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유럽의 산속 큰 호숫가 도시 제네바에서 장자크라는 아이가 태어났어요. 엄마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고, 시계를 만드는 아빠가 그를 키우며 밤늦도록 함께 책을 읽었어요.
어른이 된 루소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프랑스의 북적이는 수도 파리에 가게 되었어요. 그곳의 똑똑한 작가들은 과학과 학문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고 믿었지요. 그런데 루소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어요. “우리는 예전보다 아는 것도 많고 멋진 물건도 많아요. 그런데 정말 더 착해지고 더 행복해졌나요?”
루소는 아주 옛날 첫 사람들이 숲에서 소박하게 사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그는 그 사람들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사람들이 서로를 비교하기 시작하고, 땅에 울타리를 치며 “여기는 내 거야!”라고 말하고,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가난해지면서 생겼다고 했지요.
루소는 큰 질문도 던졌어요. “왜 우리는 나라의 규칙을 따라야 할까?” 그의 대답은,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모두를 위해 만든 규칙이어야 공정하다는 것이었어요. 한 친구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라 반 친구들이 함께 학급 규칙을 정하는 것과 비슷해요.
루소는 아이들이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도 썼어요.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니까 뛰어놀고, 진짜 물건을 만져 보고, 스스로 알아내며 배워야 한다고 했지요. 오늘날 학교에도 그의 생각이 남아 있어요. 하지만 루소 자신은 늘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자기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그를 두고 토론한답니다.
한눈에 보기
- 생애
- 1712년 6월 28일 – 1778년 7월 2일
- 출생지
- 제네바(당시 독립된 개신교 도시 공화국)
- 사망지
- 프랑스 파리 근교 에름농빌
- 활동 무대
- 파리와 그 주변, 스위스, 영국(1766–67) 등
- 분야
- 철학자, 소설가, 작곡가, 악보 필경사, 자서전 작가
- 주요 저작
- 『학문예술론』(1750),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 『신엘로이즈』(1761), 『사회계약론』(1762), 『에밀』(1762), 『고백록』(1782–89 사후 출간)
- 핵심 개념
- 자연적 선함, 자기애(아무르 프로프르), 일반의지, 인민주권, 자연에 따른 교육
- 언어
- 프랑스어
쉬움
루소는 누구인가
장자크 루소는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철학서, 소설, 오페라, 편지, 그리고 유명한 자서전을 썼다. 그는 특히 세 가지 큰 질문으로 기억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불평등한가? 정부가 정당하게, 곧 옳은 권리를 가지고 다스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자유롭고 선한 사람으로 자라는가?
루소가 살았던 시대는 계몽주의 시대였다. 많은 작가가 이성과 과학, 지식의 확산이 인간의 삶을 꾸준히 나아지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루소도 이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는 『백과전서』에 글을 썼고 편집자 드니 디드로와 친구였다. 그러나 동시에 계몽주의의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가 되었다. 학문과 예술, 부의 진보가 허영과 의존, 불의와 함께 갈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안에 있으면서 바깥에 서 있었기에, 사람들은 루소를 서로 전혀 다른 목적에 끌어다 썼다. 민주주의와 혁명, 낭만주의적 감정과 자연 사랑, 근대 교육, 그리고 일부 비판자에 따르면 권위주의 정치까지. 루소를 꼼꼼히 읽는다는 것은 이 해석들이 각각 어디에 근거하는지를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쉬움
떠돌이의 삶
루소는 1712년 6월 28일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쉬잔 베르나르는 그를 낳고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시계공이던 아버지 이자크는 어린 아들과 함께 소설과 역사책, 특히 고대 영웅들의 삶을 그린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었다. 루소가 열 살 무렵 아버지가 다툼 끝에 제네바를 떠나자, 그는 친척 집에 맡겨졌다가 조각공의 도제가 되었다.
