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샤나메(왕의 책)

شاهنامه (Šāhnāma)

977–1010년 · 투스 (호라산)

한 문장으로

『샤나메』는 약 1,000년 전 시인 페르도우시가 완성한 아주 긴 페르시아어 시로, 세상 최초의 왕부터 고대 페르시아 마지막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이란의 왕과 영웅 이야기를 들려줘요.

샤나메(왕의 책)
이미지: Attributed to Sultan Muhammad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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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소리 내어 다 읽으려면 몇 주가 걸리는 이야기책을 떠올려 보세요. 그게 바로 '왕의 책'이라는 뜻의 『샤나메』예요. 이란의 말인 페르시아어로 쓴 시이고, 페르도우시라는 시인이 서른 해가 넘게 공들여 1010년에 완성했어요.

이야기는 아주아주 먼 옛날, 산속에서 표범 가죽을 입고 살던 세상 최초의 왕에서 시작해요. 그다음 왕들은 불을 발견하고, 옷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도시를 세워요. 어깨에서 뱀 두 마리가 자라나 날마다 먹이를 줘야 하는 무시무시한 왕 자하크도 나와요. 용감한 대장장이 카베가 가죽 앞치마를 창끝에 매달아 깃발처럼 흔들자, 사람들이 일어나 자하크를 물리쳐요.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은 로스탐이에요. 엄청나게 힘이 세고, 라크시라는 충직한 말을 타고, 용과 악마와 온 군대와 싸워요. 하지만 『샤나메』가 이기는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에요. 가장 슬픈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로스탐이 젊은 전사와 싸우는데, 그 젊은이가 바로 자기 아들 소흐랍이라는 걸 모른다는 이야기예요.

책 뒷부분으로 가면 이야기가 점점 역사에 가까워져요. 고대 페르시아의 실제 왕들, 체스 두는 법을 풀어낸 지혜로운 신하, 그리고 600년대에 아랍 군대가 들어오면서 옛 페르시아 제국이 끝나는 이야기까지 나와요.

페르도우시는 주로 오래된 페르시아 낱말로 시를 썼어요. 그래서 이 시가 페르시아어를 지켜 냈다는 말도 있어요. 지금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람들은 이 시를 외우고, 이야기꾼들은 찻집에서 공연을 하고, 화가들은 수백 년 동안 그 장면을 그려 왔어요.

한눈에 보기

지은이
투스의 아볼카셈 페르도우시(940년경~1019년에서 1025년 사이)
집필
977년경 시작, 994년 첫 판본 완성, 1010년 최종본 완성
장소
호라산 지방의 투스(오늘날 이란 동북부 마슈하드 부근)
언어
초기 근세 페르시아어. 아랍어 차용어가 비교적 적음(어휘의 약 9%)
형식
무타카립 운율의 2행 대구(베이트)로 된 서사시. 전통적으로 6만 대구라 하나 현대 교감본은 약 5만 대구
내용
최초의 왕 카유마르스부터 7세기 아랍의 사산 제국 정복까지 이란의 전설과 역사
헌정
가즈니 왕조의 술탄 마흐무드(재위 998~1030)
의의
페르시아어권의 민족 서사시. 페르시아 시·회화·구연 전통의 본보기

쉬움

『샤나메』란 무엇인가

『샤나메』(شاهنامه, '왕의 책')는 이란 동북부 호라산 지방의 도시 투스 출신 시인 아볼카셈 페르도우시(페르도시)가 지은 서사시다. 최초의 왕국이 세워질 때부터 7세기 아랍의 정복으로 이슬람 이전 마지막 페르시아 국가인 사산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이란의 역사를 노래한다.

한 사람이 지은 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편에 속한다. 전통적으로 약 6만 대구라고 하지만, 가장 오래된 필사본을 바탕으로 한 현대 교감본은 5만 대구 안팎이거나 그보다 조금 적다. 대구(베이트)는 같은 운율로 된 두 반행이 운을 맞춘 단위로, 시 전체에 소리 내어 읽기 좋은 힘찬 행진 리듬을 준다.

