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을 떠올려 보세요. 땅은 검붉은 작은 돌로 덮여 있어요. 그 돌을 주워 옆으로 쌓아 두면 아래에서 옅은 노란빛 흙이 드러나지요. 이렇게 하면 땅에 선이 하나 그려져요. 비도 거의 없고 센 바람도 드물어서, 이 선은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나도 남아 있을 수 있답니다.
페루 남부의 나스카 문화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했어요. 몇 킬로미터나 곧게 뻗은 직선, 커다란 삼각형과 사다리꼴, 소용돌이와 지그재그를 그렸지요. 동물과 식물도 그렸어요. 벌새, 꼬리가 돌돌 말린 원숭이, 거미, 콘도르, 범고래, 꽃과 나무가 있어요. 축구장만 하거나 그보다 더 큰 그림도 있어요.
그림이 너무 커서 바로 옆에 서 있으면 무슨 모양인지 잘 알 수 없어요. 근처 언덕이나 비행기에서 보면 그제야 모양이 보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을 날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반듯하게 그렸을까?' 하고 궁금해해요. 답은 간단한 도구였던 것 같아요. 나무 말뚝과 끈, 꼼꼼한 측량, 그리고 많은 사람의 협동이지요. 오늘날 사람들이 실제로 해 보았더니 며칠 만에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왜 이 선들을 그렸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몰라요. 학자들은 사막에서 가장 귀한 물, 그리고 의식(제사)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줄지어 선을 따라 걸었을지도 몰라요. 커다란 야외 신전의 길을 걷듯이요. 그리고 깨뜨린 그릇을 선물처럼 두고 갔어요.
오늘날 나스카 지상화는 세계유산이에요. 아주 약해서 자동차 한 대, 심지어 발자국만으로도 몇백 년 가는 상처가 생겨요. 그래서 방문객들은 선 위를 걷지 않고 전망탑이나 언덕, 작은 비행기에서 구경해요.
한눈에 보기
- 제작 시기
- 대략 기원전 500년~기원후 500년. 파라카스 문화가 전통을 시작했고, 유명한 그림 대부분은 나스카 문화(약 기원전 100년~기원후 800년)가 만들었다
- 장소
- 페루 남부 이카주 나스카와 팔파 사이의 사막 고원(팜파), 리마에서 남쪽으로 약 400km
- 종류
- 지상화(geoglyph): 땅 표면에 만든 그림. 직선, 기하학 도형, 동식물 형상 포함
- 기법
- 산화철로 검게 덮인 표면 돌을 걷어 내 아래의 밝은 흙을 드러냄. 선의 깊이는 대개 10~15cm
- 규모
- 선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1,300km 이상, 팜파 약 50km²에 분포. 가장 큰 그림은 수백 m
- 대표 그림
- 벌새(약 93m), 원숭이(약 93×58m), 콘도르(약 134m), 거미(약 47m)
- 지정
-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나스카와 팔파의 선과 지상화)
- 용도
- 논쟁 중. 물, 의례 보행과 순례, 친족·공동체 집단과 연결하는 해석이 유력하다
쉬움
나스카 지상화란 무엇인가
나스카 지상화는 페루 남부 해안 사막에 있는 거대한 지상화(땅 위에 만든 그림)의 무리다. 오늘날 나스카와 팔파라는 도시 주변 강 계곡들 사이에 펼쳐진 평평하고 돌 많은 고원, 곧 팜파(pampa) 위에 있다. 이름은 대부분을 만든 고대 나스카(Nasca) 문화와, 지금도 같은 이름을 쓰는 도시와 강에서 왔다.
지상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많은 것은 직선으로, 어떤 선은 언덕과 마른 강바닥을 가로질러 몇 km나 거의 완벽하게 곧게 뻗는다. 다음은 기하학 도형이다. 긴 사다리꼴과 삼각형, 소용돌이, 지그재그, 직사각형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동물·식물·사람 비슷한 형상, 이른바 생물 형상(biomorph)이 있다. 중심 팜파에는 이런 큰 동식물 그림이 70개 안팎 있고, 최근 조사로 언덕 비탈과 옛 오솔길 옆에서 작은 그림 수백 개가 더 발견되었다.
