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600년 전 조선 사람들은 우리말을 했지만, 글은 한자로 썼어요. 한자는 다른 나라 말을 적으려고 만든 글자이고, 수천 자나 돼요. 그래서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만 읽고 쓸 수 있었고, 농부나 장인, 여자들은 대부분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조선의 임금 세종은 보통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어요. 그래서 학자들과 함께 오직 우리말을 위한 새 글자를 만들었어요. 글자는 스물여덟 자뿐이었고, 배우기도 쉬웠지요.
이 글자들은 아주 똑똑하게 만들어졌어요. 자음은 그 소리를 낼 때 입 안의 모양을 본떴어요.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이고, ㅁ은 입 모양이에요. 모음은 하늘을 뜻하는 둥근 점(ㆍ), 땅을 뜻하는 평평한 선(ㅡ), 서 있는 사람을 뜻하는 선(ㅣ)으로 만들었어요.
1446년 세종은 새 글자를 설명하는 책을 펴냈어요. 책 이름이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에요. 이 책을 쓴 학자 한 사람은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끝나기 전에,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적었어요.
지금 우리는 이 글자를 한글이라고 불러요. 어린이들도 금방 배우고, 해마다 10월 9일에는 한글날을 기념해요. 1446년에 나온 책 가운데 한 권이 지금도 남아 있어서 우리나라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되었어요.
한눈에 보기
- 창제
- 1443년(세종 25) 음력 12월 『세종실록』에 창제 기록(양력으로는 1443년 말~1444년 초)
- 반포
- 1446년(세종 28) 음력 9월 상순 해례본 완성
- 장소
- 조선의 수도 한성(지금의 서울)
- 만든 이
- 세종(재위 1418~1450). 해례는 정인지 등 집현전 학자 8명이 집필
- 글자 수
- 처음 28자(자음 17자, 모음 11자). 지금은 기본 24자 사용
- 문자 유형
- 발음 원리를 모양에 담은 음소 문자. 글자를 음절 단위로 모아 씀
- 현존 해례본
-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1962년 지정),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1997년)
- 오늘날 이름
- 한글(남한), 조선글(북한)
쉬움
훈민정음이란 무엇인가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조선 세종이 1443년 말 조정에 내놓은 우리 글자의 본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1446년 이 새 글자를 알리고 풀이한 책의 제목이다.
책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전한다. 1446년의 해례본은 세종이 직접 쓴 짧은 서문과 규칙(예의) 뒤에 학자들의 자세한 풀이(해례)를 붙인 책이다. 언해본은 임금이 쓴 부분을 새 글자로 번역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판본은 1459년 불경 『월인석보』 첫머리에 실렸다.
1443년에 만든 글자는 오늘날 한국인이 쓰는 한글의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훈민정음의 이야기는 한 권의 책에 관한 이야기이자,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문자 체계 가운데 하나가 태어난 이야기다.
쉬움
세종은 왜 새 글자를 만들었을까
1443년 이전 조선 사람들은 동아시아 공통의 글말인 한문으로 글을 썼다. 우리말 낱말과 문법을 적을 때는 한자의 소리나 뜻을 빌린 이두 같은 방법을 썼지만, 번거롭고 여전히 많은 한자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읽고 쓰는 일은 주로 양반 지식층의 몫이었다.
세종은 한자 54자로 된 유명한 서문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풀어 옮기면 이렇다.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역사가들은 실용적·정치적 목적도 함께 짚는다. 세종은 유교 윤리를 널리 알리고, 백성이 법과 송사를 이해하도록 돕고, 한자의 바른 조선식 발음을 정하고자 했다. 이 목표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백성과 나라 모두에 쓸모가 있었다.
쉬움
글자는 어떻게 설계되었나
자음은 발음 기관을 본뜬 다섯 기본자에서 출발한다.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 ㅁ은 입 모양, ㅅ은 이 모양, ㅇ은 둥근 목구멍 모양이다. 여기에 소리가 세지는 정도에 따라 획을 더해 다른 자음을 만들었다. ㄱ에서 ㅋ, ㄴ에서 ㄷ과 ㅌ, ㅁ에서 ㅂ과 ㅍ이 나오는 식이다. ㄹ처럼 다른 방식으로 만든 글자(이체자)도 몇 개 있다.
