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마하바라타

महाभारत (Mahābhārata)

약 기원전 400년 – 399년 · 쿠루크셰트라 (전승상의 장소)

한 문장으로

『마하바라타』는 왕국을 두고 큰 전쟁을 벌이는 두 사촌 집안의 이야기이자, 옳은 일을 하기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인도의 아주 오래되고 거대한 이야기책입니다.

마하바라타
이미지: Unknown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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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합친 것보다 열 배쯤 긴 이야기책을 떠올려 보세요. 그게 바로 『마하바라타』예요. 세상에서 가장 긴 시 가운데 하나이고, 인도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2천 년 넘게 전해 왔어요.

주인공은 두 무리의 사촌이에요. 판다바 다섯 형제는 저마다 잘하는 게 달라요. 한 명은 거짓말을 절대 안 하고, 한 명은 엄청난 힘장사이고, 한 명은 세상에서 활을 제일 잘 쏘지요. 사촌인 카우라바 백 형제는 이들을 시기해서 왕국을 다 차지하고 싶어 해요.

카우라바는 속임수 주사위 놀이로 판다바를 이겨서, 다섯 형제를 13년 동안 숲으로 쫓아내요. 형제들이 돌아와 땅을 돌려 달라고 하자 사촌들은 거절하지요. 그래서 쿠루크셰트라라는 들판에서 18일 동안 어마어마한 전쟁이 벌어져요.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활의 명수 아르주나는 가족과 스승에게 활을 겨눠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 슬퍼서 주저앉아요. 그때 친구이자 사실은 신인 크리슈나가 의무와 용기, 그리고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이야기해 줘요. 이 대화가 바로 『바가바드 기타』이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읽어요.

『마하바라타』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아요. 이긴 쪽도 잃은 것이 너무 많아 슬퍼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이 이야기를 읽으며 공정함과 우정, 좋은 선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요.

한눈에 보기

형성 시기
기원전 400년경 ~ 기원후 400년경(주로 기원전 200년 ~ 기원후 200년경). 정확한 연대는 논쟁 중
지역
남아시아 북부. 이야기의 무대는 갠지스강·야무나강 유역과 쿠루크셰트라 평원(인도 하리아나주)
언어
산스크리트어(서사시 산스크리트, 주로 슐로카 운율)
형식
18권(파르반)으로 된 서사시(이티하사), 부록 『하리밤샤』
분량
전통적으로 ‘10만 송’. 푸네 비판본은 일부 산문을 포함해 약 8만 9천 단위
전승상의 저자
성자 비야사(크리슈나 드바이파야나). 학계는 여러 세대의 시인·편찬자가 만든 것으로 봄
대표 부분
『바가바드 기타』(제6권, 비판본 23~40장)
의의
힌두 전통의 근본 문헌이자 남아시아·동남아시아가 공유하는 이야기 세계

쉬움

『마하바라타』란 무엇인가

『마하바라타』(Mahābhārata)는 흔히 ‘바라타 후손들의 위대한 이야기’라고 풀이되는 산스크리트어 서사시다. 산스크리트어는 고대 인도의 고전어다. 작품은 쿠루 왕가가 두 갈래로 갈라져 파멸적인 전쟁 끝에 스스로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다. 이 중심 줄거리 주위로 수백 편의 이야기, 설교, 법과 윤리에 관한 문답, 족보, 성지 순례 안내까지 한데 모여 있다.

인도 전통은 이 작품을 ‘이티하사(itihāsa)’, 곧 ‘그러했노라’는 뜻의 역사 서사로 분류한다. 지나간 일을 들려주면서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작품은 스스로 “여기 있는 것은 다른 곳에도 있을 수 있으나, 여기 없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는데, 인간 경험 전체를 담겠다는 야심을 드러내는 자부심이다.

