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아주 먼 옛날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의 열대림과 도시에서 마야 사람들은 아름다운 글자를 새기고 그렸다. 작은 네모 그림 하나하나를 ‘글리프’라고 부른다. 어떤 글리프는 얼굴이나 동물, 손, 작은 물건처럼 생겼고, 이것들이 가지런한 덩어리 안에 오밀조밀 모여 있다.
마야 글자는 퍼즐 같다. 어떤 글리프는 낱말 하나를 통째로 나타낸다. 재규어 머리 그림은 ‘재규어’라는 뜻이다. 다른 글리프는 ‘바’, ‘라’, ‘마’ 같은 소리를 나타낸다. 서기는 재규어를 뜻하는 낱말 ‘발람’을 재규어 머리로 쓸 수도, 소리 기호 세 개로 ‘바-라-마’라고 쓸 수도, 둘을 섞어 쓸 수도 있었다. 그래서 글쓰기가 재미있고 창의적이었다.
마야 사람들은 커다란 돌 기념비, 신전의 벽과 계단, 그림 그린 잔과 접시, 뼈와 옥, 그리고 나무껍질 종이로 만든 병풍 모양 책에 글을 썼다. 왕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왕이 되었는지, 어떤 전쟁을 치르고 어떤 신을 섬겼는지 적었다. 놀라운 달력을 만들고 금성과 달의 움직임도 기록했다.
1500년대에 스페인 사제들이 왔을 때, 그중 몇몇은 마야 책이 자기 종교에 어긋난다고 여겨 불태웠다. 오늘날 남은 옛 마야 책은 네 권뿐이다. 수백 년 동안 아무도 글리프를 읽지 못했다.
그러다 20세기에 여러 나라의 ‘탐정’들이 암호를 풀었다. 그 가운데에는 늙어서야 처음 마야 땅을 밟아 본 러시아 학자도 있었다. 이제 전문가들은 마야 글 대부분을 읽을 수 있고, 마야 사람들도 조상의 글자를 다시 배워 읽고 쓰고 있다.
한눈에 보기
- 유형
- 표어음절 문자. 낱말 기호(표어문자)와 음절 기호(음절문자)를 함께 쓴다
- 시기
- 가장 이른 글 기원전 300~200년경(과테말라 산바르톨로). 서기 250~900년경 전성기. 스페인 정복 때까지 책에 쓰였다(마지막 독립 마야 왕국은 1697년 멸망)
- 지역
- 마야 저지와 고지. 멕시코 남부(치아파스·타바스코·유카탄반도),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 서부, 엘살바도르
- 언어
- 주로 고전 마야어. 촐티어·초르티어와 가까운 권위 있는 문어이며, 일부 글에는 유카텍어 등 다른 마야어의 특징이 보인다
- 매체
- 돌 석비·제단·상인방·계단, 벽화, 채색·조각 토기, 옥·뼈·조개, 나무껍질 종이 코덱스
- 남은 책
- 코덱스 네 권: 드레스덴, 마드리드, 파리, 멕시코 마야 코덱스(옛 그롤리에 코덱스)
- 해독
- 1952~1990년대 큰 돌파구(크노로조프, 베를린, 프로스쿠리아코프, 팔렝케 원탁회의 등). 지금은 글의 90% 이상을 상당히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 지도 위치
- 고전기 마야 비문이 가장 풍부한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팔렝케에 표시
쉬움
마야 문자란 무엇인가
마야 문자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상당 부분을 아우르는 문화권인 메소아메리카에서 고대 마야 문명이 쓴 문자다. 메소아메리카에서 생겨난 여러 문자 가운데 가장 잘 이해된 문자이며, 역사와 정치, 종교, 천문을 기록한 긴 글을 오늘날 자세히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문자다.
마야 문자는 ‘글리프’라고 부르는 수백 개의 서로 다른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글리프가 머리, 동물, 손, 식물, 물건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단순한 그림은 아니다. 이집트 상형문자나 한자처럼 문법과 이름, 시까지 말을 그대로 적을 수 있는 완전한 문자 체계다.