『샤나메』는 흔히 이란의 민족 서사시라고 불리지만, 그 무대는 오늘날의 어느 한 나라보다 넓다. 영웅들은 지금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너머까지 누비고, 이 작품은 오스만 제국에서 무굴 인도에 이르는 페르시아어·페르시아 문화권 전역에서 천 년 동안 사랑받았다.

[1][2]

쉬움

페르도우시는 누구인가

페르도우시는 940년 무렵 투스 근처 파즈(바즈)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데흐칸 계층 출신이었다. 데흐칸은 이슬람 이전 이란의 전통, 특히 옛 왕과 영웅 이야기를 지키는 것을 자기 몫으로 여긴 지주 가문들이다. 그가 평생을 이 주제에 바친 까닭도 이런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생애에 대해 확실한 것은 매우 적다. 시 속에는 늙어 감, 외아들을 잃은 슬픔, 가난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지만 이는 시적 진술이지 일기가 아니다. 그의 삶을 다룬 가장 오래된 산문 기록은 그가 죽고 약 150년 뒤 네자미 아루지가 쓴 『네 편의 담론(차하르 마칼레)』인데, 사실과 전설이 뒤섞여 있다.

그는 977년 무렵 『샤나메』를 쓰기 시작해 30년 넘게 매달렸고, 1019년에서 1025년 사이 어느 때 세상을 떠났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투스의 한 성직자가 무슬림 묘지에 묻히는 것을 막아 자기 집 정원에 묻혔다고 한다. 1930년대에 새로 지은 투스의 묘는 이란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념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2][7]

쉬움

줄거리: 세 시대

학자들은 흔히 『샤나메』를 세 부분으로 나눈다. 첫째 신화 시대는 짧다. 최초의 왕 카유마르스는 표범 가죽을 입고 산에서 산다. 뒤를 이은 왕들은 불을 발견하고, 짐승을 길들이고, 문자와 기술을 만들어 문명 세계를 이룬다. 영광스러운 왕 잠시드는 수백 년을 다스리지만 교만해져 스스로 신이라 하다가 왕의 영광(파르)을 잃고 폭군 자하크에게 쫓겨난다. 자하크의 어깨에는 사람의 뇌를 먹여야 하는 뱀 두 마리가 자란다. 대장장이 카베가 봉기를 이끌고, 젊은 왕자 페리둔이 자하크를 무찔러 다마반드산 동굴에 쇠사슬로 묶는다.

페리둔은 세상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 준다. 살름은 서쪽을, 투르는 중앙아시아의 투란을, 막내 이라지는 이란을 받는다. 시기심에 사로잡힌 두 형이 이라지를 죽이고, 이 집안의 죄가 이란과 투란 사이의 오랜 원한을 낳아 시의 나머지 대부분을 이끌어 간다.

둘째 영웅 시대는 전체의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 여기서는 동쪽 시스탄의 용사들이 주인공이다. 흰 머리로 태어나 산에 버려졌다가 신비한 새 시무르그의 손에 자란 잘, 그리고 그의 아들 로스탐이다. 로스탐은 여러 대의 왕을 섬기며, 위험한 여정에서 일곱 관문(하프트 한)을 넘고, 투란과 그 교활한 왕 아프라시야브에 맞서 이란을 지킨다. 이 시대의 대표 이야기로 「로스탐과 소흐랍」, 죄 없는 왕자 시야바시의 비극, 이상적인 왕 케이 호스로의 치세, 로스탐과 불사신 왕자 에스판디야르의 비극적 결투가 있다.

셋째 역사 시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스칸다르)에서 시작해 아르다시르, 바흐람 구르, 지혜로운 재상 보조르그메흐르를 둔 호스로 아누시라반 같은 사산 왕조(224~651)의 왕들로 이어진다. 시는 아랍 무슬림 군대가 사산 왕조를 무너뜨리고 마지막 왕 야즈데게르드 3세가 651년 메르브 근처에서 죽는 것으로 끝난다. 결전을 앞두고 페르시아 장군 로스탐 파로흐자드가 옛 질서의 끝을 내다보며 쓰는 편지는 시에서 가장 가슴 아픈 대목 가운데 하나다.

