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대부분이 사람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을 떠올려 보세요. 한 선생님이 왕들을 찾아가고, 똑똑한 반대파와 말다툼을 하고,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합니다. 그 책이 『맹자』예요. 책 이름은 주인공인 ‘맹 선생님(맹자)’에서 왔어요. 맹자는 지금으로부터 2,300여 년 전, 여러 나라가 서로 싸우던 시절의 중국에 살았어요.
이 책은 일곱 편으로 되어 있고, 편마다 다시 둘로 나뉘어 모두 열네 부분이에요. 부분마다 여러 토막 글이 들어 있는데, 어떤 것은 긴 토론이고 어떤 것은 속담처럼 한두 문장뿐이에요.
맹자는 비유를 아주 좋아했어요. 누구에게나 착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이렇게 물었지요. 어린아이가 우물 쪽으로 기어가는 모습을 갑자기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을 받을 생각 같은 건 할 틈도 없이 깜짝 놀라 도와주고 싶어질 거예요. 맹자는 그 순간의 마음이 착함의 씨앗과 같아서, 잘 돌보면 자란다고 했어요.
또 나무가 우거졌던 산 이야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가고, 새싹이 돋을 때마다 소와 양이 뜯어 먹게 내버려 두자 산은 민둥산이 되었어요. 나중에 온 사람들은 그 산에 원래 나무가 없었다고 생각했지요. 맹자는 사람도 그 산과 같다고 했어요. 누군가 나빠 보일 때, 착한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니라 베어져 나간 것일 수 있다는 거예요.
맹자의 생각 가운데에는 왕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도 있었어요. 백성이 임금보다 중요하고, 잔인한 왕은 진짜 왕이 아니라고 했거든요. 여러 세기가 지난 뒤 중국의 한 황제는 너무 화가 나서 책의 여러 구절을 잘라 내라고 명령했어요. 하지만 온전한 책은 다시 돌아왔고, 수백 년 동안 중국·한국·일본의 학생들이 이 책을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었답니다.
한눈에 보기
- 성격
- 유가 사상가 맹가(맹자)를 중심으로 한 대화·논쟁·일화·짧은 어록 모음
- 언어
- 고전 한문
- 구성
- 7편, 각 편을 상·하로 나눔. 조기(趙岐)는 261장, 34,685자로 셈
- 편찬
- 기원전 4세기 후반~3세기 초. 사마천에 따르면 맹자가 제자들과 함께 지었고, 많은 학자는 맹자 사후 제자들이 완성했다고 본다
- 무대
- 대화의 무대는 양(위)·제·등 등의 궁정이다. 책이 엮인 장소는 알 수 없으며, 전통적으로 맹자의 고향 추(鄒)나라 일대(오늘날 산둥성 쩌우청)와 연결된다
- 최고(最古)의 주석
- 조기(201년 사망)의 주석. 현재 전하는 모든 판본이 그의 편집본에서 나왔다
- 사라진 부분
- 한나라 목록에는 11편으로 실려 있으나, 조기가 ‘외서(外書)’ 4편을 후대의 모방작으로 보고 제외해 전하지 않는다
- 경전으로서의 지위
- 주희가 엮은 사서의 하나(1190년 함께 간행). 원나라의 1313년 조서(첫 시험 1315년)부터 1905년까지 중국 과거의 교과 과정
쉬움
『맹자』는 어떤 책인가
『맹자』(‘맹 선생님’이라는 뜻)는 기원전 4세기 후반 전국 시대에 가르친 중국 사상가 맹가를 중심으로, 그의 대화와 논쟁, 짧은 어록을 엮은 책이다. 책 속의 맹자는 왕과 제후에게 조언하고, 경쟁하는 사상가들과 논쟁하며,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다. 공자의 『논어』와 함께 유가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두 책의 하나가 되었다.
책은 일곱 편(篇)으로 이루어지고, 각 편을 상·하로 나누어 모두 열네 부분이다. 오늘날 전하는 모든 판본의 바탕이 된 2세기 학자 조기는 이 책을 261장, 34,685자로 셈했다. 현대 연구자들은 편·상하·장 번호로 구절을 가리키는데, 서양식 표기 ‘2A6’은 제2편 상(上)의 제6장을 뜻한다.
일곱 편 가운데 대부분은 맨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편명으로 삼았다.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 「만장」, 「고자」가 그렇다. 나머지 두 편은 첫머리의 낱말을 땄다. 「이루」는 눈이 밝았다는 전설 속 인물의 이름이고, 「진심」은 ‘마음을 다한다’는 뜻이다. 『논어』와 마찬가지로 편명은 내용의 요약이 아니라 자리를 찾기 위한 표지다.
