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아르타샤스트라

अर्थशास्त्र (Arthaśāstra); 카우틸리야의 『아르타샤스트라』

약 기원전 300년 – 299년 · 마가다 지방 (마우리아 전승)

한 문장으로

『아르타샤스트라』는 왕이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곧 세금 걷기, 대신 고르기, 범죄 재판, 첩자 부리기, 동맹 맺기,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까지 설명한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통치 지침서다.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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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나라를 운영하는 방법이 모두 담긴 커다란 설명서를 떠올려 보자. 정직한 신하를 어떻게 뽑는지, 농부는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튼튼한 성은 어떻게 쌓는지, 시장을 어떻게 공정하게 지키는지, 이웃 나라 왕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가 다 적혀 있다. 그것이 『아르타샤스트라』다. 인도의 옛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쓰였고, 약 2,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아르타’는 재산, 성공, 먹고사는 일 같은 뜻이고, ‘샤스트라’는 규칙을 모은 책이나 학문을 뜻한다. 그래서 『아르타샤스트라』는 ‘부와 권력의 학문’쯤으로 옮길 수 있다.

이 책은 왕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지혜로운 스승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법과 정부가 없으면 사람들은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듯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좋은 정부는 약한 사람을 힘센 사람으로부터 지켜 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영리하고 때로는 교활한 내용으로도 유명하다. 첩자를 수행자나 상인, 요리사로 꾸며 보내는 법, 적국 왕을 속이는 법까지 설명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냉혹한 책 가운데 하나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먹이고, 숲을 보호하고, 늙은 일소나 말을 잘 돌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 책은 수백 년 동안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러다 1905년 인도 마이소르의 한 도서관 사서가 야자나무 잎에 쓴 옛 필사본을 찾아냈다. 학자들은 깜짝 놀랐고, 그 뒤로 누가 언제 이 책을 썼는지를 두고 지금까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눈에 보기

종류
통치술·법·경제·외교·전쟁을 다룬 산스크리트어 논서(샤스트라)
연대
논쟁 중. 전통적으로는 기원전 300년 무렵(마우리아 시대). 최근 연구 대다수는 더 이른 자료를 모아 대략 1~3세기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본다
저자
본문은 카우틸리야(카우탈리야)라는 이름을, 끝의 게송은 비슈누굽타라는 이름을 든다. 후대 전승은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재상 차나키야와 같은 인물로 보지만 많은 학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언어
산스크리트어. 대부분 산문이고 각 장 끝에 운문이 붙는다
분량
15권 150장, 번호를 매긴 주제 180개. 문장 약 5,300개
재발견
1905년 마이소르에서 R. 샤마샤스트리가 야자잎 필사본을 확인. 1909년 산스크리트 원문, 1915년 영어 번역 출간
대표 개념
국가의 일곱 요소, 왕들의 원(만달라), 외교의 여섯 가지 방책, ‘물고기의 법칙’

쉬움

『아르타샤스트라』는 어떤 책인가

『아르타샤스트라』는 오로지 통치만을 다룬 인도 논서 가운데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책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였고, 왕 또는 왕과 관리를 가르치던 스승들을 독자로 삼았다. 다루는 범위가 놀랄 만큼 넓다. 왕자의 교육, 좋은 대신의 자질, 광산·숲·곡물 창고·작업장 운영, 도량형, 세금, 재판, 혼인과 상속, 범죄 단속, 첩보, 외교, 원정, 성 공략법까지 담겨 있다.

제목은 두 낱말로 이루어진다. ‘아르타’는 재산, 번영, 생계, 물질적 성공을 두루 가리키는 말로, 고전 힌두 사상에서 다르마(올바른 행위와 의무), 카마(즐거움과 사랑), 모크샤(해탈)와 함께 인생의 네 가지 목표 가운데 하나다. ‘샤스트라’는 체계적인 지식이나 규범서를 뜻한다. 학자들은 제목을 ‘정치학’, ‘정치경제학’, 또는 간단히 ‘통치술’로 옮긴다.

