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피렌체 코덱스

Historia general (universal) de las cosas de Nueva España 『누에바에스파냐 문물 일반사』 — 나우아틀어·에스파냐어 필사본, 피렌체 메디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소장(Med. Palat. 218–220)

약 1545–1577년 · 멕시코시티 틀라텔롤코 (누에바에스파냐)

한 문장으로

피렌체 코덱스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과 함께 일한 나우아 학자·원로·화가들이 나우아틀어와 에스파냐어를 나란히 쓰고 2,500점 가까운 그림을 그려 넣어 1575~1577년 멕시코 틀라텔롤코에서 완성한, 16세기 나우아(아스테카) 생활의 백과사전이다.

피렌체 코덱스
이미지: Sailko · CC BY 3.0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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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커다란 사전 세 권을 합친 만큼 두꺼운 그림책을 떠올려 보세요. 그 책은 한 민족의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해요. 신, 축제, 이야기, 왕, 상인, 의사, 주변의 동물과 식물, 그리고 그들의 도시가 정복당한 무서운 전쟁까지요. 그것이 바로 피렌체 코덱스예요.

이 책은 약 450년 전 멕시코에서 만들어졌어요. 1521년 에스파냐 군인들이 아스테카의 큰 도시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하고 몇십 년 뒤였지요.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이라는 에스파냐 수도사는 나우아틀어를 쓰는 나우아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그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사아군 혼자서는 할 수 없었어요. 그는 에스파냐 사람들이 오기 전 시절을 기억하는 나우아 할아버지들에게 아는 것을 들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나우아틀어·에스파냐어·라틴어를 모두 쓸 줄 아는 젊은 나우아 학자들이 그 말을 받아 적었어요. 나우아 화가들은 이천 점이 넘는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렸어요.

책의 각 쪽에는 두 단이 있어요. 오른쪽은 나우아틀어, 왼쪽은 에스파냐어예요. 에스파냐어가 늘 한 글자씩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어서, 두 쪽이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할 때도 있어요. 그림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줘요.

이 책은 에스파냐로 보내졌다가 나중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도서관에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피렌체 코덱스’라고 불러요. ‘코덱스’는 손으로 쓴 책을 가리키는 옛말이에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인터넷으로 모든 쪽을 볼 수 있어요. 지금도 나우아틀어를 쓰는 멕시코의 나우아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그 일부는 오늘날의 나우아틀어로 요약되기도 했어요.

한눈에 보기

제작
1545/1558년경부터 조사, 최종 필사본은 1575~1577년 틀라텔롤코(오늘날 멕시코시티)의 산타크루스 학원에서 정서
만든 사람들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1499년경~1590)과 나우아 원로들, 3개 언어를 쓰는 나우아 학자들(안토니오 발레리아노, 알론소 베헤라노, 마르틴 하코비타, 페드로 데 산부에나벤투라 등), 필경사와 화가들
언어
나우아틀어(오른쪽 단)와 에스파냐어(왼쪽 단). 에스파냐어는 번역이라기보다 요약이나 해설인 경우가 많음
분량
12권, 약 2,400~2,500쪽. 오늘날 세 책으로 제본
그림
그림과 장식 요소 2,500점 가까이(한 집계로 그림 1,844점과 장식 628점). 그 절반가량이 자연사를 다룬 제11권에 있음
소장처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공개
세계디지털도서관 디지털화(2012), 게티 연구소의 ‘디지털 피렌체 코덱스’(2023)
의의
정복 이전 나우아 문화, 그리고 나우아 쪽에서 본 정복에 관한 가장 풍부한 단일 사료

쉬움

피렌체 코덱스란 무엇인가

피렌체 코덱스는 1540년대부터 1577년 사이 식민지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손으로 쓴 책, 곧 코덱스다. 정식 제목은 『누에바에스파냐 문물 일반사(Historia general de las cosas de Nueva España)』이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이 이끌고 나우아 원로·학자·화가들과 함께 수행한 거대한 연구 사업의 가장 완전한 판본이다.