쉬움
일곱 편 둘러보기
제1편 「양혜왕」은 이 궁정 저 궁정을 찾아다니는 맹자를 따라간다. 가장 통일성이 강한 편으로, 떠돌이 정치 조언자로서 맹자가 겪은 장면들을 대체로 시간 순서대로 늘어놓은 것으로 읽힌다. 편은 왕이 맹자에게 자기 나라를 어떻게 이롭게 할 것인지 묻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제(齊)나라 선왕과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두고 나눈 대화(1A7), 폭군을 죽여도 되느냐는 물음(1B8)이 들어 있다.
제2편 「공손추」는 제자와 수양에 관해 나눈 대화가 중심으로, ‘호연지기’, 싹을 뽑아 올린 농부, 우물가의 어린아이(2A6)가 여기 나온다. 하편은 제나라에서 보낸 맹자의 어려운 시기를 전한다. 제3편 「등문공」은 작은 나라에 토지와 세금에 관한 실제적 조언을 하고(3A3), 농가(農家) 허행의 추종자들과의 논쟁(3A4)을 싣고, 논쟁을 좋아한다는 비난에 대한 맹자의 변론(3B9)을 담았다.
제4편 「이루」는 대부분 배경 설명이 없는 짧은 어록이다. 배경이 드러나는 곳은 모두 제나라이므로, 번역자 로버트 에노는 이 편이 맹자가 선왕에게 조언하던 기원전 315~313년 무렵 기록된 가르침을 모은 것일 수 있다고 본다. 제5편 「만장」은 고대의 성왕 요·순에 관한 질문에 답한다. 왕위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하늘이 어떻게 백성을 통해 ‘보는지’(5A5), 옛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5A4)가 주제다.
제6편 「고자」는 거의 전부가 인간 본성을 다루는 상편으로 유명하며, 하편은 대화와 어록이 섞여 있다. 제7편 「진심」은 주로 마음·본성·하늘·정치에 관한 짧은 잠언으로, 백성이 가장 귀하다는 말(7B14)도 여기 있다.
중급
유명한 구절 (1): 우물가의 어린아이, 고자, 우산
오늘날 가장 유명한 구절은 하나의 사고 실험이다(2A6). “지금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갑자기 본다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든다.” 맹자는 이어서 가능한 동기 세 가지를 하나씩 지운다. 그 마음은 아이 부모와 친해지려는 데서도, 이웃의 칭찬을 바라는 데서도, 아이 울음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한 가지 사례에서 그는 과감하게 나아간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누구나 사지를 지닌 것처럼 인·의·예·지의 네 ‘싹(端)’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구절은 자라남의 이미지로 끝난다. 이 싹은 막 붙은 불, 막 솟는 샘과 같아서 ‘넓혀 채우면’ 온 천하를 지키기에 충분하다.
「고자 상」에는 고자와의 논쟁이 실려 있다. 고자는 말한다. “본성은 버드나무와 같고, 의(義)는 버드나무로 만든 그릇과 같다.” 맹자는 버드나무를 해치지 않고 그릇을 만들 수 있느냐고 되물으며, 고자의 주장대로라면 도덕은 사람을 해치는 일이 된다고 암시한다. 고자가 다른 비유를 든다. 본성은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아서 동쪽을 터 주면 동쪽으로, 서쪽을 터 주면 서쪽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맹자는 이 비유를 뒤집는다. 물이 동서는 가리지 않을지 몰라도 위아래는 가린다. “사람의 본성이 선으로 향하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 에노는 이 첫 문답들이 주장 자체보다 상대의 비유를 시험하는 데 가깝고, 논쟁을 배우는 제자들의 본보기로 남겨진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6A6에서 제자 공도자는 당시 돌던 세 가지 견해를 소개한다. 본성에는 선도 불선도 없다는 견해, 선하게도 불선하게도 될 수 있다는 견해, 본성이 선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견해다. 맹자의 대답은 신중하다. 타고난 실정(情)대로라면 선해질 수 있으니 그것이 자신이 말하는 ‘선’이며,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은 타고난 자질(才)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전하는 본문에서 ‘성선(性善)’이라는 표어 자체는 서술자의 요약(3A1)과 공도자의 질문에만 나온다.
