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장형은 거의 2천 년 전 중국에 살았어요.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었지요. 별을 관찰하고, 수학 문제를 풀고, 기계를 만들고, 지도를 그리고, 아름다운 시도 썼어요.
가장 유명한 발명품은 지진을 알아채는 커다란 청동 항아리예요. 바깥에는 용 여덟 마리가 저마다 입에 청동 구슬을 물고 있었고, 용마다 아래에는 입을 벌린 청동 두꺼비가 앉아 있었어요. 땅이 흔들리면, 아주 멀리서 흔들려도, 용 한 마리가 두꺼비 입속으로 구슬을 '땡' 하고 떨어뜨렸어요. 그러면 지진이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알 수 있었지요.
한번은 도읍에서 아무도 흔들림을 느끼지 못했는데 구슬이 떨어졌어요. 사람들은 장형을 비웃었어요. 그런데 며칠 뒤 서쪽 먼 곳에서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가진 전령이 도착했어요. 바로 용이 가리킨 방향이었어요.
장형은 해와 별이 지나는 길을 고리로 나타낸 하늘 모형도 만들었어요. 떨어지는 물의 힘으로 이 모형이 저절로 천천히 돌아서 실제 하늘과 함께 움직이게 했지요. 또 달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햇빛을 되비춘다고 썼어요.
오늘날 달의 크레이터 하나, 소행성 하나, 광물 하나, 그리고 중국의 지진 연구 위성이 장형의 이름을 따서 불린답니다.
한눈에 보기
- 생애
- 78–139년, 후한
- 출생지
- 남양군 서악(西鄂)(지금의 허난성 난양 부근)
- 활동지
- 주로 도읍 낙양. 만년에 잠시 하간국(河間國, 허베이) 상(相)으로 재직
- 관직
- 태사령(太史令) 115–120년, 126–132년. 133년 무렵부터 시중(侍中)
- 발명
- 지동의(地動儀, 132년), 물의 힘으로 도는 혼천의, 보상 물통을 더한 누각(물시계)
- 저술
- 『영헌(靈憲)』(120년 무렵), 「서경부」·「동경부」, 「사현부」, 「귀전부」, 「사수시」
- 주요 사료
- 『후한서』(5세기)의 장형 열전과 남아 있는 작품들
- 기념
- 달 크레이터 Chang Heng, 소행성 1802 장형, 광물 장형석(zhanghengite), 위성 장형 1호(2018)
쉬움
장형은 누구인가
장형은 25년부터 220년까지 낙양을 도읍으로 삼아 중국을 다스린 후한 왕조를 섬긴 학자 관료였다. 오늘날에는 무엇보다 과학자이자 발명가로 기억되지만, 당대와 이후 몇 백 년 동안은 시인으로서도 그만큼 유명했다.
그는 흔히 '박학다식한 사람(polymath)', 곧 여러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으로 불린다. 천문학, 수학, 역법, 기계 공학, 지리와 지도 제작을 연구했고, 긴 부(賦)와 짧은 서정시를 지어 초기 중국 문학의 가장 중요한 선집에 실렸다.
132년 조정에 바친 가장 유명한 발명품은 지진에 반응해 그 방향을 알려 주는 기구, 곧 지진 감지기(seismoscope)였다. 역사가들은 대체로 이를 세계에서 기록으로 확인되는 가장 이른 기구로 본다.
장형은 로마령 이집트의 위대한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했지만, 현대 역사가들은 이따금 유라시아 양 끝의 두 대제국을 대표하는 천문학자로 두 사람을 견준다.
쉬움
생애: 남양에서 황실 조정으로
장형은 78년 지금의 허난성에 있던 남양군의 서악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존경받았지만 넉넉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군 태수를 지냈고 광무제의 한 왕조 재건을 도운 인물이었다. 열 살 무렵 아버지를 여읜 뒤 어머니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95년 열일곱 살 무렵 집을 떠나 장안과 낙양이라는 두 대도시로 가서 태학(太學)에서 공부했다. 수학자이자 서예가인 최원(崔瑗), 경학자 마융(馬融), 사상가 왕부(王符) 같은 이름난 학자들과 사귀었다. 벼슬을 권유받았지만 처음에는 사양했다.
