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베오울프

Bēowulf (고대 영어, 필사본에는 제목이 없다)

약 700–1025년 · 영국 도서관, 런던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에서 필사)

한 문장으로

『베오울프』는 지은이를 알 수 없는 고대 영어 장편 시로, 스칸디나비아의 영웅이 괴물 그렌델과 그 어미, 그리고 수십 년 뒤 용과 싸우는 이야기이며, 1000년 무렵 잉글랜드에서 베껴 쓴 필사본 단 하나로만 전해진다.

베오울프
이미지: anonymous Anglo-Saxon poet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천 년도 더 전에 잉글랜드 사람들은 ‘고대 영어’라는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오늘날 영어의 먼 조상이지만 생김새가 너무 달라서, 영어를 쓰는 사람도 따로 배우지 않으면 읽지 못해요.

『베오울프』는 고대 영어로 남아 있는 이야기 시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유명해요. 누가 지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모두 3,182줄이라서 소리 내어 읽으면 몇 시간이 걸려요.

이야기의 무대는 덴마크와 스웨덴이에요. 덴마크의 흐로드가르 왕이 ‘헤오로트’라는 멋진 잔치 궁전을 지었어요. 그런데 그렌델이라는 괴물이 즐거운 노랫소리를 싫어해서 밤마다 궁전을 습격했어요.

힘센 젊은 영웅 베오울프가 바다를 건너 도우러 와요. 그는 맨손으로 그렌델과 싸워 괴물의 팔을 뜯어내요. 그러자 화가 난 그렌델의 어미가 쳐들어오고, 베오울프는 어두운 호수 속으로 뛰어들어 물밑 동굴에서 그 어미와 싸워요.

베오울프는 고향으로 돌아가 왕이 돼요. 50년 뒤 늙은 왕이 되었을 때, 누군가 용의 보물 더미에서 황금 잔을 훔치는 바람에 용이 온 나라를 불태워요. 베오울프는 용감한 젊은이 위글라프와 함께 용을 물리치지만, 큰 상처를 입고 세상을 떠나요.

이 시가 남은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손으로 쓴 옛 책이 딱 한 권뿐인데, 1731년 런던에서 난 불에 거의 타 버릴 뻔했어요. 지금도 책장 가장자리에 그을린 자국이 있어요. 이 책은 지금 영국 도서관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요.

한눈에 보기

형식
두운시로 된 영웅시(흔히 서사시라 부른다), 3,182행
언어
고대 영어. 주로 후기 웨스트색슨 방언이며 다른 방언 형태가 섞여 있다
창작 시기
알 수 없으며 논쟁 중. 8세기부터 11세기 초까지 여러 설이 있다
필사본
노웰 코덱스. 975~1025년 무렵 두 필경사가 베꼈다. 영국 도서관 소장, Cotton MS Vitellius A XV
배경
5~6세기 남부 스칸디나비아(덴마크와, 오늘날 스웨덴 남부로 보이는 기트족의 땅)
지은이
미상. 학자들은 ‘베오울프 시인’이라 부른다
전승
사본 단 하나. 1731년 애슈버넘 하우스의 코튼 문고 화재로 그을렸다
첫 간행
1786~87년 필사본을 바탕으로 그림우르 욘손 소르켈린이 1815년 첫 완역·교정본을 냈다

쉬움

『베오울프』는 어떤 작품인가

『베오울프』는 고대 영어로 쓰인 3,182행의 시다. 고대 영어는 대략 5세기부터 1066년 노르만 정복 무렵까지 잉글랜드에 살던 앵글로색슨인의 말이다. 이 시는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에서 전해지는 가장 긴 영웅시이며, 초기 중세 문학 가운데 가장 많이 연구되고 번역된 작품의 하나다.

필사본에는 제목이 없다. 근대 독자들이 주인공인 기트족 전사 베오울프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 누가,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는 모른다. 학자들은 그냥 ‘베오울프 시인’이라고 부른다. 확실히 연대를 댈 수 있는 것은 1000년 무렵에 만들어진 유일한 필사본뿐이다.