열다섯 살이던 1728년, 교외로 산책을 나갔다가 성문이 닫혀 버리자 루소는 아예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사부아 지방으로 간 그는 가톨릭 귀족 부인 프랑수아즈루이즈 드 바랑을 만났다. 바랑 부인은 그의 후견인이 되었고 뒤에는 연인이 되었다. 루소는 토리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하인·비서·음악 교사·가정교사 등 여러 일을 전전했다. 철학과 과학, 음악은 대부분 독학으로 익혔다.
1740년대 초 그는 이름을 알리려는 희망을 품고 새로운 악보 표기법을 들고 파리에 왔다. 표기법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일자리를 얻었고, 디드로를 비롯한 작가들을 만났으며, 세탁부 테레즈 르바쇠르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녀는 평생 그의 곁에 있었다. 『고백록』에 따르면 두 사람 사이에 다섯 아이가 있었는데, 루소는 모두 파리의 고아원(기아 보호소)에 맡겼다. 그는 훗날 이를 변명하려 했고, 적들은 이 일을 두고두고 공격했다.
명성은 1750년 갑자기 찾아왔다. 학문과 예술에 관한 논문이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서 상을 받은 것이다. 이후 12년 동안 그는 가장 중요한 저작들을 썼다. 1762년 『사회계약론』과 『에밀』이 금서가 되자 체포를 피해 달아났고, 스위스·영국·프랑스를 오가며 여러 해를 보냈다. 1778년 7월 2일 파리 북쪽 에름농빌에서 세상을 떠났다.
쉬움
1750년의 뜻밖의 대답
1749년 디종 아카데미는 “학문과 예술의 부흥이 풍속을 순화하는 데 기여했는가?”라는 논문 주제를 내걸었다. 루소는 훗날, 디드로가 갇혀 있던 뱅센으로 걸어가던 길에 이 문제를 읽고 갑자기 생각이 쏟아지는 경험을 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그렇게 극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뱅센의 계시’는 그의 생애를 둘러싼 전설의 일부가 되었다.
『학문예술론』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세련된 문화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어떠한가’보다 ‘어떻게 보이는가’를 가르친다고 그는 주장했다. 예의라는 가면 뒤에 진짜 감정을 숨기고, 칭찬을 좇고, 사치에 기대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고대 스파르타와 공화정 로마의 소박한 덕을 칭송하고 근대 파리의 세련됨을 비판했다.
논문은 상을 받았고 루소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문필가가 문필을 공격한다는 것이 역설로 보였기에, 루소는 이후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고 발전시켜야 했다. 그 논쟁 속에서 인간과 사회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 왔는지에 관한 훨씬 야심 찬 이론이 자라났다.
중급
『인간 불평등 기원론』: 인류의 역사
1755년 루소는 또 다른 디종 현상 공모를 위해 쓴 『인간 불평등의 기원과 기초에 관한 논문』을 출간했다. 상은 받지 못했지만 이 책은 근대 사회사상의 기초 문헌이 되었다. 루소는 사회 이전의 ‘자연 상태’를 상상했다. 그는 이것을 실제 사건의 기록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인간에게서 무엇이 본래적이고 무엇이 사회가 덧붙인 것인지를 가려내기 위한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이라고 불렀다.
그가 그린 자연인은 홀로 지내고, 건강하며, 단순하다. 자연인을 움직이는 감정은 두 가지다. 생존과 안녕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자기 사랑인 ‘아무르 드 수아(amour de soi)’, 그리고 다른 생명이 고통받는 것을 보기 싫어하는 타고난 마음인 연민(pitié)이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것은 자유와 ‘완성 가능성(perfectibilité)’, 곧 변화하고 발전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진보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타락에 노출시킨다.
