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14층 건물만큼 커다란 공을 떠올려 보세요. 이 공이 바닥과 천장 꼭대기에 딱 맞닿도록 쏙 들어가게 방을 지었다고 상상해 보는 거예요. 그게 바로 로마의 판테온이에요. 둥근 방은 너비와 높이가 똑같고, 지붕은 ‘돔’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반구 모양이에요.
돔 맨 꼭대기에는 작은 집 한 채만 한 둥근 구멍이 뚫려 있어요. 유리도 없어요. 햇빛이 그리로 쏟아져 들어와 밝은 동그라미를 만드는데, 이 동그라미는 하루 동안 시곗바늘처럼 천천히 벽과 바닥 위를 옮겨 다녀요. 비가 오면 빗물이 그대로 떨어지고, 바닥에 뚫린 작은 구멍들이 물을 빼내 줘요.
옛 로마 사람들은 이 돔을 콘크리트로 만들었어요. 콘크리트는 처음엔 진흙처럼 말랑하다가 나중에 돌처럼 단단해지는 인공 돌이에요. 로마 사람들은 아주 똑똑했어요. 아래쪽에는 무거운 돌을 섞고, 위로 갈수록 구멍이 숭숭 난 가벼운 화산석을 섞어서 지붕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했지요. 철근 하나 없이도 이 돔은 1,900년 가까이 버텨 왔어요.
‘판테온’은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모든 신을 위한 곳’이라는 뜻이에요. 나중에 이 건물은 기독교 성당이 되었는데, 그 덕분에 잘 남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계속 쓰면서 돌보았거든요. 지금도 성당으로 쓰이고, 화가 라파엘로와 이탈리아의 두 왕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해요.
둥근 방 앞에는 거대한 돌기둥 열여섯 개가 받치고 있는 현관이 있어요. 기둥 하나하나가 통째로 된 화강암인데, 어른 네 명이 어깨 위에 차례로 올라선 것보다 높아요. 이 기둥들은 멀리 이집트에서 배에 실려 왔답니다.
한눈에 보기
- 건립
- 현존 건물은 약 114~125년(완공은 몇 해 늦었을 수도 있음). 트라야누스 치세에 시작해 하드리아누스 치세에 완성. 기원전 20년대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운 신전을 대체
- 장소
- 이탈리아 로마 중심부 캄푸스 마르티우스(마르스의 들판), 오늘날의 로톤다 광장
- 성격
- 로마 신전. 609년 이후 기독교 성당
- 돔
- 내부 지름 약 43.3m, 바닥에서 꼭대기까지의 높이도 같음. 철근 없는 콘크리트 돔으로는 지금도 세계 최대
- 오쿨루스
- 돔 꼭대기에 뚫린 지름 약 9m의 둥근 채광창
- 포르티코
- 이집트에서 캐 온 통돌 화강암 기둥 16개, 높이 각 약 11.9m
- 명문
- “M·AGRIPPA·L·F·COS·TERTIVM·FECIT” — “루키우스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일 때 세웠다”
- 지위
- 유네스코 세계유산 ‘로마 역사 지구’(1980)의 일부. 현재도 가톨릭 성당
쉬움
판테온은 어떤 건물인가
판테온은 로마 한복판에 있는 고대 로마 건물입니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둥이 늘어선 직사각형 현관(포르티코), 그 뒤의 높다란 벽돌 덩어리, 그리고 돔을 얹은 거대한 원형 홀(로툰다)입니다. 바깥 광장에서 보면 포르티코는 전형적인 그리스·로마 신전처럼 보입니다. 청동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야 비로소 빛이 가득한 거대한 원형 공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날 보는 건물은 2세기 초 트라야누스 황제와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지어졌습니다. 이 건물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자 장군이며 사위였던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기원전 20년대에 세운 첫 판테온을 대신한 것입니다. 첫 건물은 불타서 다시 지어지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완전히 새 건물로 바뀌었습니다.
