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아주 먼 옛날, 지금 이라크라고 부르는 두 강 사이의 땅에는 종이도 연필도 없었어요. 대신 강가에 진흙과 점토가 아주 많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점토 덩어리를 납작하게 눌러 작은 판을 만들고, 잘라 낸 갈대 끝으로 자국을 꾹꾹 눌렀어요.
갈대를 한 번 누를 때마다 쐐기나 작은 못처럼 생긴 세모 자국이 남았어요. 그래서 이 글자를 ‘쐐기 문자’라고 불러요. 한자어로는 ‘설형 문자’라고도 해요.
처음에는 물건을 세는 데 썼어요. 양이 몇 마리인지, 보리가 얼마인지, 맥주 항아리가 몇 개인지를 적었지요. 맨 처음 글자는 머리, 물고기, 이삭처럼 작은 그림 같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림은 낱말과 소리를 나타내는 쐐기 묶음으로 바뀌었어요.
서기관이 되고 싶은 아이들은 ‘점토판의 집’이라는 학교에 다니며 몇 년 동안 글자와 낱말 목록을 베껴 쓰며 연습했어요. 틀린 글자까지 그대로 남은 숙제 점토판이 지금도 남아 있답니다!
사람들은 쐐기 문자로 편지, 법, 이야기, 기도문, 수학, 별자리 기록을 썼어요.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와 함무라비 왕의 법전도 쐐기 문자로 쓰였어요. 2,000년 가까이 잊혔다가 1800년대에 학자들이 다시 읽어 내는 데 성공했지요.
한눈에 보기
- 종류
- 표어·음절 문자. 기호가 낱말 전체, 음절, 또는 소리 내지 않는 분류 기호(한정사) 구실을 함
- 기원
- 메소포타미아 남부, 특히 우루크. 기원전 3350~3200년 무렵(원시 쐐기 문자 단계)
- 사용 기간
- 3,000년 이상. 연대가 확실한 마지막 점토판은 우루크의 천문 문서로 서기 79/80년
- 적은 언어
- 수메르어, 아카드어(바빌로니아어·아시리아어), 에블라어, 엘람어, 히타이트어, 후르리어, 루위어, 우라르투어 등. 고대 페르시아어와 우가리트어는 쐐기 모양의 별도 문자를 씀
- 재료
- 주로 갈대 첨필로 쓴 점토판. 돌, 금속, 밀랍 칠한 서판에도 씀
- 기호 수
- 초기 약 1,500개에서 후대에는 자주 쓰는 것이 약 600개로 줄어듦
- 남은 문서
- 발굴된 점토판은 약 50만~200만 점으로 추정되며, 출판된 것은 일부에 불과
- 해독
- 1802년 그로테펜트의 고대 페르시아 문자 해독에서 시작, 1840~50년대 아카드어 해독, 1857년 공개 시험
쉬움
쐐기 문자란 무엇인가
쐐기 문자는 기원전 4천년기 후반부터 서기 1세기까지 고대 근동에서 쓰인 문자 체계다. 영어 이름 cuneiform은 ‘쐐기’를 뜻하는 라틴어 cuneus에서 왔는데, 기호가 쐐기 모양 자국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서기관은 잘라 낸 갈대 끝을 부드러운 점토에 눌렀고, 한 번 누를 때마다 세모난 머리와 가는 꼬리를 지닌 자국이 남았다.
쐐기 문자는 이집트 상형 문자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체계다. 처음에는 지금의 이라크,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쓰던 수메르어를 적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3,000년 동안 아나톨리아(지금의 튀르키예)에서 이란에 이르는 지역에서 열 가지가 넘는 언어에 맞게 변형되었다.
쐐기 문자는 알파벳이 아니다. 기호 하나가 낱말 전체를 나타내기도 하고(표어 문자), ba나 ku 같은 음절을 나타내기도 하며, 다음 낱말이 신인지 도시인지 나무로 된 물건인지 알려 주는 소리 없는 ‘분류 기호(한정사)’가 되기도 한다. 쐐기 문자를 읽는다는 것은 문맥을 보고 각 기호가 어떤 구실을 하는지 가려내는 일이다.
