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순디아타 서사시

Sunjata / Sundiata / Son-Jara (만데 구전 서사시. 캉가바에서는 ‘왕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만사 지긴으로 낭송된다)

약 1235년 · 캉가바, 만딩 중심지 (니제르강 상류, 말리 남서부)

AI 작성 · AI 사실 검수

Claude가 쓰고 Codex(gpt-6.1-sol)가 공개 출처와 대조해 사실·연대·인용과 영어·한국어판을 독립 검수했습니다. 사람 전문가의 검토는 거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AI 검수: 2026-10-03. 찾아서 고친 문제 11건.

한 문장으로

『순디아타 서사시』는 서아프리카 만데 사람들의 위대한 구전 서사시로, 대대로 이어지는 음유시인 젤리(그리오)가 수백 년 동안 지켜 왔으며, 걷지 못하던 소년이 자라 마술사 왕 수마오로 칸테를 물리치고 13세기에 말리 제국을 세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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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서사시는 아주 먼 옛날, 서아프리카 니제르강가의 초원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작은 왕자가 태어났다고 들려줘요. 다른 아이들은 뛰어놀았지만 순디아타는 땅바닥을 기어 다녔고, 사람들은 그와 엄마 소골론을 비웃었지요.

이야기 속에서 어느 날 엄마가 모욕을 당하자 순디아타는 더는 참지 않기로 했어요. 몸을 일으키려고 쇠막대를 달라고 했지요. 쇠막대는 그의 무게에 휘어 버렸지만, 마침내 그는 두 발로 섰어요. 유명한 이야기 하나에서는 그 뒤에 커다란 바오바브나무를 통째로 뽑아 엄마에게 가져다주기까지 해요! 그때부터 순디아타는 튼튼하게 자라 용감한 사냥꾼이자 지도자가 되었답니다.

질투심 많은 이복형의 가족이 해치려 했기 때문에 순디아타는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어야 했어요. 그사이 마법을 부린다는 힘센 왕 수마오로가 그의 고향을 차지했지요. 사람들은 순디아타를 데려오려고 심부름꾼을 보냈어요. 순디아타는 친구들과 군대를 모으고, 수마오로의 숨은 약점을 알아내 큰 전투에서 이겼어요. 그러고는 작은 만딩 왕국들을 하나로 묶어 말리라는 큰 제국의 첫 임금이 되었답니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책에 적힌 것이 아니에요. 젤리, 또는 그리오라고 부르는 특별한 이야기꾼들이 음악에 맞춰 소리 내어 들려주었지요. 그 집안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이야기를 물려주고, 지금도 말리·기니·세네갈·감비아와 그 이웃 나라들에서 이 노래를 불러요.

말리의 캉가바라는 마을에서는 7년마다 카마블롱이라는 작고 둥근 성스러운 집에 새 짚 지붕을 얹어요. 이 축제 때 가까운 마을의 그리오들이 순디아타의 역사를 들려주지요. 아주 특별한 축제라서 유네스코가 온 인류의 보물로 정해 두었답니다.

한눈에 보기

무엇
만데(만딩) 사람들의 건국 구전 서사시. 말리 제국을 세운 인물로 기억되는 순디아타 케이타의 이야기
배경
서아프리카 니제르강 상류(오늘날 말리 남부와 기니 북동부), 13세기 초·중엽
핵심 사건
전통적으로 1235년 무렵으로 보는 키리나 전투. 순디아타가 소소의 수마오로 칸테를 물리친다
전승자
대대로 이어지는 음유시인 젤리(복수 젤리우, 프랑스어로 ‘그리오’). 특히 쿠야테·디아바테 같은 집안
언어
만데어, 특히 마닝카어(말링케어)와 만딩카어. 코라·발라폰 같은 악기와 함께 공연한다
기록
19세기 말부터 기록·출판(가장 이른 기록은 1889년). D. T. 니아네가 1960년에 펴낸 프랑스어 산문판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다
살아 있는 유산
캉가바 카마블롱의 7년 주기 지붕 갈이 의식과 만덴 헌장. 둘 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다

쉬움

『순디아타 서사시』란 무엇인가

『순디아타 서사시』(Sunjata, Son-Jara, Soundjata 등으로도 적는다)는 서아프리카 만데어권에서 전문 음유시인들이 소리 내어 들려주는 긴 이야기다. 주인공 순디아타 케이타는 13세기에 니제르강 상류의 작은 만딩 족장국들을 하나로 묶고 말리의 첫 만사, 곧 황제가 된 인물로 기억된다. 그가 세웠다고 전하는 제국은 훗날 황금과 교역으로 부유해져 이슬람 세계 전역에 이름을 떨쳤다.

