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알콰리즈미

محمد بن موسى الخوارزمي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알흐와리즈미)

약 820–850년 · 바그다드 (아바스 칼리프국)

한 문장으로

알콰리즈미는 9세기 아바스 왕조의 바그다드에서 방정식 푸는 법, 인도 숫자로 계산하는 법, 천문표, 세계 지리에 관한 아랍어 책을 써서 ‘대수학(algebra)’과 ‘알고리즘(algorithm)’이라는 말을 남긴 학자다.

알콰리즈미
이미지: Michel Bakni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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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1,200년 전, 지금의 이라크에 있는 큰 도시 바그다드에 무사의 아들 무함마드라는 사람이 살았어요. 사람들은 그를 알콰리즈미라고 불렀는데, ‘콰리즘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콰리즘은 동쪽 멀리 아랄해 근처에 있는 땅이에요. 그의 생일조차 정확히 모를 만큼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적지만, 그가 쓴 책은 지금도 남아 있어요.

바그다드를 다스리던 칼리프 알마문은 배우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는 그리스·페르시아·인도의 옛 책을 읽고 아랍어로 옮기는 똑똑한 사람들을 모았지요. 알콰리즈미도 그중 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별을 연구하고, 달력을 위한 표를 만들고, 세계 지도에 들어갈 장소 목록을 정리했어요.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은 ‘모르는 수 찾기’ 수수께끼에 관한 책이에요. 이런 문제를 생각해 봐요. “어떤 수를 자기 자신과 곱하고, 거기에 그 수의 열 배를 더했더니 39가 됐어요. 그 수는 무엇일까요?” 알콰리즈미는 답(3)을 찾는 방법을 한 단계씩 보여 주었어요. 정사각형과 직사각형 타일을 붙여 가며 그 방법이 맞다는 것도 그림으로 증명했지요.

그 방법의 한 단계를 ‘알자브르’라고 했는데, ‘다시 붙이다’, ‘되돌려 놓다’라는 뜻이에요. 이 책이 나중에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이 낱말이 ‘앨지브라(algebra)’, 곧 대수학이 되었어요. 오늘날 학생들이 대수를 배울 때마다 알콰리즈미 책에서 나온 말을 쓰고 있는 셈이에요.

그는 인도에서 온 열 개의 숫자로 계산하는 법에 관한 책도 썼어요.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특별한 기호, 곧 0도 들어 있었지요. 유럽 사람들은 이 책을 라틴어로 읽으면서 그의 이름을 ‘알고리트미’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알고리즘’이라는 말이 나왔어요. 컴퓨터가 따르는 명령처럼, 문제를 푸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은 것을 뜻하지요.

한눈에 보기

생애
780년경 ~ 850년경(모두 추정. 알려진 저술은 대부분 813~833년 사이)
출신
이름은 아랄해 남쪽의 콰리즘(오늘날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을 가리킨다. 중세의 한 별칭을 바그다드 근처 쿠트룹불과 연결하는 해석도 있으나 논쟁 중이다
활동지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 칼리프 알마문(재위 813~833)의 후원을 받았고 ‘지혜의 집’과 관련된다
언어
아랍어(페르시아계 또는 콰리즘 출신)
분야
대수학, 산술, 천문학, 삼각법, 지리학, 역법 계산, 역사
주요 저작
『복원과 대비의 계산에 관한 요약서』(대수학, 820년경), 인도 숫자 산술서(825년경, 라틴어본만 전함), 『신드힌드 지즈』(천문표), 『대지의 형상』(지리서, 833년 완성)
그에게서 나온 말
‘대수학(algebra)’은 알자브르에서, ‘알고리즘(algorithm)’과 ‘앨고리즘(algorism)’은 그의 라틴어 이름 알고리트미에서 나왔다

