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더 전, 중국 사람들은 한 지혜로운 할아버지 선생님 이야기를 전했어요. 사람들은 그를 ‘노자’라고 불렀지요. ‘노(老)’는 늙었다는 뜻이고 ‘자(子)’는 선생님이라는 뜻이에요. 이야기에 따르면 노자는 임금님의 도서관에서 오래된 기록을 돌보는 일을 했대요. 요즘으로 치면 사서 선생님 같은 일이었지요.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져요. 나라가 약해지고 다툼이 끊이지 않자, 노자는 떠나기로 했어요. 어떤 이야기에서는 소를 타고 서쪽으로 갔다고 해요. 산속 관문에 이르자 문지기가 그를 붙잡고 말했어요. “떠나시기 전에 선생님의 지혜를 글로 남겨 주세요.” 그래서 노자는 한자 5,000자쯤 되는 짧은 책을 써 주고 사라졌어요. 그 뒤로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 작은 책이 바로 『도덕경』이에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도(道)’, 곧 ‘길’이에요.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이 조용히 자라고 바뀌어 가는 방식을 말하지요. 노자는 도가 너무 커서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고 했어요.
노자는 물을 무척 좋아했어요. 물은 부드럽고 늘 낮은 곳으로 흘러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단단한 바위도 깎아 내지요. 노자는 사람도 물처럼 겸손하고 차분하고 참을성 있게 살면 진짜로 강해진다고 생각했어요. 또 좋은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너무 많이 시키지 않는다고 했어요. 정말 훌륭한 지도자가 다스리면, 일이 잘됐을 때 사람들이 “우리가 스스로 해낸 거야!” 하고 말한대요.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노자가 정말 한 사람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해요.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책을 엮었을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누가 썼든 『도덕경』은 중국, 한국, 일본을 넘어 온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답니다.
한눈에 보기
- 생몰
- 알 수 없음. 전통적으로는 공자보다 조금 앞선 기원전 6세기 사람으로 보지만, 현대 학자들은 『도덕경』 본문을 대체로 기원전 5~4세기 무렵의 것으로 본다
- 지역
- 전승에 따르면 초(楚)나라 고현(苦縣, 지금의 허난성) 출신으로, 주(周) 왕실이 있던 낙읍(지금의 뤄양)에서 장서를 관리했다
- 이름
- 전통적으로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 노담(老聃)이라고도 불린다
- 저작
- 『도덕경(道德經)』, 일명 『노자』. 전해 오는 판본은 약 5,000자, 81장
- 가장 오래된 사본
- 궈뎬(郭店) 초간(기원전 300년 무렵 봉인된 무덤), 마왕퇴(馬王堆) 백서(기원전 168년 이전 필사), 베이징대학 소장 서한 죽간본
- 전통
- 도가(道家) 사상의 비조로 받들어지며, 도교(道敎)에서는 신으로 섬겨진다
- 핵심 개념
- 도(道), 덕(德), 무위(無爲), 자연(自然), 통나무(樸),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김
쉬움
노자는 누구인가
노자는 세계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가운데 하나인 『도덕경』의 저자로 전해지는 고대 중국의 현자다. ‘노자’는 본래 이름이 아니라 높여 부르는 말로, ‘늙은 스승’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도덕경』을 흔히 그의 이름을 따 『노자』라고도 부른다.
노자의 생애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한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이 기원전 100~90년 무렵 완성한 『사기(史記)』의 「노자한비열전」이다. 노자가 살았다는 시기보다 몇백 년 뒤에 쓰인 글이다. 사마천에 따르면 노자는 성이 이, 이름이 이(耳)이며 노담이라고도 불렸고, 남쪽 초나라 사람으로 주 왕실에서 장서를 관리하는 관리였다.
