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손자병법

孫子兵法 (‘손 선생의 병법’) · 孫子 (『손자』)

약 기원전 500–301년 · 오나라 (쑤저우 부근)

한 문장으로

『손자병법』은 ‘손 선생’이라 불린 장군이 썼다고 전하는 고대 중국의 짧은 전략서로, 가장 좋은 승리는 꼼꼼한 계획과 나와 상대를 아는 데서 나오며, 할 수만 있다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가르칩니다.

손자병법
이미지: Sun Tzu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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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2,000여 년 전 중국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자주 싸웠어요. 그래서 계획을 잘 세우고 군대를 지혜롭게 이끄는 사람이 아주 중요했지요. 옛이야기에 따르면 그런 사람 가운데 손무라는 장군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그를 ‘손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손자(孫子)라고 불렀어요.

그의 이름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법을 다룬 짧은 책이 전해졌어요. 바로 『손자』, 흔히 『손자병법』이라고 부르는 책이에요. 13편밖에 안 되는 짧은 책이지만, 오늘날에도 온 세계 사람들이 읽어요.

놀랍게도 이 책은 싸움이 멋지다고 말하지 않아요. 전쟁은 위험하고 돈도 많이 들기 때문에, 지혜로운 지도자는 시작하기 전에 아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해요. 가장 좋은 승리는 아예 싸우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것이래요.

가장 유명한 말 가운데 하나는 이거예요.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내 장점과 약점, 그리고 상대의 장점과 약점을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운동 경기나 바둑, 모둠 과제에도 쓸 수 있는 좋은 조언이지요!

이 책은 훌륭한 군대를 물에 비유하기도 해요. 물은 단단한 바위를 돌아 흐르고 낮고 빈 곳으로 흘러가요. 이처럼 영리한 지도자는 상대의 강한 곳을 피하고 약한 곳으로 나아간대요.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누가, 언제 이 책을 썼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략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답니다.

한눈에 보기

성격
13편으로 된 병서(전래본 약 6,000자)
저자로 전하는 인물
손무(孫武, 손자). 사마천에 따르면 오왕 합려(재위 기원전 514~496년)를 섬겼다
성립 시기
전통적으로 기원전 6세기 말. 현대 학자 다수는 전국시대인 기원전 5~4세기에 본문이 이루어졌고, 여러 단계를 거쳤을 수 있다고 본다
지역
전통적으로 장강 하류의 오(吳)나라(지금의 쑤저우 일대)와 연결된다. 손자는 제(齊)나라 출신으로 전한다
가장 오래된 사본
산둥성 린이 인췌산(銀雀山) 1호 한묘 죽간. 기원전 2세기에 묻혔고 1972년 발견
표준 판본
조조(曹操)의 주석(3세기 초)에 바탕. 송나라 『무경칠서』(1080년대)의 첫머리
핵심 개념
치밀한 계산, 속임수, 지피지기, 싸우지 않고 이김, 세(勢), 정(正)과 기(奇), 첩자의 활용

쉬움

『손자병법』은 어떤 책인가

『손자병법』은 전쟁과 전략을 다룬 고대 중국 문헌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이다. 중국에서는 흔히 『손자』 또는 『손자병법』이라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초기 번역의 제목을 따라 ‘The Art of War(전쟁의 기술)’로 알려졌다.

책은 매우 짧다. 전래본은 13편, 한자로 약 6,000자다. 각 편은 특정 전투 이야기가 아니라 압축된 명제와 원칙의 연속이다. 사람 이름이나 연대, 지명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온갖 상황에 적용하기 쉬운 반면 언제 쓰였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전쟁을 다루지만 책은 경고로 시작한다. “전쟁은 나라의 큰일이다. 죽고 사는 땅이요, 살아남고 망하는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이 책은 무기와 훈련의 교범이라기보다 생각하는 법의 안내서다.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지, 언제 싸우고 언제 싸우지 말지, 어떻게 가장 적게 쓰면서 유리함을 얻을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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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손자와 궁녀들: 전해 오는 이야기