쉬움

알콰리즈미는 누구인가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는 9세기 전반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수학자·천문학자·지리학자다. 당시 바그다드는 북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까지 뻗은 아바스 칼리프국의 수도였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이름에는 세 가지 정보가 담겨 있다. 본인의 이름은 무함마드, 아버지는 무사, 그리고 그 자신이나 집안이 아랄해 남쪽 아무다리야강 하류의 비옥한 땅 콰리즘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네 권의 책으로 유명하다. 첫째는 방정식 푸는 법을 설명한 책으로, 대수학이라는 이름을 낳았다. 둘째는 0을 포함한 인도의 십진 숫자로 계산하는 법을 가르친 책으로, 라틴어 제목이 그의 이름으로 시작해 ‘알고리즘’이라는 말을 남겼다. 셋째는 해·달·행성의 위치를 예측하는 천문표이고, 넷째는 2천 곳이 넘는 장소의 위도와 경도를 적은 지리서다.

이 책들은 전문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알콰리즈미는 대수학 책을 쓴 이유를 계산에서 “가장 쉽고 유용한 것”, 곧 사람들이 상속·유증·재산 분할·소송·거래에 늘 필요로 하는 것을 설명하려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실용적이고 명료한 문체 덕분에 그의 책은 여러 세기 동안 베껴지고 연구되고 번역되었다.

[1][2][7]

쉬움

책과 번역가의 도시

바그다드는 762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만수르가 티그리스강 가에 새로 세운 둥근 수도였다. 아라비아·페르시아·중앙아시아·인도, 그리고 옛 그리스어권에서 상인과 학자, 관리들이 모여들었다. 이슬람 세계에 막 퍼진 종이 덕분에 책을 만드는 비용도 전보다 훨씬 싸졌다.

아바스 왕조의 통치자들은 그리스어·시리아어·페르시아어·산스크리트어로 된 과학·철학 문헌을 아랍어로 옮기는 일을 후원했다. 770년대 초에는 인도의 천문서가 알만수르의 궁정에 전해져 번역되었다. 과학에 개인적 관심이 깊었던 칼리프 알마문(813~833) 시대에는 번역과 연구가 대규모로 지원되었고, 아랍어는 에스파냐에서 중앙아시아까지 과학의 공용어가 되었다.

알콰리즈미는 전통적으로 바그다드의 궁정 도서관이자 학문의 중심이던 ‘지혜의 집(바이트 알히크마)’과 연결된다. 후대 기록은 그가 그곳의 천문학자였고 도서관을 이끌었다고까지 전한다. 그가 대수학 책과 천문표를 모두 알마문에게 바쳤다는 사실은 그가 칼리프의 궁정 가까이에서 일했음을 보여 준다.

[4][1][2]

쉬움

그의 삶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알콰리즈미의 삶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매우 적다. 그를 직접 알던 사람이 쓴 전기는 남아 있지 않다. 주요 정보는 10세기 말 바그다드의 책방 주인 이븐 알나딤이 엮은 아랍어 도서 목록 『피흐리스트』의 짧은 항목, 역사가 알타바리의 몇몇 언급, 그리고 그 자신이 쓴 책의 서문에서 나온다.

출생은 흔히 780년경, 사망은 850년경으로 적지만 모두 추정치다. 연대를 알 수 있는 저술은 대부분 알마문의 재위기인 813~833년에 이루어졌다. 뒤의 칼리프 알와시크(재위 842~847) 때 캅카스 북쪽의 하자르인에게 가는 사절단에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그는 페르시아계 또는 콰리즘 출신이었지만 아랍어로 글을 썼다. 대수학 책의 서문은 신과 예언자를 찬양하는 이슬람식 문구로 시작하므로, 그가 자신을 무슬림으로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그의 스승·가족·일상에 관해 흔히 이야기되는 내용 가운데 상당수는 초기 사료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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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알자브르와 알무카발라』

그의 대표작은 『복원과 대비의 계산에 관한 요약서(알키타브 알무흐타사르 피 히사브 알자브르 왈무카발라)』로, 820년경 알마문의 권유로 바그다드에서 쓰였다. 방정식 풀이를 개별 문제의 모음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주제로 다룬, 현존하는 가장 이른 책이다.