[1][3]

쉬움

가장 유명한 이야기: 로스탐과 소흐랍

투란 국경 근처에서 사냥하던 로스탐은 말 라크시를 잃어버리고 사망간이라는 도시에 이른다. 그곳 공주 타흐미네가 그에게 혼인을 청한다. 떠나기 전 로스탐은 아들이 태어나면 팔에 매어 주라며 징표를 남긴다. 타흐미네는 아들 소흐랍을 낳고, 소년은 놀랄 만큼 힘센 젊은이로 자란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된 소흐랍은 로스탐을 이란의 왕으로 세우겠다는 꿈을 품고 투란 군대와 함께 길을 나선다.

투란의 왕 아프라시야브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도록 몰래 일을 꾸민다. 로스탐도 싸움터에서 자기 이름을 숨기고, 두 사람은 여러 날에 걸쳐 싸운다. 마지막 날 로스탐이 소흐랍을 쓰러뜨려 치명상을 입힌다. 그제야 죽어 가는 젊은이가 팔에 맨 징표를 보여 준다. 로스탐은 케이 카부스 왕에게 치료약(누시다루)을 간청하지만, 로스탐과 소흐랍이 힘을 합칠까 두려운 왕은 머뭇거리고, 약은 너무 늦게 온다.

이 이야기는 『샤나메』의 깊은 비극 의식을 보여 준다. 가장 위대한 영웅도 운명을 피할 수 없고, 교만한 왕의 잘못은 죄 없는 목숨을 앗아 간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그림과 시에 영감을 주었고, 영국 시인 매슈 아널드의 「소랍과 러스텀」(1853)도 그중 하나다.

[3][1]

중급

역사적 배경: 아랍 정복 이후의 페르시아 문화

7세기 아랍이 사산 제국을 정복한 뒤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아랍어가 종교·행정·학문의 언어가 되었다. 사산 왕조의 문어였던 중세 페르시아어(팔라비어)는 점차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9세기부터 이란 동부의 지방 왕조들, 특히 부하라의 사만 왕조(819~999)가 새로운 문학 언어를 후원했다. 아랍 문자로 적지만 문법은 페르시아어인 근세 페르시아어다.

이란 왕들의 옛이야기는 사산 왕조 말기에 중세 페르시아어 연대기 『호다이 나마그(군주의 책)』로 모였다. 이 책은 전하지 않지만 아랍어로 번역되어 역사가들이 활용했다. 957년 투스의 총독 아부 만수르 무함마드 이븐 압드 알라자크가 데흐칸들에게 근세 페르시아어 산문판을 엮게 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아부 만수르 샤나메』다. 서문만 남아 있지만 페르도우시의 주된 자료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만 왕조의 궁정 시인 다키키가 운문 『샤나메』를 쓰기 시작했으나 고슈타스프 왕의 치세와 예언자 조로아스터의 등장을 다룬 약 1,000대구를 쓴 뒤 살해되었다. 페르도우시는 이 사업을 이어받아, 다키키의 시구를 출처를 밝혀 자기 작품에 넣고 혼자서 계속 썼다.

페르도우시가 작품을 마칠 무렵 정치 판도는 바뀌어 있었다. 사만 왕조는 999년에 무너지고 이란 동부는 튀르크계 가즈니 왕조의 손에 넘어갔다. 페르도우시는 1010년의 최종본을 가즈니의 술탄 마흐무드에게 바쳤다. 네자미 아루지가 처음 전한 유명한 이야기에 따르면, 마흐무드가 약속한 금화 대신 은화를 주자 페르도우시가 분노해 그 돈을 남에게 줘 버렸고, 뒤늦게 마흐무드가 제대로 된 상을 보냈을 때 그 행렬이 투스의 한 성문으로 들어오는 순간 다른 성문으로 페르도우시의 상여가 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역사가들은 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다루며, 일부 필사본에 실린 마흐무드 풍자시도 진위가 의심스럽다.

[1][2][8]

중급

핵심 주제: 왕권, 운명, 충성, 지혜

왕권과 왕의 영광. 시의 중심에는 정통한 왕을 표시하는 신성한 광휘인 파르(중세 페르시아어 흐바르라) 개념이 있다. 왕은 정의롭고 겸손할 때 파르를 지키고, 잠시드처럼 교만하거나 잔인해지면 파르가 그를 떠난다. 그러니 『샤나메』는 단순한 왕조 찬가가 아니다. 어리석고 불의하고 시기심 많은 왕들이 가득하고, 가장 위대한 영웅들이 그런 왕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많다.