이 시는 잉글랜드의 그리스도교인이 기록했지만, 이야기는 5~6세기 스칸디나비아의 이교도 사이에서 벌어진다. 앵글로색슨인의 조상이 살던 시대다. 시 속 세계와 시를 듣던 사람들의 세계 사이의 이 거리가 『베오울프』를 흥미롭고도 논쟁적인 작품으로 만든다.

[1][2][6]

쉬움

줄거리: 세 번의 큰 싸움

시는 덴마크 왕가의 전설적 시조 쉴드 셰빙의 장례로 시작한다. 그의 시신은 보물을 가득 실은 배에 실려 바다로 떠나보내진다. 그의 후손 흐로드가르 왕은 ‘헤오로트’라는 웅장한 벌꿀술 궁전(미드 홀)을 짓고, 전사들과 잔치를 벌이며 선물을 나누고 노래를 듣는다.

그 즐거운 소리에 늪지에 사는 괴물 그렌델이 격분한다. 시는 그를 성경 속 카인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그렌델은 12년 동안 밤마다 헤오로트를 습격해 전사들을 잡아먹는다. 기트족의 젊은 영웅 베오울프는 이 소식을 듣고 동료들과 함께 덴마크로 건너온다. 그는 무기를 쓰지 않겠다고 한다. 괴물이 궁전에 들어오자 베오울프는 그 손을 움켜쥐고, 격투 끝에 어깨에서부터 팔을 뜯어낸다. 그렌델은 제 소굴로 달아나 죽는다.

이튿날 밤 그렌델의 어미가 복수하러 와 흐로드가르가 가장 믿던 신하 애쉬헤레를 죽인다. 베오울프는 흔적을 따라 호수에 이르러 물속으로 뛰어들고, 물밑 동굴에서 그 어미와 싸운다. 빌린 칼 흐룬팅은 소용이 없었지만, 벽에 걸린 거인이 만든 옛 칼을 발견해 그녀를 죽인다. 칼날은 괴물의 피에 녹아 자루만 남는다.

베오울프는 많은 선물을 받고 귀국해 마침내 기트족의 왕이 된다. 50년을 다스린 뒤, 한 노예가 용의 보물 더미에서 황금 잔을 훔치자 용이 온 땅을 불태운다. 늙은 왕은 용과 싸우러 간다. 부하들은 모두 달아나고 젊은 위글라프만 곁에 남는다. 둘은 용을 죽이지만 베오울프는 치명상을 입는다. 시는 그의 장례로 끝난다. 시신은 큰 장작더미에서 화장되고, 뱃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곶 위에 무덤이 세워지며, 백성들은 슬퍼하면서 앞으로 닥칠 전쟁을 두려워한다.

[1][6]

쉬움

영웅과 궁전, 그리고 괴물

『베오울프』의 세계는 궁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주군은 음식과 술, 금반지와 무기를 전사들과 나누고, 전사들은 그 대가로 그를 위해 싸우고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맹세한다. 선물과 충성이 사회를 묶는다. 용과의 싸움에서 달아난 부하들처럼 그 맹세를 어기는 일은 시에서 큰 수치로 그려진다.

괴물들은 궁전의 어두운 반대편이다. 그렌델은 거친 늪지에서 홀로 살며 잔치의 음악을 견디지 못한다. 그 어미는 호수 밑에 산다. 용은 결코 쓰지도 못할 보물 더미 위에서 잠잔다. 이들은 모두 궁전이 상징하는 빛과 온기, 공동체를 위협한다.

주요 인물로는 지혜롭지만 늙어 가는 덴마크 왕 흐로드가르, 아들들의 앞날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왕비 웨알흐세오우, 처음에는 베오울프를 비웃다가 나중에 칼을 빌려주는 덴마크 전사 운페르스, 기트족의 왕이자 베오울프의 외삼촌인 히옐락, 그리고 마지막까지 베오울프 곁을 지키는 젊은 친척 위글라프가 있다.

[1][6]

중급

전설과 역사

베오울프 자신은 다른 어떤 사료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헤알프데네, 흐로드가르, 할가, 흐로둘프, 에아드길스, 오흐테레 같은 인물과 쉴딩·쉴핑 같은 가문은 스칸디나비아 전승에도 등장한다. 외부 역사와 맞춰 볼 수 있는 사건도 하나 있다. 히옐락이 프리지아를 약탈하다 전사하는 이야기는 6세기 역사가 투르의 그레고리우스가 기록한 습격과 대응하며, 보통 521년 무렵으로 본다.