그런데 사마천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본 이야기를 한 뒤, 노자일지도 모르는 다른 두 사람을 함께 소개하고, 노자가 160년 또는 200년을 살았다는 소문도 적어 두었다. 가장 오래된 자료부터 이렇게 솔직하게 불확실함을 드러낸다는 점이 오늘날 모든 노자 연구의 출발점이다. 많은 학자는 ‘노자’를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명의 저자라기보다, 하나의 지혜 전통에 붙은 이름으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쉬움
유명한 두 이야기: 공자와의 만남, 서쪽 관문
노자에 관한 두 이야기는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알려졌다. 첫째는 젊은 공자가 주나라 도읍에 가서 노자에게 예(禮)를 물었다는 이야기다. 노자는 공자의 교만과 욕심을 부드럽게 꾸짖는다. 돌아온 공자는 제자들에게, 새와 물고기와 짐승은 알겠지만 노자는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용과 같아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만남은 『장자』를 비롯한 여러 옛 문헌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오며, 도가의 지혜가 유가의 학문보다 깊다는 뜻을 담는 데 자주 쓰였다.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이를 전설로 본다.
둘째는 노자가 주나라가 기우는 것을 보고 서쪽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다. 국경의 관문에서 관문지기 윤희(尹喜)가 그가 성인임을 알아보고 떠나기 전에 책을 남겨 달라고 청한다. 노자는 도와 덕에 관한 상하 두 편, 5,000여 자의 글을 써 주고 떠났으며, 사마천은 “그가 어디서 생을 마쳤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적었다. 후대 화가들은 소를 타고 관문으로 향하는 늙은 현자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이 이야기들은 사실 그대로가 아니더라도 중요하다. 한나라 이후 사람들이 『도덕경』의 기원을 어떻게 상상했는지, 곧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는 현자가 남긴 마지막 선물로 여겼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쉬움
『도덕경』: 작은 책, 큰 목소리
『도덕경』은 5,000자 남짓한 짧은 책이다.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는 판본은 81장으로 나뉘어 있고, 어떤 장은 몇 줄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 운율이 있는 짧은 구절로 되어 있어 논문보다는 시에 가깝다. 사람 이름이나 지명, 사건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언제 쓰였는지 가늠하기 어렵고, 그만큼 여러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책은 전통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1~37장)은 ‘도(道)’라는 글자로 시작해서 「도경(道經)」, 뒷부분(38~81장)은 ‘덕(德)’으로 시작해서 「덕경(德經)」이라 한다. 두 부분을 합친 이름이 바로 『도덕경』이다.
첫 구절은 중국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가운데 하나다.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 지을 수 있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책은 처음부터 가장 깊은 주제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물, 골짜기, 갓난아기, 다듬지 않은 통나무, 수레바퀴의 빈 바퀴통, 암컷, 뿌리 같은 이미지로 이야기한다.
『도덕경』은 정치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많은 장이 통치자, 곧 ‘성인(聖人)’에게 말을 건넨다. 가볍게 다스리고, 욕심과 세금을 줄이고, 되도록 전쟁을 피하며, 백성이 소박하고 만족스럽게 살도록 두라고 권한다. 개인의 지혜를 다룬 책이면서 동시에 정치의 안내서인 셈이다.
중급
핵심 사상: 도, 덕, 무위, 자연
도(道)는 본래 ‘길’을 뜻했고, 나아가 방법이나 가르침을 뜻했다. 유가는 ‘선왕의 도’를 말했다. 『도덕경』은 이 말에 새로운 깊이를 준다. 여기서 도는 모든 것이 나오는 이름 없는 근원, “만물의 어머니”이며, 애쓰지 않고 공을 내세우지 않으며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세계가 움직이는 결과 흐름 그 자체다.
덕(德)은 흔히 ‘덕’ 또는 ‘힘’으로 옮기는데, 도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 드러난 모습, 곧 도와 어우러질 때 생기는 힘이나 감화력을 말한다. 참된 덕을 지닌 통치자는 강제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감화시킨다. 『도덕경』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높은 덕(上德)’과 덕 있어 보이려 애쓰는 ‘낮은 덕(下德)’을 구별한다.
