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1325년, 스물한 살 청년이 아프리카 북쪽 끝 모로코의 항구 도시 탕헤르에 있는 집을 떠났어요. 이름은 이븐 바투타. 이슬람의 거룩한 도시 메카로 순례를 가는 길이었어요. 한두 해쯤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그는 스물네 해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븐 바투타는 여행을 무척 좋아했어요. 새로운 곳을 보고, 유명한 사람을 만나고, 성자와 학자에게 배우고 싶었거든요.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고, 배를 타고 인도양을 가로지르고, 수레를 타고 얼어붙은 초원을 지났어요.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이란, 아라비아, 동아프리카, 튀르키예, 중앙아시아, 인도, 몰디브, 스리랑카, 동남아시아, 중국까지 갔어요.
여행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을까요? 그는 이슬람 법을 공부한 사람이었고, 많은 이슬람 나라의 왕들은 학식 있는 사람을 반갑게 맞았어요. 왕들이 선물과 말, 돈을 주었지요. 인도에서는 델리의 술탄이 그를 판사로 삼았어요. 몰디브 섬에서도 판사가 되었고, 그곳에서 결혼도 했어요.
여행이 늘 쉽지는 않았어요. 도적에게 털리고, 배가 부서져 물에 빠질 뻔하고, 가진 것을 몇 번이나 다 잃고, 크게 앓기도 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흑사병’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 땅을 지나야 했어요.
마침내 모로코로 돌아오자 술탄은 그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어요. 이븐 주자이라는 젊은 작가가 그 이야기를 받아 적고 다듬어 책으로 만들었어요. 그 책이 ‘여행’이라는 뜻의 『리흘라』예요. 오늘날 이 책은 약 700년 전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하게 해 줘요.
한눈에 보기
- 출생
- 1304년 2월 24일, 모로코 탕헤르(마린 왕조)
- 사망
- 1368년 또는 1369년(더 늦은 연대를 드는 자료도 있음), 모로코. 묻힌 곳은 불확실
- 배경
- 법학자를 여럿 낸 라와타 부족의 베르베르 가문. 말리키 법학을 배움
- 여행
- 1325~1354년: 북·동아프리카, 중동, 아나톨리아, 킵차크 칸국, 중앙아시아, 인도, 몰디브, 스리랑카, 동남아시아, 중국, 알안달루스, 말리
- 거리
- 흔히 약 117,000km로 추산. 다만 일부 여정은 불확실
- 저서
- 『여러 도시의 진기함과 여행의 경이를 살피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투흐파트 알누자르)』, 곧 『리흘라』. 1355~56년 이븐 주자이와 함께 완성
- 언어
- 고전 아랍어
- 의의
-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여행기이자 14세기 연구의 핵심 사료
쉬움
이븐 바투타는 누구인가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이븐 바투타는 모로코를 마린 왕조가 다스리던 1304년 탕헤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일찍부터 아랍어를 쓰고 이슬람을 믿어 온 베르베르 부족 라와타에 속했고, 친척 가운데 여럿이 이슬람 법 판관인 카디로 일했습니다. 그는 젊은 학자로서 꾸란과 아랍어,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우세했던 말리키 학파의 법학을 배웠습니다.
1325년 6월, 스물한 살의 그는 메카 순례인 하지를 하려고 홀로 집을 떠났습니다. 신앙의 여정으로 시작한 길은 평생의 여행이 되었습니다. 그 뒤 30년 동안 그는 아프리카·유라시아 세계의 상당 부분을 누볐고, 1349년에야 모로코로 돌아왔으며, 알안달루스와 말리 제국으로 두 번 더 여행한 뒤 1354년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현대적 의미의 탐험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찾은 곳 대부분은 무슬림 사회들의 세계인 ‘다르 알이슬람’에 속하거나 그와 이어진 곳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모스크와 법정, 수피 수도장, 그리고 학문의 공용어인 아랍어를 함께 쓰는 동료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연결망 덕분에 법학을 배운 사람은 모로코에서 인도까지 환영받고, 일자리를 얻고, 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책 『리흘라』(‘여행’)는 세계 여행 문학의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14세기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료이지만, 뒤에서 보듯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쉬움
여정을 따라가 보기
순례자(1325~1327). 이븐 바투타는 육로로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에 이르렀고,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되돌아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지나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순례 대상에 합류해 메디나와 메카에 가서 1326년 말에 하지를 마쳤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상을 따라 이라크로 갔고, 이란으로 발길을 돌려 이스파한과 시라즈를 둘러본 뒤 바그다드와 타브리즈를 거쳐 메카로 돌아왔습니다.