선을 모두 이으면 1,300km가 넘고, 약 50km²의 넓이에 퍼져 있다. 이를 보호하는 세계유산 구역은 이보다 훨씬 넓은데, 주변 경관과 팔파 근처 언덕의 지상화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선들은 한꺼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500년 무렵부터 기원후 500년 무렵까지 약 천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본다. 가장 이른 것들은 주로 팔파 근처 언덕에 있으며 파라카스 문화에 속하고, 평평한 팜파의 유명한 그림 대부분은 그 뒤를 이은 나스카 문화의 것이다.
쉬움
그림을 '읽는' 법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동물 그림이다. 벌새는 길이 약 93m로, 길고 곧은 날개와 바늘 같은 부리를 지녔다. 약 93×58m 크기의 원숭이는 꼬리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말려 있다. 거미는 약 47m, 날개를 편 콘도르는 약 134m다. 그 밖에 범고래, 도마뱀, 왜가리 비슷한 새, 개, 꽃, 나무, 한 쌍의 손도 있다. 가파른 언덕 비탈에는 둥근 머리를 한 높이 약 30m의 형상이 있는데, 흔히 '우주인' 또는 '올빼미 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큰 동물 그림들 상당수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교차하지 않는 하나의 이어진 선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선은 한쪽에서 들어와 동물의 윤곽 전체를 따라간 뒤 다시 밖으로 나간다. 이는 그림이 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걷기 위한 길이었음을 시사한다. 벌새의 윤곽을 따라 걷는 사람은 새 전체를 한 바퀴 돌아 처음 들어온 곳으로 나오게 된다.
직선들은 흔히 낮은 자연 언덕이나 둔덕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선 중심(line centre)' 또는 '방사 중심'이라 부른다. 한 중심에서 열 개가 넘는 선이 바퀴살처럼 여러 방향으로 퍼지기도 한다. 어떤 선은 강이나 물이 나는 곳, 산을 향하고, 어떤 선은 한 중심과 다른 중심을 잇는다.
사다리꼴은 지상화 가운데 가장 큰 편으로, 길이가 수백 m에 이르기도 한다. 한쪽은 넓고 다른 쪽은 좁은데, 상당수가 안데스의 우기에 물이 흘러내리는 강 계곡 쪽을 향한다. 넓게 치워진 바닥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로 쓰였을 수 있다.
쉬움
어떻게 만들었을까
나스카 근처 사막 표면은 작은 돌로 덮여 있는데, 이 돌들은 오랜 세월 산화철, 곧 자연적인 녹 같은 검붉은 막으로 어두워졌다. 바로 아래에는 더 밝은 누르스름한 회색 흙이 있다. 선을 만들려면 검은 돌을 주워 내거나 긁어 내 가장자리에 쌓으면 된다. 그러면 깊이 10~15cm쯤 되는 옅은 띠가 생기고, 양옆으로 낮은 돌무더기가 테두리를 이룬다. 많은 선의 폭은 약 30cm지만, 2m 가까운 것도 있고 사다리꼴은 훨씬 넓다.
그림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마법이 아니라 계획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일부 선의 끝에서 나무 말뚝의 흔적을 찾았는데, 말뚝과 끈으로 직선 구간을 잡았음을 시사한다. 작은 밑그림을 격자로 키우거나, 길이를 잰 끈과 고정점을 이용해 확대할 수도 있었다. 1982년 미국의 조사가 조 니켈(Joe Nickell)과 소수의 팀은 미국 켄터키주의 들판에서 나무 말뚝과 끈, 간단한 측량법만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고 이틀 남짓 만에 134m 콘도르 그림을 재현했다.
선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기후에 있다. 나스카 팜파는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 가운데 하나다. 비가 극히 드물고, 돌 많은 표면이 열을 머금어 지면 가까이에 따뜻한 공기층이 생기면서 바람이 약해진다. 석회 성분이 많은 아래층 흙은 아침 안개가 닿으면 조금 굳는다. 그래서 2천 년 전에 치운 선이 오늘날까지 보일 수 있다. 현대인이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중급
만든 사람들: 파라카스와 나스카
나스카 이전 페루 남부 해안에는 복잡한 직물과 파라카스반도의 무덤으로 유명한 파라카스 문화(대략 기원전 800년~기원전 100년)가 있었다. 팔파 지역에서 고고학자들은 파라카스 공동체가 만든 지상화를 확인했다. 흔히 전사나 초자연적 존재로 해석되는 사람 비슷한 형상들로, 아래 계곡에서 올려다볼 수 있는 언덕 비탈에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팜파의 유명한 나스카 그림보다 몇 세기 앞선다.