무위(無爲)는 글자 그대로는 ‘하지 않음’이지만, 게으름을 뜻하지 않는다.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사사로운 욕심으로 애쓰지 않고, 쓸데없이 간섭하지 않는 행동이다. 식물이 자라고 물이 제 높이를 찾아가는 방식과 같다. 『도덕경』은 도가 “하는 것이 없으나 하지 않는 것이 없다(無爲而無不爲)”고 말한다. 통치자에게 무위란 법과 형벌과 야망을 쌓아 올리지 않고 백성이 스스로 삶을 꾸려 가도록 믿고 맡기는 것이다.
자연(自然)은 오늘날의 ‘자연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함’, 곧 바깥의 압력 없이 제 길을 따르는 상태를 말한다. 이와 이어지는 이미지로 도구나 신분으로 깎이기 전의 소박함을 뜻하는 박(樸, 다듬지 않은 통나무)과, 부드러우면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갓난아기가 있다. 이 책은 굳세고 높고 가득 차고 공격적인 것보다 부드럽고 낮고 비어 있고 여성적인 것을 높인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린다.” 또 ‘되돌아감(反)’을 가르친다. 무엇이든 끝까지 가면 반대로 돌아오므로, 지혜로운 이는 몸을 낮추고 멈출 때를 안다.
중급
제자백가의 시대
『도덕경』이 언제 쓰였든, 이 책은 동주(東周) 후기, 곧 춘추시대 말부터 전국시대(대략 기원전 6~3세기)에 속한다. 주나라 왕은 실권을 잃었고, 여러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또 패권을 잡기 위해 싸웠다. 전쟁은 점점 커지고 잔혹해졌으며, 정부는 중앙집권화되었고, 군주들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참모를 찾았다.
이 위기 속에서 훗날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불리는 사상의 폭발이 일어났다. 유가는 도덕 수양과 예, 덕 있는 군자의 통치를, 묵가는 차별 없는 사랑(兼愛)과 실질적 이익을, 뒤이은 법가는 엄격한 법과 상벌을 주장했다. 『도덕경』은 이들 모두에 대한 응답으로 읽을 수 있다. 지나친 꾀, 지나친 규칙, 인의(仁義)에 대한 요란한 말은 모두 세상이 도를 잃었다는 증상이라는 것이다.
‘도가(道家)’라는 이름은 나중에 붙었다. 한나라 학자들, 특히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과 뒤이어 황실 장서 목록을 만든 유향·유흠 부자가 앞선 사상가들을 학파로 나누면서 노자와 장자를 한데 묶었다. 기원전 4세기의 장주(莊周)와 관련된 『장자』는 『도덕경』과 사뭇 다른, 더 자유분방한 책으로, 도가 사상의 두 번째 고전이 되었다.
중급
땅속에서 나온 사본: 마왕퇴, 궈뎬, 베이징대학본
거의 2,000년 동안 사람들은 베껴 쓰고 인쇄해 전해진 판본으로만 『도덕경』을 읽었다. 특히 왕필(王弼, 226~249)의 주석과 하상공(河上公)의 이름으로 전하는 주석에 딸린 판본이 표준이었다. 20세기 후반 고고학이 이 그림을 바꾸었다.
1973년 후난성 창사 부근 마왕퇴 3호 한묘에서 비단에 쓴 『노자』 두 벌이 나왔다. 이 무덤은 기원전 168년에 봉인되었고, 두 사본 가운데 하나는 기원전 195년 무렵 이전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두 사본은 전해 오는 판본과 가깝지만 「덕경」이 「도경」보다 앞에 온다. 그래서 일부 학자는 이를 『덕도경』이라 부른다. 이 발견으로 늦어도 한나라 초에는 이 책이 거의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1993년에는 더 오래된 자료가 나왔다. 옛 초나라 땅인 후베이성 징먼 부근의 궈뎬 1호묘로, 기원전 300년 무렵 봉인된 무덤이다. 800여 매의 죽간 가운데 세 묶음에 『노자』와 겹치는 내용이 있었다. 약 2,000자로 전해 오는 판본의 5분의 2쯤 되며, 순서가 다르고 도경·덕경의 구분도 없다. 전해 오는 판본에서 가장 날카롭게 유가를 비판하는 구절 몇몇은 훨씬 부드러운 표현으로 나온다. 같은 묶음에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우주론 문헌 「태일생수(太一生水)」도 들어 있었다.
