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4,000여 년 전, 이집트의 왕들은 피라미드 안에 묻혔어요. 사람들은 대개 피라미드를 거대한 돌산처럼 바깥에서만 알지요. 그런데 몇몇 피라미드 안, 땅속 깊은 방에는 벽 위에서 아래까지 상형문자라는 그림 문자가 줄줄이 새겨져 있어요.
이 글을 ‘피라미드 텍스트’라고 불러요. 왕의 일생 이야기가 아니에요. 기도나 마법의 말 같은 ‘주문’이에요. 왕의 장례식 때 사제들이 소리 내어 읊었고, 영원히 효력이 있도록 돌에 새겨 두었지요.
주문은 왕에게 죽은 뒤 할 일을 알려 줘요. 일어나라, 흙을 털어라, 뼈를 모아라, 하늘로 올라가라! 하늘에 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예요. 사다리를 타고, 나룻배를 타고, 새의 날개에 올라타고, 매처럼 날아서 가지요. 하늘에서 왕은 태양신과 결코 지지 않는 별들과 함께하게 돼요.
어떤 주문은 왕이 배고프지 않도록 신들에게 빵과 맥주를 달라고 해요. 어떤 주문은 뱀과 전갈과 도둑으로부터 왕의 몸과 무덤을 지켜 줘요. 왕이 신들을 사냥해 잡아먹고 그 힘을 얻는 것처럼 보이는 깜짝 놀랄 주문도 있어요.
이 글이 처음 새겨진 피라미드는 약 4,350년 전에 살았던 우나스라는 왕의 것이에요. 오랫동안 전문가들은 피라미드 안에는 글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1880~1881년, 가스통 마스페로라는 프랑스 고고학자가 사카라라는 곳의 피라미드 몇 개에 기어 들어가 주문으로 뒤덮인 벽을 찾아냈어요.
오늘날 피라미드 텍스트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죽음과 신과 저승에 대해 무엇을 믿었는지 알려 줘요. 뒤의 이집트 사람들은 이 주문을 많이 베끼고 바꾸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유명한 『사자의 서』에까지 이어졌어요.
한눈에 보기
- 새겨진 시기
- 제5왕조 말(우나스 피라미드, 기원전 24세기 무렵)부터 제6왕조를 거쳐 제8왕조까지. 일부 주문은 기원이 훨씬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 장소
- 하이집트 멤피스 근처 사카라에 있는 왕실 피라미드의 매장실·전실·통로
- 주인
- 왕(우나스, 테티, 페피 1세, 메렌레, 페피 2세, 카카레 이비)과 여러 왕비(네이트, 이푸트 2세, 웨제브테니, 베헤누 등)
- 언어와 문자
- 고왕국 이집트어. 세로줄 상형문자로 새기고 흔히 청색·녹색 안료로 채웠다
- 분량
- 제테의 판본은 주문 714편을 헤아리며, 이후 발견을 더하면 약 759편. 우나스 피라미드에만 283편
- 재발견
- 가스통 마스페로, 1880~81년. 첫 간행 1894년, 쿠르트 제테의 표준판(1908~1922)
- 계승
- 중왕국의 관 텍스트, 신왕국 이후의 『사자의 서』로 각색되어 이어졌다
쉬움
피라미드 텍스트란 무엇인가
피라미드 텍스트는 이집트 왕실 피라미드 지하 방의 벽에 새긴 주문·기도·의례 발화의 큰 모음이다. 이집트어의 가장 이른 단계인 고왕국 이집트어로 쓰였으며, 고대 이집트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대규모 종교 문헌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문헌 가운데 하나이다.
이 문헌은 기원전 24세기 무렵 다스린 제5왕조의 마지막 왕 우나스의 피라미드에서 처음 나타난다. 제6왕조의 왕들과 제8왕조의 한 왕, 그리고 여러 왕비도 피라미드에 이를 새겼는데, 모두 오늘날 카이로 근처 옛 수도 멤피스의 큰 왕실 묘지인 사카라에 있다.
텍스트의 목적은 하나였다. 죽은 왕이 죽음을 이겨 내고 영광스럽고 힘 있는 영(靈)인 ‘아크’로 변해 하늘에서 신들 사이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후대의 장례 문헌과 달리 그림이 없었고, 고왕국 시대에는 왕실만의 것이었다.