판테온이 유명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지름 약 43.3m의 돔입니다. 이 돔은 1,30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이었고, 철근 없는 콘크리트로 지은 돔으로는 지금도 가장 큽니다. 둘째, 완벽한 비례입니다. 바닥에서 돔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로툰다의 지름과 같아서, 상상 속의 공 하나가 안에 꼭 맞게 들어갑니다. 셋째, 보존 상태입니다. 고대 로마의 주요 건물 가운데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지붕도 그대로이고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609년부터 판테온은 기독교 성당이 되었고, 공식 이름은 산타 마리아 아드 마르티레스(성모 마리아와 순교자들의) 성당입니다. 로마 역사 지구를 아우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일부이며, 이탈리아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기념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쉬움
건물을 ‘읽는’ 법: 신전의 얼굴에서 우주를 닮은 돔으로
판테온에 들어가는 일은 익숙한 것에서 놀라운 것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포르티코는 정면에 기둥 8개, 그 뒤로 4개씩 두 줄이 더 서 있어 모두 16개입니다. 기둥 위에는 한때 청동 조각을 얹었던 삼각형 박공(페디먼트)과 아그리파의 이름을 새긴 유명한 명문이 있습니다. 로마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전’이라고 알아보는 모습이었습니다.
포르티코와 로툰다 사이에는 흔히 ‘중간 구조체’라고 부르는 높은 직사각형 덩어리가 있습니다. 신전 정면의 직선과 로툰다 원통의 곡선이라는 전혀 다른 두 모양을 잇는 역할을 했습니다. 건축가들은 오래전부터 이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포르티코 지붕 위쪽 벽에는 더 높은 두 번째 박공의 윤곽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공사 도중 계획이 바뀌었다는 가설이 나왔습니다.
내부의 원형 바닥은 색색의 대리석과 화강암을 네모와 동그라미 무늬로 깔았습니다. 원통 벽은 위아래 두 층으로 나뉩니다. 아래층에는 커다란 벽감 여덟 개가 있습니다. 입구, 그 맞은편의 큰 앱스, 그리고 기둥으로 테를 두른 나머지 여섯 개입니다. 위층(아틱)에는 원래 대리석 판과 작은 창이 띠를 이루었는데, 지금 보이는 모습의 상당 부분은 1747년에 새로 꾸민 것이고, 20세기에 원래 설계의 한 구간이 복원되었습니다.
그 위로 돔이 솟아 있습니다. 돔 안쪽 면은 ‘코퍼(격간)’라고 부르는 움푹 들어간 판이 28개씩 다섯 줄로 덮고 있으며, 위로 갈수록 작아집니다. 코퍼는 돔을 가벼워 보이게 하고 실제 무게도 줄이며, 시선을 꼭대기의 열린 눈, 곧 오쿨루스로 끌어올립니다. 많은 학자가 이 돔을 하늘의 이미지로 읽어 왔습니다. 재건축 뒤 약 100년이 지나 글을 쓴 로마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도 이미 건물 이름이 하늘을 닮은 둥근 지붕에서 왔을지 모른다고 적었습니다.
이 건물의 가장 중요한 장식은 빛입니다. 창이라고는 오쿨루스 하나뿐이어서, 해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동안 햇빛 원반이 코퍼와 벽 위를 옮겨 다니며 건물 전체를 거대한 해시계처럼 만듭니다.
쉬움
돔: 로마 콘크리트가 가능하게 한 것
로마 콘크리트(오푸스 카이멘티키움)는 석회와 물, 그리고 로마와 나폴리만 일대에서 나는 ‘포촐라나’라는 화산재를 섞고, 여기에 골재라고 부르는 돌덩이나 깨진 벽돌을 넣어 만들었습니다. 포촐라나는 석회와 화학 반응을 일으켜 젖은 환경에서도 굳는 튼튼한 모르타르가 됩니다. 이 재료 덕분에 로마 건축가들은 전에 없던 규모의 볼트와 돔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판테온을 지은 사람들은 높이에 따라 골재를 바꾸었습니다. 기초와 아래쪽 벽에는 무거운 트래버틴을, 그 위에는 깨진 기와와 응회암을, 돔 꼭대기 부근에는 부석 같은 아주 가벼운 화산석을 썼습니다. 돔의 두께도 아래쪽 약 6.4m에서 오쿨루스 주변 약 1.2m로 점점 얇아집니다. 위쪽이 가벼울수록 바깥으로 밀어내는 힘이 줄어드는데, 바로 이 힘이 돔을 금 가게 하거나 무너뜨리는 원인입니다.