이 서사시는 인쇄된 소설처럼 고정된 하나의 텍스트가 아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여러 마을과 나라의 서로 다른 음유시인들이 펼친 수백 번의 공연 속에 존재한다. 몇 분 동안 한 대목만 찬미하는 공연도 있고, 밤을 꼬박 새우는 공연도 있다. 19세기 말부터 학자들이 수십 가지 판본을 글로 옮겼지만, 그 하나하나는 원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전통의 한 장면을 찍은 사진과 같다.

이 서사시는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용기와 운명의 이야기이면서, 만데 씨족들이 서로 어떻게 이어져 있고 어느 집안이 어느 집안을 찬양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국가들, 특히 말리와 기니에서는 나라의 기원을 말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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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말의 수호자: 젤리와 그리오

서사시를 공연하는 사람들을 만데어로 젤리(복수 젤리우)라 하고, 프랑스어와 영어로는 흔히 그리오라고 부른다. 이들은 말과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세습 집안에 속한다. 전통적으로 서사시를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것은 이들뿐이다. 젤리는 역사가이자 계보 전문가이고, 음악가이자 조언자이며, 남을 대신해 어려운 말을 전하는 중재자이기도 하다.

반주는 지역과 자리에 따라 다르다. 가장 잘 알려진 악기는 줄이 스물한 개쯤 되는 하프 코라, 아래에 박 공명통을 단 나무 실로폰 발라폰, 그리고 줄을 뜯어 연주하는 류트 은고니다. 이를테면 켈라에서는 은고니 연주자 두 사람이 낭송을 받쳐 주기도 한다. 음유시인은 리듬 있는 낭송과 노래로 부르는 찬가, 말로 하는 풀이를 오가고, 청중은 화답하며 흥을 돋운다.

몇몇 집안은 특별한 권위를 지닌다. 이야기 속에서 순디아타의 아버지는 어린 왕자에게 발라 파세케라는 그리오를 붙여 주는데, 쿠야테 집안은 그를 자기 조상으로 여긴다. 기니 니아가솔라의 쿠야테 집안은 지금도 순디아타의 적 수마오로의 것이었다고 전하는 성스러운 발라폰 소소발라를 지키고 있다. 말리에서는 켈라 마을의 디아바테 집안이 가장 권위 있는 공연자로 꼽히는데, 이웃한 캉가바의 카마블롱 의식에서 서사시를 낭송하기 때문이다.

서사시는 성(자무)과 찬가를 통해 씨족의 역사를 설명하기 때문에 지금도 공적인 생활을 이끈다. 만데어를 쓰는 사람은 상대의 성만 들어도 그 사람에게 어떤 조상과 어떤 대목이 딸려 있는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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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이야기 1: 소골론과 걷지 못하는 아이

많은 판본은 조상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떤 판본은 순디아타의 부계를 예언자 무함마드의 교우 빌랄리(빌랄)까지 거슬러 올라가 만데 왕실을 이슬람 세계와 잇는다. 이어 물소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괴물 물소가 도 땅을 휩쓸자, 이를 잡은 두 사냥꾼이 상으로 소골론이라는 젊은 여인을 얻는다. 그녀는 못생기고 등이 굽은 여인으로 그려진다. 앞서 사냥꾼이자 점쟁이인 사람이 만딩의 왕 나레 마간 코나테에게 못생긴 낯선 여인이 위대한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고 예언했기에, 사냥꾼들이 소골론을 궁정에 데려오자 왕은 그녀와 혼인한다.

소골론의 아들 순디아타가 태어나지만, 그는 여러 해 동안 서지도 걷지도 못한다.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자 이복형 단카란 투만의 어머니인 사수마 베레테는 소골론과 그 아이를 조롱한다. 늙은 왕이 죽고 단카란 투만이 왕위에 오르자 소골론이 받는 모욕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전환점은 아프리카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다. 어머니가 바오바브 잎 몇 장 때문에 수모를 당하자, 순디아타는 대장장이들에게 쇠막대를 청한다. 쇠막대는 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이야기꾼에 따라 휘기도 하고 부러지기도 한다), 어떤 판본에서는 대신 나뭇가지에 기대어 마침내 일어선다. 니아네의 판본에서는 그 뒤 바오바브나무를 통째로 뽑아 어머니의 집 앞에 심어 모욕을 되갚는다. 두 발로 선 그는 뛰어난 사냥꾼이 되고, 그 힘은 경쟁자들을 두렵게 한다.

이 극적인 이야기 뒤에는 가족에 관한 만데의 생각이 깔려 있다.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른 자식들 사이의 갈등을 파덴야(‘아버지-자식 됨’)라 하며, 이는 경쟁과 야망을 뜻한다. 어머니가 같은 자식들 사이의 의리는 바덴야(‘어머니-자식 됨’)라 하며, 협력을 뜻한다. 서사시는 사회에 이 둘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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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이야기 2: 망명, 수마오로 칸테, 그리고 키리나

사수마의 적대에 위협을 느낀 소골론은 아이들을 데리고 만딩을 떠난다. 이들은 이 궁정 저 궁정을 떠돌다 마침내 북쪽의 메마 왕국에 몸을 의탁하고, 메마의 왕은 젊은 망명객을 아껴 군대의 지휘를 맡긴다. 이 시절 순디아타는 노련한 전사로 자란다.

