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무지개를 떠올려 보세요. 무지개는 정말 있어요. 눈으로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지요. 그런데 무지개를 ‘혼자서만’ 찾아보려고 하면 찾을 수가 없어요. 무지개는 햇빛과 빗방울, 그리고 알맞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때만 나타나요. 그중 하나라도 없으면 무지개는 사라져요.
나가르주나는 약 1,800년 전 인도의 불교 스승이었는데, 모든 것이 조금씩 이 무지개와 같다고 말했어요. 탁자는 나무와 목수, 그리고 ‘탁자’라는 생각에 기대어 있어요. 여러분은 부모님, 음식, 공기, 친구들에 기대어 있지요. 그는 아무것도 완전히 홀로, 결코 변하지 않는 고정된 성질을 가진 채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했어요. 불교에서는 이것을 ‘공(空)’이라고 불러요.
공은 아무것도 없다거나,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서로 이어져 있고 늘 변한다는 뜻이에요. 나가르주나는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가 물건이나 자기 자신을 너무 꽉 움켜쥐지 않게 되고, 그래서 더 자유롭고 친절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아주 날카로운 토론가이기도 했어요. 다른 사상가들이 “이것은 자기만의 고정된 성질이 있다”고 말하면, 그 생각을 따라가면 이상한 모순에 빠진다는 걸 차근차근 보여 줬어요. 조각 하나를 잡아당기면 와르르 무너지는 퍼즐처럼요.
그의 삶에 대해 확실히 아는 건 아주 적어요. 옛이야기에서는 그의 이름이 ‘용(龍)의 나무’라는 뜻이고, 뱀의 왕인 나가들이 사는 바닷속 궁전에 가서 거룩한 경전을 가져왔으며, 수백 년을 살았다고 해요. 이런 건 전설이지만 그의 책은 진짜로 남아 있고, 인도·티베트·중국·한국·일본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공부해 왔어요.
한눈에 보기
- 생존 시기
- 약 150~250년(추정.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음)
- 지역
- 남인도로 추정. 흔히 사타바하나 왕조 치하의 안드라 지역과 연결됨
- 전통
- 대승불교. 중관학파(마디야마카, ‘중도’)의 창시자로 여겨짐
- 언어
- 산스크리트어
- 주요 저작
- 『중론(中論)』(Mūlamadhyamakakārikā, 근본중송). 27장 약 450게송
- 핵심 사상
- 공(空, śūnyatā), 연기(緣起), 이제(二諦), 유무를 떠난 중도(中道)
- 동아시아·티베트에서의 위상
- 티베트에서는 ‘제2의 붓다’, 동아시아에서는 여러 종파의 조사(祖師)로 존숭됨
- 유산
- 티베트 불교 철학, 동아시아 삼론종(三論宗)의 토대이며 선종(禪宗)에도 간접적 영향
쉬움
나가르주나는 누구인가
나가르주나는 인도의 불교 승려이자 철학자로, 아마 2세기 또는 3세기 초에 살았을 것입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용수(龍樹)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대승불교 중관학파, 곧 ‘중도’ 학파의 창시자로 여겨지며, 흔히 아시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의 핵심 주장은 모든 것이 ‘공(空, śūnya)’하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에는 ‘자성(自性, svabhāva)’, 곧 ‘스스로의 존재’ 또는 ‘고유한 본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성을 지닌 것이 있다면 그것은 원인이나 부분, 그것을 떠올리는 마음과 상관없이 홀로 존재할 것입니다. 나가르주나는 그렇게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논증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것에 기대어 존재합니다.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나가르주나에게 이 생각은 실천적 목적을 지녔습니다. 불교 가르침에 따르면 괴로움은 갈애와 집착에서 오고, 집착은 사물, 특히 자기 자신이 단단하고 영원하다는 그릇된 믿음에 기댑니다. 이 믿음을 꿰뚫어 보는 것은 집착을 느슨하게 하고 해탈로 나아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나가르주나의 가장 유명한 저작 『중론』은 인과, 운동, 자아, 시간, 붓다, 열반을 검토하는 약 450개의 짧은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리한 논증 덕분에 이 책은 불교 역사에서 가장 많은 주석이 달린 텍스트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쉬움
‘공’이란 무엇인가
붓다는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를 가르쳤습니다. 사물은 원인과 조건에 기대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싹은 씨앗, 흙, 물, 온기에 기대고, 느낌은 감각 기관과 대상의 접촉에 기댑니다. 나가르주나는 이 생각을 논리적 결론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모든 것이 의존해서 일어난다면, 어떤 것도 독립적이고 고정된 본질을 갖지 않습니다. 이처럼 독립적인 본질이 없음을 그는 공이라고 불렀습니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게송(24.18)에서 나가르주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기인 것, 그것을 우리는 공이라 부른다. 그것은 의존하여 붙인 이름(가명假名)이며, 그것이 곧 중도다. 따라서 공은 사물 뒤에 숨은 어떤 실체가 아닙니다.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 곧 서로 의존하며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공은 ‘아무것도 없음’이 아닙니다. 나가르주나는 공한 세계야말로 변화와 인과와 도덕적 노력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물에 고정된 본질이 있다면 결코 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씨앗은 싹이 될 수 없고, 사람은 지혜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는 유명한 구절에서 공이 성립하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성립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공이 잘못 이해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공을 잘못 붙잡으면 둔한 이를 망치니, 뱀을 잘못 잡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24.11). 공은 견해에 대한 집착을 치료하는 약이지, 새로 붙들 또 하나의 견해가 아닙니다.
