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해 질 무렵 집에 가다가 길에서 뱀을 봤다고 상상해 보세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겠지요. 그런데 누가 등불을 가져와 비춰 보니 그건 둘둘 말린 밧줄이었어요. 뱀은 처음부터 없었던 거예요. 샹카라는 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어요. 우리가 나 자신과 세상을 볼 때도 이런 착각을 한다고 말했지요.
샹카라는 모든 것 뒤에 단 하나의 커다란 실재가 있다고 가르쳤어요. 힌두 경전은 이것을 ‘브라만’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참된 나, 곧 ‘아트만’이 바로 그 브라만과 똑같다고 했어요. 우리가 스스로를 작고 따로 떨어진 존재라고 느끼는 건, 밧줄을 뱀으로 본 사람처럼 제대로 보지 못해서라는 거예요.
옛이야기에 따르면 샹카라는 인도 남쪽 케랄라의 칼라디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아주 어려서부터 집과 재산을 떠나 지혜를 찾는 수행자가 되고 싶어 했대요. 강에서 목욕하다가 악어에게 다리를 물렸는데, 어머니가 출가를 허락하자 그제야 악어가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요.
샹카라는 『우파니샤드』나 『바가바드 기타』 같은 아주 오래된 경전을 자세히 풀이한 책, 곧 ‘주석’을 썼어요. 인도 곳곳을 걸어 다니며 다른 학자들과 토론하고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겨우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요.
오늘날 많은 힌두교도가 샹카라를 위대한 스승으로 받들고, 인도 여러 곳의 수도원이 그가 세웠다고 말해요.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조심스러워해요.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 대부분이 그가 죽고 몇백 년이 지나서야 글로 적혔기 때문이에요.
한눈에 보기
- 생애
- 논란이 있다. 전통적 연대는 788~820년이고, 오늘날 많은 학자는 8세기 전반(700~750년 무렵)을 더 유력하게 본다. 수도원 계보는 기원전 5세기를 제시하지만 역사학계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 출생지(전승)
- 지금의 인도 케랄라주 페리야르강 가의 칼라디(한 전기는 치담바람이라고 함)
- 언어
- 산스크리트어
- 학파
- 아드바이타 베단타(불이론 베단타). 우파니샤드에 바탕을 둔 힌두 철학 학파의 하나
- 핵심 가르침
- 개별 자아(아트만)는 궁극적 실재 브라만과 같다. 둘로 나뉘어 있다는 경험은 무명(아비드야)에서 비롯된다.
- 대표 저술(진작으로 널리 인정)
- 『브라흐마 수트라 주석』, 주요 우파니샤드 주석, 『바가바드 기타 주석』, 『우파데샤사하스리(천 가지 가르침)』
- 스승(전승)
- 고빈다 바가바트파다. 가우다파다의 제자였다고 전한다.
- 죽음(전승)
- 32세 무렵. 히말라야의 케다르나트가 가장 자주 거론되지만 전승마다 다르다.
쉬움
아디 샹카라는 누구인가
아디 샹카라(‘최초의 샹카라’)는 힌두 철학의 한 학파인 아드바이타 베단타를 대표하는 스승이다. ‘아드바이타’는 ‘둘이 아님(不二)’이라는 뜻으로, 이 학파는 실재가 궁극적으로 하나라고 가르친다. 모든 생명의 가장 깊은 자아는 만물의 무한한 바탕인 브라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흔히 ‘스승 샹카라’라는 뜻의 샹카라차리야로 불리는데, 앞에 ‘아디’를 붙이는 것은 같은 칭호를 쓰는 후대 수도원장들과 구별하기 위해서다.
샹카라는 인도 학문의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글을 썼다. 그는 자기 생각을 새로운 발명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경전, 곧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 『브라흐마 수트라』의 뜻을 밝히는 주석(바샤)을 썼다. 인도 전통에서는 이 세 가지를 베단타의 ‘세 출발점(프라스타나트라야)’이라 부르며, 베단타 스승이라면 반드시 이것들을 풀이해야 했다.
샹카라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주로 이 저술들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과 여행, 논쟁을 담은 생생한 이야기들은 여러 세기 뒤에 쓰인 전기에서 온다. 그러니 우리가 만나는 샹카라는 사실상 둘이다. 주석 속에서 말하는 철학자 샹카라, 그리고 전설과 살아 있는 신앙 속에서 기억되는 성자이자 영웅 샹카라다.