세 번째 중요한 자료는 2009년 베이징대학이 입수한 서한(西漢) 시대 죽간본으로, 거의 완전하며 전해 오는 판본처럼 두 편으로 나뉘어 있다. 이 발견들 덕분에 학자들은 『도덕경』을 하늘에서 완성된 채 떨어진 책이 아니라, 자라나고 굳어져 간 텍스트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중급
현자에서 신으로: 도교 속의 노자
한나라를 거치며 노자는 차츰 지혜로운 사람에서 신적인 존재로 바뀌었다. 후한 환제(桓帝)의 조정은 160년대에 노자에게 제사를 올렸고, 이 무렵 문헌은 노자를 도가 몸을 입은 존재로, 역사 속에 여러 번 나타나 임금들을 가르친 스승으로 그린다. 2세기에 시작되어 흔히 조직된 도교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천사도(天師道)에서 노자는 신격화된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받들어졌고, 『도덕경』은 경전으로 암송되었다.
성이 이(李)였던 당나라(618~907) 황실은 노자의 후손을 자처했다. 666년 고종은 노자에게 ‘태상현원황제(太上玄元皇帝)’라는 존호를 올렸고, 한때 『도덕경』이 과거 시험 과목에 들어가기도 했다. 불교와의 경쟁 속에서, 노자가 중국을 떠나 인도로 가서 ‘오랑캐를 교화했고’ 심지어 부처가 되었다는 논쟁적인 전설(노자화호설)도 생겨났다. 불교 측은 이를 강하게 반박했고, 이 주장을 담은 책은 뒤에 금서가 되었다.
이 흐름들을 우열로 가르지 않고 구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철학으로서의 도가와 종교로서의 도교는 중국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다. 오늘날에도 노자는 중국 본토와 타이완 등지의 도관에서 신으로 모셔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도덕경』이 순전히 철학서로 읽힌다.
중급
동아시아와 세계에 끼친 영향
중국에서 『도덕경』은 정치사상(기원전 2세기 한나라 초의 통치자들은 간섭을 줄이는 ‘황로(黃老)’ 정치를 선호했다), 왕필 등이 이끈 위진 시대의 현학(玄學), 선불교, 시와 그림과 서예, 양생과 장수에 관한 생각에 두루 영향을 주었다. 비움과 스스로 그러함, 자연스러움을 말하는 이 책의 어휘는 불교가 처음 한문으로 번역될 때 쓰인 말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이 책은 동아시아 곳곳으로 퍼졌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24년 당나라 조정이 고구려에 도사를 보냈고, 그가 영류왕 앞에서 『노자』를 강의했다. 일본과 베트남에서도 『도덕경』은 교양인이 함께 읽는 고전 교양의 일부가 되었다.
17~18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이 책을 연구했고, 1842년 스타니슬라스 쥘리앵이 프랑스어로, 19세기 후반에는 여러 사람이 영어로 옮겼다. 20세기에 들어 『도덕경』은 수백 종의 번역이 나온,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작가, 철학자, 생태 사상가, 경영 이론가들이 저마다 이 책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대중적인 번역 가운데에는 원문과 거리가 먼 것도 적지 않다.
