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

Εὐκλείδης (Eukleídēs), 흔히 ‘알렉산드리아의 에우클레이데스’

약 기원전 300–266년 · 알렉산드리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

한 문장으로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는 기원전 300년 무렵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그리스 수학자로, 몇 개의 정의와 가정에서 출발해 기하학과 수론을 한 단계씩 쌓아 올린 13권짜리 『원론』을 써서 2,00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수학 교과서를 남겼다.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
이미지: Justus van Gent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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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이집트의 새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에우클레이데스라는 그리스인 수학 선생님이 살았어요. 영어로는 유클리드라고 해요.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조차 우리는 거의 몰라요. 하지만 그가 쓴 책은 잘 알고 있지요.

그 책의 이름은 『원론』이에요.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다른 점까지 곧은 선을 그을 수 있다’ 같은 아주 간단한 생각들로 시작해요. 이 작은 출발점에서 에우클레이데스는 블록으로 높은 탑을 쌓듯 점점 더 큰 생각들을 하나씩 증명해 나가요.

새로운 생각(명제라고 해요)은 앞에서 이미 밝힌 것만 써서 증명해요. 그림에서 그럴듯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아요. ‘증명’이라고 부르는 이런 생각 방식은 지금도 수학자들이 일하는 방법이에요.

『원론』은 도형만 다루지 않아요. 두 수를 함께 나누어떨어지게 하는 가장 큰 수를 찾는 방법도 보여 주고, 2, 3, 5, 7, 11 같은 소수는 아무리 멀리 세어도 끝이 없다는 것도 증명해요.

약 2,000년 동안 유럽과 중동, 뒤에는 중국을 비롯한 여러 곳의 학생들이 에우클레이데스의 책으로 수학을 배웠어요. 손으로 베껴 쓰고, 아랍어·라틴어·중국어 등 여러 언어로 옮겨졌으며, 인쇄된 판만 천 가지가 넘어요.

에우클레이데스의 출발 규칙 가운데 절대 만나지 않는 선에 관한 규칙 하나는 몇 백 년 동안 사람들을 괴롭혔어요. 1800년대에 수학자들은 그 규칙을 바꾸면 새로운 기하학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것이 나중에 과학자들이 휘어진 우주를 설명하는 데 쓰였어요. 에우클레이데스의 책은 그가 상상도 못 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진 셈이에요.

한눈에 보기

활동
기원전 300년 무렵(전통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 1세 재위, 기원전 305/304~282년). 출생·사망 연도는 알 수 없음
장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과 관련되었을 가능성
언어
고대 그리스어
대표작
『원론(스토이케이아)』 13권: 평면기하, 비례론, 수론, 통약 불가능량, 입체기하
현존하는 다른 저작
『자료』, 『광학』, 『현상』, 『도형의 분할에 관하여』(아랍어로 전함), 『반사광학』(저자 논란)
사라진 저작
『원뿔곡선론』, 『포리스마』, 『오류론(프세우다리아)』, 『곡면 위의 자취』
생애에 관한 주요 고대 자료
프로클로스(5세기)와 알렉산드리아의 파포스(4세기). 가장 이른 언급은 아폴로니오스의 『원뿔곡선론』(기원전 200년 무렵)
업적
공리적·연역적 방법, 유클리드 기하학, 소수의 무한성 정리, 유클리드 호제법

쉬움

에우클레이데스는 누구인가

에우클레이데스는 흔히 ‘기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수학자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우고 그리스어를 쓰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다스린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살며 가르쳤다. 보통 기원전 300년 무렵의 인물로 본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한 권의 책, 『원론』이다. 그는 앞선 몇 세기 동안 그리스 수학자들이 발전시킨 기하학과 산술을 모아, 모든 결과를 앞의 결과로부터 증명하는 하나의 논리 사슬로 엮었다. 정리 상당수는 다른 이들이 발견한 것이지만, 체계와 많은 증명, 전체 설계 덕분에 이 책은 2,000년 넘게 수학의 표준 교과서가 되었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아르키메데스, 페르게의 아폴로니오스와 함께 고대 최고의 수학자로 꼽힌다. 오늘날 ‘유클리드 기하학’은 대부분의 사람이 학교에서 배우는 평평한 공간의 기하학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1][3][5]