전통적으로 10만 송(頌)이라 일컬어지니, 그리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합친 것보다 몇 배나 길다. 대부분은 16음절 두 행으로 된 유연한 운율 ‘슐로카’로 지어졌다. 가장 유명한 부분인 『바가바드 기타』(‘거룩한 이의 노래’)는 약 700송의 대화편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종교·철학 문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

쉬움

줄거리: 사촌 형제, 주사위 놀이, 그리고 18일 전쟁

쿠루 왕 판두와 눈먼 형 드리타라슈트라의 집안은 사뭇 다르다. 판두의 다섯 아들 판다바는 왕비 쿤티와 마드리가 신들에게서 얻은 아들들로, 정의로운 유디슈티라, 괴력의 비마, 활의 명수 아르주나, 쌍둥이 나쿨라와 사하데바다. 드리타라슈트라와 왕비 간다리 사이에는 두료다나를 맏이로 한 백 명의 아들, 카우라바가 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왕위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큰할아버지 비슈마와 스승 드로나가 집안을 지탱하려 애쓴다.

경쟁은 증오로 번진다. 두료다나는 판다바를 송진 궁전에 가두어 불태워 죽이려 하지만 형제들은 탈출하고, 아르주나는 활쏘기 시합에서 공주 드라우파디를 얻는다. 드라우파디는 다섯 형제 모두의 아내가 된다. 판다바가 화려한 도성 인드라프라스타를 세우자, 두료다나의 외삼촌 샤쿠니가 유디슈티라에게 속임수 주사위 놀이를 건다. 유디슈티라는 재산과 왕국, 형제들과 자기 자신, 마침내 드라우파디까지 걸어 잃는다. 회당으로 끌려 나와 모욕당한 드라우파디는 “이미 자신을 잃은 사람이 아내를 걸 수 있는가?”라고 묻지만, 그 자리의 어른들은 끝내 답하지 못한다.

판다바는 12년간 숲에서, 13년째는 신분을 숨긴 채 살아야 하는 추방형을 받는다. 돌아온 이들에게 두료다나는 마을 다섯 개조차 내주지 않는다. 야다바족의 왕자이자 신적 존재인 크리슈나가 평화 협상에 나서지만 실패한다. 양군은 쿠루크셰트라 평원에서 맞붙고, 18일 동안 당대의 전사들이 거의 모두 죽는다. 비슈마는 화살에 온몸이 꿰뚫려 쓰러지고, 드로나는 아들이 죽었다는 반쯤 참인 말에 속아 무기를 내려놓는다. 사실은 판다바의 맏형이었던 카르나는 전차 바퀴가 진흙에 빠진 틈에 죽고, 두료다나는 규칙을 어긴 일격에 허벅지가 부서진다.

승리는 쓰디쓰다. 마지막 밤, 드로나의 아들 아슈밧타만이 잠든 판다바 진영을 몰살한다. 유디슈티라는 왕이 되지만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가는 비슈마가 왕도와 법, 해탈에 관해 긴 가르침을 준다. 수십 년 뒤 크리슈나의 부족은 내분으로 자멸하고, 판다바 형제는 히말라야를 향해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충실한 개 한 마리와 함께 산 채로 하늘나라에 이른 이는 유디슈티라뿐이며, 그곳에서도 마지막 시험이 그를 기다린다.

[1][6]

쉬움

작품의 짜임: 18권, 이야기 속의 이야기

작품은 18개의 파르반(권)으로 나뉜다. 「시작의 권」(아디), 「회당의 권」(사바), 「숲의 권」(아란야카/바나), 「비라타의 권」, 「준비의 권」(우디요가), 「비슈마의 권」, 「드로나의 권」, 「카르나의 권」, 「샬리야의 권」, 「야습의 권」(사웁티카), 「여인들의 권」(스트리), 「평화의 권」(샨티), 「가르침의 권」(아누샤사나), 「말 제사의 권」(아슈바메디카), 「은거의 권」, 「곤봉의 권」(마우살라), 「대출발의 권」, 「승천의 권」이다. 여기에 크리슈나의 생애를 다룬 긴 부록 『하리밤샤』가 붙는다.

