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버지니아 울프

Adeline Virginia Woolf (결혼 전 성 Stephen)

1915–1941년 · 런던, 영국

한 문장으로

버지니아 울프는 사람의 생각과 기억이 흘러가는 모습을 따라가는 새로운 소설 쓰기를 발명하고,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영국 작가다.

버지니아 울프
이미지: George Charles Beresford / Adam Cuerden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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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생각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걸 느껴 본 적 있나요? 학교 가는 길에 빨간 문을 보다가 갑자기 몇 년 전 생일잔치가 떠오르기도 하지요.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 마음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지금과 추억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어요.

버지니아는 1882년 런던에서 책이 가득한 대가족의 딸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유명한 작가였어요. 남자 형제들은 좋은 학교와 대학에 갔지만, 버지니아와 언니는 대부분 집에서 공부해야 했어요. 버지니아는 아버지의 큰 서재에서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런던에서 딱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한 부인이 파티에 쓸 꽃을 사러 시내를 걷는 동안, 그녀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려줘요. 또 다른 소설 『등대로』는 바닷가로 휴가를 간 가족이 등대에 가려고 계획하는 이야기이자, 시간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이야기예요.

버지니아와 남편 레너드는 작은 인쇄기를 사서 식당에 놓았어요. 두 사람은 손으로 책을 찍었고, 이 작은 취미는 ‘호가스 출판사’라는 진짜 출판사로 자랐어요.

버지니아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유명한 글도 썼어요. 그 글에서 셰익스피어에게 오빠만큼 똑똑한 여동생이 있었다고 상상했지요. 하지만 그 여동생은 학교에도 못 가고 글도 쓰지 못하게 되었을 거라고요.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 돈과, 문을 닫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버지니아는 마음의 병을 자주 앓아서 오랫동안 몹시 슬프거나 아플 때가 많았어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지금 그녀의 책은 온 세계에서 읽히고 있어요.

한눈에 보기

생애
1882년 1월 25일(런던) – 1941년 3월 28일(서식스 로드멜 근처)
가족
비평가 레슬리 스티븐과 줄리아 스티븐의 딸. 화가 버네사 벨의 동생. 1912년 레너드 울프와 결혼
모임
런던의 작가·예술가·지식인 모임인 블룸즈버리 그룹의 중심인물
장편소설
『출항』(1915), 『밤과 낮』(1919), 『제이콥의 방』(1922), 『댈러웨이 부인』(1925), 『등대로』(1927), 『올랜도』(1928), 『파도』(1931), 『세월』(1937), 『막간』(1941)
에세이
『보통의 독자』(1925), 『자기만의 방』(1929), 『3기니』(1938)와 수백 편의 서평·에세이
출판
1917년 레너드 울프와 호가스 출판사 공동 설립
기법
흔히 ‘의식의 흐름’이라 불리는 내적 독백과 자유간접화법, 시간과 다중 시점의 실험
유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토대를 놓은 인물

쉬움

버지니아 울프는 누구인가

버지니아 울프는 영국의 소설가·에세이스트·비평가·출판인으로, 20세기 초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T. S. 엘리엇 등과 함께 모더니스트로 꼽힌다. 모더니스트들은 옛 방식의 이야기로는 현대의 삶을 담을 수 없다고 믿었다.

울프의 소설은 대부분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극적 사건의 연쇄, 곧 플롯에서 벗어나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다. 인물이 순간순간 무엇을 알아차리고, 기억하고, 두려워하고, 바라는지를 따라간다. 소설 한 권이 단 하루에 벌어지기도 하고, 몇백 쪽 안에 몇 세기가 흘러가기도 한다. 그녀는 소설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시간이 실제로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보여 주기를 원했다.

울프는 날카롭고 재치 있는 에세이스트이기도 했다. 독서와 다른 작가들, 무엇보다 여성과 글쓰기에 관한 그녀의 에세이는 지금도 널리 읽힌다. 1928년 케임브리지의 여학생들에게 한 강연을 바탕으로 쓴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출발점이 된 책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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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어린 시절: 책과 슬픔이 가득한 집

애덜린 버지니아 스티븐은 1882년 1월 25일 런던 사우스켄싱턴의 하이드파크게이트 22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 경은 이름난 비평가이자 등산가였고 『영국 인명사전』의 편집자였다. 어머니 줄리아는 이름난 미인으로 라파엘전파 화가들의 모델이기도 했다. 부모 모두 재혼이었기 때문에 버지니아는 친형제 버네사·토비·에이드리언, 이부형제 조지·제럴드·스텔라 덕워스 등 여덟 아이가 함께 사는 큰 집에서 자랐다.