쉬움

그의 생애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에우클레이데스의 생애는 거의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동시대 저술가 누구도 그를 묘사하지 않았고, 생전의 초상도 없다. 후대 미술 속 에우클레이데스의 모습은 상상일 뿐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 대부분은 600~700년 뒤에 살았던 두 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파포스(4세기 초)와 프로클로스(5세기)에게서 나온다.

프로클로스는 에우클레이데스가 플라톤의 제자들보다 뒤, 아르키메데스보다 앞, 첫 프톨레마이오스 왕 시대에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대략 기원전 300년 무렵이 된다. 파포스는 후대 수학자 아폴로니오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에우클레이데스의 제자들에게 배웠다고 적었는데, 이는 에우클레이데스가 그곳에 수학 학파를 세웠음을 시사한다. 그의 저작이 플라톤 주변의 기하학을 바탕으로 하기에 아테네에서 플라톤의 추종자들에게 배웠으리라고 흔히 추측하지만, 이는 짐작일 뿐이다.

그에 관해 유명한 이야기가 두 가지 전한다. 하나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기하학을 배우는 지름길을 묻자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고 답했다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기하학을 배워 무엇을 얻느냐고 묻는 학생에게 ‘배운 것에서 이득을 봐야 하는 사람이니’ 동전을 주라고 하인에게 일렀다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 모두 수백 년 뒤에 기록되었고, 첫 이야기와 거의 같은 일화가 다른 수학자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이의 일로도 전하므로, 역사학자들은 이를 전설로 다룬다.

[1][5][9]

쉬움

알렉산드리아: 새로운 배움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31년에 세워졌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그의 장군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를 차지했고, 기원전 306년 무렵부터 그의 통치는 알렉산드로스 후계자들의 전쟁 속에서 보기 드문 안정을 가져왔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연구와 교육의 중심인 무세이온(‘무사 여신들의 전당’)과 유명한 도서관 같은 큰 기관을 세웠다.

그리스 세계 곳곳의 학자들이 알렉산드리아로 모여들었다. 흔히 에우클레이데스를 무세이온의 첫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상상하지만, 고대 자료가 이를 직접 말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알렉산드리아가 몇 세기 동안 그리스 수학과 과학의 중심지가 되어, 에라토스테네스, 헤론,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파포스, 테온 같은 후대 인물들의 터전이 되었다는 점이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이렇게 만나는 자리에 서 있다.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세대가 아테네에서 발전시킨 수학을 이어받았고, 그의 저작은 뒤따른 알렉산드리아 전통의 토대가 되었다.

[1][3]

쉬움

『원론』: 열세 권의 책

『원론』(그리스어 스토이케이아)은 열세 ‘권’으로 나뉘는데, 오늘날의 긴 장(章)에 가깝다. 1~6권은 평면기하를 다룬다. 삼각형, 평행선, 넓이, 원, 정다각형, 닮은 도형 등이다. 5권은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의 업적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이는 비와 비례의 일반 이론을 제시한다.

7~9권은 자연수를 다룬다. 나누어떨어짐, 소수, 연비례하는 수들이다. 가장 길고 어려운 10권은 통약 불가능한(오늘날 말로 무리수인) 길이를 분류한다. 11~13권은 입체기하로 넘어가, 다섯 정다면체(정육면체·정사면체·정팔면체·정십이면체·정이십면체)를 작도하고 그 밖의 정다면체는 없음을 증명하며 끝난다.

