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천 년 전 일본에는 헤이안쿄라는 도시가 있었어요. 지금의 교토예요. 그곳에는 천황과 함께 시와 음악, 고운 옷, 달구경 잔치를 좋아하는 귀족들이 살았지요. 황후를 모시던 한 여성이 두꺼운 책 여러 권을 가득 채울 만큼 긴 이야기를 썼어요. 사람들은 그녀를 무라사키 시키부라고 불렀어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겐지라는 왕자예요. 너무 잘생기고 재주가 많아서 사람들은 그를 ‘빛나는 겐지’라고 불렀지요. 하지만 겐지는 아주 어릴 때 엄마를 잃고, 평생 사랑을, 그리고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을 찾아다녀요.
겐지는 시를 짓고, 악기를 연주하고, 사랑에 빠지고, 실수도 하고, 한동안 도읍에서 쫓겨나기도 해요. 겐지가 나이 들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요. 그의 자식과 손자들이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이야기를 이어 가지요.
그 시절 사람들은 우리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듯 짧은 시를 주고받았어요. 이 책의 인물들이 주고받는 시가 800편 가까이 돼요! 종이 색과 먹의 빛깔을 고르고, 편지에 꽃가지를 묶어 보내기도 했답니다.
이 책이 특별한 까닭은 사람의 마음속을 보여 주기 때문이에요. 슬픔, 질투, 외로움, 기쁨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설 가운데 하나로 꼽고, 일본에서는 지금도 그림과 만화, 영화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어요.
한눈에 보기
- 시기
- 11세기 초. 1008년에 일부가 읽히고 있었고 1021년경에는 전체가 알려져 있었음
- 장소
- 헤이안쿄(교토). 헤이안 시대(794~1185) 일본의 수도
- 작가
- 무라사키 시키부(973/978년경 ~ 1014년경 이후), 쇼시 중궁의 뇨보(궁녀). 마지막 장들의 저자 문제는 논쟁 중
- 언어
- 주로 가나(히라가나)로 쓴 고전 일본어
- 형식
- 54첩으로 된 모노가타리(산문 이야기), 와카 800편 가까이 수록
- 구성
- 겐지의 생애(1~41첩), 과도기(42~44첩), 다음 세대를 그린 우지 10첩(45~54첩)
- 의의
- 일본 문학의 대표 고전. 흔히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 가운데 하나로 불림
쉬움
『겐지 이야기』란 무엇인가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겐지 모노가타리)는 11세기 초 일본에서 쓰인 장편 산문 서사로, 일반적으로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여성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천황의 아들 히카루 겐지(‘빛나는 겐지’)의 생애와 사랑을 따라가고, 이어 다음 세대의 삶을 그린다. 현대 번역으로 천 쪽이 훌쩍 넘는 54첩(帖, 장)이 오늘날 교토인 헤이안쿄의 궁정 귀족 사회를 무대로 펼쳐진다.
이 작품은 ‘모노가타리’, 곧 ‘사물을 이야기함’이라는 갈래에 속한다. 당시 정치와 학문의 언어였던 한문이 아니라 일본어로 쓰는 이야기다. 앞선 모노가타리는 『다케토리 이야기』처럼 짧거나 환상적이거나 일화 중심인 경우가 많았다. 『겐지 이야기』는 수십 년에 걸쳐 나이 들고, 기억하고, 변해 가는 실감 나는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켜 이 갈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작품은 깊은 심리 묘사, 작은 몸짓과 분위기에 대한 섬세한 주의,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애수로 유명하다. 궁정 사람들이 마음을 전하던 31음절의 시 ‘와카’가 800편 가까이 들어 있다. 이런 까닭에 흔히 세계 최초의 소설 가운데 하나로 불리지만, 무엇을 ‘소설’로 볼지는 그 자체로 논쟁거리다.
