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테오티우아칸

Teōtīhuacān(후대 아스테카인이 붙인 나우아틀어 이름. 도시 본래의 이름은 알 수 없음)

약 기원전 100년 – 549년 · 테오티우아칸

한 문장으로

테오티우아칸은 약 1,500년 전 멕시코 중부에 있던 거대한 고대 도시로, 10만 명쯤이 살았고 거대한 피라미드와 긴 중앙 대로, 벽화로 꾸민 공동 주택으로 유명하지만, 도시를 세운 사람들의 이름과 언어는 아직 수수께끼입니다.

테오티우아칸
이미지: Hdlrosa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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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1,500년 전, 자동차도 기차도 없던 때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가 멕시코 고원에 있었어요. 모눈종이의 선처럼 반듯하게 난 넓은 길, 어마어마한 피라미드, 새빨갛고 초록색이고 파란 벽화가 있었고, 10만 명쯤 되는 사람이 살았어요. 오늘날 우리는 이 도시를 테오티우아칸이라고 불러요.

가장 큰 건물은 ‘태양의 피라미드’예요. 높이는 20층 건물쯤 되고, 바닥은 축구장 두 개보다 넓어요. 사람들은 쇠 연장도, 수레바퀴도, 말이나 소처럼 일을 돕는 큰 동물도 없이 흙과 돌 부스러기와 돌을 바구니에 담아 하나하나 날라서 이 피라미드를 쌓았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탁 트인 마당 둘레에 방이 여럿 있는 커다란 돌집에서 살았어요. 한 지붕 아래 작은 마을이 있는 것 같았지요. 먼 곳에서 온 가족들도 이사 와서 살았어요. 어떤 동네에는 멕시코 남쪽 오악사카에서 온 사람들이 살았는데, 수백 년 동안 자기네 풍습을 지켰어요.

신기하게도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이 자기 도시를 뭐라고 불렀는지, 정확히 무슨 말을 썼는지 아무도 몰라요. 기호와 그림을 그려 남기긴 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책처럼 읽을 수 없어요. ‘신들이 만들어진 곳’쯤을 뜻하는 테오티우아칸이라는 이름은 훨씬 나중에 아스테카 사람들이 붙였어요. 아스테카 사람들은 이 폐허를 발견하고 여기서 해와 달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전했지요.

약 1,450년 전, 도시의 큰 건물들이 많이 불타고 도시는 작아졌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고고학자들이 아직도 풀고 있는 수수께끼예요.

한눈에 보기

시기
대도시로 번영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100년 ~ 기원후 550년(그 뒤에도 작은 규모로 사람이 살았음)
장소
멕시코 분지 북동부 테오티우아칸 계곡, 멕시코시티 북동쪽 약 40km
규모
전성기 면적 약 20km², 인구는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
주요 유적
죽은 자의 거리,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 깃털 달린 뱀 신전이 있는 시우다델라
주거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공동 주택 단지 약 2,000곳
경제
농업, 수공업, 원거리 교역. 특히 흑요석
알 수 없는 것
도시 본래의 이름, 사용 언어, 정치 체제
지위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1987)

쉬움

테오티우아칸은 어떤 도시였나

테오티우아칸은 기원후 첫 천년기 전반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당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였습니다. 해발 약 2,300m의 중앙 고원, 멕시코 분지의 곁가지 계곡에 자리했습니다. 대략 200~550년의 전성기에는 약 20km²에 걸쳐 있었고 인구가 10만 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추정치는 연구자마다 다르며, 12만 5천 명이나 20만 명까지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도시는 치밀하게 계획되었습니다. 오늘날 ‘죽은 자의 거리’라고 부르는 큰 대로가 몇 킬로미터에 걸쳐 도시를 가로지르고, 양옆으로 기단과 신전과 광장이 늘어서 있습니다. 대로 북쪽 끝에는 달의 피라미드가, 동쪽에는 태양의 피라미드가, 더 남쪽에는 깃털 달린 뱀 신전을 품은 거대한 울타리 시우다델라(‘성채’)가 있습니다.