영웅과 왕. 극적 긴장의 상당 부분은 충성과 양심 사이의 갈등에서 나온다. 로스탐은 왕좌를 충실히 섬기지만 케이 카부스 같은 왕들에게 거듭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로스탐과 에스판디야르」에서는 두 사람 모두 고귀하고 누구도 싸우고 싶어 하지 않지만, 명예의 요구와 한 왕의 야심이 그들을 둘 다 파멸시키는 결투로 몰아넣는다.

운명과 시간. 시는 도는 하늘이 모든 영광을 끝낸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페르도우시는 이야기에서 한 걸음 물러나 죽음과 덧없는 세상을 자주 성찰하는데, 이런 명상이 서사시에 무게를 더한다.

지혜와 윤리. 시는 신과 지혜(헤라드)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며, 아누시라반의 궁정에서 보조르그메흐르가 나누는 대화처럼 현명한 조언자와 교훈이 곳곳에 나온다. 『샤나메』는 조로아스터교와 이어진 이야기를 포함한 이슬람 이전 이란의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무슬림 시인이 무슬림 독자를 위해 쓴 작품이다. 페르도우시가 이 두 유산의 균형을 어떻게 잡았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활발히 논의되는 문제다.

[1][8]

중급

언어와 문체, 그리고 페르시아어의 생존

페르도우시는 초기 근세 페르시아어로 썼고 아랍어 차용어를 비교적 적게, 어휘의 약 9%만 썼다. 후대 페르시아 작가들보다 훨씬 적은 비율이다. 이는 중세 페르시아어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자료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의도적인 문체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이 시를 순수한 페르시아어의 보고로 여기게 되었다.

시는 짧고 힘찬 무타카립 운율로 쓰였고, 이 운율은 이후 페르시아 서사시의 표준이 되었다. 문체는 직설적이고 생생하며 곳곳에 정형화된 표현이 있다. 새벽, 전투, 잔치 같은 되풀이되는 이미지가 긴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돕는다.

이란에서 자주 인용되는 대구를 옮기면 이렇다. "서른 해 동안 많은 고생을 견디며, 이 페르시아어로 페르시아 사람들을 되살렸노라." 많은 독자가 페르도우시의 업적을 이렇게 이해하지만, 이 구절이 페르도우시 자신의 것인지 의심하는 학자도 있다. 페르시아어가 천 년 동안 비교적 적게 변한 데에는 『샤나메』 같은 작품이 널리 읽히고 낭송된 영향이 있다고 흔히 말한다.

[1][6]

중급

필사본, 그림, 판본

페르도우시 당대의 필사본은 남아 있지 않다. 가장 오래된 사본은 1217년 것으로 피렌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으며, 몽골의 이란 침입보다 앞선다. 1276년의 또 다른 초기 사본은 런던 영국도서관에 있다. 『샤나메』는 워낙 인기가 높아 수백 번 필사되었고, 필사가들이 구절을 보태고 빼고 고쳤기 때문에 후대 사본에는 페르도우시가 쓰지 않은 구절이 많이 들어 있다.

『샤나메』는 페르시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그림으로 꾸며진 책이기도 하다. 1330년대 일한국 궁정에서 만든 『대몽골 샤나메』는 20세기 초에 해체되어 낱장으로 팔렸다. 1430년 헤라트에서 티무르 왕조의 왕자 바이송고르를 위해 완성한 『바이송고르 샤나메』는 테헤란 골레스탄 궁전에 온전히 남아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라 있다. 타브리즈에서 샤 이스마일 1세 때 시작해 타흐마스프 1세 때 완성한 『샤 타흐마스프의 샤나메』에는 그림 258점이 있었다. 이 책은 1568년 오스만 술탄 셀림 2세에게 선물로 보내졌고, 20세기에 역시 흩어졌으며, 그 일부는 1994년 미술품 교환을 통해 이란으로 돌아왔다.