가족은 1894년까지 해마다 여름을 콘월의 세인트아이브스에 있는 탤런드 하우스에서 보냈다. 집에서는 바다와 고드레비 등대가 보였다. 울프는 훗날 이 여름들을 어린 시절 가장 행복한 기억이라고 불렀고, 이는 『등대로』의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상실도 많았다. 버지니아가 열세 살이던 1895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처음으로 심각한 신경 쇠약을 겪었다. 어머니 대신 집안을 돌보던 이부언니 스텔라도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울프는 훗날 자신과 버네사가 이부오빠 제럴드와 조지 덕워스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썼고, 많은 전기 작가가 이 경험을 그녀가 겪은 고통과 연결한다.

케임브리지에 간 남자 형제들과 달리 버지니아는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킹스 칼리지 런던의 여성부에서 그리스어·라틴어·독일어·역사 강의를 조금 들었지만, 대부분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혼자 공부했다. 아들과 딸이 받는 교육의 이 차이는 훗날 그녀의 에세이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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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블룸즈버리, 결혼, 호가스 출판사

1904년 레슬리 스티븐이 세상을 떠나자 스티븐가의 네 남매는 당시 인기 없던 동네인 블룸즈버리의 고든스퀘어 46번지로 이사했다. 토비는 케임브리지 친구들을 불러 목요일 저녁마다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 비공식 모임이 ‘블룸즈버리 그룹’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전기 작가 리턴 스트레이치, 미술 비평가 로저 프라이, 화가 덩컨 그랜트, 소설가 E. M. 포스터, 그리고 나중에 레너드 울프가 이 모임에 속했다. 이들은 예술과 성과 정치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며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과 결별한 것으로 유명했다.

1906년 토비는 가족과 그리스 여행을 다녀온 뒤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 상실 역시 울프의 소설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1910년 그녀는 이른바 ‘드레드노트 장난’에 가담했다. 친구들이 에티오피아 왕자 일행으로 분장하고 얼굴을 검게 칠해 영국 해군을 속이고 전함을 견학한 사건으로, 당시 큰 추문이 되었고 지금은 인종적 분장이라는 점에서도 비판적으로 논의된다.

1912년 버지니아는 작가이자 정치 사상가로, 실론(스리랑카)에서 식민지 관리로 일했던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다. 레너드는 유대인이었고 집안도 그녀보다 넉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에 긴장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는 평생 그녀의 글쓰기를 지지했다.

1917년 울프 부부는 작은 수동 인쇄기를 사서 리치먼드의 집 호가스 하우스 식당에 설치했다. 첫 출판물 『두 편의 이야기』에는 두 사람이 한 편씩 쓴 단편이 실렸는데, 버지니아의 작품은 「벽 위의 자국」이었다. 호가스 출판사는 이후 T. S. 엘리엇의 『황무지』(1923), 러시아 작가들의 번역,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영어 번역,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이후 책 전부를 펴냈다. 자기 출판사가 있었기에 그녀는 외부 편집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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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소설들

울프의 첫 두 장편 『출항』(1915)과 『밤과 낮』(1919)은 형식 면에서 비교적 전통적이다. 단편집 『월요일 혹은 화요일』(1921),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청년의 삶을 다른 사람들이 본 조각들로 들려주는 장편 『제이콥의 방』(1922)에서 그녀는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댈러웨이 부인』(1925)은 1923년 6월 어느 하루 런던에서 벌어진다. 보수당 정치인의 아내 클러리사 댈러웨이는 저녁 파티를 준비한다. 그녀의 생각은 현재와 젊은 시절 사이를 오가며, 옛 친구 샐리 시턴에 대한 감정과 결혼하지 않은 남자 피터 월시를 떠올린다. 이와 나란히, 전쟁 후유증(셸 쇼크)을 앓는 참전 군인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가 의사들에게 외면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사람은 끝내 만나지 않지만, 그의 죽음 소식이 클러리사의 파티에 전해진다. 빅벤의 종소리가 시간을 알리며, 울프가 붙인 가제는 ‘시간들(The Hours)’이었다.

