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섬과 섬 사이가 너무 멀어서 해변에서 다음 섬이 보이지 않는 넓은 바다를 떠올려 보세요. 약 3,000년 전, 아직 아무도 살지 않던 이런 섬들을 찾아 카누를 타고 떠난 사람들이 있었어요. 고고학자들은 그들을 ‘라피타 사람들’이라고 불러요.
그들은 옆에 균형을 잡아 주는 부목을 단 ‘아우트리거 카누’를 타고 항해했어요. 새 집에 필요한 것도 모두 싣고 갔지요. 돼지, 개, 닭, 그리고 타로, 얌, 바나나, 빵나무 같은 식물이에요.
라피타 사람들은 토기로 유명해요. 흙 그릇을 굽기 전에 빗처럼 작은 이가 달린 도장을 흙에 꾹꾹 눌러서 선과 동그라미, 심지어 얼굴 모양의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어요. 과학자들은 이 토기 조각을 찾아가며 라피타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간 길을 따라가요.
그들은 해변과 작은 섬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고, 때로는 석호 위에 기둥을 세워 집을 지었어요. 물고기를 잡고 조개를 줍고 밭을 가꾸었으며, ‘흑요석’이라는 반짝이는 검은 화산 유리를 먼 곳까지 주고받았어요.
겨우 몇백 년 만에 그들은 뉴기니 근처의 섬들에서 피지·통가·사모아까지 4,000킬로미터가 넘는 바다로 퍼져 나갔어요. 그 먼 섬들에는 그전까지 아무도 살지 않았답니다.
‘라피타’라는 이름은 1952년 고고학자들이 땅을 판 뉴칼레도니아의 한 해변에서 왔어요. 그들의 먼 후손이 폴리네시아인이 되었고, 이들이 뒤에 하와이, 라파누이(이스터섬), 아오테아로아(뉴질랜드)를 찾아냈어요. 오늘날 태평양의 많은 사람이 라피타 사람들을 자기 조상으로 여겨요.
한눈에 보기
- 시기
- 약 기원전 1350–500년. 비스마르크 제도의 가장 이른 연대는 논쟁 중(옛 추정 기원전 1600–1500년경, 최근 재측정 기원전 1350–1300년경)
- 지역
- 비스마르크 제도(파푸아뉴기니)에서 솔로몬 제도, 바누아투, 뉴칼레도니아를 거쳐 피지·통가·사모아까지
- 표준 유적
- 뉴칼레도니아 그랑드테르섬 코네 근처 푸에 반도의 ‘13번 유적’. 1952년 에드워드 W. 기퍼드와 리처드 슈틀러 2세가 발굴
- 알려진 유적
- 200곳 이상, 4,000km 넘게 분포
- 특징
- 낮은 온도에서 구운 토기에 치형(이빨 모양) 시문구로 복잡한 기하학·얼굴 무늬를 찍음
- 생업
- 돼지·개·닭, 타로·얌·바나나·코코넛·빵나무, 어로와 조개 채집, 흑요석과 돌도끼의 원거리 교환
- 언어
-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한 갈래인 원시 오세아니아어였을 가능성이 크다
- 주요 유적
- 탈레파케말라이(무사우), 와톰(뉴브리튼), 네눔보(리프 제도), 테오우마(바누아투 에파테), 라피타(뉴칼레도니아), 부레와·모투리키(피지), 통가타푸(통가), 물리파누아(사모아)
쉬움
라피타 문화란 무엇인가
‘라피타’는 고고학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문자를 남기지 않았기에 스스로를 무엇이라 불렀는지 알 수 없다. 고고학자들은 약 3,300년 전 뉴기니 동쪽 섬들에 갑자기 나타나 태평양 남서부로 빠르게 퍼진 일련의 유물과 생활 방식—무엇보다 독특한 무늬 토기—을 이 말로 부른다.