고고학도 연결 고리를 더했다. 스웨덴 감라 웁살라의 큰 왕릉 가운데 서쪽 봉분은 훗날 스노리 스투를루손이 에아드길스와 연결한 무덤인데, 1874년 발굴에서 575년 무렵 묻힌 유력자의 호화로운 매장이 확인되었다. 스칸디나비아 전승에서 쉴딩 왕가의 본거지로 여긴 덴마크 레이레에서는 1986~88년과 2004~05년 발굴로 길이 약 50m의 큰 궁전 터가 나왔는데, 그 첫 궁전은 시의 배경 시대인 6세기 중엽에 지어졌다.

잉글랜드에서는 1939년 서퍽의 서튼 후에서 발견된 배 무덤이 자주 이 시와 비교된다. 의례용 투구, 칼, 방패, 리라, 스웨덴 동부와 연결되는 정교한 금속 공예품 같은 부장품은 시에 그려진 궁전 생활과 선물 문화, 보물 매장, 그리고 보물을 실은 배로 왕을 떠나보내는 첫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학자들은 이 시를 특정 무덤에 대한 기록으로 보지는 않도록 조심한다.

[1][3]

중급

시의 소리: 두운시

고대 영어 시는 각운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한 행을 중간 휴지(카이수라)로 두 반행으로 나누고, 강세 음절의 첫소리를 되풀이하는 두운으로 두 반행을 잇는다. 4행 “Oft Scyld Scefing sceaþena þreatum”을 보면 ‘sc’ 소리가 앞뒤 반행을 묶는다. 한 행의 음절 수는 일정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강세 자리의 짜임이다.

시인들은 반행 하나에 꼭 맞는 기성 표현, 곧 정형구를 여럿 알고 있다가 새롭게 조합했다. 『베오울프』에는 바다를 ‘백조의 길’, 왕을 ‘반지를 주는 이’라 부르는 식의 압축된 시적 비유, 케닝도 많다. 이런 장치는 아마 구전 시인의 도구였을 것이며, 시를 촘촘하고 겹겹이 짠 옷감처럼 만들어 번역을 무척 어렵게 한다.

시는 “Hwæt!”라는 감탄사로 시작한다. 청중의 주의를 모으는 말이다. 번역자들은 이를 “Lo!”, “Listen!”, 셰이머스 히니처럼 “So.”로 옮겼고, 마리아 다바나 헤들리의 2020년 번역은 “Bro!”라고까지 했다. 번역 하나하나가 곧 해석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예다.

시에는 이야기 속 이야기, 곧 여담(삽화)이 많다. 용을 죽인 시게문드 이야기, 핀스부르흐 싸움, 프레아와루와 잉겔드의 원한, 스웨덴과 기트족의 전쟁, 그리고 용의 보물을 처음 묻은 사람이 읊는 ‘마지막 생존자의 노래’ 등이다. 초기 학자들은 이를 군더더기로 여겼지만, 후대 비평가들은 여담이 본 줄거리를 비추거나 대비시키며 깊은 역사의 느낌을 준다고 본다.

[1][5]

중급

큰 주제: 명예, 충성, 복수, 죽음

『베오울프』는 삶은 짧고 오직 명성만 남을 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영웅은 영광을 좇지만, 시는 궁전은 불타고 왕은 늙으며 민족은 쇠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흔히 ‘흐로드가르의 설교’라 불리는 긴 연설에서 늙은 왕은 베오울프에게 교만을 경계하고 부하들에게 너그러우라고 당부한다.

원한과 복수가 시 전체를 관통한다. 그렌델의 어미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죽이고, 여담들은 원한을 끝내려던 혼인이 실패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베오울프가 죽자 백성들은 옛 적들이 쳐들어오리라 예상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시를 끝없는 복수의 고리에 대한 비판으로 읽고, 다른 이들은 왕가의 흥망을 그린 ‘왕조 드라마’로 본다.