후대 사본에는 14권과 15권이 덧붙기도 했지만 다른 저자들의 것이며, 14권은 힙시클레스의 것으로 본다. 『원론』에는 서문도, 역사 이야기도, 개인적인 말도 거의 없다. 정의, 가정, 명제와 증명이 저마다 그림과 함께 이어질 뿐이다.

[3][1][6]

중급

방법: 정의, 공준, 증명

1권은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선은 폭이 없는 길이다’ 같은 23개의 정의로 시작한다. 그 뒤에 다섯 개의 공준과 다섯 개의 공통 개념이 온다. 공준은 자와 컴퍼스로 하는 기하학의 기본 작도를 허용한다. 두 점 사이에 직선을 긋고, 직선을 연장하고, 임의의 중심과 반지름으로 원을 그리는 것이다. 또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고 말한다. 공통 개념은 ‘같은 것과 같은 것들은 서로 같다’,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 같은 양에 관한 일반적 진리다.

나머지는 모두 명제다. 수행할 작도인 ‘문제’와 증명할 진술인 ‘정리’로 나뉜다. 각 명제는 일반적인 말로 진술되고, 그림으로 보여지며, 앞서 확립된 것만으로 한 단계씩 증명된 뒤 정해진 문구로 끝난다. 이 문구는 뒤에 라틴어로 ‘증명되어야 했던 것’(quod erat demonstrandum, QED)이라고 옮겨졌다.

명시적으로 밝힌 소수의 출발점에서 한 분야 전체가 자라나는 이 공리적·연역적 구조가 에우클레이데스의 가장 오래 남은 유산이다. 이후 철학·물리학·수학의 저술가들이 거듭 이 형식을 빌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제1원리와 논증을 논했고 에우클레이데스의 용어도 그런 논의와 닮았지만, 『원론』은 이 방법을 대규모로 실천한 것으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례다.

[3][6][1]

중급

『원론』의 유명한 결과들

1권은 피타고라스 정리(명제 47)와 그 역(명제 48)으로 끝난다. 이것은 이 정리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증명으로, 그 그림은 ‘풍차’나 ‘신부의 의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같은 권의 명제 5(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같다)는 중세 유럽에서 실력이 모자란 학생은 건너지 못하는 ‘당나귀의 다리(pons asinorum)’로 불렸다.

7권은 오늘날 유클리드 호제법이라 부르는 절차로 시작한다. 두 수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려면 나머지가 0이 될 때까지 큰 수에서 작은 수를 거듭 빼거나 나눈다. 컴퓨터 암호를 포함해 지금도 날마다 쓰이는 가장 오래된 알고리즘 가운데 하나다. 9권 명제 20은 소수가 어떤 주어진 수보다 많다는 것, 곧 소수는 끝이 없음을 증명하는데, 그 논증은 지금도 가르쳐진다.

2권 명제 11과 이후의 명제들은 선분을 ‘외중비’로 나누는 작도, 곧 오늘날의 황금비를 다루며, 이는 정오각형,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를 만드는 데 쓰인다. 12권은 적분학의 선구인 실진법(착출법)을 써서, 예컨대 원뿔의 부피가 밑면과 높이가 같은 원기둥의 3분의 1임을 보인다.

[3][1]

중급

에우클레이데스의 다른 저작

에우클레이데스는 『원론』 말고도 많은 글을 썼다. 『자료』는 도형의 어떤 요소가 ‘주어졌을’ 때 무엇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설명하는 일종의 문제 풀이 안내서다. 『광학』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의 원근법 논저로, 시각을 눈에서 원뿔 모양으로 퍼지는 직선(시선)으로 다루며, 예컨대 멀리 있는 물체가 왜 작아 보이는지 증명한다. 『현상』은 구면기하를 천문학에 적용해 지구에서 본 하늘의 운동을 기술한다.