우산(牛山) 구절(6A8)은 사람이 왜 그토록 자주 나빠 보이는지 설명한다. 큰 도성 가까이 있던 우산에는 본래 아름다운 나무가 있었다. 도끼가 나무를 베어 갔고, 비와 이슬과 밤사이의 휴식 덕에 돋아난 새싹은 소와 양이 뜯어 먹었다. 민둥산을 본 사람들은 그 산에 원래 재목이 없었다고 여긴다.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마찬가지로 사람의 좋고 싫음이 남들과 가까워지는 새벽의 고요한 기운(平旦之氣)도 낮 동안의 행동에 짓밟혀 사라진다. 맹자의 결론은 이렇다. “제대로 기르면 자라지 않는 것이 없고, 기름을 잃으면 시들지 않는 것이 없다.” 나쁜 행동은 나쁜 본성의 증거가 아니라 손상의 증거라는 것이다.
중급
유명한 구절 (2): 폭군, 백성, 정전제
1B8에서 제나라 선왕은 상·주 왕조의 창건자들이 앞 왕조의 마지막 왕을 몰아내고 쳤다는 것이 사실인지, 신하가 임금을 죽여도 되는지 묻는다. 맹자는 이름을 다시 정의하는 방식으로 답한다. 인(仁)을 해치는 자는 ‘적(賊)’, 의(義)를 해치는 자는 ‘잔(殘)’이며, 그런 자는 ‘한 사내(一夫)’일 뿐이다. “한 사내인 주(紂)를 처형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이 논변은 반란이 그냥 허용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임금은 스스로의 행실로 임금이기를 그친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남아 있는 한대 문헌 가운데 이 구절을 인용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 구절은 훗날에야 책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의 하나가 되었다.
7B14에서 맹자는 말한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 같은 장의 나머지 부분은 덜 인용된다. 백성의 마음을 얻은 자가 천자가 되고,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제후는 갈아 치우며, 제사를 제대로 올렸는데도 가뭄이나 홍수가 들면 사직마저 바꾼다. 이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순위를 매긴다. 임금도 사직도 바꿀 수 있지만, 백성을 바꾼다는 말은 없다. 다른 곳(5A5)에서 맹자는 옛 문헌을 인용해 하늘은 백성이 보는 것을 통해 보고 백성이 듣는 것을 통해 듣는다고 말한다.
3A3에서 등나라 문공은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묻는다. 맹자는 생업에서 시작한다. 일정한 생업(恒産)이 있는 백성은 한결같은 마음(恒心)을 지니며, 가난에 몰려 죄를 지은 이를 벌하는 것은 백성을 그물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정전제(井田制)를 그려 보인다. “사방 1리를 하나의 정(井)으로 삼으니 900무이고, 그 가운데가 공전(公田)이다.” 여덟 집이 각각 100무를 사전으로 짓고 공전은 함께 경작하되, 공전 일을 먼저 끝낸다. 이런 제도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논란이다. 서주 초기의 제도로 소개하는 서술도 있지만, 에노는 이것이 실제로 시행되었다고 믿는 역사가는 드물며 주로 이상적 모델 구실을 했다고 쓴다.
중급
수사와 대화 형식
조기는 이미 맹자가 “비유에 뛰어나며”, 말이 몰아붙이지 않는데도 뜻은 온전히 전해진다고 평했다. 책에는 비유가 가득하다. 오십 보 달아난 병사가 백 보 달아난 병사를 비웃는 이야기(1A3),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1A7), 싹이 빨리 자라도록 잡아당긴 송나라 농부(2A2), 날마다 이웃 닭을 훔치다가 한 달에 한 마리로 줄이겠다고 약속한 사람(3B8), 아내와 첩에게 잔칫상을 얻어먹고 왔다고 자랑하지만 실은 무덤가에서 제사 음식을 빌어먹던 제나라 남자(4B33)가 그 예다. 그중 많은 것이 중국의 일상적인 고사성어가 되었다.
대화는 덫이기도 하다. 1B6에서 맹자는 선왕에게, 처자식을 맡겼는데 돌보지 않은 친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랫사람을 다스리지 못하는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례로 묻는다. 왕은 “절교하겠다”, “파면하겠다”고 답한다. 그러고 나서 세 번째 질문이 온다. 나라 전체가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왕은 좌우를 돌아보며 다른 이야기를 했다.” 왕이 피한 결론은 독자가 내리도록 남겨진다.
