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아주 먼 옛날, 지금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땅에 살던 사람들은 신과 세상의 좋은 힘들에게 노래를 바쳤어요. 그 노래 가운데 일부는 차라투스트라라는 스승이 지었다고 해요. 오늘날 많은 사람은 그를 조로아스터라고 불러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조로아스터교도라고 하고, 그들의 경전이 바로 아베스타예요.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아베스타를 글로 적지 않았어요. 사제들은 아주 긴 노래를 외우듯이 모든 낱말을 외웠고, 그것을 자녀와 제자들에게 가르쳤어요. 소리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내려고 무척 애썼는데, 말 자체가 거룩하고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아베스타에서 가장 특별한 부분은 ‘가타’라고 부르는 열일곱 편의 노래예요.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차라투스트라가 직접 이 노래들을 지었다고 믿어요. 가타는 진리와 거짓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 그리고 ‘지혜로운 주님’이라는 뜻의 아후라 마즈다라는 지혜롭고 선한 신에 대해 이야기해요.
아베스타의 다른 부분에는 물, 해, 달의 정령처럼 아후라 마즈다를 돕는 존재들에게 바치는 찬가와, 사람과 불, 물, 땅을 깨끗하게 지키는 규칙이 들어 있어요. 조로아스터교 가족들이 지금도 집과 불의 신전에서 외우는 짧은 기도문도 있어요.
약 1,500년 전쯤 사제들은 아베스타의 소리를 정확하게 적으려고 특별한 글자를 만들었어요. 나중에 책의 많은 부분이 사라졌지만, 기도에 쓰이던 부분은 사람들이 날마다 외웠기 때문에 살아남았어요. 이란과 인도의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지금도 아베스타를 사용해요.
한눈에 보기
- 성격
- 조로아스터교 경전 모음. 대부분 예배에서 낭송하는 전례문
- 언어
- 아베스타어. 고대 이란어의 하나로 고(古)아베스타어와 신(新)아베스타어 두 층으로 나뉨
- 성립
- 구전으로 성립. 고아베스타어 문헌은 대략 기원전 1500–900년(많은 학자가 기원전 1000년 무렵을 선호), 신아베스타어 문헌은 대략 기원전 900–400년으로 추정 — 모두 논쟁 중
- 문자화
- 사산 왕조 시대. 아베스타 문자는 4세기 무렵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고, 21권(나스크)으로 된 방대한 문자본은 대개 5–6세기로 봄
- 현존 구성
- 야스나(72장, 가타 포함), 비스페라드, 벤디다드(22장), 야시트 21편, 호르데 아베스타(‘작은 아베스타’, 일상 기도서)
- 가장 오래된 필사본
- 14세기 초(연대가 적힌 가장 오래된 사본은 1323년). 현존 필사본 대부분은 17세기 이후
- 전승 공동체
-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도(야즈드·케르만 등), 인도의 파르시, 세계 각지의 디아스포라
- 지도 위치
- 이란 야즈드 — 문헌 자체에는 하나의 성립지가 없으므로, 이란 조로아스터교 공동체의 역사적 중심지를 대표 장소로 삼음
쉬움
아베스타란 무엇인가
아베스타는 오늘날에도 믿는 사람이 있는 가장 오래된 종교 가운데 하나인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현대 소설처럼 한 작가가 한 시기에 쓴 한 권의 책이 아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지어지고 사제 공동체가 보존해 온 기도문, 찬가, 의례문, 종교법의 모음이다.
경전의 언어는 아베스타어다. 일상어로서는 이미 2천 년도 더 전에 쓰이지 않게 된 고대 이란어다. 가장 오래된 부분은 페르세폴리스 등에 새겨진 아케메네스 왕들의 고대 페르시아어 비문보다도 오래되었다. 그래서 아베스타는 고대 이란어 시기에서 살아남은 가장 큰 문헌 덩어리다.
현존하는 부분은 대부분 전례문, 곧 사제가 의식에서 소리 내어 낭송하거나 신자들이 날마다 기도할 때 외는 말이다. 이것이 아베스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아베스타는 도서관의 책으로서보다 예배에서 대대로 되풀이된 살아 있는 목소리로서 살아남았다.
아베스타는 지금도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도, 인도의 파르시 공동체, 그리고 여러 나라에 정착한 조로아스터교도들이 사용한다. 그들에게 아베스타는 말 자체에 영적인 힘이 깃든 거룩한 경전이다. 역사학자와 언어학자에게는 고대 이란과 중앙아시아의 종교·사회·언어를 들여다보는 귀중한 창이기도 하다.