작품 전체가 ‘액자 서사’, 곧 이야기 안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구조다. 음유시인 우그라슈라바스가 나이미샤 숲의 성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것은 비야사의 제자 바이샴파야나가 아르주나의 증손자 자나메자야 왕의 뱀 제사에서 낭송한 것을 옮긴 것이다. 본 줄거리 속에서도 인물들이 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독자는 여러 겹의 화자를 동시에 오가게 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 중 상당수는 따로 떼어도 유명하다. 주사위 놀이로 모든 것을 잃은 남편과 헤어지는 날라와 다마얀티의 사랑, 지혜로 죽음의 신 야마에게서 남편의 목숨을 되찾는 사비트리, 뒷날 시인 칼리다사가 희곡으로 옮긴 샤쿤탈라, 그리고 라마 이야기의 축약판도 있다. 유디슈티라가 정령 야크샤의 수수께끼에 답해 형제들을 살려 내는 ‘야크샤의 물음’은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1][7]

중급

역사적 배경: 쿠루 부족국가에서 굽타 시대까지

서사시가 그리는 세계는 후기 베다 시대(대략 기원전 2천년기 말 ~ 1천년기 초) 갠지스강·야무나강 상류, 지금의 델리와 하리아나 일대에서 강성했던 쿠루국을 돌아본다. 베다 문헌에도 쿠루족과 파리크시트 왕이 나오는데, 서사시에서 파리크시트는 아르주나의 손자다. 이야기의 바탕에 실제 전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전통은 전쟁을 칼리 유가(말세)가 시작된 기원전 3102년으로 보지만, 이는 후대의 천문 계산에서 나온 연대이지 역사적 증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지금 전하는 텍스트는 훨씬 뒤인 기원전 400년 ~ 기원후 400년 무렵에 형태를 갖추었다. 격변의 시대였다. 갠지스강 유역에 도시와 왕국이 일어났고, 불교와 자이나교가 퍼졌으며, 마우리아 제국(기원전 320년경~185년경)과 아소카왕의 칙령이 있었고, 서북부에서는 인도-그리스인·샤카족·쿠샨족의 왕국이 흥망했으며, 마침내 굽타 왕조(320년경~)가 들어섰다. 브라만(사제) 집단은 출가 수행 운동과 새로운 왕권에 대응해 자신들의 전통을 새롭게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이 서사시를 먼 과거의 기억인 동시에 당대에 대한 응답으로 읽는다. 다르마(의무·법·올바른 질서), 왕의 올바른 처신, 세상 속 행위와 세상으로부터의 해탈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긴 논의는 불교 등 여러 사상에 대한 브라만 전통의 대답이자, 대제국 이후의 정의로운 왕권을 상상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인도는 고립된 세계도 아니었다. 같은 무렵 그리스 작가 디온 크리소스토모스(40년경~120년경)는 인도인들이 호메로스 같은 시를 노래한다고 전했는데, 서사시 낭송에 대한 이른 메아리일 수 있다.

[1][6]

중급

핵심 사상: 다르마, 운명, 그리고 ‘미묘한’ 옳음

『마하바라타』의 중심 문제는 다르마(dharma)다. 의무, 법, 덕, 세계의 질서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서사시는 다르마가 ‘미묘하다(sūkṣma)’고 거듭 말한다. 선한 사람도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의무는 어기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다르마의 아들’로 불리는 유디슈티라는 정직하지만 가족을 노름판에 건다. 카르나는 의리 있고 너그럽지만 그릇된 편에서 싸운다. 비슈마는 맹세를 지키느라 불의를 보고도 방관한다. 이 시는 독자에게 감탄보다 논쟁을 권한다.