이 의례 중심지 둘레에는 수천 곳의 주거 단지, 공방, 동네가 있었고, 그 가운데 일부에는 먼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이 살았습니다. 건축, 토기, 도상에 드러난 테오티우아칸의 영향은 1,000km 넘게 떨어진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의 마야 지역까지 미쳤습니다.

크고 유명한 도시이지만 테오티우아칸에 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한 것이 많습니다. 주민들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긴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기 도시를 무엇이라 불렀는지, 어떤 언어를 썼는지, 정확히 어떻게 다스려졌는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 쓰는 이름은 수백 년 뒤 나우아틀어를 쓰던 아스테카인이 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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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도시를 ‘읽는’ 법: 산과 하늘에 맞춘 격자

테오티우아칸은 정북에서 동쪽으로 약 15.5도 기울어진 격자 위에 세워졌습니다. 거의 모든 건물, 길, 담이 이 방향을 따릅니다. 도시를 지나는 산후안강의 물길까지 격자에 맞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학자들은 이 방향이 메소아메리카 달력에서 중요한 날의 해돋이·해넘이 방향이나 특정 별의 위치와 관련 있다고 보는데, 정확한 이유는 논쟁 중입니다.

죽은 자의 거리는 남북으로 뻗은 주축입니다. 남쪽 끝에서 바라보면 맨 끝의 달의 피라미드가 그 뒤의 세로고르도산 모양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람이 지은 기념물과 신성한 풍경을 시각적으로 잇는 장치입니다. 대로는 평평하지 않습니다. 북쪽으로 갈수록 높아지고, 가로지르는 벽으로 나뉘어 움푹한 광장들이 이어집니다.

많은 건물이 ‘탈루드-타블레로’라는 독특한 옆모습을 지닙니다. 비스듬한 기단(탈루드) 위에 테두리를 두른 수직 직사각형 판(타블레로)을 얹은 형식입니다. 기단마다 되풀이되는 이 모양은 도시 특유의 리듬을 만들며, 먼 유적에서 이 형식이 나타나는 것은 테오티우아칸의 영향을 보여 주는 가장 뚜렷한 표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시는 알록달록했습니다. 벽에는 석회 회반죽을 바르고 빨강, 초록, 파랑, 노랑으로 벽화를 그렸는데, 신들, 깃털 옷을 입은 사제들, 재규어와 코요테 같은 동물, 식물과 물이 담겨 있습니다. 대로를 걷는 일은 오늘날 관람객이 보는 회색 돌이 아니라 색채와 높이와 상징을 온몸으로 겪는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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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거대한 피라미드와 깃털 달린 뱀 신전

태양의 피라미드는 도시에서 가장 큰 건물이자 아메리카 대륙에서 손꼽히는 큰 피라미드입니다. 밑변은 한 변이 약 220~230m이고, 지금 높이는 약 65m입니다. 주로 1~2세기에 흙과 돌 부스러기, 어도비(햇볕에 말린 흙벽돌)로 쌓고 겉에 돌을 붙인 뒤, 원래는 회반죽을 바르고 색을 칠했습니다. 1971년 피라미드 밑에서 계단 아래쪽부터 피라미드 중심부 아래의 방들까지 이어지는 터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터널은 일부 인공으로 손본 신성한 동굴이었을 수 있으며, 피라미드가 이미 성스럽게 여겨지던 자리 위에 세워졌음을 시사합니다.