쉬움
차라투스트라와 조로아스터교 신앙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차라투스트라(그리스어와 이후 유럽어로는 조로아스터)를 자신들 종교의 예언자로 공경한다. 전통에 따르면 그는 ‘지혜로운 주님’ 아후라 마즈다에게서 계시를 받고, 진리를 따르고 거짓을 물리치며 선한 창조물을 돌보라고 가르쳤다. 전승 이야기에서는 비슈타스파 왕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널리 퍼뜨리는 후원자가 되었다고 한다.
신앙의 중심에는 세상이 선과 악이 다투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다. 아후라 마즈다는 모든 좋은 것의 창조주이고, 그에 맞서는 것은 파괴의 영 앙그라 마이뉴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편을 도울지 자유롭게 선택하며, 좋은 선택은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이 세 가지는 조로아스터교 가르침의 유명한 표어다.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아베스타에서 가장 오래된 찬가인 가타를 차라투스트라가 직접 지었다고 믿는다. 많은 현대 학자도 가타가 한 시인 또는 한 집단에서 나왔으며 아베스타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라는 데 동의한다. 뒤의 심화 부분에서 보듯 더 신중한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가타가 이후 전통 전체의 토대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살아 있는 종교이므로, 연대와 저자에 관한 물음은 학문적 물음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답이 신자들에게 아베스타가 지니는 의미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신자들에게 아베스타는 집과 불의 신전에서 낭송하는 신앙의 말씀이다.
쉬움
아베스타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
오늘날 전하는 아베스타는 보통 몇 개의 큰 부분으로 설명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야스나다. 조로아스터교의 중심 예배인 ‘야스나’ 의식에서 낭송하는 72장짜리 문헌이다. 야스나 한가운데에는 가장 오래된 부분인 다섯 편의 가타와 ‘일곱 장의 예배’라는 뜻의 짧은 산문 야스나 합탕하이티가 놓여 있다.
비스페라드(‘모든 주인들’이라는 뜻)는 짧은 24개 절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단독으로 낭송하지 않고, 그 조각들을 야스나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더 길고 장엄한 의식을 만든다. 벤디다드는 파르가르드라고 부르는 22장으로 되어 있다. 창조 이야기, 최초의 왕 이마의 전설, 그리고 정결·질병·죽음과 불·물·땅·동물을 돌보는 일에 관한 많은 규칙이 담겨 있다.
야시트는 야자타(‘경배받을 만한 존재’)라고 부르는 특정한 신적 존재들을 찬양하는 21편의 찬가다. 물, 해, 달, 계약과 진실의 수호자 미트라, 의로운 이들의 수호령 프라바시 등이 그 대상이다. 많은 야시트에는 이란의 옛 영웅과 전설적인 왕들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호르데 아베스타, 곧 ‘작은 아베스타’는 일상에서 쓰는 기도서다. 해·미트라·달·물·불을 찬양하는 니야예시, 하루의 다섯 때에 드리는 다섯 가흐, 한 달 서른 날을 맡은 신들에 대한 기원, 특별한 때에 쓰는 축복문 같은 짧은 기도문을 모았다. 이 모든 부분을 합치면 아베스타는 역사책이라기보다 예배의 책이다.
중급
가타: 가장 오래된 노래
가타는 모두 17편의 찬가를 담은 다섯 편의 시로, 야스나 안에 운율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아후나바이티 가타(야스나 28–34장)는 일곱 편, 우시타바이티 가타(43–46장)는 네 편, 스펜타마이뉴 가타(47–50장)는 네 편, 보후흐샤트라 가타(51장)와 바히슈토이슈티 가타(53장)는 각각 한 편이다. 모두 238개 연이다. 첫째와 둘째 가타 사이에 있는 야스나 합탕하이티를 더해도 고아베스타어 문헌은 약 5,600단어에 불과하다.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친 전통의 핵심치고는 매우 작다.
가타의 언어는 드문 낱말과 복잡한 문법으로 가득한, 극도로 압축되고 암시적인 시다. 화자는 흔히 아후라 마즈다에게 직접 말을 걸어 묻고 인도를 구한다. 중심 개념으로는 아샤(진리, 올바른 질서)와 그 반대인 드루즈(거짓, 기만), 모든 사람이 둘 사이에서 해야 하는 자유로운 선택, 그리고 ‘좋은 생각’(보후 마나)과 ‘진리’처럼 아후라 마즈다와 연결된 ‘은혜로운’ 힘들이 있다. 이 힘들은 후대 전통에서 아메샤 스펜타, 곧 ‘은혜로운 불멸자들’로 발전했다.