쉬움
줄거리: 빛나는 왕자와 그다음 세대
이야기는 한 천황이 신분이 높지 않은 후궁 기리쓰보 고이를 총애하는 데서 시작한다. 경쟁자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던 그녀는 어린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궁정 파벌 싸움을 걱정한 천황은 아들이 정쟁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신하의 신분으로 내리고 미나모토(源) 성을 준다. ‘겐지’란 ‘미나모토 씨’라는 뜻이다. 눈부시게 재능 있는 청년으로 자란 겐지는 죽은 어머니를 꼭 닮은 아버지의 새 후궁 후지쓰보를 사랑하게 되고, 둘 사이의 비밀스러운 아이는 천황의 아들로 자라 훗날 레이제이 천황이 된다.
겐지는 사랑을 찾아 여러 인연을 거친다. 자존심 강한 정실부인 아오이는 출산 뒤 질투심 많은 로쿠조 부인의 살아 있는 원령에 시달리다 죽고, 가냘픈 유가오는 버려진 집에서 알 수 없는 죽음을 맞는다. 무엇보다 겐지는 후지쓰보의 어린 조카 무라사키를 어린 나이에 데려와 기르고, 뒷날 가장 중요한 반려로 삼는다. 추문에 휘말린 겐지는 쓸쓸한 바닷가 스마와 아카시로 물러나 지내는데, 그곳에서 만난 아카시 부인의 딸은 훗날 중궁이 된다.
권력에 복귀한 겐지는 거대한 저택 로쿠조인을 짓고 인연 맺은 여인들을 모은다. 그러나 만년에 어린 온나산노미야(셋째 황녀)와 혼인하면서 무라사키는 깊은 상처를 받고, 황녀는 젊은 귀족 가시와기와 밀통해 아들 가오루를 낳는다. 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를 기르게 된 겐지는 젊은 날 자신이 저지른 죄가 되돌아왔음을 깨닫는다. 무라사키는 병들어 죽는다. 제목만 있고 본문이 없는 「구모가쿠레」(구름 속으로 사라지다)첩이 겐지의 죽음을 묘사 없이 암시한다.
마지막 10첩은 주로 도읍 남쪽 우지를 무대로, 출생의 비밀에 괴로워하는 진지한 가오루와 겐지의 정열적인 외손자 니오우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두 사람이 세 자매에게 다가가는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맏이 오이기미는 결혼하느니 차라리 쇠약해져 죽음을 택하고, 두 남자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막내 우키후네는 강에 몸을 던지려다 구조되어 비구니가 된다. 작품은 가오루가 다른 남자가 그녀를 숨겨 두었을까 의심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끝난다. 놀랄 만큼 열린 결말이다.
중급
역사적 배경: 헤이안 궁정과 후지와라 섭관 정치
794년 일본 조정은 당나라 수도 장안을 본떠 바둑판처럼 구획한 새 수도 헤이안쿄로 옮겼다. 이어지는 헤이안 시대(794~1185)는 고도로 세련된 귀족 문화로 이름 높다. 무라사키가 살던 무렵 실권은 천황보다 후지와라 북가(北家)에 있었다. 이들은 딸을 천황에게 시집보내고 다음 천황의 외할아버지가 되어 섭정·관백(셋쇼·간파쿠)으로 정치를 좌우했는데, 이를 섭관 정치라 한다.
후지와라노 미치나가(966~1028)는 이 체제의 정점에 선 인물이었고, 무라사키가 모신 그의 딸 쇼시는 훗날의 천황 두 명을 낳았다. 정치는 혼인과 출산, 그리고 후궁의 위신을 통해 움직였다. 중궁의 살롱을 빛내기 위해 교양 있는 뇨보들이 뽑혀 왔고, 문학은 궁정 경쟁의 일부가 되었다. 작품이 혼인 정치와 신분, 평판에 그토록 민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무렵 세계를 보면 중국은 송나라, 한반도는 고려, 남인도는 전성기의 촐라 제국, 이집트는 파티마 왕조가 다스리고 있었다. 일본은 9세기 말 견당사 파견을 멈추었고, 한문 학문이 여전히 권위를 지닌 가운데 독자적인 궁정 문화, 이른바 국풍 문화(国風文化)가 꽃피었다. 불교는 시대의 상상력을 깊이 물들였다. 흔히 1052년에 시작된다고 여겨진 말법(末法), 곧 불법이 쇠퇴하는 시대에 들어선다는 믿음도 그중 하나다.
