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하페즈

حافظ شیرازی (호자 샴스 알딘 무함마드 하페즈 시라지)

1340–1390년 · 시라즈 (이란)

한 문장으로

하페즈는 14세기 페르시아 시라즈의 시인으로, 술과 아름다움, 그리움, 신을 향한 탐구를 노래한 짧은 사랑의 시 ‘가잘’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이 외우고 노래하며 삶의 조언을 구할 때 펼쳐 봅니다.

하페즈
이미지: Anselm Feuerbach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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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650년 전, 정원과 장미로 이름난 이란의 도시 시라즈에 하페즈라는 시인이 살았어요. 본래 이름은 무함마드였어요. 사람들이 그를 ‘하페즈’라고 부른 것은 어렸을 때 꾸란 전체를 외웠기 때문이에요. ‘하페즈’는 ‘간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거든요.

하페즈는 ‘가잘’이라는 시를 썼어요. 가잘은 두 줄씩 짝을 이룬 짧은 시예요. 짝마다 같은 소리로 끝나서 후렴이 있는 노래 같고, 마지막 짝에는 그림에 서명하듯 시인이 자기 이름을 넣는 경우가 많아요.

그의 시에는 장미와 나이팅게일, 아름다운 얼굴, 술과 음악,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나와요. 그런데 많은 사람은 시 속의 ‘사랑하는 이’가 신을 뜻할 수도 있고, 술은 신과 가까워지는 기쁨을 뜻할 수도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그의 시는 두 겹으로 된 그림 같아서, 읽는 사람마다 다른 것을 찾아낼 수 있어요.

하페즈는 아주 거룩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교만하고 못된 사람들을 놀리기도 했어요. 겉으로 뽐내는 것보다 정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지요.

오늘날 이란에서는 거의 집집마다 하페즈 시집이 있어요. 겨울에서 가장 긴 밤 같은 특별한 날이면 가족들이 시집을 아무 데나 펼쳐, 거기 나온 시를 대답이나 조언처럼 읽어요. 오렌지 나무가 가득한 정원 속 시라즈의 하페즈 무덤에는 그곳에서 시를 읽으려는 사람들이 찾아와요.

한눈에 보기

생몰
1315~1325년 무렵 시라즈 출생, 1389년 또는 1390년 시라즈에서 사망(이슬람력 792년이 가장 흔히 인용됨)
이름
호자 샴스 알딘 무함마드. 필명 하페즈는 ‘꾸란을 외운 사람’이라는 뜻
언어
페르시아어(일부 아랍어 시구 포함)
대표작
그가 죽은 뒤 엮인 『디완(시집)』. 가잘 약 500편과 다른 형식의 시 몇 편
형식
가잘: 운을 맞춘 대구로 된 짧은 서정시. 마지막 대구에 시인의 필명이 들어감
후원자
인주 왕조와 무자파르 왕조의 시라즈 통치자들, 특히 아부 이스하크와 샤 슈자
별칭
리산 알가이브(‘보이지 않는 세계의 혀’), 타르주만 알아스라르(‘신비의 해석자’)
무덤
시라즈의 하페지예. 현재 건물은 앙드레 고다르 설계(1935~40)

쉬움

하페즈는 누구인가

하페즈는 페르시아 가잘의 가장 위대한 거장으로 널리 꼽히며, 많은 이란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국민 시인입니다. 영어권의 셰익스피어만큼 사랑받고 자주 인용됩니다. 그의 『디완』, 곧 시 모음집은 아마 이란에서 꾸란 다음으로 많은 집에 있는 책일 것이며,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남아시아, 옛 오스만 세계의 시와 음악, 일상 언어를 빚어 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샴스 알딘 무함마드입니다. ‘하페즈’는 꾸란 전체를 외운 사람에게 주는 칭호인데, 시인은 이것을 필명(타할로스)으로 썼고, 한 시에서는 꾸란을 전통적인 열네 가지 독법으로 외웠다고 말합니다. 경칭 ‘호자’는 존경받는 학식 있는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그는 거의 평생을 이란 남서부 파르스 지방의 중심지 시라즈에서 보냈습니다. 시라즈는 정원이 많은 부유한 도시이자 시인의 도시로, 13세기에는 대문호 사디가 이곳에 살았습니다. 당시 많은 시인과 달리 하페즈는 거의 여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시라즈의 산들바람과 로크나바드 시내, 모살라의 정원을 시에서 찬미했습니다.