쉬움
생애와 전설
나가르주나의 생애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가장 오래된 전기는 역경승 구마라집(쿠마라지바)이 지었다고 전하는 중국어 문헌 『용수보살전』으로, 400년 무렵, 곧 나가르주나보다 두 세기쯤 뒤에 쓰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그는 남인도의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나 베다와 여러 학문을 익혔고, 젊은 시절 친구들과 함께 주술로 몸을 숨겨 왕궁에 몰래 들어갔다가 사건을 겪은 뒤 출가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에는 많은 전설이 모였습니다. 이름은 뱀의 신인 ‘나가(nāga)’와 나무의 한 종류인 ‘아르주나(arjuna)’를 합친 것으로, 한자로는 ‘용의 나무’, 곧 용수(龍樹)로 옮겼습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나가들이 그를 바닷속 궁전으로 초대해, 붓다 시대부터 그곳에 간직해 온 반야경(반야바라밀경)을 주었다고 합니다. 후대 티베트 역사서들은 그가 600년을 살았고, 연금술과 의술을 행했으며, 말년을 남인도의 슈리파르바타에서 보냈다고 덧붙입니다.
학자들은 나가르주나라는 이름을 지닌 여러 인물, 곧 철학자, 후대의 밀교 수행자, 연금술사 등이 전승 속에서 한 사람으로 합쳐졌다고 봅니다. 그가 대사원 날란다에서 가르쳤다는 후대 전승도 시대가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날란다가 큰 중심지로 존재했다고 알려진 것은 몇 세기 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역사적인 그림은 나가르주나를 기원후 초기 몇 세기 동안 인도 중부와 남부의 넓은 지역을 다스린 사타바하나 왕조와 연결합니다. 그의 저작으로 전하는 『보행왕정론(라트나발리)』과 『권계왕송(수릴레카)』은 한 왕에게 보낸 글로, 전통적으로 사타바하나의 왕으로 여겨집니다. 안드라프라데시주의 불교 유적 나가르주나콘다는 그의 이름을 따 불리지만, 그와의 연관은 고고학으로 확인되지 않은 후대의 전승입니다.
중급
역사적·사상적 배경
나가르주나의 시대, 곧 붓다 이후 대여섯 세기가 지났을 때 불교는 여러 부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몇몇 부파는 경험을 ‘법(dharma)’이라 부르는 기본 요소, 곧 물질·느낌·지각·의식의 찰나들로 분석하는 체계적 학문인 아비달마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같은 부파는 이 궁극적 법들이 저마다 자성을 지니며, 어떤 의미에서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무렵, 뒷날 대승(大乘), 곧 ‘큰 수레’라 불리게 된 새로운 흐름이 새 경전들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모든 법이 공하다고 가르치고 모든 중생을 위해 깨달음을 구하는 보살을 이상으로 내세운 반야경 계열이었습니다. 나가르주나는 대개 이 가르침에 엄밀한 논증의 형식을 부여한 최초의 위대한 철학자로 여겨집니다.
나가르주나는 불교 밖의 인도 학파들, 특히 지각과 추론 같은 올바른 인식 수단(프라마나)이 실재하는 대상에 이르게 해 준다고 본 논리학·인식론 학파인 니야야학파와도 논쟁했습니다. 『회쟁론(비그라하비야바르타니)』과 『광파론(바이달리야프라카라나)』은 이런 사상가들에 대한 응답입니다.