완성된 형태의 기호는 모두 몇 가지 기본 획으로 만들어진다. 가로·세로·비스듬한 쐐기, 그리고 첨필 모서리로 찍은 작은 갈고리 모양 자국이다. 보통 기호는 쐐기 5~10개로 이루어지고, 복잡한 기호는 20개가 넘기도 한다. 숙련된 서기관은 빠르게 썼고, 그들의 글씨체도 우리처럼 지역과 시대마다 달라서 학자들이 점토판의 연대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쉬움
점토와 갈대, 점토판 만들기
메소포타미아에는 나무와 돌이 드물었지만 강이 점토와 갈대를 끝없이 대 주었다. 서기관은 깨끗한 점토를 반죽해 손바닥만 한 크기에서 책만 한 크기까지 점토판을 빚고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었다. 그리고 날카롭게 자른 갈대 첨필로 점토가 아직 촉촉할 때 기호를 눌러 새겼다.
초기 기호는 뾰족한 도구로 그어서 그렸다. 기원전 3천년기 중엽이 되면 서기관들은 끝이 쐐기 모양인 첨필을 긋지 않고 눌러서 전형적인 쐐기 자국을 만들었다. 첨필을 돌려 가며 가로·세로·비스듬한 쐐기와 작은 모서리 자국을 만들고, 이를 조합해 기호를 이루었다.
대부분의 점토판은 햇볕에 말리기만 했다. 마른 점토는 다시 적셔 재활용할 수 있었고, 일상 문서는 버려지기 일쑤였다. 역설적으로 재난이 보존을 도왔다. 궁전과 도서관이 불탈 때 점토판이 불에 단단히 구워져 수천 년을 버틴 것이다. 중요한 문서는 일부러 굽기도 했고, 편지와 계약서는 위조를 막으려고 점토 봉투 안에 넣어 봉하기도 했다.
쐐기 문자는 왕의 비문이나 법전 비석 같은 돌 기념물에 새기거나, 금속에 주조하거나, 밀랍을 입힌 접이식 서판에 쓰기도 했다. 밀랍 서판은 지우고 다시 쓸 수 있었지만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쉬움
문자는 어떻게 발명되었나
쐐기 문자는 장부 기록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4천년기,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도시들, 그중에서도 우루크는 신전과 행정 기관을 중심으로 한 큰 공동체로 성장했다. 이 기관들은 보리, 가축, 직물, 맥주를 엄청나게 거두고 저장하고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바치고 받았는지 기록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보다 수천 년 전부터 근동 곳곳의 사람들은 여러 모양의 작은 점토 토큰을 셈 도구로 썼다. 기원전 4천년기 중엽에는 토큰을 속이 빈 점토 공(불라) 안에 넣어 봉하고 겉에 토큰 모양을 찍기도 했다. 이어서 숫자 기호를 찍은 납작한 점토판이 나왔고, 마침내 숫자와 함께 물품·사람·기관을 나타내는 그림 같은 기호를 적은 점토판이 등장했다.
최초의 진짜 문서는 기원전 3350~3200년 무렵의 우루크 IV기에 나온다. 이런 원시 쐐기 문자 점토판은 약 5,000점이 알려져 있고 대부분 우루크에서 나왔다. 절대다수가 행정 기록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서기관 교육용으로 주제별로 기호와 낱말을 늘어놓은 목록이다. 이 초기 문서에는 숫자와 명사만 있고 문법 요소는 거의 없어서, 그 밑에 어떤 언어가 있었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다만 보통은 수메르어로 본다.
중급
그림에서 소리로
초기의 문자에는 아마 1,500개쯤의 기호가 있었고, 상당수는 사물을 단순하게 그린 것이었다. 기원전 3천년기를 거치며 기호는 점점 추상화되었고, 아직 이유가 분명하지 않지만 90도 옆으로 눕혀져 글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로 흐르게 되었다. 기원전 2천년기에 이르면 원래의 그림은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다.