심화
노자는 실존했는가: 저자와 연대 논쟁
노자의 실존 문제는 적어도 송나라 때부터, 그리고 1920~30년대 ‘의고(疑古)’ 운동 이후로는 매우 치열하게 논의되었다. 사마천의 전기에는 적어도 세 후보가 섞여 있다. 공자와 같은 시대의 이이(노담), 열다섯 편의 책을 썼다는 초나라 사람 노래자(老萊子), 그리고 기원전 4세기에 진(秦) 헌공을 만났다는 주나라 태사 담(儋)이다. 또 이이의 후손 계보가 사마천 당대까지 이어지는데, 일부 학자는 이를 한나라 때 어느 가문의 주장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학자들의 입장은 크게 셋이다. 전통적 견해는 기원전 6세기의 노담을 저자로 인정한다. 둘째 견해는 본문을 전국시대(기원전 4~3세기)로 내려 잡는데, 중국의 첸무(錢穆), 서양의 A. C. 그레이엄 같은 학자들이 저마다 다른 형태로 주장했다. 그레이엄은 공자의 스승 노담이라는 인물은 전설이며, 이 전설이 나중에 새로 엮인 책에 붙었다고 보았다. 셋째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선집(anthology)’ 견해는, 예컨대 D. C. 라우(劉殿爵)가 주장했듯, 『도덕경』을 오랜 시간 쌓인 격언과 운문의 모음으로 본다. 장과 장이 잘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고, 한 저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궈뎬 죽간은 세 입장 모두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300년 무렵 이미 본문의 상당 부분이 있었음이 확인되어 아주 늦은 연대설은 힘을 잃었다. 하지만 궈뎬본이 일부이고 배열도 다르기 때문에 해석이 갈린다. 이미 완성된 책에서 뽑아 쓴 발췌본이라는 견해가 있고, 81장본이 엮이기 전의 더 이른 단계를 보여 준다는 견해도 있다.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많은 학자는 한나라 이전에 대해서는 복수의 ‘노자 텍스트들’이라고 말하는 편을 택한다.
심화
『도덕경』 읽기: 주석과 해석의 문제
『도덕경』은 워낙 간결해서 해석은 언제나 주석에 기대 왔다. 하상공 주(성립 시기는 한나라에서 4세기 사이로 논란이 있다)는 이 책을 수양과 장수의 안내서로도 읽어,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몸의 기(氣)를 기르는 일을 연결한다. 2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난 천재 왕필의 주석은 형이상학적으로 읽어, 모든 있음(有)의 근원으로 없음(無)을 강조한다. 그보다 앞서 기원전 3세기 『한비자』의 「해로(解老)」·「유로(喩老)」 편은 이 책을 정치 전략으로 읽었다.
현대 학자들도 기본적인 물음에서 의견이 갈린다. 『도덕경』은 신비주의 문헌인가, 통치자를 위한 정치철학인가, 전략서인가, 개인 수양의 안내서인가? 도는 세계를 넘어선 초월적 실재인가, 아니면 세계가 움직이는 내재적 방식일 뿐인가? 무위를 ‘하지 않음’, ‘애쓰지 않는 행위’, ‘억지로 하지 않음’ 가운데 무엇으로 옮기느냐 하는 번역자의 선택에도 이런 해석이 담긴다.
출토 사본은 본문 문제를 더한다. 유명한 구절 가운데 많은 수가 마왕퇴본이나 궈뎬본에서 다르게 나오며, 전해 오는 판본이 옛 본문을 ‘다듬은’ 것인지 왜곡한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다. 잘 알려진 예가 19장이다. 전해 오는 판본은 “인을 끊고 의를 버리라(絶仁棄義)”고 하지만, 궈뎬본은 ‘거짓과 속임’ 같은 다른 대상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차이는 초기 도가 사상이 유가에 얼마나 적대적이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심화
증거와 방법: 전기 없는 현자를 연구하기
노자를 연구하려면 세 종류의 증거를 나누어 보아야 한다. 첫째는 전해 오는 문헌 전통이다. 『사기』의 전기, 『장자』·『여씨춘추』·『예기』에 실린 일화, 후대의 신선전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노자가 어떻게 기억되었는지를 알려 주지만, 시기가 늦고 저마다 의도가 있다.