인간의 노력과 운명·시간(다이바, 칼라) 사이의 긴장도 중요한 주제다. 인물들은 모든 일이 정해져 있었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동시에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진다. 전쟁은 한 시대의 끝으로 그려지고, 승리 뒤의 분위기는 환희가 아니라 슬픔과 탈진이다. 9세기 인도 미학자 아난다바르다나는 이 서사시의 지배적 정조(라사)가 ‘샨타’, 곧 세속적 야망을 꿰뚫어 본 뒤에 오는 고요함이라고 보았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강하다. 회당에서 드라우파디가 던진 질문, 아들들을 잃은 간다리가 크리슈나에게 내린 저주, 쿤티의 고통스러운 선택은 줄거리를 움직이며, 권력과 명예와 고통에 관한 물음을 여는데 현대의 많은 독자와 작가가 이를 이어받았다. 서사시는 위계의 대가도 보여 준다. 니샤다족 출신 궁수 에칼라비야는 아르주나의 경쟁자가 되지 못하도록 엄지를 잘라 바치라는 요구를 받는데, 오늘날 이 장면은 카스트 특권에 대한 비판으로 자주 읽힌다.

[1]

중급

『바가바드 기타』: 전쟁터 한복판의 철학

제6권에서 양군이 대치하자, 아르주나는 전차를 모는 크리슈나에게 두 진영 사이로 가 달라고 한다. 건너편에 선 친척과 스승들을 본 그는 활을 내려놓는다. 이에 대한 크리슈나의 대답이 18장으로 된 『바가바드 기타』다(비판본 6.23~40, 일부 옛 판본에서는 25~42장). 기타는 자아(아트만)는 영원하여 죽일 수 없고, 사람은 자기 본분(스바다르마)을 다해야 하며, 행위는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기타는 여러 수행의 길(요가)을 하나로 엮는다. 이기적 욕망 없이 행하는 ‘카르마 요가’(행위의 길), ‘즈냐나 요가’(지혜의 길),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인 ‘박티 요가’(신애의 길)다. 유명한 구절(2.47)에서 크리슈나는 대략 “너의 몫은 오직 행위에 있을 뿐, 결코 그 열매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11장에서는 모든 존재를 품고 전사들을 삼키는 우주적 모습을 드러내, 시간과 신성이 사건을 통해 작동하고 있음을 아르주나에게 보여 준다.

싸움을 정당화하는 듯 보이기에 기타는 매우 다양하게 읽혀 왔다. 고전 주석가 샹카라(8세기경)는 자아와 궁극적 실재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론(不二論)의 가르침으로, 라마누자(11~12세기)는 인격신에 대한 헌신의 가르침으로 읽었다. 근대에 발 강가다르 틸라크는 적극적 행동을 촉구하는 글로, 마하트마 간디는 전쟁터를 내면의 싸움에 대한 비유로 읽고 사심 없는 비폭력 행위의 복음을 끌어냈다. 오늘날 철학자들은 결과보다 의무와 절차가 앞서야 하는가라는 도덕 추론의 문헌으로도 기타를 논한다.

[3][4]

중급

구전에서 필사본, 그리고 인쇄본으로

서사시는 처음에 음유시인(수타)과 낭송자들의 입으로 전해졌고, 작품 스스로도 늘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공연의 형식을 취한다. 언젠가—그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갈린다—글로도 적혔고, 이후 카슈미르에서 케랄라까지 여러 문자로 야자잎, 자작나무 껍질, 뒷날에는 종이에 손으로 베껴졌다. 전통은 작품이 『자야』(‘승리’, 8,800송), 『바라타』(2만 4천 송), 『마하바라타』(10만 송)의 세 단계로 자랐다고 전한다. 학자들은 이를 기록된 역사라기보다 전승으로 보지만, 텍스트가 불어났다는 사실을 전통 스스로 의식했음을 보여 준다.