시는 쉴드 셰빙의 장례로 시작해 베오울프의 장례로 끝나며, 시에 나오는 네 번의 장례로 구조를 설명하는 비평가도 있다. 결말은 승리가 아니라 애도다. J. R. R. 톨킨은 이 시가 서사시보다 비가(엘레지)에 가깝고, 참된 주제는 인간의 필멸성이라고 주장했다.

[1][4]

중급

사본 하나, 화재 한 번

이 시는 ‘노웰 코덱스’라 불리는 필사본에만 남아 있다. 첫 장에 이름이 적힌 16세기 골동학자 로런스 노웰에게서 딴 이름이다. 이 사본은 나중에 전혀 다른 12세기 사본과 함께 제본되어 로버트 코튼 경의 문고에 들어갔고, 로마 황제 비텔리우스의 흉상을 올려 둔 책장 맨 위 칸(A)의 15번째 책으로 꽂혔다. 그래서 공식 이름이 ‘영국 도서관 Cotton MS Vitellius A XV’다.

노웰 코덱스에는 『성 크리스토퍼 전』 단편, 『동방의 경이』, 『알렉산드로스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베오울프』 뒤에 고대 영어 시 『유디트』가 실려 있다. 두 필경사가 베꼈다. 첫째 필경사는 『베오울프』 1939행에서 문장 중간에 손을 멈추었고, 둘째 필경사가 나머지와 『유디트』를 썼다. 첫째는 철자를 더 표준화했고, 둘째는 옛 형태와 방언 형태를 더 많이 남겼다. 사본은 보통 975~1025년 무렵, 좁게는 1000년 이후 10년 사이로 본다.

1731년 코튼 문고를 보관하던 런던 애슈버넘 하우스에 불이 났다. 사본은 살아남았지만 가장자리가 그을렸고, 그 뒤 수십 년 동안 부서져 나가며 글자들도 함께 사라졌다. 아이슬란드 학자 그림우르 욘손 소르켈린을 위해 1786~87년에 만든 두 필사본(고용된 필경사가 쓴 것과 소르켈린 자신이 쓴 것)은 지금은 사라진 글자를 전해 주는 귀중한 증거다. 케빈 키어넌 같은 현대 학자들은 자외선과 광섬유 역광으로 가려진 글자를 되살렸다.

[2][1][8]

중급

재발견, 번역, 그리고 오늘

이 시는 수백 년 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름이 처음 나오는 것은 1700년 학자 조지 히크스와 험프리 완리가 주고받은 편지다. 소르켈린은 1815년 라틴어 번역을 붙인 첫 완전한 판본을 냈다. 1805년 샤론 터너가 일부를 현대 영어로 옮겼고, 1820년 N. F. S. 그룬트비가 덴마크어로 첫 완역 운문 번역을 냈으며, 1837년 존 미첼 켐블이 영어 직역을 펴냈다.

1922년 독일 문헌학자 프레더릭 클래버가 낸 교정본은 여러 세대 학생들의 표준 텍스트가 되었고, 2008년 제4판이 나왔다. 2020년 한 데이터베이스는 번역과 각색이 약 688종에 이른다고 집계했으며, 적어도 38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셰이머스 히니의 1999년 운문 번역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톨킨이 수십 년 전에 해 둔 산문 번역은 2014년에야 출간되었다. 한국어로는 이성일이 옮긴 『고대영시선』(한국문화사, 2017)에 실려 있다.

『베오울프』는 소설, 영화, 만화, 게임에 영감을 주었다. 톨킨은 보물 더미에서 잔을 도둑맞아 용 스마우그가 깨어나는 『호빗』과 『반지의 제왕』에서 이 시를 활용했다. 존 가드너의 소설 『그렌델』(1971)은 괴물의 눈으로 이야기를 다시 썼고, 마리아 다바나 헤들리의 『머어 와이프』(2018)는 무대를 현대 미국 교외로 옮겼다.