100년 무렵 남양으로 돌아와 공조(功曹)가 되어 태수를 위해 공문서를 썼다. 그곳에서 여러 해에 걸쳐 도읍을 노래한 부를 지었고, 서른 살 무렵부터 천문학과 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112년 안제(安帝)가 수학에 뛰어나다는 명성을 듣고 그를 낙양으로 불렀다. 그는 태사령을 두 차례(115–120년, 126–132년) 지냈고, 이어 순제(順帝)의 측근 자문인 시중에 올랐다. 권세 있는 환관들과 부딪친 뒤 136년 무렵 도읍을 떠나 북쪽 하간국의 상이 되었다. 138년 낙양으로 다시 불려 왔고, 139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쉬움
지진을 알려 주는 기구
지진은 한나라 조정에 큰 걱정거리였다. 마을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정치가 잘못되었다는 하늘의 경고로 읽혔기 때문이다. 지진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빨리 알면 조정은 구호를 보내고 그 징조에 대응할 수 있었다.
132년 장형은 '후풍지동의(候風地動儀)'라는 기구를 바쳤다. 흔히 '계절풍과 땅의 움직임을 살피는 기구'로 풀이한다. 『후한서』에 따르면 이것은 지름 약 2미터의 술독 모양 청동 그릇으로, 뚜껑이 볼록했다. 바깥에는 여덟 방위를 향해 용머리 여덟 개가 붙어 있었고, 저마다 청동 구슬을 물고 있었다. 용마다 그 아래에는 입을 벌린 청동 두꺼비가 웅크리고 있었다.
안에는 여덟 갈래의 팔 또는 길과 이어진 '도주(都柱)', 곧 가운데 기둥이 있었다. 땅이 흔들리면 장치가 작동해 용 한 마리의 입이 열리고, 구슬이 아래 두꺼비 입속으로 떨어지며 큰 소리를 냈다. 그 용이 향한 방향이 지진이 온 방향이었다.
같은 역사서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날 낙양에서는 아무도 흔들림을 느끼지 못했는데 구슬이 떨어졌다. 관리들은 기구를 의심했지만, 며칠 뒤 수백 킬로미터 북서쪽의 농서(隴西, 지금의 간쑤성)에서 지진이 났다는 전령이 도착했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 뒤로 조정은 이 기구로 지진의 방향을 기록하게 했다.
중급
천문학: 달걀 모양의 우주와 햇빛을 받아 빛나는 달
태사령으로서 장형은 하늘을 관측하고 징조를 기록하며 역법을 만들고 길일과 흉일을 아뢰는 일을 맡았다. 한나라에서 천문학은 과학이면서 정치의 일부였다. 하늘의 움직임이 땅 위의 일을 반영하고 그에 응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20년 무렵에 쓴 『영헌(靈憲)』에서 그는 혼천설(渾天說)에 따라 우주를 설명했다. 하늘은 달걀과 같아 탄환처럼 둥글고, 땅은 그 안의 노른자처럼 자리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늘이 평평한 땅 위를 덮은 덮개라는 더 오래된 개천설(蓋天說)과 경쟁하는 이론이었다.
장형은 달이 물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햇빛을 받아서만 빛나므로, 해를 향한 쪽은 밝고 반대쪽은 어둡다고 썼다. 월식은 달이 햇빛이 가려지는 곳으로 들어가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또 124개 별자리에 속한 별 약 2,500개를 기록한 성표를 만들었고, 더 희미한 별이 수천 개 있다고 적었다.
그는 역법을 둘러싼 조정의 논쟁에도 참여했다. 123년 예언적 문헌인 참위(讖緯)에 따라 역법을 고치자는 제안이 나오자, 그 문헌들은 믿을 수 없다며 반대했고 아예 금지하자고까지 했다. 역법은 바뀌지 않았지만 참위를 금지하자는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거침없는 주장 탓에 적이 생겼다.