사람들이 한곳에 정착하고 가족을 이루며 가까이 살게 되자 새로운 정념이 나타난다. 남에게 존중받고 남의 눈에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고 싶은 욕구, ‘아무르 프로프르(amour-propre)’다. 비교는 자만과 시기와 수치를 낳는다. 농업과 야금술은 소유와 의존을 만든다. 제2부 첫머리의 유명한 대목이 여기서 나온다.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할 생각을 처음 해낸 사람, 그리고 그 말을 믿어 줄 만큼 순진한 사람들을 찾아낸 사람이 바로 시민사회의 진짜 창설자였다.
마지막으로 루소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설득해 모두를 보호한다고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불평등을 영구화하는 법과 정부를 받아들이게 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불평등의 상당 부분은 자연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것이며, 역사가 만든 것이라면 사람들이 원칙적으로 판단하고 바꿀 수도 있다는 대담한 주장이었다.
중급
『에밀』: 자연에 따른 교육
『에밀, 또는 교육에 대하여』(1762)는 가상의 소년 에밀이 가정교사와 함께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 자라는 과정을 따라간다. 첫 문장이 주제를 알려 준다.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타락한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표는 아이를 세상의 평판이 주는 타락한 압력에서 지키고, 타고난 능력이 올바른 순서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다.
루소는 어린 시절에는 어린 시절만의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 있다고 강조했다. 어린아이는 말보다 사물에서 배워야 한다. 움직이고, 만지고, 재 보고, 실험하며, 제멋대로 내리는 벌 대신 자기 행동의 자연스러운 결과를 겪으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책으로 하는 공부, 도덕 설교, 추상적 추론은 나중에 와야 한다. 소년 에밀이 처음 읽는 유일한 책은 스스로의 솜씨로 살아남는 법을 익히는 사람의 이야기 『로빈슨 크루소』다.
제4권에는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이 들어 있다. 교회의 권위나 계시가 아니라 양심과 감정에 뿌리를 둔 자연 종교를 밝힌 글이다. 무엇보다 이 부분 때문에 파리 고등법원은 책을 불태우고 루소를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제5권은 에밀의 아내가 될 소피와 그녀의 전혀 다른 교육, 곧 남편을 기쁘게 하고 쓸모 있게 하도록 설계된 교육을 그린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후 많은 비판자가 이 이중 잣대를 공격했다.
중급
소설, 음악, 그리고 ‘나’
루소는 성공한 예술가이기도 했다. 짧은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1752)는 프랑스 국왕 앞에서 공연되었다. 『백과전서』에 음악 항목을 여럿 썼고 훗날 『음악 사전』을 펴냈다. 파리의 ‘부퐁 논쟁’에서는 이탈리아 편에 서서 프랑스식의 복잡한 화성보다 선율을 높이 평가했다.
서간체 소설 『쥘리, 또는 신엘로이즈』(1761)는 18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였다. 독자들은 쥘리와 가정교사 생프뢰의 사랑에 눈물을 흘렸고, 등장인물이 실제 인물인 것처럼 루소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소설은 강렬한 감정, 덕, 알프스 풍경의 아름다움을 문학의 중심 주제로 만들었으며, 흔히 낭만주의의 선구로 여겨진다.
만년의 루소는 자기 자신에게로 눈을 돌렸다. 사후에 출간된 『고백록』은 한 인간을 자연 그대로의 진실 속에서 보여 주겠다고, 그리고 그 인간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선언하며 시작한다. 행복한 일뿐 아니라 부끄러운 일도 털어놓는다. 『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대화)』, 미완성작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과 함께 이 책은 평범한 개인의 내면을 진지한 주제로 삼는 근대 자서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중급
단죄, 망명, 그리고 불화
1762년 『에밀』과 『사회계약론』은 파리와 제네바에서 모두 단죄되었다. 루소는 스위스로 피신해 이베르동을 거쳐 당시 프로이센 왕이 다스리던 뇌샤텔 공국의 모티에에 머물렀다. 1763년에는 제네바 시민권을 포기했고, 『산에서 쓴 편지』(1764)에서 제네바의 지배 평의회를 공격했다. 주민들의 적대감이 커져 1765년에는 그의 집에 돌이 날아들었다.