쉬움
피라미드 안에 숨은 글
기자의 피라미드처럼 초기의 거대한 피라미드에는 내부 방에 글이 없다. 기원전 2350년 무렵 이것이 바뀌었다. 작은 우나스 피라미드에서는 매장실·전실과 통로 일부의 벽이 돌에 새기고 색을 채운 상형문자 세로줄로 뒤덮였다. 매장실 천장은 밤하늘처럼 파란 바탕에 별을 그렸다.
우나스 피라미드는 높이 약 43미터로 고왕국에서 가장 작은 피라미드이지만, 텍스트는 가장 잘 남아 있다. 주문 283편이 있다. 석관을 둘러싼 벽은 갈대 돗자리로 두른 사당처럼 꾸몄고, 나머지는 글로 채웠다. 제6왕조의 뒤 피라미드들에는 더 많고 다양한 주문이 들어 있다.
텍스트의 배치는 아무렇게나 한 것이 아니었다. 방마다 다른 종류의 주문이 있었다. 석관 가까이에는 공양 의례, 박공벽에는 보호 주문, 전실과 통로에는 무덤을 떠나 하늘로 오르는 내용의 글이 놓였다. 무덤의 건축과 벽의 말이 함께 작동했다.
피라미드 텍스트는 왕만의 것이 아니었다. 페피 2세의 세 왕비 네이트·이푸트 2세·웨제브테니는 각자의 작은 피라미드에 텍스트를 새겼고, 2010년에는 또 다른 왕비 베헤누의 무덤에서도 발견되었다. 왕비의 무덤은 더 단순하고 네이트의 피라미드에는 전실이 없어서, 보통 전실에 놓일 주문을 다른 벽에 새겼다. 그래도 텍스트는 왕의 피라미드와 같은 큰 틀을 따른다. 주문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곳곳에 네이트의 이름을 적었지만 대명사는 남성형이 많이 남아 있어, 왕실의 본을 각색했음을 보여 준다.
쉬움
하늘로 가는 왕의 여정
많은 주문이 죽은 왕에게 깨어나 일어나라고 말한다. 우나스를 위한 유명한 주문에서 사제는 왕이 죽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살아서 떠났다고 확언하며, 오시리스의 옥좌에 앉아 다스리라고 한다. 테티 왕을 위한 다른 주문은 머리를 들고, 뼈를 모으고, 살에서 흙을 털고, 결코 상하지 않는 빵과 시지 않는 맥주를 받으라고 부른다.
주문은 하늘에 이르는 여러 길을 그린다. 왕은 신들이 붙잡아 주는 사다리를 오르거나, 경사로나 계단을 올라가거나, 나룻배로 하늘의 물을 건너거나, 매가 되어 또는 토트 신의 날개를 타고 날아간다. 뱃사공이 태워 주지 않으면 왕은 다른 길을 찾겠다고 위협한다.
하늘에서 왕은 태양신 라의 하루 항해에 함께하고, 북쪽 하늘에서 지평선 아래로 결코 지지 않는 주극성, 곧 ‘불멸의 별’의 하나가 된다. 또 죽임을 당했다가 다시 살아난 신 오시리스와 동일시되며, 그의 아들 호루스가 왕을 위해 행동한다. 태양·별·오시리스라는 서로 다른 저승의 이미지가 텍스트 안에 나란히 있다.
중급
주문의 종류
이집트학자들은 피라미드 텍스트를 크게 두 무리로 나눈다. 첫째는 낭독 사제가 죽은 왕에게 2인칭(‘당신’)으로 말하는 의례용 또는 ‘사제’ 텍스트이다. 음식·음료·천·향을 하나씩 바칠 때 읊는 공양 주문, 그리고 죽은 이가 먹고 말하고 볼 수 있는 능력을 되찾게 한다고 믿은 ‘입 열기’ 같은 의례의 텍스트가 여기에 든다.