알콰리즈미는 세 종류의 양을 다루었다. ‘수’(오늘날의 상수), ‘근’(미지수, ‘샤이’ 곧 ‘것’이라고도 함), ‘제곱’(미지수를 자기 자신과 곱한 것)이다. 그는 양의 값만 쓰는 일차·이차 문제가 모두 여섯 가지 표준형 가운데 하나로 바뀔 수 있음을 보였다. 제곱이 근과 같다, 제곱이 수와 같다, 근이 수와 같다, 제곱과 근의 합이 수와 같다, 제곱과 수의 합이 근과 같다, 근과 수의 합이 제곱과 같다. 그리고 각 유형마다 답을 구하는 규칙을 제시했다.

문제를 표준형으로 만드는 조작은 두 가지다. ‘알자브르(복원)’는 빼진 양을 양쪽에 더해 없앤다. 오늘날 기호로 쓰면 x² = 40x − 4x²가 5x² = 40x가 된다. ‘알무카발라(대비)’는 양쪽에서 같은 양을 덜어 낸다. x² + 14 = x + 5가 x² + 9 = x가 되는 식이다. 이 가운데 첫 낱말이 라틴어 algebra가 되어 학문 전체의 이름이 되었다.

중요한 점은 알콰리즈미가 기호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말로 풀어 썼다. 유명한 예제는 “어떤 수의 제곱에 그 수의 열 배를 더하면 서른아홉이 된다”는 문제인데, 그는 이를 ‘완전제곱 만들기’로 푼다. 이어 기하학 그림으로 규칙을 증명한다. 정사각형 둘레에 직사각형을 붙이고 모서리에 작은 정사각형을 채워 더 큰 정사각형을 완성하면, 그림에서 답 3을 읽어 낼 수 있다.

책은 식을 곱하고 다루는 규칙, 넓이와 부피를 재는 부분(원주율의 근삿값으로 3 1/7과 3.1416 등 세 가지를 제시), 그리고 책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마지막 부분으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재산을 여러 상속인에게 정해진 몫으로 나누는 이슬람 상속법에 산술과 간단한 방정식을 적용한다.

[3][1][2]

중급

인도 숫자와 ‘알고리즘’의 탄생

알콰리즈미는 825년경, 아홉 개의 인도 숫자와 0을 나타내는 기호로 자릿값 계산을 하는 법을 설명한 책도 썼다. 오늘날 ‘인도-아라비아 숫자’라 부르는 체계다. 수 쓰기, 덧셈, 뺄셈, 두 배와 절반, 곱셈과 나눗셈, 그리고 아마 제곱근까지 다루었다. 계산은 고운 모래를 깐 판인 ‘타흐트’(먼지판) 위에서 했는데, 숫자를 쓰고 금방 지울 수 있었다.

아랍어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12세기 라틴어 개작본들이며, 어느 것도 원문을 그대로 옮긴 번역은 아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알고리즈미가 말하기를(Dixit Algorizmi)”로 시작하는 케임브리지 소장 사본으로, 1857년 『알고리트미 데 누메로 인도룸(인도 숫자에 관한 알콰리즈미의 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리베르 이사고가룸 알코리스미』, 『리베르 알코아리스미 데 프락티카 아리스메티체』 같은 다른 라틴어 책들도 그의 방법을 발전시켰다.

라틴어에서 그의 이름은 알고리스무스, 알고리트미가 되었다. ‘앨고리즘(algorism)’은 주판을 쓰던 옛 방식과 달리 숫자를 적어 계산하는 새 방법을 뜻하게 되었고, 영어에는 이미 13세기 초에 나타난다. 뒤에 그리스어 아리트모스(‘수’)의 영향으로 algorithmus로 바뀌었고, 영어 algorithm은 16세기 말에 기록된다. 오늘날 이 말은 특히 컴퓨터가 수행하는, 정확한 단계별 절차 전반을 가리킨다.