쉬움
전승이 들려주는 생애
전통적인 전기에 따르면 샹카라는 케랄라 페리야르강 가의 마을 칼라디에서 남부디리 브라만 집안에 태어났다. 전승은 부모의 이름을 시바구루와 아리얌바라고 전한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교육을 돌보았다. 그는 소년 시절에 이미 베다를 통달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어린 시절 이야기는 이렇다. 어린 샹카라가 강에서 목욕을 하는데 악어가 다리를 물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세상을 버리고 떠돌이 수행자(산니야신)가 되도록 허락해 주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외쳤다. 어머니가 허락하자 악어는 다리를 놓았고, 샹카라는 어머니가 임종할 때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집을 떠났다. 그는 약속을 지켜, 출가자에게는 기대되지 않는 일이었는데도 어머니의 장례를 손수 치렀다고 전한다.
그 뒤 샹카라는 북쪽으로 가서 스승 고빈다 바가바트파다를 만났다. 고빈다는 흔히 나르마다강 가에 살았다고 하며, 그보다 앞선 아드바이타 사상가 가우다파다의 제자였다고 전한다. 공부를 마친 샹카라는 갠지스강 가의 성지 바라나시(카시)로 가서 가르치고 글을 쓰며 제자를 모았다. 그중 파드마파다, 수레슈바라, 하스타말라카, 토타카 네 사람이 유명하다.
전기들은 이어서 ‘사방 정복’이라는 뜻의 디그비자야를 그린다. 샹카라는 카슈미르에서 남쪽 끝까지, 구자라트에서 벵골까지 인도 전역을 돌며 불교도와 자이나교도, 제사주의자, 다른 힌두 학파의 학자들을 공개 토론에서 이긴다. 수도원을 세우고, 서른두 살 무렵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여러 곳이 그가 입적한 장소라고 주장하지만 히말라야의 순례지 케다르나트가 가장 자주 거론된다.
쉬움
핵심 생각: 나와 우주는 하나다
샹카라의 중심 가르침은 간단히 말할 수 있다. 궁극적 실재는 오직 하나, 브라만뿐이다. 브라만은 순수한 존재이자 순수한 의식이며 순수한 기쁨이고, 부분도 변화도 없다. 가장 안쪽의 자아인 아트만, 곧 내 생각을 지켜보는 알아차림은 브라만의 작은 조각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브라만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수많은 사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서로 떨어진 사람이라고 느끼는가? 샹카라는 무명(無明, 아비드야), 곧 근본적인 오해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참된 자아를 자아가 아닌 것, 즉 몸과 감각과 마음과 기분과 뒤섞는다. 그는 이 뒤섞음을 ‘가탁(假託, 아디야사)’이라 불렀다. 밧줄 위에 뱀의 모습을 덧씌우는 것과 같다.
샹카라에게 삶의 목표는 태어나고 죽기를 되풀이하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모크샤)이다. 해탈은 선행이나 제사를 더 많이 한다고 오지 않는다. 행위는 변화하는 세계 안에서 새로운 결과를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해탈은 앎(즈냐나)에서 온다.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으로 일깨워지는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직접적인 깨달음이다. 밧줄이 똑똑히 보이면 뱀에 대한 두려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샹카라는 우파니샤드의 몇몇 짧은 문장을 특히 소중히 여겼는데, 후대에 이를 ‘대문장(마하바키야)’이라 불렀다. 하나는 『찬도기야 우파니샤드』의 ‘그대가 그것이다(tat tvam asi)’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만물의 미세한 본질이 바로 너 자신이라고 가르치는 대목이다. 또 하나는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의 ‘나는 브라만이다(ahaṃ brahmāsmi)’이다.
중급
샹카라 시대의 인도
대부분의 학자가 생각하듯 샹카라가 8세기에 살았다면, 그가 활동한 인도는 남쪽의 찰루키아·팔라바, 북쪽의 프라티하라·팔라 같은 지역 왕국들로 나뉘어 있었다. 거대한 사원이 세워지고 왕실이 학문을 후원하며, 여러 종교 공동체가 활발히 경쟁하던 세계였다.