아랍어 번역으로 일부만 전하는 『도형의 분할에 관하여』는 도형을 주어진 비의 부분으로 나누는 문제를 다룬다. 거울을 다룬 『반사광학』은 그의 저작으로 전하지만 많은 학자가 의심한다.

후대의 기록으로만 알려진 사라진 저작도 여럿이다. 뒤에 아폴로니오스의 책에 밀려난 네 권짜리 『원뿔곡선론』, 특별한 종류의 명제 약 200개를 모은 『포리스마』, 초보자가 실수를 피하도록 돕는 기하학적 오류에 관한 『프세우다리아(오류론)』, 그리고 『곡면 위의 자취』다.

[1][5]

중급

『원론』이 세계를 여행한 길

『원론』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이집트 엘레판티네에서 나온 기원전 3세기의 도편(글을 새긴 토기 조각) 여섯 점으로, 13권의 명제들을 다룬다. 본문이 담긴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인 옥시링쿠스 파피루스 29는 서기 75~125년 무렵의 것이다.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테온이 만든 판본은 이후 거의 모든 그리스어 사본의 바탕이 되었다.

800년 무렵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 치하에서 알하자즈 이븐 유수프 이븐 마타르가 『원론』을 아랍어로 옮겼고, 뒤에 이스하크 이븐 후나인의 번역을 사비트 이븐 쿠라가 교정했다. 이슬람 세계의 수학자들은 이 책을 연구하고 주석하고 확장했으며, 평행선 공준을 증명하려는 시도도 여기에 포함된다. 1120년 무렵 영국 수도사 애덜러드 오브 바스가 아랍어본을 라틴어로 옮겼고, 13세기 캄파누스 데 노바라의 라틴어판이 서유럽의 표준이 되었다.

1482년 베네치아에서 에르하르트 라트돌트가 펴낸 첫 인쇄본은 가장 이른 인쇄 수학책 가운데 하나였고, 이후 천 가지가 넘는 판이 나왔다. 첫 영어 번역은 헨리 빌링슬리가 옮기고 존 디가 서문을 붙여 1570년에 나왔다. 1607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와 학자 서광계(徐光啓)가 앞의 여섯 권을 한문으로 옮긴 『기하원본(幾何原本)』을 펴내 동아시아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소개했고, ‘기하(幾何)’라는 말이 기하학을 뜻하게 되었다.

[3][1]

중급

제5공준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에우클레이데스의 제5공준은 요컨대, 한 직선이 두 직선과 만나 한쪽의 두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으면, 그 두 직선을 한없이 늘일 때 그쪽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이는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 그 직선과 평행한 직선이 꼭 하나 있다는 말과 같다. 다른 공준들에 비해 길고 자명하지 않아서, 에우클레이데스 자신도 1권 명제 29에 이르러서야 이를 사용한다.

2,000년 동안 프톨레마이오스, 프로클로스, 이븐 알하이삼, 오마르 하이얌, 나시르 알딘 투시, 그리고 사케리 같은 후대 유럽인들이 나머지 네 공준으로 이를 증명하려 했다. 모두 실패했지만, 그 노력 속에서 이와 동치인 여러 명제가 드러났다.

19세기 초 니콜라이 로바쳅스키(1829년 발표), 보여이 야노시, 그리고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제5공준이 거짓인 무모순의 기하학을 세울 수 있음을 보였다. 뒤이어 베른하르트 리만이 또 다른 휘어진 기하학을 발전시켰다. 이 비유클리드 기하학들은 제5공준이 다른 공준들과 독립임을 증명했고, 뒤에 아인슈타인 일반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언어가 되었다. 공준을 증명하는 척하지 않고 가정으로 내세운 에우클레이데스의 선택은 오늘날 오히려 그의 논리적 통찰로 평가된다.

[4][3]

중급

유산

『원론』은 흔히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교과서로, 그리고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출판·연구된 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유럽에서는 20세기까지 수학 교육의 중심이었고, ‘유클리드를 공부한다’는 말은 곧 기하학을 공부한다는 뜻이었다.

