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빙엔의 힐데가르트

Hildegard von Bingen (독일어), Hildegardis Bingensis (라틴어)

1141–1179년 · 빙엔의 루페르츠베르크 (신성 로마 제국)

한 문장으로

빙엔의 힐데가르트(1098 무렵~1179)는 환시에 바탕한 신학서를 쓰고, 중세에서 가장 개성 있는 음악을 작곡하고, 의학과 자연에 관한 책을 남기고, 라인강 가에 두 수녀원을 세우고, 교황·황제와 편지를 주고받은 독일의 베네딕도회 수녀원장이다.

빙엔의 힐데가르트
이미지: Unknown author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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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900년 전, 지금의 독일 땅에서 힐데가르트라는 여자아이가 귀족 집안에 태어났어요. 자주 아팠던 아이였지요. 아주 어릴 때부터 힐데가르트는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신비로운 밝은 빛과 장면이 보인다고 말했어요.

어린 힐데가르트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며 사는 수도원에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유타라는 여성이 글 읽기와 시편 노래, 아픈 사람 돌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유타가 세상을 떠나자 수녀들은 힐데가르트를 지도자로 뽑았어요.

마흔두 살 때 힐데가르트는 하느님이 ‘보고 들은 것을 적어라’라고 명하셨다고 믿었어요. 처음엔 두려웠지만 결국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첫 번째 큰 책의 이름은 『스키비아스』, ‘길을 알라’라는 뜻이에요. 자신이 본 환시와 그 뜻을 설명한 책이에요.

힐데가르트는 음악도 지었어요. 중세의 어떤 작곡가보다 많은 노래가 남아 있어요. 멜로디가 높이 솟았다가 낮게 내려오고, 가사와 곡을 모두 직접 썼어요. 겸손, 희망 같은 덕들이 사람의 영혼을 두고 악마와 다투는 음악극도 만들었답니다.

힐데가르트는 식물과 자연을 사랑했어요. 약초, 돌, 물고기, 동물, 사람의 몸, 그리고 병을 고치는 법에 관한 책을 썼어요. 자라나는 것들 속의 생명력을 ‘비리디타스’, 곧 ‘푸르름’이라고 불렀어요.

힐데가르트는 용감했어요. 수도원장이 반대해도 수녀들을 새 수녀원으로 데려갔고, 여러 곳을 다니며 설교했고, 교황과 황제에게 바르게 행동하라고 편지를 썼어요. 가톨릭교회는 그녀를 성인으로 공경하며, 2012년에는 위대한 스승 몇 명에게만 주는 ‘교회 학자’라는 칭호를 주었어요.

한눈에 보기

생몰
1098년 무렵 ~ 1179년 9월 17일
출생지
라인란트(신성 로마 제국). 전통적으로 알차이 근처 베르메르스하임이라 하나, 최근에는 당시 가족의 거처였던 니더호젠바흐로 보는 연구도 있다
주요 장소
디지보덴베르크(어려서 봉쇄 생활 시작), 빙엔의 루페르츠베르크(1150년 창설), 뤼데스하임 근처 아이빙엔(1165년 창설)
역할
베네딕도회 수녀원장, 환시 저술가, 신학자, 작곡가, 시인, 의학·자연사 저술가, 설교자
환시 저작
『스키비아스』(1141~1151), 『삶의 공덕의 책』(1158~1163), 『신의 업적의 책』(1163 무렵~1174 무렵)
기타 저작
『심포니아』(전례 노래), 『오르도 비르투툼』(음악극), 『피지카』와 『원인과 치료』(자연·의학), 『알려지지 않은 언어』, 편지 약 400통
언어
라틴어(일부 독일어 주석), 『알려지지 않은 언어』의 창작 낱말
공경
수백 년간 성인으로 공경됨. 2012년 보편 교회로 공경이 확대되고 교회 학자로 선포됨

쉬움

힐데가르트는 누구인가

빙엔의 힐데가르트는 12세기 지금의 독일 서부 라인란트에 살았던 베네딕도회 수녀이자 수녀원장이다. 당대 사람들이 그녀를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에 ‘라인강의 시빌라(여예언자)’라고도 불린다. 오늘날 그녀는 매우 폭넓은 업적으로 기억된다. 환시를 기록하고 해설한 책, 많은 음악, 식물·동물·의학에 관한 글, 창작 언어, 수백 통의 편지가 그것이다.