그사이 만딩은 소소의 왕 수마오로(수망구루) 칸테의 손에 들어간다. 서사시는 그를 대장장이 왕이자 보통 무기로는 해칠 수 없는 주술의 대가로 그린다. 그가 만딩의 족장국들을 짓밟자 그곳 사람들은 순디아타를 찾으러 심부름꾼을 보낸다. 메마에서 그를 찾아내자, 순디아타는 메마 왕이 내준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만딩 씨족들과 그 지도자들 사이에서 동맹을 모은다.

승리는 힘만큼이나 앎에 달려 있었다. 수마오로의 집안에 들어가 있던 순디아타의 누이 나나 트리반이 탈출해 그 힘의 비밀을 알려 준다. 그의 타나, 곧 금기는 흰 수탉의 며느리발톱이었다. 수마오로의 조카 파콜리도 숙부와 다툰 끝에 순디아타 편에 선다. 키리나(크리나)의 결전에서 수탉 며느리발톱을 단 화살이 수마오로를 맞히자 그의 주술은 힘을 잃고, 그는 달아나 자취를 감춘다. 전통은 이 승리를 1235년 무렵으로 본다.

키리나 전투 뒤 순디아타의 장군들이 그의 지배를 넓힌다. 가장 잘 알려진 장군 가운데 하나인 티라마칸 트라오레는 특히 세네감비아에서 대서양 쪽 서부 지역을 정복한 인물로 기억된다. 이런 지역별 강조점 때문에 감비아의 판본은 말리나 기니에서 기록된 판본과 사뭇 다르게 들린다.

[13][16][20][8][17]

중급

이야기 3: 쿠루칸 푸가의 회합

많은 판본은 만딩 한복판의 빈터 쿠루칸 푸가(Kurukan Fuga, Kouroukan Fouga)에서 열린 큰 모임으로 끝난다. 그곳에서 순디아타는 만사로 인정받고, 동맹 씨족의 지도자들은 칭호와 땅과 의무를 받는다. 집단마다 역할이 정해진다. 어떤 씨족은 정치권력을 쥐고, 어떤 씨족은 대장장이나 가죽 장인, 음유시인이 되며, 집안 사이의 동맹이 확인된다.

서사시에서 이 장면은 법조문의 목록이라기보다 만데 사회의 질서가 자리 잡는 순간이다. 이를테면 특정 씨족끼리 서로 마음껏 놀려도 되는 ‘농담 관계’(사난쿤야)의 유래를 설명하는데, 이 관습은 지금도 서아프리카의 일상에서 긴장을 누그러뜨린다. 또한 케이타가 왕족 씨족인 까닭과, 특정 그리오 집안이 그들에게 딸린 까닭도 설명한다. 다만 모든 공연자가 이 대목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며, 긴 밤의 끝에 짧게 다루고 마는 경우가 많다.

[8][18][20]

중급

역사와 전설: 이븐 할둔이 전하는 마리 자타

순디아타는 실존 인물일까? 중요한 문헌 증인이 하나 있다. 북아프리카의 역사가 이븐 할둔(1332–1406)은 14세기 후반 자신의 대작 『이바르의 책(키타브 알이바르)』에 말리 왕들의 목록을 실었다. 그는 본문에서 샤이흐 우스만이라는 학자를 비롯한 정보 제공자 네 사람의 이름을 밝히는데, 이들이 전한 내용은 14세기 말리에서 돌던 전승을 반영한다.

이븐 할둔에 따르면 말리의 가장 위대한 왕, 곧 수수(소소)를 꺾고 그 나라를 차지한 왕의 이름은 마리 자타였다. 그는 이름을 풀이해, ‘마리’는 통치자의 혈통을 이은 왕자, ‘자타’는 사자를 뜻한다고 적었다. 그에게 25년의 재위를 부여하고 아들들과 후계자들을 열거한다. 또한 정보 제공자들이 마리 자타의 계보는 알려 주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마리 자타는 지금도 순디아타의 찬양 이름 가운데 하나이므로, 거의 모든 역사가가 두 사람을 같은 인물로 본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서술은 순디아타를 소소를 물리치고 말리 국가를 세운 13세기의 역사적 통치자로 본다. 그의 재위는 흔히 1235년 무렵부터 1255년 무렵까지로 제시되지만, 이 어림수는 이븐 할둔이 전하는 25년과 맞지 않으며, 즉위와 죽음 어느 쪽도 정확히 연대를 매길 수 없다. 키리나 전투의 연대인 1235년 무렵 자체도 당대에 기록된 날짜가 아니라, 이븐 할둔이 전하는 재위 기간과 구전을 바탕으로 학자들이 재구성한 것이다.