목록이 아니라 언어 자체를 적는 데로 나아간 결정적 단계는 ‘레부스 원리’, 곧 기호를 뜻이 아니라 소리로 쓰는 방법이었다. 수메르어로 ‘화살’을 뜻하는 ti는 ‘생명’을 뜻하는 til과 소리가 비슷해서, 화살 기호로 ‘생명’을 적고 나아가 어떤 낱말에서든 음절 ti를 적을 수 있었다. 기원전 2800~2600년 무렵부터 서기관들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 이름, 문법 어미, 그리고 마침내 온전한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존 기호를 합쳐 새 기호를 만들었다. ‘입’ 기호 안에 ‘물’ 기호를 넣으면 ‘마시다’가 되었다. 서기관들은 발음을 암시하는 음절 기호(음성 보어)와, 신의 이름 앞에 붙이는 별 모양 ‘신’ 기호 같은 한정사도 덧붙였다. 그 결과 자주 쓰는 기호가 약 600개이고 상당수가 여러 가지로 읽히는, 유연하지만 복잡한 체계가 되었다.
중급
하나의 문자, 여러 언어
쐐기 문자는 그것을 낳은 수메르어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기원전 24세기 사르곤의 아카드 제국 때부터 서기관들은 수메르어와 구조가 전혀 다른 셈어인 아카드어에 이 문자를 맞추어 썼다. 바빌로니아 방언과 아시리아 방언으로 나뉜 아카드어는 쐐기 문자의 주된 언어가 되었고, 여러 세기 동안 국제 외교어 구실을 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아마르나 서신은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미탄니, 히타이트, 레반트 도시들의 통치자들이 아카드어 쐐기 문자로 편지를 주고받았음을 보여 준다.
수메르어는 아마 기원전 2천년기 초에 입말로는 사라졌지만, 중세 유럽의 라틴어처럼 2,000년 동안 종교와 학문의 언어로 살아남았다. 서기관들은 수메르어–아카드어 이중 언어 문서와 낱말 목록을 만들었고, 이것이 훗날 현대 학자들이 수메르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른 민족들도 자기 언어를 적으려고 이 문자를 빌렸다. 이란 남서부의 엘람인,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인과 루위인, 메소포타미아 북부와 시리아의 후르리인, 반 호수 주변의 우라르투인이 그랬다. 시리아 해안의 우가리트에서는 쐐기 모양 기호 30개로 된 알파벳을 만들었고,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왕들은 고대 페르시아어를 위한 별도의 반(半)알파벳식 쐐기 문자를 만들었다.
기원전 1천년기에는 양피지와 파피루스에 훨씬 간단한 알파벳으로 쓰는 아람어가 점차 아카드어를 대신해 근동의 일상 언어가 되었다. 쐐기 문자는 신전으로 물러나 사제와 학자들이 의례, 점술, 천문학에 썼다. 연대를 알 수 있는 마지막 쐐기 문자 점토판은 우루크의 천문 역서로, 서기 79/80년에 쓰였다.
중급
무엇을 적었나: 영수증에서 서사시까지
쐐기 문자 문서 대부분은 평범한 기록이다. 영수증, 배급 목록, 대출, 매매, 혼인 계약, 입양, 재판, 편지 같은 것들이다. 기원전 2천년기 초 아나톨리아와 교역한 아시리아 상인들의 문서 같은 개인 기록물 덕분에, 역사가들은 가족과 사업의 모습을 놀라울 만큼 자세히 따라갈 수 있다.
쐐기 문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도 보존했다. 여사제 엔헤두안나의 것으로 전하는 수메르어 찬가, 『슈루팍의 교훈』 같은 격언과 지혜 문학, 무너진 도시를 위한 애가, 길가메시 이야기 같은 서사시가 있다. 가장 유명한 기원전 1750년 무렵의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한 법전도 점토판과 거대한 비석에 새겨졌다.