1766년 데이비드 흄이 그를 영국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우정은 몇 달 만에 깨졌다. 루소는 흄이 자신을 모욕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고 믿게 되었고, 흄은 이 불화의 경위를 출판했다. 디드로, 볼테르 등 옛 동료들과의 결별도 마찬가지로 쓰라렸다. 많은 역사가는 이 시기의 루소가 편집증에 가까운 강한 의심에 시달렸다고 보지만, 그가 받은 박해 가운데 일부는 실제이기도 했다.
루소는 1767년 프랑스로 돌아와 한동안 가명으로 살았고, 1770년 다시 파리에 정착해 악보를 베껴 쓰며 생계를 꾸렸다. 1778년 에름농빌로 오라는 초대를 받아들였고, 그해 7월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영지 공원의 작은 섬에 묻혔고, 그곳은 순례지가 되었다.
중급
영향과 유산
프랑스 혁명기에 루소는 정치적 성인이 되었다.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혁명가들은 일반의지와 인민주권을 내세웠고, 1794년 그의 유해는 파리의 팡테옹으로 옮겨졌다. 혁명가들이 그의 이론을 실제로 얼마나 이해하고 적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지만, 그의 언어는 근대 민주주의의 어휘가 되었다.
철학에 끼친 영향도 깊다. 이마누엘 칸트는 루소가 자신에게 인간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썼으며, 스스로에게 법을 부여한다는 칸트의 자율 개념은 일반의지에 크게 빚지고 있다. 헤겔과 마르크스, 그리고 후대의 사회적 불평등 비판자들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기댔다. 교육에서는 페스탈로치와 프뢰벨 같은 개혁가들이 『에밀』을 바탕으로 삼았고, 오늘날의 ‘아동 중심’ 교육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루소의 사상은 유럽 밖으로도 멀리 퍼졌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나카에 조민은 『사회계약론』을 한문으로 옮기고 해설한 『민약역해(民約譯解)』(1882)를 펴냈고, 이 책은 동아시아의 개혁가들에게 읽혔다. 그는 ‘동양의 루소’라 불렸다. 문학에서는 감정과 자연, 진실함을 숭상하는 루소의 태도가 낭만주의를 키웠고, 『고백록』은 후대 작가들이 자기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심화
해석 논쟁: 체계의 통일성, 아무르 프로프르, 일반의지
루소는 자신의 저작들이 ‘인간은 본래 선하나 사회가 악하게 만든다’는 원리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체계라고 주장했다. 독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를 의심했다. 사회에서 물러나는 『몽상』의 개인주의적 루소는, 시민이 공동체에 의해 철저히 형성되어야 한다는 『사회계약론』의 공화주의적 루소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늘날 많은 연구자는 그의 저작들을 하나의 진단, 곧 타인의 평판과 의지에 의존하는 데서 오는 해악에 대한 서로 다른 처방으로 읽음으로써 통일성을 재구성한다.