둘째는 왕 자신이 말하거나 왕 자신의 변신에 관한 ‘개인’ 텍스트이다. 왕이 신들에게 음식을 요구하는 공급 주문, 아크가 되어 하늘로 오르는 내용의 이행 주문(‘사쿠’, 곧 영광화 주문), 뱀·전갈 같은 위험을 막는 짧은 보호 주문(액막이 주문)이 있다.
보호 주문은 특히 고풍스러운 문체로 쓰여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여겨진다. 문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행 주문은 제5왕조, 어쩌면 제6왕조에 지어진 더 젊은 것으로 보인다. 일부 의례 텍스트는 제2·3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중급
텍스트 속의 신과 관념
피라미드 텍스트는 초기 이집트 신화의 가장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최초의 신 한 쌍을 낳은 창조신 아툼, 그리고 헬리오폴리스의 9신(엔네아드)이라 불리는 신들의 가족, 곧 슈와 테프누트,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 그들의 자녀 오시리스·이시스·세트·네프티스가 등장한다. 뒤의 많은 신화가 여기서 처음 나타나지만, 흔히 암시로만 언급된다.
텍스트는 사람을 이루는 요소에 대한 관념에 기댄다. ‘카’는 공양 음식이 필요한 생명력이고, ‘바’는 흔히 사람 머리를 한 새로 그려지는 움직이는 측면이며, ‘아크’는 왕이 되고자 한 힘 있는 변모한 영이다. 몸·이름·그림자도 중요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올바른 말과 의례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위험한 이행으로 여겨졌다.
말 자체에 힘이 있었다. 이집트인은 올바르게 말하거나 쓴 말이 일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떤 주문은 신들에게 대담하게 말을 걸고, 왕을 돕지 않으면 위협하기까지 한다. 사제들은 때때로 뱀처럼 위험한 동물의 글자를 비틀거나 반으로 잘라 새겨, 글 속의 동물이 왕을 해치지 못하게 했다.
중급
‘식인 찬가’와 뜻밖의 주문들
우나스와 테티의 피라미드에만 있는 주문 273~274편은 오늘날 ‘식인 찬가’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왕은 셰즈무 신의 도움을 받아 신들을 제물 황소처럼 사냥하고 잡아 요리해 먹으며, 그들의 주술적 힘을 흡수해 하늘의 가장 큰 권능이 된다.
학자들은 이 텍스트를 실제 식인의 증거가 아니라 신화적·의례적 이미지로 읽는다. 도살 의례를 떠올리게 하며 생생한 은유와 말장난을 쓴다. 빅토리아 시대 이집트학자 피터 르 페이지 르누프는 이미 이런 신화를 ‘야만적’ 관습의 기억으로만 설명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새벽에 별들을 삼키는 하늘의 여신 누트의 이미지와 연결하는 견해도 있다.
페피 1세 피라미드의 주문 534편 같은 또 다른 특이한 텍스트는 피라미드를 해치는 자에 대한 저주이다. 이는 텍스트가 왕의 영혼을 인도하는 것뿐 아니라 왕릉과 공물을 지키는 실제적인 목적도 지녔음을 일깨운다.
중급
재발견과 판본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이 텍스트가 있는 줄 몰랐다. 1880년 프랑스 이집트학자 가스통 마스페로가 남사카라에서 발굴을 시작해 한 피라미드에 들어갔는데, 페피 1세의 것으로 밝혀진 이 피라미드의 지하 벽이 상형문자로 덮여 있었다. 당시 이집트의 대표적 이집트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글이 새겨진 피라미드 방이 발견된 적이 없다며 그것이 피라미드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마스페로는 메렌레의 피라미드에서, 이어 1881년 우나스·테티·페피 2세의 피라미드에서 비슷한 텍스트를 찾았다.
마스페로는 1882년부터 텍스트를 발표했고 1894년 『사카라 피라미드의 비문』으로 묶어 냈다. 이어 독일 이집트학자 쿠르트 제테가 주문에 번호를 매기고 여러 피라미드의 이본을 나란히 배열한 표준판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텍스트』(1908~1922)를 냈고, 그의 번호 체계는 지금도 쓰인다. 새뮤얼 머서(1952), 레이먼드 포크너(1969), 제임스 P. 앨런(2005)이 영어 번역을 냈다.