홍해, 동아프리카, 아나톨리아(1328~1333년 무렵). 메카에 얼마간 머문 뒤(그 기간은 논쟁 중) 그는 홍해를 따라 예멘으로 내려가,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해안의 모가디슈, 몸바사, 그리고 그가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라고 칭찬한 킬와를 찾았습니다. 오만과 페르시아만을 거쳐 돌아온 그는 나중에 작은 튀르크 공국들이 모자이크처럼 흩어진 아나톨리아로 건너갔고, 흑해를 건너 우즈베크 칸이 다스리던 몽골 국가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의 초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칸의 왕비 가운데 한 사람인 비잔티움 공주를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갔다고 전합니다.
인도(1333~1341).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인더스강에 이른 그는, 너그러움과 잔혹함으로 모두 이름난 술탄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의 도읍 델리로 갔습니다. 술탄은 그를 높은 봉급의 카디로 임명했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인도에서 약 8년을 지내며 빚을 쌓았고, 한때 술탄의 눈 밖에 나기도 했습니다.
인도양과 중국(1341~1347). 1341년 술탄은 그를 중국 원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사절로 임명했습니다. 사절단의 배는 캘리컷 앞바다에서 난파했고 이븐 바투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델리로 돌아가기가 두려웠던 그는 몰디브로 가서 판관으로 일하며 결혼했고, 이어 스리랑카에서 아담스 피크에 올랐으며 벵골을 찾았습니다. 동남아시아를 지나 수마트라의 사무드라 파사이에 들렀고, 1345~46년 무렵 중국 항구 취안저우, 곧 ‘자이툰’에 닿았다고 합니다.
귀향, 알안달루스, 말리(1347~1354). 서쪽으로 돌아오던 그는 1348년 흑사병이 퍼지던 시리아와 이집트를 지났고, 어머니가 역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349년 페스에 도착한 그는 알안달루스의 그라나다를 찾았고, 1352년에는 사하라를 건너 말리 제국으로 가서 만사 술라이만의 궁정에서 여러 달을 보내고 팀북투와 가오를 둘러본 뒤, 1354년 모로코 술탄의 부름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쉬움
그가 여행한 세계
이븐 바투타는 아프리카·유라시아가 유난히 긴밀하게 이어진 시기에 여행했습니다. 13세기 몽골의 정복으로 아시아 전역에 계승 국가들, 곧 이란의 일 칸국, 서부 초원의 킵차크 칸국, 중앙아시아의 차가타이 칸국, 중국의 원나라가 생겨났고, 그 가운데 여러 통치자가 이슬람으로 개종했습니다.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바닷길은 향신료, 직물, 말, 도자기 교역으로 동아프리카, 아라비아,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을 이었습니다.
이슬람 세계 안에서는 공통의 제도가 여행을 쉽게 해 주었습니다. 해마다 하지 때면 곳곳의 무슬림이 메카에 모였습니다. 마드라사(학교), 자위야나 한카라 부르는 수피 수도장, 자선 기금(와크프)은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했습니다. 이슬람 법과 아랍어 학문이 여러 나라에서 인정받았기에 법학자와 종교학자는 고향에서 먼 곳에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험하고 변화하는 세계이기도 했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도적, 폭풍, 전쟁, 델리 술탄국의 폭력적인 정치를 묘사합니다. 그가 고향에 돌아왔을 무렵 흑사병이 중국에서 유럽까지 사회를 휩쓸었고, 일 칸국은 무너졌으며, 원나라는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의 책은 큰 격변을 앞둔 연결된 세계의 초상인 셈입니다.