중급
기계: 물로 도는 하늘과 개량한 물시계
혼천의(渾天儀)는 천구의 적도나 해가 지나는 길(황도) 같은 큰 원을 고리로 나타낸 하늘 모형이다. 중국 천문학자들은 기원전 52년까지 적도 고리를, 서기 84년까지 황도 고리를 더했다. 장형은 여기에 지평 고리와 자오 고리를 더해 기구를 완성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것을 저절로 움직이게 한 것이다. 물시계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톱니바퀴가 달린 물레바퀴를 이용해, 그의 혼천의는 실제 하늘의 회전에 맞추어 천천히 돌았다. 실내의 관측자가 어떤 별이 뜨고 지는지 외치면 밖에서 하늘을 보는 사람들의 관측과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장형은 물의 힘으로 천문 기구를 움직인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유입식 물시계(누각)도 개량했다. 단순한 물시계에서는 위 물통의 물이 아래 그릇으로 떨어지고, 그릇 속 뜬 막대가 시간을 가리킨다. 그런데 위 물통이 비어 갈수록 수압이 떨어져 시계가 느려진다. 117년 무렵의 글에서 장형은 저수통과 받는 그릇 사이에 보상 물통을 하나 더 두어 흐름을 일정하게 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 아이디어들은 긴 미래를 가졌다. 후대 중국 천문학자들은 점점 더 정교한 수력 기구를 만들었고, 이는 8세기 일행(一行)의 탈진기 장치와 11세기 소송(蘇頌)의 거대한 천문 시계탑으로 이어졌다. 소송은 장형의 혼천의를 본보기로 분명히 밝혔다.
중급
수학, 지도, 그 밖의 발명
장형은 원주율, 곧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를 연구했다. 오랫동안 중국 수학자들은 그냥 3을 썼다. 장형은 정육면체와 그 안에 꼭 맞는 구의 부피를 이용해 10의 제곱근, 약 3.162라는 값에 이르렀다. 천문 계산에서는 약 3.17이라는 값도 썼다. 뒤에 유휘(劉徽, 3세기)와 조충지(祖沖之, 5세기) 같은 수학자들이 훨씬 정확한 값을 얻었다.
그는 지도 제작자이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116년 조정에 지형도를 바쳤다. 라페 드 크레스피니(Rafe de Crespigny)를 비롯한 일부 역사가는 그가 중국 지도에 사각 격자를 처음 도입했다고 보며, 이 방법은 3세기 지도학자 배수(裴秀)가 온전히 정리했다. 다만 근거가 빈약해서 다른 학자들은 더 신중하다.
후대 문헌은 장형이 기어로 인형이 늘 남쪽을 가리키게 한 두 바퀴 수레인 지남거(指南車), 그리고 1리를 갈 때마다 북을 치는 기리고거(記里鼓車)도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귀속은 불확실하다. 지남거는 3세기 마균(馬鈞)이 확실히 만들었고, 기리고거는 궁정 장인들 사이에서 점차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장형이 기구를 직접 주조했다기보다 설계했을 가능성도 크다. 역사가 앤서니 바비에리로(Anthony Barbieri-Low)는 그 정도 지위의 관리라면 황실 공방의 숙련 장인·주형공과 함께 일했을 것이며, 그들도 공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본다.
중급
시인 장형
동시대 사람들에게 장형은 무엇보다 문인이었다. 반고의 「양도부(兩都賦)」를 본뜬 짝 작품 「서경부(西京賦)」와 「동경부(東京賦)」는 장안과 낙양의 궁전, 시장, 사냥터, 축제, 놀이를 풍성하게 묘사한다. 반고와 달리 장형은 옛 도읍의 화려함을 경고로 삼았다. 사치와 방탕이 전한을 무너뜨렸듯 후한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남도부(南都賦)」는 고향 남양을 기렸다. 조정에서 공격받을 때 쓴 「사현부(思玄賦)」에서는 옛 시 「이소(離騷)」를 떠올리게 하는 우주 여행을 상상하며, 선한 사람은 부패한 세상을 떠나야 하는지, 남아서 곧음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다.
짧은 두 작품이 특히 큰 영향을 끼쳤다. 「귀전부(歸田賦)」는 벼슬을 떠나 자연 속 소박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짧은 부로, 이 주제는 후대 중국 시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사수시(四愁詩)」는 한 행이 일곱 글자인 중국 시 가운데 가장 이른 작품에 속한다. 겉으로는 연애시이지만, 소인들에게 가로막혀 임금에게 다가갈 수 없는 탄식으로 읽혔다.