에노는 맹자가 묵가와 싸우기 위해 묵가가 즐겨 쓰던 도구인 논증을 받아들였다고 보며, 많은 대화가 반론에 맞서 유가의 가르침을 지키도록 제자들을 훈련하는 구실도 했다고 본다. 동시대 사람들도 이미 맹자를 유난히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사람들이 선생님더러 논쟁을 좋아한다고 한다는 제자의 말에 맹자는 이렇게 답한다(3B9). “내가 어찌 논쟁을 좋아하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다.” 양주와 묵적의 가르침에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인공뿐 아니라 엮은 이들의 손길로도 빚어졌다. 서술자가 장면을 소개하고, 어떤 구절은 맹자의 말이 아니라 서술자의 논평으로 끝난다(4B33이 그 예다). 문학적 완성도 덕분에 『맹자』는 초기 중국 산문의 본보기가 되었다. 책에 나오는 독서 원칙 하나는 그 자체로 유명해졌다. 시를 해석할 때 글자 때문에 구절을 해치지 말고 구절 때문에 뜻을 해치지 말며, “자기 마음으로 지은이의 뜻을 맞아들이라(以意逆志)”는 것이다(5A4).
중급
‘제자서’에서 과거 시험의 경전으로
천 년 동안 『맹자』는 존중받는 여러 책 가운데 하나였다. 한나라 문인들은 쓸모가 있을 때 이 책을 인용했다. 기원전 81년의 조정 논쟁을 기록한 『염철론』에서 국가 전매에 반대한 이들은 이익과 의로움에 관한 첫머리의 대화를 끌어왔다. 철학자 왕충(27년 출생)은 맹자를 비판하는 글까지 썼는데, 그 어조는 후대 학자들이라면 감히 쓰지 못했을 것이다. 조기와 유희(劉熙)가 주석을 남겼으나 조기의 것만 전한다.
이 책의 위상은 당나라 후기부터 높아졌다. 한유는 참된 도가 공자에게서 맹자로 이어졌다가 끊겼다고 주장했다. 북송 때 『맹자』는 경전의 반열에 올랐고, 손석(孫奭, 962~1033)의 것으로 전하는 소(疏)는 뒤에 『십삼경주소』에 들어갔다. 주희(1130~1200)는 『맹자집주』를 지었고, 1190년 이를 『논어』, 『대학』, 『중용』과 함께 간행했다. 이것이 사서(四書)다.
1313년 원나라 인종은 다시 시행하는 과거에서 주희의 사서를 쓰도록 조서를 내렸고, 새 규정에 따른 첫 시험은 1315년에 치러졌다. 중단과 변화가 있었지만 이것은 1905년 과거가 폐지될 때까지 중국 과거의 기본 교과 과정으로 남았다. 600년 동안 대부분의 지식인은 주희의 주석을 통해 맹자를 만났다.
경전의 지위가 책을 안전하게 지켜 주지는 않았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홍무제)은 1372년, 임금이 신하를 흙이나 지푸라기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원수처럼 여긴다는 구절을 보고 분노했다. 1394년 학자 유삼오(劉三吾)와 한림원 학사들은 『맹자절문(孟子節文)』을 만들어 85개에 이르는 장을 삭제했고, 삭제된 장은 과거 문제로 쓸 수 없게 되었다. 온전한 본문은 1415년 『사서대전』에서 공식적으로 복원되었지만, 민감한 구절은 그 뒤에도 과거 문제에 드물게만 나왔다.
중급
같은 시기 세계에서는: 중국과 그리스의 본성·통치 논쟁
『맹자』는 살아 있는 논쟁을 기록하고 있고, 그 논쟁은 계속되었다. 한두 세대 뒤 유학자 순자(기원전 310년 무렵 출생)의 반론이 나왔다. 지금 전하는 『순자』의 「성악」편은 전통적으로 그의 글로 여겨지며(일부 학자는 이 편이 뒤에 손질되었다고 본다),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僞)의 결과다.” 이 편은 맹자의 이름을 여러 번 든다. 굽은 나무는 김을 쐬고 틀에 끼워야 곧아지듯, 사람에게는 스승과 예와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성이 선하다면 성왕과 예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그는 묻는다. 그러면서도 순자는 “길거리의 사람도 우(禹)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는 맹자의 주장(6B2)과 가깝다. 이것은 실제 연결이다. 이 편은 맹자의 이름을 들어 인용하며 그의 가르침에 직접 답한다.
