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브리타니아에서 이집트까지 거대한 제국을 다스린 아주 힘센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는 전쟁과 바쁜 나랏일 틈틈이 공책에 자기 자신에게 짧은 말을 적었다. 참을성을 가지라고, 맡은 일을 잘하라고, 귀찮게 하는 사람에게 화내지 말라고 스스로 일러 둔 것이다. 이 사람이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고, 그 공책이 우리가 『명상록』이라고 부르는 책이다.
마르쿠스는 이 글을 우리를 위해 쓰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일종의 비밀 조언 일기처럼 썼다. 그는 교양 있는 로마인들이 철학을 배울 때 주로 쓰던 그리스어로 글을 썼다. 오늘날 이 글은 ‘권’이라고 부르는 열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지만, 누가 그렇게 나누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글을 쓰던 때는 아주 힘든 시절이었다. 도나우강 너머의 군대가 제국을 공격했고, 무서운 병이 도시와 군대 막사에 퍼지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군대 진영에서 몇 년을 지냈다. 어떤 메모에는 쓴 곳도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카르눈툼에서”라고 적혀 있는데, 카르눈툼은 도나우강 가에 있던 로마의 요새 도시다.
마르쿠스는 스토아 철학이라는 생각의 길을 따랐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은 나에게 달려 있다. 내 선택이나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하지만 날씨나 남이 하는 행동처럼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일도 많다. 그러니 바꿀 수 없는 일 때문에 속상해하며 힘을 낭비하지 말고, 정직하고 공정하고 용감하고 친절하게 사는 데 힘을 쓰라는 것이다.
마르쿠스가 죽은 뒤 수백 년 동안, 오늘날 남아 있는 글 가운데 이 공책을 언급한 것은 거의 없다. 손으로 베껴 쓴 사본도 몇 개밖에 알려져 있지 않고, 가장 중요한 두 사본 가운데 하나는 지금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온 세계에서 이 책을 읽는다. 한 출판사에서만 한 해에 10만 부 넘게 팔린 적도 있다.
한눈에 보기
- 무엇
- 출판할 생각 없이 쓴 철학적 메모와 자기 다짐의 모음
- 저자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마 황제, 재위 161–180)
- 시기
- 170년대(정확한 연대는 논쟁 중. 흔히 약 170–180년, 일부 학자는 약 171–175년으로 본다)
- 장소
- 적어도 일부는 도나우강 변경의 군대 진영. 본문 메모에 “콰디족 땅, 그라누아강 가에서”와 “카르눈툼에서”가 나온다
- 언어
- 그리스어(코이네). 앞선 그리스 저자들의 인용이 많다
- 형식
- 한 줄짜리 구호에서 한 쪽 분량의 성찰까지,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12권
- 사상
- 로마 시대 스토아 철학. 에픽테토스의 영향이 특히 크다
- 전승
- 핵심 증거는 두 가지. 바티칸 그리스어 사본 1950(14세기)과 최초 인쇄본(취리히, 1558/59)의 바탕이 된 뒤 사라진 팔라티나 사본
쉬움
『명상록』은 어떤 책인가
『명상록』은 161년부터 180년까지 로마를 다스린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기 자신에게 쓴 메모 모음이다. 계획된 논증을 펼치는 논문도, 연설문도, 법전도 아니다. 오히려 작업용 공책에 가깝다. 마르쿠스는 같은 생각을 말을 바꾸어 되풀이하고, 스스로와 논쟁하며, 도움이 된 시인과 철학자의 구절을 옮겨 적는다. 거의 모든 글이 ‘너’에게 말을 거는데, 그 ‘너’는 마르쿠스 자신이다.
그는 라틴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로 썼다. 2세기의 교양 있는 로마인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키케로와 세네카가 라틴어로 철학을 쓰기도 했지만 철학 교육의 주된 언어는 여전히 그리스어였고, 마르쿠스는 어려서부터 그리스어를 쓰는 스승들에게 배웠다. 글은 열두 ‘권’으로 전하지만, 마르쿠스 자신이 그렇게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열두 권이라는 구분을 처음 언급한 것은 10세기 후반 비잔티움의 사전 『수다』다.
마르쿠스가 남에게 읽히려 했다는 증거는 없다. 대부분의 학자는 그가 자기 마음을 단련하려고 썼다고 본다. 이 책이 유난히 사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제목조차 확실하지 않다. ‘명상록(Meditations)’은 근대에 붙은 이름이고, 그리스어 제목 ‘타 에이스 헤아우톤(자기 자신에게)’도 900년 무렵에야 처음 기록되어 마르쿠스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있다.