돔 바깥쪽 아랫부분에는 계단 모양의 고리가 여러 겹 둘러져 있습니다. 바깥으로 밀어내는 힘을 버텨야 하는 바로 그 자리에 무게를 더해 주는 장치입니다. 두께가 약 6m인 원통 벽도 속이 꽉 찬 것이 아니라, 숨겨진 방과 벽돌 ‘하중 분산 아치’가 들어 있어 무게를 여덟 개의 주요 기둥과 폭 약 7m의 고리 모양 콘크리트 기초로 흘려보냅니다.
지름 약 9m의 오쿨루스 둘레에는 벽돌 고리가 있어 압축 링 역할을 합니다. 꼭대기를 비워 둠으로써 돔에서 가장 무겁고 짓기 어려운 부분을 아예 없앤 셈입니다. 철근 없이도 재료와 형태를 영리하게 쓰면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 주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공학자들은 판테온을 연구합니다.
중급
아그리파의 판테온과 명문의 수수께끼
첫 판테온은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가 캄푸스 마르티우스 개발 사업의 하나로 세웠습니다. 캄푸스 마르티우스는 옛 도심 북쪽의 낮은 평지로, 아그리파는 이곳에 목욕장 등 여러 공공건물도 지었습니다. 카시우스 디오는 판테온의 완공을 기원전 25년으로 적었습니다. 디오에 따르면 아그리파는 안에 아우구스투스의 조각상을 두고 건물에 그의 이름을 붙이려 했으나 아우구스투스가 거절했고, 그래서 안에는 신격화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상을, 현관에는 아우구스투스와 자신의 상을 세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건물이 새 황실과 얼마나 긴밀히 얽혀 있었는지 보여 줍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의 발굴에서 지금 포르티코 밑에 이전 건물의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아그리파의 신전도 지금처럼 북쪽을 향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형태나 원형 건물이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그리파의 건물은 80년 화재로 손상되어 도미티아누스 때 복구되었고, 트라야누스 치세인 110년 무렵 벼락을 맞아 다시 불탔습니다.
지금 건물 정면의 명문에는 실제로 다시 지은 황제가 아니라 아그리파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후기 로마의 황제 전기 모음인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하드리아누스가 판테온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복원하면서 자기 이름 대신 원래 건립자의 이름을 새겼다고 전합니다. 이 명문 때문에 학자들은 수백 년 동안 건물 전체가 아그리파 시대의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202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카라칼라 황제의 보수를 기록한 작은 명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그리파 명문의 청동 글자는 원래 자리의 홈에 끼운 현대의 복제품이지만, 이 두 번째 명문은 건물이 로마 시대 내내 관리되고 수리되었음을 일깨워 줍니다.
중급
판테온 짓기: 연대, 재료, 물류
현존 건물의 연대를 알려 주는 핵심 증거는 벽돌이 마르기 전에 찍은 도장, 곧 벽돌 인장입니다. 로마의 벽돌 공방들은 제품에 이름을, 때로는 집정관 연도까지 찍었습니다. 독일 출신 미국 역사학자 허버트 블로흐는 1959년의 고전적 연구에서 판테온의 벽돌 인장을 분석해 대부분이 115~125년 무렵의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로써 현존 건물이 아우구스투스 시대가 아니라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확립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리세 헤틀란 같은 학자들이 벽돌 인장으로 볼 때 공사가 트라야누스 치세인 114년 무렵 시작되었고, 117년에 즉위한 하드리아누스는 물려받은 사업을 마무리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견해를 따르면 설계자는 트라야누스의 포룸과 시장을 설계한 대공학자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로스였을 수도 있습니다. 매력적인 가설이지만 증명되지는 않았습니다. 판테온의 건축가를 밝힌 고대 기록은 없습니다. 하드리아누스 자신이 건축에 열성적인 아마추어였기에 그를 설계자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이것도 직접 증거는 없습니다.
포르티코의 화강암 기둥은 제국 전역에 걸친 공급망을 보여 줍니다. 회색 화강암 기둥은 이집트 동부 사막의 몬스 클라우디아누스에서, 분홍색 기둥은 아스완에서 왔습니다. 기둥 하나는 높이 약 11.9m, 무게 약 60톤입니다. 이 기둥들을 나일강까지 끌고 가 강을 따라 내려간 뒤, 지중해를 건너 오스티아 항구에 이르고, 다시 테베레강을 거슬러 로마까지 옮겨야 했습니다.
