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아리아바타

आर्यभट (Āryabhaṭa)

약 499–550년 · 쿠수마푸라 (굽타 제국)

한 문장으로

아리아바타는 499년 무렵 겨우 스물세 살의 나이에, 매우 정확한 원주율 값과 사인표, 그리고 지구가 스스로 돈다는 대담한 생각을 담은 짧은 운문 책을 쓴 인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다.

아리아바타
이미지: Unknown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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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1,500년 전, 오늘날 파트나 근처에 있던 인도의 큰 도시 쿠수마푸라에 숫자와 별을 무척 좋아하는 아리아바타라는 젊은이가 살았다. 그는 스물세 살 때 수학과 천문학에 관한 책을 썼다. 책 전체가 시처럼 짧은 구절 121개뿐이어서 학생들이 통째로 외울 수 있었다.

그 구절들에는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법, 아주 큰 수를 다루는 법, 나머지에 관한 까다로운 퍼즐을 푸는 법이 담겨 있다. 원의 둘레가 지름보다 몇 배 긴지를 나타내는 수, 곧 원주율도 나온다. 그가 내놓은 값 3.1416은 참값과 아주 가깝다.

아리아바타는 놀라운 말도 했다. 별들이 밤마다 하늘을 빙빙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팽이처럼 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배에 탄 사람에 빗댔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 강가의 나무들이 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때 많은 사람은 악마가 해나 달을 삼켜서 일식과 월식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아리아바타는 달이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면 월식이,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아리아바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그림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인도는 1975년 첫 인공위성에 그의 이름을 붙였고, 달에도 그의 이름을 딴 충돌구가 있다.

한눈에 보기

생애
476년 출생(칼리 유가 3600년, 곧 499년에 스물세 살이었다는 본인의 기록으로 계산). 사망 연도는 알 수 없음
활동지
스스로 쿠수마푸라 사람이라 했으며, 이곳은 파탈리푸트라(오늘날 비하르주 파트나)로 비정된다. 한 주석가는 그를 ‘아슈마카 사람’이라 불렀고, 다른 지역설도 있다
시대
굽타 시대 후기, 인도 수학·천문학의 고전기
대표 저작
『아리아바티야』: 수학, 시간 계산, 천구를 다룬 네 장 121개 산스크리트 게송
잃어버린 저작
하루를 자정부터 세는 천문 체계. 후대 저자들을 통해서만 알려짐
업적
π ≈ 3.1416, 사인표, 부정방정식 풀이법 쿠타카, 지구의 자전, 그림자로 설명한 일식·월식
유산
아리아 학파(아리아파크샤)의 시조. 인도 역법, 이슬람 천문학, 영어 낱말 ‘sine’에 영향

쉬움

아리아바타는 누구인가

아리아바타는 같은 이름의 후대 천문학자와 구별하려고 흔히 ‘아리아바타 1세’라고도 부른다. 자신의 저작이 온전히 전하는 인도 수학자·천문학자 가운데 가장 이른 사람이다. 그가 쓴 『아리아바티야』는 산스크리트 운문으로 된 간결한 논서로, 천 년 넘게 인도 천문학의 모습을 빚었다.

그의 생애에 관해 아는 것은 거의 모두 그의 책 몇 줄과 후대 주석가들의 언급에서 나온다. 셋째 장에서 그는 인도 우주론의 현재 시대인 칼리 유가가 3,600년 지났을 때 자신이 스물세 살이었다고 말한다. 그해는 499년에 해당하므로 그는 476년에 태어난 셈이다. 어떤 학자는 499년을 책을 쓴 해로 보고, 다른 학자는 그가 고른 천문학적 기준점일 뿐이라고 본다.

로마자로는 ‘Aryabhata’가 바른 표기이며, 흔히 보이는 ‘Aryabhatta’는 잘못된 표기다. 브라마굽타 같은 후대 천문학자들이 그의 이름을 여러 번 들었고, 산스크리트 운율에도 이 표기가 맞는다.

아리아바타의 초상은 전하지 않는다. 푸네의 대학간 천문학·천체물리학 센터(IUCAA)에 있는 조각상처럼 현대에 만든 조각과 그림은 상상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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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그가 살았던 곳과 때

아리아바타가 활동한 시기는 흔히 굽타 시대라 불린다. 굽타 왕조가 마가다(오늘날 비하르) 지방을 중심으로 북인도 대부분을 다스리던 때로, 산스크리트 문학, 조각, 사원 건축, 과학 저술로 이름난 시대다. 갠지스강가의 옛 제국 수도 파탈리푸트라는 학문과 교역의 큰 중심지였다.