하페즈는 종교적 학식을 갖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시에는 꾸란과 이슬람 사상에 대한 암시가 가득하면서도 술과 사랑과 자유를 기리고 종교적 위선을 조롱합니다. 이 결합이야말로 그의 시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비결이자, 그를 그토록 다양하게 읽게 만드는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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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가잘이란 무엇인가

가잘은 보통 다섯에서 열다섯 개쯤의 대구(바이트)로 이루어진 짧은 서정시입니다. 모든 대구는 같은 운율을 쓰고 같은 각운으로 끝나며, 각운 뒤에 같은 낱말이나 구절(라디프)이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대구는 두 행 모두 운을 맞춰 형식을 알리고, 마지막 대구에는 대개 시인의 필명이 들어갑니다. 하페즈는 마지막 대구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에게, 또는 독자에게 말을 건네곤 합니다.

가잘은 아랍 연애시에서 페르시아로 들어와 사나이, 아타르, 루미, 사디 같은 시인들의 손을 거치며 여러 세기 동안 발전했습니다. 하페즈 시대에 이르러 가잘은 장미와 나이팅게일, 촛불과 나방, 사랑하는 이의 곱슬머리와 검은 점, 술 따르는 이(사키)와 선술집, 금욕주의자와 방탕아 같은 풍부한 공통 이미지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가잘의 대구는 하나하나가 어느 정도 그 자체로 완결되어, 실에 꿴 보석 알 같습니다. 하페즈는 대구마다 빛나고 의미가 촘촘하며, 언어의 음악이 아름답고, 대구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 메아리치게 한다는 점에서 찬탄을 받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시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 시라즈의 튀르크 미인이 내 마음을 받아 준다면 / 그 검은 점 하나에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주리라.”

하페즈의 시는 번역하기 어렵기로 악명 높습니다. 페르시아어 낱말 하나가 여러 뜻을 한꺼번에 품을 수 있고, 원문의 소리, 곧 각운과 리듬과 말놀이가 시의 효과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아주 다른 번역이 많고, 어느 것도 원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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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하페즈 시대의 시라즈: 시인들과 바뀌는 통치자들

하페즈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1330년대 이란에서 몽골의 일 칸국이 무너진 뒤 지방 왕조들이 권력을 다투었습니다. 시라즈는 처음에 인주 가문이 다스렸는데, 마지막 통치자 아부 이스하크는 시인들을 너그럽게 후원하고 쾌락을 즐긴 사람이었습니다. 하페즈는 그의 치세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회고했습니다.

1353년 무자파르 왕조를 세운 무바리즈 알딘 무함마드가 시라즈를 정복했습니다. 그는 종교법을 엄격하게 집행해 선술집을 닫고 음주를 처벌한 엄한 통치자였습니다. 많은 독자는 하페즈가 시에서 조롱하는 풍기 단속관 ‘무흐타시브’의 모습에서 그를 떠올립니다. 1358년 무바리즈 알딘은 아들 샤 슈자에게 쫓겨나 눈을 잃었고, 샤 슈자는 1384년까지 다스리며 교양 있는 후원자 노릇을 했습니다. 하페즈와 샤 슈자의 관계는 가까웠지만 때로 껄끄러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페즈의 말년에는 중앙아시아의 정복자 티무르(타메를란)의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티무르는 1387년 시라즈를 차지했고, 1393년 다시 와서 무자파르 왕조를 무너뜨렸습니다. 하페즈는 이 두 정복 사이인 1389년 또는 139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는 후원자가 수시로 바뀌고, 총애를 쉽게 얻고 잃으며, 신앙과 권력이 긴밀히 얽힌 이런 세계를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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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생애: 아는 것과 전설

하페즈의 생애에 관한 확실한 사실은 많지 않습니다. 당대의 전기는 없고, 가장 이른 기록도 그가 죽고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뒤에 쓰였습니다. 학자들은 주로 통치자와 관리, 사건을 언급하는 그의 시, 그리고 무함마드 골란담이라는 친구가 썼다는 『디완』 서문으로 생애를 재구성합니다. 골란담은 하페즈가 자기 시를 모으지 않았고 시인이 죽은 뒤 자신이 엮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서문의 연대와 골란담이라는 인물 자체에도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후대 전승은 빈틈을 이야기로 채웁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스파한에서 시라즈로 옮겨 온 상인으로 하페즈가 어릴 때 죽었고, 소년은 공부하면서 빵집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또 ‘샤헤 나바트(사탕 가지)’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한 이야기, 40일 밤샘 끝에 시의 재능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하페즈는 인도 데칸의 바흐마니 술탄에게 초대받아 길을 나섰지만, 호르무즈 항구에서 폭풍에 겁을 먹고 돌아서서 대신 시 한 편을 보냈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15세기 말 전기 작가 도울라트샤 사마르칸디가 전하는 티무르와의 만남입니다. 정복자는 자신의 위대한 도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연인의 점 하나에 주겠다고 한 시인을 꾸짖었고, 하페즈는 바로 그런 씀씀이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가난해졌다고 답해 티무르를 웃게 했다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이 만남을 전설로 봅니다.