쉬움
무엇이 들어 있나: 열두 권의 다짐
1권은 나머지와 다르다. 감사의 목록이다. 마르쿠스는 가족과 스승, 친구를 한 사람씩 떠올리며 각자에게서 배운 좋은 점을 적는다. 누구에게서는 겸손을, 누구에게서는 절제를 배웠다는 식이다. 스승 유니우스 루스티쿠스에게서는 자기 성품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를 통해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강론을 읽게 되었다고 말한다. 1권은 신들에 대한 감사로 끝난다.
2권부터 12권까지는 수백 개의 글로 이루어진다. 짧은 명령(“인상을 지워 버려라!”)도 있고 작은 에세이도 있다. 2권의 첫 글이 유명하다. 새벽에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오늘 나는 참견 잘하고, 고마움을 모르고, 오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와 같은 족속이며, 우리는 손과 발과 눈꺼풀처럼 서로 협력하도록 태어났다. 5권은 이렇게 시작한다. “새벽에 일어나기 싫을 때 이 생각을 곁에 두어라. 나는 사람의 일을 하러 일어난다.”
독자들은 같은 몇 가지 생각이 얼마나 자주 되돌아오는지 금세 알아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곧 온다. 명성은 헛되다. 남의 잘못은 내 성품을 해칠 수 없다. 눈앞의 일을 잘하라. 학자들은 각 권에 숨은 질서가 있는지 논쟁해 왔지만, 목적이 보여 주기가 아니라 연습이었다면 이런 반복은 자연스럽다. 마르쿠스는 4권에서 사람이 자기 영혼보다 더 고요한 곳으로 물러날 수는 없다고 쓴다. 이 공책은 그가 그렇게 물러나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중급
전쟁 속에서 쓴 글: 도나우 변경과 안토니누스 역병
마르쿠스는 161년 입양으로 형제가 된 루키우스 베루스와 함께 즉위했다. 곧바로 동쪽에서 파르티아와 전쟁(161–166)이 벌어졌다. 고대 저자들은 이 원정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전염병을 가져왔다고 전한다. 오늘날 안토니누스 역병이라 부르는 이 병은 165년 무렵부터 제국 전역에 퍼졌다. 의사 갈레노스는 열과 설사, 피부 발진을 기록했다. 오랫동안 천연두가 가장 유력한 진단이었지만, 최근 유전학 연구로 학자들은 더 신중해졌고 홍역도 후보로 거론된다. 사망자 추정치는 큰 차이가 있다. 마르쿠스 자신도 180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같은 병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시기 도나우 변경의 압력도 커졌다. 역사가들이 마르코만니 전쟁(166–180)이라 부르는 이 전쟁에서 마르코만니족과 콰디족 같은 게르만계 집단과 사르마티아계 이아지게스족이 로마 영토로 넘어왔고, 170년 무렵에는 침입자들이 북이탈리아의 아퀼레이아를 포위하기까지 했다. 마르쿠스는 170년대의 대부분을 군대와 함께 보냈다. 170년대 초에는 오늘날 빈 동쪽 도나우강 가의 군단 요새 도시 카르눈툼에 본영을 두었고, 뒤에는 강 건너 콰디족을 상대로 원정했다.
사본에 남은 짧은 메모 두 개가 이 글을 원정과 이어 준다. 1권 뒤에는 “콰디족 땅, 그라누아강 가에서”(그라누아는 도나우강의 지류인 오늘날의 흐론강으로 추정된다), 2권 뒤에는 “카르눈툼에서”라고 적혀 있다. 각 메모가 앞 권의 끝인지 다음 권의 머리인지는 편집자마다 다르게 보지만, 어느 쪽이든 적어도 일부가 군대 진영이나 그 근처에서 쓰였음을 보여 준다. 공책은 전투를 묘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이 짧다는 것, 맡은 자리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글 곳곳에 전쟁과 병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중급
마르쿠스의 목소리로 듣는 스토아 사상
로고스와 자연. 스토아학파는 우주가 만물을 관통하는 신적 이성, 곧 로고스에 따라 질서 지어져 있으며, 삶의 목표는 자연에 일치하여 사는 것이라고 보았다. 마르쿠스는 이 생각으로 끊임없이 돌아오는데, 흔히 독특한 형태를 띤다. “섭리이거나 원자이거나.” 세계가 지성에 따라 다스려지거나, 에피쿠로스학파의 가르침처럼 입자들이 우연히 소용돌이치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분명히 앞쪽을 택하지만, 어느 경우든 올바른 대응은 같다고 말한다. 정의롭게 행동하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달린 것. 마르쿠스는 에픽테토스에게서, 우리에게 달린 것(판단·선택·행위)과 우리에게 달리지 않은 것(몸·재산·평판·사건)을 날카롭게 가르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는 사물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거듭 말한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피에르 아도는 마르쿠스의 사상을 에픽테토스에게서 비롯된 세 가지 수련, 곧 판단(동의)의 수련, 욕구(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임)의 수련, 행위(남을 위해 정의롭게 행동함)의 수련으로 정리했다.
