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천 년 전 일본의 수도 헤이안쿄(지금의 교토)에 아주 영리한 여성이 살았어요. 그녀는 데이시라는 젊은 황후 곁에서 시중을 들며 말벗이 되어 주었지요. 궁정 사람들은 그녀를 세이 쇼나곤이라고 불렀어요. 눈썰미가 날카롭고, 말솜씨가 재빠르고, 머릿속에는 시가 가득했답니다.
세이 쇼나곤은 아주 특이한 공책을 썼어요. 어떤 쪽에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나 ‘얄미운 것’ 같은 목록이 있고, 어떤 쪽에는 계절 이야기가 있고, 또 어떤 쪽에는 황후와 함께 지낸 날들의 재미있고 자랑스러운 이야기가 적혀 있어요.
책은 계절 이야기로 시작해요. 봄에는 새벽이 가장 좋대요. 산 위 하늘이 조금씩 하얘지다가 발그레해지는 때 말이에요. 여름은 밤, 가을은 저녁, 겨울은 서리 내린 이른 아침이 좋다고 해요. 아름다운 순간을 알아차리는 작은 안내서 같지요.
세이 쇼나곤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어요. 말이 너무 많은 사람, 너무 오래 눌러앉는 손님, 밤에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모기에 대해서도 썼지요. 이 책을 읽으면 재치 있고 조금 깐깐한 친구의 메시지를 읽는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농담 뒤에는 슬픈 이야기도 있어요. 황후의 집안은 힘을 잃었고, 황후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세이 쇼나곤은 행복하고 빛나던 날들을 기억하기로 했지요. 이 책은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고전이 되었고, 지금도 일본 아이들은 학교에서 첫 구절을 배운답니다.
한눈에 보기
- 시기
- 주로 990년대에 쓰였고 1001~1002년 무렵 대부분 완성. 이후 덧붙인 부분이 있을 수 있음
- 장소
- 헤이안쿄(교토). 헤이안 시대(794~1185) 일본의 수도
- 작가
- 세이 쇼나곤(966년경 ~ 1025년경?), 993년 무렵부터 데이시 황후를 모신 뇨보(궁녀)
- 언어
- 주로 히라가나로 쓴 고전 일본어
- 형식
- 약 300개의 짧은 단(段)으로 이루어진 잡기. 목록(유취적 장단), 수상(隨想)적 장단, 일기적·회상적 장단
- 갈래
- 일본 수필(즈이히쓰, 隨筆) 문학의 첫 걸작으로 평가됨
- 주요 계통
- 4계통: 잡찬 형태의 산칸본·노인본, 유찬 형태의 사카이본·마에다본
쉬움
『마쿠라노소시』란 무엇인가
『마쿠라노소시』(枕草子)는 1000년 무렵 일본에서 이치조 천황의 젊은 황후 데이시(定子)를 모시던 뇨보 세이 쇼나곤(清少納言)이 쓴 짧은 산문 모음이다. 사물을 늘어놓은 목록, 자연과 사람에 대한 짧은 글, 궁정에서 겪은 일에 대한 회상이 섞여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줄거리는 없고, 각 단이 공책의 한 장처럼 따로 선다.
이 책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목소리다. 세이 쇼나곤은 자신감 있고 익살스럽게, 분명한 취향을 드러내며 쓴다. 무엇이 멋지고 무엇이 질색인지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자신의 재치 있는 응답을 자랑스럽게 적기도 한다. 많은 독자가 천 년의 시간을 건너 작가가 곧바로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고 느낀다.
