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븐 알하이삼(알하젠)

أبو علي الحسن بن الحسن بن الهيثم 아부 알리 알하산 이븐 알하산 이븐 알하이삼 (라틴어: Alhacen, Alhazen)

약 1000–1040년 · 카이로 (파티마 칼리프국)

한 문장으로

이븐 알하이삼은 바스라에서 태어나 11세기 초 파티마 왕조의 카이로에서 활동한 아랍어권 과학자로, 『광학의 서』에서 빛이 눈으로 들어와 보게 된다고 설명하고 생각을 꼼꼼한 실험으로 시험했다. 라틴 유럽에서는 알하젠으로 알려졌다.

이븐 알하이삼(알하젠)
이미지: Michel Bakn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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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천 년 전, 지금의 이라크 남부 항구 도시 바스라에서 알하산 이븐 알하이삼이라는 사람이 태어났어요. 그는 수학을 좋아했고 큰 질문을 던졌어요. 빛이란 무엇일까? 우리 눈은 어떻게 볼까? 옛날 책에 적힌 말은 언제나 맞을까?

그 시절 많은 사람은 눈이 손전등처럼 보이지 않는 광선을 내보내 물건을 ‘만진다’고 믿었어요. 이븐 알하이삼은 생각이 달랐어요. 밝은 해를 보면 눈이 아프잖아요? 그러니 무언가가 눈 안으로 들어오는 게 틀림없다고 했지요. 그는 빛이 물체에 부딪혀 튕겨 나와 곧게 나아가 눈으로 들어온다고 설명했어요.

그는 자기 생각을 시험해 보기를 좋아했어요. 한쪽 벽에 아주 작은 구멍을 낸 어두운 방을 만들었더니,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맞은편 벽에 바깥 풍경을 비추었어요. 그런데 거꾸로였지요! 이것을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의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하는데, 사진기의 첫걸음과 같은 원리예요.

유명한 이야기가 있어요. 이집트의 통치자가 그에게 큰 강 나일의 홍수를 다스려 보라고 했대요. 강을 직접 본 이븐 알하이삼은 자기 계획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통치자의 분노가 두려워서 그 통치자가 죽을 때까지 미친 척했다고 해요. 다만 역사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확신하지 못해요.

그는 일곱 권으로 된 『광학의 서』라는 큰 책을 썼어요. 오랜 뒤 이 책은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로저 베이컨과 요하네스 케플러 같은 유럽 과학자들이 이 책으로 공부했어요. 그의 충고는 지금 들어도 새로워요. 유명한 사람이 쓴 글이라고 그냥 믿지 말고 생각과 실험으로 확인할 것, 그리고 자기 생각도 조심스럽게 의심할 것!

한눈에 보기

생애
965년경 ~ 1040년경(사망을 1040년 직후로 보기도 한다)
출생지
바스라(오늘날 이라크). 당시 부와이 왕조의 지배 아래 있었다
활동지
파티마 칼리프국의 수도 카이로(생애 대부분의 연구 활동)
언어
아랍어
분야
광학과 시지각, 천문학, 기하학, 정수론, 자연철학
대표 저작
『광학의 서(키타브 알마나지르)』 7권, 1011~1021년경. 라틴어 제목 『데 아스펙티부스』 또는 『페르스펙티바』
그 밖의 저작
『프톨레마이오스에 대한 의문』(1025~1028년경), 『일식의 모양에 관하여』, 『세계의 구성에 관하여』, 『일곱 행성 각각의 운동 모형』(1038년경), 초승달꼴·완전수·분석과 종합에 관한 논고
저술 규모
중세 목록은 약 90~200종을 그의 저작으로 꼽으며, 50종 이상이 적어도 일부 전한다