흥미롭게도 『중론』은 대승을 한 번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며, 붓다가 ‘있다’와 ‘없다’를 모두 물리친 초기 경전인 『가전연경』을 인용합니다(15.7). 그래서 일부 학자는 나가르주나가 자기 생각을 모든 불교도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붓다 본래 가르침의 충실한 해석으로 제시했다고 주장합니다.
중급
방법: 고정된 견해를 녹여 내는 논증
『중론』은 연기, 곧 개념적 희론(戲論, prapañca)의 적멸을 가르친 붓다를 찬탄하는 귀경게로 시작하며, 연기를 여덟 가지 부정으로 묘사합니다. 소멸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으며(불생불멸),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으며(부단불상),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불래불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불일불이)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이것은 ‘팔불(八不)’로 유명해졌습니다.
제1장은 인과를 검토합니다. 사물은 자기로부터도, 다른 것으로부터도, 둘 다로부터도, 원인 없이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네 가지 선택지를 따지는 틀을 사구(四句, catuṣkoṭi)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있다, 없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는 네 가지입니다. 나가르주나는 이 틀로, 고정된 본성을 지닌 존재를 묘사하려는 모든 시도가 모순에 부딪힌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제2장은 유명한 역설로 운동을 검토합니다. 이미 지나간 길에서도, 아직 지나가지 않은 길에서도 가는 일은 일어날 수 없고, 이 둘을 떠나 ‘지금 가고 있는 길’이라는 제3의 자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논증은 사람이 걷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걸음과 걷는 이를 각자 고유한 본성을 지닌 독립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부정합니다.
이런 논증의 상당수는 귀류법(歸謬法)입니다. 나가르주나는 상대의 전제를 받아들인 뒤 그것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짐을 보여 줍니다. 『회쟁론』(제29송)에서 그는 자신에게는 주장(종宗)이 없으며, 만약 있다면 같은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이 아무 주장도 하지 않는다는 뜻인지, 아니면 자성을 지닌 사물에 관한 주장만 하지 않는다는 뜻인지는 중관 해석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급
이제(二諦), 자아, 열반
공한 세계를 어떻게 여전히 말할 수 있는지 설명하려고 나가르주나는 두 가지 진리, 곧 이제설(二諦說)을 씁니다(24.8~10). 붓다의 가르침은 두 진리에 기댑니다. 세속제(世俗諦, saṃvṛti-satya)는 우리가 평소 말하는 사람·탁자·원인의 일상 세계이고, 승의제(勝義諦, paramārtha-satya)는 이 모든 것의 공함입니다. 세속에 기대지 않으면 궁극을 가르칠 수 없고, 궁극을 깨닫지 못하면 열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자아에 관해서 나가르주나는 불교의 무아(無我) 가르침을 따릅니다. 자아는 몸과 마음과 같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은 여럿이고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몸과 마음과 다른 무엇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몸(색), 느낌(수), 지각(상), 의지 작용(행), 의식(식)의 다섯 무더기(오온)에 기대어 붙인 편리한 이름입니다(제18장).
가장 놀라운 것은 나가르주나가 공을 열반에까지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제25장에서 그는 열반이 존재도, 비존재도, 둘 다도, 둘 다 아님도 아니라고 논증하고, 윤회(輪廻, saṃsāra)와 열반 사이에는 털끝만 한 차이도 없으며 한쪽의 끝이 곧 다른 쪽의 끝이라고 결론짓습니다(25.19~20). 이는 일상의 삶이 이미 해탈이라는 뜻이 아니라, 해탈이 다른 장소나 실체가 아니라 고정된 본성에 대한 집착이 끝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공은 공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공은 최고의 실재가 아니며, 공 역시 공합니다(공공空空). 제13장 8송에서 나가르주나는 모든 부처님이 모든 견해를 버리게 하려고 공을 가르쳤으며, 공을 하나의 견해로 삼는 이는 구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중급
나가르주나의 저작으로 전하는 책들
티베트어로 100편 넘게, 중국어로 20편 남짓이 나가르주나의 이름을 달고 전하지만, 그 가운데 많은 수는 분명히 후대의 것입니다. 현대 학자들은 더 작은 핵심만을 진작으로 인정하며, 정확한 목록은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덴마크 학자 크리스티안 린트너가 1980년대 초에 제시한 진작 목록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론』 외에 가장 널리 인정되는 저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육십송여리론(육십정리론, 유크티샤슈티카)』, 『공칠십론(슌야타사프타티)』, 논리학자들의 반론에 답하는 70송에 나가르주나 자신의 산문 주석을 붙인 『회쟁론』, 니야야학파의 범주를 논파하는 『광파론』, 그리고 철학과 윤리, 정치, 보살도를 아울러 왕에게 조언하는 편지 『보행왕정론』입니다.