그 영향은 수학을 훨씬 넘어섰다. 그 확실성에 감탄한 사상가들은 철학·윤리학·물리학을 ‘기하학적 방식으로’ 서술하려 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정의·공리·명제로 쓰였고, 뉴턴의 『프린키피아』도 비슷한 틀을 따른다. 인쇄본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같은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1847년 올리버 번의 판본은 학습자를 돕기 위해 문자 대신 색색의 도형을 썼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이름은 유클리드 기하학, 유클리드 호제법, 소수에 관한 유클리드 정리, 달의 크레이터, 그리고 암흑 우주의 기하를 지도로 그리려고 2023년 발사된 유럽우주국의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에 남아 있다.

[1][3]

심화

‘에우클레이데스’는 누구였나: 증거, 혼동, 가설

에우클레이데스에 대한 가장 이른 확실한 언급은 아폴로니오스 『원뿔곡선론』 1권 서문(기원전 2세기 초)으로, 세 선과 네 선에 관한 자취를 에우클레이데스가 다룬 방식을 비판한다. 아르키메데스와 아폴로니오스는 『원론』의 명제들을 당연하게 전제하므로 이 책이 기원전 3세기에 이미 유통되었음을 시사하지만, 아르키메데스는 5권보다 오래된 비례론을 쓴다. 프로클로스가 연대 추정의 근거로 삼은 아르키메데스 『구와 원기둥에 관하여』 속 에우클레이데스 언급 하나를 두고, 요하네스 옐름슬레우는 후대에 끼워 넣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대가 확실한 저작에서 『원론』을 분명히 인용한 것은 2세기의 갈레노스와 아프로디시아스의 알렉산드로스에 와서야 나타난다.

후대 전승은 혼동을 키웠다. 로마의 일화 편찬자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는 플라톤과 입방체 배적 문제에 관한 이야기에 에우클레이데스의 이름을 넣었고, 중세 비잔틴과 라틴 저술가들은 이 수학자를 한 세기 앞선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철학자 메가라의 에우클레이데스와 뒤섞었다. 1482년 인쇄본 『원론』은 그를 ‘메가라 사람’이라 부른다. 르네상스 학자들, 특히 페트루스 라무스가 이 오류를 밝혀냈다. 중세 아랍어 자료는 그에게 나우크라테스라는 아버지와 티레라는 출생지를 주지만, 역사학자들은 이를 지어낸 것으로 본다.

빈약한 증거 때문에 역사학자 장 이타르는 세 가설을 정리했다. 에우클레이데스가 한 사람의 역사적 저자라는 것,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팀을 이끌었고 그 구성원들이 저작에 참여하며 그의 이름으로 계속 썼다는 것, 또는 20세기 수학자 집단의 필명 ‘니콜라 부르바키’처럼 ‘에우클레이데스’가 집단의 필명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는 첫 가설을 받아들이면서, 그가 선배들에게 크게 기댔고 그의 학파가 텍스트를 다듬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권마다 다른 문체는 그가 바탕으로 삼은 자료로 설명할 수 있다.

[1][5]

심화

텍스트의 복원과 시대착오 없이 읽기

우리가 읽는 『원론』은 복원된 것이다. 여러 세기 동안 모든 그리스어 사본은 4세기 테온의 판본에서 내려왔다. 1808년 프랑수아 페라르가 바티칸 도서관에서 테온 계열이 아닌 사본(Vat. gr. 190, 10세기 필사)을 찾아냈다. J. L. 하이베르의 교감본(1883~1888)은 이를 가장 믿을 만한 증거로 삼으면서 다른 사본으로 보완했고, 토머스 히스의 영어 번역(1908)은 하이베르를 따랐다. 아랍어 번역에는 두 그리스어 계열 모두에 있는 설명적 추가가 많이 빠져 있어, 이것이 더 이르고 간결한 텍스트를 보존하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 문제는 아직 열려 있다.