쉬움

이븐 알하이삼은 누구인가

아부 알리 알하산 이븐 알하산 이븐 알하이삼은 965년경부터 1040년경까지 산 수학자·천문학자이자 빛의 연구자다.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서 태어나 연구 생활 대부분을 파티마 칼리프들의 수도 카이로에서 보냈다. 중세 라틴 유럽에서는 그의 이름 알하산이 알하첸(Alhacen)이 되었고, 16세기의 한 편집자가 알하젠(Alhazen)으로 적으면서 오늘날에도 이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무엇보다 『광학의 서(키타브 알마나지르)』로 기억된다. 이 책에서 그는 눈이 광선을 내보내서가 아니라 물체에서 온 빛이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본다고 설명했다. 빛이 거울에 반사되고, 공기에서 물이나 유리로 들어갈 때 꺾이는(굴절하는) 방식, 그리고 눈과 마음이 함께 크기·거리·색을 판단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그는 기하학·수·천문학에 관한 저술도 수십 편 남겼다. 그 가운데 몇 편은 위대한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를 비판한다. 그를 존경했지만 의심할 수 없는 권위로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이다. 주장을 시험하는 태도를 강조했기 때문에 현대의 일부 저자는 그를 과학적 방법의 개척자라 부르는데, 이런 호칭이 얼마나 정당한지는 역사가들 사이에 논쟁이 있다.

[1][2][6]

쉬움

바스라와 카이로, 나뉜 이슬람 세계

10세기 말 바그다드의 아바스 칼리프는 실권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바스라를 포함한 이라크는 페르시아계 왕조인 부와이 왕조가 장악했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시리아 상당 부분은 경쟁 관계에 있던 이스마일파 시아파 칼리프국인 파티마 왕조가 다스렸는데, 이 왕조는 969년 수도로 카이로를 세웠다.

정치는 나뉘었어도 학자들은 오갔고 아랍어 책은 지역 전체를 누볐다. 에우클레이데스·프톨레마이오스·아폴로니오스 등의 그리스 수학·광학·천문학 저작은 앞선 두 세기 동안 아랍어로 번역되어 있었고, 알킨디 같은 아랍 저자들도 이미 시각에 관해 글을 썼다. 이븐 알하이삼은 이 풍부한 서고 위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

파티마 왕조의 칼리프 알하킴(재위 996~1021)은 학문을 후원했지만 예측하기 어렵고 가혹한 결정으로도 유명했다. 이븐 알하이삼의 삶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들은 이런 배경 속에서 펼쳐진다.

[1][2]

쉬움

그의 삶: 사실과 이야기, 그리고 불확실성

그의 삶에 관한 지식은 주로 약 200년 뒤에 쓰인 인물 사전, 특히 알키프티와 이븐 아비 우사이비아의 기록, 그리고 그가 1027년에 쓴 짧은 지적 자서전에서 나온다. 후대 기록들은 서로 늘 일치하지는 않고, 일부는 전설처럼 읽힌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 바스라에서 관직을 맡았다. 당대의 서로 엇갈리는 종교적·철학적 견해를 공부한 끝에 학문,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수학에 몸을 바치기로 했다. 응용수학으로 이름을 얻었고, 나일강의 범람을 조절할 수 있다고 그가 말했다는 소문이 알하킴에게 전해졌다.

칼리프는 그를 이집트로 불렀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자기 계획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뒤의 판본들은 그가 아스완 근처를 살폈다고 덧붙인다. 대신 행정직을 받았지만 칼리프가 두려워 미친 척했고, 1021년 알하킴이 죽을 때까지 집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이 기간에 『광학의 서』의 상당 부분을 썼다고 전한다.

그 뒤 그는 카이로의 알아즈하르 모스크 근처에 살며 과학 필사본을 베껴 주고 가르치며 생계를 꾸렸다. 1024년 날짜가 적힌, 그의 손으로 베낀 아폴로니오스 『원뿔곡선론』 사본이 이스탄불에 남아 있다. 한동안 시리아에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1038년 무렵 이집트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도 있다. 그는 1040년경 카이로에서 세상을 떠났다.

[2][1]

중급

우리는 어떻게 보는가: 『광학의 서』

고대에는 시각에 관한 두 가지 주요 이론이 있었다.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와 프톨레마이오스는 눈이 시선의 원뿔을 내보낸다는 ‘방출설’을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추종자들은 물체에서 무언가, 곧 ‘형상’이 눈으로 들어온다는 ‘유입설’을 가르쳤다. 의사 갈레노스는 눈의 해부 구조를 설명했다. 앞선 아랍 저자들은 이 전통들 가운데 하나를 따랐다.