마야 문자는 약 2천 년 동안 쓰였다. 분명히 마야 문자라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글은 기원전 300~200년 무렵의 것이다. 문자는 고전기(서기 250~900년경)에 꽃피었다. 이때 티칼, 칼라크물, 팔렝케, 코판, 약스칠란 같은 수십 개의 왕국이 비문으로 뒤덮인 조각 기념비를 세웠다. 9~10세기 남부 저지의 많은 도시가 무너진 뒤에도 문자는 특히 책의 형태로 유카탄과 페텐에서 스페인 정복 때까지 이어졌다.
정복 이후 여러 세기 동안 이 문자는 읽히지 않았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 걸음씩 이루어진 해독은 20세기의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이며, 마야 역사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쉬움
마야 문자의 원리: 낱말, 음절, 글자 덩어리
마야 문자는 표어음절 문자다. 두 종류의 기호를 함께 쓴다는 뜻이다. 표어문자는 낱말 전체나 뜻을 가진 낱말의 일부를 나타낸다. 음절문자는 ‘바’, ‘카’, ‘라’, ‘마’처럼 대개 자음 하나와 모음 하나로 된 음절을 나타낸다. 한자(뜻글자)와 가나(음절 글자)를 섞어 쓰는 오늘날의 일본어와 견주면 이해하기 쉽다.
서기에게는 같은 낱말을 쓰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 재규어를 뜻하는 ‘발람(bʼalam)’은 재규어 머리를 그린 표어문자 하나로 쓸 수도, 발음을 알려 주는 음절 기호를 덧붙여 ‘바-발람’이나 ‘발람-마’로 쓸 수도, 모두 음절로 ‘바-라-마’라고 쓸 수도 있었다. 낱말이 자음으로 끝나면 대개 모음을 읽지 않는 음절을 덧붙였다. ‘음성 보충자’라고 부르는 이런 소리 힌트는 표어문자가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을 때 올바른 읽기를 고르게 도왔다.
글리프는 대략 네모난 ‘글자 덩어리(글리프 블록)’로 묶였다. 덩어리마다 보통 중심 기호가 있고 위아래나 옆에 작은 기호가 붙었다. 글은 보통 두 줄씩 짝지어 읽었다. 두 줄에 걸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읽은 뒤 다음 두 줄로 넘어간다. 이 배열은 석비의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과 코덱스의 쪽에 잘 맞는다.
같은 기호도 여러 방식으로 그릴 수 있었다. 서기는 단순한 기하학적 모양을 쓰거나, 얼굴로 나타낸 ‘머리 변형’을 쓰거나, 기호가 온전한 인물이 되는 ‘전신 변형’까지 쓸 수 있었다. 철자이면서 예술이기도 한 이 자유로운 다양성은 마야 비문이 아름다운 까닭이자 해독이 그토록 어려웠던 까닭이다.
쉬움
마야인은 무엇을 적었나
가장 눈에 띄는 글은 공공 기념물에 있다. ‘석비’라고 부르는 키 큰 조각 돌판에는 흔히 화려하게 차려입은 왕이 새겨져 있고, 탄생, 즉위, 혼인, 의례, 전쟁, 포로 사로잡기, 죽음 같은 왕의 삶의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615년에 즉위해 683년에 죽은 팔렝케의 위대한 왕 키니치 하나브 파칼은 그가 묻힌 ‘비문의 신전’의 긴 비문 덕분에 자세히 알려져 있다.
거의 모든 비문은 날짜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마야인은 맞물려 돌아가는 여러 달력을 썼다. 260일 의례력, 365일 태양력, 그리고 가장 널리 쓰이는 환산법으로 기원전 3114년 8월 11일에 해당하는 신화적 기점부터 날을 세는 ‘장기력’이다. 9.12.11.5.18 같은 장기력 날짜는 그 기점부터 14만 4천 일, 7,200일, 360일, 20일, 1일 단위가 각각 몇 번 지났는지를 알려 준다.
문자는 엘리트의 일상용품에도 나타난다. 채색 원통형 잔에는 흔히 ‘일차 표준 문구’라고 부르는 글리프 띠가 둘려 있는데, 그릇을 봉헌하고, 그릇의 종류와 담은 것(흔히 초콜릿 음료)을 밝히고, 주인의 이름을 적는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서명이 있는 그릇도 있다. 옥 장신구와 뼈, 조개, 나무 물건에도 글이 있다.