20세기에도 발굴이 이어졌다. 귀스타브 제키에는 1926~1932년 페피 2세와 왕비들, 이비 왕의 피라미드를 조사했다. 1958년부터 장필리프 로에르, 장 생트파르 가르노, 장 르클랑이 이끈 프랑스 조사단이 우나스·테티·페피 1세·메렌레의 피라미드를 복원하고 떨어져 나간 수천 개의 명문 조각을 다시 맞추었다. 2010년에는 베헤누 왕비의 무덤에서 텍스트가 더 발견되었다.
중급
피라미드 텍스트에서 관 텍스트와 『사자의 서』로
고왕국 뒤 왕실 피라미드에는 더 이상 이런 명문이 새겨지지 않았지만 주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1중간기와 중왕국 시대에는 많은 주문이 새로 지은 글과 함께 관리와 부유층의 나무 관 안쪽에 쓰였다. ‘관 텍스트’라 불리는 이 모음은 약 1,185편의 주문을 담고 있으며, 오시리스가 다스리는 지하 저승을 더 강조한다.
신왕국 이후에는 주로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써서 무덤에 넣은 새 모음인 『사자의 서』가 발전했다. 여기에는 일부 피라미드 텍스트 주문의 후손이 유명한 ‘심장의 무게 달기’ 장면 같은 그림과 함께 들어 있다. 피라미드 텍스트 주문은 관리의 무덤에도 옮겨 적혔고, 말기 왕조 시대에는 이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사본 하나가 엘리시트에 있는 제12왕조 대사제 세누스레트앙크의 무덤에 있는데, 우나스 텍스트의 거의 전부를 옮겨 놓았다. 이는 피라미드가 닫힌 지 오랜 뒤에도 텍스트가 신전이나 기록 보관소의 사본으로 보존되었음을 보여 준다.
심화
텍스트는 얼마나 오래되었나: 구전 기원과 구성
텍스트가 처음 새겨진 것은 기원전 24세기이지만, 대부분의 이집트학자는 그 가운데 많은 것이 더 일찍 지어져 입으로 또는 파피루스에 적혀 전해졌다고 본다. 일부 주문의 고풍스러운 문법과 철자, 이전 시대 관습에 대한 언급, 다양한 문체는 모두 이 문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선집임을 시사한다.
학자들은 언어와 내용으로 개별 주문의 연대를 가늠하려 해 왔다. 보호 주문은 흔히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극적 의례 텍스트는 초기 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으로, 대규모 승천 주문 무리는 태양신 라의 숭배가 특히 중요했던 제5왕조의 것으로 본다. 어떤 주문은 새겨진 피라미드와 맞지 않는 매장 관습이나 무덤 형태를 언급해, 더 오래된 원천에서 각색되었다는 생각을 뒷받침한다.
왜 우나스 때 갑자기 텍스트를 새기기 시작했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특히 오시리스의 중요성이 커진 것 같은 종교 관념의 변화, 장례 제의가 끊길 경우에 대비해 의례를 돌에 영구히 보장하려는 바람, 제5왕조 말 왕권 이데올로기의 발전 등이 설명으로 제시된다.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으며, 서로 배타적이지도 않다.