주제는 멕시코 중부의 나우아틀어를 쓰는 나우아 사람들, 흔히 ‘아스테카’라 불리는 제국을 다스린 메시카를 포함한 이들의 문화다. 그들의 신과 의례, 역법, 미래에 관한 믿음, 연설과 도덕 가르침, 통치자와 귀족, 상인과 장인, 몸과 질병, 동물·식물·광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스파냐의 정복을 다룬다.

책은 두 단으로 쓰였다. 오른쪽은 나우아틀어, 왼쪽은 에스파냐어이고, 본문 사이사이에 그림이 들어가 있다. 원주민의 증언과 원주민의 글, 원주민의 그림을 유럽식 책의 형식 안에 담았기 때문에, 많은 학자는 이 책을 진정한 공동 저작으로 보며 ‘메스티소의 책’이라 부르기도 한다.

필사본은 16세기부터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도서관, 곧 메디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에 보관되어 왔기 때문에 피렌체 코덱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1][4][5]

쉬움

한 세계를 담은 열두 권

코덱스는 열두 권으로 나뉜다. 제1권은 신들, 제2권은 역법과 큰 축제, 제3권은 신들의 기원, 제4·5권은 점술과 징조, 제6권은 수사학·도덕철학·신학으로, ‘원로들의 말’이라는 뜻의 격식 있는 연설 우에우에틀라톨리가 실려 있다. 제7권은 해·달·별과 시간의 측정을 다룬다.

제8~10권은 사회로 눈을 돌린다. 왕과 귀족, 상인, 그리고 가족 구성원·장인·치료사를 비롯한 온갖 사람들, 나아가 몸과 질병까지 다룬다. 디지털판에서 ‘숲, 정원, 과수원’이라 이름 붙인 제11권은 동물·새·곤충·물고기·나무·약초·돌·색깔을 다룬 자연사로, 코덱스 전체 그림의 절반가량이 여기 있다.

제12권은 성격이 다르다. 테노치티틀란, 특히 틀라텔롤코의 나우아 사람들의 관점에서 쓴 멕시코 정복의 역사다. 재앙을 예고했다고 전하는 징조들로 시작해, 에스파냐인의 도착, 군주 목테우소마와의 만남, 1520년 톡스카틀 축제의 학살, 천연두 유행, 그리고 1521년에 끝난 긴 포위전을 따라간다.

열두 권 전체는 로마 작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같은 백과사전에 견주어지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이 묘사되는 사람들 자신의 지식에서 나왔다는 점이 다르다.

[4][1][5]

쉬움

누가 만들었나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은 1499년 무렵 에스파냐 레온 지방의 사아군에서 태어나 살라망카 대학에서 공부하고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가 1529년 누에바에스파냐에 왔다. 나우아틀어를 익혔고 1536년 원주민 귀족 청년들을 위해 틀라텔롤코에 새로 세운 산타크루스 황립 학원의 라틴어 교사가 되었다. 그는 60년 넘게 멕시코에 살다가 1590년 세상을 떠났다.

이 학원이 결정적이었다. 학생들은 나우아틀어·에스파냐어·라틴어에 능통한 학자가 되었다. 아스카포찰코의 안토니오 발레리아노, 콰우티틀란의 알론소 베헤라노, 틀라텔롤코의 마르틴 하코비타, 페드로 데 산부에나벤투라 등 여러 사람이 여러 해 동안 사아군과 함께 정보를 모으고 나우아틀어 본문을 쓰고 초고를 고쳤다. 게티 연구소의 한 논고가 말하듯, 수도사들은 교사였지만 학생들에게서 배우기도 했다.

정보 자체는 주로 나우아 원로들에게서 나왔다. 정복 이전이나 직후에 자라 옛 방식을 잘 안다고 존중받던 나이 많고 지위 있는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사아군의 질문에 답했는데, 흔히 전통적인 그림 문서를 참고했고 답을 여럿이 함께 토의했다.