손자의 가장 오래된 전기는 사마천이 기원전 100~90년 무렵 완성한 『사기』 「손자오기열전」에 있다. 사마천에 따르면 손무는 제나라 사람으로, 자신의 병법서를 들고 오왕 합려를 찾아갔다. 호기심이 생긴 왕은 그 병법을 궁녀들에게 시험해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손무는 궁녀 180명을 두 부대로 나누고 왕이 가장 아끼는 두 후궁을 대장으로 삼았다. 훈련 방법을 설명한 뒤 북을 울렸지만 궁녀들은 웃기만 했다. 다시 설명하고 북을 쳤지만 또 웃었다. 손무는 명령이 분명한데도 따르지 않는다면 지휘관의 잘못이라며, 왕이 말리는데도 두 대장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궁녀들은 한 치 어긋남 없이 훈련을 해냈다. 왕은 언짢았지만 손무를 장군으로 삼았고, 사마천은 오나라가 강국 초나라를 무찌르고 그 도읍에 들어간 데 손무의 공이 컸다고 적었다.

극적이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지만 역사학자들은 조심스럽다. 기원전 506년 오나라와 초나라의 전쟁을 자세히 기록한 연대기 『좌전(左傳)』에는 손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사기』의 이야기를 전설로 보고, 손무가 실존했는지조차 의심하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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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13편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

각 편은 대체로 전쟁 전의 계획에서 전장의 행동으로, 다시 특수한 주제로 나아간다. 제1편 「계(計)」는 도(백성이 군주와 한마음인가), 천(날씨와 계절), 지(지형과 거리), 장(장수), 법(조직과 규율)의 다섯 가지로 양쪽을 비교한다. 제2편 「작전(作戰)」은 원정의 막대한 비용을 경고하며, 오래 끈 전쟁으로 이득을 본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제3편 「모공(謀攻)」은 가장 높은 솜씨가 적의 계책을 치는 것이고, 그다음이 동맹을 끊는 것, 그다음이 군대를 치는 것이며, 성을 공격하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라고 가르친다.

제4~6편인 「형(形)」, 「세(勢)」, 「허실(虛實)」은 자기편을 이길 수 없는 태세로 만드는 법, 비탈을 쏟아져 내리는 물처럼 기세를 쌓는 법, 적이 비어 있는 곳을 치는 법을 다룬다. 제7~9편은 기동,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는 법, 여러 지형에서 군대를 움직이는 법을 다룬다.

제10편과 제11편은 지형의 종류와 ‘구지(九地)’, 곧 군대가 놓일 수 있는 아홉 가지 처지를 분류한다. 자기 땅에서 싸우는 경우부터 적지 깊숙이 들어가 돌아갈 길이 없는 경우까지다. 제12편은 불로 공격하는 법을, 제13편 「용간(用間)」은 앞일을 아는 지식은 귀신이나 별자리 계산에서 얻을 수 없고 오직 적의 사정을 아는 사람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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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핵심 사상: 계산, 속임수, 싸우지 않고 이기기

싸우기 전의 계산. 『손자』는 승패가 대부분 싸움이 시작되기 전, 양쪽을 비교하는 조정의 사당(묘당)에서 결정된다고 거듭 말한다.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겨 놓고 싸움을 구하고, 지는 군대는 먼저 싸우고 나서 이기기를 구한다(勝兵先勝而後求戰, 敗兵先戰而後求勝).” 용기만이 아니라 꼼꼼한 판단이 결과를 정한다.

속임수. 제1편은 “전쟁은 속이는 길이다(兵者, 詭道也)”라고 말한다. 할 수 있으면서 못하는 척하고, 가까우면서 먼 척하라는 것이다. 전쟁은 워낙 값비싸기 때문에, 자신의 힘과 의도를 적이 잘못 알게 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인명과 자원의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기. 이 책에서 가장 이름난 원칙은 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 중의 최선(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라는 것이다. 이상은 적국과 그 군대와 성까지 온전히 두는 것(全)이지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손자』는 폭력을 쓰는 법만큼이나 폭력을 줄이는 법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세(勢)와 정기(正奇). 옮기기 어려운 말인 세(勢)는 위치와 때에서 생기는 전략적 유리함, 곧 잠재된 힘이다. 팽팽히 당긴 쇠뇌나 가파른 산에서 굴러 내리는 바위와 같다. 장수는 적과 맞붙는 정공법의 부대인 정(正)과, 뜻밖의 수로 승리를 가져오는 기병(奇兵)인 기(奇)를 섞어 쓰며, 그 조합은 끝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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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역사적 배경: 전차 귀족에서 대규모 군대로