이 책은 자신이 처음 나온 책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힌다. 첫머리에서 앞선 여러 ‘아르타샤스트라’의 가르침을 모아 지었다고 말하고, 책 곳곳에서 브리하스파티 학파, 우샤나스 학파, 마누 학파 같은 옛 권위를 인용하며 반박한다. 그 옛 책들은 모두 사라졌고, 이 분야의 책 가운데 온전히 남은 것은 『아르타샤스트라』뿐이다.

권력을 매우 솔직하게 다루기 때문에 이 책의 평판은 둘로 갈린다. 첩자와 독살자, 속임수로 가득한 냉정한 조종술 교본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치자의 성공을 백성의 복지에 묶어 둔 실용적인 선정(善政) 지침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두 평가 모두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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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책의 짜임

『아르타샤스트라』는 15권(아디카라나), 150장(아디야야), 180개 주제(프라카라나)로 나뉜다. 첫 장은 목차이고, 마지막 권은 학문적 논서를 쓰는 데 쓰인 추론 방법을 짧게 다룬다. 각 장은 주로 산문이지만 끝에는 한두 편의 게송이 붙는다. 이는 한 단락이 끝났음을 알리는, 산스크리트 문헌에서 흔한 신호다.

책은 대체로 나라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아간다. 제1권은 왕의 수양과 대신의 선발·시험을 다룬다. 가장 긴 제2권은 왕실 경제를 맡은 감독관들의 임무를 서술한다. 국고, 광산, 교역, 숲, 무기고, 농업, 술, 선박, 소, 말, 코끼리까지 나온다. 제3권과 제4권은 사법으로, 제3권은 민사법, 제4권은 범죄 진압(글자 그대로는 ‘가시 뽑기’)을 다룬다.

제5권은 궁정의 비밀 활동, 제6권은 단 두 장으로 국가와 대외 관계의 이론을 세운다.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제7권은 외교의 ‘여섯 가지 방책’을 설명한다. 제8권부터 제14권까지는 재난, 원정, 전쟁, 부족 연합에 대한 대처, 약한 왕이 할 일, 성 공략, 비밀스럽거나 주술적인 기술을 다루고, 제15권은 논서 자체의 방법으로 끝맺는다.

15·150·180이라는 숫자는 아마 의도된 것이다. 산스크리트 저자들은 상징적인 숫자를 즐겨 썼다. 그런데 주제들이 장에 고르지 않게 나뉘어 있어서, 많은 학자는 장 구분을 후대 편집자가 덧붙였다는 증거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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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왕, 그리고 국가의 일곱 요소

『아르타샤스트라』의 중심에는 왕이 있다. 이상적인 통치자는 자기 감각을 이겨 낸 ‘왕이자 성자’, 곧 라자르시다. 이 책은 왕이 바깥의 적보다 먼저 이겨야 할 여섯 가지 내면의 적으로 욕정, 분노, 탐욕, 교만, 오만, 무모함을 꼽는다. 또 보고 듣기, 청원 받기, 대신 회의, 군대 사열, 휴식으로 하루를 나눈 규칙적인 일과표를 제시한다.

이 책은 국가를 일곱 요소(프라크리티)로 이루어진 몸처럼 설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군주, 대신, 백성이 사는 영토, 성곽 도시, 국고, 군대, 동맹국이다. 건강한 국가에는 일곱 가지가 모두 필요하며, 국고가 비거나 군대가 충성하지 않는 등 하나라도 약하면 전체가 위태로워진다. 이런 분석 방식은 후대 인도 정치 문헌의 기본 틀이 되었다.

애초에 정부는 왜 필요한가? 『아르타샤스트라』는 ‘마츠야 냐야’, 곧 ‘물고기의 법칙’이라는 생생한 비유로 답한다. 형벌의 막대(단다)가 없으면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삼키듯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다. 너무 가혹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형벌을 쓰면 약자도 강자에 맞설 수 있다. 그래서 통치의 학문을 ‘단다니티’, 곧 ‘막대를 다스리는 법’이라 부른다.