둘째는 본문 자체다. 언어적 특징, 압운의 형태, 어휘, 그리고 이 책이 무엇에 응답하고 있는가(예컨대 유가의 핵심어인 인의에 대한 비판, 큰 나라와 대군에 대한 관심)를 근거로 층위의 연대를 추정한다. 다만 학자마다 이런 단서에 두는 무게가 다르다.
셋째는 출토 사본으로, 무덤이 봉인되기 전에 어떤 형태의 본문이 있었다는 확실한 기준점을 준다. 고문자학자들은 먼저 낯선 초나라 문자나 한나라 초 문자를 판독해야 하고, 판독이 불확실한 곳도 많다. 방법론의 측면에서 출토 사본은 “누가, 언제 『도덕경』을 썼는가?”라는 물음을 “흩어져 떠돌던 말들이 어떻게 고정된 고전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으로 옮겨 놓았다. 이 물음은 노자 연구를 중국과 다른 지역의 초기 문헌 연구와 이어 준다.
핵심 개념
- 도(道)
- 모든 것의 이름 없는 근원이자 흐름. 조용히, 애쓰지 않고, 공을 내세우지 않으며 작용하고, 말로 다 담을 수 없다.
- 덕(德)
- 도와 어우러질 때 생기는 힘. 참된 덕은 드러내거나 강제하지 않고도 남을 감화시킨다.
- 무위(無爲)
- 억지로 밀어붙이거나 사사로이 애쓰거나 간섭하지 않아, 일이 제 흐름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행동. 성인과 통치자의 이상이다.
- 자연(自然)
- ‘스스로 그러함’. 바깥의 압력 없이 제 길을 따르는 상태.
-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김
- 물, 갓난아기, 암컷의 이미지로, 낮추고 부드러운 것이 딱딱하고 공격적인 것보다 오래간다는 생각.
- 되돌아감(反)
- 무엇이든 끝까지 가면 돌아온다. 그래서 지혜로운 이는 몸을 낮추고 만족할 줄 알며 멈출 때를 안다.
- 작은 정부
- 성인 통치자는 가볍게 다스리며 욕심·세금·법·전쟁을 줄이고 백성이 소박하게 살도록 둔다.
기록
- 약 기원전 518년 — 후대 전승에 따르면 공자가 주 왕실을 찾아 노자에게 예를 묻다(전설, 연대 불확실).
- 약 기원전 300년 — 초나라 궈뎬 1호묘가 『노자』 내용을 담은 죽간과 함께 봉인되다.
- 기원전 168년 — 마왕퇴 3호묘가 『노자』 백서 두 벌과 함께 봉인되다(기원전 168년).
- 약 기원전 94년 — 사마천이 노자의 가장 오래된 전기를 담은 『사기』를 완성하다.
- 약 166년 — 후한 환제의 조정이 노자를 신으로 받들어 제사를 올리다.
- 249년 — 표준 판본의 바탕이 된 주석을 남긴 왕필이 세상을 떠나다.
- 624년 —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나라가 보낸 도사가 고구려에서 『노자』를 강의하다.
- 666년 — 당 고종이 노자에게 ‘태상현원황제’라는 존호를 올리다.
- 1842년 — 스타니슬라스 쥘리앵이 『도덕경』 프랑스어 번역을 펴내다.
- 1973년 — 후난성 창사 부근에서 마왕퇴 백서가 발굴되다.
- 1993년 — 후베이성 징먼 부근에서 궈뎬 죽간이 발굴되다(1998년 공간).
- 2009년 — 베이징대학이 서한 시대 『노자』 죽간본을 입수하다.
용어 풀이
- 『도덕경(道德經)』
- ‘도와 덕의 경전’. 노자가 썼다고 전하는 책으로, 『노자』라고도 한다.
- 『사기(史記)』
- 사마천(기원전 145년 무렵~86년 무렵)이 쓴 역사서. 노자의 가장 오래된 전기가 실려 있다.