라피타 사람들이 중요한 이유는 학자들이 ‘원(遠)오세아니아’라 부르는 바누아투·뉴칼레도니아·피지·통가·사모아에 처음 닿아 정착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뉴기니, 비스마르크 제도, 솔로몬 제도의 큰 섬들에는 수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지만, 더 넓은 바다로 떨어진 바깥 섬들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이 바다를 건너려면 새로운 배, 새로운 항해 기술, 카누에 실어 나르는 새로운 생활 방식이 필요했다.
오늘날 라피타는 섬 멜라네시아의 많은 민족과 모든 폴리네시아인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그 후손들은 훗날 하와이에서 라파누이,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에 이르는 광대한 폴리네시아 삼각형에 정착했다. 많은 태평양 섬 주민에게 라피타 이야기는 먼 선사가 아니라 자기 집안 역사의 시작이다.
쉬움
유명한 토기
라피타 토기는 대개 조개껍데기나 모래를 섞어 낮은 온도에서 구운 토기다. 가장 눈에 띄는 그릇은 굽기 전에 빗처럼 작은 이가 달린 도구, 곧 ‘치형 시문구’를 부드러운 흙에 되풀이해 눌러 정교한 무늬 띠를 쌓아 올렸다. 새긴 선, 원형 도장, 작은 찍은 점도 썼고, 때로는 붉은 슬립(화장토) 위에 무늬를 흰 석회로 메워 도드라지게 했다.
무늬는 기하학적이다. 지그재그, 맞물린 곡선, 동그라미 줄, 원 안의 십자 무늬가 있다. 어떤 그릇에서는 무늬가 눈과 코를 지닌 양식화된 얼굴을 이루는데, 조상이나 정령을 나타냈을지 모른다. 비슷한 무늬가 문신이나, 남아 있지 않은 나무껍질 천(타파)·돗자리에도 쓰였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무늬 토기와 함께 라피타 사람들은 요리와 저장을 위한 사발, 항아리, 납작 바닥 접시 같은 민무늬 그릇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며, 특히 피지·통가·사모아에서 무늬가 단순해지다가 사라져 민무늬 토기만 남았다. 서폴리네시아에서는 토기 제작 자체가 끊겼고—사모아에서는 기원 전후 무렵—동태평양에 정착한 후대 폴리네시아인은 토기를 전혀 만들지 않았다.
쉬움
일상: 마을, 밭, 바다
새로 정착한 섬들의 라피타 마을은 대부분 내륙 깊숙이가 아니라 해변, 해안 단구, 앞바다의 작은 섬에 세워졌다. 무사우섬의 탈레파케말라이처럼 얕은 석호 위에 기둥을 세운 집도 있었다. 바닷가에 살면 물고기·거북·조개를 얻고 카누로 오가기 쉬웠다. 해안 거주가 말라리아 모기나 다른 민족이 이미 사는 지역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라피타 사람들은 어부이자 농부였다. 돼지·개·닭을 데려왔고 타로·얌·바나나·코코넛·빵나무 같은 뿌리작물과 나무 작물을 길렀다. 사람이 없던 섬에 닿으면 인간을 처음 본 새, 과일박쥐, 거북도 사냥했고, 그들이 도착한 뒤 많은 섬 고유종이 줄거나 멸종했다.
도구로는 나무를 베고 카누를 만드는 간석기·조개 자귀, 낚싯바늘, 팔찌·구슬 같은 조개 장신구, 날카로운 흑요석(화산 유리)·처트 격지가 있었다. 뉴브리튼의 탈라세아 같은 특정 산지의 흑요석이 캐낸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어, 라피타 공동체들이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도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중급
미지로의 항해
라피타 확산의 속도는 놀랍다. 비스마르크 제도에 나타난 뒤 라피타 정착민은 기원전 1200–1000년경 솔로몬 제도·바누아투·뉴칼레도니아에, 기원전 900–800년 무렵 피지·통가·사모아에 닿았다. 바누아투와 피지 사이의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먼바다 횡단처럼, 어떤 항해는 이 지역에서 그전에 있었던 어떤 인류의 항해보다도 훨씬 길었다.