병풍처럼 접는 책인 코덱스에는 점치기 위한 역서, 일식과 금성 주기를 예측하는 표, 의례와 제사의 안내가 담겼다. 이 책은 마야어로 ‘우운(huun)’이라 부르는 나무껍질 종이에 고운 석회를 입히고 붓으로 그려 만들었다.
중급
문자의 기원과 역사
메소아메리카의 문자는 마야 문자보다 오래되었다. 올멕 시기 유물에서 더 이른 기호가 알려져 있고, 사포텍 문자와 이른바 에피올멕(이스무스) 문자 등 여러 초기 문자가 이 지역에서 생겨났다. 가장 이른 장기력 날짜 가운데 일부는 치아파 데 코르소의 석비 2(기원전 36년), 트레스 사포테스의 석비 C(기원전 32년)처럼 마야 지역 바깥에서 나온다. 마야 문자는 이렇게 메소아메리카가 공유한 문자와 역법 전통 안에서 자라났다.
분명히 마야 문자라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글은 과테말라 산바르톨로에서 나왔다. 2005년 발견된 채색 글은 기원전 300년 무렵의 것이고, 2022년 발표된 조각들에는 기원전 300~200년 무렵의 260일력 날짜(‘7 사슴’)가 들어 있다. 산바르톨로는 기원전 100년 무렵 그려진, 옥수수 신과 창조 신화를 짧은 설명 글과 함께 보여 주는 벽화로도 유명하다.
고전기에 문자는 왕권과 긴밀히 묶였다. 왕들은 스스로를 ‘쿠훌 아하우(성스러운 군주)’라 부르고, 조각 기념비로 자기 혈통과 동맹, 경쟁 왕국에 대한 승리를 선포했다. 솜씨 좋은 서기는 일부 귀족 가문 출신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고, 몇몇은 이름까지 알려져 있으며, 글을 읽고 쓸 줄 안 왕도 있었을 것이다.
기념비에 새긴 마지막 장기력 날짜는 909년 토니나와 인근 유적의 것으로, 고전기 왕국들의 붕괴를 반영한다. 그러나 문자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유카탄 북부와 페텐에서는 책이 계속 만들어지고 쓰였다. 남아 있는 코덱스 네 권 가운데 세 권은 이 후고전기(대략 900년~1500년대)의 것으로 여겨진다.
중급
정복과 상실: 책을 불태우다
스페인의 마야 정복은 1520년대부터 17세기 말까지 길고 고르지 않게 이어졌다.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은 상형문자 책을 우상 숭배의 산물로 보았다.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은 1562년 7월 12일 유카탄의 마니에서 일어났다. 프란치스코회 수사 디에고 데 란다가 공개 처벌 의식인 ‘아우토다페’를 열어 수십 권의 책과 수천 점의 성상을 불태운 것이다. 그의 조사에는 전통 종교를 이어 간다고 의심받은 마야인에 대한 고문도 뒤따랐다.
란다는 뒤에 그 책들이 ‘미신과 악마의 거짓’을 담고 있었고 마야인들이 그 상실을 깊이 슬퍼했다고 적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사람이 마야 문화에 대한 가장 중요한 초기 기록인 『유카탄 사정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1566년경)를 썼는데, 여기에는 란다가 마야의 ‘알파벳’이라고 믿은 기호 목록이 들어 있다. 이 글의 후대 사본은 1862년 프랑스 학자 샤를 에티엔 브라쇠르 드 부르부르가 다시 찾아내 출판했다.
마야 문자는 한동안 은밀히 또는 외진 곳에서 이어졌다. 과테말라 페텐이차 호수의 섬 수도 노흐페텐을 중심으로 한 이차 왕국은 1697년 3월 10일 스페인의 공격을 받을 때까지 독립을 지켰다. 이차는 상형문자 책을 간직한 마지막 공동체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고, 페텐 정복 이후 글리프를 읽는 지식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야인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16세기부터 그들은 라틴 문자로 자기 언어를 적어, 키체족의 『포폴 부』와 유카탄의 『칠람 발람의 책』 같은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이 글들은 역사와 신화, 예언을 담고 있으며, 일부는 옛 상형문자 책을 옮겨 적은 것일지도 모른다.