덧없음. 마르쿠스는 모든 것을 아주 높은 곳에서,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바라보도록 스스로를 훈련한다. 6권에서 그는 “아시아도 유럽도 우주의 한 귀퉁이요, 모든 바다는 우주 속의 물 한 방울”이라고 쓴다. 지난날의 황제와 철학자는 모두 흙이 되었고, 오늘 궁정의 아첨꾼과 비판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이 ‘위에서 내려다보기’는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스토아학파가 유일하게 참된 선이라 본 덕에 마음을 쏟도록 주의를 풀어 주려는 것이다.
의무와 우주 도시. 마르쿠스에게 모든 이성적 존재는 하나의 세계 도시, 곧 코스모폴리스의 동료 시민이며 서로에게 정의와 도움을 빚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중 정체성을 분명히 적는다. “안토니누스로서 나의 도시이자 조국은 로마이고, 인간으로서는 우주다.” 또 스스로를 경계한다. “카이사르로 변하지 않도록, 자줏빛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황제라는 자리는 다해야 할 의무이지 자기 자신이 되어 버릴 무엇이 아니라는 다짐이다.
중급
사라질 뻔한 공책이 인쇄본이 되기까지
마르쿠스의 사적인 메모가 그의 죽음 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수백 년 동안 기록은 거의 침묵한다. 3세기의 헤로디아노스는 마르쿠스의 글을 대체로 칭찬했고, 364년 무렵 연설가 테미스티오스는 마르쿠스의 ‘가르침’을 언급했는데 이것이 이 책을 가리키는지는 불확실하다. 아마 4세기에 쓰였을 황제 전기 모음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의 「아비디우스 카시우스전」에는 마르쿠스가 마르코만니 전쟁에 나서기 전에 자신의 『권고』를 사흘 동안 한 권씩 강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것도 『명상록』을 분명히 가리키지는 않는다.
처음으로 확실하게 언급한 사람은 비잔티움의 카이사레아 주교이자 이름난 사본 수집가 아레타스다. 그는 907년 이전에, 황제의 ‘매우 유익한 책’의 오래된 사본을 가지고 있는데 너무 낡아 부서질 지경이어서 새로 베끼게 했다고 썼다. 다른 저자들의 책에 단 난외 주석에서는 이 책을 ‘타 에이스 헤아우톤 에티카(자기 자신에게 쓴 윤리적 글)’라고 불렀다. 조금 뒤 『수다』는 약 서른 구절을 인용하며 이 책을 열두 권으로 된 ‘자기 삶의 안내’라고 불렀다. 아레타스의 사본은 사라졌지만, 현존하는 모든 사본의 조상일 가능성이 있다.
근대의 본문은 무엇보다 두 증거에 달려 있다. 첫째는 바티칸 도서관의 14세기 코덱스인 바티칸 그리스어 사본 1950으로, 『명상록』이 크세노폰의 저작,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과 나란히 실려 있다. 필사자의 실수가 많고 마흔 몇 행이 빠져 있다. 둘째는 하이델베르크 팔라티나 도서관에서 나온 사본이다. 시인 미하엘 톡시테스가 이것을 취리히의 콘라트 게스너에게 넘겼고, 빌헬름 크실란더가 라틴어 대역을 붙여 편집했으며, 안드레아스 게스너가 인쇄했다. 표제지에는 1558년이라 적혀 있고, 흔히 1558년 또는 1559년 간행으로 본다. 크실란더가 1568년에 판을 고칠 때는 이 사본을 더는 참고할 수 없었고, 그 뒤로 본 사람이 없다.
그래서 제목은 수수께끼로 남는다. 그리스어 ‘타 에이스 헤아우톤’은 이 사본 전통과 아레타스에서 온 것이지, 마르쿠스와 가까운 고대 자료에서 온 것이 아니다. 영어권에서는 1634년 메릭 카소봉의 번역이 ‘Meditations’라는 이름을 굳히는 데 한몫했고, 다른 번역들은 ‘Thoughts(사색)’, ‘Communings with Himself(자기와의 대화)’, 또는 그냥 ‘To Himself(자기 자신에게)’라는 제목을 썼다.