현대 학자들은 페르도우시의 원래 본문을 되살리려 노력해 왔다. 쥘 몰은 사본 약 30종을 대조한 프랑스어 대역본(1838~1878)을 냈다. 모스크바판(1960~1971)은 처음으로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 체계적으로 기댔다. 잘랄 할레기모틀라그가 이끈 교감본은 피렌체 사본 등을 활용해 2008년에 완간되었고, 오늘날 가장 좋은 본문으로 널리 인정받는다. 영어 완역으로는 아서·에드먼드 워너 형제의 운문 번역(1905~1925)과 딕 데이비스의 운문·산문 혼합 번역(2006)이 있다.

[1][4][5]

중급

영향과 유산

『샤나메』는 수백 년 동안 페르시아 문학을 빚었다. 네자미 간자비 같은 후대 시인들이 그 이야기를 가져다 썼고, 같은 운율로 서사시를 지은 모방작도 많다. 그 이야기는 다른 언어와 문화로도 퍼졌다. 11~12세기 조지아 문학에 그 영웅들의 이름이 나오고, 오스만 술탄들은 튀르크어 번역과 삽화본을 주문했으며, 아나톨리아의 셀주크 술탄은 콘야의 성벽을 그 시구로 장식했다.

이란에서 이 시는 공연 속에 살아 있다. 전문 이야기꾼(낙갈)은 커다란 그림을 걸어 놓고 찻집에서 그 대목을 낭송하고 연기한다. 이 낙갈리 전통은 유네스코의 긴급보호 무형유산으로 인정되었다. 전통 체육관인 주르하네에서는 운동선수들이 『샤나메』 시구의 리듬에 맞춰 수련한다.

20세기에 이 시는 이란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다. 1934년 이란은 국제 학술회의를 열고 투스에 새 묘를 세워 페르도우시 탄생 천 년을 기념했다. 이 시의 주제는 정부에 따라 왕권의 찬양으로, 폭정 비판으로, 또는 모든 페르시아어 사용자의 공동 유산으로 다양하게 읽혔다.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샤나메』는 공동의 고전으로 존중받는다.

오늘날에도 작가와 영화감독과 삽화가들이 어린이책에서 그래픽노블과 무대 공연까지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고, 세계 곳곳의 페르시아어 사용자들이 그 구절을 속담처럼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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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학계 논쟁: 문헌 자료, 구전 전통, 본문 문제

문헌인가 구전인가. 핵심 논쟁 가운데 하나는 페르도우시가 어떻게 작업했느냐는 문제다. 테오도어 뇔데케의 고전적 연구 『이란 민족 서사시』와 근래의 잘랄 할레기모틀라그, 마흐무드 오미드살라르 등으로 대표되는 주류 견해는 페르도우시가 문헌 자료, 무엇보다 『아부 만수르 샤나메』 산문본을 운문으로 옮겼고 그 자료에 충실했다고 본다. 페르도우시 자신도 옛 책과 이야기를 들려준 데흐칸을 거듭 언급한다. 반면 올가 M. 데이비슨은 구전 서사시 비교 연구에 기대어, 이 시가 살아 있는 구연 전통을 반영하며 책에 대한 언급은 권위를 내세우는 전통적 방식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교감자가 이문(異文)을 다루는 방식에 큰 영향을 준다.

본문 문제. 필사가들이 시를 자유롭게 고쳤기 때문에 사본마다 차이가 매우 크다. 모스크바판은 주로 1276년과 1333년 사본에 기댔고, 1970년대에 확인된 1217년 피렌체 사본은 더 이른 증거를 제공했다. 할레기모틀라그판은 여러 초기 사본과, 이 시를 인용한 초기 아랍어·페르시아어 문헌을 함께 활용한다. 오래된 사본 하나와 후대 사본 여럿이 일치하는 읽기를 어떻게 저울질할지, 유명한 구절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후대의 첨가인지는 여전히 논의 중이다.

집필 연대. 시 속의 진술로 보아 페르도우시는 사만 왕조가 아직 다스리던 994년에 첫 판본을, 1010년에 증보한 두 번째 판본을 완성해 가즈니의 마흐무드에게 바친 것으로 보인다. 두 판본 사이에 얼마나 고쳤는지, 마흐무드 찬양이 이미 있던 작품에 끼워 넣어진 것인지는 열린 문제다.