『등대로』(1927)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창」에서는 램지 가족과 손님들이 헤브리디스 제도의 여름 별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어린 제임스는 등대에 가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는 날씨가 나쁠 것이라고 말한다. 짧은 가운데 부분 「시간이 흐르다」는 빈집이 허물어져 가는 10년을 그리며, 괄호 속 짧은 문장으로 램지 부인과 두 아이의 죽음을 알린다. 「등대」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돌아와 마침내 등대로 떠나고, 화가 릴리 브리스코는 그림을 완성한다. 이 작품은 울프가 기억하는 부모의 모습에 기대고 있다.

『올랜도』(1928)는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1928년까지 300년 넘게 살며 어느 날 여자로 깨어나는 귀족을 그린 장난기 어린 ‘전기’다. 작가 비타 색빌웨스트와의 친밀하고 연애 감정이 깃든 우정에서 영감을 받았다. 가장 실험적인 소설 『파도』(1931)는 여섯 친구가 어린 시절부터 중년까지 들려주는 독백들로 이루어지며, 그 사이사이 바다 위로 해가 하루를 지나가는 모습을 그린 시적인 단락이 끼어든다. 전쟁 직전 어느 마을의 야외 역사극이 열리는 날을 배경으로 한 마지막 소설 『막간』은 그녀가 죽은 1941년에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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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마음을 쓰다: 기법과 시간

울프는 「현대 소설」(1919, 1925년 개정)과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1924) 같은 에세이에서 소설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녀는 아널드 베넷 같은 앞 세대 소설가들이 집과 수입과 옷은 꼼꼼히 묘사하면서 인물의 내면은 놓친다고 비판했다. 작가는 마음에 떨어지는 인상들, 곧 ‘셀 수 없는 원자들의 끊임없는 소나기’를 떨어지는 순서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에세이에서는 ‘1910년 12월 무렵 인간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도발적으로 주장했다.

그녀의 기법은 흔히 ‘의식의 흐름’이라 불리지만, 비평가들은 보통 더 정확하게 ‘자유간접화법’이라고 설명한다. 서술자는 3인칭을 유지하면서도 인물의 어휘와 리듬과 감정을 그대로 빌려 쓰고, 때로는 한 단락 안에서도 이 사람의 마음에서 저 사람의 마음으로 옮겨 간다. 『댈러웨이 부인』에서는 지나가는 자동차나 하늘에 글자를 쓰는 비행기가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서 다음 사람에게로 넘겨주는 고리가 된다.

울프는 시계의 시간과 느끼는 시간의 차이에 매료되었다. 일기에서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을 쓰면서 인물 뒤에 기억의 동굴을 파내는 ‘터널 파기’ 방법을 발견했다고 적었다. 회고록 「과거의 스케치」에서는 평범한 나날의 솜뭉치 같은 시간 속에서 도드라지는 강렬한 깨달음의 순간을 ‘존재의 순간’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많은 소설이 이런 순간들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그녀는 리듬과 소리에도 세심하게 귀를 기울였다. 특히 『파도』는 ‘극시(playpoem)’라고도 불리며, 울프 자신도 플롯이 아니라 리듬에 맞추어 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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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자기만의 방』과 『3기니』

1928년 10월 울프는 케임브리지의 두 여자 대학 뉴넘과 거턴에서 ‘여성과 소설’을 주제로 두 차례 강연했고, 이를 늘려 『자기만의 방』(1929)을 썼다. 핵심 주장은 낭만적이라기보다 유물론적이다.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천재성에는 여가, 교육, 사생활, 자신감이 필요한데, 여성은 수백 년 동안 그 모든 것을 빼앗겨 왔다는 것이다.