핵심 논쟁 가운데 하나는 아무르 프로프르다. 예전 해석은 이를 악덕의 근원으로서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읽었다. 이와 달리 N. J. H. 덴트와 프레더릭 노이하우저로 대표되는 최근 해석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인 아무르 프로프르가 사회생활에서 없앨 수 없는 요소이며 동등한 존중을 바라는 것처럼 건강한 형태를 띨 수도 있다고 본다. 루소가 구상한 제도는 이 욕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복권’이 텍스트에 얼마나 들어맞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가장 첨예한 대립은 일반의지를 둘러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절차적으로, 곧 공정한 조건에서 모인 시민들이 결정하는 것으로 읽는다. 다른 이들은 인민이 잘못 알 수도 있는 객관적 공동 이익으로 읽는다. 20세기에 J. L. 탈몬의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의 기원』(1952)과 이사야 벌린의 강연은 ‘자유롭도록 강제된다’는 구절을 들어 루소를 근대 전제정의 선구자로 그렸다. 옹호자들은 루소가 개인적 지배에 맞서 평등한 법의 지배를 주장한 이론가였으며, 그 구절은 법이 각 시민을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에서 지켜 준다는 뜻이라고 반박한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1792) 이후 페미니즘 연구는 루소의 시민권에서 여성이 배제된 문제와 『에밀』의 소피 서술을 검토해 왔다. 이 배제가 단순한 모순이라는 견해도 있고, 가족과 공화국에 대한 그의 구상에 구조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문제는 근대 정치이론의 젠더적 기초를 둘러싼 논의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심화
자료, 자화상, 그리고 전기의 문제
루소의 생애에 관해 알려진 것의 상당 부분은 루소 자신에게서 나온다. 『고백록』, 『대화』, 『몽상』은 자기 표현의 걸작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자신을 음해한다고 믿은 적들에 맞서 자신을 변호하려고 쓴 글이다. 없어서는 안 될 자료이지만 중립적이지는 않다. 날짜와 동기와 대화는 기억과 목적에 따라 다듬어졌다. 예를 들어 뱅센의 계시 이야기는 거의 전적으로 훗날 그가 남긴 기록에 의존한다.
그래서 전기 작가들은 그의 서술을 현대 비판본으로 정리된 방대한 서간집, 그리고 동시대인의 증언과 대조한다. 증언 가운데 일부는 우호적이지만 많은 수는 적대적이다. 루이즈 데피네 주변에서 나온 회고록이 그 예다. 흄과의 불화에는 서로 다른 입장의 출판물이 따로 한 묶음을 이룬다. 모리스 크랜스턴과 레오 담로슈 같은 현대의 주요 전기 작가들은 특히 만년의 정신 상태 문제에서 이 자료들을 서로 다르게 저울질한다.
텍스트 연구도 중요하다. 루소는 작품을 고쳐 쓰거나 미완성으로 남기기도 했으며, 『고백록』과 『몽상』은 그가 죽은 뒤 다른 사람들이 편집해 출간했다. 표준 학술판은 플레이아드 총서의 『전집(Œuvres complètes)』이다. 번역자들은 실제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아무르 프로프르, 일반의지, 연민 같은 핵심 용어에는 딱 맞는 번역어가 없고,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 해석이 기울 수 있다. 한국어에서도 amour-propre는 ‘자존심’, ‘이기심’, ‘자기애’ 등으로 다양하게 옮겨진다.
핵심 개념
- 자연적 선함
- 인간은 본래 악하지 않으며, 악덕과 불행은 주로 비교·의존·불평등이라는 사회적 관계에서 생겨난다는 루소의 핵심 주장.
- 아무르 드 수아와 아무르 프로프르
- 아무르 드 수아는 생존과 안녕을 향한 자연스럽고 건강한 자기 사랑이다. 아무르 프로프르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사회 속에서 형성된 욕구로 자만·시기·지배욕으로 변할 수 있다.
- 완성 가능성
- 변화하고 발전하는 인간의 능력. 문화와 진보를 가능하게 하지만 타락과 새로운 불행으로 가는 길도 연다.
- 사회계약
- 각 사람이 똑같은 조건으로 자신을 공동체 전체에 내놓는 약속. 이를 통해 일반적인 법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는 인민이 생겨난다.
- 일반의지
- 사적 이익의 합(전체의지)과 달리, 공동선을 지향하는 시민들의 의지. 정당한 법의 원천이다.
- 인민주권
- 최고 권위는 인민 전체에 있으며, 루소에 따르면 대표자에게 넘겨줄 수 없다.
- 소극적 교육
- 『에밀』에서, 초기 교육은 아이를 나쁜 영향과 너무 이른 가르침에서 보호하고 경험과 자연이 가르치게 해야 한다는 생각.