중급
여성, 가나, 그리고 일본어로 글쓰기
헤이안 시대의 공문서와 역사서, 학문은 한문(일본에서는 ‘간분’이라 부름)으로 쓰였고, 궁정 남성들은 한문에 능해야 했다. 9~10세기에 한자를 간략하게 만든 표음 문자 ‘가나’가 발달했다. 그중 흘려 쓴 형태인 히라가나는 여성의 글쓰기와 사적인 시·편지에 밀접하게 쓰였기에 ‘온나데(女手, 여자의 글씨)’라고도 불렸다. 물론 남성도 가나를 썼다.
가나 덕분에 경어와 미묘한 어미, 감정의 결을 지닌 궁정의 구어 일본어를 유려하게 적을 수 있게 되었다. 10세기 말~11세기 초 궁정 여성들은 가나로 놀라운 산문을 쏟아 냈다. 『가게로 일기』,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 이즈미 시키부와 무라사키 자신의 일기, 조금 뒤의 『사라시나 일기』 등이다. 『겐지 이야기』는 이 전통의 정점이다.
그러면서도 『겐지 이야기』에는 중국 문학이 깊이 배어 있다. 첫 첩은 사랑하는 후궁을 잃은 황제를 노래한 당나라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를 떠올리게 하고, 작품 곳곳에 중국 역사와 앞선 일본 시가에 대한 인유가 엮여 있다. 여성이 한문을 아는 것을 흉으로 여기던 시대라 무라사키는 자신의 한문 실력을 감춰야 했지만, 그 지식으로 작품에 깊이와 울림을 더했다.
중급
주요 주제와 기법
중심 주제는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불교의 가르침, 무상(無常)이다. 아름다움, 사랑, 권력, 젊음은 모두 지나가고, 인물들은 가장 화려한 순간에 오히려 이를 가장 절실히 느낀다. 여기에 전생의 행위가 지금의 인연과 불운을 낳는다는 숙세(宿世, 스쿠세) 관념이 긴밀히 얽힌다. 겐지가 후지쓰보와 저지른 죄는 가오루의 탄생으로 되돌아온다. 많은 인물, 특히 여성들은 출가를 통해 벗어나려 한다.
작품은 대리와 그리움의 문제도 파고든다. 겐지는 어머니를 닮은 후지쓰보를, 후지쓰보를 닮은 무라사키를 사랑한다. 우지 10첩에서 가오루는 죽은 오이기미를 대신할 사람을 우키후네에게서 찾는다. 이런 ‘유카리(ゆかり, 연고·닮은 이)’의 사슬은 작품에 메아리 같은 구조를 부여하며, 과연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대신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서술 기법도 놀랍다. 화자는 종종 수다스러운 뇨보처럼 말하며 논평하고, 머뭇거리고, 모른다고 발뺌한다. 인물은 거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관직이나 거처, 시구로 지칭된다. 의미의 상당 부분은 결정적 순간에 주고받는 와카, 계절의 변화, 옷과 향과 필적 같은 세부로 전달된다. 제2첩에서 젊은 귀족들이 여성의 유형을 품평하는 유명한 ‘비 오는 밤의 품평’(아마요노 시나사다메), 그리고 겐지가 공식 역사서가 놓치는 진실을 이야기가 드러낸다며 허구를 옹호하는 대목은 작가가 자기 예술을 성찰하는 장면이다.