불교는 여전히 큰 지적 세력이었다. 나가르주나, 디그나가, 다르마키르티 같은 불교 철학자들은 영원한 자아의 존재와 베다의 권위를 반박하는 강력한 논증을 발전시켰다. 자이나교 사상가들도 그에 못지않게 정교했다. 브라만교 전통 안에서는 7세기의 쿠마릴라 바타로 대표되는 미망사 학파가 베다는 본질적으로 제사 행위를 명하는 명령의 모음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특히 타밀 지역에서는 시바와 비슈누에 대한 헌신(박티) 운동이 자라나고 있었고, 새로운 탄트라 수행도 퍼지고 있었다. 샹카라의 글은 이 붐비는 지적 무대에 대한 응답이다. 그는 불교도, 자이나교도, 상키야와 니야야 철학자, 무엇보다 미망사 제사주의자들을 논박하며 베다의 참된 목적은 제사가 아니라 브라만에 대한 앎이라고 주장했다.
중급
아드바이타의 짜임: 실재의 층위, 마야, 해탈
브라만만이 실재라면 우리가 보는 세계는 무엇인가? 아드바이타는 층위의 이론으로 답한다. 최고의 관점(파라마르티카)에서는 오직 브라만만 존재한다. 일상적·실용적 관점(비야바하리카)에서는 사람과 신, 강과 의무의 세계가 온전히 유효하며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그 아래에는 꿈이나 밧줄 속 뱀 같은 순전한 착각의 층위(프라티바시카)가 있다. 이 세 층위는 후대 아드바이타 학자들이 체계화한 것이고, 샹카라 자신은 주로 최고의 진리와 일상 경험의 대비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세계는 단순히 실재하는 것도, 단순히 실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후대 학자들은 이를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뜻에서 ‘불가설(아니르바차니야)’이라 했다. 흔히 ‘환영’으로 옮기는 마야는 하나가 여럿으로 나타나게 하는 힘을 가리킨다. 샹카라는 이 말을 후대 저자들보다 덜 쓰며, 속박의 원인으로는 주로 무명을 말한다. 우유가 응유로 변하듯 브라만이 실제로 세계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밧줄이 뱀으로 보이듯 세계로 나타날 뿐이다. 후대에는 이것을 ‘가현(假現, 비바르타)’이라 불렀다.
이 덕분에 샹카라는 일상의 종교 생활 전체를 제자리에 둘 수 있었다. 인격신(이슈바라)에 대한 예배, 윤리적 의무, 제사는 실용적 층위에서 실재하며 유익하다. 이것들은 마음을 정화하고 앎을 준비시킨다. 그러나 그 자체가 해탈은 아니다. 준비된 이에게 샹카라는 출가와 함께, 스승 아래에서 우파니샤드를 들음(슈라바나), 숙고함(마나나), 깊이 명상함(니디디야사나)을 권했다.
아드바이타의 독특한 생각 하나는 살아 있는 채로 해탈한다는 ‘생해탈(지반묵티)’이다. 앎이 밝아지면 해탈한 사람은 몸이 다할 때까지 계속 살고 행동하고 가르칠 수 있다. 도공이 손을 떼도 한동안 계속 도는 물레처럼 말이다. 이 비유는 아드바이타 문헌에 전통적으로 쓰인다.
중급
저술: 어느 것이 진짜인가
샹카라의 이름이 붙은 문헌은 난해한 철학 주석부터 아름다운 찬가까지 300편이 넘는다. 대부분의 학자는 그중 작은 묶음만을 진짜로 본다. 중심은 『브라흐마 수트라 주석(브라흐마수트라바샤)』이다. 『브라흐마 수트라』는 바다라야나가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을 아주 짧은 경구로 요약한 책이다. 이 주석의 첫머리에 나오는 가탁(아디야사)에 대한 논의는 인도 철학의 고전적 대목으로 꼽힌다.
주요 우파니샤드 주석들도 진작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일부는 학자마다 판단이 다르다. 『브리하다란야카』와 『타이티리야』 주석이 가장 확실하다. 『바가바드 기타 주석』도 널리 인정된다. 산문과 운문을 섞어 스승이 제자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우파데샤사하스리(천 가지 가르침)』는 거의 모든 학자가 그의 것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독립 저술이다.