그의 여러 작품은 6세기 양(梁)나라 소통(蕭統)이 엮은 『문선(文選)』에 실려 후대에 확실히 전해졌다. 시인 도잠(陶潛, 도연명)은 장형의 절제되고 소박한 언어를 칭찬했다.
중급
어려운 조정의 곧은 관리
장형의 관직 생활은 후한 조정의 긴장을 보여 준다. 황제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는 일이 잦았고, 권력은 외척, 환관, 학자 관료 사이를 오갔다. 장형은 분명히 학자 관료 쪽에 섰고, 원칙을 지킨 대가로 승진이 막혔다.
참위에 대한 견해, 그리고 짧게 재위한 경시제(更始帝)가 한 왕조 재건사에서 더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견 때문에, 그는 왕조의 공식 역사를 편찬하는 작업에서 배제되었다. 그가 바랐던 듯한 명예로운 사관 자리에는 끝내 오르지 못했다.
133년 지진이 일어난 뒤 그는 새로운 관리 선발 규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얼마 뒤 시중이 되자 순제와 가까운 자리를 이용해 환관을 경계하라고 간언했다. 환관들은 그를 모함했고, 그는 문학으로 응답했다. 「응간(應間)」에서는 가상의 방문객이 권력을 좇으라고 권하자, 군자는 벼슬보다 덕을 귀히 여긴다고 답한다.
중급
유산과 기억
장형은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기림을 받았다. 벗 최원은 그의 묘비명을 지어, 그의 계산은 '하늘과 땅을 다했고' 그의 발명은 신들의 솜씨에 견줄 만하다고 칭송했다. 3세기에는 관리 하후담(夏侯湛)이 그의 무덤에 비문을 또 지었고, 문인 부현(傅玄)은 장형과 기술자 마균 같은 인재가 공부(工部)에 한 번도 기용되지 않아 그 솜씨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그의 기구들은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서진이 무너진 뒤, 훗날 유송(劉宋)을 세우는 유유(劉裕)가 410년대에 장안을 점령했을 때 그의 옛 천문 기구들이 되찾아졌고, 436년 천문학자 전락지(錢樂之)가 장형의 방식에 따라 물로 도는 새 혼상(渾象)을 만들라는 명을 받았다. 북제와 수나라의 장인들도 그의 기구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지동의를 만들었다.
중국 밖에서는 1870–1880년대 일본에서 근대 지진학의 기틀을 놓은 지진학자 존 밀른(John Milne)이 장형의 기구에 대해 썼고, 이 기구는 과학사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달의 크레이터, 소행성 1802 장형, 광물 장형석, 그리고 2018년에 발사된 중국 최초의 지진 전자기 관측 위성 장형 1호에 남아 있다.
심화
논쟁: 지동의는 어떻게 작동했고, 정말 작동했나
지동의에 대한 유일한 자세한 설명은 장형이 죽은 지 300여 년 뒤 범엽이 편찬한 『후한서』 장형 열전의 짧은 대목뿐이다. 기구 자체는 사라졌다. 원나라 때 학자 주밀(周密)은 후대에 만든 모방품들도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적었다.
핵심 문제는 '도주(都柱)', 곧 가운데 기둥이다. 대부분의 복원안은 이것을 진자로 보지만, 어떤 진자인가? 지진학자 존 밀른과 1936년 중국 학자 왕전둬(王振鐸)는 여덟 갈래 길 가운데 하나로 흔들려 가는 매달린 진자를 제안했다. 1939년 일본 지진학자 이마무라 아키쓰네(今村明恒)와 하기와라(萩原)는 대신 첫 충격 방향으로 쓰러지는 선 기둥, 곧 거꾸로 선 진자를 제안하며, 흔들리는 진자라면 구슬을 여러 개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왕전둬의 뒤 모형도 선 기둥을 썼다. 2005년에는 중국 지진학자들이 작동하는 복제품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옌훙썬(顏鴻森) 같은 공학자들은 현대의 어떤 복제품도 역사 기록이 말하는 감도, 곧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한 먼 지진을 감지할 정도의 감도에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농서 이야기도 의문의 대상이다. 어떤 이들은 130–140년대에 기록된 간쑤의 큰 지진과 연결하지만, 그 날짜와 세부는 독립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역사가는 장형이 땅의 움직임에 반응해 방향을 가리키는 실제 기구를 만들었다는 점은 받아들이되, 감도와 정확성에 대한 주장은 조심스럽게 다룬다. 이 기구는 흔들림을 측정·기록하는 지진계(seismometer, seismograph)라기보다 흔들림이 있었음을 알려 주는 지진 감지기(seismoscope)로 부르는 것이 알맞다.