카누 자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언어 재구와 후대 태평양 전통은 아우트리거나 쌍동선 구조에 판다누스 잎을 엮은 돛을 달고 사람·동물·식물·물을 실을 수 있는 범선 카누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항법은 아마 후대 폴리네시아 항해자들이 유명했던 지식—별, 해, 바람, 너울, 구름, 새의 비행을 읽는 법—에 기댔을 것이다.
그들은 왜 계속 나아갔을까? 학자들은 여러 이유를 든다. 야생 먹거리가 풍부한 빈 섬의 매력, 동생들이 새 정착지를 세워 지위를 얻는 사회 구조, 교역품 탐색, 탐험을 높이 사는 문화 등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항해가 우연히 떠밀린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계획된 것이었으며, 정착민이 한동안 고향 섬과 연락을 유지했다고 본다.
중급
라피타 사람들은 어디서 왔나
라피타는 수천 년 전 타이완에서 시작해 마침내 서쪽으로 마다가스카르, 동쪽으로 라파누이까지 이른 오스트로네시아어 사용자들의 대이동, 곧 오스트로네시아 확산의 일부였다. 오스트로네시아어 사용자들은 기원전 2200년 무렵 필리핀 북부에 닿았고, 일부는 뒤에 마리아나 제도와 뉴기니 북쪽 섬들로 향했다.
여러 증거가 이 기원을 가리킨다. 치형 시문, 원, 원 안의 십자 무늬를 지닌 라피타 토기는 필리핀 북부—특히 루손섬의 나그사바란 유적—와, 기원전 1500–1300년경 비슷한 토기가 나타나는 마리아나 제도의 토기를 닮았다. 라피타의 가축·작물·고상 가옥·문신 끌·아우트리거 기술도 동남아시아 섬 지역에 뿌리를 둔다. 가장 강력한 근거는 언어다. 오세아니아어들의 재구된 조상인 원시 오세아니아어는 더 서쪽에서 쓰인 원시 말레이폴리네시아어와 많은 어휘를 공유한다.
동시에 라피타 사람들은 파푸아어 사용 민족들이 적어도 3만–4만 년 전부터 살던 지역에 도착했다. 새로 온 이들은 그들과 작물·도구·생각을 주고받고 혼인했는데, 그 정도는 곳에 따라 달랐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오스트로네시아 정착민의 침입(intrusion), 도착 뒤의 혁신(innovation), 기존 주민과의 통합(integration)이라는 로저 그린의 ‘트리플 I’ 모델로 비스마르크 제도에서 라피타 문화가 형성된 과정을 설명한다.
중급
발견과 주요 유적
기록에 남은 첫 라피타 토기는 1909년 뉴브리튼 앞바다 와톰섬의 가톨릭 선교사 오토 마이어가 폭풍으로 드러난 해변의 토기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1920년 미국 인류학자 윌리엄 매컨은 마이어의 발견을 모른 채 통가타푸에서 무늬가 찍힌 토기 조각 1,500점 이상을 발굴했다. 이 발견들의 연관은 서서히 밝혀졌다.
1952년 에드워드 W. 기퍼드와 리처드 슈틀러 2세가 뉴칼레도니아 푸에 반도의 13번 유적을 발굴했다. ‘라피타’라는 이름은 고고학자들이 하베케어의 ‘구멍을 파다’ 또는 ‘땅을 파는 곳’을 뜻하는 xapeta’a라는 말을 잘못 들은 데서 왔다고 한다. 기퍼드는 당시 새로 나온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토기가 3,000년 가까이 되었음을 보였고, 와톰과 통가의 토기 조각과도 연결했다. 1960년대 이후 잭 골슨, 로저 그린, 패트릭 커치 등 많은 연구자의 발굴로 라피타가 태평양 남서부 대부분의 첫 정착민이었음이 확립되었다.