그의 시로 미루어 보면 하페즈는 궁정에서 어떤 자리를 맡았고, 꾸란학을 가르쳤을지도 모르며, 결혼해 아들을 두었으나 그 아들이 일찍 죽었고, 총애와 소외의 시기를 번갈아 겪은 듯합니다. 그 이상의 생애는 대부분 그의 시를 해석한 결과입니다.

[2][3]

중급

주제: 사랑, 술, 방탕아와 위선자

사랑은 하페즈 시의 중심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아름다움, 이별의 고통, 만남의 희망이 그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대개 성별 없이 그려지며, 사람인 연인으로도, 후원자로도, 신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술과 선술집은 기쁨, 자기를 잊음, 사회적 가식에서 벗어난 자유를 나타내며, 수피 전통에서는 영적 도취, 곧 신에 대한 황홀한 사랑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중심인물은 ‘렌드’입니다. 흔히 방탕아나 난봉꾼으로 옮기는데, 체면을 비웃고 드러내 놓고 술 마시고 사랑하지만 마음만은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 반대편에 자헤드(금욕주의자), 설교자, 보여 주기 위해 경건을 연기하는 수피, 그리고 무흐타시브가 있습니다. 하페즈는 위선적인 성자보다 정직한 죄인을 거듭 칭송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인물은 ‘피르에 모간’, 곧 ‘마기의 장로’로, 지혜로운 영적 스승 노릇을 하는 선술집 주인입니다.

하페즈는 운명과 흘러가는 시간, 인간 지식의 한계도 성찰합니다. 그의 시는 인생은 짧고 하늘의 뜻은 알 수 없으니 봄과 술잔을 즐기며 이 순간을 붙잡으라고 자주 권합니다. 동시에 인간의 노력이나 학식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신의 은총을 향한 희망을 드러냅니다.

하페즈가 이런 인물들을 처음 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앞선 시인들, 무엇보다 사디와 아타르, 루미 같은 신비주의 시인들, 그리고 호주 케르마니와 풍자시인 오베이드 자카니 같은 시라즈의 동시대인들에게서 이를 물려받았습니다. 하페즈를 돋보이게 한 것은 언어의 밀도, 그리고 관습적인 이미지들을 서로 부딪치게 해 익숙한 낱말이 갑자기 새로운 뜻을 드러내게 한 솜씨였습니다.

그의 시가 지닌 힘은 모호함에 있습니다. 대구 하나가 연애시로도, 궁정 정치에 대한 논평으로도, 종교 관리에 대한 풍자로도, 신비적 명상으로도 동시에 읽힐 수 있습니다. 하페즈는 이 층들을 좀처럼 정리해 주지 않으며, 이런 열린 성격 덕분에 모든 독자가 그의 시에서 자신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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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디완』: 필사본과 판본

하페즈의 시는 살아 있을 때부터 노래되고 필사되며 퍼졌고, 그가 죽은 뒤 『디완』으로 엮였습니다. 『디완』은 주로 가잘로 이루어지며, 그 가운데 일반적으로 진작으로 인정되는 것은 500편이 채 안 됩니다. 여기에 소수의 카시다(송시), 마스나비 한 편, 키타(단편시), 루바이(4행시)가 더해집니다. 믿을 만한 가장 오래된 필사본은 그가 죽고 수십 년 뒤인 15세기의 것입니다.