『아리아바티야』에서 그는 쿠수마푸라에서 존중받는 지식을 풀어 놓는다고 말한다. 힌두와 불교 전통, 그리고 7세기 주석가 바스카라 1세는 쿠수마푸라를 파탈리푸트라로 본다. 후대의 한 게송은 그를 쿠수마푸라에 있던 한 기관의 우두머리(쿨라파)라고 부른다. 큰 사원 날란다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날란다를 이끌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의 저작에는 그런 증거가 없어서 대부분의 역사가는 추측으로 여긴다.

태어난 곳은 더 불확실하다. 바스카라 1세는 그를 ‘아슈마카에 속한 사람’(아슈마키야)이라 부르는데, 아슈마카는 대개 나르마다강과 고다바리강 사이의 데칸 지방으로 본다. 그의 저작에 대한 후대 주석이 남쪽 끝 케랄라에서 많이 나왔다는 점을 들어 케랄라 출신설을 펴는 사람도 있고, 파탈리푸트라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증거만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비하르 지방에는 그가 파트나 남쪽 타레가나의 태양 사원에 천문대를 세웠다는 전승도 있다. 이 역시 기록된 역사라기보다 후대의 전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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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아리아바티야』: 게송 121개에 담은 학문 전체

『아리아바티야』는 놀랄 만큼 짧다. 네 장(파다)으로 되어 있다. 첫째 장 「기티카 파다」는 13게송으로, 기원(祈願), 음절로 수를 적는 기발한 체계, 그리고 432만 년의 대주기 동안 행성이 도는 횟수와 한 게송에 압축한 사인표를 비롯한 천문 상수표를 담았다.

둘째 장 「가니타 파다」는 33게송의 수학이다. 제곱과 세제곱, 그 제곱근과 세제곱근, 넓이와 부피, 원과 삼각형의 성질, 해시계처럼 쓰는 막대(그노몬)의 그림자, 등차수열, 이자, 방정식 풀이법이 나온다. 셋째 장 「칼라크리야 파다」는 25게송으로 시간 단위와 행성의 운동을, 넷째 장 「골라 파다」는 50게송으로 천구, 지구의 모양, 낮과 밤, 일식과 월식을 다룬다.

이 책은 인도 전문 문헌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 쓰였다. 게송 하나하나가 기억을 돕는 장치여서, 규칙 하나를 몇 마디에 담아 학생이 외우고 스승이 풀어 주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아리아바티야』는 늘 주석과 함께 읽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석은 629년에 쓴 바스카라 1세의 것이다.

아리아바타는 적어도 한 편의 저작을 더 남겼다. 하루가 해돋이가 아니라 자정에 시작하는 천문 체계다. 이 책은 사라졌지만 바라하미히라, 브라마굽타, 바스카라 1세 같은 후대 천문학자들이 인용하거나 설명했으며, 그노몬과 물시계 같은 기구에 관한 서술도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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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수학: 원주율, 사인, ‘분쇄법’

「가니타 파다」에서 가장 유명한 게송은 원둘레를 구하는 규칙이다. 옮기면 이렇다. “100에 4를 더하고 8을 곱한 뒤 62,000을 더하라. 이것이 지름 20,000인 원의 둘레에 가까운 값이다.” 62,832를 20,000으로 나누면 π ≈ 3.1416으로,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맞다. 아리아바타는 ‘다가가는’, ‘가까운’이라는 뜻의 ‘아산나’라는 낱말을 썼는데, 어떤 역사가는 이를 그 값이 근삿값으로만 구해질 수 있음을 알았다는 표시로 읽는다.

아리아바타는 그리스 천문학자들이 쓴 현(弦) 전체 대신 원의 반현(半弦)을 다루었다. ‘아르다지야’ 또는 줄여서 ‘지야’라 부른 이 반현이 사실상 오늘날의 사인이다. 그의 사인표는 사분원을 3° 45′ 간격으로 나눈 24개 각의 값을 주며, 이웃한 값의 차이로 표를 계산하는 방법도 설명한다. 이 낱말이 걸어온 길은 놀랍다. 산스크리트어 ‘지야’는 아랍어 ‘지바’가 되었고, 이것이 뒤에 ‘자이브’(주름, 주머니)로 읽혀 라틴어 ‘시누스’로 번역되었으며, 여기서 영어 ‘사인(sine)’이 나왔다.