중급
살아남은 네 권의 책
독일 드레스덴 주립 도서관에 있는 드레스덴 코덱스는 가장 정교한 책으로, 천문표와 역서, 의례 지침이 78쪽에 담겨 있다. 그 표는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고 금성의 주기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추적한다. 1880년에서 1900년 무렵 사서 에른스트 푀르스테만은 이 책으로 마야의 수 체계와 장기력을 밝혀냈는데, 이것이 문자 이해의 첫 큰 걸음이었다.
112쪽의 마드리드 코덱스는 가장 길다. 1860년대 스페인에서 두 부분으로 따로 발견되어 한때 트로아노 코덱스, 코르테시아누스 코덱스로 불렸다. 주로 사제가 쓰던 역서와 점성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러 서기가 그렸다.
22쪽뿐이고 많이 닳은 파리 코덱스는 1859년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오래된 서류 바구니 속에서 발견되었다. 여러 해 주기의 예언과 흔히 ‘마야 황도대’라 부르는 별자리 목록이 들어 있다.
네 번째 책은 오랫동안 그롤리에 코덱스라 불리다 2018년 ‘멕시코 마야 코덱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금성력이 담긴 11쪽짜리 조각이다. 진위가 오래 의심받았지만 과학적 검사 끝에 멕시코 당국이 진품으로 인정했고, 서기 1021~1154년 무렵의 것으로 연대를 매겼다. 그렇다면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책일 수도 있다. 아메리카에 있는 유일한 마야 코덱스로,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있다.
중급
암호를 풀다
첫 진전은 숫자와 달력에서 왔다. 드레스덴 코덱스에 대한 푀르스테만의 연구와 조지프 굿먼 같은 학자들의 기념비 연구로 장기력과 날짜의 구조가 드러났다. 20세기 중반 학자들은 마야 기념비의 날짜는 읽을 수 있었지만 그 둘레의 낱말은 읽지 못했다. 이 분야를 이끌던 영국의 마야학자 J. 에릭 S. 톰프슨은 글리프가 대체로 뜻을 나타내는 신비로운 기호라고 주장했고, 란다의 ‘알파벳’을 터무니없다며 물리쳤다.
1952년 레닌그라드에서 연구하던 소련의 언어학자 유리 크노로조프는 란다의 목록이 알파벳이 아니라 음절 목록이라고 제안했다. 란다가 마야인 조력자에게 스페인어 글자 ‘아’, ‘베’, ‘세’ 등을 쓰게 하자, 조력자들은 자기가 들은 소리를 나타내는 기호를 적었다는 것이다. 크노로조프는 마야 문자가 다른 초기 문자처럼 표어문자와 소리 기호를 함께 쓴다는 것을 보였다. 톰프슨은 그의 연구를 공격했고, 냉전 정치 때문에 그의 생각은 서방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다른 돌파구들은 글의 내용을 드러냈다. 1958년 하인리히 베를린은 왕국 이름이 들어간 왕의 칭호인 ‘엠블럼 글리프’를 찾아냈다. 1960년 건축가 출신 고고학자 타티아나 프로스쿠리아코프는 피에드라스 네그라스의 날짜 유형을 분석해, 기념비가 신과 천문만이 아니라 역사 속 지배자들의 삶, 곧 2백 년에 걸친 일곱 왕의 계보를 기록했음을 보였다.
1973년 제1회 팔렝케 원탁회의(메사 레돈다)에서 린다 쉴리, 피터 매슈스, 플로이드 라운즈버리 등 작은 모임이 단 하루 오후 만에 팔렝케 왕조사의 대부분을 풀어내어, 여섯 왕의 이름과 생애를 읽었다. 1970년대 말부터는 10대에 이미 발견을 해낸 데이비드 스튜어트를 비롯한 새 세대가 크노로조프의 음성적 접근과 프로스쿠리아코프의 역사적 방법을 결합했고, 해독 속도는 크게 빨라졌다.
중급
오늘의 마야 문자
마야인은 사라진 민족이 아니다. 오늘날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에서 수백만 명이 키체어, 케크치어, 카크치켈어, 맘어, 유카텍 마야어, 그리고 고전기 비문과 가장 가까운 현대어인 초르티어 등 서른 개 안팎의 마야어를 쓴다. 지난 5세기 대부분 동안 이들은 이 언어들을 라틴 문자로 적어 왔다.