해석에도 문제가 있다. 2권이 기하학의 옷을 입은 대수 항등식, 곧 ‘기하학적 대수’를 담고 있다는 생각은 20세기 초의 통설이었다. 1970년대 이후 사베타이 운구루 같은 역사학자들은 이를 시대착오라고 비판하며, 그리스의 크기·비·수는 그 자체의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권을 실수론으로, 10권을 현대적 의미의 무리수론으로 읽는 것에도 비슷한 경계가 필요하다.

끝으로 『원론』이 논리적으로 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우클레이데스는 1권 명제 1에서 그린 두 원이 실제로 만난다는 것처럼 그림이 보여 주는 것이나, 순서와 ‘사이’에 관한 밝히지 않은 가정에 자주 기댄다. 19세기 후반 모리츠 파슈가 이런 틈을 지적했고, 다비트 힐베르트의 『기하학의 기초』(1899)가 완전한 공리계를 내놓았다. 알프레트 타르스키도 또 다른 공리계를 제시했으며, 2017년 마이클 비슨 등은 컴퓨터 증명 보조기로 에우클레이데스와 비슷한 공리계에 비추어 1권의 명제들을 검증했다. 최근 일부 학자는 에우클레이데스의 도형 추론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그 나름의 일관된 규칙을 따른다고 본다.

[3][7][8]

핵심 개념

공리적·연역적 방법
명시적으로 밝힌 정의·공준·공통 개념에서 출발해 이후의 모든 진술을 엄밀하게 그것들로부터 증명하는 방법.
증명
측정이나 겉모습에 기대지 않고 어떤 진술이 반드시 참임을 보이는 추론의 사슬.
자와 컴퍼스 작도
에우클레이데스의 공준은 선과 원을 긋는 것만 허용하며, 많은 명제가 이 도구로 하는 작도다.
비례론
통약 불가능한 양도 다룰 수 있는 크기 사이의 비에 관한 5권의 일반 이론. 에우독소스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무한성
유클리드 정리(9권 명제 20): 어떤 소수 목록이든 그 목록에 없는 소수가 항상 있다.
유클리드 호제법
거듭 빼거나 나누어 두 수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절차.
평행선 공준
제5공준. 그 독립성이 밝혀지며 19세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태어났다.

기록

  1. 약 기원전 331년 — 에우클레이데스 출생에 대한 현대의 추정 가운데 하나(기원전 325년 무렵으로 보거나 추정을 삼가는 이도 있다).
  2. 기원전 331년 —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알렉산드리아를 세우다(기원전 331년).
  3. 약 기원전 300년 — 프톨레마이오스 1세 치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며 『원론』을 짓다.
  4. 약 기원전 200년 — 아폴로니오스의 『원뿔곡선론』에 에우클레이데스에 대한 현존 최초의 언급이 나오다(기원전 2세기 초).
  5. 약 100년 — 『원론』 본문이 담긴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인 옥시링쿠스 파피루스 29(서기 75~125년 무렵).
  6. 약 370년 — 알렉산드리아의 테온이 『원론』 판본을 만들다.
  7. 약 450년 — 프로클로스가 『에우클레이데스 원론 제1권 주해』를 쓰다.
  8. 약 800년 — 하룬 알라시드 치하에서 알하자즈 이븐 유수프 이븐 마타르가 『원론』을 아랍어로 옮기다.
  9. 약 1120년 — 애덜러드 오브 바스가 아랍어본 『원론』을 라틴어로 옮기다.
  10. 1482년 — 에르하르트 라트돌트가 베네치아에서 『원론』 첫 인쇄본을 펴내다.
  11. 1607년 — 마테오 리치와 서광계가 1~6권을 한문으로 옮긴 『기하원본』을 펴내다.
  12. 1829년 — 로바쳅스키가 평행선 공준이 성립하지 않는 기하학을 발표하다.