그림은 필경사이자 화가인 틀라쿠일로 전통을 이은 나우아 화가들이 그렸다. 학자들은 스물두 명가량의 서로 다른 솜씨를 구별해 냈다. 역사가 발타사르 브리토 과다라마의 말처럼, 이 나우아 저자들이 없었다면 사아군의 저작은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2][6][1]

중급

어떻게 만들었나: 면담에서 완성본까지

사업은 수십 년이 걸렸다. 1558~1561년 무렵 테페풀코(오늘날 이달고주)에서 사아군과 조수들은 원로들을 면담하고 그 답을 흔히 그림과 함께 기록했다. 이 초기 원고는 지금도 남아 있으며, 멕시코 역사가 프란시스코 델 파소 이 트론코소가 붙인 이름에 따라 『프리메로스 메모리알레스(첫 기록)』라고 부른다.

1561년 무렵부터 사아군은 틀라텔롤코에서 새로운 원로들과 함께 자료를 검토하고 늘렸고, 나중에 멕시코시티에서 이를 열두 권으로 정리했다. 오늘날 마드리드에 있는 여러 중간 원고는 본문이 어떻게 고쳐졌는지 보여 준다. 사아군은 서로 다른 장소와 제보자의 이야기를 비교해 신뢰성을 가늠했는데, 그가 민족지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최종 정서본인 피렌체 코덱스는 1575~1577년 일종의 공방에서 만들어졌다. 필경사들이 먼저 나우아틀어 단을 쓰고, 이어 에스파냐어 단을 쓰면서 그림 자리를 비워 두면 화가들이 채웠다. 제12권 마지막 쪽들에는 끝내 그려지지 않은 빈자리가 있다. 화가들에게 시간이 모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작업은 재앙 한가운데서 이루어졌다. 1576년 나우아틀어로 ‘코콜리스틀리’라 부른 대역병이 덮쳤다. 사아군은 제10권에서 그해의 역병 때문에 학원에 거의 아무도 남지 않았고, 거의 모두 죽거나 병들어 떠났다고 적었다. 완성된 코덱스는 살아남은 이들이 만든 기록이기도 하다.

[2][3][5][6]

중급

한 쪽에 담긴 세 이야기: 나우아틀어, 에스파냐어, 그림

나우아틀어 단과 에스파냐어 단은 서로 다른 독자를 위해 쓰였다. 에스파냐어는 에스파냐 궁정과 프란치스코회 관리들을 위한 것이었다. 나우아틀어는, 사아군이 서문에서 밝혔듯, 원주민 사이에서 기독교를 가르치고 지탱하는 데 쓸모 있는 것을 멕시코어로 기록하라는 상급자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고, 나우아틀어 실력을 길러야 하는 수도사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두 단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에스파냐어는 나우아틀어를 요약하거나 줄이거나 해설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사아군의 판단을 덧붙인다. 예컨대 제12권에서 1520년 톡스카틀 학살을 다룬 에스파냐어 본문은 몹시 짧고 그 자리를 그림이 채우는 반면, 나우아틀어 단은 상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림은 세 번째 이야기를 이룬다. 말풍선 같은 발화 두루마리, 지명 기호, 색의 상징적 사용 같은 메소아메리카의 관습과 풍경·명암·원근 같은 유럽의 기법이 섞여 있다. 나우아 화가들에게 색은 장식이 아니라 그림이 나타내는 대상을 참으로 현존하게 하는 힘이었다. 어떤 그림은 기독교적 틀을 덧씌우고, 어떤 그림은 본문이 빠뜨린 세부를 간직한다.

게티 연구소의 학자들은 때로는 일치하고 때로는 어긋나는 나우아틀어·에스파냐어·그림 세 이야기를 함께 읽어야만 코덱스를 만든 이들의 의도와 16세기 말 멕시코의 뒤바뀐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5][1]

중급

제12권: 나우아 쪽에서 본 정복

제12권은 『일반사』에서 유일하게 엄밀한 의미의 역사서이며, 에스파냐 정복에 관한 가장 중요한 원주민 기록 가운데 하나다. 1521년 8월 최후의 패배까지 전사들이 버텼던 테노치티틀란의 쌍둥이 도시 틀라텔롤코 사람들의 기억에 바탕을 두었다.