나스카 문화는 기원전 100년 무렵 파라카스 전통에서 자라나 기원후 800년 무렵까지 번성했다. 나스카 사람들은 수도를 둔 하나의 제국을 세우지 않았다. 강 계곡의 마을에 살며 옥수수, 콩, 호박, 목화 등을 기르고 해안에서 고기를 잡았다. 이들은 뛰어난 도공이어서, 그릇에 열 가지가 넘는 색으로 새, 물고기, 범고래, 식물, 전사, 전리품 머리, 신화 속 존재 같은 풍부한 그림을 그렸다. 벌새와 범고래 같은 몇몇 도상은 팜파에도 나타난다.
나스카 전기의 가장 중요한 종교 중심지는 나스카 계곡의 카우아치(Cahuachi)였다. 흙벽돌(아도베) 둔덕과 광장의 무리로, 대략 기원후 1~500년에 쓰였다. 고고학자 헬레인 실버먼(Helaine Silverman)과 주세페 오레피치(Giuseppe Orefici)의 연구에 따르면 카우아치는 도시가 아니라 의례 중심지였다. 평소에는 인구가 적다가 축제 때 주변 계곡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며 크게 늘었다. 카우아치에서는 팜파 일부가 내려다보이며, 많은 학자가 지상화와 이 중심지를 하나의 신성한 경관을 이루는 부분으로 본다.
물은 나스카 삶의 중심이었다. 안데스에서 내려오는 강은 1년의 상당 기간 말라 있곤 하다. 나스카 지역에는 푸키오(puquio)라 불리는 지하 수로와 나선형 출입 우물도 있어, 지하수를 끌어 쓴다. 수십 개가 지금도 물을 공급한다. 많은 고고학자가 푸키오를 나스카 후기, 약 기원후 500년 무렵의 것으로 보지만, 스페인 정복 뒤에 만들어졌거나 고쳐졌다는 주장도 있어 연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중급
왜 만들었을까: 주요 학설
천문학설. 선을 처음 자세히 연구한 학자들은 이것이 거대한 달력이라고 생각했다. 1941년 미국 역사가 폴 코속(Paul Kosok)은 남반구의 동지에 해가 한 선을 따라 지는 것을 보았다. 코속과 함께 일하다 평생을 선 연구에 바친 독일 출신 수학자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는 이를 발전시켜, 선들이 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는 지점을 표시했다는 학설을 세웠다. 그러나 뒤에 천문학자 제럴드 호킨스(Gerald Hawkins)와 앤서니 애브니(Anthony Aveni)가 검증해 보니, 천문 현상을 가리키는 선의 수는 우연히 기대할 수 있는 정도를 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천문학을 주된 목적으로 보는 학자는 드물다. 다만 일부 개별 정렬은 의미가 있었을 수 있다.
물과 풍요. 많은 연구자가 선을 물을 찾는 일과 연결한다. 인류학자 요한 라인하드(Johan Reinhard)는 1980년대에, 선이 산과 물을 중심에 둔 안데스 전역의 종교의 일부이며 선과 그림을 따라 걷는 것은 물과 풍요를 비는 방식이었다고 주장했다. 어떤 선은 물이 나는 곳이나 강이 흘러나오는 산을 가리킨다. 연구자 데이비드 존슨(David Johnson)은 일부 지상화가 푸키오로 흘러드는 지하 수맥을 표시한다고 보았지만, 이 좀 더 구체적인 주장은 널리 확인되지 않았다.
걷기, 의례, 순례. 많은 그림이 하나의 이어진 선으로 그려졌고 선 위에 깨진 토기 조각이 흩어져 있다는 점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고고학자는 지상화가 위에서 보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걸으라고 만든 것이라고 본다. 의례 때 행렬이 선을 따라 움직였을 수 있고, 어쩌면 카우아치를 오가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애브니 등은 특정 선과 선 중심을 특정 친족·공동체 집단이 만들고 관리했으며, 그래서 선을 만들고 걷는 일이 곧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이기도 했다고 본다.