일본에서는 가모노 조메이의 『호조키』(方丈記), 요시다 겐코의 『쓰레즈레구사』(徒然草)와 함께 ‘일본 3대 수필’로 꼽히며, 흔히 『겐지 이야기』와 나란히 헤이안 문학의 두 봉우리로 불린다. 또한 10세기 후반 일본 궁정의 일상과 예법, 취향을 알려 주는 가장 풍부한 자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쉬움
무엇이 담겨 있나: 목록, 수상, 회상
학자들은 보통 각 단을 세 종류로 나눈다. 일본 국문학자 이케다 기칸(池田亀鑑)이 제안한 분류다. 첫째는 목록처럼 늘어놓은 ‘유취적 장단(類聚章段)’이다. ‘산은’, ‘강은’, ‘벌레는’처럼 제목 아래 좋아하는 이름을 늘어놓은 것도 있고, ‘가슴 설레는 것’, ‘얄미운 것’, ‘귀여운 것’, ‘흥이 깨지는 것’처럼 감정별로 묶은 것도 있다. 예컨대 ‘귀여운 것’에서는 쥐 소리를 흉내 내어 부르면 폴짝폴짝 다가오는 새끼 참새를 그린다.
둘째는 자연과 계절, 일상을 짧게 스케치한 ‘수상적 장단(隨想章段)’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계절마다 가장 좋은 때를 꼽은 첫 단이다. 직접 옮겨 보면 이렇게 시작한다. “봄은 새벽. 산 능선 쪽 하늘이 차츰 희어지며 조금 밝아 오고, 보랏빛 도는 구름이 가늘게 뻗어 있는 모습.”
셋째는 ‘회상적 장단(回想章段)’, 곧 일기적 장단이다. 세이 쇼나곤은 데이시 황후의 처소에서 있었던 특정한 날들을 떠올린다. 천황과 황후 일가의 방문, 와카 겨루기, 귀족 남성들과 주고받은 재치 문답, 눈 내린 아침과 축제 같은 장면들이다. 다만 모든 단이 한 상자에 깔끔하게 들어가지는 않아서, 첫 단의 분류조차 논란이 있다.
각 단은 짧다. 몇 줄밖에 안 되는 것도 많고, 문장이 간결해 오늘날 일본 독자도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상당 부분을 읽을 수 있다. 영어 위키백과는 책 속 목록을 164개로 세며, 가장 널리 쓰이는 산칸본은 현대 편자들이 대개 300개 안팎의 단으로 나눈다.
중급
역사적 배경: 데이시 황후의 살롱과 미치나가의 부상
헤이안 시대의 실권은 천황보다 후지와라 가문에 있었다. 가문의 우두머리들은 딸을 천황에게 시집보내고, 외손자인 천황을 대신해 섭정·관백으로 다스렸다. 977년에 태어난 데이시는 관백 후지와라노 미치타카(藤原道隆)의 딸로, 990년 어린 이치조 천황의 후궁에 들어가 같은 해 중궁(中宮)이 되었다. 그녀의 처소는 화려한 문예 살롱이 되었고, 『마쿠라노소시』의 밝고 자신만만한 세계는 바로 전성기의 이 뇨보 사회다.
그 세계는 곧 금이 갔다. 995년 미치타카가 죽고, 뒤를 이은 동생 미치카네도 며칠 만에 죽자 권력은 막내 동생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에게 넘어갔다. 미치타카의 후계자로 여겨지던 데이시의 오빠 고레치카(伊周)는 밀려났고, 996년에는 그와 동생 다카이에(隆家)가 가잔 법황을 습격한 사건으로 처벌받아 도읍에서 쫓겨났다. 이후 미치나가가 조정을 장악했다.
미치나가는 어린 딸 쇼시(彰子)를 천황의 후궁에 들였고, 1000년 무렵 그녀마저 황후로 세워 처음으로 두 황후가 나란히 서는 상황을 만들었다. 쇼시가 ‘중궁’, 데이시가 ‘황후(皇后)’라는 칭호를 받았다. 데이시는 그해 말(일본력 기준, 서력으로는 1001년 1월) 아이를 낳다가 스물 남짓한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쇼시의 처소는 훗날 『겐지 이야기』의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를 뇨보로 맞았다.
『마쿠라노소시』는 이런 몰락을 배경으로 쓰였지만 그것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 일본어 위키백과가 지적하듯 곳곳에 옅은 감상이 배어 있기는 해도, 책은 대체로 황후를 우아하고 재치 있으며 존경받는 인물로 그린다. 이미 13세기 초의 평론서 『무묘조시』(無名草子)는 세이 쇼나곤이 황후의 영화로운 시절만 적고 집안의 몰락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을 훌륭한 마음가짐이라 칭찬했다. 그녀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이 작품 해석의 핵심 질문이다.