제12권은 에르난 코르테스의 편지나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의 연대기와는 사뭇 다르게 이야기한다. 징조가 불러일으킨 두려움, 에스파냐인과 그들의 말과 개의 낯선 모습, 톡스카틀 축제에서 춤추던 이들의 학살, 통치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을 죽인 천연두, 그리고 긴 포위전의 굶주림과 질병과 싸움을 그린다.

제12권에는 지역 정치도 비친다. 틀라텔롤코 제보자들과 함께 쓴 까닭에 틀라텔롤코 전사들의 용맹을 기리고 테노치티틀란 지도자들에게는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목테우소마를 겁 많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린 것도 중립적 묘사라기보다 정복 뒤 수십 년 동안의 원망과 책임 전가를 반영한 것일 수 있다.

20세기에 제12권은 미겔 레온포르티야의 『패자의 시각(Visión de los vencidos)』(1959)과 제임스 록하트의 『우리 여기 사람들(We People Here)』(1993) 같은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패자의 시각’이라는 관점을 퍼뜨려 정복을 가르치는 방식을 바꾸었다.

[1][5][9][10]

중급

왜 만들었나: 선교, 지식, 기억

사아군이 밝힌 목적은 종교적이었다. 의사가 병을 고치려면 병을 알아야 하듯, 선교사도 그가 우상 숭배라 부른 것을 알아보고 뿌리 뽑으려면 옛 종교를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는 많은 개종이 겉핥기에 그친다고 걱정했고, 가톨릭 신앙이 누에바에스파냐에서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결과물은 선교사용 교본을 훨씬 넘어선다. 코덱스는 기도문, 시적인 연설, 의학 지식, 농업 용어, 수백 가지 동식물의 이름, 깃털 공예 같은 기술의 어휘를 간직한다. 전염병이 인구의 큰 부분을 앗아 가던 시기에 한 언어와 세계를 보는 방식을 그들 자신의 말로 기록했다.

나우아 학자와 원로들에게 참여는 다른 의미였을 수 있다. 일부 학자는 그들이 이 사업을 통해 조상의 기억과 귀족의 품위, 자기 알테페틀(도시국가)의 역사를 지키려 했다고 본다. 동기는 참여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했을 것이다.

식민지 선교의 도구이자 원주민 기억의 그릇이라는 이 이중성이 오늘날 코덱스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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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멕시코에서 피렌체로: 코덱스의 여정

1570년대 에스파냐 당국은 원주민 언어로 원주민 종교를 다룬 글을 의심스럽게 보기 시작했다. 펠리페 2세는 사아군의 저작을 에스파냐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1578년 3월 26일 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아군은 정서본 — 네 책으로 나눈 열두 권 — 을 끝내 프란치스코회 총감 로드리고 데 세케라에게 넘겨 선단 편에 보내도록 했다고 썼다. 그리고 도착하지 않으면 알려 달라고, 그래야 작업이 사라지고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청했다.

필사본은 1578년 무렵 에스파냐 궁정에 닿은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정확히 어떻게 피렌체로 갔는지는 역사가들 사이에 아직 논의 중이다. 아마 16세기가 끝나기 전에 메디치 대공 가문의 수집품이 되었고, 뒷날 메디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지금은 세 책으로 제본되어 있다.

코덱스는 두 세기 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사서 안젤로 마리아 반디니가 1793년 이를 기술했고, 19~20세기에 멕시코·유럽·미국의 학자들이 연구했다. 멕시코 역사가 프란시스코 델 파소 이 트론코소는 20세기 초 사아군 필사본의 복제본을 펴냈고(『프리메로스 메모리알레스』는 1906년), 1979년에는 멕시코 정부의 지원으로 피렌체 코덱스 전체의 컬러 복제본이 나왔다.