하나의 답은 없다. 천 년에 걸쳐 선의 의미는 시기마다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모임에 쓰인 사다리꼴, 물이 나는 곳으로 이어지는 직선, 의례에서 걷던 동물 그림은 같은 종교 세계에 속하더라도 서로 다른 목적을 지녔을 수 있다.
중급
외계인, 열기구, 그 밖의 신화
그림이 하늘에서 가장 잘 보이다 보니 나스카 지상화에는 기상천외한 설명이 따라붙었다. 스위스 작가 에리히 폰 데니켄(Erich von Däniken)은 베스트셀러 『신들의 전차』(1968)에서 이 선들이 외계 방문자를 위한 활주로나 신호였다고 주장했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전적으로 부정한다. 선은 느슨한 자갈을 얕게 긁어 낸 것이라 어떤 비행체도 쓸 수 없고, 간단한 도구로 재현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이 지역 사람들의 미술·토기·종교와 분명히 이어져 있다.
나스카 사람들이 열기구를 타고 작업을 감독했다는 대중적 학설도 있었지만, 이 역시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 실제로 많은 그림은 주변 산기슭에서도 잘 보이고, 팔파의 언덕 그림은 계곡 바닥에서 보라고 만든 것이다.
이런 신화의 인기에는 문제도 숨어 있다. 아메리카의 고대인들은 이런 작업을 스스로 계획할 수 없었으리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 연구는 정반대를 강조한다. 지상화는 안데스 원주민의 지식과 조직력, 종교적 상상력이 이룬 인상적인 성취다.
중급
20세기의 재발견과 연구
현지 사람들은 늘 선의 존재를 알았고, 여행자들도 수백 년 동안 그 위를 지나다녔다. 선이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된 것은 20세기다. 1927년 페루 고고학자 토리비오 메히아 헤스페(Toribio Mejía Xesspe)가 산기슭을 걷다가 선을 알아보았고, 뒤에 이를 신성한 길로 해석했다. 1920년대 말부터 이 지역 위로 상업 항공편이 다니면서 무늬가 더 널리 알려졌다.
폴 코속은 1940~41년에 선을 연구했다. 마리아 라이헤(1903~1998)는 1941년 그와 함께 일하기 시작해 50년 넘게 연구를 이어 갔다. 그림을 재고 지도로 그리고, 쓸어서 깨끗이 하고, 보호를 호소했다. 1949년 『사막의 신비(The Mystery on the Desert)』를 펴내 그 수입을 보존 활동에 썼고, 페루 당국을 설득해 출입을 제한하게 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팜파 근처에 살았고, 그 집은 지금 박물관이 되었다.
1980년대부터 앤서니 애브니, 헬레인 실버먼, 요한 라인하드 같은 고고학자·천문학자들은 관심을 천문학에서 걷기, 의례, 물, 사회 조직으로 옮겼다. 마르쿠스 라인델(Markus Reindel)과 조니 이슬라(Johny Isla)가 이끈 독일-페루 공동 조사단은 팔파 지역에서 장기 연구를 벌여 수백 개의 지상화를 기록하고 일부 선 끝의 구조물을 발굴했다.
중급
드론과 인공지능으로 찾은 새 그림
연구는 유명한 그림에서 멈추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사카이 마사토(坂井正人)가 이끄는 일본 야마가타대학 조사단이 팜파를 체계적으로 조사했다. 조사단은 2006~2012년에 약 100개의 새 지상화를 발표했고, 2019년에는 143개를 더 보고했는데 그중 하나는 기계학습의 도움으로 찾았다. 2020년에는 전망대 주변을 정비하던 중 가파른 비탈에서 고양이 모양의 큰 그림이 드러났다.
2024년 야마가타대학 조사단은 IBM 연구자들과 함께, 고해상도 항공 사진에서 후보를 골라내는 인공지능 모델의 안내를 받아 약 6개월의 현장 조사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형상 지상화 303개를 찾았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이로써 이 지역에서 알려진 형상 지상화의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새로 찾은 그림에는 앵무새, 고양이, 원숭이, 범고래, 그리고 잘린 머리와 가축을 보여 주는 듯한 장면이 있다.
