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켈스의 서

Codex Cenannensis (라틴어), Leabhar Cheanannais (아일랜드어),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MS A. I. [58]

약 750–850년 ·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아이오나·켈스의 콜룸바 수도회 제작)

한 문장으로

『켈스의 서』는 800년 무렵 아일랜드 또는 스코틀랜드의 콜룸바 수도회 수도사들이 만든 화려한 채색 라틴어 복음서로, 초기 중세 브리튼·아일랜드 책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켈스의 서
이미지: Unknown author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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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인쇄기가 생기기 훨씬 전에는 모든 책을 손으로 써야 했어요. 약 1,200년 전, 브리튼과 아일랜드 섬의 수도사들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종이에 깃털 펜으로 몇 년씩 거룩한 책을 베껴 썼어요.

『켈스의 서』는 그런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해요. 예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리스도교 성경의 네 복음서가 들어 있어요. 당시 교회의 말인 라틴어로 쓰였지요.

이 책이 특별한 까닭은 그림이에요. 거의 모든 쪽에 빨강, 노랑, 초록, 보라로 칠한 글자와 작은 동물, 꼬인 매듭, 소용돌이무늬가 있어요. 어떤 쪽은 장식이 너무 빽빽해서 글자를 찾기도 어려워요.

자세히 보면 숨은 그림도 찾을 수 있어요. 고양이와 쥐, 공작, 사자, 뱀, 천사가 숨어 있지요. 어떤 무늬는 너무 작고 정확해서, 옛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천사가 만든 것 같다고 했어요.

책 이름은 수백 년 동안 이 책을 간직한 아일랜드의 켈스 수도원에서 따왔어요. 책은 바이킹이 수도사들을 공격하던 스코틀랜드의 아이오나섬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몰라요. 천 년쯤 전에는 도둑들이 금으로 된 표지를 노리고 책을 훔쳐 가 버렸는데, 나중에 흙더미 밑에서 책을 찾았어요.

지금 『켈스의 서』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 있어요. 네 권으로 나뉘어 묶여 있고, 방문객은 유리 너머로 한 번에 두 쪽씩 볼 수 있어요.

한눈에 보기

무엇
라틴어 채색 복음서. 네 복음서와 서문·요약·대조표(캐넌 테이블)
연대
800년 무렵(양식과 서체로 추정, 조금 더 이르게 보는 학자도 있다)
만든 이
성 콜룸바(콜룸킬레) 수도회의 수도사들. 아이오나에서 시작해 켈스에서 이어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나 장소는 논쟁 중
크기
벨럼 340장(680쪽), 약 330×250mm로 재단됨. 1953년부터 네 권으로 제본
서체
인슐라 대문자체. 최소 세 명의 필경사
그림
유명한 키로(Chi Rho) 면, 성모자, 그리스도와 복음서 저자 초상 등 전면 그림 10점
소장
1661년부터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올드 라이브러리)
등재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쉬움

『켈스의 서』는 어떤 책인가

『켈스의 서』는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 곧 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 복음서를 라틴어로 손수 쓰고 그림을 그려 넣은 책이다. 이런 책을 복음서(가스펠 북)라 하고, 물감으로 장식한 필사본은 색이 쪽을 환하게 밝히는 듯하다고 해서 ‘채식 필사본’이라 부른다.

800년 무렵 아일랜드 성인 콜룸바(콜룸킬레)가 세운 수도원 연결망에 속한 수도사들이 만들었다. 이름은 수백 년 동안 이 책을 간직한 아일랜드 미스주의 켈스 수도원에서 왔다. 1661년부터는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의 소유로, 올드 라이브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켈스의 서』는 초기 중세 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양식인 ‘인슐라 미술’의 정점이자 서양 캘리그래피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같은 시대의 복음서 가운데 이만큼 빈틈없이, 대담하게 장식된 것은 남아 있지 않다.

[1][2][3]

쉬움

책 속에는 무엇이 있나

지금 필사본은 340장(폴리오)으로, 앞뒷면을 합치면 680쪽이다. 마태오·마르코·루카 복음서 전문과 요한 복음서 17장 13절까지가 들어 있고, 요한 복음서 끝부분과 몇몇 쪽은 사라졌다. 복음서 앞에는 히브리 이름 목록, 에우세비우스의 대조표, 복음서 요약(브레베스 카우사이), 복음서 저자들의 짧은 전기(아르구멘타)가 실려 있다.