『디완』은 워낙 자주 필사되어 약 1,700종의 필사본이 남아 있고, 그 내용은 서로 상당히 다릅니다. 하페즈의 이름으로 덧붙여진 시가 있고, 대구의 순서가 다르며, 많은 낱말에 이문이 있습니다. 진정한 원문을 세우는 일은 큰 학문적 과제입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판본은 1941년 모함마드 가즈비니와 가셈 가니가 이른 시기의 필사본을 바탕으로 펴낸 것으로, 가잘 495편을 담고 있습니다. 더 많은 초기 필사본을 활용한 파르비즈 나텔한라리의 판본(1980, 1983년 개정)은 486편을 싣고 있습니다. 널리 쓰이는 바하 알딘 호람샤히의 『하페즈나메』 등 다른 판본과 주석서들이 원문을 풀이하고 바로잡는 작업을 이어 갑니다. 오스만 세계에서는 16세기 보스니아 출신 수디의 주석서가 큰 영향력을 떨쳤습니다.

이란에서 『디완』은 ‘팔레 하페즈’라는 점치기에도 쓰입니다. 소원을 빌거나 물음을 품고 시집을 아무 데나 펼친 뒤 거기 나온 시를 풀이하는 것입니다. 특히 동짓날 밤인 ‘얄다’와 페르시아 새해인 ‘노루즈’에 많이 합니다. 이란의 길거리에서는 지금도 하페즈의 시로 운세를 봐 주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훈련받은 새가 시를 골라 주기도 합니다.

[3][2]

중급

세계 속의 영향과 수용

오스만 제국에서 무굴 인도와 중앙아시아까지 이어진 페르시아어 문화권에서 하페즈는 서정시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후대 시인들은 그의 가잘을 본뜨고 화답했으며, 서예가와 화가는 그의 시를 그림과 글씨로 옮겼습니다. 무굴 황제들이 그의 『디완』으로 점을 쳤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남아시아에서는 갈리브 같은 시인의 우르두어 가잘과 무함마드 이크발의 페르시아어·우르두어 시에서 그의 영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페즈는 일상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이란 사람들은 그의 대구를 속담처럼 인용하고, 학생들은 그의 시를 외우며, 그의 가잘은 모함마드레자 샤자리안 같은 대가부터 대중 가수까지 부르는 페르시아 고전 음악의 중심 레퍼토리입니다. 서예가들은 그의 시구를 타일과 양탄자, 포스터에 옮겨 쓰고, 『디완』은 결혼식과 새해의 관례적인 선물입니다. 죽은 지 여섯 세기가 지나도록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언어와 의례 속에 살아 있는 시인은 세계 어디에도 드뭅니다.

유럽에는 윌리엄 존스가 1771년 「하피즈의 페르시아 노래」를 발표하며 하페즈를 소개했습니다. 1812~13년 요제프 폰 하머푸르크슈탈의 독일어 완역은 괴테를 깊이 감동시켰고, 괴테는 하페즈와 대화하는 시집 『서동시집(West–östlicher Divan)』(1819)으로 화답했습니다. 괴테를 통해 하페즈는 독일 낭만주의와 후대 작가·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랠프 월도 에머슨이 그를 흠모하며 번역했고, 거트루드 벨(1897) 등 많은 이의 영어 번역이 뒤따랐습니다.

대니얼 래딘스키의 책 같은 현대의 인기 영어 ‘하페즈’는 널리 팔렸지만, 학자들은 이것이 하페즈 시의 번역이 아니라 자유로운 창작이라고 지적합니다. 그 인기는 하페즈라는 이름의 매력을 보여 주지만, 진짜 시인을 만나려면 페르시아어 원문을 바탕으로 한 번역을 찾아야 합니다.

이란에서 시라즈의 하페즈 무덤 ‘하페지예’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순례지입니다. 1452년 티무르 왕조의 왕자 바부르 미르자 때 처음 기념물이 세워졌고, 1773년 카림 칸 잔드가 더 큰 건물을 지었으며, 여덟 기둥 위에 수피 수행자의 모자 모양 구리 돔을 얹은 지금의 정자는 프랑스 건축가 앙드레 고다르가 설계해 1935~40년에 지었습니다. 이란력 메흐르월 20일(10월 11~12일 무렵)은 ‘하페즈의 날’로 기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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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논쟁: 신비주의 시인인가, 세속의 시인인가