중급
필사본, 주석서, 그리고 판본
작가의 친필본은 남아 있지 않다. 헤이안 시대에 이 이야기는 독자들이 빌려서 베끼는 필사본으로 퍼졌고, 그 과정에서 차이가 늘어났다. 『사라시나 일기』의 작가는 1021년 무렵 ‘50여 첩’을 한꺼번에 얻어 밤낮으로 읽던 기쁨을 적었는데, 작품 전체가 이미 유통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이른 증언이다.
13세기 초 가인이자 학자인 후지와라노 데이카(1162~1241)가 ‘아오뵤시본(青表紙本, 푸른 표지본)’이라 불리는 본문을 정리했고, 비슷한 무렵 미나모토노 미쓰유키와 아들 지카유키는 다른 계통의 ‘가와치본(河内本)’을 만들었다. 현대 판본 대부분은 데이카 계통, 특히 15세기 필사본인 ‘오시마본(大島本)’을 바탕으로 다른 사본으로 보완한 것이다. 2019년에는 데이카가 직접 만든 제5첩 「와카무라사키」 사본이 도쿄에서 다시 발견되어 문헌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겐지 이야기』는 방대한 주석 전통을 낳았다. 후대 독자들에게 고어와 궁정 관습, 인유를 풀어 줄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4세기의 『가카이쇼(河海抄)』, 에도 시대 독자층을 크게 넓힌 기타무라 기긴의 『고게쓰쇼(湖月抄)』(1673)가 대표적이다. 20세기에는 가인 요사노 아키코가 처음으로 현대 일본어 번역을 내놓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엔치 후미코, 세토우치 자쿠초 등의 번역이 뒤를 이었다.
중급
미술과 문학, 그리고 세계에 남긴 유산
일본 안에서 『겐지 이야기』는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12세기 말 가인 후지와라노 슌제이는 『겐지 이야기』를 읽지 않고 와카를 짓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선언했고, 이 작품은 가인의 필수 교양이 되었다. 노(能), 후대의 모노가타리, 에도 시대의 패러디와 대중 그림책이 모두 여기서 소재를 얻었다. 도쿠가와 미술관과 고토 미술관에 나뉘어 소장된 12세기 전반의 두루마리 그림 『겐지 이야기 에마키』는 현존하는 가장 이른 일본 두루마리 그림 가운데 하나이며, ‘겐지 그림’은 이후 수백 년 동안 회화·병풍·칠기의 주요 장르가 되었다.
에도 시대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1730~1801)는 이 작품의 핵심이 불교나 유교의 교훈이 아니라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 곧 사물의 정취에 깊이 감응하는 마음이라고 주장했다. 이 해석은 ‘일본적’ 미의식을 규정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오늘날 학계는 이를 여러 읽기 가운데 하나로 본다.
세계적으로는 스에마쓰 겐초가 1882년 부분 영역본을 냈지만, 작품을 영어권에 널리 알린 것은 아서 웨일리의 번역(1925~1933)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 첫 권에 찬탄 어린 서평을 썼다.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최초의 영어 완역(1976)을 냈고, 로열 타일러(2001), 데니스 워시번(2015)이 뒤를 이었다. 한국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 등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야마토 와키의 만화 『아사키유메미시』와 여러 영화도 나왔다. 일본은 1008년 일기 기록을 근거로 2012년부터 11월 1일을 ‘고전의 날’로 기념하며, 2000엔권 지폐에는 겐지 두루마리 그림의 한 장면이 실려 있다.
심화
학계의 쟁점: 저자, 집필 순서, 해석
54첩 모두를 한 사람이 썼을까? 작품 대부분을 무라사키 시키부의 것으로 보는 근거는 그녀의 일기와 이른 시기의 전승이며, 이는 널리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우지 10첩(45~54첩)은 분위기와 무대가 달라 중세부터 다른 사람의 손을 의심하는 독자가 있었다. 가인 요사노 아키코는 무라사키의 딸 다이니노 산미가 후반부의 상당 부분을 썼다고 보았다. 어휘와 문법에 대한 문체·통계 연구가 양쪽 주장에 모두 동원되었고, 지금은 대부분의 학자가 전체를 무라사키의 작품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확정할 수는 없다고 인정한다.