복음서 본문은 대체로 4세기 말 히에로니무스가 번역한 라틴어 성경 ‘불가타’를 따르지만, ‘베투스 라티나’라 불리는 더 오래된 라틴어 번역의 읽기도 섞여 있다. 필경사들은 때때로 기억에 의존해 쓴 듯하다. 유명한 실수도 있다. 마태오 10장 34절에서 ‘칼(gladium)’ 대신 ‘기쁨(gaudium)’이라고 써서, 예수가 평화뿐 아니라 기쁨을 주러 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되었다.

이 책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다. 어떤 쪽은 계획한 장식이 밑그림으로만 남아 있고, 학자들은 원래 약 370장이었으리라고 본다. 사라진 장의 상당수는 11세기 초 도둑들이 값비싼 표지를 뜯어낼 때 없어졌을 것이다.

[1]

쉬움

장식된 쪽을 읽는 법

33쪽은 장식이 쪽 전체를 덮을 만큼 화려하다. 그중 10쪽은 전면 그림이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네 복음서 저자의 상징을 그린 쪽, 마태오와 요한의 초상, 옥좌의 그리스도, 온통 무늬로만 채운 ‘카펫 면’ 한 쪽, 그리고 예수의 체포와 그리스도의 유혹 장면이다.

가장 유명한 쪽은 ‘키로(Chi Rho)’ 면(34r)이다. 중세 필경사들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그리스 문자의 첫 두 글자 키(X)와 로(P)로 줄여 썼다. 예수의 생애 이야기가 시작되는 마태오 1장 18절에서, 『켈스의 서』의 제작자들은 이 두 글자를 쪽 전체를 채우는 거대한 도안으로 바꾸었다. X는 긴 곡선 팔을 휘두르며 쪽을 가로지르고, 그 둘레는 소용돌이와 매듭으로 가득하다. X의 한 팔에서는 천사 셋이 솟아오르고, 무늬 사이에는 고양이와 쥐를 비롯한 작은 동물과 곤충이 숨어 있다.

각 복음서의 첫머리도 같은 대접을 받는다. 마태오 복음서는 ‘Liber generationis(족보의 책)’ 두 낱말로 시작하는데, 첫 글자들이 거대한 합자 문양으로 자라난다. 요한 복음서는 ‘In principio erat verbum verum(한처음에 참된 말씀이 계셨다)’으로 시작해, 일반 본문에 ‘참된(verum)’이라는 말을 더했다.

평범한 본문 쪽에도 작게 채색한 머리글자와 동물, 글자 모양으로 몸을 꼰 사람들이 살아 움직인다. 책 전체에서 색을 칠한 장식이 전혀 없는 쪽은 두 쪽뿐이다.

[1][4]

중급

콜룸바, 아이오나, 그리고 바이킹

563년 아일랜드 수도사 콜룸바는 열두 동료와 함께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작은 섬 아이오나로 건너가 수도원을 세웠다. 아이오나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흩어진 콜룸바 계열 수도원들의 중심이자 학문과 책 제작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아이오나의 수도사들은 또 하나의 인슐라 미술 중심지인 노섬브리아의 린디스판도 세웠다.

8세기 말부터 바이킹이 해안의 수도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이오나는 795년에 처음 습격을 받았고 802년, 806년, 825년에도 공격당했다. 806년 습격에서는 수도사 6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공동체는 아일랜드 켈스에 새 수도원을 지었는데, 807년에 시작해 814년 성당을 봉헌했다. 그래도 아이오나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콜룸바 수도회의 본원으로 남았고, 콜룸바의 성유물은 878년에야 아일랜드로 옮겨졌다.

이 사건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기원설의 배경이다. 곧 책은 어쩌면 콜룸바를 기리기 위해 아이오나에서 시작되었고, 공동체가 옮겨 갈 때 켈스로 가져가 이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부 아일랜드 학자는 콜룸바 서거(597) 200주년과, 다른 이들은 성유물 안치와 연결하지만 어느 것도 증명되지는 않았다.