거의 같은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아테네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두 전통이 서로를 알았다는 증거는 없으므로, 아래는 접촉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교다. 두 사람 모두 경쟁하는 나라들의 세계—중국의 전국 시대, 그리고 마케도니아의 부상에 직면한 그리스 폴리스들—에 살았고, 좋은 품성이 어떻게 자라는지, 무엇이 통치를 정당하게 만드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모두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가는 움직임’의 이미지를 썼지만 정반대의 결론을 끌어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2권 1장에서, 본성상 떨어지는 돌은 만 번을 위로 던져도 올라가도록 길들일 수 없다고 논한다. 그러므로 덕은 “본성에 의해 생기는 것도, 본성에 어긋나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있고, 습관을 통해 완성된다.” 맹자는 아래로 흐르는 물을 들어, 선이야말로 인간 본성 자체의 방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두 입장은 표어가 보여 주는 것보다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습관화가 필요한 타고난 역량을 인정하고, 맹자는 길러 주어야 하며 망가질 수도 있는 싹을 인정한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은 공통점—상황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실천적 지혜, 규칙보다 품성의 함양—과 함께 차이점도 짚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 관조를 높이 치지만, 유가는 관조를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정치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3권 7장에서, 공동의 이익을 위한 1인 통치인 왕정과 통치자 자신의 이익을 위한 1인 통치인 참주정을 구분한다. 1B8에서 맹자의 대답도 비슷한 기준을 적용한다. 통치자는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가? 그러나 틀은 다르다. 맹자는 정당성을 하늘과 연결하며 하늘의 뜻은 백성의 수용으로 드러난다고 보고, 시민이 돌아가며 관직을 맡는다는 생각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적절한 조건에서라면 다수의 통치도 올바른 정체에 넣는다. 둘 다 깊은 위계를 받아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적 노예제를 옹호했고, 맹자는 마음을 써서 다스리는 사람과 힘을 써서 다스림을 받는 사람의 구분을 옹호했다(3A4).
중급
한국·일본, 그리고 그 너머의 수용
한국에는 『맹자』가 유학과 함께 들어왔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 시대 이전까지는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다. 주자학이 국가 이념이 된 조선에서 이 책은 선비의 필수 교양이 되었다. 1590년(선조 23) 교정청은 『맹자언해』를 펴냈는데, 각 장의 한문 원문 뒤에 한글 번역을 붙인 형식이며, 그 표기는 국어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조선 학자들은 이 책을 놓고 철학적으로도 논쟁했다. 이황과 기대승이 편지로 시작한 사단칠정 논쟁은 2A6의 네 싹(사단)이 『예기』의 칠정과 어떤 관계인지를 물었고, 이후 조선 학자들이 200년 가까이 이어 간 마음과 본성에 관한 일련의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정약용은 『맹자요의』(1814)에서 ‘성(性)’을 고정된 이치가 아니라 기호(嗜好), 곧 좋아하는 경향으로 풀이하며 성리학의 ‘성즉리(性卽理)’를 비판했다.
일본에서는 이토 진사이(1627~1705)가 『논어』와 『맹자』의 핵심 용어를 꼼꼼히 읽는 데서 자신의 철학을 세웠다. 그의 『어맹자의(語孟字義)』가 그 결과이며, 그는 주희의 틀을 거치지 않고 맹자를 읽으려 했다. 폭군을 몰아낼 수 있다는 맹자의 생각은 더 민감한 문제였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그런 정치적 가르침은 주로 지배층 사이에서 유통되었지만, 그 함의는 뒤에 더 널리 알려졌다.
유럽에서는 예수회 선교사 프랑수아 노엘이 라틴어 『중화제국의 여섯 고전』(프라하, 1711)에 『맹자』를 넣었고, 제임스 레그는 1861년 한문 원문을 곁들인 영어 번역을 냈다. 중국 안에서는 1919년 5·4 운동 당시의 반유교 비판자들이 맹자를 ‘공가점(孔家店)의 둘째 주인’이라고 공격했지만, 이 책은 지금도 현대 유학자들과 세계의 철학자들에게 살아 있는 텍스트다.
심화
여러 관점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표어로만 읽으면 맹자와 순자는 정면으로 대립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자는 그 차이가 생각보다 좁다고 본다. 둘 다 누구나 꾸준한 노력으로 선해질 수 있다고 보았고, 그 자원이 어디서 오는지—지켜야 할 내면의 싹(맹자)인지, 거친 욕망을 고쳐 주는 예와 스승(순자)인지—에서 갈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차이가 사소한 것은 아니다. 맹자에게 도덕의 기준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감정에서 자라나지만, 순자에게는 성인이 만든 것이어서 배워야 한다. 논쟁은 끝난 적이 없다. 예컨대 한대의 왕충은 맹자의 이론이 보통 이상의 사람에게만 들어맞는다고 보았다.