주나라 전기의 전쟁은 대체로 전차를 탄 귀족들이 명예와 예법의 규칙에 따라 벌이는 일이었다. 춘추시대 후기(기원전 770~481년)와 특히 전국시대(기원전 475~221년)에 들어 이것이 크게 바뀌었다. 나라들은 징발한 농민으로 대규모 보병 군대를 꾸렸고, 오랜 원정을 벌였으며, 쇠뇌 같은 새로운 무기를 발전시켰다.

이런 변화는 직업 지휘관과 이론을 필요로 했다. 『손자』는 이 세계를 반영한다. 10만 병력의 군대, 전장에 나간 장수가 군주에게서 독립한다는 생각(“군주의 명령이라도 받지 않을 것이 있다(君命有所不受)”), 보급과 전쟁이 백성에게 지우는 짐, 병사를 다스리는 상과 벌을 이야기한다.

『손자』는 이 시대의 여러 병서 가운데 하나였다. 『오자(吳子)』, 『사마법(司馬法)』, 그리고 기원전 4세기 제나라를 섬긴 손무의 후손 손빈(孫臏)의 병법서도 있었다. 병가의 사상은 당시 철학 학파들과 생각을 나누기도 했으며, 일부 학자는 『손자』가 유연함과 무형(無形)을 강조하는 점에서 『도덕경』과 통하는 데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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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책은 어떻게 전해졌나

『한서(漢書)』 「예문지」에 실린 황실 장서 목록에는 ‘오손자병법(吳孫子兵法)’ 82편과 그림 9권이 올라 있다. 오늘날 전하는 13편보다 훨씬 많다. 나머지 편들에 무엇이 담겼는지, 그것이 후대에 덧붙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하는 13편본은 한나라 말의 실력자이자 위(魏)나라의 기틀을 놓은 조조(155~220)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그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석을 썼고, 서문에서 본문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얼마나 손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후 여러 학자가 주석을 더했고, 송나라 때에는 열한 명의 주석을 모은 판본(『십일가주손자』)이 나왔다.

1080년대 송 신종 때 조정은 장교 교육을 위해 『무경칠서(武經七書)』를 엮고 『손자』를 맨 앞에 두었다. 이후 이 책은 중국 무과 시험의 핵심 교재가 되었다. 조선에서도 『무경칠서』가 무과 시험에 쓰였고, 일본에서도 널리 읽혔다. 전국시대 무장 다케다 신겐은 제7편의 “빠르기는 바람 같고, 고요하기는 숲 같고, 쳐들어가기는 불 같고, 움직이지 않기는 산 같다(疾如風, 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를 군기에 새긴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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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인췌산 죽간의 발견

1972년 4월 10일, 산둥성 린이 부근 인췌산에서 공사하던 노동자들이 서한 시대 무덤 두 기를 찾아냈다. 기원전 2세기에 봉인된 1호묘에서는 글씨가 적힌 죽간 5,000매 가까이가 나왔는데, 상당수가 훼손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손자』 13편의 많은 부분, 전래본에 없는 손자 관련 글 몇 편, 그리고 오래전에 사라진 『손빈병법』이 있었다.

이 발견으로 오랜 물음 하나가 풀렸다. 『한서』 목록에 ‘오손자’와 ‘제손자’가 따로 올라 있는데도, 일부 학자는 손자는 한 사람뿐이며 『손자』의 실제 저자가 손빈이라고 주장해 왔다. 인췌산 죽간은 한나라 때 두 책이 따로 있었음을 증명했다.