‘숫자’를 뜻하는 에스파냐어 과리스모(guarismo)와 포르투갈어 알가리스무(algarismo)도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한 학자의 이름이 중앙아시아에서 바그다드로, 바그다드에서 에스파냐와 라틴 유럽으로, 마침내 현대 컴퓨터의 어휘로 여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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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하늘의 표: 『신드힌드 지즈』

‘지즈’는 천문 편람이다. 해·달·행성의 위치, 일식과 월식의 시각, 초승달이 보이는 때, 역법상의 날짜를 계산하는 표와 설명을 담는다. 알콰리즈미의 『신드힌드 지즈』는 이런 종류의 아랍어 저작 가운데 가장 이른 것 중 하나다. 전하는 설명에 따르면 약 37개 장과 116개의 표로 이루어졌고, 사인표도 들어 있었다.

‘신드힌드’라는 이름은 천문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싯단타’에서 왔다. 그의 표에 나오는 행성의 평균 운동은 인도 천문학, 특히 수십 년 전 아바스 궁정에서 번역된 브라마굽타의 『브라마스푸타싯단타』에서 비롯했다. 그는 페르시아의 자료와 일부 프톨레마이오스 계통의 자료도 썼다. 이 혼합은 따로 발전한 전통들을 바그다드 학자들이 어떻게 한데 모았는지 보여 준다.

아랍어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1000년 무렵 알안달루스의 천문학자 마슬라마 알마즈리티가 개정한 판이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어 남았는데, 번역자는 바스의 애덜러드로 보이며 1126년이라는 연대가 이 번역과 관련된다. 라틴어본 사본은 네 점이 알려져 있다. 알콰리즈미는 아스트롤라베와 해시계, 메카 방향 찾기, 그리고 19년 주기를 쓰는 유대력에 관한 글도 남겼다.

[1][6][2]

중급

『대지의 형상』

알콰리즈미의 『대지의 형상에 관한 책(키타브 수라트 알아르드)』은 833년에 완성되었다. 2세기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철저히 다시 짠 책이다. 짧은 서론 뒤에 도시·산·바다·섬·강 등 2,402곳의 좌표를 적었는데, 위도대인 ‘기후대’별로 묶고 각 기후대 안에서는 경도 순으로 배열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를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가 경도 약 63도로 크게 과대평가한 지중해의 길이를 50도 가까이로 고쳤고, 대서양과 인도양을 닫힌 바다가 아니라 열린 바다로 그렸다. 이슬람 세계·아프리카·아시아에 관한 자료는 대체로 프톨레마이오스보다 나았지만, 유럽은 옛 자료에 더 의존했다.

아랍어 사본은 스트라스부르에 한 점만 남아 있고 세계 지도는 없다. 20세기에 후베르트 다우니히트가 좌표를 모눈종이에 옮겨 사라진 지도에 있었을 해안선·강·도시를 복원했다. 알콰리즈미는 지구의 크기를 재고 세계 지도를 만드는 알마문의 사업에도 참여했다고 전한다.

[1][2]

중급

바그다드에서 톨레도로, 그리고 그 너머

이슬람 세계에서 알콰리즈미의 대수학은 긴 전통을 열었다. 이집트의 아부 카밀 같은 후대 수학자들은 같은 제목의 책을 써서 그의 방법을 넓혔고, 몇 세기 뒤 오마르 하이얌이 삼차방정식을 기하학적으로 푼 저작도 이 흐름에 속한다. 그의 본초 자오선과 좌표는 많은 후대 무슬림 지리학자들이 사용했다.

12세기에는 에스파냐 등지의 학자들이 아랍 과학을 라틴어로 옮겼다. 체스터의 로버트가 1145년 세고비아에서 대수학 책을 번역했고, 크레모나의 제라르도도 다른 번역본을 만들었다. 이 책은 16세기까지 유럽 대학의 주요 수학 교재였다. 산술서들은 유럽에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퍼뜨렸고, 피사의 레오나르도(피보나치) 같은 후대 저자들이 이 전통 위에서 작업했다.