학자들은 쐐기 문자로 수학, 의학, 점술, 천문학을 기록했다. 바빌로니아 수학자들은 60을 바탕으로 한 자릿값 체계를 썼는데, 이것이 오늘날 1시간 60분, 원 360도로 남아 있다. 후기 바빌로니아 천문학자들은 여러 세기 동안 관측 일지를 쓰고 달과 행성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수학적 방법을 발전시켰다.
서기관은 수메르어로 ‘에둡바(é-dub-ba-a)’, 곧 ‘점토판의 집’이라 불린 학교에서 훈련받았다. 학생들은 기호 목록, 어휘, 계약서 견본, 문학 작품을 베껴 썼다. 이런 연습용 점토판이 수천 점 남아 있는데, 한쪽에는 스승의 본보기가, 다른 쪽에는 학생의 삐뚤빼뚤한 필사가 있는 것도 있다.
중급
잊혔다가 다시 발견되다
서기 1세기 이후 쐐기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사라졌다. 17세기부터 유럽 여행자들이 이란 페르세폴리스 유적의 비문을 베끼기 시작했고, 1778년 덴마크의 여행가 카르스텐 니부어가 정확한 사본을 출판했다. 그는 이 비문들에 세 종류의 서로 다른 쐐기 문자가 들어 있음을 알아보았다.
셋 가운데 가장 단순한 것은 고대 페르시아 문자였다. 1802년 독일의 교사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그로테펜트는 되풀이되는 기호 묶음이 ‘왕’과 페르시아 왕들의 이름이라고 올바르게 추측했고, 여러 학자가 그의 성과를 이어 갔다. 결정적 돌파구는 이란 서부 절벽에 고대 페르시아어·엘람어·바빌로니아어 세 언어로 새긴 다리우스 1세의 베히스툰 비문에서 나왔다. 영국 장교 헨리 롤린슨이 1830~40년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베꼈고, 그와 아일랜드 성직자 에드워드 힝크스가 이를 이용해 아카드어를 해독했다.
1857년 런던의 왕립 아시아 학회는 해독이 옳은지 시험했다. 롤린슨, 힝크스, 쥘 오페르, 윌리엄 헨리 폭스 탤벗 네 학자에게 새로 발견된 아시리아 왕 티글라트필레세르 1세의 비문 사본을 각각 보내 따로 번역하게 한 것이다. 네 번역이 서로 매우 비슷하게 일치하자, 사람들은 쐐기 문자를 읽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살아 있는 어떤 언어와도 친족 관계가 없는 수메르어는 19세기 후반에 따로 확인되고 해독되었다.
19세기 중엽 니네베, 님루드 등 아시리아 도시의 발굴에서 아슈르바니팔 왕의 도서관을 비롯한 방대한 점토판이 나왔다. 1872년 대영박물관의 조지 스미스는 그 가운데서 노아 이야기를 닮은 홍수 이야기를 찾아냈고, 이 발견은 큰 화제가 되어 쐐기 문자를 널리 알렸다.
중급
오늘날의 쐐기 문자 연구
쐐기 문자 연구는 처음 대규모 발견이 아시리아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시리아학’이라 불린다. 점토판은 세계 여러 박물관에 흩어져 있다. 대영박물관이 약 13만 점으로 가장 많고, 베를린, 파리, 이스탄불, 바그다드, 예일, 필라델피아의 소장품이 뒤를 잇는다. 읽을 수 있는 전문가는 수백 명에 불과해 출판되지 않은 점토판이 많다.
디지털 사업이 이 분야를 바꾸고 있다. 쐐기 문자 디지털 도서관 사업(CDLI)은 수십만 점의 유물을 목록화하고 촬영하며, 오라크(Oracc)는 교감·번역·언어 주석을 단 문서를 온라인에 공개한다. 쐐기 문자 기호는 유니코드 표준에도 들어갔고, 연구자들은 손상된 점토판을 읽기 위해 3차원 스캔과 기계 학습을 시험하고 있다.