역시 왕에게 보낸 『권계왕송』과 찬가 모음 『사찬(四讚, 카투스타바)』도 흔히 그의 저작으로 여겨집니다. 이 찬가들은 논증적 저작보다 더 신앙적이고 긍정적인 언어로 궁극의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저자 문제와 나가르주나 자신의 태도를 둘러싼 논쟁을 낳았습니다.
중국어로만 전하는 두 중요한 저작도 전통적으로 그의 것으로 여겨집니다. 5세기 초 구마라집이 번역한 방대한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십지경』 주석서인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입니다. 『대지도론』의 상당 부분을 프랑스어로 옮긴 에티엔 라모트를 비롯해 많은 현대 학자는 지금 형태의 『대지도론』을 나가르주나가 썼다는 데 의문을 제기해 왔습니다.
중급
아시아 전역의 유산: 인도,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
인도에서는 제자 아리야데바(제바提婆)가 그의 작업을 이었고, 후대 주석가들이 중관을 큰 학파로 발전시켰습니다. 붓다팔리타(불호佛護, 5~6세기)와 바비베카(청변淸辨, 6세기)는 중관론자가 독자적인 논리 논증을 세워야 하는지, 아니면 상대 견해의 불합리한 귀결만 드러내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습니다. 찬드라키르티(월칭月稱, 7세기)는 주석서 『프라산나파다(명구론明句論)』에서 뒤의 방식을 옹호했는데, 『중론』의 산스크리트 원문은 주로 이 책을 통해 전해집니다. 나가르주나의 사상은 유가행파와도 논쟁했고, 공을 일체의 부정으로 보아 물리친 샹카라를 비롯한 힌두 철학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티베트에서 중관은 최고의 철학적 견해가 되었습니다. 티베트 학자들은 인도 주석가들을 자립논증파(스바탄트리카)와 귀류논증파(프라상기카)의 두 흐름으로 나누었는데, 이 구분은 인도가 아니라 티베트에서 정식화된 것입니다. 겔룩파의 창시자 쫑카파(1357~1419)는 『중론』에 대한 중요한 주석을 썼고, 티베트에서 나가르주나는 ‘제2의 붓다’로 존숭됩니다.
중국에서는 구마라집이 409년 『중론』을 청목(靑目, 핑갈라)의 주석과 함께 번역했고, 『십이문론』과 아리야데바의 『백론』도 옮겼습니다. 이 세 논서가 삼론종(三論宗)이라는 이름의 유래입니다. 5세기 말~6세기 초 중국 남부에서 활동한 고구려 승려 승랑(僧朗)은 이 전통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길장(吉藏, 549~623)이 이를 집대성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삼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나가르주나는 여러 종파의 조사로 받들어집니다. 흔히 ‘팔종(八宗)의 조사’라고 불리며, 선종 계보는 그를 인도의 조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습니다. 일본 정토진종의 창시자 신란은 『십주비바사론』의 ‘이행품(易行品)’, 곧 염불이라는 ‘쉬운 수행’을 말한 대목 때문에 그를 정토교 칠고승(七高僧)의 첫째로 모셨습니다.
심화
해석 논쟁: 허무주의자, 절대주의자, 회의주의자, 반실재론자?
허무주의. 나가르주나는 당대부터 허무주의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공하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도덕적 삶도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중론』 제24장은 바로 이 반론으로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는 공이 배제하는 것은 존재 자체가 아니라 자성적 존재라는 나가르주나의 답을 받아들이지만, 이 비판은 여전히 논쟁의 틀을 이룹니다.
절대주의. 20세기 중반 T. R. V. 무르티의 『불교의 중심 철학』(1955)은 중관을 칸트의 이성 비판에 견줄 만한 변증법으로 읽고, 개념 너머 말할 수 없는 절대자를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 비판자들은 이 해석이 나가르주나가 공 자체도 공하다고 하면서 명시적으로 부정한 숨은 궁극적 실재를 끌어들인다고 반박했습니다.