집필 순서도 쟁점이다. 첩의 번호는 이야기 순서일 뿐, 쓰인 순서라는 보장은 없다. 20세기 중엽 학자 다케다 무네토시는 「하하키기」와 다마카즈라 연작 등 일부 첩(이른바 ‘b계’)이 나중에 쓰여 원래의 ‘a계’ 사이에 끼워졌다는 가설을 내놓았는데, 영향력은 컸지만 논란도 많다. 작품이 처음부터 전체 구상 아래 쓰였는지,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에피소드식으로 자라났는지도 여전히 논의된다.
해석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중세 불교 주석가들은 때로 이 작품을 집착에 대한 비유로 읽었고, 무라사키가 허구를 지은 죄로 지옥에 떨어졌다는 전설까지 생겼다. 유교적 독자들은 부도덕에 대한 경계로, 노리나가는 모노노아와레로 읽었다. 현대 연구에는 여성에게 가해진 제약, 그리고 결혼을 거부하거나 벗어나는 오이기미·우키후네 같은 인물에 주목하는 페미니즘적 읽기, 원령 빙의와 질병에 관한 연구, 혼인과 정치에 대한 역사적 읽기가 있다. ‘최초의 소설’인지에 대해서도 그리스·로마 소설이나 산스크리트 『카담바리』 같은 앞선 작품을 드는 반론이 있다.
심화
1차 사료와 문헌 증거
연대를 정하는 핵심 외부 사료는 동시대 일기다.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1008~1010년 기록)는 이 이야기와 궁정에서의 정본 제작을 언급하며, 이치조 천황이 이야기를 읽게 하고 들은 뒤 작가가 『일본서기』를 읽었음에 틀림없다며 그 학식을 칭찬했다는 유명한 대목도 있다. 수십 년 뒤에 쓰였지만 1020~1021년 무렵의 일을 적은 『사라시나 일기』는 그 무렵 50여 첩이 존재했음을 보여 준다. 두 사료를 합치면 작품 대부분은 대략 11세기 첫 20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 된다.
본문 전승은 복잡하다. 학자들은 필사본을 크게 세 계통으로 나눈다. 데이카와 관련된 아오뵤시본 계통, 가와치본 계통, 그리고 두 계통에 속하지 않는 잡다한 ‘별본(別本)’이다. 차이는 작은 자구에서 긴 이문까지 다양하다. 이른 시기의 단편도 계속 나타나는데, 2008년 교토에서 가마쿠라 시대 제6첩 사본이 확인된 것이 한 예다. 분량 있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이 작품 성립 후 약 200년이 지난 가마쿠라 시대(1185~1333)의 것이므로, 무라사키가 쓴 정확한 자구는 되찾을 수 없다.
시각 자료도 중요하다. 12세기 겐지 두루마리 그림은 서예로 쓴 본문과, 지붕을 걷어 내고 위에서 실내를 내려다보는 ‘후키누키야타이(吹抜屋台)’ 기법의 그림을 결합한다. 그 본문은 일부 첩의 자구를 보여 주는 가장 오래된 증거에 속하며, 작가보다 약 한 세기 뒤의 독자들이 이야기 속 세계를 어떻게 상상했는지도 알려 준다.