쐐기 문자 유산은 전쟁과 약탈로 피해도 입었다. 분쟁 시기에 이라크와 시리아의 유적이 불법 도굴되었고, 출토지를 알 수 없는 점토판이 골동품 시장에 많이 흘러들었다. 학자들은 이런 출처 불명 점토판을 연구하는 것이 윤리적인지 논쟁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점이 이라크로 반환되었다.
심화
문자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
점토 토큰과 문자의 관계는 이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론 가운데 하나다. 고고학자 드니즈 슈만트베세라는 앞선 연구를 바탕으로, 신석기 시대 토큰의 모양이 원시 쐐기 문자 기호 상당수의 직계 조상이며 문자는 오랜 회계 전통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토큰, 불라, 숫자 점토판, 초기 숫자 기호 사이의 연결은 널리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대부분의 토큰 모양이 후대 기호와 정말 대응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많은 토큰이 무덤처럼 행정과 무관한 맥락에서 나왔고, 원시 쐐기 문자의 기호 목록은 어떤 토큰 체계보다 훨씬 크고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는 문자를 느린 진화가 아니라, 기존의 숫자 표기와 인장 도상을 바탕으로 기원전 3300년 무렵 우루크의 행정가들이 빠르고 의도적으로 발명한 것으로 본다. 우루크 고문서를 자세히 연구한 로버트 잉글런드와 한스 니센은 도량형 체계를 강조했다. 곡물, 가축, 토지 등 물품마다 다른 셈 체계를 썼다는 사실은 원시 쐐기 문자가 언어를 기록하는 수단이 되기 전에 먼저 회계 기술로 설계되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문자가 한 번 발명되어 퍼졌는지, 여러 번 따로 발명되었는지도 쟁점이다. 이집트 상형 문자는 원시 쐐기 문자와 거의 같은 때이거나 조금 뒤에 나타난다. 문자라는 발상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로 전해졌다고 보는 학자도 있고, 두 체계의 기호와 구조가 매우 다르다는 점을 들어 독자적 발명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한자와 마야 문자는 대체로 별개의 발명으로 여겨진다.
최초 점토판의 언어도 논쟁거리다. 원시 쐐기 문자에는 문법이 거의 기록되지 않아 사용자들이 수메르어를 썼다고 증명하기 어렵다. 논거는 음성 표기일 가능성이 있는 몇몇 사례와 후대의 분명한 수메르어 문서와의 연속성에 기댄다. 초기 우루크에 다른 언어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증거는 빈약하다.
심화
학자의 작업: 음역과 불확실성
쐐기 문자 기호는 여러 가지로 읽히기 때문에 점토판 하나를 교감하는 데도 많은 판단이 필요하다. 아시리아학자들은 기호 하나하나를 로마자로 옮긴 음역으로 문서를 출판한다. 표기 규칙이 학자의 해석을 드러낸다. 음절 읽기는 소문자 이탤릭, 표어 문자는 대문자(예: 수메르어로 ‘은’을 뜻하는 KÙ.BABBAR를 아카드어로 kaspum이라 읽음), 한정사는 위 첨자로 쓰고, 소리가 같은 기호는 u, ú, ù처럼 번호나 악센트로 구별한다. 그러므로 음역에는 점토판에 무엇이 있는지와 교감자가 어떻게 읽기로 했는지가 함께 담긴다.
발음은 부분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아카드어는 셈어 친족 언어 덕분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수메르어는 알려진 친족 언어가 없어 이중 언어 문서와 고대 문법 목록으로 소리와 문법을 재구성한다. 지식이 늘면서 수메르어 이름의 읽기도 바뀌었다. 한때 우르엥구르로 읽던 왕은 지금 우르남마로 읽는다.
연대도 어려운 문제다. 기원전 3천년기와 2천년기의 연대는 왕명록, 연명(年名), 그리고 암미사두카 왕 시대의 금성 관측 같은 몇몇 천문 기록에 달려 있다. 학자들은 수십 년 이상 차이 나는 ‘고연대’, ‘중연대’, ‘저연대’를 두고 오래 논쟁해 왔다. 관례상 중연대를 쓰지만, 최근에는 나이테와 방사성 탄소 연구가 논의를 정밀하게 다듬고 있다.