똑같은 필사본은 하나도 없다. 크게 북방 계통과 남방 계통의 이본군(異本群)으로 나뉘고, 각각 문자별로 다시 갈래가 있다. 특히 남방본이 더 긴 경향이 있다. 가네샤 신이 비야사의 구술을 받아 적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일부 필사본에만 나오며, 비판본에서는 본문이 아닌 주석란으로 밀려났다.

1919년부터 1966년까지 푸네의 반다르카르 동양학연구소가 비판본(critical edition)을 펴냈다. 초기 총편집자는 V. S. 숙탄카르였다. 편집진은 필사본 1,259종을 대조해 현존 증거가 허락하는 가장 오래된 형태를 재구성했고, 이본과 후대 삽입을 기록한 상세한 교감 주석과 함께 19권으로 출간했다. 지금은 학계의 표준 참고본이지만, 어디까지나 재구성이어서 역사상 어떤 공동체도 이 형태 그대로 읽은 적은 없다.

[5][1]

중급

아시아와 현대 세계에 끼친 영향

『마하바라타』는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여럿이 함께 쓰는 이야기 세계가 되었다. 남아시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다시 쓰였다. 칸나다어 시인 팜파는 941년 『비크라마르주나 비자야』를 지었고, 텔루구어·타밀어·말라얄람어·벵골어·마라티어 판본 등이 이어졌으며, 타밀나두의 테루쿠투 연극과 케랄라의 카타칼리 무용극 같은 민간·의례 공연도 셀 수 없이 많다. 인도 곳곳의 사원 조각이 그 장면을 새기고 있으며, 남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드라우파디를 여신으로 모신다.

서사시는 교역과 종교, 궁정을 따라 퍼졌다. 자바에서는 고대 자바어 『카카윈 바라타유다』(1157)가 전쟁을 다시 노래했고, 지금도 인도네시아 그림자극 와양의 중심 인물은 『마하바라타』의 주인공들이다. 발리, 캄보디아, 타이에도 여러 판본이 전해졌다. 무굴 제국의 악바르 황제는 페르시아어 번역본 『라즘나마』(‘전쟁의 책’)를 명했는데, 1580년대에 힌두교와 이슬람교 학자들이 함께 작업해 화려한 삽화를 곁들여 만들었다.

근대에 들어 『바가바드 기타』는 1785년 찰스 윌킨스의 영역본으로 유럽에 알려져 독일 낭만주의자부터 미국 초월주의자들까지 영향을 주었다. 키사리 모한 강굴리는 최초의 완역 영어 산문본(1883~1896)을 냈다. B. R. 초프라의 힌디어 텔레비전 드라마(1988~1990)는 인도에서 엄청난 시청자를 모았고, 피터 브룩의 9시간짜리 연극(1985)은 이야기를 국제 무대에 올렸다. 소설가와 시인, 페미니스트 작가와 달리트(피차별 계층) 작가들은 지금도 드라우파디, 카르나, 에칼라비야의 시각에서 서사시를 다시 쓰고 있다.

[1][8]

심화

학계의 쟁점: 연대, 저자, 텍스트의 성장

연대는 대략적일 수밖에 없다. 흔히 기원전 4세기경으로 보는 문법학자 파니니는 바수데바, 아르주나, 유디슈티라 같은 이름을 알고 있어, 영웅들이 이미 알려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서사시가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반대쪽 끝에는 533~534년의 샤르바나타 동판 토지 기증문이 있는데, 여기서 『마하바라타』를 ‘10만 송의 모음’이라 부르므로 그 무렵에는 거대한 텍스트가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는 주된 형성기를 기원전 3세기경부터 기원후 3~4세기로 본다.