나우아틀어 본문의 첫 완역 영어판은 아서 J. O. 앤더슨과 찰스 E. 디블이 1950년부터 1982년까지 열두 부로 펴냈다. 30년이 걸린 사업이었다. 에스파냐어판으로는 앙헬 마리아 가리바이의 판본, 알프레도 로페스 아우스틴과 호세피나 가르시아 킨타나의 판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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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오늘의 코덱스

2012년 세계디지털도서관이 필사본 전체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공개했다. 2023년 게티 연구소는 2017년에 시작한 ‘디지털 피렌체 코덱스’를 열어, 본문과 2,500점 가까운 그림을 에스파냐어·영어 전사·번역과 함께 검색할 수 있게 했다.

디지털판에는 새로운 것도 있다. 나우아 학자 에두아르도 데 라 크루스 크루스가 오늘날 쓰이는 나우아틀어의 한 갈래인 동부 우아스테카 나우아틀어로 만든 장별 요약과 음성 녹음이다. 어떤 의미에서 코덱스가 처음 쓰인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되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나우아 공동체와 멕시코 전체에게 코덱스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의 일부다. 신과 축제, 타말과 토르티야 같은 음식, 아홀로틀 같은 동물의 그림이 학교와 박물관, 대중문화에 등장한다.

인류학·역사학·언어학·미술사·식물학·의학 연구자들에게 코덱스는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사료다. 다만 누가 말하고, 누가 썼으며, 누구를 위해 썼는지 주의하며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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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학계의 논쟁: 저자, 목소리, ‘민족지의 아버지’

사아군은 체계적인 질문지, 여러 제보자의 활용, 기록의 교차 검증 때문에 흔히 ‘인류학의 아버지’ 또는 아메리카 민족지의 아버지로 불린다. 비판자들은 이 호칭이 그의 선교 목적과 나우아 협력자들의 작업을 가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질문은 유럽의 범주로 짜였다. 예컨대 신 → 인간 → 자연 순으로 권을 배열한 것은 중세 백과사전을 따른 것이며, 이런 범주가 원로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의 틀을 정했다.

저자 문제는 핵심 쟁점이다. 디지털 피렌체 코덱스를 비롯한 최근 연구는 코덱스를 사아군과 함께 안토니오 발레리아노, 알론소 베헤라노, 마르틴 하코비타, 페드로 데 산부에나벤투라, 디에고 데 그라도, 보니파시오 막시밀리아노, 마테오 세베리노 등의 공동 저작으로 표기한다. 나우아틀어 본문의 얼마만큼이 원로들 자신의 말이고, 얼마만큼이 학생들의 편집이며, 얼마만큼이 사아군의 지시인지는 논쟁 중이며 장마다 다를 것이다.

정복 이전 종교에 관한 기술의 신뢰성도 논쟁거리다. 제보자들은 정복 수십 년 뒤, 옛 종교를 없애려는 수도사에게, 그 종교를 믿으면 처벌받을 수 있는 식민지 사회에서 말하고 있었다. 어떤 묘사는 이상화되었고, 어떤 묘사는 기독교 관념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학자들은 고고학, 정복 이전 코덱스, 다른 식민지 사료와 비교해 그 주장을 검증한다.

제12권은 그 나름의 질문을 던진다. 틀라텔롤코의 관점, 목테우소마의 묘사, 징조 이야기는 정복 뒤의 해석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사아군 자신이 1585년 정복 이야기의 개정판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가 앞선 본문의 일부를 불편하게 여겼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제12권을 투명한 목격담이 아니라 사건 한 세대 뒤에 구성된 원주민의 역사 해석으로 읽는다.

[2][1][6][5][9]

심화

증거와 방법: 식민지 필사본 읽기

오늘날 코덱스 연구는 문헌학·미술사·재료 분석을 함께 쓴다. 문헌학자들은 피렌체 코덱스의 나우아틀어를 마드리드의 앞선 원고들과 비교해 본문의 수정 과정을 추적한다. 언어학자들에게 코덱스는 고전 나우아틀어 어휘와 문법의 주요 자료다.