민주적인 맹자? 현대 철학자 가운데에는 7B14나 5A5 같은 구절에서 출발하는 이들이 있다. 바이퉁둥(白彤東)의 「맹자식 제한 민주주의(A Mencian Version of Limited Democracy)」(2008)는 이 구절들을 근거로 유가적 관점에서 민주적 제도를 조건부로 옹호한다. 저스틴 티왈드의 「『맹자』에 반란의 권리가 있는가?(A Right of Rebellion in the Mengzi?)」(2008)는 본문이 백성에게 실제로 얼마만큼을 인정하는지 더 신중하게 묻는다. 에노는 초기 중국에 능동적 민주주의라는 관념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맹자는 세습 왕정을 받아들였고, 그의 ‘민본’은 이론상의 혁명권에 해당하는데, 실제로는 귀족이 불만을 품은 백성을 이끄는 형태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군주들은 이 책의 정당성 기준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천명과 폭군 타도를 둘러싼 논의는 이미 한대에 정치적으로 민감해서 한 경제는 이를 다루던 조정 논쟁을 끊어 버렸고, 명나라 태조는 1394년 『맹자』 자체를 검열하기에 이르렀다.
본문은 얼마나 믿을 만한가? 골딘은 조기의 편집본이 그 이전의 모든 것을 대체했기 때문에 이전 판본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한대의 왕충은 지금의 본문에 없는 말로 맹자의 입장을 소개한다.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며 바깥 사물에 어지럽혀져 불선해진다는 것이다. 골딘은 이 말이 사라진 외서 가운데 본성의 선함을 다룬 편의 인용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초기 중국 문헌에는 인용 부호가 없어 확신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순자 역시 배우는 사람과 그 선한 본성에 관한 문장을 맹자의 말로 인용하지만, 이 문장도 우리 본문에는 보이지 않는다. 골딘은 또 공자가 『춘추』를 지었다는 3B9의 주장이 후대에 끼워 넣어진 것일 수 있다는 중국학자 판에스(Van Ess)의 견해도 소개한다. 반대로 지나친 회의론에 맞서 에노는, 책 속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그것도 자주 달갑지 않은 인물됨은 그를 아는 사람들이 실제 모습을 보고 그리지 않았다면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읽는 것은 누구의 맹자인가? 골딘이 한대 문헌의 인용을 조사한 결과, 오늘날 가장 맹자다운 구절로 여겨지는 우물가의 어린아이(2A6), ‘한 사내’로서의 폭군(1B8), 물에 빠진 형수(4A17), ‘양지(良知)’(7A15)는 남아 있는 한대 문헌에서 한 번도 인용되지 않은 반면, 양혜왕과의 첫 대면은 거듭 인용되었다. 그는 침묵은 약한 증거라고 경계하면서도, 현대의 독법이 여전히 성리학의 영향을 짙게 받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심화
증거와 방법: 주석을 통해 읽기
조기의 주석은 없어서는 안 되면서도 검증할 수 없는 자료다. 책에 나오는 많은 군소 인물이 누구인지 알려 주는 가장 이른 안내서이고 후대 주석가들도 대부분 이에 기대지만, 맹자보다 약 4세기 뒤에 쓰였으며 그 고증의 상당수에는 독립된 증거가 없다. 그래서 에노는 개별 사례마다 조기의 정보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조기는 또 일곱 편의 순서를 의도된 전개로 설명했다. 왕에게 인의를 제시하는 데서 시작해 그 적용, 예와 효를 거쳐 인간 본성에 이르고,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해’ 하늘과 하나 되는 데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엮은 이들이 실제로 그런 순서를 계획했는지는 증명할 수 없다.
후대의 주석은 같은 글자를 저마다 다르게 읽었다. 주희는 이(理)와 하늘에서 받은 본성이라는 틀로 『맹자』를 철학적으로 읽었다. 청나라 고증학자들은 이에 반발했다. 대진(1724~1777)은 성리학자들이 맹자의 핵심 용어를 오해했다고 주장했고, 초순(1763~1820)은 『맹자정의』에서 문헌학적 주석을 가장 폭넓게 집대성했다. 현대 번역자들은 대개 이 모든 층위를 함께 참고한다.
대화의 연대를 정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책에는 양혜왕, 제 선왕 같은 군주가 나오지만, 전국 시대 군주들의 재위 연대는 사마천의 연표와 후대의 재구성 사이에 차이가 있다. 제 선왕의 재위는 어떤 참고 자료에서는 기원전 342~324년, 다른 자료에서는 기원전 319~301년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책 속 장면들의 연표는 어느 연대표를 택하느냐에 달려 있고, 성립 연대도 대략적인 범위로만 제시된다.