주요 유적으로는 가장 이른 유적 가운데 하나로 고상 가옥이 있던 무사우섬의 탈레파케말라이, 솔로몬 제도 리프 제도의 네눔보, 바누아투 에파테섬의 테오우마, 피지와 통가타푸의 유적들, 그리고 지금은 물에 잠긴 유적에서 준설 중 라피타 토기가 나온 사모아의 물리파누아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라피타 유적은 200곳이 넘는다.
중급
테오우마: 태평양 섬들의 가장 오래된 묘지
2003년 바누아투 에파테섬 테오우마만 근처의 토목 공사에서 무늬 토기가 드러났고, 이것이 약 3,000년 전의 것으로 태평양 섬들에서 가장 오래된 묘지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발굴로 수십 명의 매장이 확인되었고, 일부에는 온전한 라피타 그릇이 함께 묻혀 있었다.
매장 풍습은 복잡했다. 많은 유골에 두개골이 없었다. 시신이 부패한 뒤 애도자들이 머리를 떼어 따로 다루었고, 때로는 그 자리에 청자고둥 껍데기 고리를 놓았다. 한 무덤에는 노인의 가슴 위에 두개골 세 개가 놓여 있었다. 한 매장 항아리에는 그릇 안을 내려다보는 새 네 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이런 풍습은 조상과 머리의 중요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시사하며, 이는 후대 태평양 문화에서도 보이는 주제다.
테오우마는 과학에도 결정적이었다. 치아와 뼈의 동위원소 분석은 이곳에 묻힌 일부가 다른 곳에서 자랐고 다른 이들은 현지에서 태어났음을 시사했다. 2016년 연구자들은 테오우마 유골의 속귀 뼈에서 고대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열대 지역 고대 시료에서 거둔 초기의 성공 사례로, 라피타 기원 논쟁을 바꾸어 놓았다.
중급
라피타에서 폴리네시아로
라피타 세계의 동쪽 끝인 피지·통가·사모아에서 정착민들은 기원전 800년 무렵 이후 오래 머물렀다. 이후 몇 세기 동안 그 후손들은 이 지역에서 뚜렷한 문화—후대 전승에서 흔히 폴리네시아의 고향 ‘하와이키’로 불리는—와 원시 폴리네시아어를 발전시켰다. 토기의 무늬는 민무늬로 옅어졌다가 사라졌다.
천 년이 훨씬 넘는 긴 멈춤 뒤에 폴리네시아 항해자들은 다시 동쪽으로 나아가 쿡·소시에테·마르키즈 제도에 정착했고, 마침내 대략 서기 1000–1250년 무렵 하와이, 라파누이,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에 이르렀다. 그들의 카누, 작물, 가축, 많은 낱말과 관습은 서폴리네시아를 거쳐 라피타 조상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매슈 스프리그스 같은 학자는 라피타가 오세아니아어들뿐 아니라 태평양 전역에 보이는 많은 문화·종교 개념의 원천이었다고 주장하면서도, 라피타 공동체와 후대 멜라네시아 사회 사이에 상당한 문화적 연속성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그래서 라피타는 사라진 문화가 아니라 기초가 된 층으로 여겨진다.
심화
연대와 확산 속도에 관한 논쟁
라피타의 연대는 거듭 수정되었다. 예전의 종합 연구는 비스마르크 제도에서 ‘고전기’ 라피타가 시작된 때를 기원전 1600–1500년경으로 보았다. 이후 수명이 짧은 시료를 더 신중히 고르고 방사성탄소 연대를 베이즈 통계로 모델링한 연구들은 기원전 1350–1300년경이라는 더 늦은 시작을 주장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확산 기간이 압축되기 때문이다. 라피타가 더 늦게 시작했는데도 기원전 850–800년경 통가·사모아에 닿았다면, 원오세아니아 전역으로의 확산은 불과 몇 세기 만에 이루어진 셈이며, 이는 인류 선사에서 가장 빠른 확산 가운데 하나다.