그녀는 1098년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전통적으로 열 자녀 가운데 막내로 여겨진다. 힐데가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환시를 경험했다고 썼다. 소녀 시절 수도 생활에 봉헌되어 디지보덴베르크 수도원에 딸린 작은 여성 공동체에서 자랐다. 1136년 그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고, 뒤에 빙엔 곁의 루페르츠베르크와 라인강 건너 아이빙엔에 자신의 수녀원을 세웠다.

힐데가르트가 살던 시대에 여성은 공적 생활과 교회에서 매우 제한된 역할만 맡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신학을 쓰고, 공개적으로 설교하고, 교황과 황제, 주교와 평범한 사람들에게 조언했다. 신자들은 그 권위가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보고, 역사가들은 그녀가 12세기 세계에서 그 권위를 어떻게 세우고 사용했는지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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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수도원에서 보낸 어린 시절

힐데가르트의 부모 힐데베르트와 메히틸트는 자유 하급 귀족이었다. 출생지는 그녀 자신도 초기 전기 작가도 기록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는 가문의 땅이 있던 알차이 근처 베르메르스하임을 꼽지만, 최근 연구는 니더호젠바흐를 제시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열 번째 자녀로 여겨지지만 기록이 남은 손위 형제는 일곱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그녀는 세 살 때 ‘살아 있는 빛의 그림자’를 처음 보았고, 다섯 살 무렵 자신이 환시를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훗날 말했다.

부모는 그녀를 하느님께 바친 아이, 곧 봉헌자(오블라타)로 수도 생활에 맡겼다. 그녀는 나에강 가의 베네딕도회 디지보덴베르크 수도원에서 봉쇄 수도 생활을 하던, 여섯 살쯤 많은 젊은 귀족 여성 스폰하임의 유타에게 맡겨졌다. 정확한 연대는 논쟁 중이다. 훗날의 『생애』는 여덟 살에 유타와 함께했다고 하지만, 유타의 봉쇄는 힐데가르트가 열네 살이던 1112년으로 확인된다. 일부 학자는 여덟 살에 유타의 보살핌을 받기 시작해 6년 뒤 함께 봉쇄되었다고 본다.

유타는 힐데가르트에게 읽기와 라틴어 시편 노래를 가르쳤고, 공동체는 병자를 돌보고 정원을 가꾸었다. 훗날 힐데가르트의 비서이자 평생의 벗이 된 수도사 볼마르가 간단한 악보 표기를 가르쳤을지도 모른다. 힐데가르트는 늘 자신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는데, 학교의 정규 라틴어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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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살아 있는 빛

힐데가르트는 평생 대부분 유타와 볼마르 말고는 거의 누구에게도 환시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1141년, 마흔두 살에 그녀는 ‘보고 들은 것을 적어라’라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이해한 환시를 겪었다. 망설이다 중병에 걸리자 그녀는 이를 순종해야 한다는 표시로 받아들였다. 볼마르와 수녀 리카르디스 폰 슈타데의 도움을 받아 그녀는 쓰기 시작했다.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환시를 꼼꼼하게 묘사했다. 노년에 수도사 장블루의 기베르에게 쓴 편지에서 그녀는 환시를 꿈이나 황홀경이 아니라 눈을 뜬 채 깨어 있는 상태에서 ‘오직 영혼 안에서’ 본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밝음을 ‘살아 있는 빛의 반영’이라 부르며, 해를 품은 구름보다 훨씬 밝다고 했다.

1147~48년 트리어 교회 회의에서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완성되지 않은 그녀의 책 일부를 낭독으로 듣고 축복의 편지를 보냈다. 영향력 있는 수도원장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의 지지도 받은 이 교황의 승인은 그녀의 글에 큰 권위를 주었고,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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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자신의 수녀원을 세우다

1136년 유타가 죽자 수녀들은 힐데가르트를 지도자(마기스트라)로 뽑았다. 여성들은 여전히 디지보덴베르크 남자 수도원장의 권한 아래 있었다. 힐데가르트는 공동체의 독립을 원했고, 환시에서 빙엔의 나에강과 라인강이 만나는 바위 언덕 루페르츠베르크를 새 터로 보았다고 밝혔다. 쿠노 수도원장은 거절했다. 힐데가르트는 그를 건너뛰어 마인츠 대주교에게 호소했고, 다시 병들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다가 마침내 수도원장이 허락했다.