울프는 이 점을 생생하게 보여 주려고 셰익스피어만큼 재능 있는 여동생 주디스 셰익스피어를 지어낸다. 주디스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배우가 되려고 런던으로 도망치지만 조롱과 착취를 당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재능을 헛되이 잃는다. 울프는 애프라 벤,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같은 여성 작가들을 살피며 그들이 글을 쓴 조건이 작품을 어떻게 빚었는지 묻는다. 또 가장 위대한 정신은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을 함께 지닌 ‘양성적(androgynous)’ 정신이라고 제안한다.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고 유럽에 파시즘이 번지던 때 쓴 『3기니』(1938)는 더 어둡고 급진적인 책이다. 전쟁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고 묻는 편지에 답하는 형식으로, 울프는 군국주의를 교육·전문직·가정의 가부장적 구조와 연결하고, 여성은 전쟁을 만드는 제도에 들어가기보다 ‘아웃사이더 협회’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울프는 수백 편의 에세이와 서평도 썼는데, 그 가운데 많은 글이 『보통의 독자』(1925)와 그 두 번째 권(1932)에 실렸다. 그녀는 덜 알려진 삶, 잊힌 여성, 독서의 즐거움에 관해 쓰며 현대 문학 에세이의 틀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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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병, 전쟁, 죽음

울프는 평생 여러 차례 심한 정신 질환을 겪었다. 1895년 어머니의 죽음 뒤, 1904년 아버지의 죽음 뒤, 그리고 자살을 시도한 1913년에 큰 위기가 있었다. 깊은 우울과 불안, 때로는 환청이 따랐고, 당시의 방식대로 주로 강제 휴식으로 치료받았다. 후대의 의사와 전기 작가들은 여러 진단을 내놓았고 양극성 장애가 가장 자주 거론되지만, 사후 오랜 뒤의 진단은 어디까지나 불확실하다.

병이 그녀의 일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에세이 「아픈 것에 대하여」(1926)와 셉티머스 스미스라는 인물을 통해 병을 다루었는데, 『댈러웨이 부인』에서 의사들이 셉티머스를 다루는 방식은 당대 의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수십 년 동안 일기를 쓰고 수천 통의 편지를 쓸 만큼 왕성하게 작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두려움을 몰고 왔다. 1940년 폭격으로 울프 부부의 런던 집들이 부서졌다. 레너드는 유대인이었고 두 사람 모두 파시즘에 반대한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독일이 영국을 침공하면 함께 목숨을 끊기로 했다. 1941년 초 『막간』을 끝낸 울프는 또다시 병이 닥쳐오는 것을 느꼈다. 1941년 3월 28일 그녀는 레너드와 버네사에게 작별 편지를 남기고, 외투 주머니에 돌을 채운 채 서식스 로드멜의 집 멍크스 하우스 근처 우즈강에 몸을 던졌다. 유해는 그 집 정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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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영향과 유산

울프가 죽은 뒤 수십 년 동안 그녀의 평판은 다소 가라앉았다. 일부 비평가는 그녀를 섬세한 상류층 탐미주의자로 보았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비평이 그녀를 중심인물로 끌어올렸다. 『자기만의 방』은 잊힌 여성 작가를 되찾는 연구 분야 전체를 낳았고, 그 제목은 하나의 구호가 되었다.

앤 올리비에 벨이 엮은 다섯 권짜리 일기(1977~1984)와 나이절 니컬슨·조앤 트라우트먼이 엮은 여섯 권짜리 서간집이 출간되면서, 울프는 명석하고 재미있으며 정치적으로 깨어 있는 작가로 새롭게 드러났고 방대한 연구가 뒤따랐다. 그녀의 소설은 지금 전 세계에서 연구되며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 영향은 매체와 문화를 넘나든다. 울프의 삶과 『댈러웨이 부인』을 읽거나 그 삶을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엮은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디 아워스』(1998)는 퓰리처상을 받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올랜도』는 영화와 연극으로 각색되었고,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2)는 그녀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의식과 젠더와 시간을 쓰는 본보기로 그녀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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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비평의 쟁점

페미니즘과 양성성. 페미니즘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울프에 대한 평가는 갈렸다. 일레인 쇼월터는 『그들만의 문학』(1977)에서 『자기만의 방』의 양성적 정신이라는 이상이 여성의 분노와 경험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려는 도피라고 비판했다. 토릴 모이는 『성/텍스트의 정치학』(1985)에서 울프의 변화무쌍하고 아이러니한 문체 자체가 고정된 정체성을 흔든다고 반박하며, 그녀를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이론과 함께 읽었다. 이 논쟁은 페미니즘 비평 전반의 방향에 영향을 주었다.