역사와 신화. 역사 시대 부분은 문학적이긴 하지만 사산 왕실 전통의 중요한 증거이며, 역시 『호다이 나마그』 계통을 활용한 타바리 등의 아랍어 역사서와 비교할 수 있다. 신화·영웅 시대 부분에는 아주 오래된 인도·이란 전승이 담겨 있다. 잠시드는 『아베스타』의 이마, 『리그베다』의 야마에 해당하고, 용왕 자하크는 『아베스타』의 괴물 아지 다하카에서 나왔다. 로스탐의 시스탄 계열 이야기는 별도의 동부 이란 전승에서 왔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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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해석과 읽기의 정치

『샤나메』가 페르시아 문화의 중심에 있는 만큼, 그 해석은 시대마다의 관심사를 비춰 왔다. 튀르크계·몽골계 왕조를 포함한 중세 통치자들은 호화 사본을 후원해 스스로를 고대 이란 왕들의 계승자로 내세웠다. 시 속에서 투란인은 이란의 큰 적인데도 그랬다. 현대 학자들은 서사시의 투란인이 초원의 신화적 민족이며 후대 튀르크계 민족과 단순히 같지 않다고 강조한다.

20세기 이란 민족주의는 이 시의 '순수 페르시아어'와 이슬람 이전 영웅들을 부각했다. 어떤 독자는 이 시를 왕정의 헌장처럼 여겼고, 다른 독자는 수많은 불의한 왕들과 카베 같은 반역자에 대한 공감을 강조했다. 1979년 이후 한동안 공식적으로 불편한 시기를 거쳤다가, 다시 민족 고전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오늘날 학자들은 대체로 11세기의 시를 현대 민족주의의 틀로 읽는 것을 경계한다.

많이 논의되는 해석 문제로는 페르도우시의 종교적 입장(서두의 예언자와 그 가문 찬양을 시아파 성향의 표시로 보는 이가 많지만 이 대목 자체에도 논란이 있다), 여성의 역할(타흐미네, 루다베, 고르다파리드, 마니제 같은 인상적인 여성 인물이 있다), 그리고 그 비극적 역사관이 잃어버린 사산 세계에 대한 애도인지 권력과 죽음에 대한 보편적 성찰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1][8]

핵심 개념

파르(왕의 영광)
정통한 왕을 표시하는 신성한 광휘. 정의로운 왕에게 머물고 교만하고 잔인한 왕을 떠난다.
이란과 투란
페리둔 집안의 두 갈래 사이에 이어진 오랜 원한으로, 영웅 시대의 대부분을 이끈다.
영웅과 왕
로스탐 같은 위대한 용사는 왕좌를 충실히 섬기지만 어리석거나 시기심 많은 왕에게 자주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비극과 운명
가장 위대한 영웅도 운명을 피할 수 없으며, 시는 죽음과 흐르는 시간을 거듭 성찰한다.
지혜(헤라드)
시는 지혜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며 정의·절제·좋은 통치에 관한 조언으로 가득하다.
기억의 보존
사라져 가던 이슬람 이전 이란의 전통을 근세 페르시아어 문학의 불멸의 작품으로 바꿔 놓았다.
페르시아어
아랍어 차용어를 아껴 쓴 덕분에 페르시아어의 본보기가 되었고 문어를 굳히는 데 이바지했다.