1150년 무렵 그녀는 수녀 약 스무 명과 함께 루페르츠베르크로 옮겼다. 떠나온 탄탄한 석조 수도원보다 가난하고 불편한 곳이었다. 수녀원 성당은 1152년에 봉헌되었고, 볼마르가 사제이자 고해 신부로 함께 갔다. 1165년 힐데가르트는 라인강 건너 뤼데스하임 근처 아이빙엔에 두 번째 수녀원을 세우고 두 공동체를 함께 이끌었다.

힐데가르트는 실용적이면서도 때로 논쟁적인 지도자였다. 그녀는 신분이 섞이면 갈등이 생긴다며 루페르츠베르크에 귀족 여성만 받아들였다. 1151년 아끼던 조력자 리카르디스가 먼 수녀원의 원장으로 뽑히자, 그녀를 곁에 두려고 리카르디스의 가족과 교회 관리들, 심지어 교황에게까지 편지를 썼다. 리카르디스는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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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세 권의 환시록

힐데가르트의 주요 신학 저작은 세 권의 큰 환시록이다. 각 책에서 그녀는 먼저 흔히 기이하고 생생한 장면으로 본 것을 묘사하고, 이어 ‘살아 있는 빛의 목소리’의 말로 그 뜻을 풀이한다. 1141~1151년에 쓴 『스키비아스(주님의 길을 알라)』는 세 부분에 26개 환시를 담았다. 창조의 질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한 구원의 질서, 그리고 덕들로 꾸민 큰 건물로 그린 구원의 역사다. 책은 노래들과 그녀의 음악극 초기 형태로 끝난다.

1158~1163년에 쓴 『삶의 공덕의 책』은 악덕과 덕의 극적인 대결을 펼친다. 악덕이 유혹적인 연설을 하면 덕이 이에 답한다. 이 책에는 죽음 뒤 정화의 장소인 연옥에 대한 가장 이른 상세한 묘사의 하나도 들어 있다.

1163년 무렵 시작해 1172~74년 무렵 마친 『신의 업적의 책』은 가장 우주적인 저작이다. 환시들은 우주를 여러 구체로 보여 주고 그 한가운데 사람의 형상을 두어, 작은 세계(소우주)인 인간과 큰 세계(대우주)인 우주를 잇는다. 상당 부분은 요한 복음서의 첫머리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와 창세기의 7일 창조에 대한 긴 묵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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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음악과 『오르도 비르투툼』

힐데가르트는 중세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곡가의 하나이며, 가사와 곡 모두에 이름이 붙은 그 시대의 드문 인물이다. 『오르도 비르투툼』 말고도 자신의 시를 가사로 한 음악 69곡이 남아 있으며, ‘천상 계시의 화음의 교향’(Symphonia armoniae celestium revelationum)이라는 모음에 묶였다. 수녀원 예배를 위해 쓴 교창 성가(안티폰), 응송, 찬가, 부속가 등이다.

그녀의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화음 없이 선율 하나로 된 단선율 음악이다. 그러나 음역이 유난히 넓고, 높이 솟구치는 도약과 한 음절에 여러 음을 길게 붙이는 멜리스마가 많다. 마고 파슬러, 매리앤 리처트 파우 같은 학자들은 그녀의 음악이 가사의 뜻을 얼마나 긴밀하게 따르는지 강조했다.

1151년 무렵 지은 『오르도 비르투툼(덕들의 질서)』은 사람의 영혼 ‘아니마’가 악마에게 유혹당했다가 열여섯 덕의 도움으로 뉘우치고 돌아오는 노래극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노래하지만 악마만은 신의 화음에서 끊겨 말하거나 소리칠 뿐이다. 흔히 가장 이른 도덕극으로 꼽히며, 1152년 루페르츠베르크 성당 봉헌 때 수녀들이 공연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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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자연, 의학, 그리고 푸르름

『피지카』와 『원인과 치료』라는 두 저작은 자연 세계와 의학을 다룬다. 환시록과 달리 이 책들은 신의 영감을 내세우지 않는다. 수녀원 정원과 병실에서의 경험, 그리고 전통적인 라틴어 의학 지식에 바탕을 둔다. 『피지카』는 식물, 나무, 돌, 물고기, 새, 파충류와 여러 동물의 성질과 쓰임을 설명하며, 맥주의 보존제로 홉을 쓰는 것에 대한 이른 언급으로 자주 인용된다.