여러 학자가 포르티코 기둥이 건물에 비해 너무 짧아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중간 구조체에 남은 ‘유령 박공’은 설계자들이 처음에는 50로마피트짜리 기둥을 계획했다가 40피트짜리를 썼음을 시사합니다. 건축사학자 마크 윌슨 존스는 큰 기둥을 제때 구하지 못해 설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고, 라번 테일러는 그처럼 거대한 기둥을 현장에서 세우는 일 자체가 문제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계획 변경이나 앞마당 설계와 관련된 다른 설명도 있습니다. 이 논쟁은 이름난 건물조차 타협의 산물이었음을 일깨워 줍니다.
중급
무엇을 위한 건물이었나: 종교, 제국, 하늘
그토록 유명하지만, 판테온이 고대에 무엇에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모든 신의’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름은 여러 신 또는 모든 신을 모신 신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카시우스 디오 자신도 확신하지 못해, 마르스와 베누스를 비롯한 여러 신의 상이 있어서 그렇게 불렸을 수도 있고 둥근 지붕이 하늘을 닮아서일 수도 있다고 썼습니다. ‘모든 신’을 위한 제의와 전담 사제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로마의 정규 국가 신전 목록에도 이 건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디오는 하드리아누스가 판테온에서 재판을 열고 관리들을 접견했다고도 기록합니다. 그래서 많은 역사가는 이 건물을 단순한 신전 이상으로 봅니다. 황제가 신들과 신격화된 선대 황제들의 상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며, 로마의 통치가 신이 정한 우주 질서의 일부라는 생각을 표현한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황실의 다른 기념물들과 가까운 위치, 그리고 아우구스투스와의 연관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빛의 움직임은 천문학적 해석을 낳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해나와 줄리오 마글리 같은 연구자들은 특정한 날, 예컨대 로마의 전통적 건국 기념일인 4월 21일 정오에 오쿨루스로 들어온 햇빛이 입구를 비추도록 설계되어, 건물에 들어서는 황제가 빛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정렬이 우연이거나 증명할 수 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돔이 하늘을 떠올리도록 의도되었고 빛이 설계의 일부였다는 점입니다.
로마인에게 원과 구는 우주, 그리고 완전함과 깊이 연결된 모양이었습니다. 원통 위에 반구를 얹어 상상 속의 구를 품은 판테온의 기하학은, 이런 생각을 관람객이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건축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중급
신전에서 성당으로: 로마 이후의 판테온
4세기 말 기독교가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된 뒤 로마의 많은 이교 신전은 버려지거나 석재 채취장이 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판테온은 그 운명을 피했습니다. 609년 비잔티움 황제 포카스가 이 건물을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게 넘겼고, 교황은 5월 13일 이곳을 성모 마리아와 모든 순교자에게 바치는 성당으로 봉헌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카타콤에서 순교자들의 유골을 여러 수레 실어 와 제대 밑에 모셨다고 합니다. 이로써 판테온은 로마에서 가장 먼저 성당으로 바뀐 신전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당이 되었다고 모든 손실을 피한 것은 아닙니다. 663년 로마를 방문한 비잔티움 황제 콘스탄스 2세는 지붕의 금박 청동 기와를 벗겨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실어 보냈습니다. 730년대에 교황 그레고리오 3세가 돔을 납으로 다시 덮었습니다. 중세에는 건물이 요새처럼 쓰였고, 주위에 집과 가게가 들어섰으며, 종탑이 세워졌습니다.
1620년대에 바르베리니 가문 출신 교황 우르바노 8세는 포르티코 지붕의 청동 들보를 떼어 냈습니다. 금속 대부분은 녹여서 산탄젤로 성의 대포를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이것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베르니니 청동 천개(발다키노)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기껏해야 일부만 사실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야만인들도 하지 않은 짓을 바르베리니가 했다(Quod non fecerunt barbari, fecerunt Barberini)”라는 라틴어 농담으로 이를 비꼬았습니다. 같은 무렵 포르티코에 덧붙인 작은 종탑 두 개는 ‘당나귀 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베르니니 탓으로 여겨졌는데, 1883년에 철거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판테온은 무덤 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화가 라파엘로가 1520년 본인의 뜻에 따라 이곳에 묻혔고, 다른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뒤에는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1878년에 묻혔고, 그의 아들 움베르토 1세와 마르게리타 왕비도 이곳에 안장되었습니다. 건물은 지금도 미사가 열리는 성당이며, 2023년부터는 관리 비용에 쓰일 소액의 입장료를 받고 있습니다.