중급
여성, 가나, 그리고 궁정의 학식
헤이안 궁정의 남성은 공문서와 학문을 한문으로 써야 했다. 한자를 흘려 만든 표음 문자인 히라가나로 쓰는 일본어는 여성, 그리고 편지·와카·일기·모노가타리 같은 사적인 글과 연결되었다. 『마쿠라노소시』는 주로 히라가나로 쓰였고, 그래서 말에 가깝게 들리며 오늘날에도 비교적 읽기 쉽다.
그렇다고 여성이 한학과 단절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이 쇼나곤은 여러 유명한 일화에서 한시와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을 뽐낸다. 눈 내린 날 황후가 “향로봉의 눈은 어떠한가?” 하고 묻자, 세이 쇼나곤은 말없이 발을 걷어 올리게 한다. 발을 걷어 올리고 눈을 바라본다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구를 알아챈 것이다. 인용을 재빨리 알아보는 능력이 곧 사교의 기술이던 궁정 문화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모두가 이를 곱게 본 것은 아니다. 경쟁 관계였던 쇼시 황후를 모신 무라사키 시키부는 일기에서, 세이 쇼나곤은 무척 잘난 체하는 사람이며 똑똑한 척 한자를 마구 써 대지만 자세히 보면 모자란 데가 많다고 혹평했다. 이 날 선 평은 동시대 다른 작가가 세이 쇼나곤을 묘사한 유일한 기록이어서, 이후 그녀의 평판에 오랫동안 그림자를 드리웠다.
중급
핵심 주제와 기법: ‘오카시’, 계절, 목록의 미학
『마쿠라노소시』의 핵심 미의식은 ‘오카시(をかし)’다. 멋지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운치 있다는 뜻을 두루 담은 말로, 예리한 눈과 재빠른 머리로 무언가를 알아챘을 때의 밝고 산뜻한 즐거움을 가리킨다. 일본 문학 비평은 흔히 이것을 『겐지 이야기』의 정감 어린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와 대비한다. 『겐지 이야기』가 스러지는 것들의 슬픔에 머문다면, 『마쿠라노소시』는 그 반짝임을 즐긴다. 『마쿠라노소시』에도 ‘아와레’의 순간이 있으니 단순화된 대비이지만, 어조의 차이는 분명하다.
유명한 첫 단에서 그 기법이 드러난다. 전통 와카는 봄에는 꽃처럼 계절마다 정해진 소재를 짝지었다. 세이 쇼나곤은 그 대신 계절을 하루의 때와 짝짓는다. 봄은 새벽, 여름은 밤, 가을은 저녁, 겨울은 이른 아침이다. 후지모토 무네토시(藤本宗利) 같은 학자는 예상되는 중간 소재를 건너뛴 이 표현이 『고킨와카슈』 전통에 길든 독자들의 굳은 미의식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본다.
목록은 그녀의 가장 독창적인 발명이다. 하나의 제목 아래 사물을 묶으면 독자는 그것들을 서로 비교하게 되고, 그 비교는 자주 뜻밖이거나 우습다. ‘얄미운 것’은 바쁠 때 찾아와 한없이 수다를 떠는 손님에서, 잠들려는데 얼굴 근처에서 가냘프게 앵앵거리는 모기로 넘어간다. 목록에는 와카에 자주 나오는 명소, 곧 우타마쿠라(歌枕)도 많이 들어 있어 일본의 시적 지리를 안내하는 구실도 한다.
문체는 간결하고, 연상에서 연상으로 재빨리 건너뛴다. 국문학자 미타니 에이이치(三谷栄一)는 이를 ‘하이카이(俳諧)에 가까운 문체’의 밝은 문학이라 불렀고, 하기타니 보쿠(萩谷朴)는 목록이든 수상이든 회상이든 가리지 않고 각 단 안에서 연상의 실이 자유자재로 풀려 나간다고 평했다.