계급과 특권. 비평가들은 오래전부터 울프가 특권층의 자리에서 글을 썼고, 하인과 노동계급을 그리는 방식이 은근히 깔보는 듯할 때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 한편 그녀의 에세이가 글쓰기의 물질적 토대를 분명히 인정하고, 『3기니』 같은 작품은 그녀 자신이 속한 계급의 제도를 비판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편견과 제국. 그녀의 편지와 일기에는 유대인 남편과 살았음에도 반유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발언이 들어 있고, 그녀는 드레드노트 장난에도 가담했다. 탈식민주의 비평은 남아메리카를 배경으로 한 『출항』에서 『댈러웨이 부인』의 제국주의적 인물들까지, 그녀의 소설에 제국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 왔다. 그녀의 소설이 이런 태도를 재생산하는지 풍자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병과 예술. 울프의 정신 질환과 글쓰기의 관계를 어떻게 볼지도 쟁점이다. 초기 전기는 그녀의 삶을 비극적 병력처럼 그리기도 했지만, 허마이오니 리를 비롯한 후대 작가들은 그녀의 강인함과 규율과 유머를 강조하며 소설을 증상으로 읽는 것을 경계한다. 장애학과 정신의학사 연구도 그녀가 받은 치료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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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사료와 전기

울프는 그 세기에 가장 자료가 풍부한 작가 가운데 하나다. 출간된 작품 말고도 1915년부터 1941년까지의 일기, 그 이전의 일지, 약 4천 통의 편지, 「과거의 스케치」 같은 회고록(『존재의 순간들』, 1976년 출간), 그리고 영국도서관, 뉴욕 공립도서관 버그 컬렉션, 서식스 대학교 등에 보관된 원고와 타자 원고가 있다.

첫 본격 전기는 조카 쿠엔틴 벨이 썼다(1972). 가족 문서와 기억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가족과 블룸즈버리 그룹의 안쪽에서 쓴 전기이기도 했다. 허마이오니 리의 『버지니아 울프』(1996)는 현대의 표준 전기로 널리 인정받는다. 이 책은 일기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독자와 전기 작가들이 만들어 온 여러 ‘울프’의 모습을 강조한다.

원고는 소설이 쓰이는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 준다. 예컨대 『댈러웨이 부인』의 초기 구상에서는 클러리사 자신이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예정이었고, 이 역할은 나중에 셉티머스에게 넘어갔다. 오늘날 학술 판본은 이런 이문을 기록한다. 사적인 기록을 이만큼 많이 남긴 작가를 다룰 때 전기 작가는 조심해야 한다. 일기 자체가 기분에 따라, 그리고 미래의 독자를 의식하며 다듬어진 하나의 문학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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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의식의 흐름
인물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이 일어나는 대로 그 흐름을 따라가는 글쓰기 방식.
자유간접화법
3인칭 서술이 인물의 말투와 감정을 그대로 빌려 쓰며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미끄러져 가는 기법.
존재의 순간
평범한 삶 속에서 도드라지는 드문 강렬한 깨달음의 순간을 가리킨 울프의 말.
자기만의 방
여성 작가에게는 재능만이 아니라 돈과 사생활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주장.
주디스 셰익스피어
울프가 상상한 셰익스피어의 여동생. 기회를 빼앗긴 여성의 재능이 어떻게 버려지는지 보여 준다.
양성적 정신
가장 위대한 작가는 남성적·여성적 관점을 함께 지닌다는 생각. 후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었다.
느끼는 시간
시계의 시간과 경험하는 시간을 대비해 하루를 늘이거나 몇 년을 압축하는 울프 소설의 시간.