중급
그 무렵 세계는: 로마, 인도양, 그리고 한나라
마르쿠스는 공책에서 스스로를 온 세계의 시민으로 여기라고 다짐한다. 그의 시대에는 지중해와 인도양, 한나라를 잇는 장거리 교역망이 있었다. 동한(후한)의 정사 『후한서』 「서역전」은 환제 연희 9년, 곧 166년에 “대진(大秦)의 왕 안돈(安敦)”이 보낸 사신이 일남(日南, 오늘날 베트남 중부 해안의 군) 바깥에서 와서 상아·코뿔소 뿔·대모(바다거북 등딱지)를 바쳤다고 기록한다. 대진은 한나라 사람들이 로마 세계를 부르던 이름이고, 안돈은 대개 ‘안토니누스’로 본다. 이 이름은 안토니누스 피우스(161년 사망)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모두의 이름이다.
정작 『후한서』의 편찬자들도 미심쩍어했다. 바친 물건이 진귀하지 않으니 전하는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의심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역사가는 이들이 마르쿠스가 보낸 공식 사절이 아니라, 사절을 자처한 로마 동부 출신 상인이었을 것으로 본다. 이 기록이 확실히 보여 주는 것은 ‘로마인’ 방문객의 소식이 남쪽 바다 쪽의 일남을 거쳐 한나라 조정에 닿았다는 사실이다. 바다 건너 로마 쪽의 교역은 별도의 자료로 확인된다. 로마령 이집트의 상인들은 계절풍을 타고 인도로 항해했다. 오늘날 빈에 있는 2세기 중엽의 ‘무지리스 파피루스’는 헤르마폴론호가 인도 항구 무지리스에서 실어 온 화물을 다룬다. 코끼리 상아 167개, 흔히 후추로 읽는 상품이 엄청난 양(약 139톤), 그 밖의 물품이 실려 있었다. 이 파피루스의 앞면에는 대출 계약이 남아 있고, 뒷면의 화물 명세는 관세 계산을 적은 개인 기록으로 보이는데, 관세를 떼고 남은 물품의 값을 거의 700만 드라크마로 매기고 있다. 이런 물자는 로마와 중국을 한 번에 오가는 여행이 아니라, 항구와 중개인이 이어진 사슬을 따라 움직였다.
166년은 중국 안에서도 전환점이었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환관 세력이 환제를 움직여 자신들을 비판한 유학자 관료와 태학생들을 몰아냈다. 이것이 ‘당고(黨錮)의 화’의 시작이며, 168–169년에는 더 가혹한 숙청이 뒤따랐다. 중국 사료는 160–180년대에 거듭된 역병을 기록하고 있고, 184년에는 병을 고쳐 준다며 따르는 이를 모은 장각이 화북 전역에서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다. 난은 그해 안에 진압되었지만, 이를 막으려고 일으킨 군대, 189년 영제가 죽은 뒤 다시 불붙은 조정의 위기, 그 뒤를 이은 군벌 전쟁이 함께 왕조를 무너뜨렸고, 결국 삼국 시대로 이어졌다.
같은 병이 두 제국을 덮쳤을까? 역사가 윌리엄 맥닐은 1976년 『전염병의 세계사(Plagues and Peoples)』에서 역병이 한나라와 로마를 함께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역병 기록이 안토니누스 역병과 같은 수십 년에 몰려 있다는 점을 짚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병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이 연결은 가설로 남아 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유라시아 양 끝의 두 대제국이 같은 시기에 역병과 변경의 압력, 정치적 긴장을 함께 겪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통치자 가운데 한 사람은 공책에 아시아와 유럽이 우주의 한 귀퉁이일 뿐이라고 적고 있었다.
중급
수용의 역사: 르네상스 학자에서 현대 자기계발서까지
비잔티움에서는 학자들이 이 책을 읽고 발췌했으며, 14–16세기 그리스어 선집에도 인용이 실렸다. 서유럽에서의 이력은 크실란더의 그리스어·라틴어 판에서 시작되었고, 이 판 덕분에 유럽 인문주의자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어 여러 근대어 번역이 나왔다. 영어로는 1634년 메릭 카소봉의 번역 뒤로 많은 번역이 이어졌고, 1862년 조지 롱의 번역이 특히 큰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유럽인들에게 마르쿠스는 그리스도교도가 아닌 사람이 도덕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시금석이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1859)에서 마르쿠스를 당대에 가장 훌륭하고 현명했을 통치자, 그 글이 그리스도교 윤리와 거의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그렸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의무감에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다는 것이다. 밀은 이를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라고 부르며, 아무리 현명한 권위라도 의견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논거로 삼았다. 매슈 아널드는 1863년 마르쿠스에 관한 글로 이에 응답했고, 이 논쟁이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떠올린 ‘철인 황제’의 모습을 만들었다.
20세기에는 이 책이 심리학에도 닿았다. 인지치료의 창시자들은 1979년에 자신들의 접근법이 스토아 철학자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쓰며 그 가운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꼽았다. 우리의 판단이 감정을 만든다는 스토아의 생각은 인지행동치료의 중심이 되었다.