미술사학자들은 그림의 양식을 분석해 화가 개개인을 구별하고 안료를 연구했다. 디아나 마갈로니 케르펠이 이끈 연구는 화가들이 메소아메리카 색료와 유럽 재료를 함께 썼고 색이 상징적 의미를 지녔음을 보여 주었다. 베레니스 가유맹이 집계한 그림 수 — 그림 1,844점과 장식 요소 628점, 모두 2,472점 — 는 그림이 이 사업에서 얼마나 중심이었는지 보여 준다.

필사본의 미완성 쪽, 지운 자국, 필체의 변화는 1576년 역병을 포함한 제작 여건을 드러낸다. 그 시기 유골에 대한 과학 연구는 코콜리스틀리 유행 가운데 하나가 살모넬라의 한 종류 때문이었을 수 있다고 제안해, 코덱스의 질병 묘사가 현대 연구와 맞닿는 지점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고해상도 촬영, 검색 가능한 전사, 여러 언어의 그림 태그, IIIF 매니페스트 같은 디지털 방법은 인쇄본으로는 불가능했던 규모로 본문과 그림을 함께 연구하게 하고, 나우아틀어 화자들을 해석에 참여시킬 수 있게 한다.

[5][7][1]

핵심 개념

공동 저작
코덱스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와 나우아 원로, 3개 언어를 쓰는 나우아 학자, 화가들이 함께 만들었으며, 점점 더 이들 모두의 저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 이야기
나우아틀어 본문, 에스파냐어 본문, 그림은 겹치면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므로 함께 읽어야 한다.
민족지와 선교
사업은 선교사가 옛 종교를 뿌리 뽑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바로 그 종교와 문화의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패자의 시각
제12권은 에스파냐의 서술에 도전하는 나우아의 정복 이야기를 전하지만, 그 나름의 지역적·정복 이후의 관점을 담고 있다.
백과사전적 지식
코덱스는 종교·사회·언어·의학·자연사를 아울러 여러 학문의 기초 사료가 된다.
생존과 기억
1576년 역병 속에 완성된 코덱스는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나우아 지식의 기념비이기도 하다.
공동체로의 귀환
오늘날의 나우아틀어 요약을 담은 디지털판은 코덱스를 그 언어의 화자들에게 되돌려 준다.

기록

  1. 1521년 — 테노치티틀란과 틀라텔롤코가 에스파냐군과 동맹 원주민 세력에게 함락된다.
  2. 1529년 —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이 누에바에스파냐에 도착한다.
  3. 1536년 — 틀라텔롤코에 산타크루스 황립 학원이 세워지고 사아군이 라틴어를 가르친다.
  4. 1558년 — 테페풀코에서 조사가 시작되어(1561년까지) 『프리메로스 메모리알레스』가 만들어진다.
  5. 1561년 — 사아군이 틀라텔롤코에서 새 원로들과 옛 제자들과 함께 작업을 이어 간다.
  6. 1575년 — 그림을 곁들인 2개 언어 최종 필사본의 정서가 시작된다(1577년까지).
  7. 1576년 — 작업 도중 대역병(코콜리스틀리)으로 학원이 텅 빈다.
  8. 1578년 — 사아군이 펠리페 2세에게 열두 권을 에스파냐로 보내도록 넘겼다고 보고한다.
  9. 1590년 — 사아군이 멕시코시티에서 세상을 떠난다.
  10. 1793년 — 안젤로 마리아 반디니가 피렌체에서 필사본을 기술한다.
  11. 1950년 — 앤더슨과 디블이 나우아틀어 본문의 영어 번역을 펴내기 시작한다(1982년 완간).
  12. 2023년 — 게티 연구소가 ‘디지털 피렌체 코덱스’를 공개한다.