심화
논쟁: 장형과 한대 과학의 성격
대중서는 장형을 '중국의 레오나르도'나 고대의 근대 과학자로 그리기도 한다. 역사가들은 이를 경계한다. 그의 천문학은 징조 해석과 떼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혜성, 일식, 행성의 움직임을 정치의 길잡이로 읽었고, 자연재해가 잘못된 정치에 대한 하늘의 응답일 수 있다는 전통 관념을 받아들였다. 지진에 대한 그의 이론도 지질학이 아니라 기(氣)와 '바람 점(風角)'에 대한 관념에 바탕을 두었다.
프톨레마이오스와의 비교가 이를 잘 보여 준다. 역사가 진관타오(金觀濤)·판훙예(樊洪業)·류칭펑(劉青峰)은 장형의 혼천의가 물리적으로는 지구 중심 모형과 매우 가까웠지만,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같은 기하학적·공리적 이론을 세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중국 천문학은 기하 모형보다 산술적 주기와 역법 예측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이것이 실패가 아니라 다르지만 매우 효과적인 전통이었다고 반박한다.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장형을 일행을 거쳐 소송에 이르는 중국 기계 시계 전통의 출발점에 놓았다. 근대 과학이 왜 중국이 아닌 유럽에서 생겨났는지 묻는 니덤의 틀 자체도 널리 논쟁되었지만, 그의 책은 여전히 장형의 기구를 연구하는 기본 참고서다.
끝으로 장형의 명성에도 나름의 역사가 있다. 20세기에 그는 중국 과학 성취의 민족적 상징이 되어 우표에 실리고 교과서에 등장했으며, 2018년 발사된 지진 관측 위성에 이름을 남겼다. 그의 진정한 탁월함을 인정하면서도 역사 속 장형과 이러한 현대의 이미지를 구분하는 것이 역사가의 몫이다.
핵심 개념
- 지진 감지기(seismoscope)
- 지진이 일어났음을(여기서는 그 방향까지) 알려 주되, 시간에 따른 진동을 기록하지는 않는 기구.
- 혼천설(渾天說)
- 하늘이 달걀 껍데기가 노른자를 감싸듯 땅을 둘러싼 구라는 우주론.
- 혼천의(渾天儀)
- 적도·황도·지평·자오 고리로 하늘을 나타낸 모형. 장형은 물의 힘으로 이를 움직였다.
- 보상 물통
- 물시계에 더한 물통으로, 물의 흐름과 시간 측정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 천인감응(天人感應)
- 하늘과 땅과 인간의 정치가 서로 응답한다는 한대의 믿음. 그래서 일식과 지진에 정치적 의미가 담겼다.
- 부(賦)
- 운문과 산문을 섞어 풍성하게 묘사하는 한대의 긴 문학 형식. 장형은 그 대가였다.
- 학자 관료
- 정치에 참여한 교양인. 학문과 문학, 도덕적 곧음을 두루 갖추기를 요구받았다.
기록
- 78년 — 장형이 남양군 서악에서 태어난다.
- 95년 — 집을 떠나 장안과 낙양에서 공부한다.
- 약 100년 — 남양의 공조가 되어 도읍을 노래한 부를 짓는다.
- 112년 — 안제가 그를 낙양 조정으로 부른다.
- 115년 — 처음으로 태사령이 된다(120년까지).
- 약 117년 — 개량한 물시계와 물로 도는 혼천의를 글로 설명한다.