21세기에 들어 『명상록』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펭귄 출판사는 자사 판의 판매량이 2010년대에 몇 배로 늘어 2019년에는 10만 부를 넘었다고 밝혔다. 라이언 홀리데이 같은 작가들은 온라인에서 ‘현대 스토아주의’의 큰 독자층을 만들었고, 빌 클린턴부터 전 중국 총리 원자바오까지 여러 정치인이 이 책을 칭찬했다. 이런 부흥을 반기는 철학자들까지 포함한 비판자들은, 맥락에서 잘라 낸 구호가 마르쿠스를 생산성이나 감정 억압의 스승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쓰는 사람에게 남을 위해 일하라고 거듭 요구하는 원래의 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심화
여러 관점
철학인가, 영적 수련인가? 독자들은 오랫동안 『명상록』을 스토아 학설의 요약으로, 혹은 마르쿠스의 성격과 기분을 들여다보는 창으로 읽어 왔다. 피에르 아도는 『내면의 성채(La Citadelle intérieure)』(1992, 영역 1998)에서 이와 달리 이 글이 일련의 ‘영적 수련’이라고 주장했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 원리를 날마다 적으라는 에픽테토스의 권고를 따라, 마르쿠스가 그 원리를 생생하게 되살려 삶으로 옮기려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반복과 수사적 힘, 어두운 이미지는 고백이 아니라 도구이며, 아도는 이를 황제의 심리를 드러내는 단서로 읽는 데 반대했다. 서평자들은 아도의 해석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일부에 의문을 제기했다. 예컨대 라차나 캄테카르는 설득력 있는 문학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정통 스토아 심리학과 잘 맞지 않으며, 아도가 ‘선악과 무관한 것(아디아포라)’에 관한 스토아 학설을 설명하면서 스토아학파를 실제보다 더 혼란스러워 보이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정통 스토아주의자인가, 절충주의자인가? 마르쿠스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플라톤, 데모크리토스를 인용하고, 고통에 관해서는 에피쿠로스에게도 찬성한다. ‘섭리이거나 원자이거나’라는 양자택일은 아홉 번이나 나온다. 존 리스트나 줄리아 애나스 같은 학자들은 이를 그가 스토아 자연학을 확고히 붙잡지 못했다는 표시로 보았고, 아도를 비롯한 다른 학자들은 어느 자연학이 옳든 스토아적 삶의 방식은 유효하다는 논증으로 읽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방법론적 경고를 덧붙인다. 마르쿠스는 자기 안에 어떤 태도를 만들어 내려고 쓰기 때문에, 모순처럼 보이는 말은 의도된 과장일 수 있다. 이를 학설로만 읽으면 그는 실제보다 더 절충적이고 부정확한 사상가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통치. 정의와 인내를 찬양하는 이 책 곁에는 가혹한 기록이 있다. 마르쿠스 치세에 그리스도교도들이 처형되었다. 호교론자 유스티누스는 165년 무렵 로마에서 수도 장관 유니우스 루스티쿠스의 명령으로 참수되었는데, 그는 마르쿠스가 1권에서 감사를 표한 바로 그 스토아 스승이다. 177년에는 리옹과 비엔의 그리스도교도들이 리옹에서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에우세비오스가 전하는 생존자들의 편지에 따르면, 총독이 황제에게 문의하자 황제는 신앙을 고백하는 자는 처형하고 부인하는 자는 풀어 주라고 명했다. 마르쿠스 개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견해가 갈린다. 박해는 지역 단위로, 군중과 총독에 의해 일어났고, 당대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그를 직접 탓하지 않았으며, 테르툴리아누스는 오늘날 위작으로 여겨지는 편지를 근거로 그를 오히려 보호자로 그리기도 했다. 『명상록』 자체는 그리스도교도를 단 한 번(11권 3장) 언급하는데, ‘단순한 고집’으로 죽는다고 깎아내리는 짧은 구절이다. 많은 편집자는 이 말을 후대 독자가 여백에 적은 메모가 본문에 섞여 든 것으로 본다.
