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500년 전 이탈리아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어요. 피렌체나 베네치아 같은 도시, 교황이 다스리는 땅, 여러 왕국으로 쪼개져 서로 자주 싸웠고,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큰 군대가 쳐들어오기도 했어요.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4년 동안 피렌체 정부에서 일했어요. 왕과 교황과 장군들을 만나러 다니며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꼼꼼히 지켜봤지요. 그런데 1512년 힘센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를 차지했어요. 마키아벨리는 일자리를 잃고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했고, 그 뒤 도시 밖 작은 농장에서 조용히 지내야 했어요.
저녁이 되면 그는 서재에 들어가 옛 세계의 위대한 역사책을 읽었고, 1513년 『군주론』이라는 작은 책을 썼어요. 이 책은 통치자에게 나라를 차지하는 법, 군대를 갖추는 법,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법, 운이 나쁘게 돌아설 때 해야 할 일을 조언해요.
어떤 조언은 깜짝 놀랄 만해요. 마키아벨리는 통치자가 할 수 있을 때는 착해야 하지만,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하면 '착하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해요.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을 사는 것 중 무엇이 나은지 묻고는, 미움만 받지 않는다면 두려움을 사는 쪽이 더 안전하다고 답해요.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이 책을 두고 다퉈 왔어요. 마키아벨리는 폭군을 가르친 나쁜 선생이었을까요? 정치의 진실을 말한 현실주의자였을까요? 아니면 통치자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모두에게 보여 주려던 자유의 벗이었을까요? 그래서 이 책은 지금도 학교와 대학에서 읽혀요.
한눈에 보기
- 지은이
-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피렌체의 외교관·관리·저술가
- 집필
- 1513년(1513년 12월 10일 편지에 언급). 1515~1516년 무렵 손질하고 헌정
- 출판
- 지은이 사후 5년인 1532년(로마의 안토니오 블라도, 피렌체의 베르나르도 준타)
- 언어
- 이탈리아어(토스카나어). 장 제목은 라틴어
- 형식
- 헌정 편지와 26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정치 논고
- 헌정 대상
-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뒷날 우르비노 공작). 처음에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를 염두에 둠
- 핵심 개념
- 비르투와 포르투나, '실제의 진실', 필연, 무장한 예언자, 사랑보다 두려움, 여우와 사자
- 수용
- 1559년 가톨릭 금서 목록에 오름. 정치사상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논쟁된 책 가운데 하나
쉬움
『군주론』은 어떤 책인가
『군주론』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1513년 이탈리아어로 쓴, 통치자를 위한 짧은 조언서다. 마키아벨리 자신은 이 책을 '군주국에 관하여(De principatibus)'라는 작은 저작(오푸스콜로)이라고 불렀고, 1532년 인쇄될 때 『일 프린치페(군주)』라는 이탈리아어 제목이 붙었다. 분량은 긴 에세이 정도이며 짧은 26장으로 나뉜다.
책은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가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새 국가에서 권력을 얻는 길은 자기 군대인가, 남의 도움인가, 범죄인가, 인민의 호의인가? 용병은 왜 실패하는가? 통치자는 어떤 자질을 보여야 하고, 어떤 자질은 가진 척만 해야 하는가? 일어나는 일 가운데 얼마만큼이 운에 달려 있는가?
마키아벨리는 당대 이탈리아 정치와 고대, 특히 로마와 그리스의 역사에서 예를 들어 답한다. 말투는 직설적이고 때로 도발적이다. 이 말투와, 통치자는 때로 관습적 도덕에 어긋나게 행동해야 한다는 조언 때문에 책은 유명해졌고 또 악명을 얻었다. 여러 언어에서 '마키아벨리적'이라는 말은 교활하고 기만적이며 무자비하다는 뜻이 되었다.