시료의 성격도 연대 측정을 어렵게 한다. 조개 연대는 곳마다 다른 해양 저장고 효과를 보정해야 하고, 숯은 정착보다 오래된 장수목에서 나왔을 수 있으며, 많은 해안 유적은 해수면 변화, 지각 융기, 후대 거주로 교란되었다. 통가타푸의 누쿨레카 유적과 피지의 부레와 유적의 가장 이른 연대는 어느 섬이 먼저 정착되었는지를 두고 세밀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라피타의 끝을 정하기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끝은 치형 시문 장식이 사라지는 것으로 정의되는데, 이는 곳마다 다른 때에 일어났다. 바누아투와 뉴칼레도니아에서는 라피타에서 지역 토기 전통이 발전했고, 서폴리네시아에서는 민무늬 토기가 몇 세기 더 이어진 뒤 토기가 사라졌다. 따라서 ‘기원전 500년’ 같은 라피타 종말 연대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관례적 구분이다.
심화
고대 DNA, 그리고 라피타 사람들은 누구였나
수십 년 동안 학자들은 두 모델을 두고 논쟁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오스트로네시아 확산에 관한 피터 벨우드의 연구와 연결되는 ‘급행열차’ 모델은 라피타를 동남아시아 섬 지역에서 현지 혼합이 거의 없이 빠르게 이주한 결과로 보았다. 반면 1980–1990년대 짐 앨런, J. 피터 화이트 등은 라피타 문화가 대체로 비스마르크 제도 안에서 현지 뿌리로부터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로저 그린의 ‘트리플 I’ 모델은 그 중간을 제시했다.
고대 DNA는 이 논쟁을 새로 짰다. 2016년 폰투스 스코글룬드 등은 테오우마 출토 3명(약 3,100–2,700년 전)과 통가 탈라시우 출토 1명(약 2,700–2,300년 전)의 전장 유전체 자료를 발표했다. 이 초기 개인들에게는 파푸아계 조상이 거의 또는 전혀 없었고, 아미족·아타얄족 같은 타이완 원주민과 필리핀 북부의 칸카나에이족에 가장 가까웠다. 이는 원오세아니아의 첫 정착민이 뉴기니 집단과 사전 혼합이 거의 없이 왔음을 시사했다. 2020년의 한 연구는 이들을 마리아나 제도의 초기 정착민과 밀접하게 연결했다.
그러나 오늘날 태평양 섬 주민은 모두 상당한 파푸아계 조상을 지닌다. 폴리네시아인에게도 적어도 약 4분의 1, 바누아투에서는 훨씬 많다. 코시모 포스트가 이끈 2018년 연구는 파푸아계 조상을 지닌 사람들이 약 2,500년 전부터 바누아투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며 그곳의 원래 라피타 조상을 거의 완전히 대체했음을 보였다. 놀랍게도 오스트로네시아어는 대체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이 극히 드물다고 한 이 ‘언어 연속성 속의 인구 대체’ 사례는, 토기·유전자·언어를 따로 연구해야 하며 이들이 함께 움직인다고 가정할 수 없는 이유를 보여 준다.
심화
언어, 정체성, 그리고 오늘의 유산
역사언어학자들은 약 450개 오세아니아어의 공통 조상인 원시 오세아니아어가 기원전 2천년기 후반 비스마르크 제도에서 쓰였다고 재구한다. 그 고향과 연대가 초기 라피타와 겹치므로, 대부분의 고고학자와 언어학자는 라피타 공동체가 원시 오세아니아어나 그와 가까운 방언을 썼다고 본다. 다만 학자들이 경고하듯 토기는 말을 하지 않으며, 일부 라피타 집단은 다른 언어도 썼을 수 있다. 아우트리거 카누, 돛, 어로 기법, 작물, 친족을 가리키는 재구된 원시 오세아니아어 낱말은 고고학 기록 너머 라피타의 삶을 엿보게 한다.