기록

  1. 651년 — 사산 왕조의 마지막 왕 야즈데게르드 3세가 메르브 근처에서 죽고 아랍의 이란 정복이 마무리된다.
  2. 약 940년 — 페르도우시가 호라산 투스 근처 파즈 마을에서 태어난다.
  3. 957년 — 투스의 총독 아부 만수르가 근세 페르시아어 산문 『샤나메』 편찬을 명한다. 페르도우시의 주된 자료가 된다.
  4. 약 977년 — 시인 다키키가 약 1,000대구를 쓴 뒤 살해되고, 페르도우시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5. 994년 — 사만 왕조 치하에서 페르도우시가 『샤나메』 첫 판본을 완성한다.
  6. 999년 — 사만 왕조가 무너지고 이란 동부가 가즈니 왕조에 넘어간다.
  7. 1010년 — 페르도우시가 최종본을 완성해 가즈니의 술탄 마흐무드에게 바친다.
  8. 약 1020년 — 페르도우시가 투스에서 세상을 떠난다(1019~1025년 사이로 전한다).
  9. 1217년 — 현존 최고(最古)의 『샤나메』 사본(현재 피렌체 소장)이 필사된다.
  10. 1430년 — 헤라트에서 티무르 왕조의 왕자 바이송고르를 위한 『바이송고르 샤나메』가 완성된다.
  11. 1568년 — 『샤 타흐마스프의 샤나메』가 오스만 술탄 셀림 2세에게 선물로 보내진다.
  12. 1934년 — 이란이 페르도우시 탄생 천 년을 기념하고 투스에 새 묘를 세운다.

용어 풀이

서사시
영웅과 전쟁, 한 민족의 역사나 전설을 노래한 긴 시.
대구(베이트)
운을 맞춘 두 반행으로 이루어진 페르시아 시의 단위.
무타카립
『샤나메』와 후대 페르시아 서사시에 쓰인 짧고 힘찬 운율.
데흐칸
아랍 정복 이후 이슬람 이전 전통을 지킨 이란의 지주 계층.
호다이 나마그
사산 왕조 때 엮은, 지금은 전하지 않는 중세 페르시아어 『군주의 책』. 왕조사의 궁극적 원천이다.
사산 제국
이슬람 이전의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224~651).
사만 왕조
근세 페르시아어 문학을 후원한 부하라·호라산의 왕조(819~999).
투란
『샤나메』에서 아프라시야브가 다스리는, 중앙아시아에 있는 이란의 적국.
시무르그
잘을 기르고 로스탐을 돕는 지혜롭고 신비한 새.
낙갈리
주로 『샤나메』의 대목을 공연하는 이란의 극적 이야기 구연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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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나메』는 얼마나 길어요?

아주 길어요. 전통적으로 약 6만 대구라고 하고, 현대 교감본으로는 약 5만 대구예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합친 것보다 몇 배나 길어요.

로스탐은 실제 인물인가요?

아니에요. 로스탐은 전설 속 영웅이에요. 시의 뒷부분은 실제 사산 왕조 왕들을 다루지만, 거기서도 역사를 문학적으로 들려줘요.

페르도우시는 왜 아랍어 낱말을 적게 썼나요?

자료가 중세 페르시아어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문체의 선택이기도 했어요. 후대 독자들은 이를 페르시아어를 지키려는 의도적 노력으로 보았어요.

술탄 마흐무드가 정말 페르도우시를 속였나요?

은화 이야기는 약 150년 뒤에 글을 쓴 네자미 아루지가 전한 것으로, 적어도 일부는 전설일 가능성이 커요. 마흐무드가 이 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어요.

페르도우시는 책을 보고 썼나요, 구전 이야기를 듣고 썼나요?

대부분의 학자는 그가 문헌 자료, 특히 957년의 『아부 만수르 샤나메』 산문본을 운문으로 옮겼다고 봅니다. 올가 M. 데이비슨 등은 구전 전통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아직 논쟁 중인 문제입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은 무엇인가요?

1217년에 필사된 사본으로, 지금 피렌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습니다.

『샤나메』 그림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유명한 삽화본의 낱장들이 세계 여러 박물관과 도서관에 흩어져 있어요. 『바이송고르 샤나메』는 테헤란 골레스탄 궁전에 있어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Shahnameh. Wikipedia
  2. Ferdowsi. Wikipedia
  3. Rostam and Sohrab. Wikipedia
  4. Shahnameh of Shah Tahmasp. Wikipedia
  5. Great Mongol Shahnameh. Wikipedia
  6. 샤나메. 위키백과
  7. 페르도우시. 위키백과
  8. Abolqasem Ferdowsi, 딕 데이비스(Dick Davis) 옮김, Shahnameh: The Persian Book of Kings. Viking, 2006
  9. 테오도어 뇔데케(Theodor Nöldeke), Das iranische Nationalepos (이란 민족 서사시), 1896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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