그 밖의 거의 모든 것, 곧 소골론과 물소 여인, 쇠막대와 수탉 며느리발톱은 구전에서만 나온다. 이는 여러 세대의 음유시인이 다듬어 온, 정통성과 친족과 운명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 것이 가장 알맞다. 순디아타 자신이 무슬림이었는지도 논란거리다. 아랍 문헌과 후대 일부 그리오는 이슬람을 강조하지만, 서사시는 만데의 주술적 힘을 쓰는 사냥꾼으로 그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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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같은 시기 세계에서는: 황금과 소금, 그리고 이슬람 세계

순디아타의 싸움은 훨씬 큰 경제권 안에서 벌어졌다. 수백 년 동안 사하라를 건너는 낙타 대상이 서아프리카 사바나와 북아프리카를 이어 주었다. 황금은 북쪽으로 가고, 타가자 같은 사하라 광산의 소금과 구리·옷감·말은 남쪽으로 왔다. 가나(와가두) 제국은 이 교역의 중개로 부를 쌓았는데, 12세기에 가나가 기울면서 순디아타가 살았던 각축이 시작되었다. 소소는 부레 금광 가까이에 있는 만딩 족장국들로 세력을 넓혔고, 현대 역사가들은 수마오로가 만딩의 교역을 압박한 것을 봉기의 한 원인으로 든다. 서사시 속 주술사들의 대결 뒤에는 황금과 교역로를 둘러싼 실제 경쟁이 있었던 셈이다.

이 교역을 기록한 아랍 지리학자들은 순디아타 고향의 모습도 가장 먼저 글로 남겼다. 11세기에 알바크리는 니제르강 남쪽의 작은 왕국으로 말랄과 다우(도)를 꼽았고, 찾아온 학자의 기도로 가뭄이 그치자 무슬림이 된 말랄 왕의 이야기를 전했다. 도는 서사시에서 물소 여인의 땅이며,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이 아랍 기록과 현지 전승을 함께 써서 초기 말리의 중심지를 찾고 있다.

이처럼 이슬람은 제국의 전성기보다 훨씬 앞서 상인과 학자를 통해 만데 궁정에 들어왔다. 전해 내려온 서사시에도 그 영향이 비치는데, 순디아타의 가계를 예언자의 교우 빌랄리와 잇는 계보가 그 예다. 다만 이런 대목은 후대 무슬림 공연자들이 다듬거나 덧붙였을 수 있어, 순디아타 시대의 것이라고 연대를 매길 수는 없다. 이 왕조의 후대 통치자들, 무엇보다 1324–25년의 메카 순례로 카이로와 그 너머에 말리의 이름을 떨친 만사 무사는 서사시가 순디아타의 공으로 돌리는 나라 위에서 일어섰다.

이 연결은 양방향이었다. 이븐 할둔의 마리 자타 기록 자체가, 말리의 순례자·상인·학자들이 드나들던 북아프리카와 이집트의 연결망을 통해 모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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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목소리에서 책으로: 주요 판본

프랑스 식민지 장교와 학자들은 1889년부터 순디아타 이야기를 받아 적기 시작했고, 1890년대부터 출판했다. 1924년 J. 비달은 켈라의 판본을 「순디아타의 공식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1937년에는 세네갈의 윌리엄 퐁티 학교 학생들이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어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이 초기 텍스트들은 지금 그 자체로 역사 자료로 평가받는다.

가장 널리 읽히는 판본은 기니의 역사가 지브릴 탐시르 니아네가 펴낸 『순자타, 또는 만딩 서사시(Soundjata ou l’épopée mandingue)』(프레장스 아프리켄, 1960)다. 니아네가 1958년에 기니 젤리바코로에서 기록한 젤리 마무두(마마두) 쿠야테의 구연을 바탕으로 했다. 니아네는 구연을 한 마디 한 마디 옮겨 적은 녹취록으로 내지 않고, 공연을 우아한 프랑스어 산문으로 다시 썼다. G. D. 피켓의 영어 번역 『순디아타: 옛 말리의 서사시』(1965)는 이 책을 세계 곳곳 교실의 고전으로 만들었다.

런던 대학교 동양·아프리카 연구원(SOAS)의 고든 이네스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의 책 『순자타: 세 가지 만딩카 판본』(1974)은 감비아 만딩카어 원문과 행별 영어 대역을 함께 싣는다. 소투마 출신 밤바 수소의 순자타(1969년 브리카마에서 녹음), 반나 카누테의 순자타(1969년 세레쿤다에서 녹음), 그리고 반나의 형 뎀보 카누테가 파 콜리를 노래한 대목(1968년 세레쿤다에서 세니 다르보가 녹음)이 들어 있다. 독자는 공연자가 이야기를 빚고, 정형구를 되풀이하고, 청중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 밖의 주요 판본으로는 말리의 음유시인 파디기 시소코의 구연을 옮긴 존 윌리엄 존슨의 『손자라 서사시』(1986), 1979년에 녹음해 1987년에 출판한 켈라 판본, 기니의 젤리 장카 타세 콩데의 구연을 옮긴 데이비드 C. 콘래드의 『순자타』(2004)가 있다. 저마다 한 공연자와 한 장소, 한 순간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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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캉가바와 카마블롱 의식