기록
- 1712년 — 6월 28일 제네바에서 태어남. 며칠 뒤 어머니 사망.
- 1728년 — 제네바를 떠나 바랑 부인을 만나고, 토리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
- 1742년 — 파리에 와서 과학 아카데미에 새로운 악보 표기법을 제출.
- 1750년 — 『학문예술론』이 디종 아카데미 현상 공모에서 수상.
- 1752년 —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가 퐁텐블로에서 루이 15세 앞에서 공연됨.
- 1755년 — 『인간 불평등 기원론』 출간.
- 1761년 — 『신엘로이즈』가 베스트셀러가 됨.
- 1762년 — 『사회계약론』과 『에밀』 출간. 파리와 제네바에서 단죄되어 도피.
- 1766년 — 데이비드 흄과 영국으로 건너감. 우정은 공개적 불화로 끝남.
- 1778년 — 7월 2일 에름농빌에서 사망.
- 1782년 — 『고백록』 제1부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 사후 출간됨.
- 1794년 — 혁명기에 유해가 파리 팡테옹으로 이장됨.
용어 풀이
- 계몽주의
- 이성, 전통 비판, 과학, 개혁을 강조한 18세기 유럽의 지적 운동.
- 『백과전서』
-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편집한(1751년부터) 방대한 프랑스 백과사전으로 계몽주의의 상징. 루소는 음악과 정치경제에 관한 항목을 썼다.
- 자연 상태
- 정부나 사회가 없다면 인간이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해 보는 사고 실험. 홉스, 로크, 루소가 사용했다.
- 주권자
- 루소에게서는 왕이 아니라 입법자로서 함께 행동하는 시민 전체.
- 제네바 공화국
- 루소가 태어난 독립 칼뱅파 도시국가. 루소는 이곳 시민을 이상화했다가 뒤에 비판했다.
- 시민 종교
- 『사회계약론』에서 법에 대한 충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최소한의 공적 신앙.
- 서간체 소설
- 『신엘로이즈』처럼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설.
- 팡테옹
- 혁명 이후 프랑스의 위인들을 안장하는 곳으로 쓰이는 파리의 건물.
묻고 답하기
루소는 사람들이 숲으로 돌아가 살아야 한다고 했나요?
아니요.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흔한 오해였습니다. 볼테르는 루소의 책을 읽으면 네 발로 걷고 싶어진다고 비꼬기도 했지요. 루소는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는 사회가 인간 본성에 무엇을 덧붙였는지 보여 주어 더 나은 제도를 만들 수 있게 하려고 자연 상태를 이용했습니다.
루소는 프랑스 사람인가요?
그는 독립 공화국이던 제네바의 시민으로 태어났고, 몇몇 저작에는 ‘제네바 시민’이라고 서명했습니다. 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성인기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기 때문에 보통 프랑스 문학과 사상의 일부로 다룹니다.
정말 자기 아이들을 버렸나요?
네. 그 자신의 『고백록』에 따르면 테레즈 르바쇠르와의 사이에서 다섯 아이를 낳았고, 모두 생존율이 낮던 파리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그는 여러 변명을 내놓았고 훗날 후회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아이 기르기를 다룬 『에밀』의 저자가 그랬다는 모순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비판의 대상입니다.
일반의지와 다수결은 어떻게 다른가요?
루소에게 투표는 일반의지를 알아내는 방법이지 일반의지 자체가 아닙니다. 일반의지는 공동선을 지향하지만 다수는 틀릴 수도 있고 파벌에 휘둘릴 수도 있습니다. 그는 시민들이 충분히 알고, 공동선을 생각하며, 조직된 파벌로 나뉘지 않을 때에만 투표가 일반의지를 믿을 만하게 드러낸다고 보았습니다.
칸트는 왜 루소의 초상화를 걸어 두었나요?