중급
『리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페스로 돌아온 이븐 바투타는 마린 왕조의 술탄 아부 이난 파리스의 궁정에서 여행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술탄은 이를 기록하라고 명하고, 그라나다 출신의 젊은 학자이자 서기인 무함마드 이븐 주자이를 편집자로 붙였습니다. 이븐 바투타가 기억을 구술하면 이븐 주자이가 그것을 문학 작품으로 다듬었고, 책은 1355년 말 또는 1356년 초에 완성되었습니다. 이븐 주자이는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제는 『투흐파트 알누자르 피 가라이브 알암사르 와 아자이브 알아스파르』로, 흔히 ‘여러 도시의 진기함과 여행의 경이를 살피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로 옮깁니다. 이 책은 순례나 유학 여행에서 흔히 비롯된 아랍 문학의 한 장르인 ‘리흘라’, 곧 여행기에 속합니다. 앞선 대표작으로는 1183~85년에 순례한 안달루시아 사람 이븐 주바이르의 『리흘라』가 유명합니다.
이븐 주자이는 단순히 받아 적지 않았습니다. 시를 덧붙이고 문장을 다듬었으며, 여러 곳에 앞선 작가들의 글, 특히 이븐 주바이르의 다마스쿠스·메디나·메카 묘사를 옮겨 넣었고, 출처를 밝힌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 자기 목소리로 논평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븐 바투타가 직접 본 것, 여러 해 뒤에 기억한 것, 남에게 들은 것, 편집자가 보탠 것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도적에게 털리면서 기록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리흘라』는 어떤 사건으로부터 수십 년 뒤에 주로 기억에 기대어 쓰인 셈입니다. 연대와 지리의 혼동은 이것으로 어느 정도 설명되지만, 사람과 풍습, 장소에 대한 그의 기억은 놀랄 만큼 자세하기도 합니다.
중급
『리흘라』에 담긴 것
『리흘라』는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짜여 있지만, 진짜 흥미는 묘사에 있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도시의 크기와 아름다움, 모스크와 시장과 정원, 궁정의 관습, 음식과 옷과 혼인, 그가 만난 학자와 성자, 그리고 각 지역의 과일과 동물과 물산을 적었습니다. 예를 들어 몰디브의 야자나무와 개오지 조개, 중국의 지폐와 도자기, 말리의 금과 소금 교역을 묘사합니다.
그는 날카롭고 때로는 판단이 앞서는 관찰자이기도 합니다. 엄격한 말리키 법학자였던 그는 이슬람답지 않다고 여긴 관습을 못마땅해했습니다. 몰디브에서는 여성들이 몸을 더 가리게 하려 했고, 말리에서는 여성들이 남성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하녀들이 옷을 입지 않은 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말리 사람들의 열성적인 예배와 여행길의 안전을 칭찬했습니다. 그의 의견은 그가 묘사한 사람들만큼이나 그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냅니다.
책에는 개인적인 극적 사건이 가득합니다. 결혼과 이혼, 여기저기 남겨 두고 온 자식들, 너그러움과 빚,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에 대한 두려움, 캘리컷의 난파, 인도에서 도적에게 붙잡힌 일, 병치레. 이런 개인의 목소리가 『리흘라』가 오늘날에도 술술 읽히는 까닭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급
수용과 재발견
당대에 모두가 이븐 바투타를 믿은 것은 아닙니다. 1350년대 페스의 마린 왕조 궁정에 있던 역사가 이븐 할둔은 『무깟디마(역사 서설)』에서, 궁정 사람들이 이 여행가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군거렸지만 한 대신은 자기가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보고를 물리쳐서는 안 된다며 그를 두둔했다고 적었습니다. 『리흘라』는 마그리브에서 필사본과 요약본으로 전해졌지만, 다른 지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럽 학자들은 19세기 초 울리히 야스퍼 제첸,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 같은 여행자들이 구한 요약본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뮤얼 리는 1829년 요약본을 영어로 옮겨 출판했습니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정복한 뒤 완전한 필사본들이 파리에 들어왔고, 샤를 데프레메리와 베니아미노 산귀네티가 1853~1858년 아랍어 원문과 프랑스어 번역을 네 권으로 펴내 표준판이 되었습니다.