텍스트가 어떻게 자랐는지가 핵심 논쟁이다. 19세기~20세기 초 E. W. 홉킨스 같은 유럽 학자들은 ‘분석적’ 방법을 택했다. 교훈적·종교적 층위를 벗겨 내 원래의 영웅 전쟁시에 도달하려 했고, 흔히 여러 세기에 걸친 점진적 누적을 가정했다. 반면 1890년대 요제프 달만, 뒤이어 마들렌 비아르도 등은 ‘종합적’ 방법으로, 서사시를 가르침까지 설계의 일부로 포함한 의도적 통일체로 보았다. 조르주 뒤메질은 인물들을 인도유럽 신화 구조로 해석했다.

최근 알프 힐테바이텔은 산스크리트 서사시가 브라만 저자 집단에 의해 비교적 짧은 기간(그는 대략 기원전 2세기 중엽부터 기원 전후까지를 제시한다)에 문자 작품으로 지어졌다고 주장했다. 제임스 L. 피츠제럴드 등은 마우리아 이후의 정치 상황에 대응해 큰 규모의 문자 편찬이 이루어지고 이후 확장되었다고 보았다. 한편 구전 전통 연구자들은 공연과 문자 전승이 수 세기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입장들은 완전히 조화되지 않으며, 문제는 여전히 열려 있다.

비야사 저자설도 해석의 문제다. 이야기 속에서 비야사는 작가이면서 카우라바와 판다바의 생물학적 할아버지이기도 해서, 시가 저자를 자기 줄거리 안으로 끌어들인다. 학자들은 대체로 ‘배열자’ ‘편찬자’라는 뜻도 지닌 이름 ‘비야사’를 오랜 집단적 과정을 대표하는 전통적 인물로 보고, 많은 신자는 그를 역사적 성자로 여긴다.

[1][10]

심화

1차 사료와 증거: 필사본, 비문, 고고학

텍스트 증거는 거의 전부 필사본이다. 남아시아의 기후에서 야자잎과 자작나무 껍질은 쉽게 썩기 때문에 현존 사본 대부분은 수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훨씬 이른 단편은 소수다. 따라서 비판본의 교감 주석이 지역별로 구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떤 일화가 일부 전통에만 나타나는지를 보는 주된 도구다. 주석서, 특히 널리 쓰인 ‘통행본’ 인쇄본의 바탕이 된 17세기 닐라칸타 차투르다라의 주석은 전근대 독자들이 작품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보여 준다.

외부 증거로는 6세기 샤르바나타 기증문 같은 비문, 다른 산스크리트·불교·자이나교 문헌 속 언급, 페르시아어 『라즘나마』 같은 번역이 있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사원에 새겨진 서사시 장면 조각은 어떤 일화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인기가 있었는지 알려 준다.

고고학은 무대를 비출 수는 있어도 전쟁을 확인해 주지는 못한다. 1950년대 고고학자 B. B. 랄은 하스티나푸라를 발굴하고, 채문회색토기(彩文灰色土器, 기원전 1200~600년경 북인도 평원의 철기 문화) 유적을 서사시 속 지명과 연결했다. 그의 해석은 인도에서 영향력이 컸지만 논쟁적이다. 토기만으로는 수백 년 뒤에 지어진 텍스트 속 인물이나 사건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사시 속 천문 기록으로 전쟁 연대를 정확히 산출할 수 있다는 주장도 대다수 역사학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관련 구절들이 서로 모순되고 후대에 삽입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6][1]

심화

방법론적 유의점: 살아 있는 텍스트 읽기

여러 개의 ‘마하바라타’를 구별해야 한다. 재구성된 비판본, 닐라칸타의 통행본, 산스크리트 지역 이본, 각 지역어 재화(再話), 그리고 구전·공연 전통이다. 어느 것도 단순히 ‘원본’은 아니다. 현대의 많은 논쟁이 어느 판본을 읽느냐에 달려 있다. 예컨대 비판본에서는 드라우파디의 옷을 벗기려 할 때 옷이 기적처럼 계속 새로 생겨나지만, 그녀가 크리슈나에게 구원을 비는 대중적 장면은 대부분 빠져 있고, 가네샤 일화는 아예 없다.