이븐 알하이삼은 이들을 새롭게 결합했다. 아리스토텔레스학파처럼 그는 빛과 색이 눈으로 들어올 때 시각이 생긴다고 보았다. 수학자들처럼 이를 기하학으로 다룰 수 있는, 곧게 나아가는 광선으로 취급했다. 갈레노스처럼 정교한 눈의 모형을 썼다. 방출설에 맞서서는 강한 빛이 눈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점, 눈꺼풀을 뜨는 순간 눈이 멀리 있는 별까지 광선을 보낸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의 이론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물체의 모든 점이 사방으로 빛을 보내므로 눈의 모든 점은 물체의 모든 점에서 빛을 받게 되고, 그러면 상이 흐려져야 한다. 그의 해법은 눈의 표면에 수직으로 닿는 광선만 뚜렷이 지각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물체의 한 점이 눈의 한 점에 대응한다. 이 답은 완전히 설득력 있지는 않았지만 당시 이만큼 완결된 이론은 없었고, 17세기 케플러의 망막상 이론이 나오기까지 유럽 광학을 이끌었다.

『광학의 서』는 일곱 권이다. 제1~3권은 직접 시각, 눈과 지각, 시각의 오류를 다루고, 제4~6권은 반사와 거울 속 상을, 제7권은 굴절을 다룬다. 책 전체에서 그는 독자가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와 절차를 설명한다.

[1][3][7]

중급

거울, 굴절, 그리고 어두운 방

그는 반사 법칙을 완전하게 서술했다. 들어오는 광선, 반사된 광선, 거울에 수직인 선이 모두 한 평면 위에 있고 양쪽 각도가 같다는 것이다. 평면·구면·원통·원뿔 거울을 연구했고, 굽은 거울이 모든 광선을 한 점에 모으지 못하는 구면 수차를 설명했다.

제7권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설명한 장치를 고친 기구로 굴절을 조사했다. 입사각과 굴절각의 비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도 관찰했다. 그는 굴절을 역학적 비유로 설명했다. 얇은 판에 곧바로 던진 공은 판을 뚫지만 비스듬히 던진 공은 튕겨 나간다는 것이다. 또 빛은 덜 조밀한 매질에서 더 빨리 움직이며 “더 쉽고 빠른” 길을 따른다고 했는데, 역사가들은 이를 훗날 페르마의 최소 시간 원리와 비교한다.

짧은 논고 『일식의 모양에 관하여』는 바늘구멍 상, 곧 카메라 옵스큐라를 처음으로 명료하게 물리적·수학적으로 분석했다. 바늘구멍 상은 중국의 『묵자』와 아리스토텔레스 계통의 『문제집』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이븐 알하이삼은 구멍의 크기와 모양, 스크린까지의 거리를 바꿔 가며 상이 어떻게 생기는지, 왜 뒤집히는지, 왜 구멍이 크면 상이 흐려지는지를 보였다. 그는 이런 장치로 부분 일식 때 초승달 모양의 해를 관찰했다.

제5권에는 오늘날 ‘알하젠의 문제’라 부르는 문제가 있다. 구면 거울과 광원, 눈이 주어졌을 때 빛이 눈으로 반사되는 거울 위의 점을 찾는 문제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특수한 경우를 다루었다. 이븐 알하이삼은 원뿔곡선의 교점을 이용해 일반적인 경우를 풀었다. 이 문제는 자와 컴퍼스로는 풀 수 없으며, 순수한 대수적 풀이는 1965년에야 발표되었다.

[1][4][5][2]

중급

마음으로 보기

그의 가장 독창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는 보는 일이 빛과 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체를 알아보고 거리를 판단하고 크기를 비교하려면, 마음이 눈이 받은 것을 해석해야 한다. 이 해석은 흔히 우리도 모르게 빠르게,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현대 심리학은 비슷한 생각을 ‘무의식적 추론’이라 부른다.

그는 이 생각을 착시에 적용했다. 달은 하늘 높이 있을 때보다 지평선 가까이 있을 때 더 크게 보이지만, 하늘에서 차지하는 각도는 같다. 이븐 알하이삼은 지평선 쪽 달을 볼 때 그 앞으로 뻗은 땅과 물체들이 보이므로 달이 더 멀리 있다고 판단하고, 그래서 더 크게 지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거리 설명은 고대 저자들도 제시한 바 있지만, 중세 유럽이 알던 것은 그의 판본이었다.