동시대인들은 칸트의 서재에 걸린 유일한 그림이 루소의 초상이었다고 전합니다. 칸트는 루소가 학문에 대한 자신의 자만을 바로잡고 평범한 사람들을 존중하도록 가르쳤다고 썼으며, 그 영향은 칸트의 도덕철학에 드러납니다.
루소는 민주주의자인가요, 전체주의의 선구자인가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습니다. 인민주권과 평등한 법에 대한 그의 주장은 민주주의 이론의 토대입니다. 그러나 ‘자유롭도록 강제된다’는 구절이나 시민 종교 때문에 탈몬과 벌린 같은 비판자들은 권위주의의 위험을 보았습니다. 최근의 많은 연구자는 그의 주된 관심이 개인에 의한 지배를 막는 데 있었다고 봅니다.
처음 읽는다면 무엇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짧고 그의 진단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이어서 『사회계약론』의 제1·2권과 『에밀』의 앞부분을 읽으면 자연스럽고, 『고백록』의 첫머리는 그의 문학적 목소리를 보여 줍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Jean Jacques Rousseau.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Rousseau, Jean-Jacques.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 Jean-Jacques Rousseau. Wikipedia
- 장자크 루소. 위키백과
- Discourse on Inequality. Wikipedia
- Emile, or On Education. Wikipedia
- Confessions (Rousseau). Wikipedia
- Leo Damrosch, Jean-Jacques Rousseau: Restless Genius. Houghton Mifflin, 2005
- Frederick Neuhouser, Rousseau’s Theodicy of Self-Love: Evil, Rationality, and the Drive for Recogn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함께 보기
- 볼테르풍자와 종교 비판, 부당한 재판에 맞선 활동으로 알려진 프랑스 계몽사상가이자 작가.
- 이마누엘 칸트지식, 도덕적 의무, 판단에 관한 논의로 근대 철학의 방향을 바꾼 프로이센 철학자.
- 바스티유 습격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이 요새 겸 감옥을 점령한 사건으로, 프랑스 혁명 초기의 상징이 되었다.
- 미국 독립선언서1776년 7월 4일 대륙회의가 채택한 문서로, 영국에 대한 13개 식민지의 독립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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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역사, 사유, 사회 제도를 연결해 설명하며 후대 철학에 큰 영향을 준 독일 철학자.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중급
『사회계약론』과 일반의지
『사회계약론』(1762)은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에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 루소는 사람들을 자연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엇이 정치 생활의 사슬을 정당하게 만들 수 있는지, 곧 사람들이 법 아래 살면서도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 대답이 사회계약이다. 각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모든 권리를 공동체 전체에 내놓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조건으로 그렇게 한다. 조건이 모두에게 같으므로 누구도 그 조건을 남에게 무겁게 만들 이유가 없다. 이렇게 해서 시민 전체로 이루어진 ‘주권자’가 생겨난다. 시민이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만든 법에 복종할 때, 그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핵심 개념은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다. 일반의지는 개인들의 사적 바람을 단순히 합친 것, 루소가 ‘전체의지’라고 부른 것과 다르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한에서의 시민들의 의지다. 법은 일반적이어야 하고, 곧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며, 인민 전체에게서 나와야 한다. 그래서 루소는 주권은 대표될 수 없다고 보았다. 선출된 대리인이 일을 맡을 수는 있지만 법을 승인하는 것은 인민 자신이어야 한다. 그는 영국인들이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선거 기간에만 자유롭다고 꼬집었다.
이 책에는 많은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대목도 있다. 일반의지에 따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유롭도록 강제될’ 수 있다는 말, 한 민족을 세우려면 거의 초인적인 ‘입법자’가 필요할 수 있다는 말, 몇 가지 단순한 교리를 가진 ‘시민 종교’가 시민의 충성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말이 그렇다. 루소가 구상한 이상은 그가 이상화한 제네바처럼 작고 비교적 평등한 공화국을 위한 것이었지, 거대한 근대 국가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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