최근 수십 년 사이 마야 공동체에서 글리프가 되살아나고 있다. 금석학자와 마야인 교사들이 이끄는 워크숍에서 마야어 사용자들이 문자를 배우고, 자기 언어와 전통에 비추어 옛 글을 읽으며, 글리프로 새 글을 짓는다. 많은 참가자에게 이는 식민 지배가 앗아 간 유산을 되찾는 일이다.
이 부흥은 누가 마야 역사를 해석하는가도 바꾼다. 20세기 대부분 동안 해독은 외국 학자들이 이끌었다. 이제는 마야인 금석학자와 교육자들이 연구와 대중 교육, 유적 보호에 참여하고, 살아 있는 언어와 지명, 의례에 대한 그들의 지식이 옛 글을 밝혀 준다.
문자를 디지털로 쓰기 위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컴퓨터 문자의 국제 표준인 유니코드에 마야 상형문자를 넣자는 제안이 마련되고 있으며, 잠정 영역이 배정되어 있다. 마야 문자는 기호를 복잡한 방식으로 덩어리로 묶기 때문에 부호화가 기술적으로 까다롭다.
심화
학계의 논쟁과 열린 질문
비문의 언어. 대부분의 전문가는 고전기 비문이 흔히 고전 마야어 또는 고전 촐티어계라 부르는 권위 있는 언어, 곧 촐티어(지금은 사라짐)와 초르티어의 조상 언어로 쓰였다고 본다. 이 언어는 중세 유럽의 라틴어처럼, 여러 마야어를 쓰는 사람들의 왕국 사이에서 두루 쓰인 문어였을 수 있다. 일부 글에는 유카텍어 등 지역 언어의 특징이 나타나며, 문어가 일상 구어를 얼마나 반영했는지는 논쟁거리다.
철자 규칙. 마야 철자가 모음 길이나 성문 폐쇄음 같은 특징을 얼마나 표기했는지를 두고 학자들의 의견이 갈린다. 영향력 있는 한 제안은, 읽지 않는 끝 모음이 앞 모음과 같은지 다른지(조화·부조화 규칙)가 그런 구별을 나타냈다고 본다. 다른 이들은 체계가 그만큼 규칙적이지 않았다고 여긴다. 이 논쟁은 고전 마야어 낱말의 전사 방식에 영향을 준다.
해독과 그 역사. 해독의 역사 자체도 논쟁 대상이다. 마이클 D. 코의 『마야 코드 해독(Breaking the Maya Code)』(1992)은 톰프슨을 큰 걸림돌로, 크노로조프를 명예를 되찾은 이방인으로 그렸다. 다른 역사가들은 톰프슨에게도 실질적 공헌이 있었고, 크노로조프의 초기 읽기에는 오류가 있었으며, 진전은 프로스쿠리아코프와 베를린, 후대 세대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에게 달려 있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뿐 아니라 아마추어와 학생에게도 열린 비공식 워크숍이었던 팔렝케 원탁회의는 협력 연구의 본보기로 자주 거론된다.
아직 읽지 못한 것은? 지금은 대부분의 글을 읽을 수 있지만, 일부 기호는 여전히 해독되지 않았거나 불확실하고, 많은 읽기가 잠정적이다. 문장을 읽을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도 다르다. 왕의 칭호나 의례 용어, 신화 속 이름은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어도 뜻은 모호할 수 있다. 산바르톨로의 초기 글이나 라이다 조사로 찾은 기념비 같은 새 발견이 계속 자료를 더하고 있다.
심화
증거와 방법: 잊힌 문자를 읽어 낸 방법
이중 언어 열쇠. 로제타석이 있었던 이집트어와 달리 마야 문자에는 진정한 이중 언어 비문이 없었다. 스페인 수사의 물음에 마야인 서기가 답한 불완전한 기록인 란다의 목록이 부분적으로 그 역할을 대신했다. 식민지 시기의 마야어 사전과 문법서, 그리고 살아 있는 언어 자체가 음성적 읽기를 검증할 어휘를 제공했다.
