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 쉬움
- 중급
- 심화
어린이를 위한 설명
사람이 만든 산을 떠올려 보세요. 대피라미드는 200만 개가 넘는 돌덩이로 지어졌는데, 그중 상당수는 자동차보다 무거워요. 완성됐을 때 높이는 약 146미터, 45층 건물쯤 되었고, 수천 년 동안 사람이 지은 것 가운데 이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어요.
이 피라미드는 쿠푸라는 이집트 왕의 무덤으로 지어졌어요. 이집트 왕은 흔히 파라오라고 불러요. 이집트 사람들은 왕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신들과 함께 영원히 산다고 믿었고, 피라미드는 그 여행을 돕고 왕의 몸을 지키는 곳이었어요.
옛날의 피라미드는 지금처럼 울퉁불퉁한 계단 모양이 아니었어요. 매끈하고 하얀 석회암으로 덮여 있어서 사막의 햇빛을 받아 반짝였을 거예요. 나중에 사람들이 그 하얀 돌을 대부분 떼어 가 카이로의 집과 모스크를 짓는 데 썼답니다.
누가 지었을까요? 예전에는 노예가 지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요. 고고학자들은 일꾼들이 살던 마을을 찾아냈는데, 빵 굽는 곳과 생선·고기를 요리하던 곳이 있었어요. 피라미드 가까이에는 일꾼들이 정성껏 묻힌 무덤도 있었지요. 농부, 뱃사공, 석공 등 여러 기술자가 돌아가며 왕을 위해 일했어요.
심지어 건설에 참여한 사람이 쓴 일기도 있어요! 메레르라는 사람이 파피루스에 업무 일지를 남겼는데, 자기 팀이 하얀 석회암을 배에 싣고 나일강을 따라 기자로 옮긴 이야기가 적혀 있어요.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글이 적힌 파피루스 가운데 하나예요.
피라미드 안에는 좁은 통로와 ‘대회랑’이라는 높고 비스듬한 복도, 그리고 돌관이 아직 놓여 있는 분홍빛 화강암 방이 있어요. 과학자들은 지금도 탐험 중이에요. 2017년에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뮤온’이라는 아주 작은 입자를 이용해 안쪽에 숨은 커다란 빈 공간을 찾아냈어요.
한눈에 보기
- 주인
- 쿠푸(그리스어 케옵스).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의 두 번째 왕
- 연대
- 널리 쓰이는 연대기로 기원전 약 2589~2566년(쿠푸의 재위). 연대기에 따라 수십 년 차이가 있다
- 위치
- 이집트 나일강 서안의 기자 고원. 지금은 대카이로의 가장자리
- 크기
- 원래 높이 약 146.6m(현재 약 138.5m), 밑변 한 변 약 230.3m
- 재료
- 현지 석회암 속채움, 투라산 흰 석회암 외장(대부분 사라짐), ‘왕의 방’은 아스완 화강암
- 고대 이름
- 아케트 쿠푸, ‘쿠푸의 지평선’
- 지위
-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한 현존 건축물. 유네스코 세계유산 ‘멤피스와 네크로폴리스 — 기자에서 다흐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대’(1979)의 일부
- 주요 발견
- 쿠푸 이름이 적힌 작업조 낙서(1837), 쿠푸의 배(1954), 메레르의 일기 파피루스(2013), 내부의 거대한 빈 공간(2017)
쉬움
대피라미드란 무엇인가
대피라미드는 오늘날 카이로 근처 기자 고원에 있는 세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역사가들이 고왕국이라고 부르는 시대, 이집트 제4왕조의 왕 쿠푸의 무덤으로 지어졌다. 약 2천 년 뒤에 이 피라미드에 대해 쓴 그리스인들은 왕을 케옵스라고 불렀다. 이집트인은 피라미드를 ‘아케트 쿠푸’, 곧 ‘쿠푸의 지평선’이라 불렀다. 왕이 새벽의 해처럼 하늘로 떠오르는 자리라는 뜻이다.
크기는 지금 보아도 놀랍다. 원래 높이는 약 146.6m였으나 꼭대기와 겉면을 잃어 지금은 약 138.5m다. 정사각형 밑변의 한 변은 약 230m, 바닥 면적은 5헥타르가 넘는다. 돌덩이는 약 230만 개로 추정된다. 수천 년 동안 이것은 지구상에서 사람 손으로 만든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나중에 이 피라미드를 여행자들이 감탄하던 명소 목록인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넣었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나 로도스의 거상 같은 나머지는 사라졌거나 폐허로만 남았다. 그중 가장 오래된 대피라미드만이 지금도 서 있다.