대로 북쪽 끝의 달의 피라미드는 높이 약 43m로 더 작지만, 약 100년부터 400년 사이에 적어도 일곱 단계에 걸쳐 새 건물이 앞의 건물을 감싸는 방식으로 지어졌습니다. 1998~2004년 스기야마 사부로와 루벤 카브레라가 이끈 발굴에서, 희생된 사람과 퓨마, 늑대, 독수리, 방울뱀 같은 동물, 그리고 흑요석과 녹색암의 풍성한 봉헌물이 담긴 봉헌 매장이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시우다델라 안의 깃털 달린 뱀 신전은 200년 무렵에 지어졌습니다. 정면에는 깃털 달린 뱀의 머리와 또 다른 머리가 번갈아 조각되어 있는데, 이 두 번째 머리는 머리장식, 전쟁의 뱀, 비의 신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그 뒤로는 뱀의 몸통과 조개를 새긴 판이 깔려 있습니다. 1980년대 발굴에서 신전을 지을 때 200명 넘는 사람이 희생되었으며, 그 가운데 많은 수가 무기와 장신구와 함께 묻힌 젊은 남성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태양’과 ‘달’이라는 이름은 건설자들이 아니라 아스테카인이 붙인 것입니다. 피라미드가 실제로 어떤 신에게 바쳐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태양의 피라미드를 물과 폭풍의 신과, 달의 피라미드를 여신이나 그 뒤의 산과 연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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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일상생활: 공동 주택 단지와 이주민 동네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은 대부분 담으로 둘러싼 공동 주택 단지에 살았으며, 지금까지 약 2,000곳이 확인되었습니다. 전형적인 단지에는 트인 마당 둘레에 방이 여럿 모여 있고, 배수로와 제단, 때로는 벽화가 있었으며, 아마도 친족이나 직업, 혹은 둘 다로 묶인 수십 명이 살았습니다. 테티틀라, 테판티틀라, 아테텔코 같은 단지는 벽화로 유명하고, 소박한 단지도 있었습니다. 바닥 밑에 죽은 이를 묻어 산 자 가까이에 두었습니다.

이런 주택 단지는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보기 드문 도시적 사회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빽빽하게 모여 살며 전문화된 수공업에 종사했고, 시장과 주변 계곡의 농업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공방에서는 흑요석 도구, 토기, 인물 토우, 장신구를 만들었습니다. 오툼바 같은 산지의 흑요석과 파추카 일대의 녹색 흑요석은 주요 자원이었지만, 그 생산과 교역을 국가가 얼마나 통제했는지는 논쟁 중입니다.

테오티우아칸은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도시였습니다. 서쪽의 틀라일로틀라칸 구역에는 오악사카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살며 사포텍식 무덤과 토기를 썼습니다. 동쪽의 이른바 ‘상인 구역’에서는 둥근 어도비 건물과 수입 토기가 멕시코만 연안과 마야 저지대와의 연결을 보여 줍니다. 사람 뼈의 동위원소 연구는 일부 단지에 묻힌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다른 곳에서 자랐음을 밝혀냈습니다.

오랫동안 비의 신의 낙원 ‘틀랄로칸’으로 알려진 테판티틀라의 벽화에는 꽃나무와 시냇물 사이에서 놀고 헤엄치고 노래하는 작은 인물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장면은 풍요와 물, 저승에 대한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게 해 주는 드문 자료이지만, 정확한 의미는 논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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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성장, 전성기, 쇠퇴

기원전 마지막 몇 세기 동안 멕시코 분지에는 남쪽의 쿠이쿠일코를 비롯한 여러 중심지가 경쟁했습니다. 테오티우아칸은 관개에 쓸 샘, 비옥한 흙, 가까운 흑요석 산지 덕분에 기원전 100년 무렵부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분지 남쪽의 화산 분화, 특히 쿠이쿠일코 일부를 용암으로 덮은 시틀레 화산의 분화가 사람들을 북쪽으로 옮기게 했을 수도 있지만, 분화 시기는 논쟁 중입니다.

고고학자들은 도시의 역사를 지역 지명을 딴 토기 편년 단계로 나눕니다. 대략 파틀라치케(기원전 약 100~1년), 차쿠알리(약 1~150년), 미카오틀리(약 150~200년), 틀라미밀롤파(약 200~350년), 솔랄판(약 350~550년), 메테펙(약 550~650년)입니다. 연대는 연구자마다 다르고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으로 수정되어 왔습니다. 차쿠알리 단계에 이미 수만 명이 살았을 수 있으며, 주요 피라미드는 기원후 첫 두 세기 동안 지어졌습니다.