자주 인용되는 게송 하나는 왕권과 백성의 복지를 잇는다. “백성의 행복에 왕의 행복이 있고, 백성의 이익에 왕의 이익이 있다.” 실제 왕들이 이 이상대로 살았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이 책은 백성의 삶을 돌보지 않는 통치자는 반란과 몰락을 부른다고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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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경제, 세금, 행정

『아르타샤스트라』가 그리는 국가는 경제에 깊이 관여한다. 제2권은 ‘감독관’(아디야크샤)이라 불리는 수십 명의 관리를 서술하는데, 저마다 생산이나 교역의 한 분야를 맡는다. 국고, 광산, 금, 창고, 상업, 임산물, 도량형, 통행세, 직조, 농업, 술, 도살장, 선박, 소, 말, 코끼리 감독관이 있다. 광산은 왕실 소유지만 민간에 빌려줄 수 있다. 민간 상인과 장인도 왕실 사업과 나란히 활동하며 규제를 받고 세금을 낸다.

세입에 관한 조언도 자세하다. 세금은 나무를 베어 버리듯 걷지 말고 정원에서 익은 열매를 따듯 걷어야 한다. 새 관개 시설이나 새로 개간한 땅에는 몇 해 동안 세금을 면제하고, 기근이나 전쟁 때는 구제를 명한다. 그런가 하면 비상시 국고를 채우는 여러 방법도 소개하는데, 그 가운데는 사원에서 가짜 기적을 연출해 헌금을 모으는 것처럼 대놓고 기만적인 방법도 있다.

소비자 보호는 되풀이해 나오는 주제다. 가짜 저울을 쓰거나, 물건에 불순물을 섞거나, 값을 담합하는 상인은 벌금을 물리고, 상인이나 장인이 무리 지어 꾸민 음모는 공동체 전체를 해친다는 이유로 개인 범죄보다 무겁게 다스린다. 임금, 빚, 예치, 동업, 토지 매매도 규정하며, 땅을 팔 때는 친척·이웃·채권자에게 먼저 살 권리를 준다.

오늘날 공공재라 부를 만한 것에 대한 관심도 곳곳에 보인다. 국가는 도로, 관개 시설, 곡물 창고를 유지하고, 숲과 코끼리 보호림을 지키며, 고아, 노인, 병자, 의지할 데 없는 여성을 부양해야 한다. 늙거나 다쳐서 일할 수 없는 짐승도 계속 먹여야 한다. 경제사상사 연구자들이 이 책을 초기 정치경제학 논서로 진지하게 다루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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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법, 재판, 범죄 단속

제3권은 세 명의 재판관(다르마스타)으로 이루어진 법정이 계약, 혼인, 상속, 재산, 빚, 임금, 매매, 증여, 폭행, 명예훼손에 관한 분쟁을 심리하는 모습을 그린다. 절차는 형식을 갖추었다. 고소는 기록해야 하고, 증인을 신문하고, 증거를 따져야 한다. ‘가시 뽑기’를 다루는 제4권은 별도의 치안관(프라데슈트리)에게 범죄와 부정 거래를 단속하는 일을 맡기는데, 이들은 피해자의 고소를 기다리지 않고 국가가 먼저 나서는 경우가 많다.