쉬움
'옛사람들의 옛 궁정에 들어간다': 책이 쓰인 과정
『군주론』을 언제 썼는지는 마키아벨리가 1513년 12월 10일 로마 주재 피렌체 대사인 친구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로 알 수 있다. 그는 시골에서 보내는 하루를 묘사한다. 개똥지빠귀를 잡고, 여관에서 동네 사람들과 입씨름하며 카드놀이를 한다. 그러다 저녁이면 흙 묻은 옷을 벗고 관복을 차려입은 뒤 서재에 들어가, 고대의 위대한 저자들을 읽으며 그들과 '대화'한다.
그 편지에서 그는 '군주국에 관하여'라는 작은 저작을 지었다고 말한다. 군주국이란 무엇이고, 어떤 종류가 있으며, 어떻게 얻고 지키고 잃는지를 할 수 있는 한 깊이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이 군주, 특히 새 군주에게 환영받기를 바라며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바칠 생각을 한다. 그의 바람은 현실적이었다. 메디치 가문이 다시 일자리를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줄리아노가 1516년 세상을 떠나자 헌정사는 그의 조카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에게 바쳐졌다. 로렌초가 이 책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증거는 없고, 마키아벨리는 바라던 자리를 얻지 못했다. 책은 인쇄되기 전 거의 20년 동안 친구와 독자들 사이에서 필사본으로 돌았다.
중급
장별로 본 내용
1~11장은 군주국을 분류한다. 세습 국가는 지키기 쉽고 새 국가는 어렵다. 마키아벨리는 자기 군대와 비르투로 얻은 국가(6장, 모세·키루스·로물루스·테세우스 같은 건국자), 남의 군대와 운으로 얻은 국가(7장,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긴 사례 연구), 범죄로 얻은 국가(8장, 시칠리아의 참주 아가토클레스), 인민의 호의로 얻은 '시민 군주국'(9장)을 구분한다. 그는 '무장한 예언자는 모두 승리했고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몰락했다'고 하며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의 예로 사보나롤라를 든다.
12~14장은 군사 문제를 다룬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용병은 단결하지 못하고 야심만 크며 충성스럽지 않다. 다른 나라가 빌려준 원군은 더 위험하다. 군주는 자기 군대에 의지해야 하며 전쟁술을 가장 중요한 공부로 삼아야 한다.
15~23장은 군주의 처신을 다룬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에게 너그럽고 자비롭고 정직하라고 권하던 오랜 '군주의 거울' 전통과 공공연히 결별한다. 15장에서 그는 상상 속의 공화국과 군주국이 아니라 사물의 '실제의 진실(verità effettuale)'을 따르겠다고 말한다. 16장은 지나친 너그러움이 군주를 망친다고, 17장은 둘 다 될 수 없다면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을 사는 편이 안전하지만 미움만은 피해야 하며 특히 백성의 재산과 여인에게 손대지 말라고 한다. 18장은 군주가 짐승과 인간의 방식을 모두 쓸 줄 알아야 하며, 덫을 알아채는 여우와 늑대를 쫓는 사자가 되어야 하고, 약속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19~23장은 경멸과 미움을 피하는 법, 요새, 평판, 대신과 아첨꾼을 다룬다.
24~26장은 이탈리아로 눈을 돌린다. 이탈리아 군주들이 나라를 잃은 것은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게을러서였다. 25장은 운명을 들판을 휩쓰는 사나운 강에 견주며, 잔잔할 때 둑과 제방을 쌓으면 다스릴 수 있고 운명은 우리 행동의 절반을 지배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우리에게 맡긴다고 말한다. 26장은 메디치 가문에게 이탈리아를 '야만인'에게서 해방하라고 호소하는 열정적인 권고로, 페트라르카의 애국시 「나의 이탈리아여」의 구절로 끝난다.
중급
역사적 배경: 이탈리아 전쟁
1494년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나폴리 왕국을 차지하려고 이탈리아를 침공해 거의 저항 없이 반도를 가로질렀다. 이로써 프랑스·에스파냐·신성 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를 두고 싸운 이탈리아 전쟁(1494~1559)이 시작되었다.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교황령, 나폴리 같은 작은 이탈리아 국가들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 동맹을 맺었다 깨기를 거듭했다.