이 발견은 중요한 구분을 확인해 주었다. 선형(line-type) 그림, 곧 팜파의 큰 윤곽 그림은 대개 야생 동물을 그렸고 의례 활동과 관련된 듯하다. 부조형(relief-type) 그림은 윤곽만 긋는 대신 도형 안쪽의 돌을 치워 만든 것으로, 훨씬 작고(흔히 10m 미만) 옛 오솔길 옆에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작은 부조형 그림이 길을 걷는 사람들과 정보나 메시지를 나누는 역할을 했고, 큰 선형 그림은 공동체가 쓰는 의례 공간이었다고 본다.
중급
위협과 보존
선이 2천 년을 버틴 것은 무엇보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삶은 훨씬 위험하다. 1930년대 팜파를 가로질러 놓인 판아메리카 고속도로는 도마뱀 그림 한가운데를 곧바로 관통한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바퀴 자국은 선만큼이나 오래 남을 수 있다. 정착민, 비공식 채굴, 채석, 농업도 보호 구역의 가장자리를 파고든다.
널리 알려진 사고도 여러 번 있었다. 2014년 12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리마에서 열린 기후 회의에 맞춰 메시지를 펼치려고 벌새 그림 옆 구역에 들어가 연약한 표면에 발자국을 남겼고, 단체는 사과했다. 2018년에는 한 트럭 운전사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지상화 세 개의 일부에 깊은 바퀴 자국을 냈다. 랠리 대회의 오프로드 차량이 핵심 구역 밖의 지상화를 훼손한 일도 있다.
유적은 페루 문화부가 관리하며, 출입 제한, 경비, 도로변 전망탑, 관광객용 경비행기 비행 등을 운영한다. 기후 변화도 걱정거리다. 강한 엘니뇨가 몰고 오는 이례적인 폭우는 선 위로 흙을 덮거나 선을 깎아 낼 수 있다.
심화
학계의 논쟁: 연대, 기능, 그리고 '위에서 본 시선'의 문제
연대. 지상화는 무언가를 더해 만든 것이 아니라 덜어 내 만든 것이어서 연대를 정하기가 어렵다. 고고학자들은 주로 간접 증거에 기댄다. 연대가 알려진 파라카스·나스카 토기와 직물의 양식과 그림을 비교하고, 선 위나 옆의 토기 조각을 토기 편년 단계에 맞추며, 선 끝의 돌 구조물·봉헌물·기둥 구멍을 발굴하고, 일부 연구에서는 묻힌 지표면의 발광 연대 측정이나 관련 유기물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같은 과학적 방법을 쓴다. 그 결과 얻은 편년은 폭이 넓다. 팔파의 언덕 그림은 대체로 파라카스, 팜파의 생물 형상 상당수는 나스카 전기, 직선과 사다리꼴 상당수는 나스카 중·후기로 보이지만, 개별 선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재사용되고 고쳐졌다.
보는 것인가, 걷는 것인가. 항공 사진에서 출발한 초기 연구는 그림이 하늘에서, 사람이 아니라면 신들이 보도록 만든 것이라 가정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땅 위에서의 걷기와 쓰임으로 강조점이 옮겨 갔다. 한 줄 그림, 선 표면에 난 발길 자국, 토기 봉헌물, 물과 모임의 장소 주변에 선이 몰려 있다는 점 등이 근거다. 2024년 오솔길 옆 부조형 그림 연구는 세 번째 관점을 더한다. 어떤 지상화는 가까이 지나가는 보행자에게 보이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하나의 모델을 고집하지 않고, 여러 집단이 시기마다 다르게 쓴 경관으로 본다.
사회 조직. 핵심 질문은 누가 선을 만들고 관리했느냐다. 나스카에는 하나의 수도가 없었으므로, 지상화는 여러 작은 공동체나 친족 집단(후대 안데스의 아이유ayllu 같은 단위)이 각자 자기 선을 맡아 만든 것일 수 있다. 특히 실버먼과 애브니와 관련된 이 견해는 선을 하나의 거대한 설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기록으로 본다. 비판자들은 쿠스코에서 사방으로 뻗은 잉카의 세케(ceque) 체계 같은 후대 안데스 제도와의 비교가 시사적이긴 해도 천 년 앞선 사회에 대해 증명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다시 보는 천문학. 라이헤의 달력설에 대한 통계적 반박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일부 연구자는 특정 정렬이나, 안데스 사람들이 '어두운 구름 별자리'로 알아보는 은하수의 검은 부분과 그림의 관련을 계속 주장한다. 검증이 어려워 소수 의견으로 남아 있다.