가타는 다에바를 숭배하는 자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더 오래된 인도·이란 종교에서 다에바는 신의 한 부류였지만, 가타에서는 거짓 신으로 배척되고 후대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악마가 되었다. 이 변화는 가타 문헌에 의도적인 종교 개혁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가장 뚜렷한 표시 가운데 하나다.
가타 바로 앞 야스나 27장에는 조로아스터교에서 가장 거룩한 네 개의 짧은 기도문(만트라)이 있는데, 이것도 고아베스타어다. 그중 으뜸은 21단어로 된 아후나 바이리야로, 신자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이를 왼다. 그 정확한 뜻은 번역하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구문이 워낙 압축되어 있어 옛 번역자와 현대 번역자 모두 서로 꽤 다르게 이해해 왔다. 신자들에게 그 힘은 하나로 고정된 번역보다 충실한 낭송에 있다.
중급
신아베스타: 찬가, 신화, 법
현존 아베스타의 대부분은 후대 형태의 언어인 신아베스타어로 되어 있다. 고아베스타어와 신아베스타어는 단순한 조상과 후손의 관계가 아니다. 시대 차이뿐 아니라 방언 차이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학자들은 둘을 한 언어의 변종으로 다룬다. 신아베스타어 문헌은 가타보다 양이 많고 내용이 다양하며 문구도 덜 엄격하게 고정되어 있다.
신아베스타는 더 오래된 전통을 흡수하며 자라난 종교의 모습을 보여 준다. 가타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던 미트라, 물의 여신(아레드비 수라 아나히타), 신성한 식물 하오마 같은 존재들이 긴 찬가를 받는다. 몇몇 야시트는 용을 무찌른 영웅, 서로 다투는 왕들, 그리고 합당한 통치자에게서 합당한 통치자에게로 옮겨 가는 왕의 ‘영광’(흐바레나)에 관한 영웅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 인물들 가운데 다수는 천 년도 더 지나 페르시아 서사시, 특히 피르다우시의 『샤나메』에 모습을 바꾸어 다시 등장한다.
신아베스타어 문헌에는 동부 이란 세계의 실제 지명도 나온다. 시스탄, 헤라트, 메르브, 박트리아 주변(오늘날 이란·아프가니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들이다. 예컨대 벤디다드 첫 장은 아후라 마즈다가 창조한 열여섯 땅과 앙그라 마이뉴가 각 땅에 맞세운 재앙을 나열한다. 반면 고아베스타어 문헌에는 확인할 수 있는 지명이 전혀 없다. 어느 층에도 메디아인이나 페르시아인 같은 서부 이란 민족은 나오지 않는다.
벤디다드는 특별히 다룰 만하다. 이름은 ‘다에바에 맞서는 법’이라는 뜻의 아베스타어 표현에서 왔다. 대부분 차라투스트라가 아후라 마즈다에게 묻고 답을 듣는 대화 형식이다. 선한 창조물을 오염, 특히 죽음과의 접촉에서 보호하는 규칙을 제시하며, 개와 물과 불을 돌보는 일에 놀라울 만큼 관심을 기울인다. 사산 왕조의 대편찬본 가운데 온전히 살아남은 유일한 권이다.
중급
의례 속에 살아 있는 문헌
아베스타를 이해하려면 야스나 의식을 떠올려 보면 좋다. 훈련받은 사제가 보조 사제와 함께 축성된 불 앞에서 72장을 모두 낭송하며, 식물로 만든 신성한 음료 하오마와 물을 준비해 바친다. 전체 낭송에는 두 시간쯤 걸리며 보통 아침에 거행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이해에 따르면 그 목적은 파괴의 세력이 공격해 오는 데 맞서 아후라 마즈다의 선한 영적·물질적 창조를 굳건하게 하는 것이다. 의식은 물에 바치는 봉헌인 아브조흐르로 끝난다.