마키아벨리는 국가가 일어서고 무너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는 1499~1503년 프랑스 군대와 교황의 돈으로 로마냐 지방에 나라를 세웠지만, 아버지가 죽자 그것을 잃었다. 전사 교황 율리오 2세는 베네치아,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다. 피렌체도 피사를 잃었다가 1509년 되찾았고, 1512년에는 공화정을 잃었다. 『군주론』은 이런 경험에서 나온, 권력이 얼마나 빨리 무너질 수 있는지 본 사람이 쓴 책이다.
이 책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에도 속한다.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 폴리비오스, 타키투스, 크세노폰 같은 고전 역사가를 예화의 창고로 쓰며, 군주에게 말을 건네는 인문주의자로서 글을 쓴다. 하지만 그는 인문주의의 관례를 뒤집어, 고전 교양을 군주의 덕을 칭송하는 데가 아니라 환상 없이 정치권력을 분석하는 데 썼다.
중급
핵심 개념: 비르투, 포르투나, 필연
비르투(virtù)는 마키아벨리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용어다. '남자다움', '탁월함'을 뜻하는 라틴어 virtus와 이어져 있지만, 『군주론』에서는 도덕적 덕을 뜻하는 일이 드물다. 사람이 큰일을 이루고 사건의 흐름을 빚어낼 수 있게 하는 힘, 솜씨, 용기, 유연함을 가리킨다. 비르투를 갖춘 통치자는 언제 신중하고 언제 대담해야 하는지, 언제 너그럽고 언제 가혹해야 하는지 안다.
포르투나(fortuna)는 우연, 운, 형편이다. 르네상스 문화에서는 흔히 바퀴를 돌리는 여신으로 그려졌다. 마키아벨리에게 운명은 강력하지만 전능하지는 않다. 미리 준비하고 변하는 시대에 맞춰 바뀌는 군주는 운명에 맞설 수 있다. 그는 또 오늘날 많은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비유로, 운명은 대담하고 젊은 자를 좋아하는 여자와 같다고 덧붙인다.
필연(necessità)이 이 둘을 잇는다. 나라를 지키려는 군주는 흔히 필연에 떠밀려 보통의 도덕이 비난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잔인함, 속임수, 약속 파기가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치에서는 그것들이 때로 필요하며, 군주는 '착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 '필연에 따라'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안전을 위해 한 번에 행하고 이후 백성의 이익으로 돌리는 '잘 쓰인' 잔인함과,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잘못 쓰인' 잔인함을 구분한다.
겉모습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므로, 군주는 자비롭고 신의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해 보여야 하며, 동시에 달리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인민도 강조한다. 인민은 억압받지 않기만을 바라고 귀족은 억압하기를 바라므로, 군주는 귀족보다 인민 위에 권력을 세워야 한다. 흔히 인용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은 책에 없다. 다만 18장에서 사람들은 군주의 행동을 결과로 본다고 말한다.
중급
필사본, 인쇄, 검열
마키아벨리가 직접 쓴 원고는 남아 있지 않다. 본문은 16세기의 여러 필사본과 1532년 인쇄본으로 전한다. 그해 로마의 인쇄업자 안토니오 블라도가 교황의 허가를 받아 책을 냈고, 피렌체의 베르나르도 준타도 판본을 냈다. 장 제목은 인문주의 관례대로 라틴어이고, 본문은 생기 있는 토스카나 이탈리아어다.
인쇄되기 전부터 책은 쓰이고 있었다. 1523년 철학자 아고스티노 니포는 『통치술에 관하여(De regnandi peritia)』라는 라틴어 논고를 냈는데, 지은이를 밝히지 않은 채 『군주론』을 대부분 고쳐 쓴 것이었다.
반종교개혁 시기 마키아벨리의 저작은 1559년 교황 바오로 4세 때 나온 금서 목록에 올랐고, 1564년 목록에서도 금지가 재확인되었다. 그래도 책은 삭제판이나 다른 이름으로 계속 돌았다. 마키아벨리는 1527년 6월 21일 피렌체에서 세상을 떠나 산타 크로체 성당에 묻혔다.