그는 서로 다른 조명 아래에서도 물체가 같은 색으로 보이는 색 항등성을 설명했고, 두 눈으로 보기, 곧 훗날 호롭터라 불린 것에 관해서도 썼다. 일부 현대 저자는 그가 시각 과학의 여러 후대 발견을 앞질렀다고 평가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의 양안시 설명이 프톨레마이오스를 충실히 따르면서 고친 것이므로 그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1][3]

중급

천문학과 수학

『세계의 구성에 관하여』에서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를 전문 지식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물리적 그림으로 제시했다. 정지한 지구 둘레에서 겹겹이 포개진 단단한 천구들이 행성을 싣고 돈다는 그림이다. 이 책은 뒤에 히브리어와 라틴어로 번역되어 르네상스 유럽에서 읽혔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에 대한 의문』(1025~1028년경)에서는 『알마게스트』·『행성 가설』·『광학』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특히 행성이 원의 중심이 아닌 점을 기준으로 균일하게 움직이게 하는 장치인 ‘동시심(이퀀트)’은 어떤 실제 물리적 운동과도 맞을 수 없다고 보았다.

일부만 전하는 『일곱 행성 각각의 운동 모형』(1038년경)에서는 지구 중심 우주와 원운동은 유지하되 동시심을 없앤 기하학적 모형을 제안했다. 자오선 결정, 메카 방향 찾기, 은하수까지의 거리에 관해서도 썼는데, 은하수는 달보다 훨씬 멀리 있다고 주장했다.

수학에서는 에우클레이데스의 평행선 공준을 탐구하며 훗날 요한 람베르트와 연결되는 사각형을 썼다. 오마르 하이얌은 뒤에 그가 기하학에 운동 개념을 끌어들인 것을 비판했다. 그는 ‘알하젠의 초승달꼴’, 정칠각형 작도, 자연수의 네제곱의 합을 이용한 포물면 부피 구하기에 관해 썼다. 정수론에서는 오늘날 윌슨의 정리라 부르는 성질을 이용했고, 연립 합동식을 풀었으며, 훗날 오일러가 증명한 짝수 완전수의 형태를 처음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

[1][2]

중급

의심과 실험

『프톨레마이오스에 대한 의문』에서 그는 진리를 찾는 사람은 옛 저자를 그저 믿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의심하고 논증과 증명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썼다. 그리고 그런 비판자는 편견이나 관대함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도 의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광학의 서』는 거듭 ‘시험’, 곧 주장을 관찰과 대조해 확인하는 절차에 호소한다. 그는 자연철학과 기하학을 결합했다. 빛에 관한 물리적 주장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뒤, 관측통·스크린·눈금 장치 같은 도구로 확인했다.

그는 신앙도 지니고 있었다. 중세 사료는 대체로 그를 수니파 무슬림으로 묘사하며, 그는 진리와 지식을 찾는 것이 신에게 가까이 가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썼다. 예배 방향인 키블라를 계산하는 논고도 남겼다. 그에게 엄밀한 탐구와 신앙은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1]

중급

이슬람 세계와 유럽에 끼친 영향

이슬람 세계에서 그의 광학은 주로 후대의 개정판, 곧 페르시아 학자 카말 알딘 알파리시(1320년경 사망)의 『광학 개정(탄키흐 알마나지르)』을 통해 알려졌다. 알파리시는 이를 바탕으로 무지개를 설명했다. 알안달루스에서는 사라고사의 수학자 왕 알무타만 이븐 후드가 11세기에 그의 저작을 활용했다.

라틴 유럽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번역자가 아마 12세기 말이나 13세기 초에 『광학의 서』를 『데 아스펙티부스』 또는 『페르스펙티바』로 옮겼다. 이 번역은 로저 베이컨, 존 페컴, 비텔로 등 13세기 ‘원근법 학파(페르스펙티바)’ 전통의 토대가 되었다. 1572년 프리드리히 리스너가 비텔로의 광학과 함께 바젤에서 『광학의 보고』로 인쇄했고, 케플러·데카르트·하위헌스 등이 이를 읽었다.

오늘날 달의 크레이터와 소행성 하나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고, 이라크 지폐에 그의 초상이 실렸으며, 2015년 ‘세계 빛의 해’는 그의 광학 연구 천 년을 기념했다. 그는 흔히 ‘광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1][3][5]

심화

이븐 알하이삼은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인가: 전기와 저작 귀속

중세 서지 목록은 저작을 조금 다른 두 이름으로 싣는다. 알하산 이븐 알하산 이븐 알하이삼과 무함마드 이븐 알하산 이븐 알하이삼이다. 로시디 라셰드는 이들이 서로 다른 두 사람, 곧 이라크의 철학자·의사 무함마드와 이집트에서 활동한 수학자 알하산일 수 있으며 전기 작가들이 둘을 합쳤다고 주장했다. A. I. 사브라 등은 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문가는 수학·광학 저작군을 한 저자의 것으로 다루지만, 이 문제는 어떤 저작과 어떤 전기적 사실이 그의 것인지에 영향을 준다.