중급
영향: 세계에서 가장 많이 모방된 건물
온전히 살아남았기에 판테온은 후대 건축가들에게 로마 건축의 가장 직접적인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건축가들은 이 건물을 집요하게 재고 그렸습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 대성당의 돔(1436년 완공)을 짓기 전에 로마 건물들을 연구했습니다. 이 돔은 판테온과 비슷한 폭이지만 구조는 전혀 다릅니다. 안드레아 팔라디오는 『건축 4서』(1570)에 판테온의 상세한 도면을 실어 유럽 곳곳에 그 모습을 퍼뜨렸습니다.
신전식 포르티코와 돔을 얹은 로툰다의 조합은 성당, 도서관, 박물관, 의회 건물의 표준 공식이 되었습니다. 아리차의 베르니니 성당, 베를린의 성 헤드비히 대성당, 버지니아 대학교에 토머스 제퍼슨이 지은 로툰다, 몰타의 모스타 로툰다, 그리고 수많은 대학과 관청 건물이 그 예입니다. 파리의 팡테옹은 이름과 함께 국가 위인들의 안식처라는 발상까지 빌려 왔습니다.
판테온은 국가와 제국의 권력에 관한 생각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20세기에 알베르트 슈페어는 히틀러의 베를린을 위해 계획했으나 짓지 못한 거대한 돔 홀의 영감을 판테온에서 얻었습니다. 한 건물이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를 표현하는 데 다시 쓰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공학자들에게 판테온은 재료의 내구성을 가늠하는 시험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로마 콘크리트가 어떻게 균열과 풍화를 견디는지에 관한 현대 연구는 흔히 이 돔이 철근 없이 어떻게 19세기 가까이 버텼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심화
학계의 논쟁: 연대, 건축가, 설계 변경, 기능
연대. 블로흐의 벽돌 인장 연구(1959)는 하드리아누스 시대 완공을 확립했지만, 벽돌 인장은 벽돌을 사용한 시점이 아니라 만든 시점을 알려 줄 뿐이며, 쌓아 둔 벽돌은 몇 년 뒤에 쓰일 수도 있었습니다. 110년대 인장의 분포는 114년 무렵 트라야누스 치세 착공설의 근거가 되었고, 봉헌 시점은 흔히 125~128년 사이로 봅니다. 하드리아누스가 로마에 머문 시기가 한정되어 있었기에 역사가들은 그의 여행 일정과 공사를 연결해 보려 했지만 확실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설계자.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로스 설은 트라야누스 시대 건물, 특히 트라야누스 시장과의 양식·기술적 유사성, 그리고 트라야누스 시대 착공설에 기대고 있습니다. 카시우스 디오는 하드리아누스가 건축 문제로 아폴로도로스와 다툰 뒤 그를 추방하고 죽였다는 이야기를 전하지만, 이 일화의 신빙성은 의심스럽습니다. 판테온은 한 천재의 작품이라기보다 황실 건설 조직 안에서 일한 한 팀의 결과물로 보는 편이 타당할 수 있습니다.
포르티코 문제. 포르티코와 중간 구조체의 불일치는 정밀 실측으로 분석되어 왔습니다. 50피트 기둥을 계획했으나 40피트 기둥을 썼다는 마크 윌슨 존스의 주장은 널리 인용되지만, 건물이 정말 ‘결함’이 있는지, 아니면 의도된 배치인지 묻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 논쟁은 방법론의 교훈을 줍니다. 완성된 건물에서 설계 의도를 복원하려면 시공 순서, 석조 이음매, 재료 물류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능과 의미. 해석은 여러 신을 모신 평범한 신전, 아우구스투스와 신격화된 황제들과 연결된 왕조의 성소, 황제의 접견 홀, 우주론적 기념물까지 다양합니다. 이들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토드 마더와 마크 윌슨 존스가 엮은 책(2015)은 이런 질문과 건물의 후대 역사에 관한 최근 연구를 한데 모았습니다.