같은 이유로 번역본도 신중히 골라야 한다. J. A. B. 판 뷔테넌은 시카고대학 출판부에서 비판본의 학술 번역(제1~5권, 1973~1978)을 시작했고 이후 다른 학자들이 이어 갔다. 강굴리의 완역은 통행본을 따른다. 축약 재화본은 좋은 입문서이지만 서사시의 핵심인 윤리적 모호성을 매끈하게 다듬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마하바라타』는 수많은 사람에게 거룩하고 살아 있는 텍스트다. 구절이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 묻는 역사비평적 연구와 구절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묻는 신앙적 읽기는 목적이 다른 활동이다. 좋은 연구는 어느 쪽도 깎아내리지 않고 둘 다 서술할 수 있어야 하며, 서사시의 역사에 관한 질문이 현대 남아시아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9][5]

핵심 개념

다르마
의무·법·덕·우주적 질서. 서사시는 실제 위기 속에서 다르마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기 어렵다며 이를 ‘미묘하다’고 말한다.
이티하사
‘그러했노라’는 뜻의 전통적 분류. 과거를 이야기하며 삶과 왕도, 궁극적 목표를 가르치는 서사다.
카르마 요가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자기 본분에 따라 행하라는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
박티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자신에게 귀의하라고 권하며, 이는 후대 신애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운명과 시간(다이바·칼라)
사건이 운명과 시대의 순환에 이끌린다는 감각. 그러면서도 인간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진다.
액자 서사
이야기 속 이야기. 한 음유시인이 다른 낭송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 그 안에서 인물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샨타 라사
고요와 평정의 미적 정조. 미학자 아난다바르다나는 이를 서사시의 주된 정서적 효과로 보았다.

기록

  1. 약 기원전 1200년 — 갠지스강·야무나강 상류에 쿠루국이 성장(기원전 1200~900년경). 후대 전통은 서사시의 무대를 이곳으로 삼는다.
  2. 약 기원전 400년 — 서사시 전통의 가장 오래된 층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기원전 400년경).
  3. 약 기원전 350년 — 문법학자 파니니가 바수데바·아르주나·유디슈티라 등의 이름을 언급(기원전 4세기경).
  4. 약 기원전 200년 — 마우리아 제국 이후 주된 형성·확장기(기원전 200년 ~ 기원후 200년경).
  5. 약 350년 — 굽타 시대 초기까지 지금과 비슷한 규모에 이름(4세기경).
  6. 약 533년 — 샤르바나타의 동판 기증문이 『마하바라타』를 ‘10만 송의 모음’이라 부름(533~534년).
  7. 941년 — 팜파가 칸나다어 『비크라마르주나 비자야』를 지음. 이른 시기의 지역어 재화.
  8. 1157년 — 고대 자바어 『카카윈 바라타유다』가 자바에서 전쟁 이야기를 다시 노래함.
  9. 약 1584년 — 악바르의 궁정에서 페르시아어 번역본 『라즘나마』 제작(1584~1586년경).
  10. 1785년 — 찰스 윌킨스가 『바가바드 기타』의 첫 영어 번역을 출간.
  11. 1919년 — 푸네 반다르카르 동양학연구소가 비판본 편찬 착수(1966년 완성).
  12. 1988년 — B. R. 초프라의 텔레비전 드라마 「마하바라트」 방영 시작(1988~1990).