나일강 이야기와 미친 척한 이야기는 그가 죽고 한참 뒤의 사료에서 나오며, 학자와 폭군에 관한 교훈담의 형태를 띤다. 실제 기억을 담고 있을 수도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출생·사망 연도도 이 후대 사료에서 나온 것이며, 사망을 1040년 이후로 보는 학자도 있다.

저작 귀속은 라틴 전통에서도 중요하다. 어떤 논고는 그의 이름으로 라틴어로 유통되었지만, 『일식의 모양에 관하여』 같은 저작은 20세기까지 아랍어로만 남아 중세 유럽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의 영향을 평가할 때 역사가들은 어떤 텍스트가 실제로 어떤 독자에게 닿았는지를 물어야 한다.

[2][1][5]

심화

‘최초의 진정한 과학자’인가: 역사 속 자리를 둘러싼 논쟁

대중적 글에서 이븐 알하이삼은 흔히 과학적 방법의 창시자, 최초의 진정한 과학자로 묘사된다. 과학사가들은 더 신중하다. 마티아스 슈람은 그가 실험 조건을 체계적으로 바꾼 최초의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슈람의 책을 서평한 G. J. 투머는 당시 『광학의 서』가 완역되지 않았고, 떼어 낸 구절은 시대착오적으로 읽힐 수 있으며, 이븐 알하이삼을 홀로 떼어 보지 말고 앞선 그리스·이슬람 저자들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오늘날의 지식 상당 부분은 비판 정본에 기댄다. A. I. 사브라는 제1~3권의 아랍어 원문을 편집·번역했고(영어 번역은 1989년 워버그 연구소 간행), 뒤에 제4~5권도 편집했다. A. 마크 스미스는 2001년부터 여러 권에 걸쳐 중세 라틴어본 『데 아스펙티부스』의 정본을 영어 번역·주석과 함께 펴냈다. 아랍어본과 라틴어본을 비교하면 중세 번역이 곳곳에서 원문과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므로, 중세 유럽인은 조금 다른 ‘알하첸’을 읽은 셈이다.

일부 현대 저자는 그가 실험심리학이나 정신물리학을 창시했다고 주장하지만, 비판자들은 그의 지각 보고가 양적이 아니라 질적이었다고 지적한다. 달 착시에 대한 그의 설명도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중세의 표준 판본이 되었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면 그는 그리스·아랍 전통 안에서 일하며 그것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해, 광학을 실험과 기하학이 통합된 학문으로 바꾼 뛰어난 수학자·물리학자다.

[1][7][8][3]

핵심 개념

빛의 유입
물체의 모든 점에서 빛과 색이 곧게 나아가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는 본다.
수직 광선
눈에 수직으로 닿는 광선만 뚜렷이 지각되어 물체와 눈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생긴다.
반사 법칙
입사 광선·반사 광선·법선은 한 평면 위에 있고 각도가 같다.
카메라 옵스큐라 분석
작은 구멍을 지난 빛은 뒤집힌 상을 만들고, 그 선명도는 구멍의 크기에 달려 있다.
추론으로서의 지각
마음은 이전 경험으로 시각 정보를 해석해 크기·거리·색을 판단한다.
시험과 실험
빛에 관한 주장을 도구와 통제된 관찰로 확인한다.
권위에 대한 비판
프톨레마이오스라도 그의 모형이 물리적 실재나 서로와 모순되면 의심해야 한다.

기록

  1. 약 965년 — 부와이 왕조 치하의 바스라에서 이븐 알하이삼이 태어나다.
  2. 969년 —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카이로를 세우다.
  3. 996년 — 알하킴이 파티마 왕조 칼리프가 되다.
  4. 약 1011년 — 『광학의 서』를 쓰기 시작하다. 전승에 따르면 이 무렵 카이로에 갇혀 있었다.
  5. 1021년 — 알하킴이 죽다. 『광학의 서』가 이 무렵 완성되다.
  6. 1024년 — 아폴로니오스의 『원뿔곡선론』을 베끼다. 이 사본은 이스탄불에 남아 있다.
  7. 약 1025년 — 『프톨레마이오스에 대한 의문』을 쓰다(1025~1028년경).
  8. 1027년 — 짧은 자서전과 저작 목록을 쓰다.
  9. 약 1038년 — 『일곱 행성 각각의 운동 모형』을 쓰다.
  10. 약 1040년 — 카이로에서 세상을 떠나다.
  11. 약 1200년 — 『광학의 서』가 라틴어 『데 아스펙티부스』로 번역되다.
  12. 1572년 — 프리드리히 리스너가 바젤에서 라틴어 광학서를 『광학의 보고』로 인쇄하다.