모음은 우주론적 뜻을 지닌 세 기호에서 출발한다. 둥근 점(ㆍ)은 하늘, 평평한 선(ㅡ)은 땅, 곧게 선 선(ㅣ)은 사람을 나타낸다. 점과 선을 합쳐 ㅗ, ㅏ, ㅜ, ㅓ 같은 나머지 모음을 만들었다.
글자는 영어처럼 한 줄로 늘어놓지 않고 음절 단위로 모아 쓴다. 첫소리(초성), 가운뎃소리(중성), 때로 끝소리(종성)를 네모 안에 쌓아 ‘한’(ㅎ+ㅏ+ㄴ)처럼 쓴다. 끝소리에는 따로 글자를 만들지 않고 첫소리 글자를 다시 쓴다고 했다(종성부용초성). 이렇게 모아 쓰는 방식 덕분에 한글은 한자와 한 지면에 나란히 놓여도 잘 어울렸다.
처음에는 음절 옆에 점을 찍어 높낮이(성조)를 표시했고, 지금은 쓰지 않는 네 글자 ㆍ, ㅿ, ㆁ, ㆆ도 있었다. 이런 변화는 15세기 이후 우리말 자체가 달라졌음을 보여 준다.
중급
1446년 책 『훈민정음』 해례본의 구성
해례본은 33장으로 된 목판본이다. 첫 부분은 임금이 쓴 ‘예의(例義)’로, 서문과 함께 각 글자의 소리를 대개 한자에 견주어 밝히고 글자를 합치는 규칙을 간단히 설명한다.
더 긴 둘째 부분 ‘해례(解例)’는 집현전 학자 여덟 명, 곧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로가 썼다. 제자해(글자를 만든 원리),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글자를 합치는 법), 용자례(낱말 보기)의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끝에 정인지의 서문(후서)이 붙어 있다.
정인지는 이 서문에서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끝나기 전에 깨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고 적었다. 서문 끝에는 ‘정통 11년 9월 상한(上澣)’, 곧 1446년 음력 9월 상순이라는 날짜가 있다. 이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 오늘날 남한의 한글날 10월 9일의 근거가 되었다.
이 책이 특별한 까닭은 글자 자체뿐 아니라, 만든 사람들이 각 글자에 담긴 원리를 스스로 글로 설명해 두었다는 데 있다. 세계의 문자 가운데 만들어질 당시의 설계 원리를 밝힌 문헌이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중급
설계에 담긴 음운학과 철학
세종의 학자들은 한자의 소리를 분류하는 전통 학문인 중국 음운학(성운학)에 밝았다. 이들은 자음을 소리 나는 자리(아음·설음·순음·치음·후음)와 소리 내는 방식(전청·차청·전탁·불청불탁)에 따라 분류했다. 이 틀 덕분에 서로 관련된 소리가 서로 닮은 모양을 갖는 자음 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해례는 글자를 성리학의 우주론 안에 자리 매김하기도 한다. 다섯 발음 위치는 오행(목·화·토·금·수)과 계절·방위에 대응하고, 세 기본 모음은 우주의 세 바탕인 천·지·인을 나타내며, 모음은 양성과 음성으로 나뉜다. 이는 중세 국어의 모음 조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학자들에게 자연의 이치에 들어맞는 글자는 곧 바른 글자였다.
현대 언어학자들은 특히 글자 모양에 음성 자질이 담겨 있다는 점, 예컨대 거센소리를 획 하나로 나타낸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이 때문에 한글을 ‘자질 문자(featural system)’라고 불렀다. 한편 모음에 관한 철학적 설명은 설계의 출발점이라기보다 설계 뒤에 붙인 정당화일 수도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중급
조정의 반대와 새 글자로 쓴 첫 책들
새 글자가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1444년 음력 2월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은 반대 상소를 올렸다. 중국을 섬기려면 한자를 써야 하고, 제 글자를 가진 것은 몽골·여진·일본 같은 민족뿐이며, 쉬운 글자는 학문을 소홀히 하게 만들고, 이두 같은 기존 방법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이었다. 세종은 이들을 꾸짖고 잠시 의금부에 가두었다.