인췌산본은 전래본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낱말과 글자에 차이가 있다. 이는 13편의 골격이 한나라 초에 이미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준다. 함께 나온 죽간에는 『육도(六韜)』와 『위료자(尉繚子)』의 일부 같은 다른 병서와 사상서도 있었으며, 지금은 산둥성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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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번역과 세계적 영향

베이징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장 조제프 마리 아미오가 1772년 프랑스어 번역을 펴내 이 책을 유럽에 소개했다. 첫 영어 번역은 1905년 에버라드 퍼거슨 캘스롭이 냈고, 1910년 라이오넬 자일스의 주석본이 수십 년 동안 표준 영어 번역이 되었다. 미 해병대 장교 새뮤얼 B. 그리피스는 1963년 영향력 있는 번역을 펴냈다.

20세기에 『손자병법』은 혁명가와 군사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마오쩌둥은 전략에 관한 글에서 손자의 ‘지피지기’를 인용했고, 베트남의 지휘관들도 중국 병서를 참고했다. 오늘날 세계 여러 사관학교가 이 책을 흔히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나란히 가르친다.

1980년대부터는 경영, 스포츠, 법률, 자기계발 분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흔히 격언 목록으로 줄어든 모습이다. 학자들은 많은 대중판이 책의 역사적 맥락과 전쟁의 대가에 대한 핵심 관심을 빠뜨린다고 지적한다. 이 책이 오래 사랑받는 까닭은 경쟁, 정보, 유리함에 관한 짧고 응용하기 쉬운 원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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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누가, 언제 썼나: 저자와 연대 논쟁

손자에 대한 의심은 오래되었다. 송나라 학자 섭적(葉適)은 춘추시대 주요 인물을 기록한 『좌전』에 손무가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세기 ‘의고’ 운동의 학자들을 비롯한 후대 학자들은 본문이 전국시대의 것이라고 주장했고, 량치차오(梁啓超)는 손빈이 썼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학자들은 늦은 연대를 뒷받침하는 내부 증거를 든다. 이 책은 수만 명의 징집병으로 된 군대, 길고 값비싼 원정, 군주와 분리된 직업 장수, 쇠뇌 같은 무기를 전제하는데, 이는 기원전 6세기 말보다는 5~4세기에 더 전형적인 모습이다. 반면 오나라와 월나라의 적대(“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한다”, 오월동주의 유래)에 대한 언급은 장강 하류라는 전통적 배경과 맞아떨어진다.

현대의 견해는 폭넓다. 일부 중국 학자는 역사적 손무로 거슬러 올라가는 춘추시대의 핵심이 있다고 본다. 새뮤얼 그리피스는 본문을 전국시대에 두었고, 빅터 메어는 『사기』의 전기가 본질적으로 허구이며 본문은 전국시대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엮였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손자』를 시간이 흐르며 쌓인 병법 교육 전통의 산물로, 그것이 이름난 창시자의 이름에 붙은 것으로 본다. 이는 초기 중국의 다른 ‘제자(諸子)’ 문헌에서도 흔히 보이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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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해석의 문제: 윤리, 철학, 번역

『손자』는 비도덕적인가? 어떤 독자는 속임수와 가혹한 규율을 긍정하는 냉정한 조종술의 교범으로 본다. 다른 독자는 전쟁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 백성의 삶에 대한 관심, 적국을 ‘온전히(全)’ 얻으려는 바람, 그리고 장수가 갖출 덕목인 지(智)·신(信)·인(仁)·용(勇)·엄(嚴)을 강조한다. 제국 시대 중국의 유학자들은 속임수를 강조하는 이 책을 불편하게 여기기도 했지만, 금서가 된 적은 없고 널리 읽혔다.

중국 철학과는 어떤 관계인가? 학자들은 세, 무형, 물처럼 적응하기 같은 개념을 『도덕경』, 그리고 통제와 상벌에 관한 법가 사상과 비교해 왔다. 병서가 더 넓은 중국 전략 사상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보는 이도 있고, 다양한 전통 속에서 하나의 ‘중국식 전쟁 방식’을 읽어 내는 것을 경계하는 이도 있다.