권위 있는 영어 번역은 H. A. R. 기브가 하클루트 협회를 위해 시작해 1958년부터 간행했고, C. F. 베킹엄이 1994년 제4권을 펴내 완성했습니다. 20세기에 이븐 바투타는 모로코의 국민 영웅이자 세계시민적 이슬람 과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달의 충돌구, 많은 학교, 두바이의 대형 쇼핑몰이 그의 이름을 따 지어졌습니다.
중급
자세히 보기: 말리 여행
이븐 바투타의 마지막 큰 여행인 1352~54년의 말리 제국 여행은 『리흘라』의 가치와 한계를 가장 잘 보여 줍니다. 그는 시질마사에서 상인 대상과 함께 사하라를 건너, 집과 모스크를 소금 덩어리로 지은 타가자를 거쳐 말리 북쪽의 교역 거점 왈라타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만사 무사의 형제인 만사 술라이만의 도읍으로 갔는데, 그곳의 정확한 위치는 지금도 역사가들 사이에 논쟁거리입니다.
그가 묘사한 술라이만의 궁정은 이 시기 말리에 관해 남아 있는 가장 자세한 목격담입니다. 그는 큰 나무 아래나 정자에서 열린 알현, 왕의 통역관과 그리오, 이슬람 명절 의식, 백성들이 왕 앞에서 머리에 흙을 뿌리는 모습을 적었습니다. 말리 사람들이 금요 예배에 빠짐없이 나오고 꾸란 암송에 열심이며 길이 안전하다고 칭찬했지만, 만사가 준 선물이 초라하다고 몹시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니제르강 가의 팀북투와 가오, 구리가 나는 도시 타케다를 들렀고, 그 뒤 모로코 술탄의 귀국 명령을 받았습니다. 알우마리와 이븐 할둔이 쓴 말리에 관한 아랍어 기록은 정보 제공자에게 의존했기 때문에, 그의 판단에 북아프리카 방문자의 편견이 묻어 있더라도 이븐 바투타의 직접 관찰은 없어서는 안 될 자료입니다.
중급
말년과 의의
『리흘라』를 완성한 뒤 이븐 바투타는 모로코의 한 도시에서 카디로 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밖의 말년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후대의 인물 전기 자료는 그의 사망을 1368년 또는 1369년으로 적지만, 다른 연대가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탕헤르 옛 시가지의 한 무덤이 전통적으로 그의 무덤으로 여겨지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역사가들에게 『리흘라』는 14세기 몰디브, 스와힐리 해안, 말리 제국 같은 곳에 관한 유일한, 또는 가장 자세한 외부인의 기록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어떤 사료에도 나오지 않는 통치자와 관리, 축제, 물가, 물산, 풍습이 담겨 있습니다. 인도양 연안과 초원 지대의 무슬림 공동체, 그리고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 치하의 델리 술탄국에 관해 특히 귀중합니다.
이븐 바투타는 한 세대 앞서 아시아를 여행한 베네치아의 마르코 폴로와 자주 비교됩니다. 두 책 모두 협력자에게 구술되었고 관찰과 전해 들은 이야기가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가 주로 몽골을 섬긴 외부인으로 여행했다면, 이븐 바투타는 공통의 이슬람 문명 안에서 움직였고, 그의 책은 그 문명이 먼 땅들을 어떻게 이어 주었는지 보여 줍니다.
심화
논쟁: 『리흘라』는 얼마나 믿을 만한가
학자들은 이븐 바투타가 매우 널리 여행했고 『리흘라』의 상당 부분이 직접 경험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대체로 받아들입니다. 인도, 몰디브, 동아프리카, 아나톨리아, 말리에 관한 묘사에는 다른 증거와 들어맞는 정밀한 세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부분도 여럿 있습니다. 연대는 자주 어긋납니다. 예컨대 그가 제시한 메카 체류 기간과 동아프리카 여행 연대가 모두 맞을 수는 없어서, 역사가들은 동아프리카 항해를 1328년으로 보기도 하고 1330년 무렵으로 보기도 하는 등 서로 다른 재구성을 내놓았습니다.