용어 풀이

원론(스토이케이아)
에우클레이데스의 13권짜리 저작. 그리스어로 알파벳 글자처럼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를 뜻한다.
정의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처럼 용어의 뜻을 밝히는 진술.
공준
증명 없이 받아들이는 기본 가정. 에우클레이데스에게는 다섯 개가 있고 주로 작도에 관한 것이다.
공통 개념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 같은 양에 관한 일반적 진리. 오늘날 흔히 공리라 부른다.
명제
작도할 문제나 증명할 정리. 1권에는 48개가 있다.
통약 불가능
정사각형의 한 변과 대각선처럼 공통 단위로 잴 수 없는 두 크기의 관계.
실진법(착출법)
알려진 도형을 점점 작게 채워 넣어 넓이와 부피를 구하는 방법. 미적분의 선구.
플라톤 입체
『원론』 끝에서 작도되는 다섯 정다면체.
비유클리드 기하학
쌍곡기하나 타원기하처럼 평행선 공준을 다른 것으로 바꾼 기하학.
QED
라틴어 quod erat demonstrandum, ‘증명되어야 했던 것’. 에우클레이데스의 증명을 맺는 그리스어 문구를 옮긴 말.

묻고 답하기

에우클레이데스가 기하학을 발명했나요?

아니에요. 이집트인, 바빌로니아인, 그리고 탈레스·키오스의 히포크라테스·테아이테토스·에우독소스 같은 앞선 그리스인들이 이미 많은 기하학을 알았어요. 에우클레이데스는 그것을 하나의 논리 체계로 정리하고 증명을 더했어요.

에우클레이데스의 얼굴을 알 수 있나요?

아니요. 그가 살아 있던 때의 초상은 남아 있지 않아요. 에우클레이데스의 조각상이나 그림은 후대 화가들이 상상한 것이에요.

『원론』은 삼각형과 원만 다루나요?

아니요. 비, 자연수, 소수, 무리수 길이, 입체 도형도 다뤄요.

에우클레이데스가 정말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고 말했나요?

그 말 그대로는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이 이야기는 약 750년 뒤 프로클로스가 처음 전했고, 수학자 메나이크모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이의 아주 비슷한 일화도 있습니다.

제5공준은 왜 그렇게 중요했나요?

다른 공준보다 덜 자명해 보여서 사람들이 2,000년 동안 증명하려 했습니다. 수학자들이 그것을 바꿀 수 있음을 보였을 때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발견되었고, 이는 뒤에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 쓰였습니다.

지금 남은 그리스어 본문이 에우클레이데스가 쓴 그대로인가요?

정확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특히 테온의 판본을 비롯한 후대 판본과, 테온 계열 밖의 사본 하나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하이베르 같은 편집자들이 본문을 복원했고, 무엇이 뒤에 덧붙었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입니다.

에우클레이데스는 한 사람이 아니라 집단이었을 수도 있나요?

그에 관한 증거가 너무 적어 일부 역사학자가 이런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대부분은 그가 앞선 업적에 기대고 제자 학파를 두었을 수 있는 실존 인물이라고 봅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Euclid. Wikipedia
  2. 에우클레이데스. 위키백과
  3. Euclid's Elements. Wikipedia
  4. Parallel postulate. Wikipedia
  5. J. J. O'Connor and E. F. Robertson, Euclid of Alexandria. MacTutor History of Mathematics Archive, University of St Andrews
  6. David E. Joyce, Euclid's Elements (online edition with commentary). Clark University
  7. J. L. Heiberg (ed.), Euclidis Opera omnia. Teubner, Leipzig, 1883–1888
  8. Thomas L. Heath (trans.), The Thirteen Books of Euclid's Element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08
  9. Glenn R. Morrow (trans.), Proclus: A Commentary on the First Book of Euclid's Elemen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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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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