하페즈를 둘러싼 가장 오래되고 끈질긴 물음은 그의 술과 사랑을 어떻게 읽느냐입니다. 수피들과 많은 페르시아 주석가들 사이에 강한 한 전통은 그의 시를 신비적 알레고리로 읽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신이고, 술은 신의 사랑이며, 선술집은 수피들의 모임 장소이고, 방탕아는 세속의 평판을 버린 참된 연인이라는 것입니다. ‘리산 알가이브’, ‘타르주만 알아스라르’라는 별칭은 하페즈를 숨은 진리의 목소리로 보는 이런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전통은 그를 더 글자 그대로, 곧 진짜 사랑과 진짜 술을 노래한 시인, 종교 권위를 비웃은 회의주의자나 인문주의자로 읽습니다. 오스만 제국에서 수디의 주석은 더 신비주의적인 주석가들과 달리 하페즈를 글자 그대로 읽는 경향이 있었고, 경건한 무슬림이 그의 시를 읽어도 되는지에 관한 논쟁이 여러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현대 이란의 독자들은 그를 수피 성자로, 자유사상가로, 애국자로, 폭정의 비판자로 다양하게 보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이 양자택일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가잘 전통은 에로스와 궁정과 신비의 언어를 의도적으로 녹여 하나의 이미지가 여러 층위에서 작동하게 했습니다. 하페즈는 이 모호함을 남다른 솜씨로 활용하며, 하나의 의미로 정리하기를 거부하는 태도 자체가 그의 예술의 일부이자, 외적인 규칙보다 진실함과 은총을 소중히 여긴 그의 종교관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하페즈를 잘 읽는다는 것은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이 층들을 함께 붙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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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학문적 물음: 통일성, 원문, 역사

가잘의 통일성. 18세기 이래 서양 독자들은 하페즈 가잘의 대구들 사이에 논리적 연결이 없어 보이는 데 당혹해했습니다. 1940년대 영국의 동양학자 A. J. 아베리는 하페즈의 시에 나름의 주제적·형식적 통일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이 견해는 이미지와 소리, 논지의 패턴을 분석하는 후대 학자들에게 이어졌습니다. 반면 페르시아 가잘에서 의미의 기본 단위는 시 전체가 아니라 대구이므로 서양식 통일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원문. 필사본들이 워낙 달라서 모든 해석은 편집상의 선택, 곧 어떤 시가 진작인지, 낱말의 어떤 독법이 원래의 것인지, 대구를 어떤 순서로 놓아야 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가즈비니·가니 판과 한라리 판은 15세기 필사본을 우선함으로써 큰 진전을 이루었지만 논쟁은 계속되며, 새로운 필사본과 계산적 방법도 이 문제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역사와 전기. 학자들은 시에 언급된 통치자와 대신, 사건을 찾아 시의 연대를 매기고, 이를 통해 하페즈의 변화와 후원자와의 관계를 추적하려 했습니다. 이 방법은 유용한 결과를 낳았지만, 같은 시로 다시 전기를 재구성하게 되므로 순환 논리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도울라트샤의 것과 같은 후대 전기 사전의 전설은 그의 생애보다 그가 어떻게 기억되었는지를 더 많이 알려 줍니다.

수용사. 끝으로 오스만의 주석서와 무굴의 화첩에서 괴테, 이란 민족주의, 현대의 대중적 번안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화에서 하페즈가 어떻게 읽히고 쓰이고 번역되었는지를 연구하는 분야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페즈’는 14세기의 한 시인일 뿐 아니라 여섯 세기에 걸친 긴 대화이기도 합니다.

[3][2][8][7]

핵심 개념

가잘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한 운 맞춘 대구의 짧은 서정시. 하페즈가 페르시아어로 그 정점에 올려놓았다.
모호함
그의 이미지는 사람 사이의 사랑, 궁정 정치, 신비적 헌신으로 동시에 읽힐 수 있다.
렌드(방탕아)
체면을 비웃는 진실한 비순응자. 위선적인 금욕주의자와 풍기 단속관에 맞서는 인물이다.
위선 비판
하페즈는 교만과 권력을 감춘 겉치레 경건을 조롱하며, 정직한 마음과 신의 은총을 소중히 여겼다.
술과 선술집
기쁨과 자유의 상징이자, 수피식으로 읽으면 신적 사랑의 황홀경이다.
팔레 하페즈
『디완』을 아무 데나 펼쳐 길을 묻는 이란의 살아 있는 풍습. 특히 얄다와 노루즈에 한다.
원문의 수수께끼
서로 다른 수많은 필사본 때문에 진정한 『디완』을 세우는 일은 지금도 이어지는 학문적 과제다.