중급
책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제목은 무슨 뜻인가
이 책이 쓰인 사정은 주로 책 끝의 발문(跋文)에서 알 수 있다. 발문에 따르면 데이시의 오빠 고레치카가 천황과 황후에게 당시 값비쌌던 좋은 종이를 바쳤다. 천황 쪽에서는 그 종이에 중국의 『사기』(史記)를 베껴 썼다. 황후가 우리는 무엇을 쓸까 묻자 세이 쇼나곤이 “베개로 삼으면 되겠지요(枕にこそは侍らめ)”(산칸본의 표현)라고 대답했고, 황후는 그 종이를 그녀에게 내주었다.
‘베개(枕)’가 무슨 뜻인지를 두고 수백 년 동안 논쟁이 이어졌다. 국문학자 다나카 주타로(田中重太郎)는 여덟 가지 설을 소개했다. 대표적인 것은 머리맡에 두는 비망록이라는 설, 목록에 이름이 많으니 우타마쿠라처럼 ‘표제어’를 뜻한다는 설, 베개처럼 남에게 보이지 않는 비장본이라는 설, 그리고 『사기』의 ‘시키’를 요(敷き)에 빗댄 ‘시키타에노 마쿠라(敷妙の枕)’ 말장난이라는 설이다. 2014년 역사학자 고미 후미히코(五味文彦)는 ‘시키’를 ‘사계(四季)’와 연결해, 사계절을 베개(주제)로 쓰자는 제안이었다는 새 설을 냈다. 그렇다면 책이 계절 이야기로 시작하는 까닭도 설명된다. 또한 당시 ‘마쿠라소시’는 고유한 제목이라기보다 일반 명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발문은 이 글이 작가의 손을 벗어난 경위도 전한다. 좌중장 미나모토노 쓰네후사(源経房)가 작가의 집을 찾았을 때 그에게 내놓은 방석 위에 마침 원고가 얹혀 있었고, 그가 원고를 가져가 세상에 퍼뜨렸다는 것이다. 일본어 위키백과는 이 일을 996년 무렵으로 보면서도, 그 뒤에도 글이 계속 덧붙여졌고 간코(寛弘) 말년(1011년 무렵)에 쓰였다고 보이는 글도 있다고 설명한다. 하기타니 보쿠는 종이를 하사받았다는 이야기 자체가 작가가 지어낸 허구라고 보았다.
중급
사본과 판본: 네 갈래의 본문
세이 쇼나곤의 친필본은 남아 있지 않고, 남은 사본들은 서로 차이가 매우 크다. 이시다 조지(石田穣二)는 산칸본과 노인본은 작가가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다르다고까지 말했다. 현대 학계는 사본을 네 계통으로 나눈다. 각 단을 뒤섞인 순서로 싣는 ‘잡찬(雜纂) 형태’의 산칸본(三巻本)과 노인본(能因本), 그리고 목록·수상·회상을 종류별로 모아 재편한 ‘유찬(類纂) 형태’의 사카이본(堺本)과 마에다본(前田本)이다. 유찬 형태는 작가 이후의 누군가가 편집한 것으로 여겨진다.
산칸본에는 1228년(안테이 2년) ‘모큐구오(耄及愚翁)’라는 인물이 쓴 오쿠가키(奧書, 필사 경위를 적은 끝기록)가 있는데, 이 인물은 후지와라노 데이카(藤原定家)로 추정된다. 그는 두 부의 책을 빌려 베꼈지만 근거로 삼을 정본이 없어 의심스러운 곳을 풀지 못했다고 적었다. 원래 권수가 더 많았는데, 첫 책을 잃어 1단부터 75단까지가 없는 사본(제1류)과 이를 보충한 사본(제2류)으로 나뉜다. 무로마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완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산칸본’이라는 이름은 1928년 이케다 기칸이 붙였다.
노인본은 세이 쇼나곤과 인척 관계였던 승려 가인 노인(能因)이 가지고 있던 책이라는 오쿠가키에서 이름을 얻었다. 주요 사본으로는 가쿠슈인 대학이 소장한 무로마치 시대 사본과, 1350년 오쿠가키가 있는 하권 잔본이 있다. 17세기 초 고활자본이 이 계통을 저본으로 삼았고, 기타무라 기긴(北村季吟)의 주석서 『마쿠라노소시 슌쇼쇼』(枕草子春曙抄, 1674년 이후)도 그랬다. 그래서 약 3세기 동안 대부분의 사람이 읽은 본문은 노인본이었다.