내적 분석. 연구자들은 구조적 방법을 썼다. 같은 낱말에서 어떤 기호들이 서로 바뀌어 쓰이는지, 어떤 기호가 특정 날짜나 그림과 함께 나오는지, 기호가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추적했다. 프로스쿠리아코프의 연구는 낱말을 읽지 않고도 날짜 유형을 분석하는 방법의 힘을 보여 주었다. 표어문자와 같은 낱말의 음절 철자가 번갈아 쓰이는 치환 유형은 읽기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맥락과 그림. 마야 글은 흔히 그림과 함께 있다. 그릇에 그려진 인물의 이름을 밝히는 설명 글이나, 옥좌에 앉은 왕 곁에 즉위를 서술한 글이 새겨진 기념비가 그렇다. 글과 그림을 맞추고 수백 개의 사례를 비교해 학자들은 ‘태어났다’, ‘(왕으로) 앉았다’, ‘죽었다’ 같은 동사를 찾아냈다.
자료 집성. 하버드 피보디 박물관에서 이언 그레이엄이 이끈 『마야 상형문자 비문 집성』 사업과 채색 그릇의 사진 기록 같은 체계적 기록 덕분에 세계 곳곳의 학자들이 글을 비교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디지털 데이터베이스와 3D 스캔이 이 작업을 넓히고 있다. 마야 문자 해독이 주는 방법론적 교훈은, 진전이 언어학과 고고학, 미술사, 그리고 살아 있는 마야어에 간직된 지식을 결합하는 데서 왔다는 것이다.
핵심 개념
- 표어음절 문자
- 낱말 기호와 음절 기호를 결합해 같은 낱말을 여러 방식으로 적을 수 있는 체계.
- 음성 보충자
- 표어문자의 발음을 알려 주고 모호함을 피하려고 덧붙인 음절 기호.
- 문자와 왕권
- 고전기 마야 왕들은 기념비 비문으로 탄생과 즉위, 동맹, 전쟁을 기록했다.
- 달력과 우주
- 장기력을 비롯한 맞물린 달력이 역사와 의례를 정확한 시간 위에 고정했다.
- 식민 지배의 파괴
- 책의 소각과 마야 종교의 탄압이 여러 세기 동안 전승의 고리를 끊었다.
- 협력적 해독
- 여러 나라의 언어학자, 고고학자, 미술사가가 힘을 합쳐 문자를 읽어 냈다.
- 살아 있는 유산
- 오늘날 마야 공동체는 글리프를 문화 정체성의 일부로 되찾고 있다.
기록
- 약 기원전 300년 — 과테말라 산바르톨로에서 분명히 마야 문자라 할 수 있는 가장 이른 글이 쓰인다.
- 기원전 36년 — 치아파 데 코르소의 석비 2에 가장 이른 장기력 날짜 가운데 하나가 새겨진다(마야 지역 바깥).
- 615년 — 키니치 하나브 파칼이 팔렝케 왕으로 즉위한다. 그의 치세는 비문에 자세히 기록된다.
- 909년 — 토니나와 인근 유적에 기념비의 마지막 장기력 날짜가 새겨진다.
- 약 1100년 — 멕시코 마야 코덱스(그롤리에)가 만들어진다(1021~1154년경).
- 1562년 — 디에고 데 란다가 유카탄 마니에서 마야 책과 성상을 불태운다(7월 12일).
- 약 1566년 — 란다가 ‘알파벳’이 담긴 『유카탄 사정기』를 쓴다.
- 1697년 — 이차의 수도 노흐페텐이 스페인군에 함락되어(3월 10일) 마지막 독립 마야 왕국이 무너진다.
- 1862년 — 브라쇠르 드 부르부르가 란다의 『유카탄 사정기』를 출판한다.
- 1952년 — 유리 크노로조프가 마야 문자의 음성적 해석을 발표한다.
- 1960년 — 타티아나 프로스쿠리아코프가 마야 기념비가 역사 속 지배자를 기록했음을 보인다.
- 1973년 — 제1회 팔렝케 원탁회의에서 팔렝케 왕조의 계보를 복원한다.
용어 풀이
- 글리프
- 마야 문자의 기호 하나.
- 글자 덩어리(글리프 블록)
- 하나의 단위로 읽는 대략 네모난 기호 묶음. 보통 낱말이나 구 하나.