심화
증거, 보존, 로마 콘크리트의 과학
판테온에 관한 문헌 사료는 많지 않습니다. 3세기 초의 카시우스 디오가 아그리파의 건물과 하드리아누스의 새 건물 사용에 관한 주요 기록을 남겼고,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하드리아누스의 복원을 언급하며, 『교황 연대기(Liber Pontificalis)』 같은 후대 기독교 사료는 보니파시오 4세의 성당 전환과 콘스탄스 2세의 청동 기와 반출을 기록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건물 자체에서 추론해야 합니다.
그래서 판테온은 건축 고고학의 도구로 연구되어 왔습니다. 실측 조사, 시공 이음매 분석, 벽돌 인장, 화강암과 대리석의 암석학, 포르티코 주변과 아래의 발굴이 그것입니다. 20세기 말부터는 레이저 스캐닝과 컴퓨터 모델링으로 돔이 하중을 어떻게 나누는지, 고대에 생긴 균열이 안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같은 구조 가설을 검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돔에는 아마도 초기 침하와 지진 때문에 생긴 균열이 있지만 여전히 안정적입니다. 공학자들은 금이 간 돔이 일련의 아치처럼 작동하고, 무거운 원통 벽과 아래쪽의 계단형 고리가 이를 붙잡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현대의 보존 작업으로는 1930년대의 후대 도장 제거, 2000년대 초의 지붕 보수와 내부 회반죽 강화, 그리고 지속적인 구조 변위 감시가 있습니다.
석회 덩어리 알갱이와 화산재의 화학 반응에 관한 연구를 비롯한 로마 콘크리트 연구는 더 오래가고 탄소 배출이 적은 현대 재료의 실마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만 신중해야 합니다. 판테온이 살아남은 것은 콘크리트의 화학 덕분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사용과 관리, 녹스는 철근이 없다는 점, 그리고 역사의 운이 함께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핵심 개념
- 로툰다와 돔
- 반구형 돔을 얹은 원형 홀. 판테온은 높이와 지름이 같아 내부에 상상 속의 구가 꼭 들어간다.
- 오쿨루스
- 돔 꼭대기의 열린 ‘눈’. 건물의 유일한 창으로, 햇빛을 움직이는 빛의 원반으로 바꾼다.
- 골재를 달리한 콘크리트
- 아래는 무거운 골재, 위는 가벼운 화산석을 쓰고 두께를 점점 줄여 돔의 무게와 바깥으로 미는 힘을 줄였다.
- 신전 정면과 볼트 공간의 만남
- 전통적인 열주 현관은 신전임을 알리고, 그 뒤의 로툰다는 로마 콘크리트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다.
- 황제의 우주
- 건물은 신들과 하늘, 황실을 하나로 잇는다. 하드리아누스는 이곳에서 재판과 접견을 했다.
- 재사용을 통한 보존
- 609년 성당으로 바뀐 덕분에 1,400년 동안 관리되었다.
- 건축의 본보기
- 포르티코와 돔의 공식은 전 세계의 성당, 도서관, 대학, 관청 건물에서 되풀이되었다.
기록
- 약 기원전 25년 —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캄푸스 마르티우스에 첫 판테온 완공(카시우스 디오는 기원전 25년으로 기록).
- 80년 — 화재로 아그리파의 건물 손상. 이후 도미티아누스 때 복구.
- 약 110년 — 트라야누스 치세, 벼락을 맞아 다시 불탐.
- 약 114년 — 트라야누스 치세에 현존 판테온 착공으로 추정.
- 약 125년 — 하드리아누스 치세에 새 판테온 완공. 정면에 아그리파의 이름을 다시 새김.
- 202년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카라칼라가 건물을 보수하고 두 번째 명문을 남김.
- 609년 — 교황 보니파시오 4세가 판테온을 성모 마리아와 순교자들의 성당으로 봉헌.
- 663년 — 비잔티움 황제 콘스탄스 2세가 금박 청동 지붕 기와를 떼어 감.
- 1520년 — 화가 라파엘로가 판테온에 묻힘.
- 약 1625년 — 교황 우르바노 8세가 포르티코 지붕의 청동을 떼어 내 ‘바르베리니’ 풍자를 낳음.
- 1883년 — 17세기에 덧붙인 종탑 ‘당나귀 귀’ 철거.
