나요?
아니요. 옛 인도 불교 설화의 인물로, 그곳에서는 식인 왕을 칼마샤파다 또는 사우다사라고 불러요. 한 현대 학자는 쿠빌라이 칸을 암시할 수도 있다고 보았지만 가설일 뿐이에요.
‘비네카 퉁갈 이카’는 정말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뜻인가요?
글자 그대로는 ‘다르다, 그것은 하나다’, 곧 ‘다르지만 하나’라는 뜻이에요. 시에서는 궁극의 진리 차원에서 시바와 부처가 하나라는 말이고, ‘다양성 속의 통일’은 현대 국가가 붙인 번역이에요.
이 시는 정확히 언제 쓰였나요?
연도는 알 수 없습니다. 1389년에 죽은 하얌 우룩 치세에 쓰였고 보통 1365–1389년 사이로 봅니다. 탄툴라르의 『아르주나위자야』보다 뒤라면 1370년대 말이나 1380년대일 가능성이 큽니다.
『수타소마』는 힌두교 텍스트인가요, 불교 텍스트인가요?
스스로를 불교 이야기라 부르고 주인공도 부처지만, 힌두 신들이 가득 등장하고 시바교와 불교의 진리가 하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평등을 뜻하는지 불교 중심의 위계를 뜻하는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나가라크르타가마』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둘 다 하얌 우룩 궁정의 불교 시인이 쓴 고대 자와어 카카윈입니다. 『나가라크르타가마』(1365)는 실제 사건과 장소를 묘사하고 『수타소마』는 전설을 다시 쓰지만, 두 작품 모두 시바와 부처를 합친 ‘시바–부처’라는 생각을 표현합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Kakawin Sutasoma. Wikipedia
- Toru Aoyama, The Reception and Transformation of the Sutasoma Story in Old Javanese Literature (古ジャワ文学におけるスタソーマ物語の受容と変容). Southeast Asian Studies (Tōnan Ajia Kenkyū) 24(1): 3–17, Kyoto University, 1986
- Toru Aoyama, From the Arjunawijaya to the Sutasoma: Two Old Javanese Texts in their Historical Context. The Toyo Gakuho 77(1–2): 1–33, Toyo Bunko, 1995
- Andrea Acri, Review of Kate O’Brien, Sutasoma: The Ancient Tale of a Buddha-Prince from 14th Century Java (2008). Archipel 86 (via Persée), 2013
- Edy Sedyawati, Bhinneka Tunggal Ika Tan Hana Dharma Mangrwa. Warta Hindu Dharma no. 529 (Parisada Hindu Dharma Indonesia), 2011
- Andrea Acri and Aleksandra Wenta, A Buddhist Bhairava? Kṛtanagara’s Tantric Buddhism in Transregional Perspective. Entangled Religions 13(7), 2022
- Thomas M. Hunter, The Body of the King: Reappraising Singhasari Period Syncretism. Journal of Southeast Asian Studies 38(1): 27–53, 2007
- Andrea Acri, Revisiting the Cult of “Śiva-Buddha” in Java and Bali. In D. C. Lammerts (ed.), Buddhist Dynamics in Premodern and Early Modern Southeast Asia, ISEAS, pp. 261–282, 2015
- A. H. Aghababian, The Kakawin Sutasoma: A Look at “Bhinneka Tunggal Ika” and Perceptions of the Text’s Religious Implications. Inquiries Journal 7(9), 2015
- Mohammad Imam Farisi, Bhinneka Tunggal Ika [Unity in Diversity]: From Dynastic Policy to Classroom Practice. Journal of Social Science Education 13(1), 2014
- Bhinneka Tunggal Ika. Wikipedia
- Pasal Bhinneka Tunggal Ika dalam UUD 1945. Hukumonline
- Peraturan Pemerintah Nomor 66 Tahun 1951 tentang Lambang Negara. Jaringan Dokumentasi dan Informasi Hukum Nasional (BPHN)
- Mahāsutasoma-jātaka (story of Sutasoma and Kalmāṣapāda), from Lamotte’s Traité de la grande vertu de sagesse, English translation. Wisdom Library
- Ānandajoti Bhikkhu, Jātaka, the Buddha’s past birth-stories: Level 1 balustrade, top, at Borobudur (panels 116–119, Sutasoma). Photo Dh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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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te O’Brien (trans.), Sutasoma: The Ancient Tale of a Buddha-Prince from 14th Century Java by the Poet Mpu Tantular. Orchid Press, Bangkok,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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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uriati, Review of Mpu Tantular, Kakawin Sutasoma, trans. Dwi Woro Retno Mastuti and Hastho Bramantyo (2009), and Cok Sawitri, Sutasoma (2009). Wacana, Journal of the Humanities of Indonesia 12(2), 2010
- J. Ensink, On the Old-Javanese Cantakaparwa and its Tale of Sutasoma. Martinus Nijhoff, The Hague, 1967
함께 보기
- 나가라크르타가마(데사와르나나)1365년 불교 시인 프라판차가 완성한 고대 자와어 카카윈으로, 하얌 우룩 왕을 찬양하며 마자파힛의 궁정과 순행과 영역을 묘사한다.
- 보로부두르8~9세기 무렵 중부 자와에 세워진 대규모 불교 유적이다.
- 프람바난시바·비슈누·브라마에게 바친 9세기 힌두 사원군으로, 고대 자와 최대 규모이며 높이 47m의 중앙 탑과 『라마야나』 부조로 유명하다.
- 고타마 싯다르타 (붓다)불교의 창시자. 갠지스 평원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다. 생몰 연대는 학설이 나뉜다.
- 라마야나라마와 시타의 유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산스크리트어 서사시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여러 판본이 전한다.
- 마하바라타친족 관계에 있는 두 왕가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방대한 산스크리트어 서사시로, 『바가바드 기타』를 포함한다.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