심화
텍스트를 하나의 체계로 읽기
제테의 판본을 비롯한 초기 판본은 피라미드 텍스트를 따로따로인 주문의 목록으로 다루었다. 이후 연구, 특히 1970년대 이후의 연구는 피라미드마다 신중하게 배열된 프로그램이 있음을 강조했다. 제임스 P. 앨런 같은 학자는 텍스트를 건축과 관련지어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장실은 저승(두아트), 전실은 지평선(아케트), 통로는 하늘로 나가는 길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텍스트는 석관에서 전실과 통로를 거쳐 북쪽 하늘로 향하는 왕의 여정을 따라가며, 왕의 영이 피라미드를 떠난다고 상상된 경로와 맞아떨어진다. 다른 학자들은 장례 행렬을 따라 입구에서 안쪽으로 읽어 들어가는 순서를 제안했다. 두 접근은 모두 텍스트를 추상적인 글로만이 아니라 물리적 공간 속에서 연구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여러 피라미드의 이본을 비교하면 텍스트가 어떻게 편집되었는지도 드러난다. 주문은 선택되고, 재배열되고, 왕비용으로 각색되고(때로 남성 대명사를 그대로 두고),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었다. 이런 증거는 이집트 사제들이 전통적 종교 지식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심화
의의와 저승관 논쟁
피라미드 텍스트는 이집트의 종교·언어·왕권의 역사를 알려 주는 핵심 자료이다. 인간 통치자이면서 신들과 함께할 운명을 지닌 존재로서의 왕, 그리고 의례 행위로 보장되는 그의 저승을 보여 준다. 이집트어로 된 가장 오래된 연속 텍스트를 보존하고 있어 고왕국 이집트어 문법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저승은 처음에 왕의 특권이었고, 관 텍스트에서 장례 주문이 왕실 밖으로 퍼진 것이 ‘저승의 민주화’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르코 빌럼스와 마크 스미스 같은 학자들은 이 모델을 비판했다. 이미 고왕국에도 왕실 아닌 사람들이 저승에 대한 희망과 의례를 지니고 있었으며, 변화는 영원이 갑자기 모두에게 열린 것이라기보다 누가 특정한 문헌과 왕실 상징을 쓸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텍스트는 고대 종교를 어떻게 번역하고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언어가 흔히 암시적이고 말장난으로 가득하며, 언급되는 신과 장소는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번역본끼리도 차이가 크다. 그래서 피라미드 텍스트는 현대 독자에게 보물이자 도전이다.
핵심 개념
- 아크
- 죽은 왕이 되고자 한 변모하고 힘 있는 영으로, 신들 사이에서 살 수 있다.
- 승천
- 왕은 사다리·경사로·나룻배·비행으로 하늘에 올라 라와 불멸의 별들에 합류한다.
- 오시리스와 재생
- 왕은 죽었다가 되살아난 신 오시리스와 동일시되며 호루스의 보살핌을 받는다.
- 말의 힘
- 올바르게 말하고 쓴 말이 세상에 작용해 왕을 지키고 변모시킨다고 믿었다.
- 돌에 새긴 의례
- 주문을 새김으로써 사제가 의례를 계속하지 않아도 장례 의례가 영구히 유지되게 했다.
- 공양과 공급
- 죽은 이에게는 음식과 음료가 필요했고, 주문은 왕의 카를 위한 끊임없는 공급을 보장했다.
- 전통과 각색
- 텍스트는 오래된 자료의 선집으로, 피라미드마다 골라 배열되었고 뒤에는 왕실 밖 사람들을 위해 각색되었다.
기록
- 약 기원전 2550년 — 기자의 대피라미드들이 내부 방에 명문 없이 지어지다.
- 약 기원전 2350년 — 우나스 재위. 사카라의 그의 피라미드에 피라미드 텍스트가 처음 나타나다.
- 약 기원전 2300년 — 제6왕조의 테티·페피 1세·메렌레가 문헌을 확장하다.
- 약 기원전 2200년 — 페피 2세와 왕비 네이트·이푸트 2세·웨제브테니의 피라미드에 피라미드 텍스트가 새겨지다.
- 약 기원전 2150년 — 제8왕조. 카카레 이비 왕의 작은 피라미드에 마지막 왕실 피라미드 텍스트가 새겨지다.
- 약 기원전 2000년 — 중왕국. 많은 주문이 관 텍스트로 각색되고, 세누스레트앙크를 위해 우나스 텍스트의 거의 완전한 사본이 만들어지다.
- 1880년 — 가스통 마스페로가 남사카라의 페피 1세 피라미드에서 명문이 새겨진 방을 찾다.
- 1881년 — 우나스·테티·페피 2세의 피라미드에서 텍스트가 발견되다.
- 1894년 — 마스페로가 『사카라 피라미드의 비문』을 펴내다.
- 1908년 — 쿠르트 제테가 표준판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텍스트』 간행을 시작하다.
- 1958년 — 프랑스 조사단이 명문 피라미드 복원과 조각 재조립을 시작하다.
- 2010년 — 베헤누 왕비의 무덤에서 피라미드 텍스트가 발견되다.