- 1980년 — 판테온을 포함한 로마 역사 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용어 풀이
- 포르티코
- 건물 앞쪽에 기둥으로 지붕을 받친 현관.
- 페디먼트(박공)
- 고전 신전 정면의 기둥 위에 얹은 삼각형 부분.
- 로툰다
- 대개 돔을 얹은 원형 건물이나 방.
- 코퍼(격간)
- 천장이나 돔에 움푹 들어가게 만든 판. 장식이자 무게를 줄이는 장치.
- 오쿨루스
- 라틴어로 ‘눈’. 둥근 구멍으로, 여기서는 돔 꼭대기의 채광창.
- 포촐라나
- 나폴리 부근 포추올리와 로마 일대에서 나는 화산재. 로마 콘크리트의 핵심 재료.
- 골재
- 콘크리트에 섞는 돌, 벽돌, 기와 조각.
- 벽돌 인장
- 벽돌 공방이 벽돌에 찍은 도장. 연도가 들어 있기도 해서 로마 건물의 연대를 정하는 중요한 도구.
- 모놀리스(통돌)
- 판테온의 기둥처럼 하나의 커다란 돌덩이로 된 것.
- 캄푸스 마르티우스
- ‘마르스의 들판’. 고대 로마의 평지로, 나중에 공공건물로 가득 찼다.
- 봉헌
- 건물이나 물건을 신성하게 만드는 의식. 판테온이 성당이 될 때 행해졌다.
묻고 답하기
판테온 안에 비가 들이치나요?
네. 오쿨루스에 유리가 없어서 비가 그대로 떨어져요. 대리석 바닥이 아주 살짝 볼록하고 작은 배수 구멍이 있어서 물이 빠져나가요.
돔은 왜 무너지지 않았나요?
위쪽에는 가벼운 재료를 쓰고, 올라갈수록 얇게 만들고, 아래쪽 둘레에 무게를 더하고, 꼭대기는 비워 두었기 때문이에요. 고대부터 꾸준히 돌본 것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판테온은 누가 지었나요?
기원전 20년대에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첫 판테온을 지었습니다. 현존 건물은 114년 무렵 트라야누스 때 시작해 하드리아누스 때 완성했습니다. 건축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드리아누스가 지었는데 왜 명문에는 아그리파의 이름이 있나요?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하드리아누스는 복원한 건물에 원래 건립자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명문은 아그리파의 첫 건립을 기리는 것입니다.
판테온은 지금도 성당인가요?
네. 609년부터 가톨릭 성당이며 지금도 미사가 열립니다.
하드리아누스 시대라는 연대는 얼마나 확실한가요?
벽돌 인장은 하드리아누스 시대 완공을 보여 주지만, 벽돌을 쓴 때가 아니라 만든 때를 알려 줍니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공사가 114년 무렵 트라야누스 때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포르티코와 로툰다는 왜 어긋나 보이나요?
더 높은 박공의 윤곽이 남아 있어 원래 더 높은 기둥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공급 문제, 시공의 어려움, 설계 변경 가운데 무엇이 원인인지 학자들이 논쟁하고 있습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Pantheon, Rome. Wikipedia(영어)
- 판테온 (로마). 위키백과
- Historic Centre of Rome, the Properties of the Holy See in that City Enjoying Extraterritorial Rights and San Paolo Fuori le Mura.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 Hadrian. Wikipedia(영어)
- Marcus Agrippa. Wikipedia(영어)
- Roman concrete. Wikipedia(영어)
- William L. MacDonald, The Pantheon: Design, Meaning, and Progeny. Harvard University Press, 1976
- Mark Wilson Jones, Principles of Roman Architecture. Yale University Press, 2000
- Tod A. Marder, Mark Wilson Jones 편, The Pantheon: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함께 보기
- 파르테논 신전기원전 5세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세운 아테나 여신의 신전이다.
- 하기아 소피아532년부터 537년까지 비잔티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를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지은 대성당이다.
- 로마 건국전통적으로 로마의 건국 연도는 기원전 753년으로 전해지지만, 그 날짜와 로물루스 이야기는 후대의 전승에 속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사상가로, 처신과 의무에 관한 사적인 성찰을 『명상록』에 남겼다.
-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년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물러난 사건은 흔히 서로마 제국의 종말을 나타내는 기준으로 쓰인다.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