아예 없었을지도 모르는 여정도 있습니다. 킵차크 칸국에서 볼가강 가의 도시 불가르로 다녀왔다는 이야기와 더 북쪽 땅에 관한 언급은 20세기 초부터 의심받았고, 학자 스티븐 야니체크(Stephen Janicsek)는 1929년 이 여행이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가장 논쟁적인 것은 중국에 관한 서술입니다. 취안저우와 중국 남부 해안에 관한 설명은 그럴듯하지만, 내륙의 칸발리크(베이징)까지 갔다는 이야기는 모호하고 중국 역사와 맞지 않는 사건을 담고 있어 전해 들은 이야기에 바탕을 두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가 남부 항구 너머로는 가지 않았다고 보는 학자도 있고, 짧은 여행은 했다고 받아들이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븐 주바이르 등 앞선 작품에서 빌려 온 대목들은 이 책이 여러 층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로스 던을 비롯한 역사가들은 『리흘라』를 일기가 아니라, 마린 왕조 궁정에서 여행가와 편집자가 함께 만든 문학 작품으로, 장르의 관습과 술탄을 즐겁게 하고 교화하려는 목적에 따라 빚어진 것으로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틀에서 ‘사실이냐’는 물음은 사료의 문제, 곧 어느 대목이 관찰이고 어느 대목이 기억이며 어느 것이 전언이고 어느 것이 문학적 삽입이냐는 물음이 됩니다.
심화
역사 사료로서 『리흘라』 읽기
역사가들은 『리흘라』를 독립된 증거와 대조합니다. 주화, 비문, 그리고 중국·페르시아·인도·아랍의 연대기는 통치자의 이름과 사건의 연대를 확인하거나 반박해 줍니다. 예를 들어 인도 사료는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 궁정의 급작스러운 정책과 가혹한 처벌 등 많은 세부를 확인해 줍니다. 킬와, 몰디브, 서아프리카의 고고학 성과도 건물과 교역품에 관한 그의 묘사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원문은 여러 필사본으로 전해지며, 가장 중요한 것들은 파리에 있습니다. 그중 한 단편은 일부 학자에 의해 이븐 주자이의 친필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목되었습니다. 필사본 비교, 편집자 개입의 분석, 빌려 온 대목의 확인을 통해 학자들은 텍스트의 층을 하나씩 벗겨 냅니다. 데프레메리·산귀네티 판은 여전히 대부분의 번역의 바탕이지만, 새로운 비판 교정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끝으로 역사가들은 『리흘라』에서 사고방식을 읽어 냅니다. 14세기 마그리브의 한 법학자가 이슬람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무엇을 옳고 그르다고 여겼는지, 다른 민족, 특히 여성과 비무슬림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을 어떻게 그렸는지를 봅니다. 예컨대 말리 사람들에 대한 그의 자주 깔보는 말은 그 사회의 여러 면에 대한 진심 어린 감탄과 함께 저울질해야 합니다. 이런 비판적 읽기는 『리흘라』의 가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여 줍니다.
핵심 개념
- 리흘라
- 주로 순례나 유학과 관련된 아랍 여행 문학 장르. 이븐 바투타의 책이 가장 유명한 예다.
- 다르 알이슬람
- 무슬림 사회들의 세계. 공통의 법과 언어, 제도가 그의 긴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
- 여행하는 학자
- 법학을 배운 이븐 바투타는 여러 나라에서 환대와 후원자, 판관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 아프리카·유라시아의 연결
- 그의 여정은 몽골 계승 국가, 인도양 교역, 하지가 만든 연결을 보여 준다.
- 저자와 편집자
- 『리흘라』는 기억에 기대어 구술되었고, 시와 빌려 온 대목을 보탠 이븐 주자이의 손을 거쳤다.
- 비판적 읽기
- 역사가들은 책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이지만 볼가강·중국 내륙 여행 등 일부를 의심하고 다른 증거와 대조한다.
- 관찰자의 시각
- 풍습, 여성, 비무슬림에 대한 그의 판단은 14세기 말리키 법학자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기록
- 1304년 — 2월 24일 탕헤르에서 이븐 바투타 출생.
- 1325년 — 6월 메카 순례를 위해 탕헤르를 떠남.
- 1326년 — 첫 하지를 마치고 이라크와 이란으로 여행.