1831년 프레데릭 로젠이 옥스퍼드에 있는 유일한 아랍어 사본을 바탕으로 대수학 책의 첫 영어 번역을 펴냈다. 달 뒷면의 크레이터 하나와 소행성 두 개에 그의 이름이 붙었고, 이란·우즈베키스탄·아랍 세계 곳곳에서 그를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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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이름·출신·종교: 빈약한 증거 읽기

알타바리의 연대기는 그의 이름을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 알마주시 알쿠트룹불리’로 적는다. 과학사가 G. J. 투머는 ‘알마주시’(마기, 곧 조로아스터교도)를 조로아스터교 조상의 흔적으로, ‘알쿠트룹불리’를 바그다드 근처 쿠트룹불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대수학 책 서문이 경건한 무슬림의 글이므로, 투머는 이 별칭이 그의 조상이나 젊은 시절을 가리킬 수 있다고 했다.

로시디 라셰드는 이 해석을 거부했다. 원래 문장은 ‘알콰리즈미와 알마주시 알쿠트룹불리’라는 두 사람을 가리켰는데, 초기 사본에서 아랍어 접속사 ‘와(그리고)’가 빠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 별칭들은 알콰리즈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데이비드 A. 킹 같은 학자는 쿠트룹불과의 연관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논쟁은 그의 전기가 한 사본 전통의 해석에 얼마나 크게 좌우되는지를 보여 준다.

D. M. 던롭은 알콰리즈미가 바그다드의 뛰어난 과학자 형제 ‘바누 무사’의 맏이 무함마드 이븐 무사 이븐 샤키르와 같은 사람일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이 동일시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장 안전한 결론은, 우리에게는 소수의 후대 기록과 저자 자신의 서문이 있을 뿐이며 대중적 서술은 그 빈틈을 흔히 상상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1][2]

심화

대수학은 얼마나 독창적이었나: 그리스·바빌로니아·인도·히브리 뿌리

알콰리즈미 대수학의 원천과 독창성을 두고 역사가들의 견해는 크게 갈린다. 바빌로니아 서기들은 2천 년 전에 이미 이차 문제를 풀었고,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토스는 『산술』을 썼으며, 브라마굽타 같은 인도 수학자들은 이차방정식의 규칙을 알고 음수와 약식 표기를 썼다. 반면 알콰리즈미는 모든 것을 말로 썼고 음수를 피했다.

투머와 라셰드 등은 기하학적 증명이 유클리드 『원론』, 특히 제2권에 대한 지식을 보여 준다고 본다. 『원론』은 바그다드의 동료 알하자즈가 번역한 상태였다. 솔로몬 간츠는 반대로, 이 책에는 정의·공리·유클리드식 증명이 없고 그 기하학은 실용적 측량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간츠와 뒤의 캐런 파셜은 히브리어 기하학서 『미슈나트 하미돗』과의 유사성을 지적했는데, 그 책의 연대 자체도 논쟁 중이다.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도 폭이 넓다. 간츠는 그가 대수를 “초보적인 형태로, 그 자체를 위해” 가르쳤기 때문에 디오판토스보다 ‘대수학의 아버지’라는 칭호에 더 걸맞다고 했다. 라셰드는 방정식 자체를 빠짐없이 분류해 연구 대상으로 삼은 새로움을 강조했다. 칼 보이어는 그의 작업이 디오판토스나 브라마굽타보다 초보적이고 ‘수사적’이지만, 정신은 오늘날의 초등 대수에 더 가깝다고 보았다. 반대로 투머는 그 수학 자체는 평범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막대한 영향력은 인정했다.

이 논쟁은 ‘기법’과 ‘체계’를 나누어 보면 이해하기 쉽다. 개별 기법 상당수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새로웠던 것은 표준형·일반 조작·증명으로 이루어진 체계적이고 가르칠 수 있는 틀이었고, 그것이 과학의 국제어가 된 언어로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수학사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어떤 한 가지 발견보다 이 틀의 영향력에서 나온다.