형벌은 죄에 걸맞아야 한다는 원칙이 책 전체에 흐른다. 벌금은 죄의 무게와 관련자의 신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이 책은 바르나(사회 계급) 제도와 노예제를 포함한 당시의 사회 위계를 전제로 하며, 계급에 따라 형벌이 다른 경우가 많다. 오늘날 헌법에서 말하는 법 앞의 평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혼인 규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여덟 가지 혼인 형태를 인정하고, 여성이 자기 재산(스트리다나)을 가질 권리를 정하며, 남편이 아내를 버렸거나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경우 등에는 재혼을 허락한다. 여성의 삶이 엄격히 통제되던 사회였지만, 그 안에서도 일정한 법적 보호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제4권의 상당 부분은 공금을 빼돌리는 관리, 속이는 상인,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사람을 적발하는 방법에 할애된다. 『아르타샤스트라』는 관리란 본래 훔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고 전제하며, 관리가 돈을 가로채는지 알아내기란 물속의 물고기가 물을 마시는지 알아내기만큼 어렵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6][7]

중급

첩자, 외교, 전쟁

『아르타샤스트라』는 첩보에 큰 관심을 쏟는다. 학생, 고행자, 가장(家長), 상인, 성자, 요리사, 의사, 광대, 떠돌이 여승으로 변장한 비밀 요원의 조직망을 서술한다. 이들은 대신의 충성을 시험하고, 백성을 살피고, 이웃 나라 소식을 알리고, 소문을 퍼뜨리며, 경우에 따라 위험한 적대자를 제거하기도 한다. 대신들 역시 벼슬을 받기 전에 재물, 권력, 욕정, 두려움의 유혹으로 몰래 시험을 받는다.

외교 정책은 ‘왕들의 원’, 곧 만달라 이론 위에 서 있다. 세력을 넓히려는 왕(비지기슈, ‘승리를 바라는 자’)이 여러 겹의 나라들로 이루어진 동심원의 한가운데 있다고 상상한다. 바로 옆 나라는 타고난 적이고, 그 너머의 나라는 타고난 벗이며, 그 너머는 적의 벗이 된다. 여기에 강력한 ‘중간’ 왕과 멀리 떨어진 ‘중립’ 왕이 더해진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말을 기하학적으로 풀어낸 셈이다.

제7권은 다른 나라를 대하는 여섯 가지 방책(샤드구니야)을 제시한다. 화친(조약), 적대, 관망, 진군, 강대국에 의탁하기, 그리고 한 나라와 화친하면서 다른 나라와 싸우는 ‘이중 정책’이다. 어느 것을 고를지는 자기 나라가 경쟁국에 견주어 기울고 있는지, 버티고 있는지, 커지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 책은 평화와 전쟁이 같은 이익을 준다면 평화를 택하라고 말한다. 전쟁은 손실과 비용, 오랜 원정을 부르기 때문이다.

전쟁을 택할 경우에는 공개전, 은밀한 전쟁, 그리고 비밀 요원이 수행하는 ‘조용한 전쟁’을 구분한다. 속임수, 암살, 선전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권하지만, 정복한 백성은 잘 대우하고 그들의 관습을 존중하며 지도자를 예우해야 새 영토가 충성을 지킨다고도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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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카우틸리야, 비슈누굽타, 차나키야

본문에는 카우틸리야(또는 카우탈리야)라는 이름이 여러 번 나오는데, 앞선 스승들의 견해를 소개한 뒤 “아니다, 하고 카우틸리야는 말한다”라고 반박하는 형식이 많다. 책 맨 끝의 게송은 저자를 비슈누굽타라 부르며 그가 본문과 주석을 함께 지었다고 한다. 또 다른 게송은 이 논서를 난다 왕조로부터 나라를 구한 사람이 썼다고 말한다.

이 마지막 게송이 책을 차나키야와 잇는다. 힌두·불교·자이나교 전승에 따르면 브라만 출신 책사 차나키야는 기원전 320년 무렵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난다 왕조를 무너뜨리고 파탈리푸트라(오늘날 파트나)를 수도로 마우리아 제국을 세우도록 도왔다. 몇 세기 뒤 비샤카닷타가 쓴 산스크리트 희곡 『무드라락샤사』는 카우틸리야, 비슈누굽타, 차나키야 세 이름을 모두 한 사람에게 쓴다.