또 하나의 중요한 업적은 ax − by = c 같은 방정식의 정수 해를 구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정식을 부정방정식 또는 일차 디오판토스 방정식이라 한다. 인도 수학자들은 이 기법을 ‘쿠타카’, 곧 ‘분쇄법’이라 불렀다. 유클리드 호제법처럼 수를 한 단계씩 더 작은 수로 부수어 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여러 주기가 언제 다시 맞아떨어지는지 알아야 하는 천문학에서 중요했다. 바스카라 1세와 후대 수학자들이 이 방법을 다듬었다.

이 책에는 등차수열의 합, 1부터 n까지 수의 제곱과 세제곱의 합, 넓이와 부피 공식, 제곱근과 세제곱근을 구하는 방법도 나온다. 이런 개평법은 열 개의 숫자로 이루어진 자리값 체계 안에서만 작동한다. 아리아바타는 숫자 자체를 적지 않고 음절이 수를 나타내는 독자적인 체계를 썼는데, 덕분에 긴 수도 운문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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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천문학: 도는 지구와 일식·월식의 원인

아리아바타의 가장 대담한 주장은 지구에 관한 것이다. 첫째 장에서 그는 대주기 동안 지구가 자전하는 횟수를 제시하고, 「골라 파다」에서는 별들의 하루 운동을 비유로 설명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배에 탄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강가의 사물을 뒤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듯, 랑카(적도 위의 기준점)에 있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별들이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당시 인도와 다른 지역의 천문학자 대부분은 지구가 고정되어 있고 하늘이 그 둘레를 돈다고 믿었다.

이 생각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브라마굽타를 비롯한 후대 인도 천문학자들은 이를 거부했고, 어떤 주석가들은 하늘이 움직이는 것으로 게송의 문구를 고치기까지 했다. 몇 세기 뒤 페르시아 학자 알비루니는 아리아바타의 추종자들이 지구가 자전한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아리아바타는 일식과 월식도 물리적으로 분명하게 설명했다. 그는 달과 행성이 햇빛을 반사해 빛난다고 했고,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들어가면 월식이,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이 일어난다고 했다. 민간에서는 해나 달을 삼키는 악마 라후를 일식과 월식의 원인으로 여겼다. 아리아바타의 게송은 지구 그림자의 크기와 해나 달이 가려질 부분을 계산한다.

그의 수치는 놀라울 만큼 정밀했다. 별을 기준으로 지구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한 그의 값은 23시간 56분 약 4초에 해당해 현대 값과 매우 가깝다. 그가 제시한 항성년의 길이는 약 365일 6시간 12분으로, 현대 값보다 몇 분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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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시간, 주기, 행성 모형

인도 천문학은 역법, 의례와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사제와 점성가는 축제와 길일, ‘티티’라 부르는 음력 날짜를 정하려고 해·달·행성의 위치를 알아야 했다. 아리아바타의 「칼라크리야 파다」는 어느 날이든 행성의 평균 위치를 계산하는 법, 음력과 양력을 맞추려고 윤달을 넣는 법, 요일에 이름을 붙이는 법을 알려 준다.

앞선 인도 우주론은 시간을 거대한 시대들로 나누었다. 아리아바타는 432만 년의 대주기는 유지했지만, 전통 푸라나 우주론의 길이가 서로 다른 네 시대 대신 똑같은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전통에서 벗어난 이 점은 브라마굽타가 그를 날카롭게 비판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아리아바타의 행성 모형은 지구 중심설이다. 해, 달, 행성이 지구 둘레를 돈다. 행성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재현하려고 각 행성에 느린 주전원(만다)과 빠른 주전원(시그라) 두 개를 준다. 지구에서 가까운 순서로 달, 수성, 금성, 해, 화성, 목성, 토성이 있고 그 바깥에 별들이 있다. 비슷한 모형이 같은 시기 다른 인도 문헌에도 나오며, 많은 역사가는 프톨레마이오스 이전 그리스 천문학의 요소가 남아 있다고 본다.