[1][5][6]

중급

인슐라 미술: 양식의 뿌리

『켈스의 서』는 6세기 말부터 9세기 초까지 아일랜드와 브리튼의 수도원, 그리고 아일랜드·앵글로색슨 선교사들이 유럽 대륙에 세운 수도원에서 만든 필사본 무리에 속한다. 앞선 작품으로는 『성 콜룸바의 카탁』, 『더로의 서』(7세기 후반), 『린디스판 복음서』와 『리치필드 복음서』(8세기 초) 등이 있다. 장식이 완전히 무르익은 『켈스의 서』는 이 계열의 후반부에 온다.

인슐라 미술은 여러 전통을 합쳤다. 소용돌이, 세 갈래 소용돌이(트리스켈), 곡선 문양은 철기 시대 말기 켈트 미술에서, 서로 얽힌 동물 무늬는 주로 서튼 후에서 나온 것과 같은 게르만 금속 공예에서, 책의 형태와 아치로 둘러싼 대조표, 복음서 저자 초상은 지중해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왔다. 인슐라 화가들은 깊이나 원근을 표현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평면을 빽빽하고 힘찬 무늬로 덮었다.

스웨덴 미술사학자 칼 노르덴팔크는 인슐라 머리글자를 맥박 치듯 늘었다 줄었다 하는 탄력 있는 형태로, 그 에너지가 소용돌이로 빠져나가 새 곡선을 낳는다고 묘사했다. 『켈스의 서』에서 이 경향은 가장 극단에 이른다.

[4][1][7]

중급

책은 어떻게 만들었나

쪽은 송아지 가죽을 씻고 늘려 긁어 낸 고급 양피지, 벨럼이다. 가죽을 반으로 접어 두 장씩 만들고, 이를 포개 ‘콰이어’라는 묶음을 만들었다. 남아 있는 장들은 38개 콰이어를 이룬다. 글줄을 맞추려고 괘선을 그었고, 괘선용으로 뚫은 작은 바늘 자국이 지금도 몇몇 쪽에 보인다. 벨럼은 가죽처럼 두꺼운 것부터 비칠 만큼 얇은 것까지 두께가 고르지 않다.

본문은 크고 둥근 ‘인슐라 대문자체’로, 철·몰식자 잉크로 썼다. 미술사학자 프랑수아즈 앙리는 적어도 세 명의 필경사를 가려내 A, B, C라 불렀고, 네 번째 필경사도 제기되었다. 그녀는 또 세 명의 주요 화가를 구분했다. 금속 빛을 흉내 낸 색으로 키로 면을 그린 ‘금세공사’, 유혹과 체포 장면을 그린 ‘삽화가’, 그리스도와 복음서 저자를 그린 ‘초상화가’다. 제작에 참여한 사람은 열두 명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안료로는 붉은·노란 황토, 구리로 만든 초록, 비소 광물인 노란 웅황(오피먼트), 그리고 대청(워드)과 지의류(오르세인) 같은 식물에서 얻은 파랑과 보라가 쓰였다. 인슐라 필사본이 대개 그렇듯 금박이나 은박은 쓰지 않았다. 한때는 아프가니스탄산 청금석과 지중해의 뿔고둥 자주가 쓰였다고 여겼지만, 현대 분석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1][4]

중급

천 년을 살아남은 책

이 책에 대한 첫 언급으로 보이는 것은 『얼스터 연대기』의 1007년 항목(1006년이라고 하는 자료도 있다)이다. 여기에는 ‘서방 세계 으뜸의 성유물인 콜룸킬레의 위대한 복음서’가 장식된 성함 때문에 켈스의 큰 석조 성당에서 밤에 도둑맞았다고 적혀 있다. 책은 몇 달 뒤 보석 박힌 표지 없이 ‘흙더미 밑에서’ 발견되었다. 표지를 거칠게 뜯어낸 일 때문에 앞뒤의 장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12세기에는 수도원이 받은 토지 증여 문서가 책의 빈 쪽에 옮겨 적혔는데, 이는 그때 책이 켈스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다. 수도원이 해산되고 성당이 교구 성당이 된 뒤에도 책은 켈스에 남았다. 1654년 올리버 크롬웰의 기병대가 성당에 주둔하자 도시의 총독은 안전을 위해 책을 더블린으로 보냈다. 1661년 클로허 주교이자 더블린 대학 부총장인 헨리 존스가 이 책을 트리니티 칼리지에 기증했다.