심화
독자와 연구자를 위한 방법론적 유의점
어느 언어로 읽든 『겐지 이야기』 읽기는 처음부터 해석을 동반한다. 원문은 인물 이름이나 문장의 주어를 거의 쓰지 않고, 누가 행동하는지를 경어 표현으로 드러낸다. 번역자는 누가 말하는지, 인물을 무엇이라 부를지, 와카를 어떻게 옮길지 정해야 한다. 웨일리의 우아한 번역은 자유롭게 재배열하고 생략하며(제38첩을 뺐다), 사이덴스티커는 간결하고, 타일러는 궁정 관직명을 살리고 관습에 꼼꼼히 주석을 달며, 워시번은 심리적 명료함과 가독성을 추구한다. 번역본을 비교하는 일 자체가 작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일본의 주요 고전문학 전집에 실린 현대 학술 판본은 주로 오시마본을 저본으로 한 주석본이며 이문과 해설을 함께 싣는다. 연구자는 판본이 어떤 저본을 쓰는지 확인하고, 어떤 인쇄본도 무라사키가 쓴 그대로의 말로 여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끝으로 작품 속 젠더와 권력은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어린 무라사키를 데려와 기르는 일을 비롯한 겐지의 몇몇 관계는 현대 독자에게 불편하게 다가오며, 화자 자신도 그것이 낳는 고통을 자주 드러낸다. 아내가 친정에 살고 남편이 찾아가는 방처혼(訪妻婚) 같은 헤이안 시대의 혼인 관습을 이해하면, 그 해악을 변명하지 않으면서도 당시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핵심 개념
- 모노노아와레
- ‘사물의 정취’. 스러져 가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슬픔에 깊고 조용히 감응하는 마음으로,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이를 작품의 핵심으로 보았다.
- 무상(無常)
- 모든 것은 변하고 끝난다는 불교의 가르침. 특히 후반부의 분위기를 짙게 물들인다.
- 숙세(宿世)
- 인연과 불운이 전생의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믿음. 작품은 이를 통해 운명과 반복을 설명한다.
- 유카리(대리)
- 다른 이를 닮았기에 사랑하는 구조. 겐지의 어머니·후지쓰보·무라사키, 뒤에는 오이기미·우키후네로 이어진다.
- 모노가타리
- 일본의 산문 이야기 갈래. 『겐지 이야기』는 이를 짧거나 환상적인 이야기에서 내면을 그리는 사실적 장편으로 바꾸었다.
- 와카 증답
- 인물들은 31음절 와카로 소통한다. 드러내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시가 실어 나르며, 산문을 시가 전통과 이어 준다.
- 미야비
- 궁정의 세련과 우아함. 옷차림·필적·음악·몸가짐에서 헤이안 귀족이 추구한 미적 이상이다.
기록
- 794년 — 수도를 헤이안쿄(교토)로 옮기며 헤이안 시대가 시작됨.
- 약 973년 — 무라사키 시키부가 후지와라 가문의 방계에서 태어남(973~978년경).
- 1001년 — 남편 후지와라노 노부타카 사망. 이 과부 시절에 집필을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음.
- 약 1005년 —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딸 쇼시 중궁을 모시는 뇨보가 됨(1005~1006년경).
- 1008년 — 일기에 이 이야기가 언급됨. 이 기록이 일본 ‘고전의 날’(11월 1일)의 근거.
- 약 1021년 — 『사라시나 일기』의 작가가 50여 첩을 얻어 읽음(1020~1021년경).
- 약 1120년 — 두루마리 그림 『겐지 이야기 에마키』 제작(12세기 전반).
- 약 1225년 — 후지와라노 데이카가 아오뵤시본 본문을 정리(13세기 초).
- 1673년 — 기타무라 기긴의 주석서 『고게쓰쇼』로 에도 시대 독자층이 넓어짐.
- 약 1799년 —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겐지 모노가타리 다마노오구시』가 모노노아와레론을 제시.
- 1925년 — 아서 웨일리의 영어 번역 출간 시작(~1933).
- 1976년 —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최초의 영어 완역을 출간.
용어 풀이
- 헤이안 시대
- 수도가 헤이안쿄였던 794년부터 1185년까지의 일본사 시대.
- 모노가타리
- ‘사물을 이야기함’. 흔히 와카가 섞여 있는 일본의 산문 이야기.