콤모두스라는 선택. 마르쿠스 이전의 ‘현제’들은 대개 후계자를 입양했다. 마르쿠스는 177년 친아들 콤모두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고, 콤모두스는 180년부터 192년에 살해될 때까지 홀로 다스렸다. 이 시대를 직접 겪은 원로원 의원 카시우스 디오는 마르쿠스의 죽음과 함께 역사가 “황금의 왕국에서 쇠와 녹의 왕국으로” 떨어졌다고 썼다. 역사가 마이클 그랜트처럼 마르쿠스를 변호하는 이들은, 장성한 아들을 제쳐 두고 다른 사람을 세웠다면 거의 틀림없이 내전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대 저자들은 이미 이 선택을 그의 생애에서 가장 큰 불운으로 여겼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마르쿠스가 참으로 운이 좋았다면 아들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철인왕’ 마르쿠스라는 이미지도 일부는 만들어진 것이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그가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번영한다는 플라톤의 말을 늘 입에 올렸다고 전하고, 그리스도교 호교론자들은 그를 철학자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정작 그는 공책에서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바라지 말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심화
증거와 방법: 훼손된 사적 텍스트 읽기
모든 근대 판본은 재구성이다. 팔라티나 사본이 사라졌으므로 그 독법은 크실란더의 인쇄본으로만 남아 있고, 편집자는 이를 바티칸 사본과 맞대어 본다. 비잔티움 독자들이 만든 선집도 조금 보탬이 된다. 다름슈타트 사본(2773번)에는 1–9권에서 뽑은 백 개 넘는 발췌가, 파리 사본(그리스어 319번)에는 1–4권에서 뽑은 수십 개가 남아 있다. 지금도 훼손된 구절이 많고, 판본마다 글을 나누고 번호를 매기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 같은 문장이라도 인용 위치가 다를 수 있다.
연대 추정의 근거는 빈약하다. 두 개의 장소 메모, 늙음과 죽음에 관한 본문 속 언급, 그리고 우리가 아는 마르쿠스의 행적은 170년대를 가리키지만, 학자들이 제시하는 범위는 대략 170–180년부터 좀 더 좁게 약 171–175년까지 다양하다. 글이 지금 놓인 순서대로 쓰였는지도 논쟁거리다.
가장 큰 방법론적 문제는 장르다. 『명상록』이 사적인 수련이라면, 그 말들을 곧바로 마르쿠스의 자서전이나 정책 기록으로 읽을 수 없다. 공책과 통치 사이의 간극이야말로 공책이 메우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 책을 다른 자료와 함께 읽는다. 비잔티움 시대의 발췌로 전하는 카시우스 디오의 역사서, 신뢰도가 낮은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비문과 주화,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념주, 갈레노스의 의학 저술, 스승 프론토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다. 철학자들은 에픽테토스와 나란히 놓고 읽는다. 학문마다 서로 다른 마르쿠스를 보며, 공책은 그 이견을 좀처럼 정리해 주지 않는다.
핵심 개념
- 로고스
- 스토아학파가 우주 전체에 질서를 준다고 본 신적 이성. 인간의 이성은 그 한 몫이므로,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곧 자연에 일치하여 사는 것이다.
- 우리에게 달린 것
- 에픽테토스에게서 이어받은 구분. 우리의 판단과 선택은 우리 힘 안에 있고, 건강·재산·평판 같은 바깥 일은 그렇지 않다.
- 섭리이거나 원자이거나
- 마르쿠스가 되풀이하는 양자택일. 세계는 지성이 다스리거나 원자의 우연한 충돌이다. 그는 어느 경우든 정의롭고 차분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 덧없음과 위에서 내려다보기
- 역사 전체와 온 땅을 한꺼번에 떠올려 명성·고통·다툼이 얼마나 짧은지 깨닫고, 덕에 주의를 돌리는 연습.
- 코스모폴리스(세계 도시)
- 모든 이성적 존재가 하나의 세계 도시의 시민이며 서로 정의의 의무를 진다는 스토아 사상.
- 의무와 맡은 자리
- 마르쿠스는 황제라는 역할을 자연이 맡긴 자리로 여기고, 허영 없이 잘 해내야 한다고 보았다. “자줏빛에 물들지 마라.”
- 수련으로서의 글쓰기
- 이 공책이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핵심 원리를 거듭 다시 써서 마음을 단련하는 도구였다는 피에르 아도의 견해.
기록
- 121년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에서 태어난다(4월 26일).
- 161년 — 마르쿠스가 루키우스 베루스와 함께 황제가 되고, 파르티아와 전쟁이 시작된다.
- 약 165년 — 안토니누스 역병이 로마 제국에 퍼지기 시작한다.
- 약 165년 — 그리스도교 교사 유스티누스가 마르쿠스의 스토아 스승인 수도 장관 유니우스 루스티쿠스 아래에서 로마에서 처형된다.
- 166년 — 『후한서』가 “대진의 왕 안돈”의 사신이 바닷길로 한나라에 왔다고 기록한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첫 번째 당고의 화가 일어난다.