4세기 무렵 깃털 달린 뱀 신전은 새 기단 ‘아도사다’로 일부가 가려졌고 조각들이 훼손되었습니다. 많은 학자는 이를 정치적 변화, 어쩌면 깃털 달린 뱀과 연결된 통치에서 좀 더 집단적인 통치로 돌아선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 뒤 몇 세기 동안 도시는 가장 넓은 범위와 가장 큰 영향력에 이르렀습니다.

6세기 어느 무렵, 많은 추정에 따르면 550년 무렵, 죽은 자의 거리와 시우다델라의 많은 건물이 불타고 조각이 부서졌습니다. 불길이 엘리트와 의례 건물을 겨냥했다는 점은 외부 침입보다 내부 봉기를 시사하지만, 바깥의 압력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 시기 유골에는 영양실조의 흔적이 보이며, 일부 연구자는 이 위기를 가뭄이나 530년대의 전 지구적 기후 이변과 연결합니다. 인구는 급격히 줄었지만, 유적 일부에는 그 뒤로도 수백 년 동안 사람이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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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테오티우아칸과 넓은 메소아메리카 세계

테오티우아칸의 영향은 멕시코 분지를 훨씬 넘어 퍼졌습니다. 탈루드-타블레로 건축, 원통형 세발 그릇 같은 테오티우아칸식 토기, 고글 같은 눈을 한 폭풍신 표장을 단 테오티우아칸 전사의 모습이 과테말라 고원의 카미날후유부터 오악사카의 몬테알반까지 메소아메리카 곳곳의 유적에 나타납니다.

가장 극적인 증거는 마야 비문에서 나옵니다. 과테말라 티칼의 비문에는 378년 1월의 어느 날 시야흐 카크라는 인물이 ‘도착’했고, 같은 날 티칼 왕 착 톡 이차크가 죽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얼마 뒤 ‘창 던지는 올빼미’로 알려진 인물의 아들이 새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비문학자 데이비드 스튜어트 등은 이 ‘이방인의 도착’이 테오티우아칸의 개입을 뜻하며, ‘창 던지는 올빼미’는 테오티우아칸의 통치자였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426년에는 테오티우아칸과 연결된 인물 키니치 야크스 쿡 모가 온두라스 코판에 새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 사건들이 정복이었는지, 동맹이었는지, 아니면 국가 전체가 아닌 테오티우아칸의 한 세력이 벌인 일이었는지는 논쟁 중입니다. 예컨대 고고학자 린다 만사니야는 티칼 개입이 도시에서 쫓겨난 깃털 달린 뱀 계열의 집단이 벌인 일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영향은 반대 방향으로도 흘렀습니다. 테오티우아칸에서는 마야 양식의 그림과 유물이 발견되었고, 외국인들이 도시의 여러 동네에 살았습니다. 테오티우아칸은 고립된 제국이라기보다 교역과 외교와 분쟁의 그물망 속 중심지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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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아스테카의 기억: ‘신들이 만들어진 곳’

14~15세기 메시카(아스테카)가 세력을 떨칠 무렵, 테오티우아칸은 이미 800년쯤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스테카인은 이곳을 경외했습니다. 그들은 흔히 ‘신들이 만들어진 곳’ 또는 ‘사람이 신이 되는 곳’으로 옮기는 나우아틀어 이름 테오티우아칸을 붙였고, 중앙 대로와 피라미드에도 이름을 붙였습니다.

스페인 정복 뒤 수도사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 등이 기록한 아스테카 창조 신화에 따르면, 신들은 어둠 속에서 새 태양을 만들려고 테오티우아칸에 모였습니다. 초라한 신 나나우아친이 큰 불 속에 몸을 던져 태양으로 떠올랐고, 거만한 텍시스테카틀이 뒤따라 달이 되었습니다. 이 신화는 폐허가 된 도시를 지금 세상의 시대가 태어난 곳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스테카인은 테오티우아칸으로 순례를 떠났고 그곳의 옛 유물을 가져갔습니다. 테오티우아칸의 가면과 여러 유물이 만들어진 지 수백 년 뒤 테노치티틀란의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에 봉헌물로 묻혔습니다. 한 사회가 더 오래된 문명의 유물을 유산으로 대한 이른 사례입니다.