용어 풀이

산스크리트어
고대·중세 인도의 고전어. 종교·문학·학술 문헌에 쓰였다.
파르반
서사시의 ‘권’ 또는 큰 단위. 『마하바라타』는 18권이다.
슐로카
산스크리트 서사시에서 가장 흔한 운율. 16음절로 된 두 행이다.
판다바
판두 왕의 다섯 아들, 유디슈티라·비마·아르주나·나쿨라·사하데바.
카우라바
눈먼 왕 드리타라슈트라의 백 아들. 맏이는 두료다나다.
이본군(recension)
같은 텍스트의 특징적인 판본을 공유하는 필사본 무리. 서사시의 북방본·남방본이 그 예다.
비판본(critical edition)
여러 필사본을 대조해 되찾을 수 있는 가장 이른 형태를 재구성하고 이본을 주석에 기록한 판본.
통행본(vulgate)
널리 쓰이던 전통 텍스트. 『마하바라타』의 경우 보통 17세기 닐라칸타 주석이 달린 판본을 가리킨다.
하리밤샤
‘하리(크리슈나)의 계보’. 크리슈나의 생애와 가계를 다룬 서사시의 부록.
와양
인도네시아의 인형극·그림자극. 『마하바라타』 이야기를 자주 공연한다.

묻고 답하기

『마하바라타』는 누가 썼나요?

전통적으로는 성자 비야사가 지었다고 하며, 비야사는 작품 속 인물로도 등장합니다. 역사학자들은 대략 기원전 400년부터 기원후 400년 사이에 많은 시인과 학자가 여러 세기에 걸쳐 짓고 늘리고 다듬었다고 봅니다.

『마하바라타』는 실제 있었던 일인가요?

서사시의 무대인 고대 쿠루국은 실제로 존재했지만, 작품에 묘사된 전쟁을 독립적으로 증명하는 역사·고고학 증거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를 거룩한 역사로 여기고, 학자들은 쿠루 시대의 먼 기억을 담았을 수 있는 문학·종교 작품으로 다룹니다.

얼마나 긴가요?

전통적으로 10만 송이라고 합니다. 후대 삽입을 많이 걸러 낸 푸네 비판본은 더 짧지만, 그래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합친 것보다 훨씬 긴, 세계에서 가장 긴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하바라타』와 『바가바드 기타』는 어떻게 다른가요?

『바가바드 기타』는 『마하바라타』의 일부입니다. 제6권에서 전쟁 직전 아르주나와 크리슈나가 나누는 18장짜리 대화로, 흔히 독립된 경전으로 인쇄되어 읽힙니다.

『라마야나』와는 무엇이 다른가요?

둘은 산스크리트 2대 서사시입니다. 『라마야나』는 라마 왕자가 아내 시타를 구하는 이야기로 덕의 이상을 비교적 뚜렷하게 제시하고, 『마하바라타』는 훨씬 길며 집안 전쟁을 다루고 도덕적 모호성으로 유명합니다. 『마하바라타』 안에는 라마 이야기의 축약판도 들어 있습니다.

드라우파디는 왜 남편이 다섯 명인가요?

이야기에서 드라우파디를 얻은 사람은 아르주나지만, 오해 때문에 어머니 쿤티가 형제들에게 가져온 것을 나눠 가지라고 말합니다. 서사시는 전생 이야기 등 몇 가지 정당화를 덧붙입니다. 학자들은 이것이 역사적 관습의 반영인지, 신화적 유형인지,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서사 선택인지 논쟁해 왔습니다.

연구자는 어떤 판본을 인용해야 하나요?

대부분의 학술 연구는 푸네 반다르카르 동양학연구소의 비판본(본문 1933~1966년 간행)을 권·장·송 번호로 인용하고, 어떤 구절이 통행본이나 특정 필사본에만 있을 때는 그 사실을 밝힙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Mahabharata. Wikipedia
  2. 마하바라타. 위키백과
  3. Bhagavad Gita. Wikipedia
  4. The Bhagavad Gītā.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5. Bhandarkar Oriental Research Institute. Wikipedia
  6. Kurukshetra War. Wikipedia
  7. Harivamsa. Wikipedia
  8. Razmnama. Wikipedia
  9. J. A. B. van Buitenen, The Mahābhārata (translation, vols. 1–3).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3–1978
  10. E. Washburn Hopkins, The Great Epic of India: Its Character and Origin. Charles Scribner’s Sons, 1901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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