끝으로 남은 기록은 고르지 않다. 어떤 도시와 시대는 수만 점의 점토판으로 기록되어 있고, 어떤 곳은 거의 없다. 초기 발굴과 약탈로 고고학적 맥락이 사라진 경우도 많다. 따라서 역사가들은 우연히 살아남은 것을 고대의 실상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핵심 개념
- 표어·음절 문자
- 쐐기 문자처럼 낱말 기호(표어 문자)와 소리 기호(음절 문자)를 섞어 쓰는 체계.
- 레부스 원리
- 기호를 뜻이 아니라 소리로 쓰는 방법. 이 덕분에 이름, 문법, 나아가 어떤 낱말이든 적을 수 있게 되었다.
- 한정사
- 다음 낱말이 신, 도시, 나무로 된 물건 등임을 알려 주는 소리 없는 분류 기호.
- 다가성(多價性)
- 기호 하나가 소리로도 낱말로도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는 성질. 읽는 사람이 문맥으로 고른다.
- 회계에서 시작된 문자
- 문자는 초기 메소포타미아 도시 기관에서 물품·사람·의무를 기록하는 데 처음 쓰였다.
- 문자와 언어의 구별
- 쐐기 문자는 언어가 아니라 문자 체계로, 수메르어·아카드어·히타이트어 등 여러 언어에 쓰였다.
- 해독
- 잊힌 문자를 현대에 되살려 읽는 일. 쐐기 문자는 베히스툰 같은 세 언어 비문 덕분에 해독되었다.
기록
- 약 기원전 3300년 — 우루크 IV기의 원시 쐐기 문자 점토판. 메소포타미아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문자.
- 약 기원전 2600년 — 이름과 초기 문학 작품을 포함해 수메르어를 적는 데 쐐기 문자가 점점 더 쓰임.
- 약 기원전 2334년 — 아카드 제국 아래에서 쐐기 문자가 아카드어 표기에 쓰이기 시작.
- 약 기원전 1750년 — 고바빌로니아 쐐기 문자로 『함무라비 법전』을 새김.
- 약 기원전 1350년 — 아마르나 서신이 아카드어 쐐기 문자가 국제 외교어였음을 보여 줌.
- 약 기원전 650년 — 아슈르바니팔이 니네베에 거대한 점토판 도서관을 세움.
- 약 기원전 520년 — 다리우스 1세가 고대 페르시아어·엘람어·바빌로니아어로 베히스툰 비문을 새김.
- 79년 — 연대가 확실한 마지막 쐐기 문자 점토판(우루크의 천문 문서, 서기 79/80년).
- 1778년 — 카르스텐 니부어가 페르세폴리스 비문의 정확한 사본을 출판.
- 1802년 — 그로테펜트가 고대 페르시아 쐐기 문자 해독의 첫걸음을 뗌.
- 1857년 — 왕립 아시아 학회의 시험으로 아카드어 쐐기 문자 해독이 입증됨.
- 1872년 — 조지 스미스가 니네베 점토판에서 바빌로니아 홍수 이야기를 확인.
용어 풀이
- 메소포타미아
- 그리스어로 ‘강 사이의 땅’.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으로, 대부분 지금의 이라크에 해당한다.
- 첨필
- 글 쓰는 도구. 쐐기 문자에서는 점토에 눌러 쓰는 잘라 낸 갈대.
- 점토판
- 글을 쓰는 데 쓴 납작한 점토 조각.
- 서기관
- 읽고 쓰는 훈련을 받아 신전, 궁전, 개인을 위해 일한 사람.
- 수메르어
- 메소포타미아 남부 최초의 도시들에서 쓴 언어. 알려진 친족 언어가 없다.
- 아카드어
- 바빌로니아·아시리아 방언이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셈어. 쐐기 문자로 가장 많이 적힌 언어.