유명한 작품 가운데 상당수는 후대의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 독자들이 사랑하는 『비베카추다마니(분별의 보석)』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의심한다. 『바자 고빈담』, 『사운다리야라하리』 같은 인기 찬가도 전통적으로 그의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저자가 불확실하거나 부정된다. 독일 인도학자 파울 하커와 일본 학자 마에다 센가쿠는 어휘, 교리, 필사본 끝머리(콜로폰)에 쓰인 칭호를 바탕으로 진작을 가리는 기준을 세웠다. 이 방법은 지금도 영향력이 있지만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이 문제는 중요하다. 여신이나 비슈누를 노래한 헌신 시인, 요가와 탄트라의 스승이라는 샹카라의 대중적 이미지 상당 부분이 저자 논란이 있는 작품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주석 속의 샹카라는 무엇보다 엄밀한 경전 해석자이자 논쟁가다.
중급
불교도, 제사주의자들과의 논쟁
샹카라의 주석에는 다른 학파에 대한 반론이 가득하다. 상키야에 맞서서는 의식 없는 물질이 질서 있는 세계의 원인일 수 없다고 논했다. 불교에 맞서서는 오직 의식만 존재한다는 유가행파의 견해와 모든 것이 공하다는 중관파의 견해를 모두 공격하며, 어떤 논증도 부정할 수 없는 영원하고 스스로 빛나는 목격자 의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논증은 이미 그 의식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다 전통 안에서 가장 날카로운 대립은 베다가 행위, 특히 제사에 관한 것이라고 보는 미망사와의 대립이었다. 샹카라는 베다의 제사 부분이 행위를 명한다는 데는 동의했다. 그러나 ‘베다의 끝(베단타)’인 우파니샤드는 이미 존재하는 실재인 브라만을 드러내며, 브라만은 어떤 행위로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브라만에 대한 앎이야말로 베다의 최고 목적이라는 것이다.
디그비자야 전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위대한 미망사 학자 만다나 미슈라와의 토론으로, 학식 높은 그의 아내 우바야 바라티가 심판을 맡았다고 한다. 패배한 만다나는 출가해 수레슈바라라는 이름으로 샹카라의 제자가 된다. 역사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의심한다. 만다나는 실재한 중요한 사상가였고 아드바이타 저술 『브라흐마싯디』를 남겼는데, 이 책은 이후 몇 세기 동안 샹카라의 저술만큼 영향력이 컸다. 그가 수레슈바라와 같은 인물인지는 널리 의심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후대의 힌두 비판자들, 특히 비슈누파 신학자들은 샹카라를 ‘위장한 불교도(프라찬나 바우다)’라고 비난했다. 세계가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불교와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는 『만두키야 우파니샤드』에 대한 게송에서 불교 어휘를 쓴 가우다파다를 통해 실제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아드바이타 쪽은 차이가 근본적이라고 답한다. 불교는 영원한 자아를 부정하지만 아드바이타는 자아야말로 유일한 실재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중급
수도원, 제자들, 후대의 영향
전승에 따르면 샹카라는 인도의 네 방위에 큰 수도원(마타) 넷을 세웠다. 남쪽의 슈링게리, 서쪽의 드와르카, 동쪽의 푸리, 북쪽 바드리나트 부근의 조티르마트다. 칸치푸람의 다섯째 수도원도 그가 세웠다고 주장한다. 이 기관들의 수장은 샹카라차리야라는 칭호를 쓰며 오늘날에도 중요한 종교 지도자다. 그는 또 출가 수행자들의 ‘열 이름(다샤나미)’ 교단을 조직했다고도 전한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주장에 신중하다. 이 체계에 대한 가장 이른 확실한 증거는 훨씬 뒤에 나타나며, 독일 학자 파울 하커는 이것이 14세기, 슈링게리의 학승이자 비자야나가라 제국 군주들의 조언자였던 비디야라니야와 관련되어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확실한 것은 이 시기와 그 이후에 샹카라의 명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이며, 가장 널리 읽히는 전기인 마다바의 『샹카라디그비자야』도 이 후대의 세계에서 지어졌다.