더 긴 의식에서는 비스페라드를, 밤에는 벤디다드를 야스나와 엮어 낭송한다. 오늘날 인도에서만 거행되는 벤디다드 야간 의식은 법의 책조차 거룩한 낭송으로 쓰였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현대 학자들은 현존 아베스타를 잃어버린 도서관의 우연한 잔해가 아니라 ‘의례의 텍스트’로 설명하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아베스타는 일상생활도 빚는다. 입문 의식을 치른 조로아스터교도는 누구나 신성한 속옷(수드레)과 신성한 끈 쿠스티를 착용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아베스타 기도문을 외면서 쿠스티를 허리에 다시 맨다. 전통적으로 쿠스티는 72가닥 실로 짜는데, 이는 야스나의 72장과 짝을 이룬다. 아후나 바이리야와 아샤를 찬양하는 아솀 보후 같은 짧은 기도문은 조로아스터교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에 속한다.
낭송은 정확해야 한다. 조로아스터교 사상에서 거룩한 말(만트라)은 올바른 소리와 억양으로 말할 때 효력이 있다. 소리의 정확성에 대한 이런 관심 때문에 아베스타는 그토록 오랫동안 구전으로 보존되었고, 뒤에서 보듯 결국 이를 적기 위한 특별한 문자가 만들어졌다.
중급
기억에서 필사본으로: 아베스타가 글로 적히기까지
여러 세기 동안 아베스타는 사제들의 기억 속에만 있었다. 학자들은 고아베스타어 문헌이 아주 일찍 문구가 고정된 반면, 신아베스타어 자료는 한동안 유동적이어서 세대마다 조금씩 손질할 수 있었다고 본다. 신아베스타어 문헌도 조로아스터교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정치적 비중을 얻은 아케메네스 시대 무렵에는 고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 페르시아어 문헌에 전하는 후대 조로아스터교 전승에 따르면, 오래전에 완전한 문자본 아베스타가 있었으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란을 정복할 때 파괴되었고, 뒤의 왕들이 흩어진 조각을 모았다고 한다. 현대 역사가들은 이 이야기를 신중하게 다룬다. 그것은 상실과 복원에 대한 공동체의 기억을 표현하지만, 고대에 문자본 아베스타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으며 대부분의 학자는 훨씬 뒤까지 구전으로 전해졌다고 본다.
결정적 전환은 조로아스터교를 후원한 이슬람 이전 마지막 이란 대제국, 사산 왕조(224–651) 때 일어났다. 사제들은 중세 페르시아어를 적던 팔라비 문자를 바탕으로 아베스타 문자를 만들었는데, 이를 크게 확장했다. 팔라비 문자가 많아야 22자에 모호한 글자가 섞여 있었던 데 비해 아베스타 문자는 모음을 따로 적는 글자를 포함해 53자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이 문자는 낭송의 소리를 고대의 다른 문자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정밀함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흔히 4세기, 아마도 샤푸르 2세 때로 보지만, 최초의 문자본 아베스타를 5–6세기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산 아베스타는 21개 나스크(권)로 짜인 방대한 저작이었다. 21이라는 수는 아후나 바이리야 기도문의 21단어에 맞춘 것이다. 여기에는 중세 페르시아어 번역·주석인 잔드가 딸려 있었다. 아랍의 정복으로 651년 사산 왕조가 무너진 뒤 조로아스터교 공동체는 점차 소수가 되었고, 이 편찬본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 내용은 주로 9–10세기 중세 페르시아어 백과사전 『덴카르드』의 요약을 통해 알려져 있다.
중급
필사본, 파르시, 그리고 유럽의 발견
상실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은 주로 사제들이 의례와 기도에 필요로 한 문헌으로, 손으로 거듭 베껴 쓴 것이다. 연대가 적힌 가장 오래된 현존 필사본은 1323년의 것이며, 오늘날 목록에 오른 300여 점의 필사본 대부분은 17세기 이후에 필사되었다. 가장 오래된 찬가가 지어진 때와 가장 오래된 필사본 사이에는 2천 년이 훨씬 넘는 간격이 있는 셈이다.
필사본은 크게 두 공동체에서 베껴졌다. 이란에 남은 조로아스터교도, 특히 야즈드와 케르만 일대의 공동체, 그리고 이슬람 정복 뒤 인도 서부 구자라트에 정착한 조로아스터교도의 후손인 파르시다. 학자들은 필사본을 용도(야스나·비스페라드·벤디다드 전례), 출처(이란계·인도계), 유형으로 나눈다. ‘사데’(‘순수한’)본은 낭송용 아베스타 본문만 담고, 다른 사본들은 중세 페르시아어 번역을 덧붙인다.