『원인과 치료』는 인체와 병의 원인, 사혈을 비롯한 치료법과 여러 민간요법을 설명한다. 힐데가르트는 고대의 4체액설을 쓰면서도 이를 자기 방식으로 다듬어, 체액을 4원소와 연결하고 병을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함께 인류에게 들어온 불균형으로 설명했다.

그녀 사상의 핵심 개념은 ‘비리디타스’, 곧 푸르름 또는 푸르게 하는 힘이다. 하느님이 식물에 주고, 비유적으로 사람의 몸과 영혼에도 주는 생명력과 풍요로움이다. 힐데가르트에게 환자를 돌보는 일은 정원을 가꾸는 일과 비슷했다. 이 책들은 좀처럼 글로 남지 않던 실용 의학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귀하다. 다만 그녀의 이름으로 전하는 의학서가 지금 형태를 갖춘 것은 그녀 사후이므로, 모두가 온전히 그녀의 글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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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편지, 설교, 공적인 목소리

힐데가르트의 편지는 약 400통이 남아 있어 중세의 가장 큰 서간 모음의 하나다. 그녀는 교황 에우제니오 3세와 아나스타시오 4세,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그리고 조언과 기도를 청한 수도원장·수녀원장·주교·평신도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는 흔히 살아 있는 빛의 목소리로 말하며, 권력자들이 잘못한다고 여길 때는 꾸짖었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놀랍게도 그녀는 1160년대와 1170년대에 여러 차례 설교 여행을 떠나, 참사회 회의실과 공공장소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에게 말했다. 성직자의 부패를 고발하고 개혁을 촉구했다. 2012년 교황청 문서는 그녀가 ‘광장과 여러 주교좌 성당에서’ 설교했다고 적는다.

만년에 그녀는 파문되었던 한 남자의 시신을 수녀원 묘지에서 옮기라는 마인츠 성직자들의 요구를 거부하며, 그가 죽기 전에 교회와 화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매장을 둘러싼 마인츠 교회 당국과의 분쟁이 그녀의 마지막 몇 달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녀는 1179년 9월 17일 루페르츠베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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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사료와 자기 표현

힐데가르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의 상당 부분은 그녀가 죽은 뒤 에히터나흐의 수도사 테오데리히가 엮은 『성 힐데가르트의 생애』에서 온다. 여기에는 디지보덴베르크의 고트프리트가 시작한 앞선 기록, 마지막 비서 장블루의 기베르가 모은 자료, 그리고 힐데가르트 자신의 것으로 전하는 자전적 대목이 들어 있다. 모든 성인전이 그렇듯 『생애』는 거룩함을 보여 주려고, 부분적으로는 시성을 뒷받침하려고 쓰였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이를 그녀의 편지와 다른 문서와 함께 읽는다.

그녀 생전이나 직후에 만든 필사본은 특히 중요하다. 35점의 채색 삽화가 든 『스키비아스』 루페르츠베르크 필사본은 1945년 보관을 위해 드레스덴으로 옮겨진 뒤 사라졌고, 그 그림들은 1927~1933년 아이빙엔 수녀들이 손으로 그린 복제본으로 전한다. 무게가 약 15kg에 이르는 비스바덴의 거대한 ‘리젠코덱스(거인 사본)’는 그녀의 저작과 편지 대부분을 모은다. 학자들은 비서들이 편지를 얼마나 고치고 다듬었는지 논쟁하지만, 힐데가르트가 그 모음을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힐데가르트가 자신을 약하고 ‘배우지 못한’ 여자라고 거듭 부른 것도 살펴보았다.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은 이 겸손의 언어가 오히려 그녀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자신의 말이 제 학식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강조함으로써, 보통 여성에게 가르칠 권위를 주지 않던 교회에서 말할 권리를 얻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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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그녀의 환시를 어떻게 이해할까

가톨릭교회와 많은 신자에게 힐데가르트는 참된 예언자이며 그 환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녀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며 ‘삶의 거룩함과 가르침의 독창성’을 기렸다. 신앙과 관계없이 누구나 검토할 수 있는 증거로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신의 영감을 증명하거나 반박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환시가 어떻게 묘사되고 기록되고 그려지고 받아들여졌는지를 연구한다.

현대의 일부 저자는 의학적 설명을 제시했다.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1985)에서 그녀가 묘사한 빛의 무늬가 편두통의 시각적 전조와 닮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은 중세인을 사후에 진단하는 일은 불확실하며, 그런 설명으로는 그녀 작품의 신학적 내용과 문학적 솜씨를 설명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힐데가르트 자신은 황홀경이 아니라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환시를 본다고 했는데, 이 점이 그녀를 다른 많은 중세 신비가와 구별한다.