회의주의, 치료, 반실재론. 후대 해석자들은 나가르주나를 고대 피론주의 회의론자, 철학을 치료로 본 비트겐슈타인, 현대 반실재론과 비교해 왔습니다. 제이 가필드의 번역·해설(1995)은 그를 관습과 의존에 관해 일관된 입장을 지닌 철학자로 제시했습니다. 마크 시더리츠는 “궁극적 진리는 궁극적 진리가 없다는 것이다”라는 역설적 표어로 요약되는 의미론적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얀 베스터호프의 연구(2009, 그리고 스탠퍼드 철학 백과 항목)는 자성의 여러 의미를 분석하고 논증을 현대적 용어로 재구성합니다.
논리. 나가르주나가 사구의 네 선택지를 모두 부정할 때 모순율을 어기는 것일까요? 이 부정들이 반대를 긍정하지 않는 ‘비정립적 부정(prasajya)’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고, 가필드와 그레이엄 프리스트처럼 초일관(paraconsistent) 논리로 그의 추론을 모형화하려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런 논쟁은 나가르주나가 오늘날의 철학에서도 살아 있는 대화 상대임을 보여 줍니다.
심화
증거: 연대, 저자, 텍스트
연대. 나가르주나는 대개 150~250년 무렵에 놓입니다. 주요 단서는 그가 초기 대승 경전을 인용한다는 점, 그와 관련된 저작이 5세기 초까지 중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점, 그리고 사타바하나 왕과의 연관입니다. 조지프 월서는 『맥락 속의 나가르주나』(2005)에서 비문 자료와 『보행왕정론』에 드러난 승원 제도와 왕실 후원에 대한 관심을 근거로 2세기 후반 안드라 지역을 배경으로 제시했습니다. 조금 더 이르거나 늦은 연대를 선호하는 학자들도 있으며, 어느 증거도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저자 문제. 저작의 귀속은 문헌학의 핵심 문제입니다. 학자들은 문체, 어휘, 교리, 그리고 찬드라키르티나 바비베카의 인용 같은 가장 이른 증언을 비교해 진작 여부를 판단합니다. 『중론』은 누구나 진작으로 인정해 기준 역할을 하며, 논쟁은 찬가, 『대지도론』, 몇몇 짧은 논서에 집중됩니다.
텍스트. 『중론』의 산스크리트 원문은 주로 찬드라키르티의 『프라산나파다』 속에 담겨 전하며, 20세기 초 루이 드 라 발레 푸생이 이를 교정 출판했습니다. 다른 주석서들은 티베트어와 중국어 번역으로 남아 있으며, 때로는 다른 독법을 보존합니다. 나가르주나의 짧은 저작 가운데 여럿은 티베트어나 중국어로만 전합니다. 그래서 번역자들은 여러 판본을 비교해야 하며, 인도 주석 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시더리츠와 가쓰라의 번역(2013) 같은 현대 번역들은 서로 상당히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구마라집 한역본 『중론』이 오랫동안 기본 텍스트였습니다.
전기. 중국어와 티베트어 성인전은 나가르주나가 어떻게 기억되고 숭배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증거이지만, 믿을 만한 전기는 아닙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와 인터넷 철학 백과 항목이 모두 강조하듯, 알려진 것과 믿어지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핵심 개념
- 공(空, śūnyatā)
- 모든 것에 고유한 본성이 없음. 사물은 존재하지만 오직 다른 것에 기대어 존재한다.
- 자성(自性, svabhāva)
- 독립적이고 변하지 않는 본질. 나가르주나는 이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논증한다.
- 연기(緣起)
-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기대어 일어난다. 나가르주나는 이를 공과 같은 것으로 본다.
- 중도(中道)
- 사물이 홀로 참으로 존재한다는 상견(常見)과 아무것도 없다는 단견(斷見)을 모두 피하는 길.
- 이제(二諦)
- 세속제(일상 세계)와 승의제(그 공함). 궁극은 세속을 통해서만 가르칠 수 있다.
- 사구(四句)
- 있다, 없다, 둘 다, 둘 다 아님의 네 선택지. 자성을 지닌 사물에 적용하면 나가르주나는 넷을 모두 물리친다.
- 공도 공하다
- 공은 숨은 절대자가 아니며, 공 또한 공하므로 붙들 견해로 삼아서는 안 된다.
기록
- 약 100년 — 초기 반야경(반야바라밀경)이 인도에서 유통.
- 약 150년 — 나가르주나가 남인도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
- 약 200년 — 제자 아리야데바 활동. 중관이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음.