유럽은 프랑스 학자 아브라함 이아생트 앙크틸뒤페롱을 통해 아베스타를 알게 되었다. 그는 1755년 인도로 떠나 1758년 수라트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파르시 사제들, 특히 다랍이라는 사제에게 페르시아어를 매개로 그들이 아는 만큼의 언어와 종교를 배웠다. 1762년 그는 필사본 약 180점을 파리 왕립도서관에 맡겼고, 1771년 세 권짜리 프랑스어 번역 『젠드아베스타』를 펴냈다.
반응은 격렬했다. 훗날 인도유럽어 비교언어학의 선구자로 이름을 떨칠 젊은 윌리엄 존스는 같은 해 소책자를 내어 이 작업을 위작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러나 비교 연구로 아베스타어가 산스크리트어와 얼마나 가까운지 밝혀지면서 문헌의 진정성은 결국 인정되었다. 옛 책들은 이 언어를 ‘젠드어’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는 오해다. 잔드는 아베스타 본문이 아니라 중세 페르시아어 주석을 가리킨다.
중급
영향과 유산
조로아스터교 안에서 아베스타는 여전히 예배의 심장이다. 사제들은 지금도 아베스타를 외워 낭송하도록 훈련받고, 가정에서는 호르데 아베스타로 기도하며, 야즈드의 아타시 베흐람 같은 불의 신전은 아베스타 문헌을 중심으로 한 의식을 이어 간다. 정복과 소수자의 처지, 이주를 견뎌 온 공동체에게 이 말들을 끊임없이 낭송하는 일은 정체성을 잇는 강한 끈이다.
언어학에서 아베스타는 인도유럽어족의 인도·이란어파를 재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였다. 고아베스타어와 『리그베다』의 베다 산스크리트어는 규칙적인 음운 법칙으로 한 구절 전체를 다른 쪽으로 옮길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아베스타어 하오마와 베다어 소마, 아샤와 베다의 개념 르타(ṛta), 다에바와 데바, 아후라와 아수라 같은 공통 어휘는 공통의 유산을 드러낸다. 동시에 두 전통은 이 가운데 일부 낱말에 정반대의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종교사에서 아베스타는 많은 학자가 후대 전통과 비교해 온 관념들, 곧 유일한 최고 선신이자 창조주, 선과 악의 우주적 투쟁, 개인의 도덕적 선택, 죽은 뒤의 개인 심판, 세상의 최종 갱신에 대한 핵심 자료다. 이런 관념이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 어느 정도, 어떤 경로로 영향을 주었는지는 논쟁 중이며, 아베스타는 그 논쟁의 중심 증거다.
더 넓은 이란 문화에서는 이마, 용을 무찌른 영웅들, 카얀 왕조의 왕들 같은 신아베스타의 전설이 중세 페르시아어 문학을 거쳐 페르시아 민족 서사시로 흘러들었다. 현대 이란 민족주의와 유럽 사상(차라투스트라라는 인물을 매우 자유롭게 문학적으로 빌려 쓴 니체를 포함해)도 아베스타에 기대었는데, 때로는 문헌 자체와 동떨어진 방식이었다.
심화
차라투스트라와 고아베스타어 문헌의 연대
아베스타에는 절대 연대가 없고 연대를 알 수 있는 역사상의 왕도 나오지 않으므로, 모든 연대기는 추론이다. 중세 조로아스터교 문헌은 차라투스트라를 ‘알렉산드로스보다 258년 전’, 곧 기원전 7–6세기에 둔다. 비판적 학계는 대체로 이 숫자를 소급 계산으로 본다. 셀레우코스 왕조가 알렉산드로스를 기점으로 하는 기년법을 도입하자,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 세대를 거슬러 계산해 ‘조로아스터 기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편 그리스 저자들은 조로아스터를 크세르크세스보다 6,000년 앞선 인물로 터무니없이 이르게 놓았는데, 3,000년 단위의 조로아스터교 세계 시대를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의 주된 논거는 언어학이다. 고아베스타어는 형태론적으로 매우 고풍스럽고, 대개 기원전 2천년기 후반으로 보는 『리그베다』의 언어와 매우 닮았다. 고아베스타어와 신아베스타어 사이의 거리는 몇 세기를 뜻한다. 가타에 반영된 물질문화 — 도시가 없는 목축 사회, 서부 이란 민족이나 아케메네스 제국에 대한 언급의 부재 — 도 이른 연대와 동부 무대에 더 잘 맞는다. 이를 근거로 많은 학자가 가타를 대략 기원전 1500–900년이라는 넓은 범위 안에서 기원전 1000년 무렵에 둔다.