후대의 소유자와 독자들도 흔적을 남겼다. 1568년 제럴드 플렁킷이 장 번호와 메모를 더했고, 1621년 학자 제임스 어셔는 344장을 셌으며, 19세기 재제본 때 여백이 잘려 일부 그림이 조금씩 손상되었다. 1953년 제본가 로저 파월이 필사본을 네 권으로 다시 묶었다. 지금은 올드 라이브러리에 늘 한 권이 두 쪽을 펼친 채 전시되며, 빛으로부터 보호하려고 1년에 몇 차례 쪽을 넘긴다.

[1][6][3]

중급

명성과 영향

이 책의 세계적 명성은 19세기에 시작되었다. 초기 아일랜드 그리스도교 문화와 민족적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고, 1849년에는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이 책에 서명했다. 그 도안은 켈트 부흥 운동의 자양분이 되어, 책에서 베낀 매듭·소용돌이·동물 무늬가 금속 공예, 자수, 가구, 도자기에 나타났고 지금도 아일랜드 디자인에서 사랑받는다.

복제본은 그 이미지를 더블린 밖으로 널리 퍼뜨렸다. 1951년 베른에서 첫 영인본이, 1974년 프랑수아즈 앙리의 해설을 곁들인 컬러판이, 1990년에는 쪽을 건드리지 않고 촬영하는 방법으로 만든 완전한 컬러 영인본이 나왔다. 지금은 트리니티 칼리지의 디지털 컬렉션에서 필사본 전체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2011년 유네스코는 이 책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톰 무어가 감독한 2009년 애니메이션 「켈스의 비밀」은 바이킹이 수도원을 위협하는 가운데 한 소년 수도사가 책의 완성을 돕는 이야기를 상상으로 그렸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1]

심화

어디서, 언제? 기원 논쟁

콜룸바가 직접 이 책을 썼다는 중세 전승은 서체와 양식을 근거로 오래전에 폐기되었다. 제작 연대나 제작자를 밝힌 간기(콜로폰)가 없기 때문에, 학자들은 주로 서체와 장식을 다른 필사본과 비교해 이 책을 인슐라 계열의 후반부, 8세기 말이나 9세기 초에 둔다.

제작 장소에 대해서는 적어도 네 가지 설이 있다. 아이오나에서 시작해 켈스에서 마쳤다는 설, 전부 아이오나에서 만들었다는 설, 전부 켈스에서 만들었다는 설, 그리고 던켈드 같은 스코틀랜드 동부 픽트족 지역의 수도원에서 만들었다는 설이다. 첫째 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다. 픽트 설은 직접 증거가 부족한데, 픽트 지역에서 전하는 필사본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이저벨 헨더슨 등이 픽트 미술과 이 책의 관련을 탐구했고, 식물성 파랑·보라 안료를 스코틀랜드 기원의 근거로 보는 이도 있다. 폴 메이바르트의 1989년 논문 「켈스의 서와 아이오나」는 이 논쟁의 중요한 기여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이 아이오나와 긴밀히 연결된 콜룸바 수도회 수도사들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미완성 상태는 흔히 바이킹 습격에 따른 혼란으로 설명되지만, 이는 기록된 사실이 아니라 추론이다.

[1][5][8]

심화

서가가 아니라 제대를 위한 책

여러 특징은 『켈스의 서』가 공부용이 아니라 보고 공경하기 위한 책이었음을 보여 준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복음서에서 찾게 해 주는 대조표는 쓸 수가 없다. 열두 쪽 분량을 열 쪽에 욱여넣었고, 이에 맞는 단락 번호를 복음서 본문에 끝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끼다 생긴 많은 실수도 고치지 않았고, 줄 끝에 남은 낱말을 윗줄 빈칸에 밀어 넣어 쪽의 모양을 해치지 않으려 했다.