핵심 개념
- 사단(四端)
- 측은·수오·사양·시비의 마음. 인·의·예·지의 타고난 시작으로, 우물가의 어린아이(2A6)가 그 증거로 제시된다.
- 아래로 흐르는 물 같은 본성
- 고자에 대한 맹자의 대답(6A2). 물이 아래로 향하듯 인간 본성에는 선으로 향하는 방향이 있다.
- 기름과 손상
- 우산 구절(6A8). 선은 기르면 자라고 베어 내면 시드니, 나쁜 행실이 나쁜 본성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 백성이 가장 귀하다(民爲貴)
- 7B14에서 백성은 사직과 임금보다 위에 놓인다. 임금과 사직은 바꿀 수 있다.
- ‘한 사내’로서의 폭군
- 1B8. 인의를 해치는 군주는 이미 군주가 아니므로 그를 처형하는 것은 시해가 아니다.
- 항산과 항심
- 도덕적 행동을 기대하기 전에 정치는 먼저 백성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3A3). 정전제의 이상이 그 예다.
- 이의역지(以意逆志)
- 5A4의 독서 원칙. 낱말 하나에 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으로 지은이의 뜻을 맞아들여 글을 이해한다.
기록
- 약 기원전 320년 — 이 무렵, 양혜왕이 죽은 기원전 319년 직전에 맹자가 양혜왕을 만난다. 책의 첫 장면이다.
- 약 기원전 314년 — 제나라가 연나라를 침공한다(기원전 314년 무렵). 이 전쟁에 관한 맹자의 대화가 제1편과 제2편에 실려 있다.
- 약 기원전 289년 — 전통적으로 전하는 맹자의 사망 연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계속 엮고 전한다.
- 약 기원전 100년 — 사마천이 맹자와 제자들이 “『맹자』 일곱 편을 지었다”고 기록한다.
- 약 170년 — 조기(201년 사망)가 주석을 쓰고, 일곱 편을 열네 부분으로 나누며, 외서 4편을 제외한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다.
- 1190년 — 주희가 『맹자』를 『논어』, 『대학』, 『중용』과 함께 사서로 묶어 자신의 주석과 함께 간행한다.
- 1313년 — 원나라 조정이 과거에 주희의 사서를 쓰도록 조서를 내린다. 첫 시험은 1315년에 치러진다.
- 1394년 — 홍무제 때 85개에 이르는 장을 삭제한 『맹자절문』이 나온다. 온전한 본문은 1415년에 복원된다.
- 1590년 — 조선의 교정청이 『맹자』의 한글 번역서 『맹자언해』를 펴낸다.
- 1711년 — 『맹자』를 포함한 프랑수아 노엘의 라틴어 번역이 프라하에서 출간된다.
- 1814년 — 정약용이 인간 본성을 기호로 새롭게 풀이한 『맹자요의』를 완성한다.
- 1905년 — 사서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과거 제도가 폐지된다.
용어 풀이
- 편(篇)
- 초기 중국 문헌의 큰 단위. 『맹자』는 일곱 편이며, 뒤에 각각 둘로 나뉘었다.
- 장(章)
- 편 안의 한 단락이나 구절. 조기는 『맹자』를 261장으로 셈했다.
- 외서(外書)
- 조기가 후대의 모방작으로 보고 제외한 4편. 전하지 않는다.
- 주석
- 경전 옆에 붙인 풀이. 『맹자』의 주요 주석은 조기, 주희, 초순의 것이다.
- 사서(四書)
- 주희가 유학 공부의 핵심으로 묶은 『대학』, 『논어』, 『맹자』, 『중용』.
- 과거(科擧)
- 관리를 뽑는 국가 시험. 원나라 이후 주희의 주석을 붙인 사서를 바탕으로 했다.
- 맹자절문(孟子節文)
- 1394년의 축약본 『맹자』. 명 태조의 비위에 거슬린 구절을 삭제했다.
- 정전제(井田制)
- 여덟 집이 공동의 공전을 둘러싼 사전을 경작하는 이상적 토지 제도. 모양이 井 자와 같다.
- 언해(諺解)
- 한문 문헌을 한글로 풀이·번역한 책. 원문과 함께 싣는다.
- 성(性)
- ‘본성’. 생명체가 지닌 고유한 경향으로, 「고자 상」 논쟁의 중심 개념이다.
묻고 답하기
맹자가 이 책을 직접 썼나요?
사마천과 조기는 맹자가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지었다고 했습니다. 한유를 비롯한 다른 학자들은 제자들이 엮었다고 보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학자는 맹자와 그 주변에서 비롯되었으나 그의 사후 후학들이 완성했다고 봅니다.