소수의 학자는 기원전 7–6세기의 늦은 연대를 주장하며, 가타의 후원자 비슈타스파를 다리우스 1세의 아버지 히스타스페스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비판자들은 그 이름이 흔했고, 아베스타가 아케메네스 왕조를 전혀 알지 못하며, 고대 페르시아어와의 언어적 거리가 크다고 반박한다. 차라투스트라의 활동지도 논쟁 중이다. 박트리아, 시스탄, 호라즘, 청동기 시대 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와 관련된 지역 등이 제안되며, 메디아 출생설 같은 중세의 주장은 대부분의 학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 장 켈런스와 프로드스 오크토르 셰르뵈 같은 학자들은 가타를 역사적 예언자 개인의 작품으로 읽을 수 있는지 자체를 의문시하며, 문헌 속 ‘차라투스트라’를 부분적으로 의례적·시적 인격으로 본다. 헬무트 훔바흐처럼 가타의 의례적 성격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차라투스트라에게서 나왔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이 논쟁은 일반적인 한 가지를 보여 준다. 전통은 일관된 전기를 제시하지만, 비판적 학문은 개연성 있는 언어·문화적 배경만을 재구할 수 있다.
심화
교감본, 원형(archetype), 그리고 ‘전례적 전환’
아베스타의 비판적 교감은 19세기에 시작되었다. 닐스 루드비 베스테르고르는 라스무스 라스크가 수집한 필사본을 바탕으로 1852년 첫 교감본을 냈고, 프리드리히 폰 슈피겔은 중세 페르시아어 번역을 포함한 판본을 만들었다. 표준 교감본은 지금도 카를 프리드리히 겔트너의 판본(1886–1896)으로, 133점의 필사본을 바탕으로 야스나·비스페라드·벤디다드·호르데 아베스타를 다룬다. 크리스티안 바르톨로메의 사전 덕분에 1910년 프리츠 볼프의 독일어 번역이 나왔고, 이는 제임스 다르메스테테르의 번역 같은 이전 번역을 대체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학자들은 본문의 이상한 점들을 ‘아르사케스(파르티아) 원형’으로 설명하려 했다. 파르티아 시대에 모호한 문자로 적힌 아베스타가 있었고, 사산 시대 필경사들이 이를 불완전하게 옮겨 적었다는 가설이다. 1950년대에 카를 호프만은 이 모델을 뒤집었다. 그는 많은 불규칙성이 구전 과정의 변화, 곧 낭송 습관, 전통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 가며 받은 다른 이란어의 영향, 낭송자 자신들의 아베스타어 음운 변화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점에서 사산 시대 문자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소리가 아니라 사산 시대에 낭송되던 아베스타를 충실히 기록한 것이다.
이 결론은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겔트너의 방법으로 만든 교감본은 사산 원형에 가까운 것을 재구하는데, 그것조차 가타보다 천 년 넘게 늦다. 그 뒤에는 추론만 가능한 구전의 역사가 있다. 장 켈런스와 알베르토 칸테라 같은 학자들은 현존 아베스타가 본질적으로 전례문의 모음이라는 점을 더욱 강조해 왔다. 예컨대 칸테라의 벤디다드 연구는 그 의례적 사용이 이슬람 시대의 늦은 혁신이라는 옛 견해에 도전하며, 그 구조가 전례 수행과 묶여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사업들은 이 ‘전례적 전환’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아베스타 디지털 아카이브(ADA)는 150점이 넘는 필사본을 디지털화해 상당수를 온라인에 공개했고, 코르푸스 아베스티쿰 베롤리넨세(CAB)는 이상화된 원본을 뽑아내는 대신 실제 의식의 필사본에 나타나는 형태 그대로 본문을 교감한다. 문자가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와 장소, 21나스크 사산 편찬본과 현존 전례문의 관계, 문법은 확실하지만 의미는 자주 논쟁이 되는 가타 시의 번역 방법 등은 여전히 열린 문제다.
핵심 개념
- 아샤와 드루즈
- 아샤는 진리, 올바른 질서, 마땅히 그래야 할 존재 방식이고, 드루즈는 이에 맞서는 거짓·기만이다. 이 대립은 가타에서 벤디다드까지 아베스타 전체를 관통한다.