캉가바는 바마코에서 남쪽으로 약 95km 떨어진 니제르강가에 있으며, 만데 전승에서 만딩의 오랜 왕도로 기억된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기념물은 뜻밖에 작다. 마을 광장에 선 카마블롱(카마볼롱이라고도 적는다)은 원뿔꼴 짚 지붕을 인 둥근 흙벽돌 성소다. 유네스코는 이 집을 ‘말의 집’이라 부른다. 안에는 성물이 보관되어 있고, 이 집은 마을의 논의에서도 한몫을 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지금의 건물은 1653년에 지어졌다.

7년에 한 번 짚 지붕을 벗겨 내고 새로 얹는 축제가 닷새 동안 열린다. 순디아타의 후손을 자처하는 캉가바의 케이타 집안이 켈라의 디아바테 그리오들과 함께 이를 책임진다. 몸으로 하는 일은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 몫이고, 지붕 갈이는 그 자체로 수업이 된다. 젊은이들이 일하는 동안 어른들이 집을 짓는 법과 그 의미를 일러 주기 때문이다. 2009년 유네스코는 이 의식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렸다.

의식의 핵심은 낭송이다. 집에 지붕이 없는 동안 켈라의 디아바테 집안은 ‘왕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만사 지긴, 곧 순디아타의 역사를 낭송한다. 1997년 의식에 참석한 인류학자 얀 얀선은 ‘말의 주인’(쿠마티기)이 성소 안에서 제한된 청중 앞에서만 낭송한다고 설명한다. 이 낭송은 한 번도 녹음된 적이 없으며, 바깥사람은 들을 수 없다는 바로 그 점이 이 ‘공인된’ 판본에 큰 권위를 더한다.

얀선은 이 의식을 오래된 비밀 신화보다는 새 남성 연령 집단을 받아들이며 사회를 새롭게 하는 일과 연결한다. 의식에는 정치적 무게도 있다. 말리의 장관들이 참석해 왔고, 1997년에는 대통령이 그리오와 주최 측에 선물을 보냈다.

[1][5][6][7]

심화

여러 관점

집안과 지역. 중립적인 순디아타 판본은 없다. 그리오 집안들은 자기 후원자와 자기 조상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쿠야테 판본은 발라 파세케에게 중심 역할을 주고, 켈라의 디아바테는 캉가바 낭송의 권위를 쥐고 있으며, 이네스가 기록한 감비아 만딩카 공연들은 순디아타의 장군들에게 넉넉한 자리를 내주어 파 콜리만 다룬 공연이 따로 있을 정도다. 얀선은 반대쪽 측면도 강조한다. 사바나 전역에서 이야기의 뼈대는 놀라울 만큼 안정적인데, 그는 이를 개인의 기억력만이 아니라 그리오 집안의 사회 조직으로 설명한다.

영웅과 악당. 수마오로 칸테는 서사시의 적대자이지만 단순한 괴물은 아니다. 서사시 스스로 그를 강력한 대장장이 왕으로 그리고, 니아가솔라의 쿠야테 집안은 지금도 그의 발라폰 소소발라를 성물로 모신다. 현대의 일부 작가와 청중은 그를 토착 신앙의 수호자로 보는 반면, 무슬림 그리오들은 순디아타의 이슬람 조상을 강조한다. 같은 이야기가 이처럼 서로 다른 종교적 강조점을 담을 수 있다.

장소와 국가. 사건은 정확히 어디서 일어났을까? 니아네는 지금은 기니에 속한 니아니를 말리의 옛 수도로 보았지만, 말리의 음유시인 와 카미소코는 오늘날 말리 땅인 키리나 근처의 다카잘란을 고집했고, 역사가 데이비드 C. 콘래드는 다카잘란 전승을 자세히 검토했다. 이는 학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1960년 프랑스령 수단은 독립하면서 말리라는 이름을 택했고, 말리 사람들은 순디아타의 제국을 자기 공화국의 선구로 널리 여긴다. 기니도 같은 유산에 대해 강한 연고를 내세운다. 이 서사시는 말리·기니·세네갈·감비아의 학교에서 가르친다.