- 주(周)나라
- 중국의 왕조(기원전 1046년 무렵~256년). 노자가 살았다는 무렵에는 왕이 실권을 잃은 상태였다.
- 제자백가(諸子百家)
- 주나라 후기에 경쟁한 여러 사상 학파.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이 있다.
- 도가(道家)와 도교(道敎)
- 도가는 철학 학파로서의 ‘도의 학파’, 도교는 조직된 종교를 가리킨다.
- 전래본(傳來本)
- 필사와 인쇄로 전해 내려온 판본. 땅속에서 나온 출토본과 대비된다.
- 죽간(竹簡)
- 대나무를 얇게 쪼개 끈으로 엮은 것. 고대 중국의 주된 필기 재료였다.
- 궈뎬(郭店)
- 후베이성 징먼 부근의 초나라 무덤 유적. 1993년 가장 오래된 『노자』 사본이 나왔다.
- 마왕퇴(馬王堆)
- 후난성 창사 부근의 한나라 무덤 유적. 1973년 비단에 쓴 『노자』 두 벌이 나왔다.
- 박(樸)
- 다듬지 않은 통나무. 욕심·지식·신분으로 깎이기 전의 본래 소박함을 상징한다.
- 주석(註釋)
- 경전의 뜻을 풀이해 덧붙인 글. 왕필 주와 하상공 주가 『도덕경』 읽기를 좌우했다.
묻고 답하기
노자는 진짜 있었던 사람인가요?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해요. 몇백 년 뒤에 쓰인 가장 오래된 전기부터 여러 사람과 전설이 섞여 있어요. 많은 학자는 『도덕경』이 오랜 시간에 걸쳐 엮였고, ‘노자’는 그 책에 붙은 이름이라고 봐요.
노자는 정말 소를 타고 떠났나요?
널리 알려진 전설이고 화가들이 즐겨 그린 장면이에요. 가장 오래된 전기에는 서쪽 관문을 지나 떠났고 어디서 생을 마쳤는지 아무도 모른다고만 적혀 있어요.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물이 바위를 돌아 흐르듯, 억지로 밀어붙이거나 간섭하지 않고 하는 행동을 말해요. 게으름이 아니라 힘을 빼고 능숙하게 하는 행동에 가까워요.
노자와 공자는 정말 만났나요?
여러 옛 문헌에 그 이야기가 나오지만,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전설로 봐요. 도가와 유가의 경쟁 관계가 이야기의 모양을 만든 면도 있어요.
『도덕경』은 얼마나 오래된 책인가요?
궈뎬 죽간을 보면 기원전 300년 무렵에는 일부가 있었고, 기원전 2세기 초에는 거의 완전한 형태가 있었어요. 전통적으로는 기원전 6세기로 보지만, 많은 학자는 주요 부분이 기원전 5~4세기에 이루어졌다고 봐요.
궈뎬 죽간은 무엇을 바꾸었나요?
기원전 300년 무렵 『노자』 내용이 더 짧고 순서가 다르며 유가 비판이 더 부드러운 형태로 돌았음을 보여 주었어요. 완성본에서 뽑은 발췌인지, 완성 이전 단계인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에요.
도가는 철학인가요, 종교인가요?
둘 다예요. 『도덕경』은 철학서로 읽히지만, 한나라 이후 노자는 도교에서 신으로 섬겨졌고 도교는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종교예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 Laozi.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Laozi (Lao-tzu, fl. 6th cn. B.C.E.).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 Laozi. Wikipedia
- Tao Te Ching. Wikipedia
- Guodian Chu Slips. Wikipedia
- Mawangdui Silk Texts. Wikipedia
- Taoism. Wikipedia
- D. C. Lau (trans.), Lao Tzu: Tao Te Ching. Penguin Books, 1963
- A. C. Graham, Disputers of the Tao: Philosophical Argument in Ancient China. Open Court, 1989
- Robert G. Henricks, Lao Tzu’s Tao Te Ching: A Translation of the Startling New Documents Found at Guodian.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0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