20세기 대부분 동안 이 동일시는 널리 받아들여졌고, 『아르타샤스트라』는 마우리아 왕조 통치의 기록으로 읽혔다. 표준 교정본과 번역을 낸 인도 학자 R. P. 캉글레도 이를 옹호했다. 이 동일시는 인도 민족주의자들에게도 매력적이었다. 현실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통치술의 전통이 고대 인도에 있었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나키야에 대한 독립적인 역사 기록은 없다. 그에 관해 아는 것은 모두 그가 살았다는 시기보다 훨씬 뒤에 기록된 전설에서 나온다. 패트릭 올리벨은 『아르타샤스트라』 본문에 차나키야라는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금은 많은 학자가 이 동일시를 후대의 전승으로 보며, 스스로를 마우리아의 계승자로 내세우기 좋아한 굽타 시대에 힘을 얻었을 가능성을 거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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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사라졌다 다시 찾은 책: 필사본과 판본

『아르타샤스트라』는 고대와 중세 초기 인도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후대 저자들이 이를 인용하거나 넌지시 언급했고, 중국 신장 키질 부근에서 발견된 200년 무렵의 불교 산스크리트 필사본(스피처 필사본)에도 이름이 나온다. 칼리다사 같은 고전 시인들도 이 책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2세기 무렵 이후로는 쓰임이 끊긴 듯하다. 더 짧은 정치 문헌들이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9세기 유럽 학자들은 이 책을 이름으로만 알았다.

1905년 타밀 지방 탄자부르(탄조르)의 한 브라만이 그란타 문자로 쓴 산스크리트 야자잎 필사본을 마이소르 동양 도서관에 기증했다. 사서 루드라파트나 샤마샤스트리가 이것이 사라진 『아르타샤스트라』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1905년부터 학술지에 영어 번역을 나누어 싣고, 1909년 산스크리트 원문을, 1915년 영어 완역을 펴냈다. 이 발견은 인도사 연구자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른 필사본들도 곧 나타났다. 율리우스 욜리와 리하르트 슈미트는 말라얄람 문자 필사본을 바탕으로 1923~1924년에 판본을 냈다. 구자라트 파탄의 자이나교 도서관에서는 데바나가리 문자로 쓴 북인도 계통의 단편이 발견되어 1959년 무니 지나 비자이가 출간했다. 1960년 R. P. 캉글레는 당시 알려진 모든 필사본을 바탕으로 교정본을 냈고, 이어 영어 번역과 상세한 연구를 펴냈다.

번역은 지금도 어렵다. 산스크리트 문장이 압축적이고 전문적이어서 한 세기에 걸친 연구 뒤에도 뜻이 분명하지 않은 대목이 남아 있다. 2013년 번역을 낸 패트릭 올리벨은 이 작업을 자신이 해 본 가장 어려운 번역이라고 했다. 캉글레와 L. N. 랑가라잔(1992)의 번역도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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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수용사: ‘인도의 마키아벨리’에서 현대 전략론까지

원문이 출간되자 유럽 학자들은 곧 저자를 『군주론』(1513)의 저자인 피렌체의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견주기 시작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19년의 유명한 강연에서, 진정으로 급진적인 ‘마키아벨리즘’은 『아르타샤스트라』에서 고전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그에 비하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무해하다고 말했다. ‘인도의 마키아벨리’라는 별명은 이렇게 굳어졌다.

후대 학자들은 이 비교가 쓸모 있으면서도 오해를 부른다고 본다. 마키아벨리처럼 『아르타샤스트라』도 정치적 계산을 개인 도덕과 떼어 놓고 속임수를 국가의 정당한 수단으로 다룬다. 그러나 『군주론』이 짧은 논고라면 『아르타샤스트라』는 방대한 행정 백과사전이며, 백성의 안전과 번영을 왕의 성공의 핵심에 거듭 놓는다. 또 왕이 지켜야 할 종교·사회 질서인 다르마의 틀 안에서 움직인다.