13세기에는 오늘날의 국가가 없었으므로, 순디아타를 지금 뜻의 ‘말리인’이나 ‘기니인’으로 부르는 것은 시대착오다. 이 서사시는 현대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문화권에 속하며, 국가 사이가 아니라 씨족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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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만덴 헌장 논쟁

같은 2009년, 유네스코는 만데의 두 번째 유산인 ‘쿠루칸 푸가에서 선포된 만덴 헌장’을 등재했다. 유네스코의 설명에 따르면 순디아타와 그 회의가 13세기 초에 이를 말로 선포했고, 말링케 씨족들이 그 뒤로 대대로 전해 왔으며, 캉가바에서 해마다 기념한다. 유네스코는 이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 가운데 하나라고까지 부른다. 유네스코가 헌장에 돌리는 가치들은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평화와 인간 생명의 존엄에서 교육, 식량 안보, 약탈에 의한 노예화의 종식, 표현과 교역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권리 목록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런 유산 인정이 곧 역사적 진본 확인은 아니다.

역사가들은 이런 텍스트를 13세기 문서로 보는 데 심각한 의문을 제기해 왔다. 가장 잘 알려진 44개 조항의 ‘쿠루칸 푸가 헌장’은 1998년 3월 3일부터 12일까지 기니 캉칸에서 열린, 마닝카 전통 전승자와 라디오 방송인들의 지역 워크숍에서 처음 글로 정리되었다. 워크숍 문서는 참가한 전통 전승자들을 열거하는데, 세네갈 출신 한 사람을 빼면 모두 기니 사람이다. 역사가 프랑시스 시모니스는 말리의 그리오가 한 사람도 초청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얀 얀선은 이 텍스트를 현대의 ‘브리콜라주’라고 평했다. 그레고리 만은 이 텍스트가 서사시 안에는 없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 텍스트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말리의 민족지학자 유수프 타타 시세가 펴낸 ‘사냥꾼의 맹세’는 모든 생명은 생명이라고 선언하고 노예제와 굶주림을 규탄한다. 만은 시세가 이 맹세를 서사시와 연결한 것은 1991년 음유시인 와 카미소코와 함께 낸 책에서뿐이었음을 보여 주고, 시세가 직접 그것을 마지막 대목에 끼워 넣었으리라고 추정한다. 시세는 2003년에야 이 맹세가 1965년 캉가바 지역에서 사냥꾼 장인 파짐바 칸테와 함께한 자신의 현지 조사에서 나왔음을 밝혔다. 만은 또 유네스코가 어느 텍스트인지 밝히지 않은 채 ‘만데 헌장’을 기렸다고 지적한다. 비판자들은 노예제 폐지를 담은 유네스코의 요약이 사냥꾼의 맹세를 닮았으며, 캉칸 텍스트는 오히려 노예제를 사회 질서의 일부로 다룬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가치들이 무에서 지어낸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은 이 텍스트들이 위계적이지만 다양한 사회에서 함께 사는 실제 이상을 표현한다고 보며, 지지자들은 이를 아프리카 권리 전통의 증거로 여긴다. 신중하게 읽으려면 세 가지를 나누어야 한다. 오래되었지만 판본마다 다른 구전 속 쿠루칸 푸가 대목, 20세기 후반에 글로 정리된 헌장들, 그리고 이 둘을 시민 교육과 국가 정체성에 쓰는 오늘날의 활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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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증거와 방법: 구전 서사시를 역사로 읽기

초기 말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저마다 한계가 있는 세 종류의 증거를 다룬다. 정보 제공자에게 의존한 소수의 중세 아랍 문헌, 1889년부터 기록되었으며 수백 년의 공연을 거쳐 다듬어진 구전, 그리고 개인의 이름을 거의 알려 주지 않는 빈약한 고고학 자료다.

랠프 오스틴과 얀 얀선은 이븐 할둔조차 비판적으로 읽어야 함을 보여 주었다. 그의 왕 목록은 강한 창건자 뒤에 약한 후계자들이 잇따르는 순환으로 나뉘는데, 이는 그가 이미 『무캇디마(역사 서설)』(1377년 완성)에서 펼친 왕조 흥망 이론과 꼭 닮았다. 두 사람은 ‘되먹임’의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븐 할둔의 저작이 서아프리카 무슬림 학자들 사이에 퍼진 뒤 후대 구전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가 마리 자타 같은 전형적인 만데 이름이나 말리 흥기의 기본 줄거리를 지어낼 수는 없었다고 결론짓는다.