- 자유로운 선택
- 가타는 모든 사람이 진리와 거짓 사이에서 선택한다고 말한다. 후대 조로아스터교는 올바른 선택을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으로 요약한다.
- 아후라 마즈다와 앙그라 마이뉴
- 지혜로운 주님 아후라 마즈다는 모든 좋은 것의 창조주이고, 앙그라 마이뉴는 파괴의 영이다. 인간은 그 투쟁에서 선한 창조를 돕도록 부름받는다.
- 거룩한 말(만트라)
- 아베스타의 말은 올바르게 낭송할 때 효력이 있다고 믿어진다. 이 믿음이 수 세기에 걸친 세심한 구전과 정밀한 문자의 발명을 설명한다.
- 창조의 정결
- 불, 물, 땅, 식물, 동물, 사람은 오염, 특히 죽음으로부터 지켜야 할 선한 창조물이다. 벤디다드는 이 생각을 자세한 규칙으로 만든다.
- 도서관이 아닌 전례
- 현존 아베스타는 주로 예배에 필요했던 부분이다. 현대 학계는 이를 잃어버린 책의 잔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의례의 텍스트로 읽는다.
- 언어의 두 층
- 고아베스타어(가타, 야스나 합탕하이티, 거룩한 기도문)와 신아베스타어(나머지 대부분)는 문법과 시대가 달라, 전통의 역사를 재구하는 실마리가 된다.
기록
- 약 기원전 1000년 — 고아베스타어 문헌(가타, 야스나 합탕하이티)이 성립했을 것으로 보는 시기. 많은 학자가 대략 기원전 1500–900년 범위에서 기원전 1000년 무렵을 선호한다. 조로아스터교 전통은 차라투스트라의 연대를 달리 본다.
- 약 기원전 800년 — 동부 이란 세계에서 신아베스타어 문헌이 구전으로 지어지기 시작한다(대략 기원전 900–400년).
- 약 기원전 500년 — 아케메네스 시대. 조로아스터교가 정치적 비중을 얻고, 이 무렵 신아베스타어 문헌도 고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 약 350년 — 사산 시대. 아마도 샤푸르 2세(재위 309–379) 때 아베스타 문자가 만들어진다. 최초의 문자본을 더 늦게 보는 학자도 있다.
- 약 550년 — 중세 페르시아어 주석(잔드)을 갖춘 21나스크의 사산 아베스타. 대개 5–6세기로 본다.
- 651년 — 아랍의 정복으로 사산 제국이 무너진다.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사산 아베스타의 대부분이 사라진다.
- 약 900년 — 중세 페르시아어 백과사전 『덴카르드』가 21나스크의 내용을 요약한다.
- 1323년 — 연대가 적힌 가장 오래된 현존 아베스타 필사본.
- 1762년 — 앙크틸뒤페롱이 인도에서 얻은 필사본 약 180점을 파리 왕립도서관에 맡긴다.
- 1771년 — 앙크틸뒤페롱이 유럽 최초의 번역 『젠드아베스타』 세 권을 펴낸다.
- 1852년 — 닐스 루드비 베스테르고르가 아베스타 문헌의 첫 비판 교감본을 낸다.
- 1886년 — 카를 프리드리히 겔트너가 교감본(1886–1896) 간행을 시작한다. 지금도 학계의 표준 본문이다.
용어 풀이
- 아베스타어
- 아베스타의 고대 이란어. 오래된 형태(고아베스타어)와 후대 형태(신아베스타어)로 전한다.
- 가타
- 야스나 안에 있는 고아베스타어 시 다섯 편(찬가 17편). 전통적으로 차라투스트라가 지었다고 본다.
- 야스나
- 조로아스터교의 중심 예배, 그리고 그 의식에서 낭송하는 72장짜리 문헌.
- 벤디다드
- 창조·정결·종교법을 다룬 22장의 신아베스타어 문헌. 사산 아베스타 가운데 온전히 전하는 유일한 권.
- 야시트
- 특정 신적 존재를 찬양하는 찬가. 아베스타에는 21편의 야시트 모음이 있다.
- 야자타
- ‘경배받을 만한 존재’. 미트라나 물처럼 조로아스터교 예배에서 공경받는 신적 존재.
- 나스크
- 사산 시대 문자본 아베스타를 나눈 21권의 각 권.