그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논쟁거리다. 『스키비아스』 삽화는 아마 그녀의 감독 아래 만들어졌겠지만, 그녀가 직접 도안했는지, 그녀의 묘사를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또 라틴어·독일어 주석이 붙은 약 1,000개의 창작 명사 목록인 『알려지지 않은 언어』를 바버라 뉴먼은 수녀들의 결속을 다지는 수단으로, 세라 하이글리는 창조 질서 전체를 담은 신비적 기획으로 읽는다.

[1][3][10]

심화

시성, 부활, 그리고 유산

힐데가르트는 로마의 공식 시성 절차가 처음 적용된 인물 가운데 하나였지만, 여러 차례의 시도는 끝내 완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지역에서는 성인으로 공경받았고, 16세기 말부터 9월 17일 축일과 함께 『로마 순교록』에 올랐다. 2012년 5월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동등 시성’으로 그녀에 대한 공경을 보편 교회로 넓혔고, 같은 해 10월 7일 그녀를 교회 학자로 선포했다. 이 칭호를 받은 여성은 몇 명뿐이다. 그녀의 유해는 아이빙엔의 순례 성당에 모셔져 있다.

루페르츠베르크는 1632년 30년 전쟁 때 파괴되었고, 아이빙엔 수녀원은 1804년 해산되었다가 1904년 베네딕도회 수녀원으로 다시 세워졌다. 힐데가르트에 대한 현대의 관심은 20세기 후반부터 빠르게 커졌다. 서거 800주년인 1979년 이후 그녀의 음악 음반이 크게 늘었고, 그녀는 여성사·음악사·의학사 연구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녀의 인기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교 전집(Corpus Christianorum)』 총서의 학술 교정본부터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영화 「비전」(2009), 대체 의학의 이른바 ‘힐데가르트 의학’까지 다양하다. 역사가들은 이런 현대적 활용 가운데 일부는 성경과 전례, 베네딕도회 수도 생활에 뿌리를 둔 12세기 수녀원장보다 오늘날의 관심을 더 반영한다고 경고한다.

[1][8][7][3]

핵심 개념

비시오(환시)
완전히 깨어 있는 채 ‘살아 있는 빛’ 속에서 보고 듣는 경험을 가리키는 힐데가르트의 말. 그녀는 자신의 신학을 이 환시의 해석으로 제시했다.
비리디타스(푸르름)
하느님이 피조물에 주는 생명과 풍요의 힘. 식물에서, 그리고 비유적으로 몸의 건강과 영혼의 활력에서 드러난다.
소우주와 대우주
인간은 우주의 구조를 비추는 작은 세계이며, 몸·영혼·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심포니아(화음)
음악은 하늘과 창조의 조화를 비춘다. 『오르도 비르투툼』에서 악마만은 노래하지 못한다.
덕과 악덕의 대결
도덕적 삶은 의인화된 덕들이 유혹하는 악덕에 맞서 영혼을 지키는 드라마다.
겸손을 통한 권위
자신을 배우지 못하고 약하다고 부름으로써 힐데가르트는 가르침을 하느님의 것으로 제시했고, 당시 여성에게 드문 공적 목소리를 얻었다.
교회 개혁
편지와 설교에서 그녀는 성직자의 부패를 고발하고 성직자와 통치자에게 삶을 새롭게 하라고 촉구했다.

기록

  1. 약 1098년 — 알차이 근처 베르메르스하임, 또는 니더호젠바흐의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다.
  2. 1112년 — 스폰하임의 유타와 함께 디지보덴베르크 수도원에서 봉쇄 생활을 시작한다(다른 기록에 따르면 여덟 살 무렵부터 유타의 보살핌을 받았다).
  3. 1136년 — 유타가 죽은 뒤 여성 공동체의 지도자로 선출된다.
  4. 1141년 — 보고 들은 것을 적으라는 환시를 겪고 『스키비아스』를 쓰기 시작한다.
  5. 1148년 — 트리어 교회 회의(1147~48)에서 교황 에우제니오 3세가 『스키비아스』 일부를 듣고 축복을 보낸다.
  6. 약 1150년 — 수녀 약 스무 명과 함께 빙엔 근처 루페르츠베르크의 새 수녀원으로 옮긴다.
  7. 1151년 — 『스키비아스』를 완성한다. 이 무렵 『오르도 비르투툼』을 짓는다.
  8. 1158년 — 『삶의 공덕의 책』을 쓰기 시작한다(1163년 완성).
  9. 1160년 — 공개 설교를 한다. 여러 차례 설교 여행의 시작이다.
  10. 1165년 — 라인강 건너 아이빙엔에 두 번째 수녀원을 세운다.
  11. 1179년 — 9월 17일 루페르츠베르크에서 세상을 떠난다.
  12. 2012년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공경을 보편 교회로 확대하고(5월 10일) 교회 학자로 선포한다(10월 7일).