중급
수용: 악의 대명사에서 정치학의 창시자로
16~17세기에 마키아벨리는 사악함의 대명사가 되었다. 위그노 저술가 이노상 장티예의 『반마키아벨리론』(1576)은 프랑스 궁정의 정책을 마키아벨리 사상 탓으로 돌렸다. 영국 연극에서 '마키아벨'은 전형적인 악역이 되었다. 크리스토퍼 말로의 『몰타의 유대인』은 '마키벨'의 대사로 시작하고,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훗날의 리처드 3세는 '살인적인 마키아벨'도 가르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반종교개혁 저술가들은 그에 맞서 그리스도교적 '국가 이성' 개념을 내세웠다.
다르게 읽은 이들도 있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실제로 하는 일을 묘사했다고 그를 칭찬했다. 스피노자와 루소는 『군주론』이 군주의 수법을 폭로함으로써 실은 인민에게 교훈을 준다고 보았고, 루소는 이 책을 '공화주의자의 책'이라 불렀다. 프로이센의 젊은 프리드리히 2세는 볼테르가 편집한 『반마키아벨리론』(1740)을 썼지만, 왕이 된 뒤에는 매우 냉철한 외교 정책을 폈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마키아벨리는 26장 때문에 통일 이탈리아를 꿈꾼 애국자로 읽혔다. 20세기에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혁명 정당을 '현대의 군주'라고 불렀다. 정치학자들은 마키아벨리를 현실주의 정치 연구의 창시자로 여기게 되었고, 책은 경영·군사·대중문화 속에 권력의 지침서로 자리 잡았다.
심화
해석 논쟁
악의 교사인가. 레오 스트라우스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성찰』(1958)에서 마키아벨리가 정말 '악의 교사'이지만 심오한 교사라고 주장했다. 고전·그리스도교 정치철학과 의도적으로 결별하고, 정치의 목표를 안전과 획득으로 낮춤으로써 근대를 연 혁명가라는 것이다. 스트라우스는 숨은 의도를 찾아 텍스트를 꼼꼼히 읽었는데, 그의 제자들이 이 방법을 이어 갔고 비판자들은 이를 추측에 가깝다고 본다.
맥락 속의 인문주의자. 퀜틴 스키너를 비롯한 '케임브리지 학파' 사상사가들은 『군주론』을 르네상스 조언서와 인문주의 정치 언어의 맥락에 놓았다. 이 관점에서 마키아벨리의 독창성은 '군주의 거울' 장르를 전복해, 비르투를 군주가 나라를 지키게 해 주는 모든 자질로 재해석한 데 있다. J. G. A. 포콕의 『마키아벨리언 모먼트』(1975)는 영국·미국 혁명으로 이어지는 시민적 공화주의 전통 속에서 마키아벨리의 자리를 강조했다.
두 개의 도덕인가. 이사야 벌린은 논문 「마키아벨리의 독창성」에서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도덕에서 떼어 낸 것이 아니라 두 도덕을 나란히 놓았다고 주장했다. 영광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이교적·시민적 도덕과 겸손과 구원을 추구하는 그리스도교 도덕이다. 벌린은 둘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마키아벨리의 불편한 발견이며 가치 다원주의로 가는 초기 걸음이라고 보았다.
풍자인가 진심인가. 루소의 암시를 따라, 역사가 개럿 매팅리가 1958년 논문에서 제기한 것처럼 일부 학자는 공화주의자 마키아벨리가 메디치 가문을 파멸로 이끌려고 쓴 풍자나 함정일 수 있다고 보았다. 대다수 학자는 그의 편지와 『리비우스 논고』와의 유사성을 근거로 순전한 풍자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군주정을 다루는 듯한 『군주론』과 공화주의적인 『논고』 사이의 긴장은 여전히 핵심 문제다. 두 책이 서로를 보완한다고, 곧 『군주론』은 건국자와 비상 상황을, 『논고』는 자유 국가의 지속적 건강을 다룬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집필 시기와 구성. 책 전체가 1513년에 완성되었는지, 특히 헌정사와 26장이 나중에 손질되었는지,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먼저 시작했다가 중단했을 수도 있는 『논고』의 집필과 어떤 관계인지도 논쟁거리다.