사카이본은 사카이에 살던 사람이 가진 책을 1570년에 베꼈다는 오쿠가키에서 이름을 얻었고, 회상적 장단과 발문이 없다. 마에다본은 가가(加賀)의 마에다 가문에 전해진 단 한 부(현 마에다 육덕회 소장)뿐이다. 가마쿠라 시대 중기에 필사된 현존 최고(最古)의 사본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네 권이 남아 있고 다섯째 권은 잃어버린 것으로 보이며, 다른 계통에 없는 단도 들어 있다.
중급
일본과 세계에 남긴 유산
『마쿠라노소시』는 ‘붓 가는 대로’라는 뜻의 즈이히쓰(隨筆), 곧 느슨하게 이어진 개인적 산문 갈래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뒤이은 이 갈래의 걸작인 『호조키』(13세기 초)와 『쓰레즈레구사』(14세기)와 함께 ‘3대 수필’로 묶인다. 에도 시대에는 이 형식이 상인 독자층에게 인기를 얻었고, 모토오리 노리나가 같은 학자들도 즐겨 썼다.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마쿠라노소시』는 렌가(連歌)·하이카이·가나조시(仮名草子)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에도 시대 초에는 이를 흉내 낸 패러디 『이누마쿠라』(犬枕)까지 나왔다.
그림으로도 옮겨졌다. 14세기 초의 『마쿠라노소시 에코토바』(枕草子絵詞)는 글 일곱 대목과 그림 일곱 장면이 담긴 두루마리 한 권이 남아 있다. 먹선 위주에 입술 등에만 붉은색을 살짝 쓴 백묘(白描) 양식으로 그렸으며, 글은 산칸본 계통을 따른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번역은 이 책을 세계로 데려갔다. 1889년 T. A. 퍼셀과 W. G. 애스턴이 여섯 대목을 영어로 옮겼고, 1928년 아서 웨일리가 발췌 번역을, 1967년 아이번 모리스가 첫 영어 완역을, 2006년 메러디스 매키니가 새 완역을 냈다. 중국어로는 저우쭤런(周作人, 1961)과 린원웨(林文月, 1989)의 완역이 있고, 앙드레 보자르의 프랑스어 발췌 번역, 일본어 원문에서 곧바로 옮긴 스페인어 완역(2002)도 있다.
현대의 작가와 예술가도 계속 이 책으로 돌아온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1996년 영화 『필로우 북』은 제목과 몇몇 착상을 빌려 현대의 관능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 일본에는 소설과 만화, 현대어로 유쾌하게 다시 쓴 책들이 있고, 첫 구절은 학생들이 외운다. 그 목록들은 시대를 거슬러 보르헤스의 상상 속 목록에 견주어지기도 한다.
심화
학계의 논쟁: 집필 목적, 침묵, 작가의 목소리
핵심 해석 문제는 데이시 집안의 몰락에 대한 거의 완전한 침묵을 어떻게 읽느냐다. 『무묘조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 해석은 이를 충절과 배려로 본다. 작가가 황후의 빛나는 모습을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후지모토 무네토시는 더 나아가 이 작품이 세상을 떠난 황후의 넋을 달래려고 쓴 경모의 글이므로 몰락이 쓰이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어 위키백과가 소개하는 또 다른 해석은 자찬처럼 보이는 단들조차, 정치적으로 패배한 뒤에도 황후와 그 주변 사람들이 천황의 총애 속에서 정치와 무관한 아름다움과 취향의 세계를 살았다는 주장으로 읽는다. 반면 기시가미 신지(岸上慎二)는 995년 미치타카 사후를 다룬 단들에는 밑바닥에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고 느꼈다.