[1][6][7][10]

심화

창작 연대 논쟁

『베오울프』가 언제 지어졌는가는 영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물음의 하나이며, 그 답에 따라 시의 읽힘이 달라진다. 제안된 시기는 7세기나 8세기 초부터 사본이 만들어진 11세기 초까지 폭넓다. 톨킨은 이 시가 앵글로색슨 이교에 대한 기억을 너무나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어 700년 무렵 잉글랜드의 개종 완료로부터 몇 세대 이상 늦을 수 없다고 보았다. 이 8세기설은 톰 시피, 레너드 나이도프, 라파엘 J. 파스쿠알, R. D. 풀크 등이 옹호해 왔다.

이른 연대의 가장 강한 근거는 언어와 운율이다. R. D. 풀크는 『고대 영어 운율의 역사』(1992)에서 이 시가 강세 없는 음절의 모음 길이 구분(‘칼루자의 법칙’)을 지키는데, 이런 구분은 9세기에는 말에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론은 이런 특징이 특정 작품의 연대가 아니라 오래된 시적 전통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B. R. 허치슨은 칼루자의 법칙으로 연대를 정할 수 없다고 보면서도 증거 전체의 무게는 8세기 쪽이라고 인정한다.

반대편에서 케빈 키어넌은 『베오울프와 베오울프 필사본』(1981)에서 지금 형태의 시가 사본과 가까운 시기, 어쩌면 크누트 치세에 만들어졌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크레이그 R. 데이비스는 시의 계보를 앨프레드 대왕의 궁정과 연결해 890년대를 제안했다. 창작 장소도 논쟁적이어서, 서튼 후와 우핑가 왕가를 근거로 한 이스트앵글리아, 머시아, 노섬브리아, 웨식스 등이 거론된다. 본문에 여러 방언 형태가 섞여 있다는 사실은 길고 복잡한 전승을 암시하며, 그래서 한 가지 답을 내기가 더욱 어렵다.

[1][9][8][11]

심화

구전 시인가, 글로 쓴 작품인가

앨버트 로드는 『이야기의 가수』(1960)에서 프랜시스 피보디 매군의 연구와 남슬라브 가수들에 대한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베오울프』가 호메로스와 같은 정형구와 전통 주제를 써서 구두로 창작되었다고 주장했다. 로드는 사본이 한 번의 공연, 어쩌면 여러 차례에 걸쳐 받아 적은 공연을 기록한 것이라고 보았다.

후대 학자들은 덜 확신한다. ‘영웅의 무장’이나 ‘해변의 영웅’ 같은 반복 주제가 게르만 시 전반에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많은 이들은 고대 영어 시가 구전 정형구의 습관과 문자 창작을 섞었다고 결론짓는다. 래리 벤슨은 문자를 아는 시인이 확장한 ‘전통의 핵’을 말했고, 앤 와츠는 호메로스·남슬라브 자료에서 나온 이론을 앵글로색슨 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경계했으며, 존 마일스 폴리는 전통적 구전 창작에서 문자 텍스트까지 이어지는 연속체를 제시했다.

시 자체도 구전 공연을 묘사한다. 흐로드가르 궁전의 한 시인은 베오울프의 업적을 두고 ‘말을 엮어’(wordum wrixlan) 새 노래를 짓고, 잔치 때는 하프가 울린다. 이 장면들이 『베오울프』 자체가 만들어진 방식을 비추는지, 아니면 학식 있는 그리스도교 작가가 그린 이상화된 모습인지는 열린 문제다.

[1]

심화

이교와 그리스도교, 괴물과 비평가

19세기와 20세기 초 학자들은 『베오울프』를 주로 게르만 역사·신화·언어에 관한 증거를 캐내는 광산으로 썼다. 톨킨은 1936년 11월 25일 영국 학술원 강연 「베오울프: 괴물과 비평가들」에서 이 시가 역사적 관심 밑에 묻혀 버렸다고 항의했다. 그는 괴물이 유치한 곁가지가 아니라 시의 핵심이며, 이 시를 젊은 영웅의 상승과 늙은 왕의 죽음이라는 두 부분이 균형을 이룬 예술 작품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이 강연은 이 시에 대한 현대 문학 비평의 출발점으로 널리 평가된다.