라피타 해석은 현재적 의미도 지닌다. 20세기 초 유럽 저술가들은 흔히 태평양 민족을 인종으로 서열화하고 ‘멜라네시아인’과 ‘폴리네시아인’이 별개 집단으로 물결처럼 들어왔다고 상상했다. 현대 연구는 대신 오랜 상호작용과 혼합의 역사를 강조한다. 태평양 섬 출신 학자와 공동체, 그리고 전통 항해 부흥 운동은 라피타 연구를 바탕으로 항해라는 공동의 조상 유산을 기린다.
라피타 유적은 해안 침식, 개발, 해수면 상승으로 점점 위협받고 있으며, 많은 중요 수집품이 식민지 시대에 해외로 반출되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바누아투·뉴칼레도니아·피지·통가·사모아의 지역 공동체와 국립 문화 기관과 더 긴밀히 협력하며, 라피타 무늬는 현대 미술·문신·디자인에 등장하는 국가적·지역적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다.
핵심 개념
- 원오세아니아의 첫 정착민
- 라피타 사람들은 바누아투·뉴칼레도니아·피지·통가·사모아에 처음 산 인류다.
- 치형 시문 토기
- 빗 모양 도장으로 무늬를 낸 토기는 고고학자들이 그들을 알아보고 추적하는 핵심 단서다.
- 오스트로네시아 확산
- 라피타는 타이완에서 시작된 오스트로네시아어 사용 항해민의 긴 이주의 한 갈래였다.
- 옮겨 심은 경관
- 정착민은 타로·얌·돼지·개·닭 같은 동식물을 싣고 가 무인도에 새 터전을 만들었다.
- 상호작용과 혼합
- 라피타 문화는 새로 온 이들과 오래 살던 파푸아어 사용 민족의 접촉 속에서 형성되었고, 이후의 이주가 태평양의 조상 구성을 다시 바꾸었다.
- 유전자·언어·토기
- 고대 DNA는 언어가 이어지는 동안 조상 구성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주므로, 고고학 문화를 곧 민족으로 볼 수 없다.
- 폴리네시아인의 조상
- 폴리네시아 문화는 피지·통가·사모아에서 라피타를 토대로 발전한 뒤 동태평양으로 퍼졌다.
기록
- 약 기원전 2200년 — 오스트로네시아어 사용자들이 바타네스 제도와 필리핀 북부에 닿는다.
- 약 기원전 1500년 — 마리아나 제도에 찍은 무늬 토기가 나타난다(기원전 1500–1300년경).
- 약 기원전 1350년 — 비스마르크 제도에 라피타 문화가 나타난다(옛 추정은 기원전 1600–1500년경).
- 약 기원전 1200년 — 라피타 정착민이 솔로몬 제도·바누아투·뉴칼레도니아에 닿는다.
- 약 기원전 1000년 — 바누아투 에파테섬의 테오우마 묘지가 쓰인다.
- 약 기원전 850년 — 라피타 정착민이 라피타 세계의 동쪽 끝인 피지·통가·사모아에 닿는다.
- 약 기원전 500년 — 치형 시문 장식이 대체로 사라지고, 서폴리네시아에서는 민무늬 토기가 이어진다.
- 약 1년 — 사모아에서 토기 제작이 끝난다.
- 1909년 — 선교사 오토 마이어가 와톰섬에서 라피타 토기 조각을 발견한다.
- 1952년 — 기퍼드와 슈틀러가 뉴칼레도니아 13번 유적을 발굴하고 ‘라피타’라는 이름이 생긴다.
- 2003년 — 바누아투에서 테오우마 묘지가 발견된다.
- 2016년 — 라피타 개인(바누아투·통가)의 첫 고대 유전체가 발표된다.