- 잔드
- 아베스타의 중세 페르시아어 번역·주석. 아베스타어를 ‘젠드어’라고 잘못 부르게 된 기원이다.
- 아후나 바이리야
- 조로아스터교에서 가장 거룩한 기도문. 야스나 27.13에 있는 21단어의 고아베스타어 연.
- 쿠스티
- 입문한 조로아스터교도가 허리에 매는 신성한 끈. 전통적으로 72가닥 실로 짜며, 아베스타 기도문을 외며 맨다.
- 파르시
- 인도의 조로아스터교도. 이슬람의 이란 정복 뒤 구자라트로 이주한 이란 조로아스터교도의 후손.
묻고 답하기
차라투스트라가 아베스타를 썼나요?
글로 적었다는 뜻이라면 아니다. 조로아스터교 전통은 그가 가장 오래된 찬가인 가타를 지었다고 보며, 나머지는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지어졌다. 문헌은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천 년도 더 지난 사산 시대에야 글로 적혔다.
왜 글로 적지 않고 외웠나요?
고대 이란에서는 거룩한 말이 올바른 낭송을 통해 힘을 낸다고 여겼고, 사제 학교는 바로 그 목적으로 기억력을 훈련했다. 또 사산 사제들이 문자를 만들기 전에는 아베스타어의 소리를 적기에 알맞은 문자가 없었다.
아베스타가 지금 모두 남아 있나요?
아니다. 21권으로 된 사산 편찬본은 현존하는 것보다 훨씬 컸다. 예배에서 늘 쓰던 부분은 살아남았고, 나머지 상당수는 『덴카르드』 같은 후대 요약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다.
아베스타는 『리그베다』와 관련이 있나요?
언어가 가까운 친척이다. 고아베스타어와 베다 산스크리트어는 공통의 인도·이란 조어에서 갈라져 나왔고 많은 낱말과 시 형식을 공유한다. 다만 두 종교는 다르게 발전했고, 다에바와 데바처럼 일부 공통 용어는 정반대의 가치를 띠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필사본은 왜 이렇게 늦나요?
필사본은 날마다 의례에 쓰여 닳았고, 조로아스터교 공동체는 오랜 고난의 세월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연대가 적힌 가장 오래된 필사본은 1323년의 것이며, 문헌 자체는 끊임없는 필사와 무엇보다 낭송으로 보존되었다.
호프만의 이론은 무엇을 바꾸었나요?
카를 호프만은 본문의 불규칙성이 잃어버린 파르티아 시대 문자 원형을 베끼다 생긴 오류가 아니라, 구전과 후대 낭송자들의 발음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고 보였다. 그러므로 문자본 아베스타는 사산 시대의 낭송을 기록한 것이며, 이는 교감에서 핵심적인 점이다.
조로아스터교도가 아닌 사람도 아베스타를 읽을 수 있나요?
그렇다. 교감본과 번역본으로 널리 연구된다. 공동체 안에서 의례 낭송은 훈련받은 사제의 몫이며, 많은 조로아스터교도는 이 문헌을 문학이기 전에 기도로 대한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Avesta. Wikipedia
- Gathas. Wikipedia
- Zoroaster. Wikipedia
- Avestan. Wikipedia
- Avestan alphabet. Wikipedia
- Yasna. Wikipedia
- Vendidad. Wikipedia
- Ahuna Vairya. Wikipedia
- Abraham Hyacinthe Anquetil-Duperron. Wikipedia
- 아베스타. 위키백과
함께 보기
- 리그베다베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가장 오래된 찬가 모음. 글로 적히기 전 수백 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 페르세폴리스이란 남서부에 있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의례·행정 중심지로, 다리우스 1세 때 건설이 시작되었다.
- 키루스 원통기원전 539년 키루스 대왕이 바빌론을 정복한 뒤 바빌로니아 쐐기 문자로 새긴 점토 기초 원통으로, 그를 마르두크 신이 고른 정의로운 왕으로 내세운다.
- 샤나메페르도시가 이란의 전설적 왕들과 역사적 과거를 노래한 페르시아어 서사시다.
- 초기 우파니샤드자아(아트만)란 무엇이며 궁극적 실재(브라만)와 어떤 관계인지 묻는 문헌. 이후 인도 철학의 토대가 되었다.
- 고타마 싯다르타 (붓다)불교의 창시자. 갠지스 평원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다. 생몰 연대는 학설이 나뉜다.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