핵심 해석 문제는 종교다. 시는 신, 창조, 카인, 대홍수, 최후의 심판 등 구약의 이야기를 언급하지만 그리스도는 한 번도 말하지 않으며, 인물들은 이교도로 그려진다. 마거릿 골드스미스처럼 그리스도교 알레고리로 읽는 학자도 있고, 이교 시에 그리스도교 색을 입혔다고 보는 이도 있으며, 프레드 C. 로빈슨처럼 시인이 그리스도교의 계시를 몰랐던 고귀한 조상을 존경과 슬픔으로 돌아본다고 보는 이도 있다. 리처드 노스는 시인이 ‘덴마크 신화를 그리스도교의 형식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여성과 친족, 원한과 왕조의 정치, 충성의 은유로서의 몸(스탠리 그린필드), 이방인의 형상으로서의 괴물 등에 주목하는 연구가 늘었다. 그렌델 어미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다시 쓴 헤들리의 작품은 이 시가 가장자리의 눈으로 계속 새롭게 읽히고 있음을 보여 준다.

[4][1]

핵심 개념

영웅의 명예(lof, dōm)
용감한 행동으로 얻은 명성만이 전사보다 오래 남는다. 시의 마지막 낱말은 베오울프를 ‘칭송을 가장 갈망한 이’로 묘사하는데, 찬사로도 경고로도 읽을 수 있다.
주군과 가신
주군은 보물과 보호를, 전사는 죽음까지의 충성을 준다. 위글라프는 그 이상을 보여 주고, 달아난 전사들은 그것을 배신한다.
궁전과 황야
헤오로트는 질서·공동체·노래를, 괴물들은 늪·호수·무덤에서 온다. 시의 이미지는 이 빛과 어둠의 대비 위에 놓여 있다.
원한과 복수
살인은 복수를 부르고, 평화를 위한 혼인은 흔히 실패한다. 여담들은 원한이 가문과 왕국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거듭 보여 준다.
필멸과 덧없음
궁전은 불타고 보물은 녹슬며 왕은 늙는다. 톨킨은 가장 위대한 영웅조차 시간과 죽음에 진다는 것이 이 시의 참주제라고 보았다.
이교의 과거, 그리스도교의 현재
그리스도교 시인이 이교도 조상의 이야기를 한다. 그가 그들을 공감으로, 비판으로, 혹은 둘 다로 보는지는 이 시의 핵심 수수께끼다.
전통의 기술
두운, 정형구, 케닝, 여담은 이 시를 게르만 구전시의 넓은 전통과 잇는 동시에 한 예술가의 솜씨를 드러낸다.

기록

  1. 약 521년 — 히옐락 왕의 프리지아 습격. 투르의 그레고리우스가 기록했으며, 시에서는 히옐락이 전사하는 싸움으로 기억된다.
  2. 약 550년 — 쉴딩 왕가의 전통적 본거지인 덴마크 레이레에 큰 궁전이 세워진다.
  3. 약 625년 — 이스트앵글리아 서튼 후 배 무덤의 대략적 연대. 시의 세계와 자주 비교된다.
  4. 약 700년 — 시의 창작 시기로 흔히 제안되는 가장 이른 무렵. 제안은 11세기 초까지 이어진다.
  5. 약 1000년 — 유일한 필사본 노웰 코덱스를 두 필경사가 베낀다(975~1025년 무렵).
  6. 약 1563년 — 골동학자 로런스 노웰이 사본을 소유한다. 첫 장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
  7. 1700년 — 조지 히크스와 험프리 완리의 편지에 시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8. 1731년 — 애슈버넘 하우스의 코튼 문고 화재로 사본이 그을린다.
  9. 1786년 — 그림우르 욘손 소르켈린이 첫 필사본을 만들게 한다(1787년 완성).
  10. 1815년 — 소르켈린이 라틴어 번역을 붙인 첫 완전한 판본을 낸다.
  11. 1936년 — 톨킨이 영국 학술원에서 「베오울프: 괴물과 비평가들」을 강연한다.
  12. 1999년 — 셰이머스 히니의 운문 번역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다.