오늘날 멕시코인에게 테오티우아칸은 국가의 상징이자 여전히 의미가 살아 있는 장소입니다. 해마다 춘분 무렵이면 태양의 피라미드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원주민 의식과 뉴에이지 의식이 관광과 나란히 열려, 접근성과 신앙과 보존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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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재발견, 발굴, 복원

유적이 완전히 잊힌 적은 없었습니다. 스페인 연대기 작가들이 이곳을 묘사했고, 학자 카를로스 데 시궨사 이 공고라는 1670년대에 이곳에서 초기 시굴을 했습니다. 19세기에는 여행자와 초기 고고학자들이 유적을 측량하고 유물을 수집했습니다.

최초의 대규모 발굴과 복원은 멕시코 독립 100주년에 맞춰 태양의 피라미드를 정비하려고 레오폴도 바트레스가 1905~1910년에 이끈 작업이었습니다. 바트레스는 원래 구조를 드러낸다고 믿고 피라미드의 채움재와 외장을 대량으로, 곳에 따라 몇 미터씩 걷어 냈습니다. 오늘날 그의 작업은 증거를 파괴하고 피라미드의 모양을 바꾸었다는 거센 비판을 받습니다.

마누엘 가미오의 1917~1922년 사업은 멕시코 인류학의 이정표였습니다. 계곡의 고고학, 역사, 그리고 지금 사는 주민을 함께 연구했고, 시우다델라를 발굴했습니다. 1962~1964년에는 호르헤 아코스타가 죽은 자의 거리를 대대적으로 복원했습니다. 1960년대 르네 미용의 테오티우아칸 지도 작성 사업은 도시 전체를 조사해 수천 지점의 지표 유물을 기록했고, 도시의 규모와 조직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뒤의 사업들은 특정 기념물과 동네에 집중했습니다. 1980~1982년 깃털 달린 뱀 신전 사업, 1998~2004년 달의 피라미드 발굴, 그리고 2003년부터 세르히오 고메스 차베스가 깃털 달린 뱀 신전 밑 약 100m 길이의 터널을 탐사한 작업이 있습니다. 약 1,800년 전에 봉인된 이 터널에서는 녹색암 인물상, 황철석 거울, 조개, 액체 수은의 흔적 등 수만 점의 유물이 나왔으며, 저승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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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논쟁: 정치 체제, 종교, 언어

정치 체제. 마야 도시들과 달리 테오티우아칸에서는 분명한 왕의 초상, 이름이 알려진 왕, 왕릉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기야마 사부로 같은 학자는 깃털 달린 뱀 신전의 희생 매장과 도상이 적어도 초기 몇 세기 동안 강력한 통치자, 어쩌면 군사적 왕권을 가리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지 카우길, 린다 만사니야 등은 특히 4세기 이후 여러 구역이나 가계를 대표하는 협의체 같은 집단적·합의적 통치 형태를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시간이 흐르며 좀 더 개인적인 통치에서 좀 더 집단적인 통치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종교. 테오티우아칸 도상에는 후대의 틀랄록과 관련된 폭풍신, 후대의 케찰코아틀과 관련된 깃털 달린 뱀, 그리고 여신이 나타납니다. 미술사학자 에스더 파스토리는 이 여신을 테오티우아칸 종교의 중심으로 보고 ‘위대한 여신’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칼 타우베 같은 학자는 그녀를 ‘거미 여인’이라 부르기도 했고, 이 이미지들이 하나의 신을 나타내는지 의문을 제기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몇 세기의 간격이 있는 만큼, 후대 아스테카의 신들을 테오티우아칸에 거꾸로 투영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위험합니다.