기록

  1. 1882년 — 1월 25일 런던에서 애덜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태어나다.
  2. 1895년 — 어머니 줄리아 스티븐이 세상을 떠나고, 첫 신경 쇠약을 겪다.
  3. 1904년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남매가 블룸즈버리의 고든스퀘어로 이사하다.
  4. 1906년 — 오빠 토비가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나다.
  5. 1912년 — 레너드 울프와 결혼하다.
  6. 1915년 — 첫 장편 『출항』을 펴내다.
  7. 1917년 — 레너드와 호가스 출판사를 세우고 첫 책 『두 편의 이야기』를 찍다.
  8. 1925년 — 『댈러웨이 부인』과 『보통의 독자』를 펴내다.
  9. 1927년 — 『등대로』를 펴내다.
  10. 1928년 — 『올랜도』를 펴내다. 케임브리지 강연을 하고 이를 『자기만의 방』(1929)으로 펴내다.
  11. 1931년 — 『파도』를 펴내다.
  12. 1938년 — 『3기니』를 펴내다.
  13. 1941년 — 3월 28일 우즈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다. 『막간』이 사후 출간되다.

용어 풀이

모더니즘
현대의 경험을 표현하려고 형식을 실험한 20세기 초의 예술 운동.
블룸즈버리 그룹
런던 블룸즈버리 지역의 스티븐 남매를 중심으로 모인 영국 작가·예술가·지식인의 비공식 모임.
내적 독백
인물의 생각을 엿듣듯 일어나는 그대로 보여 주는 서술.
셸 쇼크
제1차 세계대전 중과 이후 병사들이 겪은 심리적 외상을 가리키던 말.
에세이
어떤 주제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을 담은 짧은 산문.
페미니즘 비평
젠더, 여성의 글쓰기, 성별 사이의 권력관계에 주목해 문학을 연구하는 방법.
수동 인쇄기
손으로 움직이는 작은 인쇄기. 울프 부부는 활자를 직접 짜서 첫 책들을 찍었다.
독백(솔릴로퀴)
인물이 자기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는 대사. 『파도』가 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외 역사극(페전트)
역사의 장면들을 야외에서 공연하는 행사. 『막간』의 배경이 된다.

묻고 답하기

버지니아 울프는 왜 그렇게 유명한가요?

사람의 생각을 순간순간 따라가는 방식으로 소설 쓰는 법을 바꾸었고, 여성이 작가가 될 기회가 왜 그렇게 적었는지를 힘 있게 쓴 에세이를 남겼기 때문이에요.

『댈러웨이 부인』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1923년 6월 어느 하루, 클러리사 댈러웨이가 과거를 떠올리며 런던에서 파티를 준비한다. 같은 시각 참전 군인 셉티머스 스미스는 전쟁의 상처와 싸우다 죽는다. 두 이야기는 그의 죽음 소식이 파티에 전해질 때에야 만난다.

‘자기만의 방’은 무슨 뜻인가요?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독립과 시간이 없으면 천재라도 훌륭한 작품을 낼 수 없다고 울프는 말했어요.

울프가 정말 자기 책을 직접 인쇄했나요?

네. 1917년부터 레너드와 함께 식당에 둔 작은 인쇄기로 활자를 손으로 짜서 책을 찍었어요. 이 호가스 출판사는 중요한 출판사로 성장했어요.

울프의 방법은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가요?

둘 다 인물의 내면을 탐구했지만,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날것의 조각난 생각을 자주 그대로 옮긴다면, 울프는 대개 여러 마음 사이를 오가는 유연한 3인칭 서술자를 유지한다. 울프는 『율리시스』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비판했다.

울프는 어떤 정신 질환을 앓았나요?

심한 우울과 불안의 발작을 되풀이해 겪었다. 양극성 장애였다고 보는 이가 많지만, 사후 오랜 뒤에 내린 진단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울프를 두고 어떻게 의견이 갈렸나요?

일레인 쇼월터 같은 이는 양성성의 이상이 여성의 분노를 피한다고 비판했고, 토릴 모이 같은 이는 그녀의 문체가 고정된 성 정체성을 흔든다고 보았다. 이 논쟁은 페미니즘 비평 전체를 형성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Virginia Woolf. Wikipedia
  2. 버지니아 울프. 위키백과
  3. Mrs Dalloway. Wikipedia
  4. To the Lighthouse. Wikipedia
  5. The Waves. Wikipedia
  6. A Room of One’s Own. Wikipedia
  7. Hogarth Press. Wikipedia
  8. Bloomsbury Group. Wikipedia
  9. Hermione Lee, Virginia Woolf. Chatto & Windus, 1996
  10. Quentin Bell, Virginia Woolf: A Biography. Hogarth Press, 1972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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