다른 단서들은 흩어져 있다. 1352–53년에 말리를 찾은 이븐 바투타는 만사 무사의 조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리크 자타를 언급하는데, 일부 학자는 이를 순디아타 전승의 이른 메아리로 읽지만 계보가 깔끔하게 맞지는 않는다. 소소의 정확한 위치도 논란거리다. 슈테판 뷔넨은 1994년, 소소를 전통적으로 비정해 온 카니아가보다 더 남서쪽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고학은 서사시의 지리를 검증하기 시작했다. 케빈 맥도널드와 말리 동료 연구자들은 물소 여인의 고향인 도 지역을 조사하며 알바크리의 11세기 기록과 마을 전승, 현장 조사를 결합했다. 이들은 도 출신 소골론과 키리 왕의 혼인이 두 작은 정치체의 결합을 나타내는 정치적 은유로 읽힌다고 보고, 구전은 늘 변하지만 다른 증거와 대조하면 과거에 관한 지식을 여전히 간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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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젤리(그리오)
세습 음유시인이자 음악가, 계보 전문가. 서사시를 지키고 공연하며, 집안을 찬양하고 조언자와 중재자 노릇을 한다. 전통적으로 서사시를 공개 공연할 수 있는 것은 이들뿐이다.
파덴야와 바덴야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른 자식들 사이의 경쟁(파덴야)과 어머니가 같은 자식들 사이의 연대(바덴야). 서사시는 순디아타와 이복형, 그리고 어머니와 누이들을 통해 이 두 힘을 극으로 보여 준다.
냐마와 타나
냐마는 사냥꾼·대장장이·음유시인이 다룬다고 믿는 주술적 기운이고, 타나는 사람의 금기나 숨은 약점이다. 순디아타는 수마오로의 타나인 흰 수탉 며느리발톱을 알아내 그를 물리친다.
만사
말리 통치자의 만데어 칭호로, 흔히 왕이나 황제로 옮긴다. 순디아타는 하나로 묶인 만딩에서 이 칭호를 처음 지닌 인물로 기억된다.
쿠루칸 푸가
전승에서 만데 사회의 새 질서, 곧 씨족의 역할·칭호·동맹·농담 관계가 정해진 회합. 현대에 글로 정리된 ‘만덴 헌장’ 텍스트와는 구별해야 한다.
살아 있는 전통
서사시는 공연 속에 존재한다. 니아네의 판본을 포함해 기록된 모든 판본은 공연자의 집안·지역·청중이 빚어낸 여러 증언 가운데 하나다.

기록

  1. 약 1068년 — 알바크리의 지리서가 니제르강 남쪽의 작은 왕국 말랄과 다우(도)를 언급한다. 서사시가 기억하는 바로 그 중심지다.
  2. 약 1235년 — 전통적으로 보는 키리나 전투의 연대. 순디아타가 소소의 수마오로 칸테를 물리치고 말리 제국을 세운다.
  3. 약 1255년 — 관례적으로 어림잡는 순디아타 재위의 끝. 이 어림수는 이븐 할둔이 전하는 마리 자타의 재위 25년과 맞지 않으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4. 약 1390년 — 14세기 후반 이븐 할둔이 말리 왕 목록을 기록하며, 창건자를 수수를 정복한 마리 자타로 부른다.
  5. 1653년 — 유네스코가 밝힌 지금의 카마블롱, 곧 캉가바의 성스러운 집이 지어진 해.
  6. 1889년 — 프랑스령 수단에서 식민지 장교들이 순자타 전승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들을 모은다.
  7. 1924년 — J. 비달이 켈라 전승을 바탕으로 「순디아타의 공식 전설」을 펴낸다.
  8. 1960년 — D. T. 니아네가 젤리 마무두 쿠야테의 구연을 바탕으로 『순자타, 또는 만딩 서사시』를 펴낸다. 같은 해 독립한 프랑스령 수단이 말리라는 이름을 택한다.
  9. 1974년 — 고든 이네스가 1968–69년 감비아에서 녹음된 밤바 수소, 반나 카누테, 뎀보 카누테의 공연을 담은 『순자타: 세 가지 만딩카 판본』을 펴낸다.
  10. 1998년 — 기니 캉칸에서 열린 마닝카 전통 전승자 워크숍이 44개 조항의 ‘쿠루칸 푸가 헌장’을 글로 정리한다.
  11. 2009년 — 유네스코가 카마블롱의 7년 주기 지붕 갈이 의식과 만덴 헌장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

용어 풀이

만데 / 만딩 / 만덴
만데는 서아프리카의 넓은 어족이자 문화권이고, 만딩은 그 안에서 더 가까운 갈래(마닝카·만딩카·바마나 등)다. 만덴(만딩)은 니제르강 상류에 있던 이들의 역사적 중심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젤리(복수 젤리우)
세습 음유시인이자 음악가를 가리키는 만데어. 프랑스어와 영어로는 보통 ‘그리오’라고 한다.
발라폰
박 공명통을 단 나무 실로폰. 소소발라는 기니 니아가솔라에 보관된 성스러운 발라폰이다.
소소(수수)
순디아타가 승리하기 전 만딩을 지배한 수마오로 칸테의 왕국. 정확한 위치는 논란이 있다.
카마블롱(카마볼롱)
캉가바의 성스러운 둥근 집. 7년마다 지붕을 새로 얹는 의식 때 그리오들이 순디아타의 역사를 낭송한다.
쿠마티기
‘말의 주인’. 카마블롱 의식에서 낭송을 이끄는 원로 그리오.
사난쿤야
특정 씨족이나 민족 사이에서 서로 놀리는 것을 허용해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농담 관계. 전통적으로 말리 건국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여긴다.