쉬움
피라미드 ‘읽기’ — 겉, 속, 그리고 둘레
겉. 오늘날 보이는 것은 크고 거칠게 다듬은 석회암으로 쌓은 계단 모양의 속채움이다. 원래는 나일강 건너 투라에서 캐낸, 곱게 간 흰 석회암이 겉면 전체를 덮고 있었다. 외장석은 이음매가 아주 가늘 만큼 빈틈없이 맞춰졌고, 지금도 밑부분에 몇 개가 남아 있다. 네 면은 거의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는데, 오차는 겨우 몇 분(分), 곧 1도의 몇 분의 1에 불과하다.
속. 입구는 북쪽 면에 있다. 내려가는 통로는 암반 속 미완성 지하실로 이어진다. 올라가는 통로는 수평 복도와 ‘왕비의 방’이라 불리는 방으로 이어지는데, 이 이름은 후대 탐험가들이 붙인 것으로 실제로 왕비가 묻힌 적은 없다. 더 올라가면 통로가 ‘대회랑’으로 열린다. 돌을 조금씩 내밀어 쌓은 천장이 약 8.6m 높이로 솟은, 길이 46m가 넘는 좁고 높은 복도다.
대회랑 끝에는 약 800km 남쪽 아스완에서 가져온 붉은 화강암으로 전부 두른 ‘왕의 방’이 있다. 뚜껑 없는 화강암 석관이 놓여 있는데, 탐험가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비어 있었다. 방 위에는 거대한 화강암 들보로 나뉜 낮은 공간 다섯 개가 있다. 이 ‘하중 분산실’은 위에서 누르는 무게를 흩어 주는 역할을 했다. 왕의 방과 왕비의 방에서 바깥쪽으로 좁은 통로가 뻗어 있는데, 환기용인지 왕의 영혼이 별에 닿게 하려는 것인지 논쟁이 있다.
둘레. 피라미드는 더 큰 묘역의 중심이었다. 동쪽에는 죽은 왕에게 제물을 바치던 장제전이 있었고, 둑길이 경작지 가장자리의 하안 신전으로 이어졌다. 왕비들을 위한 작은 피라미드 세 기, 작은 위성 피라미드, 실제 크기의 배를 묻은 구덩이 여러 개가 있었고, 왕족과 관리들이 왕 곁에 머물기 위해 묻힌 ‘마스타바’라는 돌무덤이 줄지어 있었다.
쉬움
쿠푸와 피라미드의 시대
쿠푸는 그 이전 가장 야심 찬 피라미드 건설자였던 스네프루 왕의 아들이다. 스네프루는 메이둠과 다흐슈르에 적어도 세 개의 큰 피라미드를 지었다. 공사 도중 경사각을 바꾼 ‘굴절 피라미드’와 최초의 매끈한 진정한 피라미드인 ‘붉은 피라미드’가 그것이다. 쿠푸의 건설자들은 이 경험을 이어받아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그보다 한 세기쯤 전, 조세르 왕의 건축가 임호테프는 사카라에 돌로 된 최초의 대형 피라미드인 계단식 피라미드를 세웠다. 돌 단 여섯 개를 쌓은 모양이었다. 불과 몇 세대 만에 이집트 건축가들은 계단 모양에서 대피라미드의 거대하고 정밀한 기하학으로 나아갔다. 이 빠른 발전은 이집트 국가가 얼마나 강력하고 잘 조직되어 있었는지 보여 준다.
놀랍게도 쿠푸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적다. 확실히 그의 것으로 확인된 온전한 조각상은 1903년 플린더스 페트리가 아비도스에서 찾은 높이 약 7.5cm의 작은 상아상 하나뿐이다. 훨씬 뒤 이집트의 이야기들과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그를 가혹한 통치자로 그렸지만, 그의 사후 오랜 뒤에 쓰인 이야기라 믿을 만한 역사로 보기 어렵다. 이집트인들은 여러 세기 동안 그를 기리는 제의를 이어 갔다.