비판도 있었다. 20세기 일본의 몇몇 학자는 이 책을 얕거나 좁다고 보았다. 다마가미 다쿠야(玉上琢弥)는 한낱 수다라고 깎아내렸고, 마쓰오 사토시(松尾聡)는 궁정 사회를 그대로 긍정할 뿐 그 바깥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헤아리지 않았다고 비판했으며, 아키야마 겐(秋山虔)은 중류 출신 여성이 상류 귀족에 동화하려 한 모습을 보았다. 이시다 조지는 이 책을 개인으로서 쓴 글이라기보다 ‘데이시 후궁 문명의 기록’이라 했다. 이에 대해 스즈키 히데오(鈴木日出男)는 작가의 개성이 오히려 황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풍부하게 발휘되었고, 거기서 날카로운 비평의 자리를 얻었다고 반론했다.
원형에 관한 논쟁도 있다. 잡찬 형태의 두 계통조차 서로 크게 다르고, 『시메이쇼』(紫明抄)나 『가카이쇼』(河海抄) 같은 중세 『겐지 이야기』 주석서에 인용된 『마쿠라노소시』 본문에는 현존본에 없는 것도 있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작품이 여러 단계에 걸쳐 자라났으며 원래 모습을 온전히 되찾을 수 없다고 본다. 영어권에서는 밸러리 헤니튜크가 이 책이 번역 과정에서 어떻게 재구성되어 왔는지를 연구했다. 형식이 느슨하다 보니 편자와 번역자마다 저마다의 질서를 덧씌우게 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전기적 문제도 풀리지 않았다. 출사 기간은 보통 993년 무렵부터 데이시가 죽을 때까지로 보는데, 한 단에서는 ‘십 년쯤 모셨다’고 말한다. 1001년 이후 다른 주인을 모셨다거나 무라사키 시키부와 만났다는 전승은 확실한 근거가 없다. 만년에 영락했다는 중세 설화에 대해서는, 역사학자 쓰노다 분에이(角田文衞)가 옛 후원자와 친족 다수가 살아 있어 그녀를 돌볼 수 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화
증거와 방법: 어떤 본문을 고를 것인가
고전 텍스트를 교정할 때는 보통 가장 오래된 사본을 저본으로 삼는다. 『마쿠라노소시』는 예외다. 현존 최고 사본은 마에다본이지만, 유찬 형태는 후대 편자가 재배열한 결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읽기용 본문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사카이본도 같은 이유로 쓰이지 않는다. 실제 경쟁은 잡찬 형태의 두 계통 사이에서 벌어졌다.
20세기 초까지는 17세기 고활자본과 기타무라 기긴의 주석을 통해 전해진 노인본이 표준이었다. 1925년 산칸본 계통 사본을 저본으로 한 첫 주석서가 나왔고, 1928년 이케다 기칸은 이본 연구 논문에서 1228년 오쿠가키가 있는 사본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1935년 구스노키 미치타카(楠道隆)는 사카이본과 비교해 산칸본 제1류가 제2류보다 순정하다고 평가했다. 오랜 논쟁 끝에 산칸본이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인정되어 지금은 교과서와 대부분의 판본이 이를 쓴다. 다만 마쓰오 사토시·나가이 가즈코(永井和子)의 교주본처럼 노인본을 따르는 중요한 판본도 있다.
이 합의에도 한계가 있다. 산칸본 역시 작가 이후 여러 차례 베껴지며 오사(誤寫)와 의도적 개변을 겪었고, 현행 본문의 1~75단은 사카이본과 대조되었다고 하는 제2류 사본에서 가져온 것이다. 단마다 따져 보면 노인본이 나은 경우도 있어 산칸본이 늘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번역본을 비교할 때는 저본에 따라 단 번호와 내용까지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컨대 영어 위키백과는 산칸본을 297단과 보유 29단으로 세지만, 다른 판본은 달리 나눈다.
다른 종류의 증거도 작품의 자리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 같은 동시대 자료는 1010년 무렵 세이 쇼나곤이 글쓴이로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 준다. 역사 이야기 『에이가 이야기』(栄花物語)는 미치타카 사후에도 귀족들이 데이시의 처소를 찾았다고 전해, 역경 속에서도 활기를 잃지 않은 살롱의 모습을 뒷받침한다. 14세기의 두루마리 그림은 후대 독자들이 어떤 대목을 그림으로 골랐는지 보여 주며, 산칸본 본문의 이른 증거이기도 하다.