용어 풀이

코덱스
두루마리가 아닌, 쪽으로 된 손으로 쓴 책. 정복 이전과 식민지 시대의 메소아메리카 문서를 모두 가리킨다.
나우아틀어
메시카를 포함한 멕시코 중부 나우아 사람들의 언어. 지금도 백만 명 넘게 쓴다.
메시카
테노치티틀란과 틀라텔롤코의 사람들. 흔히 ‘아스테카’라 불리는 제국의 지배자.
틀라텔롤코
테노치티틀란의 쌍둥이 도시. 큰 시장이 있었고, 뒤에 코덱스가 완성된 산타크루스 학원이 들어섰다.
틀라쿠일로
그림 문서를 만드는 훈련을 받은 나우아의 필경사 겸 화가.
우에우에틀라톨리
‘원로들의 말’. 훈계와 의례의 격식 있는 연설로, 제6권에 실려 있다.
프리메로스 메모리알레스
1558~1561년 무렵 테페풀코에서 만든 사아군 조사의 초기 원고.
코콜리스틀리
나우아틀어로 ‘역병’. 1576년의 것을 포함해 16세기 멕시코를 휩쓴 대역병을 가리킨다.
알테페틀
고유의 땅·통치자·수호신을 가진 나우아의 도시국가 또는 공동체.
산타크루스 학원
원주민 귀족 청년에게 라틴어와 유럽 학문을 가르치려고 1536년 틀라텔롤코에 세운 학원.

묻고 답하기

멕시코의 책인데 왜 ‘피렌체’ 코덱스인가요?

필사본이 수백 년 동안 메디치 가문의 수집품에서 비롯된 이탈리아 피렌체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왔기 때문이에요.

누가 썼나요? 수도사인가요, 나우아 사람들인가요?

둘 다예요. 사아군이 사업을 이끌었지만, 지식은 나우아 원로들이 주었고, 본문의 많은 부분은 3개 언어를 쓰는 나우아 학자들이 썼고, 그림은 나우아 화가들이 그렸어요. 오늘날 학자들은 공동 저작으로 봐요.

에스파냐어 단과 나우아틀어 단은 똑같나요?

아니요. 에스파냐어는 요약이나 해설인 경우가 많고, 빠뜨리거나 수도사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해요. 나우아틀어가 대개 더 자세해요.

그림은 몇 점이나 있나요?

그림과 장식 요소가 2,500점 가까이 있어요. 그 절반가량은 동물·식물·광물을 다룬 제11권에 있어요.

직접 볼 수 있나요?

네. 세계디지털도서관의 이미지와 게티 연구소의 ‘디지털 피렌체 코덱스’로 필사본 전체를 인터넷에서 볼 수 있어요.

정복의 사료로서 제12권은 얼마나 믿을 만한가?

나우아의 관점으로서 매우 귀중하지만, 1521년 수십 년 뒤 틀라텔롤코 제보자들이 구성한 것이어서 그들의 기억과 지역적 충성, 정복 이후의 해석을 담고 있다. 역사가들은 에스파냐 측과 다른 원주민 사료와 함께 읽는다.

사아군은 나우아 문화에 호의적이었나?

태도는 복합적이었다. 나우아의 언어·수사·지식을 높이 샀지만 그들의 종교는 없애야 할 우상 숭배로 여겼다. 코덱스에는 감탄과 선교 목적이 함께 담겨 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Florentine Codex. Wikipedia
  2. Bernardino de Sahagún. Wikipedia
  3. Primeros Memoriales. Wikipedia
  4. Kim N. Richter and Alicia Maria Houtrouw (eds.), Digital Florentine Codex. Getty Research Institute, 2023
  5. Kim N. Richter and Alicia Maria Houtrouw, Introducing the Florentine Codex (1575–77) and Its Three Narratives. Getty Research Institute, Digital Florentine Codex, 2023
  6. Baltazar Brito Guadarrama, Nahua Informants, Students, Scribes, and Artists: The Other Authors of the Florentine Codex. Getty Research Institute, Digital Florentine Codex, 2023
  7. Manuel Aguilar-Moreno, The Itinerant Life of the Florentine Codex. Getty Research Institute, Digital Florentine Codex, 2023
  8. Bernardino de Sahagún; trans. Arthur J. O. Anderson and Charles E. Dibble, Florentine Codex: General History of the Things of New Spain. School of American Research / University of Utah Press, 1950–1982
  9. James Lockhart, We People Here: Nahuatl Accounts of the Conquest of Mexico.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3
  10. Miguel León-Portilla, Visión de los vencidos: Relaciones indígenas de la conquista. 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 1959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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