심화
사료와 읽는 법
1차 텍스트. 『군주론』 자체 외에 필수 사료는 마키아벨리의 편지, 특히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들, 책에 나오는 많은 사례의 초기 형태가 담긴 서기국 시절의 외교 보고서(레가치오니), 그리고 『리비우스 논고』(1531 출판), 『전술론』(1521), 『피렌체사』(1520년 줄리오 데 메디치 추기경이 의뢰), 희극 『만드라골라』 같은 다른 저작이다.
번역. 비르투, 포르투나, 스타토(국가), 오르디니(제도) 같은 핵심 용어는 정확히 대응하는 말이 없어 번역마다 크게 다르다. '덕', '국가', '운' 같은 번역어가 오해를 부를 수 있음을 알고 읽어야 하며, 많은 현대 판본이 비르투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W. K. 매리엇의 영역본(1908) 같은 옛 번역은 읽기 쉽지만 최근 학술 번역보다 덜 정확하다.
방법. 『군주론』을 잘 읽으려면 마키아벨리가 누구를 위해 썼는지,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 흔히 단순화되거나 효과를 위해 골라낸 그의 사례가 역사가들이 아는 사건과 어떻게 다른지 물어야 한다. 예컨대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그의 서술을 당대의 보고와 비교하면, 그가 역사를 논증으로 어떻게 빚었는지 보인다.
핵심 개념
- 비르투(virtù)
- 통치자가 큰일을 이루고 상황을 다스리게 하는 힘·솜씨·적응력. 도덕적 덕과 같지 않다.
- 포르투나(fortuna)
- 인간사의 절반쯤을 지배하는 우연과 형편. 선견지명과 대담한 행동으로 맞설 수 있다.
- 실제의 진실
- 정치를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돌아가는 모습대로 그리려는 마키아벨리의 목표.
- 필연
- 나라를 지키기 위해 통치자가 보통의 도덕에 어긋나게 행동하도록 떠미는 상황의 압력.
- 사랑보다 두려움
- 둘 다 될 수 없다면 미움을 사지 않는 한 두려움이 사랑보다 안전하다.
- 여우와 사자
- 통치자는 덫을 알아채는 교활함과 적을 물리치는 힘을 함께 갖춰야 한다.
- 자기 군대
- 용병이나 빌린 군대가 아니라 자국 시민·백성이 지킬 때에만 국가는 안전하다.
- 겉모습과 실제
-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므로 군주는 덕 있어 보이되 달리 행동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기록
- 1469년 —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에서 태어나다(5월 3일).
- 1494년 — 프랑스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고,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쫓겨나다.
- 1498년 — 사보나롤라가 처형되고, 마키아벨리가 제2서기국의 장이 되다.
- 1502년 — 마키아벨리가 로마냐의 체사레 보르자에게 사절로 파견되다.
- 1512년 — 프라토 약탈 뒤 공화국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문이 돌아오다. 마키아벨리가 해임되다.
- 1513년 — 마키아벨리가 투옥·고문 뒤 사면으로 풀려나 『군주론』을 쓰다. 12월 10일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책을 언급하다.
- 약 1516년 — 책을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에게 헌정하다.
- 1523년 — 아고스티노 니포가 『군주론』을 고쳐 쓴 라틴어 논고를 내다.
- 1527년 —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에서 세상을 떠나다(6월 21일).
- 1532년 — 『군주론』이 로마와 피렌체에서 처음 인쇄되다.
- 1559년 — 마키아벨리의 저작이 금서 목록에 오르다.
- 1740년 —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의 『반마키아벨리론』이 나오다.
용어 풀이
- 군주국
- 공화국과 달리 한 사람의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
- 공화국
- 세습 통치자가 아니라 시민과 그들이 뽑은 회의체가 다스리는 국가.