용어 풀이

광학(일름 알마나지르)
시각과 빛에 관한 학문.
방출설
눈이 광선을 내보내 물체를 본다는 고대의 생각.
유입설
물체에서 무언가가 눈으로 들어와 시각이 생긴다는 생각.
굴절
빛이 한 투명한 물질에서 다른 물질로 들어갈 때 꺾이는 현상.
카메라 옵스큐라
라틴어로 ‘어두운 방’.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뒤집힌 상을 비추는 어두운 공간.
파티마 칼리프국
카이로를 중심으로 이집트와 인근 지역을 다스린 이스마일파 시아파 왕조(969~1171).
동시심(이퀀트)
프톨레마이오스 행성 모형에서 행성이 일정한 각속도로 도는 기준점.
원뿔곡선
원뿔을 잘라 생기는 타원·포물선·쌍곡선. 알하젠의 문제 풀이에 쓰였다.
원근법 학파(페르스펙티바)
그의 저작을 따른 베이컨·페컴·비텔로 등 13세기 유럽 광학 저자들.
무의식적 추론
지각에 마음의 빠르고 의식되지 않는 판단이 개입한다는 생각.

묻고 답하기

왜 알하젠이라고 부르나요?

중세 라틴어 저자들이 그의 이름 알하산을 알하첸으로 바꿔 불렀어요. 알하젠이라는 표기는 1572년 프리드리히 리스너의 인쇄본으로 널리 퍼졌어요.

그가 사진기를 발명했나요?

아니에요. 바늘구멍 상은 그보다 훨씬 전에 중국과 그리스에서도 알려져 있었어요. 그는 상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처음으로 명확하게 과학적으로 설명했고, 그것이 사진기의 기본 원리예요.

정말 미친 척했나요?

그 이야기는 약 200년 뒤의 전기 작가들에게서 나왔어요. 어느 정도 사실을 담고 있을 수는 있지만 역사가들이 확인할 수는 없어요.

왜 달은 지평선 가까이에서 더 커 보이나요?

그는 마음의 착각이라고 했어요. 지평선의 달이 더 멀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뇌가 더 크게 보이게 한다는 거예요.

그가 실험을 한 최초의 과학자였나?

최초는 아니다. 프톨레마이오스도 기구를 썼다. 다만 그는 실험과 기하학을 유난히 체계적으로 함께 썼다. ‘최초의 과학자’라는 말은 역사가들이 논쟁하는 현대적 단순화다.

중세 유럽에는 그의 저작 가운데 무엇이 알려졌나?

주로 라틴어 『데 아스펙티부스』와 일부 우주론 저작이다. 『일식의 모양에 관하여』 같은 논고는 아랍어로만 남아 근대 이전 유럽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이름으로 전하는 저작이 모두 한 사람의 것인지 의문이 있나?

있다. 라셰드는 서지 목록이 이븐 알하이삼이라는 두 사람을 합쳤다고 보았고, 사브라 등은 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이 문제는 일부 철학·의학 저작의 귀속에 영향을 준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Ibn al-Haytham. Wikipedia
  2. J. J. O'Connor and E. F. Robertson, Abu Ali al-Hasan ibn al-Haytham. MacTutor History of Mathematics Archive, University of St Andrews
  3. Book of Optics. Wikipedia
  4. Alhazen's problem. Wikipedia
  5. Camera obscura. Wikipedia
  6. 이븐 알하이삼. 위키백과(한국어)
  7. A. I. Sabra, The Optics of Ibn al-Haytham, Books I–III: On Direct Vision (translation and commentary). The Warburg Institute, University of London, 1989
  8. A. Mark Smith, Alhacen's Theory of Visual Perception: A Critical Edition, with English Translation and Commentary, of the First Three Books of Alhacen's De aspectibus.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Transactions, vol. 91), 2001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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