심화
증거와 방법
지도 작성.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선은 지상 측량, 줄자, 항공 사진으로 지도화되었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위성 영상, 드론, 사진 측량, 항공 레이저 스캐닝(라이다)을 써서 희미하거나 일부 지워진 지상화를 찾아내고 깊이와 단면을 잰다. 최근 인공지능을 활용한 조사는 기계학습이 탐색 범위를 좁혀 줄 수 있음을 보여 주지만, 모든 후보는 여전히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발굴. 특히 팔파 지역에서 선 끝과 사다리꼴을 발굴한 결과 작은 돌 단, 기둥 구멍, 그리고 토기·작물·바다 조개 같은 봉헌물이 나왔다. 이는 지상화가 의례 행위의 장소였다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카우아치 발굴은 의례 건축과 봉헌물, 무덤을 드러내어 팜파를 종교적 맥락 속에 놓게 해 준다.
환경. 강 퇴적물과 꽃가루에 대한 고기후 연구는 나스카 사람들이 점점 건조해지는 환경에 살았음을 시사한다. 일부 연구자는 기원후 500~750년 무렵 나스카 문화의 쇠퇴를 가뭄, 엘니뇨로 인한 홍수, 그리고 농경지를 침식에 노출시킨 토종 우아랑고 나무(프로소피스) 벌채가 겹친 결과로 본다. 이런 환경 변화는 물에 대한 의례적 관심이 왜 그토록 강했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증거의 한계. 나스카 사람들은 문자를 남기지 않았으므로 선을 설명하는 기록이 없다. 모든 해석은 고고학, 스페인 정복 뒤 기록된 후대 안데스 문화와의 비교, 지상화 자체에 대한 꼼꼼한 연구에 기댄다. 조심스러움, 그리고 여러 가설을 함께 붙들 줄 아는 태도가 좋은 나스카 연구의 특징인 까닭이다.
핵심 개념
- 지상화(geoglyph)
- 땅 위에 만든 큰 그림. 나스카처럼 표면을 걷어 내거나 돌을 늘어놓아 만든다. 나스카 지상화가 가장 유명한 예다.
- 신성한 경관
- 선, 카우아치 의례 중심지, 강과 산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적 공간을 이루었다는 생각.
- 물과 풍요
-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의 하나에서, 많은 선은 물과 풍작을 비는 의례와 연결된 듯하다.
- 선을 걷기
- 한 줄 그림, 닳은 길, 토기 봉헌물은 지상화가 위에서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의례 때 걷도록 만든 것임을 시사한다.
- 공동체 노동
- 선은 간단한 도구로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이 만들었고, 친족·공동체 집단마다 자기 선을 맡았을 수 있다.
- 선형 그림과 부조형 그림
- 팜파의 큰 윤곽 그림은 의례용으로, 오솔길 옆 작은 부조형 그림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이도록 만든 것으로 보인다.
- 취약성
- 2천 년을 버틴 선도 차량 한 대에 몇 분 만에 망가질 수 있어, 보존은 사람들을 표면에서 떨어뜨려 놓는 데 달려 있다.
기록
- 약 기원전 400년 — 파라카스 공동체가 팔파 근처 언덕 등에 지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파라카스 단계, 대략 기원전 400~200년).
- 약 기원전 100년 — 페루 남부 해안에서 파라카스 전통을 이어 나스카 문화가 등장한다.
- 약 1년 — 카우아치가 나스카 계곡의 주요 의례 중심지가 된다(약 기원후 500년까지 사용).
- 약 500년 — 팜파에서 선을 만들던 주된 시기가 끝나 간다.
- 약 750년 — 가뭄, 홍수, 삼림 벌채 속에 나스카 문화가 쇠퇴하고 고원의 와리 문화 영향이 커진다.
- 1927년 — 페루 고고학자 토리비오 메히아 헤스페가 선을 조사하고 신성한 길로 해석한다.
- 1941년 — 폴 코속이 동지 일몰과 선의 정렬을 관찰하고, 마리아 라이헤가 수십 년에 걸친 연구를 시작한다.
- 1949년 — 마리아 라이헤가 『사막의 신비』를 펴낸다.