왜 편마다 두 부분이 있나요?
2세기의 조기가 일곱 편을 각각 상·하로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2A6처럼 A와 B를 붙여 구절을 가리킵니다.
책에서 빠진 부분이 있나요?
아마 있을 것입니다. 한나라 목록에는 11편으로 나오지만 조기는 일곱 편만 남기고 외서 4편을 제외했으며, 외서는 전하지 않습니다. 초기 문헌이 맹자의 말로 인용한 문장 가운데 지금의 본문에 없는 것도 있습니다.
왜 황제가 이 책을 잘라 내려 했나요?
명나라를 세운 황제는 임금이 신하의 충성을 얻어 내야 한다거나 백성이 임금보다 중요하다는 구절을 싫어했습니다. 1394년 축약본에서 85개에 이르는 장이 삭제되었지만, 1415년 온전한 본문이 복원되었습니다.
정전제는 실제로 있었나요?
맹자는 이를 고대의 제도로 설명하고 등나라에 권했습니다. 서주 초기의 관행으로 소개하는 서술도 있지만, 맹자가 그린 반듯한 형태로 실제 존재했는지 의심하는 역사가가 많습니다.
맹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를 알았나요?
서로 알았다는 알려진 증거는 없습니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지만 두 세계 사이에 접촉이 있었다는 흔적도 없습니다. 둘을 비교하는 것은 품성과 통치에 관해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맹자』는 『논어』와 어떻게 다른가요?
『논어』는 주로 짧은 어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맹자』에는 비유가 가득한 긴 대화와 논증이 들어 있고, 주인공의 성격도 훨씬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Bryan Van Norden, 맹자 (Mencius).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2024
- Robert Eno, 맹자: 온라인 강의용 번역 (Mencius: An Online Teaching Translation). Indiana University ScholarWorks, 2016
- Paul R. Goldin, 한대의 맹자 (Mencius in the Han Dynasty, 『Dao Companion to the Philosophy of Mencius』 수록). Springer, 2023
- Ulrich Theobald, 맹자 (Mengzi 孟子). ChinaKnowledge.de
- Zhao Qi, 맹자제사(孟子題辭) — 조기의 서문, 사부총간본. 위키문헌(중국어)
- 맹자(孟子) 원문. 위키문헌(중국어)
- Sima Qian, 사기 권74 「맹자순경열전」. 위키문헌(중국어)
- Ban Gu, 한서 권30 「예문지」. 위키문헌(중국어)
- 순자 「성악」편. 위키문헌(중국어)
- 순자 (Xunzi).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 Liangyan Ge, 학자와 국가: 명청 시대 정치 담론으로서의 소설 (The Scholar and the State), 2장.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15
- Ulrich Theobald,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 ChinaKnowledge.de
- Feiran Du, 주희의 사서 (Zhu Xi’s Four Books 朱熹四書). Database of Religious History (Zenodo), 2024
- Hoyt Cleveland Tillman, 주희 (Zhu Xi). EBSCO Research Starters
- 맹자 (책) (Mencius (book)). 위키백과(영어)
- 정전제 (Well-field system). 위키백과(영어)
- Aristotle, 니코마코스 윤리학 2권 (W. D. 로스 영역). The Internet Classics Archive (MIT)
-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Aristotle’s Ethics).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 Fred Miller,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이론 (Aristotle’s Political Theory).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 맹자 (孟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맹자언해 (孟子諺解).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맹자언해 (소장품). 국립중앙박물관
- 사서: 정약용 선생의 저술. 남양주시 다산정약용문화제
- 일본 유학 철학 (Japanese Confucian Philosophy).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 프랑수아 노엘 (François Noël). 위키백과(영어)
- 《孟子外书》考述 (『맹자외서』 고찰). 쓰촨대학 고적정리연구소, 2005
함께 보기
- 맹자사람에게는 선한 마음의 싹이 있으며 통치자는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유학자다.
- 논어공자와 제자들의 말과 짧은 대화를 공자 사후에 엮은 책으로, 2천 년 동안 동아시아 전역에서 읽혔다.
- 공자노나라의 스승. 제자들이 모은 『논어』 속 가르침은 동아시아의 윤리와 정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 주희성리학의 체계를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송나라 철학자다.
- 과거제수나라 때인 605년 무렵 시작되어 1905년에 폐지된, 신분이 아닌 시험으로 확인한 학식으로 관리를 뽑은 중국의 필기시험 제도다.
-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리케이온을 세우고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자연학을 두루 저술했다.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