- 서기국
- 공문서와 행정을 맡은 정부 기관.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제2서기국의 장이었다.
- 용병
- 자기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받고 고용되어 싸우는 직업 군인.
- 군주의 거울
- 통치자에게 덕 있게 다스리는 법을 조언하는 전통적인 책의 장르.
- 인문주의
- 그리스·라틴 문학과 역사, 수사학 연구를 되살린 르네상스 운동.
- 금서 목록
- 가톨릭 교회가 신자들에게 읽지 말도록 정한 책 목록. 1559년 처음 공포되었다.
- 국가 이성
- 국가의 생존과 이익이 다른 경우라면 그릇된 행동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생각.
- 스트라파도
- 뒤로 묶은 손목으로 죄수를 매달아 올렸다 떨어뜨리는 고문.
- 마키아벨리즘
- 권력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태도를 뜻하는 말.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단순화한 통속적 표현이다.
묻고 답하기
마키아벨리는 나쁜 사람이었나요?
그는 공화국에 충성한 공무원이었고 공화국의 적들에게 고문을 당했어요. 책의 조언은 냉혹하지만, 그것이 악을 가르치는지 정치 현실을 솔직하게 그린 것인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에요.
마키아벨리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말했나요?
그 말 그대로는 아니에요. 18장에서 사람들은 군주를 결과로 판단한다고 했는데 뜻은 비슷하지만, 유명한 구호는 나중에 풀어 쓴 말이에요.
누구를 위해 쓴 책인가요?
피렌체를 차지한 메디치 가문을 위해서예요. 처음에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를 생각했고, 나중에 일자리를 얻기를 바라며 로렌초에게 바쳤어요.
왜 죽은 뒤에야 출판되었나요?
살아 있을 때는 손으로 베낀 필사본으로 읽혔어요. 그가 죽고 5년 뒤인 1532년에 교황의 허가를 받아 인쇄되었어요.
『군주론』은 민주주의에 반대하나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군주국을 다룬 책이지만, 마키아벨리의 더 긴 책 『리비우스 논고』는 공화국을 칭찬하고, 『군주론』도 군주에게 귀족보다 인민에게 의지하라고 조언해요.
체사레 보르자는 누구이고, 마키아벨리는 왜 그를 칭찬했나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로, 이탈리아 중부에 빠르고 무자비하게 나라를 세웠어요. 마키아벨리는 그의 방법을 새 군주의 본보기로 내세우면서도, 그가 불운과 아버지가 죽은 뒤의 결정적 실수로 실패했다고 지적해요.
학자들은 『군주론』과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를 어떻게 조화시키나요?
견해가 갈려요. 두 책을 다른 상황을 위한 상호 보완적 저작으로 보는 이도 있고, 『군주론』을 기회주의적인 책으로 보는 이도 있으며, 소수는 인민에게 보내는 풍자나 경고로 읽어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 Niccolò Machiavelli.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군주론. 위키백과
- 니콜로 마키아벨리. 위키백과
- The Prince. Wikipedia
- Niccolò Machiavelli. Wikipedia
- Discourses on Livy. Wikipedia
- Cesare Borgia. Wikipedia
- Niccolò Machiavelli, The Prince (W. K. Marriott 영역). Project Gutenberg
- Quentin Skinner, Machiavelli. Oxford University Press, 1981
- Leo Strauss, Thoughts on Machiavelli. Free Press, 1958
함께 보기
- 손자병법손자에게 전해지는 고대 중국의 병서다. 저자와 성립 연대에는 논쟁이 있다.
- 이븐 할둔사회와 국가의 변화를 분석한 『무깟디마』를 쓴 북아프리카의 역사가이자 사상가다.
- 플라톤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카데메이아의 설립자. 그의 대화편은 서양 철학의 초석으로 남아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리케이온을 세우고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자연학을 두루 저술했다.
- 모나리자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초상화로, 모델은 대체로 리자 게라르디니로 여겨진다.
-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미켈란젤로가 1508~1512년에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화다.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