번역도 매우 중요하다. 세(‘전략적 유리함’, ‘형세’, ‘기세’, ‘잠재력’), 형(‘형태’, ‘태세’), 정과 기 같은 핵심어에는 딱 맞는 외국어가 없어서, 번역에 따라 책이 신비롭게도, 실용적으로도 들린다. 인췌산 사본 때문에 편자들이 전래본의 몇몇 구절을 고쳐 읽게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으려면 여러 번역을 원문과 함께 견주어 보는 것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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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증거와 방법: 저자가 분명하지 않은 텍스트 연구하기

『손자』 연구는 세 종류의 증거에 기댄다. 첫째는 전해 오는 역사 기록이다. 『사기』의 전기, 『한서』의 장서 목록, 『좌전』의 침묵, 후대의 일화 등이다. 이들은 한나라와 그 뒤에 손자가 어떻게 기억되었는지 알려 주지만, 사건이 있었다는 때보다 훨씬 뒤에 쓰였으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둘째는 본문 자체다. 학자들은 어휘, 문법, 문체, 전제하는 군대와 무기의 모습, 다른 글과의 관계를 살핀다. 예컨대 『손빈병법』, 『오자』, 그리고 『도덕경』과 『순자』 같은 사상서와 생각과 표현을 견주어, 어느 쪽이 어느 쪽을 빌렸는지를 묻는다. 이런 비교로 상대적인 선후를 짐작할 수 있지만, 결론은 흔히 사상이 어떻게 발전했느냐에 대한 가정에 달려 있다.

셋째는 출토 사본이다. 인췌산 죽간은 전래 13편과 매우 가까운 본문이 기원전 2세기에 이미 있었다는 확실한 기준점을 준다. 한나라 무덤에서 나온 다른 병서 단편들은 이런 가르침이 장교와 관리 사이에 널리 돌았음을 보여 준다. 고문자학자들은 훼손되고 흐트러진 죽간을 다시 짜 맞춰야 하며, 배열에 따라 구절의 뜻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런 증거들을 종합하면서 학자들은 『손자』를 한 사람의 작품이라기보다 초기 중국의 폭넓은 군사 전문 문화가 낳은 가장 성공적인 산물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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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전쟁은 나라의 큰일
전쟁은 삶과 죽음, 나라의 존망을 가르므로 꼼꼼히 따져 본 뒤에만 시작해야 한다.
먼저 계산하라
승패는 대부분 싸우기 전에 핵심 요소로 양쪽을 비교하는 데서 결정된다.
속임수(詭道)
자신의 힘과 의도를 적이 잘못 알게 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싸우지 않고 이김
가장 높은 솜씨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켜, 파괴하지 않고 온전히 얻는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정보와 첩자로 얻은 양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패배를 막는다.
세(勢)
위치와 때가 만드는 잠재된 힘. 비탈을 내리닫는 물이나 당긴 쇠뇌와 같다.
물처럼 변화하라
군대는 정해진 모양 없이, 상황에 따라 강한 곳을 피하고 약한 곳을 쳐야 한다.

기록

  1. 약 기원전 514년 — 합려가 오나라 왕이 되다(기원전 514년). 『사기』에 따르면 뒤에 손무가 그에게 병법서를 바친다.
  2. 기원전 506년 — 오나라가 백거에서 초나라를 무찌르고 도읍을 점령하다(기원전 506년). 『사기』는 손무의 공으로 돌리지만 『좌전』에는 그가 나오지 않는다.
  3. 약 기원전 475년 — 전국시대가 시작되다(기원전 475년 무렵). 많은 학자가 『손자』의 성립을 이 시기로 본다.
  4. 약 기원전 342년 — 손빈이 마릉 전투에서 제나라가 위나라를 무찌르는 데 공을 세우다(기원전 342년 무렵).
  5. 약 기원전 130년 — 인췌산 1호 한묘가 『손자』와 『손빈병법』 죽간과 함께 봉인되다(기원전 2세기).
  6. 약 기원전 94년 — 사마천이 손무의 전기를 담은 『사기』를 완성하다.
  7. 약 200년 — 조조가 현존 최고(最古)의 주석을 쓰고 13편본을 정리하다.
  8. 약 1080년 — 송나라 조정이 『손자』를 첫머리에 둔 『무경칠서』를 엮다.
  9. 1772년 — 장 조제프 마리 아미오가 파리에서 프랑스어 번역을 펴내다.
  10. 1905년 — 에버라드 퍼거슨 캘스롭이 첫 영어 번역을 펴내다.
  11. 1910년 — 라이오넬 자일스가 주석을 단 영어 번역을 펴내다.
  12. 1972년 — 산둥성 린이 부근에서 인췌산 죽간이 발견되다.