- 409년 — 구마라집이 『중론』을 청목의 주석과 함께 한역.
- 약 500년 — 고구려 승려 승랑이 중국 남부에서 활동하며 삼론학을 부흥.
- 약 550년 — 붓다팔리타와 바비베카가 나가르주나에 대한 영향력 있는 주석을 씀.
- 약 600년 — 중국에서 길장이 삼론종을 집대성. 이 세기 무렵 인도에서 찬드라키르티가 『프라산나파다』를 씀.
- 약 1200년 — 11~12세기 번역을 거쳐 찬드라키르티의 해석이 티베트에서 주류가 됨.
- 약 1407년 — 쫑카파가 『중론』에 대한 대주석을 씀.
- 1955년 — T. R. V. 무르티가 『불교의 중심 철학』을 펴내 서구의 현대 중관 논쟁을 촉발.
용어 풀이
- 중관(中觀, 마디야마카)
- 나가르주나의 저작에 기초한 대승불교의 ‘중도’ 철학 학파. 그 추종자를 중관론자라 한다.
- 공(空)
- 현상에 고유한 본성이 없음.
- 자성(自性)
- 사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면 지녔을 고유한 본성.
- 연기(緣起)
- 사물이 원인과 조건에 기대어 일어남.
- 대승(大乘)
- ‘큰 수레’. 보살도와 반야경 같은 새 경전을 강조한 불교의 흐름.
- 아비달마
- 경험을 기본 요소(법)로 분석하는 체계적인 불교 학문.
- 희론(戲論)
- 마음이 개념과 구별을 끝없이 늘려 가는 경향.
- 사구(四句)
- 있다, 없다, 둘 다, 둘 다 아님의 네 가지 논리적 선택지.
- 윤회(輪廻)
- 무지와 갈애에 이끌려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
- 열반(涅槃)
- 윤회에서 벗어남. 갈애와 무지가 꺼진 상태.
- 삼론종(三論宗)
- 나가르주나의 두 논서와 아리야데바의 한 논서에 기초한 동아시아 불교 종파.
묻고 답하기
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가요?
아니에요. 공은 어떤 것도 ‘혼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사물은 있지만, 원인과 부분,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는 방식에 기대어서만 있어요.
왜 ‘용의 나무(용수)’라고 불리나요?
이름이 뱀의 신 ‘나가’(동아시아에서는 ‘용’으로 옮김)와 나무의 한 종류 ‘아르주나’를 합친 말이기 때문이에요. 전설에서는 나가들이 그에게 반야경을 주었다고 해요.
나가르주나는 언제, 어디서 살았나요?
아마 150~250년 무렵 남인도, 사타바하나 왕조의 영역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정확한 연대와 장소는 불확실하며, 많은 세부 사항은 훨씬 뒤의 전설에서 나왔습니다.
그의 저작으로 전하는 책은 모두 그가 썼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을 단 책은 100편이 넘지만, 학자들은 『중론』을 중심으로 한 더 작은 핵심만 인정합니다. 찬가나 『대지도론』 같은 다른 책들의 저자 문제는 논쟁 중입니다.
‘나에게는 주장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해석이 갈립니다. 어떤 주장도 하지 않겠다는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보는 이도 있고, 세속적으로는 말하되 자성을 지닌 사물에 관한 주장은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나가르주나의 사상은 한국과 관련이 있나요?
네. 그의 저작은 한역본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고, 고구려 승려 승랑은 이 저작들에 기초한 삼론학 전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중관은 일종의 상대주의인가요?
많은 해석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세속의 진리도 공유된 관행 안에서 참이거나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음과 독립된 사실 없이 상대주의를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는 현대 학자들이 꼽는 열린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Jan Westerhoff, Nāgārjuna.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Douglas Berger, Nāgārjuna.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 Nagarjuna. Wikipedia(영어)
- 나가르주나. 위키백과
- Mūlamadhyamakakārikā. Wikipedia(영어)
- 중론. 위키백과
- Jay L. Garfield, The Fundamental Wisdom of the Middle Way: Nāgārjuna’s Mūlamadhyamakakārikā.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 Mark Siderits, Shōryū Katsura, Nāgārjuna’s Middle Way: Mūlamadhyamakakārikā. Wisdom Publications, 2013
- Jan Westerhoff, Nāgārjuna’s Madhyamaka: A Philosophical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 Joseph Walser, Nāgārjuna in Context: Mahāyāna Buddhism and Early Indian Culture.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5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