[2][1][3]

심화

사본과 번역, 그리고 ‘지혜의 집’ 문제

알콰리즈미의 저작은 매우 고르지 않게 전한다. 대수학 책은 로젠이 쓴 옥스퍼드의 유일한 아랍어 사본과 중세 라틴어본(그중 하나는 케임브리지 소장)으로 남았다. 산술서는 사라진 원본과 차이가 나는 라틴어 개작본으로만 전하므로, 그가 직접 쓴 내용을 복원하려면 여러 라틴어 텍스트를 비교해야 한다. 『지즈』는 알마즈리티의 개정판 라틴어본으로만, 지리서는 스트라스부르의 아랍어 사본 한 점으로만 전한다. 해시계·아스트롤라베·키블라(메카 방향)에 관한 짧은 글들은 베를린·이스탄불·타슈켄트·카이로·파리의 사본에 있는데, 일부는 저자 귀속이 불확실하다.

연대기인 『역사서(키타브 알타리흐)』는 사라졌지만 11세기 시리아 교회의 주교 니시비스의 엘리야가 인용했다. 동시대인들이 그를 수학자일 뿐 아니라 역사가이자 연대학자로도 알았음을 일깨워 준다.

‘지혜의 집’의 역할도 조심해서 보아야 한다. 19~20세기 저자들은 흔히 이를 연구 부서를 갖춘 거대한 아카데미나 대학으로 묘사했다. 최근 일부 역사가들은 초기 사료가 말하는 것은 궁정 도서관이자 학자들이 일하던 곳이라는 좀 더 소박한 모습이며, 웅장한 그림은 후대의 투영이라고 본다. 알콰리즈미가 칼리프의 궁정과 가까웠다는 점은 헌사로 분명하지만, 정확한 제도적 환경은 덜 확실하다.

[1][4][2][8]

핵심 개념

알자브르(복원)
빼진 양을 방정식 양쪽에 더해 없애는 조작. ‘대수학(algebra)’이라는 말의 기원이다.
알무카발라(대비)
양쪽에 있는 같은 종류의 양을 상쇄해 각 종류가 한 번씩만 나타나게 하는 조작.
여섯 가지 표준형
양의 항으로 된 일차·이차 문제는 모두 제곱·근·수로 이루어진 여섯 유형 가운데 하나로 바꿀 수 있다.
기하학적 증명
직사각형과 작은 정사각형으로 큰 정사각형을 완성해 방정식 풀이 규칙을 정당화한다.
자릿값 십진 숫자
아홉 개의 숫자와 0을 쓰고 위치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체계로, 주판 없이 적어서 계산할 수 있다.
전통의 종합
인도의 천문학과 숫자, 그리스의 지리학과 기하학, 페르시아의 학문을 아랍어로 한데 모았다.
실용적 목적
전문가만이 아니라 거래·측량·상속·역법을 위해 쓴 수학.

기록

  1. 762년 — 칼리프 알만수르가 바그다드를 아바스 왕조의 새 수도로 세우다.
  2. 약 771년 — 인도의 천문서가 알만수르의 궁정에 전해져 『신드힌드』로 아랍어 번역되다.
  3. 약 780년 — 알콰리즈미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4. 813년 — 알마문이 칼리프가 되어 바그다드의 번역과 과학을 후원하다.
  5. 약 820년 — 알콰리즈미가 대수학 책을 써서 알마문에게 바치다.
  6. 약 825년 — 인도 숫자로 계산하는 법에 관한 책을 쓰다.
  7. 833년 — 지리서 『대지의 형상』이 완성되다. 알마문이 죽다.
  8. 약 850년 — 알콰리즈미가 이 무렵 세상을 떠나다.
  9. 약 1000년 — 알안달루스의 마슬라마 알마즈리티가 그의 천문표를 개정하다.
  10. 1126년 — 개정 천문표의 라틴어 번역이 바스의 애덜러드와 관련되어 전하다.
  11. 1145년 — 체스터의 로버트가 세고비아에서 대수학 책을 라틴어로 번역하다.
  12. 1831년 — 프레데릭 로젠이 대수학 책의 아랍어 원문과 영어 번역을 펴내다.