- 표어문자
- 낱말 전체나 뜻을 가진 단위를 나타내는 기호.
- 음절문자
- 대개 자음과 모음으로 된 음절을 나타내는 기호.
- 석비
- 흔히 왕과 비문을 새긴, 똑바로 세운 조각 돌판.
- 코덱스
- 병풍처럼 접는 책. 마야인은 석회를 입힌 나무껍질 종이로 만들었다.
- 장기력
- 기원전 3114년의 기점부터 날을 세는 메소아메리카의 달력.
- 엠블럼 글리프
- 왕국 이름이 들어간 왕의 칭호. 1958년 하인리히 베를린이 밝혀냈다.
- 쿠훌 아하우
- ‘성스러운 군주’. 고전기 마야 왕의 칭호.
- 금석학
- 비문을 연구하는 학문.
- 아우토다페
- 종교 재판소나 교회 당국이 연 공개 속죄·처벌 의식.
묻고 답하기
마야 문자는 그림으로 되어 있나요?
많은 글리프가 그림처럼 보이지만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낱말 기호와 소리 기호로 된 완전한 문자 체계라서 그 언어의 어떤 문장이든 적을 수 있다.
마야 책은 몇 권이나 남아 있나요?
네 권뿐이다. 드레스덴·마드리드·파리 코덱스와 멕시코 마야 코덱스다. 수천 권이 사라졌고, 많은 책이 스페인 선교사들에게 불태워졌다.
마야인이 2012년 세상의 종말을 예언했나요?
아니다. 2012년 12월 21일은 장기력의 큰 주기 하나가 끝나는 날이었다. 마야 비문은 이런 끝을 새로 시작하는 때로 다루며, 2012년보다 훨씬 뒤의 날짜를 언급한 글도 있다.
마야 문자는 누가 해독했나요?
한 사람이 아니다. 에른스트 푀르스테만, 유리 크노로조프, 하인리히 베를린, 타티아나 프로스쿠리아코프, 린다 쉴리, 피터 매슈스, 플로이드 라운즈버리, 데이비드 스튜어트 등 많은 사람이 기여했다.
크노로조프의 연구는 왜 반대에 부딪혔나요?
최고 권위자였던 J. 에릭 S. 톰프슨이 마야 문자가 상당 부분 음성적이라는 생각을 거부했고, 냉전 정치 때문에 서방 학자들이 소련의 연구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비문은 어떤 언어로 쓰였나요?
주로 고전 마야어다. 촐티어와 현대 초르티어와 가까운 문어로, 여러 왕국에서 두루 쓰였다.
마야 사람들은 지금도 글리프를 쓰나요?
마야어의 일상 글쓰기는 라틴 문자를 쓰지만, 이제 많은 마야인이 워크숍에서 글리프를 배우고 문화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쓰고 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Maya script. Wikipedia
- Maya codices. Wikipedia
- Yuri Knorozov. Wikipedia
- Tatiana Proskouriakoff. Wikipedia
- Diego de Landa. Wikipedia
- San Bartolo (Maya site). Wikipedia
- Kʼinich Janaabʼ Pakal. Wikipedia
- Mesoamerican Long Count calendar. Wikipedia
- Nojpetén. Wikipedia
- Michael D. Coe, Breaking the Maya Code. Thames & Hudson, 1992
함께 보기
- 포폴 부세계의 기원과 신성한 인물, 조상의 역사를 전하는 키체 마야의 이야기다.
- 치첸이차유카탄반도의 주요 마야 도시로, 여러 세기에 걸쳐 건물들이 세워지고 사용되었다.
- 테오티우아칸멕시코 중부의 고대 대도시로, 거대한 도로와 피라미드, 넓은 주거 단지가 남아 있다.
- 쐐기 문자갈대를 젖은 점토에 눌러 쓴 세계 최초의 문자 가운데 하나.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발명되어 3,000년 넘게 여러 언어를 적는 데 쓰였다.
- 로제타석기원전 196년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기리는 사제 칙령을 상형문자·민중문자·그리스 문자로 새긴 화강섬록암 비석 조각. 세 판본의 대조가 고대 이집트 문자 해독의 열쇠가 되었다.
- 훈민정음세종 때 만든 문자이자 이를 설명해 1446년에 반포한 문헌의 이름이다.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