세종은 이어 중요한 사업에 새 글자를 썼다. 조선 건국을 기린 노래 『용비어천가』는 1445년에 지어져 1447년에 간행되었다. 수양대군이 지은 석가모니 일대기 『석보상절』과 세종이 직접 지은 『월인천강지곡』도 1440년대 후반에 나왔다. 『동국정운』(1448)은 새 글자로 한자의 표준 조선 한자음을 정했다.
이 첫 책들은 새 글자가 서문에 나오는 ‘어리석은 백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왕실의 정통성, 불교, 유교 학문에도 쓰였음을 보여 준다.
중급
언문에서 한글로: 500여 년의 역사
조선 시대 대부분 동안 공문서와 본격적인 학문은 한문으로 썼다. 새 글자는 흔히 ‘언문(諺文)’이라 불렸고 ‘암클’이라 낮춰 부르기도 했는데, 이런 이름에는 낮은 지위가 드러난다. 그래도 새 글자는 여성, 승려, 일반 백성 사이에 널리 퍼졌다. 편지, 시조와 가사, 소설, 유교·불교 경전의 언해, 백성에게 알리는 임금의 윤음 등에 두루 쓰였다.
한글로 쓴 편지는 기록을 거의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게 해 주는 드문 창이다. 16~17세기의 한글 편지 가운데에는 부부,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 오간 편지가 많고, 안동의 16세기 무덤에서는 남편을 잃은 아내가 슬픔을 적은 편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왕비와 왕실 여성들도 한글로 정치적인 편지와 회고록을 남겼는데, 18세기 말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대표적이다.
시련도 있었다. 1504년 연산군은 자신을 비판하는 언문 익명서가 나붙자 언문을 가르치고 쓰는 것을 금했다. 그러나 이 금지는 그의 치세를 넘기지 못했다. 새 글자는 무엇보다 쓸모가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19세기 말 개혁가들은 이 글자를 근대화와 민족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법률과 칙령을 국문을 바탕으로 쓰도록 했다. 국어학자 주시경은 1912년 무렵 ‘큰 글’, ‘한국의 글’이라는 뜻의 ‘한글’이라는 이름을 널리 퍼뜨렸다.
일제 강점기(1910~1945)에는 조선어 교육이 점점 제한되었다. 조선어학회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고 사전 편찬을 추진했으나, 1942년 많은 회원이 검거되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겪었다. 광복 뒤 한글은 남북한 모두의 주된 문자가 되었고, 북한에서는 ‘조선글’이라 부른다.
중급
해례본의 재발견
해례본은 수백 년 동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 학자들은 예의 부분과 언해본만 알았기 때문에 글자를 만든 원리는 추측에 맡겨졌고, 문창살 모양을 본떴다는 설까지 나왔다. 그러다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한 권이 나타났다. 수집가 간송 전형필이 이를 사들였는데, 매우 큰 값을 치렀다고 전하며,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동안 숨겨 지켰다.
이 책은 첫 두 장이 없어져 발견 직후 손으로 보완했는데, 학자들은 보완된 부분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안동에서의 이전 소장 내력에도 여러 설이 있다. 간송본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2008년에는 한 고서적 상인이 불완전한 두 번째 해례본, 이른바 상주본을 공개했다. 법원은 2019년 대법원 판결까지 이 책이 국가 소유라고 판단했지만 소장자는 아직 넘겨주지 않았고, 2015년 집에 난 불로 일부가 훼손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상태는 공개되지 않았다.
심화
학계의 쟁점: 누가, 무엇을 바탕으로 만들었나
창제 주체. 『세종실록』은 1443년 12월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上親制諺文二十八字)고 적고, 정인지의 서문도 세종 한 사람에게 공을 돌린다. 일부 학자는 집현전 학자들이 상당 부분을 맡았을 것이라고 보았지만(협찬설), 다른 학자들은 실록에 이들의 준비 작업이 전혀 보이지 않고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가 반대했다는 점을 들어, 임금과 왕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작은 집단이 작업했을 것으로 본다(친제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는 세종이 깊이 직접 관여했다고 보지만 정확한 분업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특정 승려나 왕실 인물을 창제자로 내세우는 대중적 주장은 확실한 문헌 근거가 부족하다.