『아리아바티야』는 칼리 유가가 시작된 기원전 3102년에 모든 행성이 한 줄로 늘어섰다고 보고 시간 계산을 시작한다. 다른 인도 체계와도 공유한 이 기점은 행성 위치를 계산하는 고정된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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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계승자, 비판자, 주석가

아리아바타는 뒤에 ‘아리아바타 학파’(아리아파크샤)라 불린, 인도 천문학의 주요 전통 가운데 하나를 열었다. 약 한 세기 뒤의 바스카라 1세는 629년 자세한 주석을 쓰면서 그를 수학·운동학·구면학이라는 바다의 먼 기슭에 닿은 스승이라고 칭송했다. 628년에 저술한 브라마굽타는 그의 생각을 여럿 비판하면서도 길게 논했는데, 이는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준다.

『아리아바티야』는 특히 남인도에서 중요했다. 케랄라의 천문학자와 수학자들은 긴 주석의 계보를 이어 갔고, 그 정점에 1500년 무렵 주석을 쓴 닐라칸타 소마야지가 있다. 무한급수 연구로 유명한 케랄라 학파는 스스로 아리아바타의 전통을 잇는다고 여겼다.

인도 전역의 역법 제작자들은 전통 역서인 ‘판창가’를 만들 때 아리아바타 계통의 계산법을 썼다. 음절로 수를 적는 그의 방식은 남인도 천문 문헌에서 널리 본떠졌다.

10세기 무렵 『마하싯단타』를 쓴 후대 천문학자는 ‘아리아바타 2세’로 불린다. 『아리아바티야』의 저자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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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인도 밖의 아리아바타

8세기에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 궁정 학자들이 산스크리트 문헌을 아랍어로 옮기면서 인도 천문 저작이 서쪽으로 전해졌다. 이 번역들을 통해 인도의 사인표와 행성 위치 계산법이 이슬람 천문학에 들어갔고, 뒤에 유럽으로 이어졌다. 다만 아리아바타 자신의 생각이 어떤 경로로 전해졌는지는 늘 분명하지는 않으며, 아랍 자료는 그의 이름보다 인도 천문학 전반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11세기에 인도에 관한 유명한 책을 쓴 알비루니는 아리아바타와 그 추종자들을 알고 있었고, 지구가 자전한다는 그들의 견해를 논했다. 산스크리트어 ‘지야’에서 아랍어를 거쳐 라틴어 ‘시누스’에 이른 ‘사인’이라는 낱말의 역사는 이 전달 사슬이 남긴 작지만 생생한 흔적이다.

현대 인도에서 아리아바타는 과학적 성취의 국가적 상징이 되었다. 인도 우주연구기구(ISRO)가 만들어 1975년 4월 19일 소련 로켓으로 쏘아 올린 인도의 첫 인공위성은 ‘아리아바타’라는 이름을 얻었고, 인도 2루피 지폐 뒷면에도 실렸다. 달의 충돌구, 나이니탈 근처의 관측과학 연구소, 파트나의 대학도 그의 이름을 땄다.

대중적인 이야기에서는 아리아바타를 0의 발명자나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앞질러 내다본 사람으로 그리곤 한다. 뒤의 심화 단락에서 보듯, 두 주장 모두 증거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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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논쟁: 0, 무리수, 태양 중심설

아리아바타는 0을 알았을까? 『아리아바티야』에는 0을 나타내는 기호가 없고 수는 음절로 적혀 있다. 그러나 그의 제곱근·세제곱근 풀이법은 십진 자리값 체계에서 한 자리씩 계산하며, 그의 기수법은 음절을 10의 거듭제곱에 대응시키는데 그 가운데는 계수가 비어 있는 자리도 있을 수 있다. 조르주 이프라 등은 그래서 자리 표시로서의 0 개념이 암묵적으로 들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역사가는 십진 자리값 산술이 쓰이고 있었다는 데 동의하며, 0이 고유한 규칙을 가진 독립된 수가 된 시점은 보통 628년의 브라마굽타로 본다.