핵심 개념
- 오카시(をかし)
- 이 책의 핵심 미의식. 멋지다, 흥미롭다, 재미있다는 뜻으로, 사물을 알아채는 밝고 재치 있는 즐거움이다. 흔히 『겐지 이야기』의 애잔한 모노노아와레와 대비된다.
- 목록(모노즈쿠시)
- 세이 쇼나곤의 대표 형식. ‘얄미운 것’ 같은 제목 아래 뜻밖의 예를 늘어놓아 독자가 비교하고 맞장구치거나 반박하게 만든다.
- 계절과 하루의 때
- 첫 단은 계절마다 하루의 때를 짝짓는다(봄–새벽, 여름–밤, 가을–저녁, 겨울–이른 아침). 궁정 와카의 관습을 산뜻하게 비튼 표현이다.
- 헌사로서의 기억
- 회상적 장단은 데이시 처소의 가장 빛나던 모습만 보여 주고 정치적 몰락은 지나친다. 이는 충절, 진혼, 또는 의도적 이상화로 읽힌다.
- 재치와 학식
- 한시와 와카의 전고를 재빨리 알아보는 것은 궁정의 사교 기술이었고, 세이 쇼나곤은 자신의 성공담을 뿌듯하게 기록한다.
- 수필(즈이히쓰)
- ‘붓 가는 대로’ 쓴 느슨하게 이어진 개인적 산문. 『마쿠라노소시』는 이 갈래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 흔들리는 본문
- 네 계통의 사본이 순서와 내용에서 서로 달라 ‘원래의’ 『마쿠라노소시』는 온전히 복원할 수 없고, 편자는 저본을 골라야 한다.
기록
- 약 966년 — 가인 기요하라노 모토스케의 딸 세이 쇼나곤이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해.
- 990년 — 후지와라노 데이시가 이치조 천황의 후궁에 들어가 중궁이 됨.
- 약 993년 — 이해 겨울 무렵 세이 쇼나곤이 데이시를 모시기 시작함.
- 995년 — 데이시의 아버지 관백 미치타카가 죽고, 권력이 동생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에게 넘어감.
- 996년 — 데이시의 오빠 고레치카와 동생 다카이에가 처벌받아 도읍에서 쫓겨남. 미나모토노 쓰네후사가 원고를 가져갔다는 발문 속 일화도 이 무렵으로 봄.
- 1000년 — 미치나가의 딸 쇼시가 중궁이 되고 데이시는 황후가 되어, 두 황후가 나란히 섬.
- 1001년 — 데이시가 출산 중 사망(서력 1001년 1월). 작품도 이 무렵 대부분 완성된 것으로 보이나, 이후에도 덧붙였을 수 있음.
- 1228년 — 후지와라노 데이카로 추정되는 인물이 쓴, 산칸본 계통의 오쿠가키 연도.
- 1570년 — 훗날 사카이본으로 불리는 유찬 형태 사본의 사카이 소장자를 밝힌 오쿠가키 연도.
- 약 1674년 — 노인본에 바탕한 기타무라 기긴의 주석서 『마쿠라노소시 슌쇼쇼』가 나와 이후 수백 년간 표준 본문이 됨.
- 1928년 — 이케다 기칸이 산칸본의 우월성을 주장함. 아서 웨일리의 영어 발췌 번역 출간.
- 1967년 — 아이번 모리스가 첫 영어 완역을 출간함(2006년 메러디스 매키니의 완역이 뒤따름).
용어 풀이
- 헤이안 시대
- 수도가 헤이안쿄(교토)였던 794년부터 1185년까지의 일본 역사 시기.
- 뇨보(女房)
- 황후나 귀족의 처소에서 일하던 교양 있는 궁녀. 대개 친척의 관직에서 딴 이름으로 불렸다.
- 중궁과 황후
- 천황의 정비를 가리키는 두 칭호. 1000년에 쇼시(중궁)와 데이시(황후)로 나뉘었다.