모델. 실록과 최만리의 상소는 모두 글자가 “옛 전자를 본떴다”(字倣古篆)고 말한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의견이 갈린다. 네모반듯한 기하학적 글꼴을 말한다는 견해, 전서체의 모양을 가리킨다는 견해, 그리고 최만리 상소가 암시하듯 몽골의 파스파 문자를 뜻한다는 견해가 있다. 개리 레드야드는 원나라 운서를 통해 조선 학자들이 알던 파스파 문자에서 몇몇 기본 자음의 모양을 빌려 왔지만 체계 전체는 독창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차용을 부정하고 해례의 발음 기관 상형 설명을 중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도 문자 기원설이나 고대 우리 문자 기원설은 근거가 빈약하다.
목적. 서문의 애민 정신을 강조하는 역사가가 있는가 하면, 『동국정운』에서 드러나듯 한자음 표준화와 유교 윤리 보급 같은 통치 목적을 강조하는 역사가도 있다. 두 해석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최근 연구는 대체로 둘을 아우르려 한다.
심화
자료와 연구 방법
핵심 자료는 창제, 최만리 상소, 책의 완성을 기록한 『세종실록』, 해례본 자체, 그리고 새 글자로 찍은 초기 문헌들이다. 실록은 세종 사후 조정 기록을 바탕으로 편찬되었으므로 공식 시각을 보여 줄 뿐 작업 과정은 거의 말해 주지 않는다.
언어학자들은 이 초기 문헌의 표기를 후대 국어, 그리고 한자의 조선 한자음과 비교해 15세기 국어를 재구한다. 1440~60년대 문헌의 방점, 사라진 글자, 표기 관습은 당시 언어인 중세 국어를 알려 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해례본에는 그 나름의 문헌학적 문제가 있다. 첫 두 장이 후대 보완이므로, 간송본에서 서문 첫머리를 인용할 때는 실록과 언해본을 함께 대조해야 한다. 한글날의 정확한 날짜를 둘러싼 논의도 음력을 양력으로 어떻게 환산하느냐에 달려 있다.
중급
유산
한글은 오늘날 남북한과 해외 동포를 합쳐 약 8천만 명이 날마다 쓰는 문자다. 배우기 쉬운 덕분에 남한의 문해율은 거의 100%에 이르고, 세계의 한국어 학습자들도 대개 며칠이면 읽기 시작한다.
훈민정음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남한에서 한글날(10월 9일)은 공휴일이고, 북한은 1443~44년 창제 시점을 바탕으로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기념한다. 유네스코는 1989년부터 문맹 퇴치에 힘쓴 단체에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여하고 있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한글을 음성 원리에 따라 의식적으로 설계된 드문 문자로 연구한다.
15세기에 배우기 쉽게 만든 특징은 오늘날의 기술에도 잘 맞는다. 모든 음절이 적은 수의 글자로 짜이기 때문에 표준 자판이나 휴대 전화 자판으로도 빠르게 입력할 수 있고, 유니코드에는 낱자와 함께 1만 1천 개가 넘는 완성형 음절이 들어 있다. 1443년의 설계는 지금도 한국인이 화면에서 읽고 쓰는 방식을 좌우하고 있다.
핵심 개념
- 백성을 위한 바른 소리
- 제목이 목적을 밝힌다. 보통 사람이 쉽게 배워 제 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
- 상형(象形)
- 다섯 기본 자음은 소리 낼 때의 혀·입술·이·목구멍 모양을 본떴다.
- 가획(加劃)
- 센소리나 거센소리는 기본자에 획을 더해 나타내므로 비슷한 소리는 모양도 비슷하다.
- 천·지·인
- 기본 모음 ㆍ, ㅡ, ㅣ는 우주의 세 바탕인 하늘·땅·사람을 나타낸다.
- 모아쓰기
- 초성·중성·종성을 네모난 음절 단위로 합쳐 쓴다.
- 설명서가 있는 문자
- 1446년 책은 글자를 만들 당시의 설계 원리를 기록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일이다.