샹카라의 제자와 후계자들은 풍부한 학문 전통을 쌓았다. 두 주요 분파가 생겼는데, 9~10세기 바차스파티 미슈라의 주석 이름을 딴 바마티 학파, 그리고 파드마파다의 주석을 발전시킨 프라카샤트만의 저술에 바탕을 둔 비바라나 학파다. 이들은 무명이 개별 자아에 있는지, 브라만에 있는지 같은 문제를 두고 논쟁했다.
아드바이타는 강력한 반론도 불러일으켰다. 라마누자(전승 1017~1137)는 세계와 영혼이 인격신의 실재하는 부분이라고 보는 한정불이론(비시슈타드바이타)을 세웠다. 13세기의 마드바는 신과 영혼과 물질 사이에 실재하고 영원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원론(드바이타)을 세웠다. 이후 인도 철학의 상당 부분은 찬성이든 반대든 샹카라와 나눈 대화라 할 수 있다.
중급
현대 세계의 샹카라
19~20세기에 아드바이타 베단타는 새롭게 주목받았다. 파울 도이센, 막스 뮐러 같은 서양 동양학자들은 이를 유럽 관념론 철학에 견줄 만한 사상으로 높이 평가했다. 인도의 개혁가들, 특히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현대화된 ‘신베단타’를 힌두교의 철학적 핵심이자 보편적 영성으로 제시했고, 철학자이자 훗날 인도 대통령이 된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은 세계 독자를 위해 샹카라에 관해 썼다.
이 현대적 이미지는 아드바이타에 세계 철학 속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인도 밖의 작가·과학자·구도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아드바이타가 유일한 ‘진짜’ 힌두 철학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힌두교도는 헌신적·유신론적 전통을 따랐고, 그중 상당수는 샹카라와 날카롭게 대립했다.
샹카라는 지금도 살아 있는 존재다. 순례자들은 칼라디와 그와 관련된 수도원을 찾고, 그의 찬가는 지금도 불린다. 최근에는 케다르나트(2021년)와 나르마다강 가의 옴카레슈와르 부근(2023년)에 그의 대형 조각상이 세워졌다. 많은 국민적 영웅이 그렇듯, 역사학자들은 현대의 샹카라가 과거만큼이나 현재의 필요에 따라 빚어진다고 지적한다.
심화
연대 문제와 전기의 신뢰성
샹카라를 언급하는 비문이나 동시대 문서는 없다. 따라서 그의 연대는 추론할 수밖에 없다. 788~820년이라는 전통적 연대는 19세기 네덜란드 학자 코르넬리스 틸레가 제안했고, 막스 뮐러와 파울 도이센 등 많은 학자가 받아들였다. 20세기 대부분 동안 표준 연대였으며 지금도 널리 인용된다.
최근 학계는 샹카라를 8세기 전반(대략 700~750년)에 두는 경향이 있다. 근거는 상한과 하한을 조합하는 것이다. 샹카라는 다르마키르티와 관련된 입장을 포함해 6~7세기 불교·미망사 사상가들을 논의하고 비판하므로 650년 무렵보다 이를 수 없다. 샹카라의 『브라흐마 수트라 주석』에 복주를 쓴 바차스파티 미슈라는 보통 9~10세기로 추정되어 하한을 제공한다. 만다나 미슈라와 샹카라의 선후 관계도 이 문제와 얽혀 있다. 나카무라 하지메는 8세기 전반설을 주장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수도원들은 샹카라를 기원전 5세기, 심지어 6세기에 두는 계승 목록을 전하며, 어떤 계보는 기원전 509년처럼 정확한 해까지 제시한다. 이 연대는 종교 전통의 일부로, 역사학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샹카라가 천 년 이상 뒤에 살았던 저자들을 인용하고 반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기(『샹카라비자야』 또는 『샹카라디그비자야』)는 또 다른 문제다. 알려진 것이 열네 편쯤 되는데, 샹카라 사후 대략 200년에서 1,000년 뒤에 쓰였고, 태어난 곳과 죽은 곳, 누구와 토론했는지, 어떤 사원을 세웠는지 등 많은 점에서 서로 어긋난다. 가장 영향력 있는 마다바의 『샹카라디그비자야』는 보통 14세기 이후로 추정된다. 아난다기리의 한 판본은 샹카라라는 이름의 여러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뒤섞은 것으로 보인다. 역사학자들은 이 문헌들을 주로 후대 공동체가 샹카라를 어떻게 기억하고 활용했는지 보여 주는 증거로 쓴다.