용어 풀이

베네딕도회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따르며 기도·노동·공동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수도 전통.
봉헌자(오블라타)
가족이 하느님과 수도원에 바친 사람. 흔히 어린아이였다.
마기스트라
‘스승’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여성 수도 공동체 지도자의 칭호.
수녀원장
수녀들의 대수도원을 이끄는 사람.
단선율 음악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화음 없이 하나의 선율로만 된 음악.
교창 성가(안티폰)
전례에서 시편이나 찬가 앞뒤에 부르는 짧은 성가.
도덕극
의인화된 덕과 악덕이 사람의 영혼을 두고 다투는 연극.
4체액설
건강이 피·점액·황담즙·흑담즙 네 체액의 균형에 달려 있다는 고대 의학 이론.
교회 학자
가르침이 특히 중요하다고 인정된 성인에게 가톨릭교회가 주는 칭호.
파문
교회가 신자를 성사와 교회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처벌.

묻고 답하기

힐데가르트는 정말 환시를 보았나요?

그녀는 어릴 때부터 보았다고 말했고, 아주 꼼꼼하게 묘사했어요. 신자들은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입니다. 역사가들은 그 주장을 시험할 수 없기에, 그녀가 환시를 어떻게 묘사하고 활용했는지를 연구합니다. 올리버 색스 같은 현대 저자는 편두통을 한 요인으로 제시하기도 했어요.

그녀의 음악을 들어 볼 수 있나요?

네. 음반이 아주 많고, 세계 곳곳의 합창단과 앙상블이 그녀의 노래를 불러요. 대부분 수녀들이 성당에서 부르도록 지은 곡이에요.

그녀는 과학자였나요?

오늘날의 뜻으로는 아니지만, 관찰과 경험, 옛 학문을 바탕으로 식물·동물·돌·인체에 관한 자세한 책을 썼어요. 일부 학자는 그녀를 독일 자연사의 창시자로 부르기도 해요.

어떤 언어로 썼나요?

주로 학문과 교회의 언어인 라틴어로 썼습니다. 신, 천사, 식물, 생활 도구 같은 것을 가리키는 약 1,000개의 창작 낱말 목록인 『알려지지 않은 언어』도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설교한 것이 왜 특별했나요?

12세기 교회에서 공개 설교는 보통 서품받은 남성의 몫이었습니다. 예언자로서의 명성과 교황의 승인 덕분에 힐데가르트는 성직자와 평신도에게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성인인가요?

공식 절차를 마치지 못한 채 수백 년 동안 성인으로 공경받았습니다. 2012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그 공경을 보편 교회로 넓히고 교회 학자로 선포했습니다.

그녀의 생애 이야기는 얼마나 믿을 만한가요?

주된 전기인 『생애』는 그녀가 죽은 뒤 거룩함을 보여 주려고 쓴 것이라 기적 이야기와 특정한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 자신의 편지와 저작, 수녀원 관련 문서가 이를 검토하고 보완하는 데 쓰입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Hildegard of Bingen. Wikipedia
  2. 힐데가르트 폰 빙엔. 위키백과
  3. Pope Benedict XVI, Apostolic Letter proclaiming Saint Hildegard of Bingen, professed nun of the Order of Saint Benedict, a Doctor of the Universal Church. The Holy See, 2012
  4. Hildegard von Bingen. Wikipedia (German)
  5. Scivias. Wikipedia
  6. Ordo Virtutum. Wikipedia
  7. Rupert of Bingen (section: Rupertsberg). Wikipedia
  8. Eibingen Abbey. Wikipedia
  9. Riesencodex. Wikipedia
  10. Barbara Newman, Sister of Wisdom: St. Hildegard’s Theology of the Feminin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7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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