- 말과 나라
- 새 글자는 백성뿐 아니라 윤리 교화, 표준 한자음 같은 왕실의 목적에도 쓰였다.
기록
- 1418년 — 세종이 조선의 임금이 되다.
- 1443년 — 음력 12월, 『세종실록』에 세종이 2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실리다.
- 1444년 — 최만리 등이 새 글자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다.
- 1446년 — 음력 9월 『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되다.
- 1447년 — 새 글자로 쓴 첫 대작 『용비어천가』가 간행되다.
- 1459년 — 『월인석보』 첫머리에 언해본이 실리다.
- 1504년 — 연산군이 언문을 가르치고 쓰는 것을 금하다.
- 1894년 — 갑오개혁으로 국문이 공문서의 바탕이 되다.
- 1933년 — 조선어학회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다.
- 1940년 — 안동에서 해례본이 발견되어 전형필이 사들이다.
- 1962년 — 간송본 해례본이 국보로 지정되다.
- 1997년 — 해례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다.
용어 풀이
- 조선
- 1392년부터 1897년까지 한반도를 다스린 왕조(이후 1910년까지 대한제국).
- 집현전
- 세종 때 학문 연구를 위해 운영된 왕실 학술 기관.
- 해례(解例)
- ‘풀이와 보기’. 글자에 대한 학자들의 해설이자, 이를 담은 1446년 판본의 이름.
- 언해(諺解)
- 한문 문헌을 우리 글자로 풀어 옮긴 것.
- 이두(吏讀)
- 한자의 소리나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던 방식으로, 주로 아전들이 썼다.
- 한문
- 중국 고전의 글말로,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함께 쓰던 문어.
- 모아쓰기
- 초성·중성·종성을 합쳐 하나의 음절 덩어리로 쓰는 방식.
- 거센소리
- ㅋ, ㅌ, ㅍ, ㅊ처럼 숨이 거세게 터져 나오는 소리.
- 자질 문자
- 글자 모양의 일부가 소리의 특징을 나타내는 문자 체계.
- 파스파 문자
- 13세기 원나라를 위해 만든 문자. 일부 한글 자음 모양의 모델로 거론된다.
묻고 답하기
훈민정음과 한글은 같은 것인가요?
훈민정음은 처음 만든 글자의 이름이자 1446년 책의 제목이에요. 한글은 같은 문자 체계를 오늘날 부르는 이름이에요.
글자는 몇 개였나요?
자음 17자, 모음 11자, 모두 28자였어요. 그 가운데 네 글자는 지금 쓰지 않아서 오늘날에는 기본 24자를 써요.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인가요?
1446년 책에 음력 9월 상순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는데, 이를 양력으로 바꾸면 10월 9일이 되기 때문이에요.
세종대왕이 정말 직접 만들었나요?
공식 기록은 세종이 친히 만들었다고 하고 대부분의 학자도 세종이 깊이 관여했다고 보지만, 학자·왕실 가족과 어떻게 일을 나누었는지는 아직 논쟁 중입니다.
왜 반대한 신하들이 있었나요?
한자가 문명의 표지라고 믿었고, 쉬운 글자가 학문을 약하게 할까 걱정했으며, 기존 방식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다른 문자를 본떠 만들었나요?
체계 전체는 독창적입니다. 몇몇 자음 모양이 몽골의 파스파 문자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학설이 있지만, 이를 부정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원본 책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가장 잘 알려진 해례본은 서울 간송미술관에 있습니다. 상주에서 나온 두 번째 해례본은 훼손된 채 아직 국가에 넘겨지지 않았습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훈민정음 (1446년 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훈민정음(訓民正音).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Hunminjeongeum. Wikipedia
- Hunminjeongeum Haerye. Wikipedia
- Hangul. Wikipedia
- Choe Manri. Wikipedia
- 훈민정음. 위키백과
- 훈민정음 해례본. 위키백과
- 김영기(Young-Key Kim-Renaud) 엮음, The Korean Alphabet: Its History and Structure. University of Hawaiʻi Press, 1997
- 개리 레드야드(Gari Ledyard), The Korean Language Reform of 1446. 신구문화사, 1998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