용어 풀이
- 고고학 문화
- 한 지역과 시기에 함께 나타나는 유물·유적·관습의 묶음. 고고학자가 과거 사람들을 묘사할 때 쓴다.
- 치형 시문구
- 젖은 흙에 눌러 점선 무늬를 내는 작은 이빨 모양 도구.
- 토기 조각(편)
- 깨진 토기의 조각.
- 근(近)오세아니아와 원(遠)오세아니아
- 근오세아니아(뉴기니·비스마르크·솔로몬 본섬)는 수만 년 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원오세아니아는 라피타와 그 후손이 처음 닿았다.
- 오스트로네시아어족
- 타이완에 기원을 두고 마다가스카르에서 라파누이까지 쓰이는 큰 어족.
- 원시 오세아니아어
-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오세아니아어파의 재구된 조상 언어. 라피타 공동체가 썼을 가능성이 크다.
- 아우트리거 카누
- 바다에서 안정되도록 옆에 부목을 단 카누.
- 흑요석
- 매우 날카롭게 깨지는 천연 화산 유리. 화학 분석으로 산지를 추적할 수 있다.
-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 한때 살아 있던 물질에 남은 탄소-14를 재어 나이를 추정하는 방법.
- 고대 DNA
- 오래된 뼈나 치아에서 얻은 유전 물질. 과거 집단의 조상 구성을 연구하는 데 쓴다.
묻고 답하기
왜 ‘라피타’라고 부르나요?
1952년 발굴한 뉴칼레도니아의 해변 유적에서 딴 이름이에요. 고고학자들이 ‘구멍을 파다’ 또는 ‘땅을 파는 곳’을 뜻하는 현지 말을 잘못 들은 것으로 보여요.
보이지도 않는 섬을 어떻게 찾았나요?
후대 폴리네시아 항해자들처럼 별, 바람, 너울, 구름, 새를 읽는 뛰어난 항법을 썼을 거예요. 카누 자체는 남아 있지 않아요.
라피타 사람들에게 문자가 있었나요?
아니요.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고고학, 언어 재구, 그리고 최근의 고대 DNA 연구에서 나와요.
폴리네시아인은 라피타의 후손인가요?
네. 폴리네시아 문화는 피지·통가·사모아의 라피타 공동체에서 발전했어요. 폴리네시아인은 뒤의 접촉으로 파푸아계 조상도 지녀요.
왜 무늬 토기를 그만 만들었나요?
확실히는 몰라요. 그릇의 사회적 의미가 바뀌면서 몇 세기에 걸쳐 무늬가 단순해졌을 수 있고, 서폴리네시아에서는 결국 토기 제작 자체가 멈췄어요.
고대 DNA는 무엇을 밝혔나요?
바누아투와 통가의 가장 이른 라피타 개인들은 파푸아계 조상이 거의 없었고 타이완과 필리핀 북부의 민족에 가장 가까웠어요. 뒤의 이주가 특히 바누아투에서 파푸아계 조상을 더했지만 언어는 바뀌지 않았어요.
라피타는 언제 시작되었나요?
최근 재측정에 따르면 기원전 1350–1300년경이지만, 옛 연구는 몇 세기 더 이르게 보았어요. 이 논쟁은 확산이 얼마나 빨랐는지와 직결돼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 Lapita culture. Wikipedia
- Teouma. Wikipedia
- Austronesian peoples. Wikipedia
- Proto-Oceanic language. Wikipedia
- Oceanic languages. Wikipedia
- Pontus Skoglund et al., Genomic insights into the peopling of the Southwest Pacific. Nature 538, 2016
- Cosimo Posth et al., Language continuity despite population replacement in Remote Oceania. Nature Ecology & Evolution 2, 2018
- Patrick V. Kirch, On the Road of the Winds: An Archaeological History of the Pacific Islands before European Contac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0
- Matthew Spriggs, The Island Melanesians. Blackwell, 1997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