심화
현대 학계의 논쟁
샹카라는 당대에 얼마나 중요했는가? 그가 인도 사상의 우뚝 선 거인이었다는 현대의 통념은 의문에 부쳐졌다. 리처드 킹 같은 학자들은 9~10세기의 다른 철학자들이 샹카라를 거의 언급하지 않으며, 초기 아드바이타에서는 만다나 미슈라의 『브라흐마싯디』가 적어도 그만큼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샹카라의 압도적 지위는 부분적으로 후대의 산물, 특히 14세기의 제도적·문헌적 활동과 현대 신베단타의 열광이 만든 것이다.
샹카라는 ‘환영론자’였는가? 예전 서양 학계는 마야를 세계에 대한 단순한 부정으로 읽어 아드바이타를 흔히 ‘환영론’이라 불렀다. 파울 하커를 비롯한 여러 학자는 이런 독해가 샹카라 자신보다 후대 아드바이타에 더 기댄다고 보았다. 샹카라는 마야라는 말을 드물게 쓰고 주로 무명과 가탁을 말하기 때문이다. 반면 샹카라와 후계자들 사이에 실질적 연속성이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 문제는 실용적 세계에 대한 그의 실재론과 윤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와 직결된다.
철학자인가, 신학자인가? 어떤 해석자는 샹카라를 무엇보다 경험, 특히 깨어 있을 때와 꿈꿀 때와 깊은 잠 속에 늘 있는 부정할 수 없는 목격자 의식에서 논증하는 철학자로 읽는다. 하커의 계보에 선 학자들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샹카라에게 해탈의 앎은 스승이 가르치는 경전(슈루티)에서만 생긴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를 무엇보다 경전 해석자로 본다. 불교, 가우다파다, 만다나와의 관계는 여전히 열린 연구 분야다.
이런 논쟁의 문헌적 토대는 아직도 다듬어지는 중이다. 샹카라에게 돌려지는 많은 작품에 비판 교정본이 없고, 하커와 마에다가 용어와 콜로폰을 바탕으로 세운 진위 판별 기준은 계속 보완되고 도전받는다. 칼 포터가 엮은 여러 권짜리 『인도 철학 백과사전』과 마에다의 『우파데샤사하스리』 교정·번역본이 표준적인 출발점이다.
핵심 개념
- 불이(아드바이타)
- 실재는 궁극적으로 하나이며, 자아와 브라만은 둘이 아니다.
- 브라만
- 하나이고 무한하며 변하지 않는 실재. 존재·의식·기쁨으로 묘사된다.
- 아트만
- 가장 안쪽의 자아, 곧 순수한 목격자 의식. 브라만과 같다.
- 무명과 가탁
- 우리는 자아를 몸과 마음과 잘못 뒤섞는다(아디야사). 이 무명(아비드야)이 괴로움과 윤회의 뿌리다.
- 두 관점
- 세계는 실용적 관점에서는 유효하지만 최고의 관점에서는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 앎을 통한 해탈
- 해탈은 제사나 행위만으로가 아니라,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을 통해 자아와 브라만이 같음을 깨달을 때 온다.
- 생해탈
-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완전히 해탈할 수 있다(지반묵티).
기록
- 약 650년 — 불교 철학자 다르마키르티와 미망사 학자 쿠마릴라 바타가 활동. 샹카라는 훗날 이들의 사상과 씨름한다.
- 약 700년 — 현대의 많은 학자가 샹카라의 생애로 보는 시기(700~750년 무렵)의 시작.
- 788년 — 전통적 연대에 따른 샹카라의 칼라디 출생(전통 연대 788~820년).
- 820년 — 전통적 연대에 따른 샹카라의 입적(32세 무렵).
- 약 900년 — 바차스파티 미슈라가 샹카라의 『브라흐마 수트라 주석』에 대한 복주 『바마티』를 씀(9~10세기로 추정).
- 약 1100년 — 라마누자가 아드바이타에 대한 주요 유신론적 비판인 한정불이론을 전개.