용어 풀이

고대 영어
대략 5세기부터 12세기까지 잉글랜드에서 쓰인, 기록으로 남은 가장 이른 영어. 앵글로색슨어라고도 한다.
두운시
각운 대신 강세 음절 첫소리의 반복으로 행을 묶는 시.
카이수라(행 중간 휴지)
고대 영어 시의 한 행을 두 반행으로 나누는 쉼.
케닝
바다를 ‘백조의 길’이라 부르듯 대상을 간접적으로 부르는 압축된 시적 비유.
스코프(scop)
하프나 리라를 곁들여 시를 읊던 앵글로색슨 궁정 시인.
미드 홀(벌꿀술 궁전)
주군의 큰 홀. 전사들이 잔치를 벌이고 벌꿀술을 마시며 선물을 받고 시를 들었다.
세인(thegn)
땅과 보물, 보호를 받는 대가로 주군을 섬기던 전사·가신.
기트족
베오울프의 부족. 남부 스칸디나비아에 살았으며, 많은 학자가 오늘날 스웨덴 예탈란드의 예타르족과 연결한다.
코덱스
두루마리가 아니라 접은 낱장을 묶어 만든 책.
여담(삽화)
본 이야기 속에 끼워 넣은 이야기. 『베오울프』에는 본 줄거리를 비추는 여담이 많다.

묻고 답하기

베오울프는 실제 인물인가요?

시 밖에서 베오울프가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는 없어요. 하지만 히옐락과 흐로드가르 같은 주변 인물은 6세기 스칸디나비아의 실제 통치자를 바탕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고, 히옐락의 프리지아 습격은 투르의 그레고리우스가 기록했어요.

왜 덴마크인과 스웨덴인 이야기를 잉글랜드에서 썼나요?

앵글로색슨인은 자신들의 기원을 북유럽에서 찾았고 그곳의 영웅 전설을 공유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왕들도 쉴드 같은 스칸디나비아 인물을 조상으로 내세웠습니다. 이 시는 그 공동의 조상 시대를 돌아봅니다.

원문을 읽을 수 있나요?

공부가 필요해요. 고대 영어는 철자·문법·낱말이 다르고 þ, ð 같은 글자도 써요. 많은 판본이 한쪽에 원문, 맞은쪽에 현대어 번역을 싣습니다.

시인이 그리스도교인이라면 왜 이교도 이야기를 썼나요?

학자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고귀한 조상을 기리면서도 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이 없었음을 보여 주려 했을 수도 있고, 더 오래된 이교 소재를 다시 빚었을 수도 있습니다. 시는 신과 구약 이야기를 말하지만 그리스도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사본이 만들어진 때는 어떻게 아나요?

주로 글씨체(고문서학)로 판단합니다. 두 필경사의 서체는 975~1025년 무렵에 맞고, 일부 전문가는 1000년 이후 10년 사이로 좁힙니다.

1731년 화재는 본문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그을린 가장자리의 글자들이 이후 수십 년 동안 부서져 사라졌습니다. 편집자들은 1786~87년 소르켈린 필사본, 자외선 촬영, 고대 영어 운율 지식을 이용해 빠진 낱말을 복원합니다.

창작 연대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8세기 작품이라면 잉글랜드의 개종과 이교 풍습의 기억에 가깝고, 11세기 작품이라면 크누트 같은 덴마크 왕이 다스리던 왕국에서 나온 셈입니다. 연대마다 다른 청중과 의미가 떠오릅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Beowulf. Wikipedia
  2. Nowell Codex. Wikipedia
  3. Sutton Hoo. Wikipedia
  4. Beowulf: The Monsters and the Critics. Wikipedia
  5. Alliterative verse. Wikipedia
  6. 베오울프. 위키백과
  7. R. D. Fulk, Robert E. Bjork and John D. Niles (eds.), Klaeber’s Beowulf and The Fight at Finnsburg (4th edition). University of Toronto Press, 2008
  8. Kevin S. Kiernan, Beowulf and the Beowulf Manuscript. Rutgers University Press, 1981
  9. R. D. Fulk, A History of Old English Meter.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1992
  10. Seamus Heaney (trans.), Beowulf: A New Translation. Faber and Faber, 1999
  11. Leonard Neidorf (ed.), The Dating of Beowulf: A Reassessment. D. S. Brewer, 2014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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