- 히라가나
- 한자를 흘려 쓴 데서 나온 일본의 표음 문자. 헤이안 여성 산문 대부분이 이것으로 쓰였다.
- 오카시(をかし)
- 멋지다, 흥미롭다, 재미있다는 뜻. 『마쿠라노소시』의 대표 미의식.
-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
- ‘사물의 정취’. 스러져 가는 것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느끼는 감수성으로, 『겐지 이야기』와 연결된다.
- 우타마쿠라(歌枕)
- 와카에서 정해진 연상과 함께 쓰이는 명소나 소재. 이 책의 많은 목록에 나온다.
- 수필(隨筆, 즈이히쓰)
- 느슨하게 이어진 개인적 산문 갈래.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라는 뜻.
- 잡찬 형태와 유찬 형태
- 본문의 두 형태. 순서가 뒤섞인 잡찬(산칸본·노인본)과 종류별로 모은 유찬(사카이본·마에다본).
- 오쿠가키(奧書)
- 사본 끝에 누가, 언제, 무엇을 보고 베꼈는지 적은 기록. 계통을 추적하는 데 결정적이다.
- 에마키(絵巻)
- 글과 그림을 함께 담은 두루마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치며 본다.
묻고 답하기
왜 제목이 ‘베개 책’인가요?
발문에 따르면 세이 쇼나곤이 ‘베개’를 쓰자고 하자 황후가 종이를 내주었다고 해요. 그 ‘베개’가 머리맡 비망록인지, 시적 표제어인지, 남에게 보이지 않는 책인지, 『사기(시키)』를 빗댄 말장난인지는 아무도 확실히 모릅니다. 지금도 논쟁 중이에요.
일기인가요?
일부만 그래요. 궁정에서의 실제 하루를 일기처럼 떠올리는 단도 있지만, 목록이나 짧은 수필도 많고 날짜 순서를 따르지도 않아요. 그래서 보통 ‘수필(즈이히쓰)’이라고 부릅니다.
세이 쇼나곤과 무라사키 시키부는 라이벌이었나요?
두 사람은 경쟁하던 두 황후, 데이시와 쇼시를 각각 모셨고, 무라사키는 일기에서 세이 쇼나곤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났다는 믿을 만한 증거는 없고, 세이 쇼나곤은 무라사키가 출사하기 전에 이미 궁을 떠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 황후의 불행은 거의 쓰지 않았나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습니다. 충성스러운 배려로 보기도 하고, 황후의 넋을 달래려는 뜻으로 보기도 하며, 패배한 처소를 의도적으로 이상화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중세의 『무묘조시』는 이미 이 침묵을 작가의 훌륭한 마음가짐으로 칭찬했습니다.
현대 판본은 어떤 본문을 쓰나요?
대부분 20세기에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된 산칸본을 씁니다. 현존 최고 사본은 마에다본이지만 후대에 재편된 형태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1930년 무렵까지 표준이던 노인본을 따르는 권위 있는 판본도 여전히 있습니다.
세이 쇼나곤은 남이 읽기를 바랐을까요?
발문은 사적인 글이었는데 손님이 가져갔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실 그대로인지, 관습적인 겸양의 표현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책은 분명 황후 주변 사람들을 아는 독자를 전제하며, 일부는 작가 생전에 이미 돌아다녔습니다.
영어 번역으로 읽는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메러디스 매키니의 완역(2006)은 정확성으로 호평받고, 아이번 모리스의 완역(1967)은 우아하고 주석이 충실하며, 아서 웨일리의 번역(1928)은 매력적이지만 일부만 옮긴 발췌본입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The Pillow Book. Wikipedia
- 枕草子. 위키백과(일본어)
- 마쿠라노소시. 위키백과
- Sei Shōnagon. Wikipedia
- 清少納言. 위키백과(일본어)
- Fujiwara no Teishi. Wikipedia
- Fujiwara no Michinaga. Wikipedia
- Zuihitsu. Wikipedia
- 枕草子絵詞. 위키백과(일본어)
- Sei Shōnagon, trans. Meredith McKinney, The Pillow Book (영어 번역). Penguin Books, 2006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