- 약 1250년 — 마드바가 아드바이타에 맞서는 이원론(드바이타) 학파를 세움.
- 약 1380년 — 비디야라니야가 슈링게리 수도원을 이끔. 비자야나가라의 후원 아래 샹카라의 제도적·전설적 위상이 커짐.
- 1893년 — 스와미 비베카난다가 시카고 세계종교회의에서 연설하며 현대 베단타를 세계에 알림.
- 2021년 — 케다르나트에 재건된 샹카라의 사마디(묘소)에 그의 조각상이 세워짐.
용어 풀이
- 베단타
- ‘베다의 끝’. 우파니샤드, 그리고 이를 해석하는 철학 학파들.
- 우파니샤드
- 베다 문헌의 끝부분에 있는 철학적 문헌으로, 자아와 궁극적 실재를 논한다.
- 브라흐마 수트라
- 바다라야나가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을 간결한 경구로 요약한 책. 베단타의 기본 문헌.
- 바샤(주석)
- 경전이나 철학 문헌을 한 줄씩 풀이하는 주석서.
- 마야
- 하나의 실재가 여럿으로 나타나게 하는 힘. 흔히 ‘환영’으로 옮긴다.
- 해탈(모크샤)
-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
- 산니야신
- 집과 가족, 제사 의무를 버린 출가 수행자.
- 마타
- 힌두 수도원이자 학문의 중심지.
- 마하바키야(대문장)
- ‘그대가 그것이다’처럼 우파니샤드의 핵심을 담은 ‘위대한 문장’.
- 미망사
- 베다를 주로 제사 행위의 지침으로 해석하는 학파.
- 성인전(하기오그라피)
- 신앙을 북돋우려고 쓴 성자의 전기. 흔히 전설이 섞여 있다.
묻고 답하기
샹카라는 세상이 가짜라고 생각했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세상은 일상생활과 의무를 위해서는 충분히 실재하지만 마지막 진리는 아니라고 했어요.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브라만뿐이고, 세상은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할 때 브라만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거예요.
샹카라는 언제 살았나요?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어요. 전통적 연대는 788~820년이지만, 지금은 많은 학자가 8세기 전반, 700~750년 무렵을 더 유력하게 봐요.
정말 서른두 살에 죽었나요?
전통 전기가 그렇게 말하고 널리 되풀이되지만, 그 전기들은 몇 세기 뒤에 쓰여서 확인할 수 없어요.
샹카라가 네 개의 큰 수도원을 세웠나요?
전승은 그렇다고 하고 수도원들도 그를 창건자로 받듭니다. 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는 네 수도원 체계가 그 뒤, 특히 14세기에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비베카추다마니』는 샹카라가 썼나요?
대부분의 전문가는 의심합니다. 가장 확실한 그의 저술은 『브라흐마 수트라』와 여러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에 대한 주석과 『우파데샤사하스리』입니다.
샹카라는 불교의 영향을 받았나요?
반대자들은 그를 위장한 불교도라고 불렀고, 많은 학자가 초기 아드바이타, 특히 가우다파다에게서 불교의 영향을 봅니다. 그러나 샹카라는 불교의 견해, 특히 영원한 자아의 부정을 강하게 논박했습니다.
아드바이타는 다른 베단타 학파와 어떻게 다른가요?
아드바이타는 자아와 브라만이 엄밀히 같다고 봅니다. 라마누자의 한정불이론은 영혼과 세계를 신의 실재하는 부분으로 보고, 마드바의 이원론은 신과 영혼과 물질이 영원히 구별된다고 주장합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Adi Shankara. Wikipedia
- 아디 샹카라. 위키백과
- Sangeetha Menon, Advaita Vedanta.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 Advaita Vedanta. Wikipedia
- Brahma Sutras. Wikipedia
- Maṇḍana Miśra. Wikipedia
- Gaudapada. Wikipedia
- Sringeri Sharada Peetham. Wikipedia
- Sengaku Mayeda, A Thousand Teachings: The Upadeśasāhasrī of Śaṅkara. University of Tokyo Press, 1979
- Karl H. Potter (ed.), Encyclopedia of Indian Philosophies, Vol. III: Advaita Vedānta up to Śaṃkara and His Pupil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1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