용어 풀이

아바스 칼리프국
750년부터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다스린 이슬람 왕조. 초기 몇 세기에 과학이 크게 꽃피었다.
칼리프
예언자 무함마드의 계승자로 여겨진 이슬람 공동체 통치자의 칭호.
지혜의 집(바이트 알히크마)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의 궁정 도서관이자 학문의 중심지. 번역과 과학 활동과 연관된다.
콰리즘
아랄해 남쪽 아무다리야강 하류 지역. 오늘날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 걸쳐 있다.
근(지드르)·것(샤이)
알콰리즈미가 방정식의 미지수를 가리킨 말.
완전제곱 만들기
한쪽이 완전제곱식이 되도록 양을 더해 이차방정식을 푸는 방법.
지즈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표와 규칙을 모은 천문 편람.
싯단타
천문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신드힌드’의 어원이다.
앨고리즘(algorism)
인도-아라비아 숫자로 계산하는 법을 뜻한 중세 용어. 알콰리즈미의 라틴어 이름에서 왔다.
먼지판(타흐트)
모래나 먼지를 깔아 숫자를 쓰고 지우며 계산하던 판.

묻고 답하기

알콰리즈미가 대수학을 발명했나요?

모든 기법을 만든 것은 아니에요. 바빌로니아·그리스·인도 수학자들도 비슷한 문제를 먼저 풀었어요. 하지만 그의 책은 방정식을 체계적으로 하나의 주제로 다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저작이고, 이 분야에 이름을 주었어요.

0이나 지금 쓰는 숫자를 그가 만들었나요?

아니에요. 0을 포함한 십진 자릿값 체계는 인도에서 발전했어요. 알콰리즈미는 이를 설명하는 영향력 있는 책을 써서 이슬람 세계와, 라틴어 번역을 통해 유럽에 퍼뜨리는 데 이바지했어요.

왜 컴퓨터 ‘알고리즘’이 그의 이름을 딴 건가요?

그의 산술서 라틴어 번역은 “알고리즈미가 말하기를”로 시작해요. 라틴어화된 그의 이름이 숫자로 계산하는 법을 뜻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단계별 방법 전반을 가리키게 되었어요.

아랍인이었나요, 페르시아인이었나요?

아랍어로 글을 썼지만 이름이 중앙아시아의 콰리즘과 이어져 있어, 보통 페르시아계 또는 콰리즘 출신으로 설명해요.

x와 y를 썼나요?

아니요. 수까지 모두 말로 썼어요. 미지수를 문자로 쓰는 방식은 여러 세기 뒤 유럽에서 자리 잡았어요.

알콰리즈미 전기는 얼마나 믿을 만한가?

이븐 알나딤·알타바리 같은 소수의 후대 기록과 그의 서문에 기댄다. ‘알마주시’, ‘알쿠트룹불리’ 같은 핵심 세부가 논쟁 중이어서 확실한 사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의 대수학이 유럽에서 쓰였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체스터의 로버트와 크레모나의 제라르도가 만든 12세기 라틴어 번역이 남아 있고, 이 책은 16세기까지 유럽 대학에서 연구되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Al-Khwarizmi. Wikipedia
  2. J. J. O'Connor and E. F. Robertson, Abu Ja'far Muhammad ibn Musa Al-Khwarizmi. MacTutor History of Mathematics Archive, University of St Andrews
  3. Al-Jabr. Wikipedia
  4. House of Wisdom. Wikipedia
  5. Algorithm. Wikipedia
  6. Zij as-Sindhind. Wikipedia
  7. 콰리즈미. 위키백과(한국어)
  8. Frederic Rosen (ed. and trans.), The Algebra of Mohammed ben Musa. Oriental Translation Fund, London, 1831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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