기록

  1. 약 1315년 — 하페즈가 시라즈에서 태어남(추정치는 1315년 무렵에서 1325년 무렵까지).
  2. 약 1343년 — 아부 이스하크 인주가 시라즈의 통치자가 되어 시인들을 후원.
  3. 1353년 — 무자파르 왕조를 세운 무바리즈 알딘 무함마드가 시라즈를 차지하고 엄격한 종교 통치를 폄.
  4. 1358년 — 샤 슈자가 아버지를 몰아내고 눈을 멀게 한 뒤, 하페즈를 후원한 치세(~1384)를 시작.
  5. 1387년 — 티무르가 처음으로 시라즈를 점령.
  6. 약 1390년 — 하페즈가 시라즈에서 사망(1389년 또는 1390년). 친구 골란담이 『디완』을 엮었다고 전함.
  7. 1452년 — 티무르 왕조의 왕자 바부르 미르자가 하페즈 무덤 위에 첫 기념물을 세움.
  8. 1771년 — 윌리엄 존스가 「하피즈의 페르시아 노래」를 발표해 영어권에 하페즈를 소개.
  9. 1812년 — 요제프 폰 하머푸르크슈탈의 『디완』 독일어 번역 출간(~1813).
  10. 1819년 — 괴테가 하페즈에게 영감을 받은 『서동시집』을 출간.
  11. 1935년 — 앙드레 고다르가 설계한 지금의 하페지예 공사 시작(1940년 무렵 완공).
  12. 1941년 — 가즈비니와 가니가 『디완』 교정본을 출간.

용어 풀이

디완
한 시인의 시를 모은 시집. 보통 형식과 각운에 따라 배열한다.
가잘
주로 사랑을 노래하는, 운을 맞춘 대구로 된 짧은 서정시.
바이트
대구. 페르시아 시의 기본 단위.
타할로스
시인의 필명. 보통 가잘의 마지막 대구에 넣는다.
라디프
각 대구 끝의 각운 뒤에 되풀이되는 낱말이나 구절.
사키
술을 따르는 사람. 가잘의 전형적 인물.
렌드
방탕아, 비순응자. 하페즈에게서는 위선자에 맞서는 진실한 연인.
무흐타시브
이슬람 도시에서 공중도덕과 공정한 거래를 단속하던 관리.
수피즘
신에 대한 직접적인 사랑과 앎을 추구하는 이슬람의 신비주의 전통.
얄다
한 해에서 가장 긴 동짓날 밤을 기리는 이란의 명절.

묻고 답하기

왜 ‘하페즈’라고 불리나요?

‘하페즈’는 꾸란 전체를 외운 사람을 부르는 칭호예요. 시인은 꾸란을 다 외웠고, 이 말을 필명으로 썼어요.

하페즈는 진짜 술을 노래했나요, 신을 노래했나요?

두 가지 읽기 모두 오래되었어요. 많은 학자는 그가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이미지를 일부러 써서, 사랑의 시이면서 영적인 시가 되게 했다고 봐요.

‘팔레 하페즈’는 무엇인가요?

하페즈에게 조언을 구하는 방법이에요. 소원을 빌고 『디완』을 아무 데나 펼쳐 나온 시를 대답으로 읽어요. 이란 가족들은 얄다 밤에 자주 해요.

하페즈는 정말 티무르를 만났나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이 유명한 이야기는 하페즈가 죽고 약 한 세기 뒤에 쓰인 전기에 처음 나오며, 역사가들은 전설로 봅니다.

하페즈는 시를 얼마나 썼나요?

현대의 교정본들은 500편이 조금 안 되는 가잘과 소수의 다른 시를 인정합니다. 후대 필사본에는 그의 것으로 돌려진 시가 훨씬 많습니다.

하페즈 번역은 왜 그렇게 서로 다른가요?

그의 페르시아어에는 다 옮길 수 없는 이중 의미와 말놀이, 음악이 가득하고, 필사본들도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부 인기 영어책은 번역이 아니라 자유로운 창작입니다.

그의 생애에 관한 지식은 얼마나 믿을 만한가요?

그다지 믿을 만하지 않습니다. 당대의 전기가 없어서, 학자들은 그의 시와 골란담 서문, 그리고 흔히 전설적인 후대 기록에 기댑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하페즈. 위키백과
  2. Hafez. Wikipedia
  3. Divan of Hafez. Wikipedia
  4. Ghazal. Wikipedia
  5. Muzaffarids (Iran). Wikipedia
  6. Tomb of Hafez. Wikipedia
  7. West–östlicher Divan. Wikipedia
  8. A. J. Arberry, Fifty Poems of Hafiz.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47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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