- 약 170년 — 북방 집단이 이탈리아에 침입해 아퀼레이아를 포위한다. 마르쿠스는 170년대 초 카르눈툼에서 전쟁을 지휘한다. 『명상록』의 적어도 일부가 이 원정 기간에 쓰였지만, 언제 쓰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 177년 — 콤모두스가 공동 황제가 된다. 리옹과 비엔의 그리스도교도들이 리옹에서 순교한다.
- 180년 — 마르쿠스가 원정 중에 세상을 떠난다(3월 17일). 콤모두스가 단독 황제가 되어 도나우 방면에서 강화를 맺는다.
- 184년 — 한나라에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다.
- 약 907년 — 이보다 앞서 카이사레아의 아레타스가 이 책의 낡은 사본을 새로 베끼게 한다. 이 책에 대한 최초의 확실한 언급이다.
- 1558년 — 빌헬름 크실란더의 최초 인쇄본(라틴어 번역 포함)이 취리히에서 나온다(표제지 1558년, 흔히 1558/59년으로 표기).
- 1634년 — 메릭 카소봉이 최초의 영어 번역을 펴낸다.
- 1859년 —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마르쿠스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권위에 대한 경고로 든다.
- 1992년 — 피에르 아도의 『내면의 성채』가 『명상록』을 영적 수련으로 읽는다.
용어 풀이
- 스토아 철학
- 기원전 300년 무렵 키티온의 제논이 세운 그리스 철학 학파. 덕만이 유일한 선이며 자연에 일치하여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 에픽테토스
- 노예 출신의 스토아 철학 교사(약 50–약 135). 제자 아리아노스가 기록한 그의 강론이 마르쿠스의 주된 철학적 본보기였다.
- 코이네 그리스어
- 로마 시대 동지중해 전역에서 쓰인 공통 그리스어. 교양 있는 로마인들도 철학을 할 때 이 말을 썼다.
- 마르코만니 전쟁
- 166–180년 로마와 도나우강 북쪽의 마르코만니족·콰디족·이아지게스족 등이 벌인 전쟁.
- 안토니누스 역병
- 165년 무렵부터 로마 제국에 퍼진 전염병. 정확히 어떤 병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 카르눈툼
- 판노니아 속주의 도나우강 가, 오늘날 빈 동쪽에 있던 로마 군단 요새이자 도시. 마르쿠스가 본영으로 썼다.
- 코덱스(사본)
- 낱장을 묶은 손으로 쓴 책. 중세 필사본의 일반적인 형태다.
- 초판본(에디티오 프린켑스)
- 고대 텍스트가 처음 인쇄된 판. 『명상록』의 경우 1558/59년 취리히에서 나온 크실란더 판이다.
- 대진(大秦)
- 한나라 사료에서 로마 세계를 부르던 이름. 한나라 사람들은 주로 전해 들은 말로 대진을 알았다.
- 영적 수련
- 사람이 사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고대의 사고·글쓰기·상상 훈련을 가리키는 피에르 아도의 용어.
묻고 답하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남들이 이 공책을 읽기를 바랐나요?
아마 아닐 것이다. 본문은 자기 자신 말고 다른 독자에게 말을 걸지 않으며, 대부분의 학자는 이를 사적인 자기 수련으로 본다. 어떻게 살아남아 세상에 알려졌는지는 알 수 없다.
로마 황제가 왜 그리스어로 썼나요?
로마 세계에서 철학 교육의 주된 언어는 그리스어였다. 키케로나 세네카처럼 라틴어로 철학을 쓴 로마인도 있었지만, 마르쿠스는 어려서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고 그리스어를 쓰는 스승들에게 공부했기 때문에 철학을 그리스어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명상록’이 원래 제목인가요?
마르쿠스가 붙인 제목은 전하지 않는다. 그리스어 제목 ‘타 에이스 헤아우톤(자기 자신에게)’은 900년 무렵 처음 확인되고, ‘Meditations’는 근대 영어 제목이다.
어디에서 썼나요?
적어도 일부는 도나우 변경의 원정 중에 썼다. 본문 메모에 “콰디족 땅, 그라누아강 가에서”와, 오늘날 빈 동쪽의 로마 요새 도시 “카르눈툼에서”라는 말이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했나요?
그의 치세에 그리스도교도가 처형되었다. 로마의 유스티누스(165년 무렵)와 리옹의 순교자들(177년)이 대표적이며, 리옹에서는 황제가 신앙을 고백한 이를 처형하라고 했다고 전한다. 그가 직접 얼마나 박해를 이끌었는지는 논쟁 중이다.
그의 치세에 로마가 중국에 사절을 보냈나요?
중국 기록은 166년에 “대진의 왕 안돈”이 보낸 사신이 왔다고 전한다. 많은 역사가는 이들이 마르쿠스의 공식 사절이 아니라 로마를 대표한다고 자처한 상인이었을 것으로 본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본문은 얼마나 믿을 만한가요?