π가 무리수임을 알았을까? ‘다가가는’이라는 뜻의 ‘아산나’는 3.1416이 근삿값이라는 단순한 인정으로 읽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정확한 분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로 읽을 수도 있다. 유럽에서 π가 무리수임은 1761년에야 요한 하인리히 람베르트가 증명했다. 아리아바타가 논증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의 역사가는 강한 해석을 가능하지만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맥튜터는 실제 계산에서 아리아바타 전통이 3.1416보다 √10을 자주 썼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의 체계는 속으로는 태양 중심설이었을까? 역사가 B. L. 판데르바르던은 아리아바타 행성 모형의 몇 가지 특징, 특히 해의 평균 운동과 연결된 시그라 주전원의 역할이 사라진 그리스 자료에서 물려받았을지 모를 숨은 태양 중심 이론을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노엘 스워들로 등은 텍스트가 명백히 지구 중심적이며 태양 중심이 아닌 체계에서도 비슷한 보정이 나타난다며 이 해석을 강하게 거부했다. 일반적인 합의는 아리아바타가 지구의 자전을 제안했을 뿐, 지구가 해 둘레를 돈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매개변수는 어디서 왔을까? 데이비드 핀그리 같은 학자들은 인도 수리천문학의 많은 요소가 인도에서 변형된 바빌로니아·헬레니즘 자료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적했고, 다른 학자들은 인도의 독자적 발전을 강조한다. 아리아바타 체계와 그보다 앞선 『파이타마하 싯단타』, 『수리야 싯단타』 전통의 관계는 지금도 활발한 연구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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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증거: 필사본, 판본, 주석

『아리아바티야』는 주로 남인도에서 나온 많은 필사본으로 전하며, 대개 주석과 함께 전한다. 게송이 워낙 압축적이어서 주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629년 바스카라 1세의 주석이 가장 오래되고 자세하며, 파라메슈바라와 닐라칸타 소마야지 등 케랄라의 후대 주석은 이 텍스트가 어떻게 쓰이고 때로 다시 해석되었는지 보여 준다.

현대의 연구는 19세기에 시작되었다. 네덜란드 학자 헨드릭 케른은 1874년 레이던에서 파라메슈바라의 주석과 함께 산스크리트 원문을 펴냈다. 월터 유진 클라크의 영어 번역은 1930년에 나왔다. 번역과 주해를 곁들인 표준 교정본은 1976년 인도 국립과학원에서 펴낸 K. S. 슈클라와 K. V. 사르마의 판본으로, 이들은 바스카라 1세의 주석도 교정했다.

전기 자료는 빈약하고 일부는 전설적이다. 나이를 밝힌 게송을 빼면 한 세기 이상 뒤의 주석가들과 저마다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 전승에 기대야 한다. 케랄라, 비하르, 데칸 모두 지지자가 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텍스트가 말하는 것과 후대에 덧붙은 이야기를 구별한다.

잃어버린 자정 체계는 후대 저작, 특히 바라하미히라의 『판차싯단티카』와 아리아바타의 자정 계산을 따른 브라마굽타의 『칸다카디야카』를 통해 재구성된다. 아리아바타의 번역이라고 자처하는 아랍어 저작도 논의되었지만, 그와의 관계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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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π ≈ 62,832 / 20,000
아리아바타가 제시한 원주율 3.1416은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맞다. 그는 원둘레를 ‘가까운’ 값, 곧 근삿값이라 불렀다.
지야(사인)
원의 반현. 아리아바타의 반현 24개 표는 가장 이른 사인표 가운데 하나이며, 이 낱말은 아랍어와 라틴어를 거쳐 ‘sine’이 되었다.
쿠타카
‘분쇄법’. ax − by = c 같은 방정식의 정수 해를 단계적으로 구하는 방법으로, 천문 주기 계산에 쓰였다.
도는 지구
별들의 하루 운동을 지구의 자전으로 설명하고, 움직이는 배의 비유로 보여 주었다.
그림자로 설명한 일식·월식
일식과 월식은 악마가 아니라 지구 그림자가 달에 드리우거나 달이 해를 가려서 일어난다.
음절 기수법
산스크리트 자음과 모음이 숫자와 10의 거듭제곱을 나타내는 체계로, 큰 수를 운문에 담을 수 있게 했다.
주석 전통
짧은 게송은 스승의 설명을 전제로 했다. 바스카라 1세와 케랄라 학자들의 주석은 텍스트 이해의 열쇠다.