용어 풀이

손자(孫子)
‘손 선생’. 전통적으로 저자로 여겨지는 인물이자 이 책의 이름.
병법(兵法)
‘군사의 방법’. 전쟁을 다룬 중국 문헌의 갈래.
춘추시대
기원전 770~481년. 주나라 왕의 힘이 약해지고 지방 나라들이 경쟁한 시기.
전국시대
기원전 475~221년. 대규모 전쟁이 이어지다 진(秦)의 통일로 끝난 시기.
세(勢)
위치, 때, 기세가 만드는 전략적 유리함 또는 잠재된 힘.
형(形)
형태 또는 태세. 겉으로 드러난 군대의 배치.
정(正)과 기(奇)
정면으로 맞서는 정공 부대와 뜻밖의 수를 쓰는 기습 부대. 끝없이 섞어 쓴다.
손빈(孫臏)
손무의 후손으로 전하는 기원전 4세기 제나라의 전략가. 그의 병법서가 인췌산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인췌산 죽간
1972년 산둥성의 서한 무덤에서 나온 대나무 사본. 가장 오래된 『손자』 본문을 담고 있다.
무경칠서(武經七書)
『손자』를 비롯한 병서 일곱 권을 묶은 송나라의 선집. 장교 교육과 무과 시험에 쓰였다.
전래본(傳來本)
필사와 인쇄로 전해 내려온 판본. 땅속에서 나온 출토본과 대비된다.

묻고 답하기

『손자병법』은 전쟁이 좋다고 말하나요?

아니에요. 전쟁은 위험하고 비용이 크니 깊이 생각한 뒤에만 시작해야 하고, 가장 좋은 건 아예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고 말해요.

손자는 누구인가요?

전통적으로는 기원전 500년 무렵 오왕 합려를 섬긴 제나라 출신 장군 손무라고 해요. 하지만 그 시대의 옛 기록에는 그가 나오지 않아서 많은 역사학자가 이 이야기를 의심해요.

『손자병법』은 얼마나 오래된 책인가요?

전통적으로는 기원전 6세기 말로 보지만, 많은 학자는 기원전 5~4세기에 모양을 갖췄다고 봐요. 기원전 2세기에 묻힌 사본이 1972년에 발견되었어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는 무슨 뜻인가요?

무언가를 하기 전에 내 장점과 약점, 상대의 장점과 약점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위태로운 처지에 빠지지 않아요. 흔히 ‘백전백승’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원문은 ‘위태롭지 않다(不殆)’예요.

왜 오늘날 기업인들도 이 책을 읽나요?

계획, 정보, 유연함, 유리함에 관한 짧은 원칙을 어떤 경쟁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다만 학자들은 대중판이 원래 맥락을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고 경고해요.

인췌산 죽간은 무엇을 증명했나요?

13편의 『손자』가 한나라 초에 이미 있었고, 『손빈병법』은 따로 있는 책임을 보여 주었어요. 그래서 손빈이 『손자』를 썼다는 학설은 힘을 잃었어요.

『한서』에 나오는 82편짜리 『손자』는 다른 책인가요?

아무도 몰라요. 나머지 편들은 후대에 덧붙은 글이나 관련 자료였을 수 있고, 인췌산에서 나온 손자 관련 글 일부가 거기서 왔을 수도 있어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The Art of War. Wikipedia
  2. Sun Tzu. Wikipedia
  3. Yinqueshan Han Slips. Wikipedia
  4. Sun Bin’s Art of War. Wikipedia
  5. Seven Military Classics. Wikipedia
  6. The Art of War (Chinese text with translation). Chinese Text Project
  7. Samuel B. Griffith (trans.), Sun Tzu: The Art of War. Clarendon Press, Oxford, 1963
  8. Ralph D. Sawyer (trans.), The Seven Military Classics of Ancient China. Westview Press, 1993
  9. Victor H. Mair (trans.), The Art of War: Sun Zi’s Military Methods.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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