연대기는 이 책을 도서실이 아니라 미사 도구를 두는 제의실에서 훔쳤다고 전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책이 제대 위에 놓여 행렬 때 운반되고, 미사의 복음 봉독 때 펼쳐졌으며, 봉독자는 대부분 외워서 읽었으리라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텍스트인 동시에 거룩한 물건, 나아가 콜룸바와 연결된 성유물이었다. 캐럴 파의 『켈스의 서: 그 기능과 청중』(1997)은 이 그림들이 수도사 관람자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탐구한다.

화려함도 여기서 설명된다. 그림과 장식에는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네 복음서 저자의 상징은 복음서의 일치를 강조하려고 거듭 함께 나타나고,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고대 저자들이 그 살이 썩지 않는다고 믿었던 공작은 그리스도와 부활을 상징한다.

[1][4][9]

심화

외딴 섬, 연결된 세계

『켈스의 서』는 초기 중세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고립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아일랜드는 로마 제국에 속한 적이 없지만 수도사들은 라틴어를 읽고 썼고, 지중해의 텍스트를 베꼈으며, 콥트·그리스 그리스도교 책에서도 볼 수 있는 카펫 면과 아치형 대조표 같은 도안을 알았다. 필사본 연구자 크리스토퍼 드 하멜은 안료에 이탈리아에서 들여왔을 광물 웅황이 들어 있다는 점을 들어, 우리가 모르는 교역로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서양 필사본에 남은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 그림인 성모자 면(7v)은 비잔틴, 아르메니아, 콥트의 본보기를 참고한 듯하며, 더럼에 있는 698년 성 커스버트 관 뚜껑의 조각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 책은 아일랜드·픽트·앵글로색슨·지중해 미술의 교차로에 서 있다.

현대에는 이 책이 누구의 것이냐는 논의도 있다. 19세기 이래 아일랜드 정체성의 상징으로 쓰여 왔지만, 아이오나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스코틀랜드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이 책을 지금의 국경을 넘나든 게일 그리스도교 연결망의 산물로 보는 편을 택한다.

[1][4][5]

핵심 개념

채식(일루미네이션)
필사본을 색·그림·장식으로 꾸미는 일. 인슐라 필사본에서는 장식이 글자 자체에서 자라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게 된 말씀
수도사들에게 복음서 본문은 거룩했다. 첫 낱말들을 거대하고 영광스럽게 만드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공경하는 방식이었다.
네 복음서의 일치
네 복음서 저자의 상징(사람·사자·송아지·독수리)이 책 곳곳에 함께 나타나 네 복음서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깊이보다 무늬
인슐라 미술은 3차원 공간을 흉내 내지 않는다. 평면을 움직임이 가득한 매듭·소용돌이·동물 형태로 덮는다.
성유물로서의 책
콜룸바와 연결되고 보석 박힌 성함에 담긴 이 책은 공부용 책보다 제대를 위한 거룩한 물건으로 다루어졌다.
숨은 세부
장식 속에 숨은 작은 동물과 인물은 자세히 보는 이에게 보답하며, 부활을 뜻하는 공작처럼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수도원 연결망
이 책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걸쳐 사람·책·예술 아이디어를 나누던 공동체가 만들었다.

기록

  1. 563년 — 콜룸바와 열두 동료가 아이오나에 수도원을 세운다.
  2. 597년 — 콜룸바가 아이오나에서 세상을 떠난다.
  3. 약 675년 — 앞선 인슐라 복음서인 『더로의 서』가 만들어진다(7세기 후반).
  4. 795년 — 바이킹이 처음으로 아이오나를 습격한다.
  5. 약 800년 — 『켈스의 서』가 만들어진다. 아이오나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6. 806년 — 바이킹의 아이오나 습격으로 수도사 68명이 죽는다.
  7. 807년 — 켈스에 새 콜룸바 수도원 건설이 시작된다(814년 성당 봉헌).
  8. 1007년 — 『얼스터 연대기』가 켈스에서 ‘콜룸킬레의 위대한 복음서’를 도둑맞았다고 기록한다. 책은 표지 없이 발견된다.
  9. 1654년 — 크롬웰 군대가 켈스에 주둔하자 책을 안전을 위해 더블린으로 보낸다.
  10. 1661년 — 헨리 존스가 책을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 기증한다.
  11. 1953년 — 로저 파월이 필사본을 네 권으로 다시 제본한다.
  12. 2011년 — 유네스코가 『켈스의 서』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한다.