용어 풀이
- 발화 / 주문
- 피라미드 텍스트의 한 단위로, 제테의 판본에서 번호가 매겨져 있다(예: PT 213).
- 아크
- 저승으로 무사히 건너간 죽은 이의 영광스럽고 힘 있는 영.
- 카
- 사람의 생명력으로, 죽은 뒤 공양 음식으로 유지된다.
- 바
- 사람의 움직이는 측면으로, 흔히 사람 머리를 한 새로 그려진다.
- 낭독 사제
- 의식 중에 의례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는 사제.
- 입 열기 의례
- 죽은 이나 조각상의 감각과 능력을 되살리는 의례.
- 불멸의 별
- 천구의 북극 가까이에 있어 결코 지지 않는 별들로, 복된 죽은 이들의 거처로 여겨졌다.
- 사카라
- 고대 멤피스의 왕실 묘지로, 명문이 새겨진 피라미드가 모두 이곳에 있다.
- 관 텍스트
- 관에 쓴 중왕국의 장례 주문으로, 많은 것이 피라미드 텍스트에서 나왔다.
- 사자의 서
- 주로 파피루스에 그림과 함께 쓴 후대의 장례 주문 모음.
묻고 답하기
피라미드 텍스트는 이야기인가요?
아니에요. 왕이 죽음을 지나 신들 사이에서 살도록 돕기 위해 소리 내어 읊는 주문과 의례의 말이에요.
기자의 대피라미드에도 피라미드 텍스트가 있나요?
없어요. 기자의 피라미드 방에는 글이 없어요. 텍스트는 약 200년 뒤 사카라의 우나스 피라미드에서 처음 나타나요.
누가 읽을 수 있었나요?
무덤이 봉인된 뒤에는 산 사람이 읽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왕의 영과 주술적 효력을 위한 것이었다. 매장 전 장례 의례 중에 사제들이 읊었다.
‘식인 찬가’에서 왕이 정말 신들을 먹었나요?
아니다. 도살과 먹기라는 생생한 의례 이미지로 왕이 신의 힘을 흡수함을 표현한 신화적 언어이지, 실제 관습의 기록이 아니다.
주문들은 실제로 얼마나 오래되었나요?
기원전 24세기부터 새겨졌지만 많은 주문은 더 일찍 지어졌을 것이다. 정확한 연대는 논쟁 중이고 주문마다 다르다.
고왕국에서는 왕만 저승에 갈 수 있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당시 이 텍스트 자체는 왕실만의 것이었지만, 다른 증거는 왕실 아닌 사람들도 저승을 기대했음을 보여 준다. 뒷날의 ‘민주화’라는 생각은 지금 논쟁 중이다.
학자들은 어떤 판본을 쓰나요?
쿠르트 제테의 판본(1908~1922)이 표준 번호를 제공하고, 현대 번역으로는 이후 발견을 반영한 포크너(1969)와 앨런(2005)의 번역이 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 Pyramid Texts. Wikipedia
- Pyramid of Unas. Wikipedia
- Coffin Texts. Wikipedia
- 피라미드 텍스트. 위키백과(한국어)
- Kurt Sethe, Die altägyptischen Pyramidentexte. J. C. Hinrichs, 1908–1922
- R. O. Faulkner, The Ancient Egyptian Pyramid Texts. Clarendon Press, 1969
- James P. Allen, The Ancient Egyptian Pyramid Texts.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05
함께 보기
- 기자의 대피라미드이집트 파라오 쿠푸를 위해 세운 왕릉이다. 기자의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크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남아 있다.
- 나르메르 팔레트나르메르 왕이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왕관을 모두 쓰고 적을 무찌르는 모습을 새긴, 높이 약 63cm의 방패 모양 의례용 실트암 팔레트.
- 길가메시 서사시우루크의 왕 길가메시가 친구 엔키두를 잃고 영생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 수메르의 여러 시를 엮어 바빌로니아 서사시로 완성했다.
-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금제 장례용 가면이다.
- 리그베다베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가장 오래된 찬가 모음. 글로 적히기 전 수백 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 슈루팍의 교훈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 가운데 하나. 수메르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삶의 조언을 점토판에 새겼다.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