- 약 1330년 — 홍해를 따라 내려가 동아프리카 해안의 모가디슈와 킬와를 방문(1328년 또는 1330년 무렵, 논쟁 중).
- 약 1333년 — 아나톨리아, 킵차크 칸국,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더스강에 이르고 델리에서 카디가 됨.
- 1341년 —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가 그를 중국 사절로 보냄. 사절단이 캘리컷에서 난파.
- 약 1343년 — 몰디브에서 판관으로 일한 뒤 스리랑카와 벵골을 방문.
- 약 1345년 — 수마트라에 이르고,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 항구 취안저우(자이툰)에 도착.
- 1349년 — 흑사병이 휩쓴 땅을 지나 페스로 돌아옴.
- 1352년 — 사하라를 건너 말리 제국으로 가서 팀북투를 방문(1354년 귀환).
- 1355년 — 마린 왕조 궁정에서 이븐 주자이와 함께 『리흘라』 완성(1355년 말 또는 1356년 초).
- 약 1368년 — 이븐 바투타가 모로코에서 사망(1368년 또는 1369년).
용어 풀이
- 하지
- 메카 순례. 형편이 되는 무슬림의 종교적 의무.
- 카디
- 이슬람 법을 적용하는 판관.
- 말리키 학파
- 수니파 4대 법학파의 하나로,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에서 우세했다.
- 마린 왕조
- 13~15세기 페스를 수도로 모로코를 다스린 베르베르 왕조.
-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
- 서부 유라시아 초원의 몽골 계승 국가. 통치자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 델리 술탄국
- 13~16세기 북인도 대부분을 다스린 무슬림 국가.
- 자위야
-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곤 하던 수피 수도장.
- 자이툰
- 중국 남부의 큰 무역항 취안저우의 아랍어 이름.
- 스와힐리 해안
- 소말리아에서 모잠비크까지 이어지는 동아프리카 해안. 킬와 같은 무슬림 교역 도시들이 있었다.
묻고 답하기
이븐 바투타는 왜 그렇게 멀리 여행했나요?
메카 순례로 시작했지만, 새로운 땅을 보고 학자와 성자를 만나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판관 교육을 받은 덕분에 가는 곳마다 왕들에게 돈과 선물을 받을 수 있었어요.
마르코 폴로보다 더 멀리 갔나요?
대부분의 추산으로는 그래요. 약 117,000km로, 흔히 마르코 폴로에게 돌리는 거리의 몇 배예요. 다만 그가 말한 여정 일부는 의심받고 있어요.
책은 그가 직접 썼나요?
아닙니다. 그는 모로코 궁정의 학자 이븐 주자이에게 기억을 구술했고, 이븐 주자이가 이를 편집하고 다듬으며 시와 앞선 작가들의 글을 보탰습니다.
정말 중국에 갔나요?
많은 학자가 남부 항구 취안저우까지는 갔다고 받아들이지만, 내륙의 베이징까지 갔다는 이야기는 의심스럽고 전해 들은 이야기에 기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는 여행 중 여러 번 결혼했고, 자식 몇은 인도와 몰디브 같은 곳에 남겨졌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돌아오기 전에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사가는 『리흘라』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
귀중하지만 여러 층으로 된 사료로 보고, 대목마다 다른 증거와 대조하며, 기억과 전언, 장르의 관습, 편집자의 첨가가 한 역할을 인정해야 합니다.
학자들은 어떤 판본과 번역을 쓰나요?
데프레메리와 산귀네티의 아랍어 원문·프랑스어 번역판(1853~58)과, 하클루트 협회에서 낸 H. A. R. 기브와 C. F. 베킹엄의 영어 번역(1958~1994)입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이븐 바투타. 위키백과
- Ibn Battuta. Wikipedia
- Rihla. Wikipedia
- Ibn Jubayr. Wikipedia
- Muhammad bin Tughluq. Wikipedia
- Mali Empire. Wikipedia
- Ross E. Dunn, The Adventures of Ibn Battuta: A Muslim Traveler of the 14th Centur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6
- H. A. R. Gibb and C. F. Beckingham (trans.), The Travels of Ibn Battuta, A.D. 1325–1354 (4 vols.). Hakluyt Society, 1958–1994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