용어 풀이

채식 필사본
색·그림·장식으로 꾸민 손글씨 책. 금을 쓰기도 하지만 『켈스의 서』에는 쓰지 않았다.
복음서(가스펠 북)
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 네 복음서를 담아 그리스도교 예배에 쓰던 책.
벨럼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고급 양피지. 중세 필사본의 서사 재료.
폴리오
필사본의 한 장. 앞면은 recto(r), 뒷면은 verso(v)로, ‘34r’은 34번째 장의 앞면을 뜻한다.
인슐라 미술
약 600~900년 아일랜드와 브리튼의 미술. 매듭·소용돌이·동물 장식으로 유명하다.
인슐라 대문자체
아일랜드와 브리튼에서 중요한 책에 쓰던 크고 둥근 서체.
키로(Chi Rho)
그리스어 ‘그리스도’의 첫 두 글자(X와 P)를 합친 문양. 키로 면은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쪽이다.
대조표(캐넌 테이블)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가 고안한, 어떤 구절이 어느 복음서에 나오는지 보여 주는 표.
카펫 면
양탄자처럼 쪽 전체를 무늬로 덮은 면. 인슐라 필사본의 특징이다.
필사실(스크립토리움)
수도원에서 책을 베끼고 장식하던 방이나 작업장.

묻고 답하기

『켈스의 서』에 금이 들어 있나요?

아니요. 다른 인슐라 필사본처럼 금박이나 은박을 쓰지 않았어요. 반짝이는 느낌은 노란 웅황 같은 밝은 안료를 솜씨 있게 나란히 칠해서 낸 거예요.

누가 만들었나요?

이름은 알 수 없어요. 여러 필경사와 화가가 함께 만들었고, 아마 아이오나와 켈스의 콜룸바 수도회 수도사들이었을 거예요. 콜룸바가 직접 썼다는 옛이야기는 사실일 수 없어요. 그는 약 200년 전에 세상을 떠났거든요.

직접 볼 수 있나요?

네.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올드 라이브러리에 전시되어 있고, 1년에 몇 번 쪽을 넘겨요. 필사본 전체를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어요.

왜 일부 장식이 미완성인가요?

어떤 쪽은 밑그림만 있습니다. 많은 학자는 바이킹 습격과 아이오나에서 켈스로의 이주에 따른 혼란과 연결하지만, 그 까닭을 밝힌 기록은 없습니다.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필사본의 연대는 어떻게 정하나요?

연대가 더 잘 알려진 다른 필사본과 서체·장식·본문을 비교합니다. 그 결과 『켈스의 서』는 인슐라 계열 후반부인 800년 무렵에 놓입니다.

웨일스의 제럴드가 본 책이 『켈스의 서』인가요?

12세기에 그는 킬데어에서 본 놀라운 복음서를, 매듭과 고리가 너무 섬세해 천사의 작품 같다고 묘사했습니다. 『켈스의 서』였을 수도 있고, 지금은 사라진 비슷한 수준의 다른 책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도둑들은 왜 책을 버렸나요?

그들이 원한 것은 금과 보석으로 된 표지였고, 표지는 끝내 되찾지 못했어요. 표지가 벗겨진 책은 버려졌다가 나중에 흙더미 밑에서 발견되었어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Book of Kells. Wikipedia
  2. 켈스의 서. 위키백과
  3. The Book of Kells Experience. Trinity College Dublin
  4. Insular art. Wikipedia
  5. Iona Abbey. Wikipedia
  6. Kells Abbey. Wikipedia
  7. Lindisfarne Gospels. Wikipedia
  8. Bernard Meehan, The Book of Kells. Thames & Hudson, 2012
  9. Carol Farr, The Book of Kells: Its Function and Audience. The British Library, 1997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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