기록

  1. 기원전 3102년 — 칼리 유가의 전통적 시작(기원전 3102년). 『아리아바티야』가 시간을 세는 기점.
  2. 476년 — 499년에 스물세 살이었다는 기록에 따라 아리아바타가 태어난 해.
  3. 499년 — 칼리 유가 3600년, 아리아바타가 스물세 살이던 해. 흔히 『아리아바티야』의 연대로 본다.
  4. 628년 — 브라마굽타가 『브라마스푸타 싯단타』를 완성하고 아리아바타의 여러 견해를 비판한다.
  5. 629년 — 바스카라 1세가 현존 최고(最古)의 『아리아바티야』 주석을 쓴다.
  6. 약 1030년 — 알비루니가 인도에 관한 책을 쓰며 지구 자전을 믿는 아리아바타 추종자들을 언급한다.
  7. 약 1500년 — 케랄라 학파의 닐라칸타 소마야지가 『아리아바티야』에 방대한 주석을 쓴다.
  8. 1761년 — 람베르트가 유럽에서 π가 무리수임을 증명한다.
  9. 1874년 — 헨드릭 케른이 레이던에서 파라메슈바라의 주석과 함께 산스크리트 원문을 출간한다.
  10. 1930년 — 월터 유진 클라크가 영어 번역을 출간한다.
  11. 1975년 — 4월 19일 인도의 첫 인공위성 ‘아리아바타’가 발사된다.
  12. 1976년 — K. S. 슈클라와 K. V. 사르마가 교정본과 번역을 출간한다.

용어 풀이

싯단타
산스크리트어로 된 종합적인 수리천문학 논서.
파다
장 또는 ‘4분의 1’. 『아리아바티야』는 네 파다로 되어 있다.
그노몬
그림자를 재어 시각, 위도, 방위를 알아내는 곧은 막대.
주전원
더 큰 원을 따라 중심이 움직이는 작은 원. 행성의 불규칙한 운동을 나타내는 데 썼다.
항성일
먼 별을 기준으로 지구가 한 바퀴 도는 시간. 약 23시간 56분.
칼리 유가
인도 우주론에서 네 시대 가운데 지금의 마지막 시대. 전통적으로 기원전 3102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자리값 체계
숫자가 놓인 자리가 그 값(일, 십, 백)을 나타내는 수 표기법.
쿠수마푸라
‘꽃의 도시’. 오늘날 파트나 근처의 파탈리푸트라로 비정되는 이름.
주석(바샤)
짧은 전문 텍스트를 한 줄씩 풀이한 해설서.

묻고 답하기

아리아바타가 0을 발명했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0 기호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의 계산은 0이 자리 표시로 전제된 십진 자리값 체계에 기대고 있습니다. 0을 하나의 수로 다루는 명시적인 규칙은 한 세기 뒤 브라마굽타의 저작에 나옵니다.

그의 원주율은 얼마나 정확했나요?

매우 정확했습니다. 3.1416으로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맞습니다. 참값은 3.14159…로 시작합니다.

지구가 해 둘레를 돈다고 했나요?

아닙니다. 지구가 날마다 스스로 돈다고 했지만, 행성 모형에서는 지구를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가 속으로는 태양 중심설을 품었다는 주장은 논란이 있습니다.

책이 왜 그렇게 짧나요?

인도의 전문 저작은 학생들이 외울 수 있도록 기억하기 쉬운 운문으로 지었습니다. 설명은 스승과 주석서가 맡았습니다.

날란다의 우두머리였나요?

그의 저작에는 그런 증거가 없습니다. 한 게송이 그를 쿠수마푸라에 있던 기관의 우두머리라고 부를 뿐이고, 날란다와의 연결은 현대의 추측입니다.

인도의 첫 인공위성에 왜 그의 이름을 붙였나요?

그가 인도 과학 전통의 국가적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위성 ‘아리아바타’는 1975년에 발사되었습니다.

태어난 해는 어떻게 아나요?

칼리 유가가 3,600년 지났을 때 스물세 살이었다고 적었는데, 그해가 499년입니다. 거꾸로 세면 476년이 됩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Aryabhata. Wikipedia (영어)
  2. 아리아바타. 위키백과
  3. Aryabhatiya. Wikipedia (영어)
  4. J. J. O’Connor and E. F. Robertson, Aryabhata the Elder. MacTutor History of Mathematics Archive, University of St Andrews, 2000
  5. Aryabhata (satellite). Wikipedia (영어)
  6. Walter Eugene Clark, The Āryabhaṭīya of Āryabhaṭa: An Ancient Indian Work on Mathematics and Astronom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30
  7. K. S. Shukla and K. V. Sarma, Āryabhaṭīya of Āryabhaṭa (critical edition with translation and notes). Indian National Science Academy, 1976
  8. Kim Plofker, Mathematics in India.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9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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