언어와 문자. 테오티우아칸은 벽화와 토기에 보이는 기호 체계를 썼고, 라벤티야의 채색 안뜰에는 문자 같은 기호 수십 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완전한 문자였는지는 논쟁 중입니다. 도시의 언어 후보로는 초기 나우아틀어(유토아스테카어족), 토토낙어, 오토미어 등이 거론됩니다. 2025년에는 초기 유토아스테카어를 가리키는 부분 해독을 주장하는 연구가 발표되었지만, 아직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붕괴. 6세기 위기에서 내부 갈등, 환경 스트레스, 질병, 외부 압력이 각각 얼마나 작용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며, 방사성탄소와 층위 연구가 화재 시기를 계속 다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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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증거, 방법, 보존

테오티우아칸 자체에서 나온 읽을 수 있는 역사 문헌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것은 고고학에서 옵니다. 핵심 방법은 체계적 지표 조사(지도 작성 사업처럼), 층위 발굴, 토기 편년,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벽화와 토우 분석, 그리고 골학·동위원소·고대 DNA를 통한 인골 연구입니다. 테오티우아칸과 연결된 인물을 언급하는 마야 비문은 드문 외부 문헌 증거입니다.

치아와 뼈의 스트론튬·산소 동위원소 연구는 사람들이 어디서 자랐는지를 드러내 도시로의 이주 규모를 보여 줍니다. 깃털 달린 뱀 신전과 달의 피라미드의 희생자 연구는 그 가운데 많은 수가 외지인이거나 도시로 옮겨 온 사람, 어쩌면 포로였음을 보여 주었고, 이는 전쟁과 국가 권력에 관한 논쟁과 맞닿아 있습니다.

라이다와 지표 투과 레이더 같은 원격 탐사 기술, 그리고 깃털 달린 뱀 신전 터널 탐사에 쓰인 로봇은 대규모로 파지 않고도 새 자료를 더해 주었습니다. 한편 초기 복원, 특히 태양의 피라미드에 대한 바트레스의 작업은 해석을 어렵게 합니다. 연구자들은 고대의 구조와 20세기 복원을 구별해야 합니다.

1987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 유적은 멕시코시티 주변의 도시 팽창, 불법 건축, 과도한 관광의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2004년에는 유적 부근 보호 구역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서 전국적인 논란이 일었습니다. 지역 주민, 관람객의 필요와 땅속 유적의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멕시코 국립 인류학·역사 연구소(INAH)의 계속되는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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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계획도시
정북에서 동쪽으로 약 15.5도 기운 격자가 길과 건물, 심지어 강물까지 정돈했다.
신성한 풍경
피라미드는 산을 닮고 동굴과 샘 위에 세워져, 도시를 자연과 초자연의 세계에 이었다.
공동 주택 단지
인구 대부분이 살던 여러 가구의 주거 건물. 보기 드문 도시 생활의 형태.
다민족 대도시
오악사카, 멕시코만 연안, 마야 지역에서 온 이주민이 저마다의 동네에 살았다.
원거리 영향력
테오티우아칸의 양식과 사람들이 마야 정치에 개입했다. 378년 티칼이 가장 유명한 예다.
집단 통치?
왕의 초상이 없다는 점은 적어도 후기에는 협의체나 합의제 통치였음을 시사한다. 논쟁 중인 문제다.
기억 속의 사후 세계
아스테카인은 폐허를 해와 달이 만들어진 곳으로 다시 상상했다.

기록

  1. 약 기원전 100년 — 멕시코 분지 북동부에서 테오티우아칸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
  2. 약 100년 — 태양의 피라미드가 대부분 완성. 달의 피라미드 초기 단계 건설 시작.
  3. 약 200년 — 200명 넘는 희생 매장과 함께 깃털 달린 뱀 신전 건립.
  4. 약 350년 — 아도사다 기단이 깃털 달린 뱀 신전 정면을 가림. 정치적 변화의 표시로 추정.
  5. 378년 — 테오티우아칸과 연결된 시야흐 카크가 티칼에 도착. 같은 날 티칼 왕 사망.
  6. 426년 — 테오티우아칸과 연결된 키니치 야크스 쿡 모가 코판에 왕조를 세움.
  7. 약 550년 — 도심의 주요 건물이 불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듦.
  8. 약 1450년 — 아스테카인이 폐허를 신들이 해와 달을 만든 곳으로 숭배.
  9. 1905년 — 레오폴도 바트레스가 태양의 피라미드 발굴·복원 시작(1910년까지).
  10. 1962년 — 르네 미용의 테오티우아칸 지도 작성 사업 조사 시작. 호르헤 아코스타의 대로 복원 시작.
  11. 1987년 —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12. 2003년 — 세르히오 고메스 차베스가 깃털 달린 뱀 신전 밑 터널을 발견.