- 와카
- 5·7·5·7·7의 31음절로 된 일본 고전 시가. 단카라고도 한다.
- 가나·히라가나
- 한자에서 만들어진 일본의 표음 문자. 히라가나는 궁정 여성 산문 대부분에 쓰인 흘림 문자다.
- 간분(한문)
- 일본에서 쓰인 문어 한문. 공문서와 학문에 사용되었다.
- 섭정·관백
- 후지와라 가문이 흔히 외손자인 천황을 대신해 정치를 한 관직.
- 우지 10첩
- 우지를 주 무대로 가오루·니오우·우키후네를 그린 마지막 10첩(45~54첩).
- 아오뵤시본
- 후지와라노 데이카의 ‘푸른 표지본’. 대부분의 현대 판본의 조상이다.
- 에마키
- 그림과 글을 결합한 두루마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치며 본다.
- 후키누키야타이
- ‘지붕 걷어 낸 집’. 건물 내부를 위에서 내려다보게 그리는 회화 기법으로, 겐지 두루마리 그림에 쓰였다.
묻고 답하기
『겐지 이야기』가 세계 최초의 소설인가요?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긴 산문 이야기라서 흔히 그렇게 불립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소설과 산스크리트 『카담바리』가 더 이르기 때문에, 많은 학자는 ‘가장 이른 소설 가운데 하나’ 또는 ‘최초의 위대한 심리소설’이라고 부르는 편을 택합니다.
누가 썼나요?
11세기 초 헤이안 궁정의 뇨보 무라사키 시키부의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10첩을 그녀가 썼는지 의심하는 학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체를 그녀의 작품으로 받아들입니다.
얼마나 긴가요?
54첩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완역본은 대략 1,100~1,300쪽이며, 이야기는 약 75년의 세월과 수백 명의 인물을 아우릅니다.
결말은 어떻게 되나요?
겐지는 결말보다 한참 앞서 세상을 떠납니다. 마지막 첩들은 가오루와 니오우, 그리고 비구니가 되는 젊은 여인 우키후네를 따라갑니다. 작품은 가오루가 다른 남자가 그녀를 숨겨 두었을까 의심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끝나며, 이것이 완결인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인물들에게 왜 진짜 이름이 없나요?
헤이안 귀족들은 사적인 것으로 여겨진 실명을 부르기를 피했습니다. 인물들은 관직·지위·거처, 혹은 관련된 시구로 불립니다. ‘무라사키’ ‘유가오’ ‘우키후네’는 첩 제목이나 와카에서 독자들이 붙인 별칭입니다.
모노노아와레는 무슨 뜻인가요?
흔히 ‘사물의 정취’로 옮기며, 오래가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감응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18세기 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이것이 『겐지 이야기』와 일본 문학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는데, 영향력은 크지만 논쟁적인 견해입니다.
어떤 번역으로 읽으면 좋을까요?
한국어로는 여러 완역본과 축약본이 나와 있으니 주석이 충실한지 확인하고 고르면 좋습니다. 영어로는 궁정 문화에 충실하고 주석이 꼼꼼한 로열 타일러(2001), 읽기 쉬운 데니스 워시번(2015), 간결한 사이덴스티커(1976), 아름답지만 자유롭고 일부가 빠진 웨일리(1925~1933)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축약본으로 시작하는 독자도 많습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The Tale of Genji. Wikipedia
- 겐지 이야기. 위키백과
- Murasaki Shikibu. Wikipedia
- The Diary of Lady Murasaki. Wikipedia
- Sarashina Nikki. Wikipedia
- Genji Monogatari Emaki. Wikipedia
- Heian period. Wikipedia
- Motoori Norinaga. Wikipedia
- Murasaki Shikibu; trans. Royall Tyler, The Tale of Genji (translation). Viking, 2001
- Haruo Shirane, The Bridge of Dreams: A Poetics of ‘The Tale of Genji’. Stanford University Press, 1987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