현대 인도에서 『아르타샤스트라』는 토착 전략 사고의 상징이 되었다. 외교관, 군인, 국제관계학자들은 국가가 주로 권력과 생존을 위해 움직인다고 보는 현실주의의 사례로 이 책을 든다. 일부 현대 저자들은 절제된 과세와 공공사업에 대한 관심을 높이 평가하며 경제사상을 연구하고, 다른 이들은 권위주의적 감시 국가의 면모를 강조한다.

특히 인도의 대중문화는 차나키야를 텔레비전 드라마, 소설, 경영서의 주인공인 전략의 달인으로 그리곤 한다. 이런 묘사는 대개 전통적인 저자설을 당연하게 여기므로, 역사적 문헌과 거기에 덧붙은 전설적 인물을 구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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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논쟁: 연대, 저자, 텍스트의 층위

학계의 핵심 쟁점은 『아르타샤스트라』가 한 사람이 마우리아 시대에 쓴 책인지, 여러 세기에 걸쳐 자라난 복합 텍스트인지다. 캉글레(1965)는 P. V. 카네를 따라, 찬드라굽타의 집권을 도운 재상의 저작이 아니라고 볼 설득력 있는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기원전 4세기와 맞지 않아 보이는 특징들이 지적되었고, 학계의 무게중심은 옮겨 갔다.

토머스 트라우트먼은 1971년 어휘 사용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책의 권마다 어휘 양상이 달라 여러 저자가 있었다고 결론짓고, 잠정적으로 250년 무렵 편찬을 제안했다. 하르트무트 샤르페는 더 이른 운문 저작을 150년 무렵 산문으로 확장한 것이라 주장했다. 디터 슐링로프는 책의 성곽 서술을 고고학 자료와 비교하면서, 파탈리푸트라에서 발굴된 마우리아 시대 방벽은 목재인데 『아르타샤스트라』는 화재 위험 때문에 나무 성벽을 금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패트릭 올리벨(2013)은 세 층위를 제안했다. 대략 기원전 150년~기원후 50년의 원자료 논서들, 50~125년 무렵 아마도 ‘단다니티’라는 제목으로 편찬된 ‘카우틸리야 교정본’, 그리고 175~300년 무렵 장 구분, 옛 스승들과의 문답, 한층 강한 브라만적 관점을 덧붙인 ‘샤스트라적 개정’이다. 마크 매클리시(2019)도 비슷하게, 익명의 『단다니티』를 뒤에 스스로 카우틸리야라 칭한 편집자가 확장·개작하고 제목을 바꾸었다고 본다.

늦은 연대를 지지하는 쪽은 마우리아 시대로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든다. 중국 비단(인도에서 중국을 가리키는 이름은 보통 기원전 221년에 세워진 진나라와 연결된다), 알렉산드리아산 산호, 그리스어 차용어, 문서의 폭넓은 사용, 그리고 2세기 이전에는 확인되지 않는 산스크리트어 왕명 문서 등이다. 이른 연대를 지지하는 쪽은 낱말 몇 개는 뒤에 끼워 넣은 것일 수 있고 핵심은 여전히 오래되었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논쟁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전문가는 현재 형태의 텍스트를 기원후 초기 몇 세기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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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규범서인가, 역사 기록인가

두 번째 논쟁은 『아르타샤스트라』가 어떤 종류의 증거인가 하는 문제다. 예전 역사가들은 이 책을 그리스 사절 메가스테네스의 기록, 아소카의 칙령과 함께 마우리아 제국 운영의 직접 기록으로 쓰곤 했다. 텍스트가 몇 세기 뒤의 것이라면 이런 방법은 의심스러워진다. 매클리시 같은 학자들은 마우리아 시대에 대한 사료를 갖고 싶다는 바람이 텍스트 연대에 관한 결론을 좌우했다고 경고했다.

그 자체로 보더라도 『아르타샤스트라』는 규범서다. 일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말한다. 샤스트라 전통에서 훈련받은 학식 있는 엘리트가 같은 엘리트를 위해 썼다. 수많은 목록과 분류는 행정 현실만큼이나 학자들의 분류 습관을 반영한다. 그래서 현대 학자들은 이 책만 따로 읽지 않고 비문, 주화, 고고학 자료와 함께 읽는다.