용어 풀이

메소아메리카
옥수수 농사, 구기 경기, 의례 달력 같은 특징을 공유한 멕시코 중남부와 중앙아메리카 일부의 문화권.
멕시코 분지
테오티우아칸, 뒷날의 테노치티틀란과 멕시코시티가 자리 잡은 높고 닫힌 분지.
탈루드-타블레로
비스듬한 벽(탈루드)과 테두리를 두른 수직 판(타블레로)을 결합한 건축 형식.
공동 주택 단지
여러 가구가 사는, 방과 마당이 많은 담장 두른 주거 건물.
흑요석
깨뜨리면 아주 날카로운 날이 되는 천연 화산 유리. 테오티우아칸의 핵심 자원.
시우다델라
스페인어로 ‘성채’. 깃털 달린 뱀 신전을 품은 큰 울타리.
깃털 달린 뱀
새와 뱀을 합친 메소아메리카의 신. 후대 아스테카인은 케찰코아틀이라 불렀다.
폭풍신
고글 같은 눈을 한 비와 번개의 신. 후대 아스테카의 틀랄록과 관련된다.
봉헌 매장
새 건물을 신성하게 하려고 희생된 사람·동물이나 물건을 묻는 일.
동위원소 분석
뼈와 치아의 화학 분석으로 그 사람이 어디서 자랐고 무엇을 먹었는지 알아내는 방법.
INAH
유적을 관리하는 멕시코 국립 인류학·역사 연구소.

묻고 답하기

테오티우아칸은 누가 지었나요?

거기 살던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자기를 뭐라고 불렀는지는 몰라요. 몇 세기 뒤에 나타난 아스테카 사람들은 아니고, 아마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을 거예요.

태양의 피라미드는 얼마나 큰가요?

밑변 한 변이 약 220~230m이고 지금 높이는 약 65m예요. 아메리카 대륙에서 손꼽히는 큰 피라미드예요.

왕이 있었나요?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왕의 초상이나 무덤이 없습니다. 초기에는 강력한 통치자가 있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고, 특히 후기에는 협의체가 다스렸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쳤나요?

네. 깃털 달린 뱀 신전에서 200명 넘는 희생자가, 달의 피라미드에서도 많은 희생자가 건물을 봉헌할 때 묻힌 채 발견되었습니다.

테오티우아칸은 왜 쇠퇴했나요?

550년 무렵 중요한 건물이 많이 불탔는데, 아마 내부 봉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가뭄과 식량 부족 같은 압력도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논쟁 중입니다.

테오티우아칸의 문자를 읽을 수 있나요?

확실하게는 못 읽습니다. 도시에서는 많은 기호를 썼고 2025년 한 연구가 부분 해독을 제안했지만, 읽는 법이나 그것이 완전한 문자 체계였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합의는 없습니다.

테오티우아칸이 정말 티칼을 정복했나요?

마야 비문은 378년 테오티우아칸과 연결된 이방인들의 도착과 왕조 교체를 기록합니다. 그것이 정복이었는지, 동맹이었는지, 한 세력의 행동이었는지는 논쟁 중입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Teotihuacan. Wikipedia(영어)
  2. 테오티우아칸. 위키백과
  3. Pre-Hispanic City of Teotihuacan.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4. Pyramid of the Sun. Wikipedia(영어)
  5. Pyramid of the Moon. Wikipedia(영어)
  6. Temple of the Feathered Serpent, Teotihuacan. Wikipedia(영어)
  7. Great Goddess of Teotihuacan. Wikipedia(영어)
  8. George L. Cowgill, Ancient Teotihuacan: Early Urbanism in Central Mexico.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9. Esther Pasztory, Teotihuacan: An Experiment in Living.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97
  10. Saburo Sugiyama, Human Sacrifice, Militarism, and Rulership: Materialization of State Ideology at the Feathered Serpent Pyramid, Teotihuaca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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