- 음역
- 문서의 기호 하나하나를 로마자 같은 다른 문자로 옮겨 어떻게 읽는지 보여 주는 것.
- 아시리아학
- 쐐기 문자 문서와 그것을 만든 문명을 연구하는 학문.
- 불라
- 문자 이전에 회계용 토큰을 넣어 두던 속이 빈 점토 공.
묻고 답하기
쐐기 문자는 언어인가요?
아니에요. 글을 쓰는 방법이에요. 로마자 알파벳으로 영어, 프랑스어, 베트남어를 적듯이, 쐐기 문자로 수메르어, 아카드어, 히타이트어 같은 여러 언어를 적었어요.
왜 점토에 글을 썼나요?
메소포타미아에는 점토가 흔하고 값쌌고, 펜으로 쓸 갈대도 강가에 자랐기 때문이에요. 점토판은 특히 구우면 아주 오래 남아요.
기호를 몇 개나 외워야 했나요?
후대에는 자주 쓰는 기호만 600개쯤이었고, 여러 가지로 읽히는 기호도 많았어요. 그래서 몇 년 동안 학교에 다녀야 했어요.
쐐기 문자가 이집트 상형 문자보다 오래되었나요?
가장 오래된 원시 쐐기 문자 점토판은 최초의 이집트 상형 문자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오래되었어요. 한쪽이 다른 쪽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려요.
학자들은 어떻게 다시 읽게 되었나요?
페르세폴리스의 비교적 단순한 고대 페르시아 문자부터 풀고, 베히스툰 비문 같은 세 언어 비문으로 아카드어를 해독했어요. 1857년 공개 시험으로 해독이 옳다는 것이 확인되었어요.
문자는 점토 토큰에서 진화했는가?
토큰과 숫자 점토판은 중요한 전 단계였지만, 많은 학자는 우루크의 최초 원시 쐐기 문자 점토판을 토큰의 단순한 진화가 아니라 행정가들의 의도적 발명으로 본다.
쐐기 문자 점토판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
발굴된 점토판은 약 50만~200만 점으로 추정된다. 완전히 출판된 것은 일부이고, 지금도 새로 발견되고 있다.
초기 쐐기 문자 문서의 연대를 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연대가 왕명록, 연명, 몇몇 천문 기록에 달려 있고 여러 연대 체계가 경쟁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이테와 방사성 탄소 연구가 선택지를 좁히는 데 도움을 준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Cuneiform. Wikipedia
- 쐐기 문자. 한국어 위키백과
- Proto-cuneiform. Wikipedia
- Decipherment of cuneiform. Wikipedia
- Behistun Inscription. Wikipedia
- Cuneiform Digital Library Initiative (CDLI). CDLI
- Assyriology. Wikipedia
- C. B. F. Walker, Cuneiform (Reading the Past). British Museum Publications, 1987
- Irving Finkel and Jonathan Taylor, Cuneiform. British Museum Press, 2015
함께 보기
- 길가메시 서사시우루크의 왕 길가메시가 친구 엔키두를 잃고 영생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 수메르의 여러 시를 엮어 바빌로니아 서사시로 완성했다.
-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8세기 바빌론 왕 함무라비의 이름으로 발표된 법률 조항 모음이다.
- 엔헤두안나우르에서 달의 신 난나를 섬긴 대사제이자 아카드 사르곤 왕의 딸. 이름이 알려진 가장 이른 작가로 자주 꼽힌다.
- 슈루팍의 교훈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 가운데 하나. 수메르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삶의 조언을 점토판에 새겼다.
- 키루스 원통기원전 539년 키루스 대왕이 바빌론을 정복한 뒤 바빌로니아 쐐기 문자로 새긴 점토 기초 원통으로, 그를 마르두크 신이 고른 정의로운 왕으로 내세운다.
- 페르세폴리스이란 남서부에 있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의례·행정 중심지로, 다리우스 1세 때 건설이 시작되었다.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