텍스트 내부의 단서는 이 책이 상상한 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여러 학자는 이 책의 조언이 거대한 제국보다 경쟁국에 둘러싸인 비교적 작은 왕국에 더 잘 맞는다고 보았다. 토머스 버로는 일부 행정 용어가 서인도를 가리킨다고 지적했고, 그림자 길이와 낮의 길이에 관한 대목은 북회귀선 근처의 위도에 맞는다. 이런 논거는 시사적이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끝으로 이 책의 정치관을 어떻게 규정할지도 의견이 갈린다. 로저 보에셰는 관료적 복지국가와 촘촘한 첩보망이 결합된 모습을 그렸고, 트라우트먼은 사유재산과 규제된 시장을 인정한 점을 강조했다. 다르마 문헌, 특히 『마누 법전』과의 관계도 논쟁거리다. 올리벨과 매클리시는 최종 편집자가 이 책을 의도적으로 브라만 법 이념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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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아르타
물질적 번영, 부, 권력. 인생의 네 가지 전통적 목표 가운데 하나로, 이 책은 국가의 아르타 추구를 정당한 학문으로 다룬다.
단다와 단다니티
형벌의 ‘막대’와 그것을 쓰는 기술. 정부는 형벌을 공정하게 써서 약자를 강자로부터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물고기의 법칙(마츠야 냐야)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으로, 정부가 없을 때 생기는 혼란을 가리키는 비유.
국가의 일곱 요소(삽탕가)
왕, 대신, 영토와 백성, 성곽, 국고, 군대, 동맹국. 일곱 가지가 모두 튼튼해야 나라가 건강하다.
왕들의 원(만달라)
이웃은 타고난 적이고 이웃의 이웃은 타고난 동맹이라는, 나라 사이 관계의 모형.
여섯 가지 방책(샤드구니야)
화친, 적대, 관망, 진군, 의탁, 이중 정책. 왕은 자기 세력이 커지는지 기우는지에 따라 이 가운데서 고른다.
복지와 권력
왕의 성공을 백성의 번영과 만족에 묶으면서도, 권력 유지를 위해 감시와 기만을 권한다.

기록

  1. 약 기원전 320년 — 전승에 따르면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차나키야의 도움으로 난다 왕조를 무너뜨린다. 『아르타샤스트라』의 전통적 연대.
  2. 약 기원전 150년 — 올리벨의 재구성에 따른 통치술 원자료 논서들의 가장 이른 층위(기원전 150년~기원후 50년 무렵).
  3. 약 50년 — 올리벨이 제안한 ‘카우틸리야 교정본’ 편찬(50~125년 무렵).
  4. 약 175년 — 올리벨이 제안한 ‘샤스트라적 개정’ 시작(175~300년 무렵). 텍스트가 대략 지금의 모습을 갖춘다.
  5. 약 250년 — 토머스 트라우트먼이 잠정적으로 제안한 편찬 연대.
  6. 약 1150년 — 12세기 무렵 『아르타샤스트라』의 쓰임이 끊기고, 뒤에 사라진 책으로 여겨진다.
  7. 1905년 — 루드라파트나 샤마샤스트리가 마이소르 동양 도서관에 기증된 야자잎 필사본을 『아르타샤스트라』로 확인한다.
  8. 1909년 — 샤마샤스트리가 산스크리트 원문을 출간한다.
  9. 1915년 — 샤마샤스트리의 영어 완역이 출간된다.
  10. 1919년 — 막스 베버가 강연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아르타샤스트라』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비교한다.
  11. 1960년 — R. P. 캉글레가 산스크리트 원문 교정본을 출간한다.
  12. 2013년 — 패트릭 올리벨이 텍스트의 층위 연구를 곁들인 새 영어 번역을 출간한다.