- 약 120년 — 『영헌』을 쓴다.
- 123년 — 참위에 근거한 역법 개정에 반대한다.
- 126년 — 순제 때 다시 태사령이 된다(132년까지).
- 132년 — 조정에 지동의를 바친다.
- 약 136년 — 도읍을 떠나 하간국 상이 된다.
- 139년 — 138년 도읍으로 다시 불려 온 뒤 낙양에서 세상을 떠난다.
용어 풀이
- 후한
- 한 왕조의 후반기(25–220). 도읍은 낙양.
- 박학다식한 사람(polymath)
- 여러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
- 태사령(太史令)
- 하늘을 관측하고 역법을 관리하며 징조를 기록하던 조정의 관리.
- 누각(漏刻)
- 물이 일정하게 흐르는 것을 이용해 시간을 재는 물시계.
- 황도
- 땅에서 보았을 때 해가 1년 동안 하늘을 지나는 길.
- 원주율(π)
-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 약 3.14159.
- 참위(讖緯)
- 경전에 덧붙여진 한대의 예언적·신비적 문헌.
- 환관
- 궁중에서 일하던 거세된 남성. 한나라 조정에서 큰 정치 권력을 쥐는 일이 많았다.
- 『문선(文選)』
- 6세기에 엮은 중국 문학 선집. 장형의 여러 작품을 전한다.
묻고 답하기
장형이 처음으로 지진 감지기를 발명했나요?
알려진 바로는 그래요. 132년의 지동의는 세계 어디에서든 기록으로 확인되는 가장 이른 기구예요.
지진을 미리 알려 줄 수 있었나요?
아니요. 지진이 일어난 뒤에 반응해서 대략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만 보여 줄 수 있었어요.
원래 기계가 지금도 남아 있나요?
아니요. 오래전에 사라졌어요. 박물관에 있는 모형은 짧은 글을 바탕으로 현대에 복원한 것이에요.
장형은 땅이 둥글다고 생각했나요?
그는 하늘이 달걀처럼 땅을 둘러싼 구라고 설명했어요. 땅 자체를 구로 보았는지는 논쟁거리예요. 노른자 비유는 둥근 모양을 떠올리게 하지만, 한대 문헌은 땅을 평평하다고도 말해요.
과학자가 왜 시인이기도 했나요?
한나라의 교양 있는 관리는 문학과 경전, 실용 지식을 모두 익혀야 했어요. 장형은 그 모두를 유난히 잘했지요.
농서 지진 이야기는 얼마나 믿을 만한가요?
300년 뒤에 쓰인 역사서에서 나왔고 다른 기록과 맞추어 볼 수 없어서, 역사가들은 이를 입증된 시험이 아니라 전해지는 이야기로 다룹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것은 무엇인가요?
달의 크레이터, 소행성 1802 장형, 광물 장형석, 그리고 중국 위성 장형 1호예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 Zhang Heng. Wikipedia
- Seismometer. Wikipedia
- Armillary sphere. Wikipedia
- Book of the Later Han. Wikipedia
- 장형 (후한). 위키백과
- Joseph Needham,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Vol. 3: Mathematics and the Sciences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9
- Rafe de Crespigny,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Later Han to the Three Kingdoms (23–220 AD). Brill, 2007
함께 보기
- 채륜105년 개선된 종이 제조법을 조정에 보고한 인물로 전해지는 후한의 관리다.
- 사마천고대 중국의 역사를 폭넓게 서술한 『사기』를 편찬한 한나라 역사가다.
- 안티키티라 기계해와 달, 아마도 행성들의 움직임을 재현하고 식을 예측하며 달력을 셈한, 기원전 2세기 또는 1세기 초 그리스의 손잡이 돌림식 청동 톱니 장치. 알려진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 컴퓨터.
- 아리아바타『아리아바티야』에서 π ≈ 3.1416, 사인표, 지구가 날마다 자전한다는 생각을 내놓은 인도의 수학자·천문학자다.
- 알콰리즈미9세기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의 수학자·천문학자·지리학자. 그의 책에서 ‘대수학(algebra)’과 ‘알고리즘’이라는 말이 나왔다.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