- 1968년 — 에리히 폰 데니켄의 『신들의 전차』가 '고대 우주인' 신화를 퍼뜨린다. 고고학계는 이를 부정한다.
- 1994년 — 선과 지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오른다.
- 2014년 —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벌새 그림 옆의 지면을 훼손한다.
- 2024년 — 야마가타대학과 IBM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조사로 새 형상 지상화 303개를 보고한다.
용어 풀이
- 지상화
- 땅 위에 만든 큰 그림이나 무늬.
- 팜파
- 평평하고 트인 평원. 나스카에서는 강 계곡들 사이의 돌 많은 사막 고원을 가리킨다.
- 생물 형상(biomorph)
- 동물이나 식물처럼 살아 있는 것의 모양을 한 그림.
- 사다리꼴
- 한 쌍의 변이 평행한 사각형. 나스카의 사다리꼴 가운데는 길이가 수백 m인 것도 있다.
- 선 중심(방사 중심)
- 여러 직선이 바퀴살처럼 뻗어 나가는 낮은 언덕이나 둔덕.
- 산화철
- 사막 돌 표면을 검붉게 만드는 녹 같은 화합물.
- 카우아치
- 나스카 계곡에 있는 흙벽돌 의례 중심지. 약 기원후 1~500년에 쓰였으며 축제 때 사람들이 모였다.
- 푸키오
- 나스카 지역의 지하 수로와 나선형 출입 우물. 만들어진 시기는 논쟁 중이다.
- 파라카스 문화
- 페루 남부 해안에서 나스카보다 앞선 문화. 직물과 초기 지상화로 알려져 있다.
- 고고천문학
- 옛사람들이 하늘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용했는지, 기념물의 천문 정렬 가능성 등을 연구하는 분야.
묻고 답하기
나스카 지상화는 누가 만들었나요?
페루 남부의 원주민들이에요. 먼저 파라카스 문화가, 그리고 특히 나스카 문화가 약 천 년에 걸쳐 만들었어요.
하늘에서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그림을 그렸나요?
계획과 간단한 도구로요. 나무 말뚝과 끈, 격자, 협동이면 충분해요. 현대에 실험해 보니 며칠 만에 큰 그림을 재현할 수 있었어요.
외계인이 만들었나요?
아니요. 그런 증거는 없고, 선은 이 지역의 미술·종교와 분명히 이어져 있어요. 외계인설은 고대 페루인이 스스로 이런 일을 계획할 수 없었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어요.
선이 왜 사라지지 않았나요?
팜파는 매우 건조하고 비가 거의 오지 않으며 지면의 바람도 약해서, 오래전에 치운 선도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수백 년 동안 보일 수 있어요.
나스카 지상화 위를 걸어 볼 수 있나요?
안 돼요. 걷거나 차를 몰면 오래 남는 손상이 생겨요. 방문객은 도로변 전망탑, 근처 언덕, 경비행기에서 봐요.
지상화는 천문 달력이었나요?
마리아 라이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제럴드 호킨스와 앤서니 애브니의 통계 연구에서는 천문 정렬이 우연보다 많지 않았어요. 몇몇 정렬은 의미가 있었을 수도 있어요.
돌을 치워 만든 것의 연대를 어떻게 정하나요?
주로 간접적으로 정해요. 선에 남은 토기 조각, 연대가 알려진 토기와 그림 양식의 비교, 선 끝에서 발굴한 봉헌물, 때로는 관련 유기물의 과학적 연대 측정을 이용해요.
지금도 새 그림이 발견되나요?
네. 2019년 이후 드론, 라이다, 인공지능 영상 분석으로 수백 개의 새 그림이 발견되었어요. 특히 옛길 옆의 작은 부조형 그림이 많아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 Lines and Geoglyphs of Nasca and Palpa.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Nazca Lines. Wikipedia
- 나스카 라인. 위키백과
- Nazca culture. Wikipedia
- Paracas culture. Wikipedia
- Cahuachi. Wikipedia
- Puquios. Wikipedia
- Maria Reiche. Wikipedia
- Anthony F. Aveni, Between the Lines: The Mystery of the Giant Ground Drawings of Ancient Nasca, Peru. University of Texas Press, 2000
- Helaine Silverman and Donald A. Proulx, The Nasca. Blackwell, 2002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