전체적으로는 꽤 믿을 만하지만, 사본이 매우 적고 그 가운데 하나는 사라졌기 때문에 개별 구절은 불확실한 곳이 많고 편집자들의 독법도 여전히 갈린다.
『명상록』은 훌륭한 철학인가요, 그냥 자기계발서인가요?
두 가지 읽기가 모두 있다. 스토아 윤리의 기록으로 높이 사는 이도 있고, 아도를 따라 실천적 수련으로 보는 이도 있다. 비판자들은 현대 자기계발식 읽기가 남을 위해 일하라는 이 책의 요구를 지워 버리기 쉽다고 경고한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Rachana Kamtekar, Marcus Aureliu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John Sellars, Marcus Aurelius.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 Stoicis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Epictetu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Meditations. Wikipedia
- C. R. Haines, Introduction, in The Communings with Himself of Marcus Aurelius Antoninus (Loeb Classical Library). William Heinemann / Wikisource, 1916
- George Long (trans.), The Thoughts of the Emperor Marcus Aurelius Antoninus (trans. George Long). Project Gutenberg, 1862
- Vat.gr.1950, pt. 2 (Xenophon, Marcus Aurelius, Epictetus and others).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DigiVatLib
- Jona Lendering, Marcus Aurelius. Livius.org
- Commodus. Livius.org
- Marcus Aurelius in Carnuntum: an Emperor between War and Philosophy. Römerstadt Carnuntum
- Marcomannic Wars. Wikipedia
- Antonine Plague. Wikipedia
- Marcus Aurelius. Wikipedia
- Quintus Junius Rusticus. Wikipedia
- Eusebius of Caesarea, Church History, Book V, ch. 1 (letter of the churches of Vienne and Lyon). New Advent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 The Martyrdom of the Holy Martyrs Justin, Chariton, Charites, Paeon and Liberianus. New Advent (Ante-Nicene Fathers)
- Athenagoras of Athens, A Plea for the Christians. New Advent (Ante-Nicene Fathers)
- Cassius Dio, Roman History, Book 72 (epitome). LacusCurtius (Loeb translation)
- Historia Augusta: The Life of Marcus Aurelius. LacusCurtius (Loeb translation)
- John Stuart Mill, On Liberty. Project Gutenberg, 1859
- Lee Behlman, The Victorian Marcus Aurelius: Mill, Arnold, and the Appeal of the Quasi-Christian. Journal of Victorian Culture (Montclair State University Digital Commons), 2011
- Rachana Kamtekar, Review of Pierre Hadot, The Inner Citadel. Bryn Mawr Classical Review 1998.11.35, 1998
- Pierre Hadot (trans. Michael Chase), The Inner Citadel: The Meditations of Marcus Aureliu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 John E. Hill (trans.), The Western Regions according to the Hou Hanshu (sections 11–12 on Da Qin). Silk Road Seattle, University of Washington
- Friedrich Hirth (trans.), Chinese Accounts of Rome, Byzantium and the Middle East. Internet History Sourcebooks, Fordham University
- Fan Ye, 後漢書 卷八十八 西域傳 (Hou Hanshu, ch. 88, Chinese text). Wikisource (Chinese)
- Sino-Roman relations. Wikipedia
- Der Muziris-Papyrus. Österreichische Nationalbibliothek (Austrian National Library)
- Rafe de Crespigny, Man from the Margin: Cao Cao and the Three Kingdoms (51st George Ernest Morrison Lectur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1990
- Miko Flohr, The Pandemic of the Second Century CE. NIAS (Netherlands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 A germ of an idea (on William H. McNeill’s Plagues and Peoples). The University of Chicago Magazine
- Andrea E. Cavanna et al., The Western origins of mindfulness therapy in ancient Rome. Neurological Sciences (PubMed Central), 2023
- The 2,300-year-old philosophy of Stoicism finds a foothold in modern times. USC Dornsife College of Letters, Arts and Sciences
- Shayla Love, The Revival of Stoicism. VICE, 2021
함께 보기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사상가로, 처신과 의무에 관한 사적인 성찰을 『명상록』에 남겼다.
- 소크라테스스스로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아테네의 철학자. 플라톤과 크세노폰을 통해 알려졌으며, 기원전 399년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 플라톤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카데메이아의 설립자. 그의 대화편은 서양 철학의 초석으로 남아 있다.
-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서방 신학과 철학에 깊은 영향을 준 그리스도교 주교이자 사상가다.
- 후한 말·삼국 시대의 전쟁한 제국이 반란과 내전 속에 위·촉·오 세 나라로 갈라졌다가 진(晉)이 다시 통일하기까지 이어진 한 세기(184~280)의 전쟁.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