용어 풀이

샤스트라
법, 문법, 정치 등 한 분야의 규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산스크리트 논서.
아디카라나
『아르타샤스트라』의 ‘권’, 곧 큰 단위. 모두 열다섯 권이다.
아디야크샤
감독관. 광산이나 교역처럼 왕실 경제의 한 분야를 맡은 관리.
아마티야
능력, 충성, 학식을 기준으로 뽑힌 대신이나 고위 관리.
비지기슈
‘승리를 바라는 자’. 왕들의 원 한가운데 있는 야심 찬 왕.
다르마
의무, 올바른 행위, 사회·종교 질서. 왕은 이를 지켜야 한다.
바르나
브라만 이론에서 말하는 네 사회 계급. 『아르타샤스트라』는 이 위계를 전제로 한다.
마우리아 제국
기원전 320년 무렵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세우고 뒤에 아소카가 다스린 제국. 수도는 파탈리푸트라.
교정본과 개정
텍스트의 한 판(版)과 그것을 편집하는 과정. 학자들은 『아르타샤스트라』가 형성된 단계를 설명할 때 이 말을 쓴다.

묻고 답하기

『아르타샤스트라』는 누가 썼나요?

본문에는 카우틸리야와 비슈누굽타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전승은 그를 마우리아 제국 첫 황제의 책사 차나키야로 보지만, 현대 학자 다수는 여러 사람이 여러 세기에 걸쳐 모으고 고친 책이며 카우틸리야는 그 편찬자나 편집자 가운데 한 사람일 수 있다고 봅니다.

속임수에 관한 책인가요?

일부는 그렇습니다. 첩자와 계략을 자세히 설명하지만, 책의 대부분은 세금, 시장, 재판, 숲, 도로, 어려운 사람 돕기 같은 일상적인 통치에 관한 내용입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사라져 있었나요?

12세기 무렵 이후로 널리 베껴 쓰이거나 연구되지 않은 듯합니다. 더 짧은 정치 문헌이 자리를 대신했을 수 있습니다. 남인도에 필사본 하나가 남아 있다가 1905년에 확인되었습니다.

『군주론』과 같은 책인가요?

아닙니다. 둘 다 권력에 솔직하지만, 『아르타샤스트라』는 고대 인도에서 쓰인 방대한 행정 지침서이고 『군주론』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짧은 논고입니다. 『아르타샤스트라』는 백성의 복지를 훨씬 더 강조합니다.

마우리아 제국을 설명하는 데 쓸 수 있나요?

아주 조심해서 써야 합니다. 많은 학자의 생각대로 기원후 초기 몇 세기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면 마우리아 통치의 직접 기록으로 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실제 관행이 아니라 이상을 그린 규범서입니다.

늦은 연대를 주장하는 주된 근거는 무엇인가요?

중국 비단, 알렉산드리아 산호, 그리스어 차용어, 산스크리트어 왕명 문서처럼 기원전 300년 무렵으로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낱말과 물건들, 그리고 여러 저자를 가리키는 통계·문체상의 증거입니다.

지금도 읽히나요?

그렇습니다. 정치학, 국제관계학, 경제사에서 연구되며, 인도에서는 전략 사상의 고전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Arthashastra. Wikipedia (영어)
  2. 아르타샤스트라. 위키백과
  3. Chanakya. Wikipedia (영어)
  4. Joshua J. Mark, Arthashastra. World History Encyclopedia, 2020
  5. Maurya Empire. Wikipedia (영어)
  6. Patrick Olivelle, King, Governance, and Law in Ancient India: Kauṭilya’s Arthaśāstra.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7. R. P. Kangle, The Kauṭilīya Arthaśāstra (3 parts: text, translation, study). University of Bombay, 1960–1965
  8. Thomas R. Trautmann, Kauṭilya and the Arthaśāstra: A Statistical Investigation of the Authorship and Evolution of the Text. E. J. Brill, 1971
  9. Mark McClish, The History of the Arthaśāstra: Sovereignty and Sacred Law in Ancient Indi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9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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