묻고 답하기

순디아타는 실제로 있었던 사람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14세기에 글을 쓴 이븐 할둔은 수수를 물리친 마리 자타라는 말리의 창건자를 기록했는데, 마리 자타는 순디아타의 찬양 이름 가운데 하나다. 다만 어린 시절 이야기와 주술 대결 같은 세부는 구전 서사시에만 나오므로 확인할 길이 없다.

순디아타는 왜 걷지 못했나요?

서사시는 의학적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오랫동안 걷지 못한 것은 그가 뜻밖의 영웅임을 보여 주고, 갑자기 일어서는 장면은 그의 운명을 아무도 막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서사시에는 올바른 판본이 하나뿐인가요?

아니다. 그리오 집안과 지역마다 다르게 들려준다. 니아네의 1960년 책이 가장 유명하지만, 이는 한 음유시인의 구연을 산문으로 다시 쓴 것이다. 이네스나 존슨의 행별 번역본을 보면 실제 공연이 어떻게 들리는지 알 수 있다.

카마블롱 의식은 무엇인가요?

말리 캉가바 사람들이 7년마다 성스러운 둥근 집 카마블롱의 짚 지붕을 새로 얹는 의식이다. 의식 동안 켈라의 디아바테 그리오들이 순디아타의 역사를 낭송하며, 유네스코는 2009년부터 이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만덴 헌장은 13세기의 헌법인가요?

전승은 순디아타가 쿠루칸 푸가에서 사회의 규칙을 정했다고 말하지만, 오늘날 유통되는 글로 된 헌장들은 20세기 후반의 것이다. 1998년 캉칸 워크숍의 44개 조항 텍스트와 유수프 타타 시세가 펴낸 ‘사냥꾼의 맹세’가 그것이다. 그래서 많은 역사가는 이를 오래된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의 재구성으로 본다.

이븐 할둔은 초기 말리에 관해 얼마나 믿을 만한가요?

가장 좋은 문헌 사료이지만, 오스틴과 얀선은 그의 왕 목록이 그 자신의 왕조 순환 이론에 따라 어느 정도 짜맞춰졌다고 본다. 역사가들은 그를 구전·고고학과 함께 신중하게 사용한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Septennial re-roofing ceremony of the Kamablon, sacred house of Kangaba.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2009
  2. Manden Charter, proclaimed in Kurukan Fuga.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2009
  3. Cultural space of Sosso-Bala.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2008
  4. Ralph A. Austen and Jan Jansen, History, Oral Transmission and Structure in Ibn Khaldun’s Chronology of Mali Rulers. History in Africa 23 (Leiden University repository), 1996
  5. Jan Jansen, Hot Issues: The 1997 Kamabolon Ceremony in Kangaba (Mali). International Journal of African Historical Studies 31/2 (Leiden University repository), 1998
  6. Jan Jansen, “Copy Debts”? Towards a Cultural Model for Researchers’ Accountability in an Age of Web Democracy. Oral Tradition 27/2, 2012
  7. Stephen Bulman, A Checklist of English and French Versions of the Sunjata Epic Published before the 21st Century (revised from History in Africa, 1997). Verbafricana
  8. Gregory Mann, The World Won’t Listen: The Mande “Hunters’ Oath” and Human Rights in Translation. Humanity 13/2, 2022
  9. La charte de Kurukan Fuga: Atelier régional de concertation entre communicateurs et traditionalistes maninka, Kankan, 3–12 mars 1998. Workshop document, République de Guinée (hosted by Alliance pour refonder la gouvernance en Afrique), 1998
  10. Noël Sanou, La charte du Mandé : reconfigurations textuelles et mémorielles. Afroglobe (Université du Québec à Montréal)
  11. Kevin C. MacDonald, Nikolas Gestrich, Seydou Camara and Daouda Keita, The ‘Pays Dô’ and the Origins of the Empire of Mali. UCL Discovery (author manuscript)
  12. John William Johnson, Epic of Sun-Jata (World Epics). Columbia University
  13. Mark Cartwright, Sundiata Keita. World History Encyclopedia, 2019
  14. Mark Cartwright, Mali Empire. World History Encyclopedia, 2019
  15. Stephan Bühnen, In Quest of Susu. History in Africa 21, 1994
  16. Epic of Sundiata. Wikipedia
  17. Sundiata Keita. Wikipedia
  18. Kouroukan Fouga. Wikipedia
  19. Sosso Empire. Wikipedia
  20. Djibril Tamsir Niane, Soundjata ou l’épopée mandingue (English: Sundiata: An Epic of Old Mali, trans. G. D. Pickett, Longman, 1965). Présence Africaine, 1960
  21. Gordon Innes (ed. and trans.), Sunjata: Three Mandinka Version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University of London, 1974
  22. Nehemia Levtzion and J. F. P. Hopkins (eds.), Corpus of Early Arabic Sources for West African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1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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