중급
어떻게 지었나
속채움 돌 대부분은 피라미드 바로 남쪽, 기자 고원 안의 채석장에서 잘라 냈다. 일꾼들은 구리 끌과 톱, 나무 쐐기, 돌망치, 연마제로 쓴 모래를 사용했고, 단단한 화강암은 주로 조립현무암(돌레라이트) 돌로 두드리고 갈아서 다듬었다. 고운 외장용 석회암은 투라에서 배로 실어 왔고, 아스완 화강암은 나일강을 따라 띄워 내려왔다.
돌을 어떻게 들어 올렸는지는 고고학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다. 많은 이집트학자는 진흙벽돌·잡석·석회암 부스러기로 만든 경사로를 썼다고 보지만, 그 모양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길게 곧은 경사로, 피라미드를 휘감아 올라가는 나선형 경사로, 한 면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경사로, 또는 이들의 조합이다. 건축가 장피에르 우댕은 내부 경사로를 제안했으나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지렛대와 썰매는 분명히 쓰였다. 중왕국 시대 무덤 벽화에는 거대한 조각상을 썰매로 끄는데 한 사람이 그 앞에 액체를 붓는 장면이 있고, 실험에 따르면 모래를 적시면 마찰이 크게 줄어든다.
최근 고고학은 새로운 증거를 더했다. 2018년 하트누브 설화석고 채석장에서 작업하던 연구팀은 쿠푸 시대 무렵의 가파른 경사로를 보고했다. 양옆에 기둥 구멍과 계단이 있어, 가파른 비탈 위로 돌을 끌어 올리는 장치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고대 퇴적층 연구는 나일강의 한 지류와 이어진 수역이 지금보다 훨씬 기자 가까이까지 와 있어, 배가 공사 현장 가까이 돌을 실어 날랐음을 보여 주었다.
계획과 정밀도는 놀랍다. 밑변은 거의 완벽하게 수평이고 정사각형이며, 진북에 대한 방향 오차는 몇 분 이내다. 이집트인이 이를 어떻게 해냈는지는 논쟁 중이다. 천구의 극 주위를 도는 별을 관측했다는 설, 수직 막대의 그림자로 해를 추적했다는 설 등이 있다. 전승은 왕족이자 재상으로 피라미드 서쪽에 큰 무덤을 남긴 헤미우누를 왕의 공사 감독으로 꼽는다.
중급
건설자들 — 노동력, 마을, 그리고 일기
채찍 아래 노예가 일했다는 대중적 이미지는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1980년대 말부터 마크 레너가 이끄는 고고학자들은 기자 고원 남쪽에서 ‘헤이트 엘구라브’, 이른바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잃어버린 도시’를 발굴해 왔다. 빵집, 양조장, 창고, 작업장, 막사처럼 긴 건물이 나왔고, 엄청난 양의 동물 뼈는 일꾼들이 소고기, 양·염소 고기, 생선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그 근처에서 자히 하와스는 1990년부터 일꾼과 감독관의 묘지를 발굴했다. 사람들은 왕의 기념물 가까이 제물과 함께 작은 무덤에 묻혔는데, 이는 그들의 일이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졌음을 시사한다. 유골에는 고된 육체노동의 흔적과 함께 아문 골절, 심지어 수술 흔적도 있어 다친 일꾼이 치료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는 숙련 장인과 관리자로 이루어진 상근 핵심 인력에, 국가에 대한 일종의 의무 노역으로 교대 복무한 더 많은 노동자가 더해졌다고 본다. 이들은 이름을 가진 작업조와 반으로 조직되었다. 하중 분산실 안에 남은 낙서에는 쿠푸의 이름을 넣어 지은 작업조 이름이 있다. 헤로도토스는 10만 명이 석 달씩 교대하며 20년 동안 일했다고 썼지만, 한 시점의 인원에 대한 현대의 추정은 그보다 훨씬 적어 많아야 수만 명 수준이며, 추정치의 폭도 넓다.
2013년 피에르 탈레가 이끄는 프랑스·이집트 조사단은 홍해 연안의 옛 항구 와디 알자르프에서 파피루스를 발견했다. 그 가운데 ‘메레르의 일기’는 약 40명의 팀을 이끈 감독관이 쓴 업무 일지다. 쿠푸 재위 27년 무렵, 그의 팀이 투라 채석장의 석회암을 나일강 건너 기자로 옮기며 ‘셰쿠푸’라는 항구에 들렀다는 기록이 있다. 왕의 이복형제 안크하프도 고위 관리로 등장한다. 글이 적힌 파피루스로는 가장 오래된 축에 들며, 피라미드 공사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준다.
중급
왜 피라미드인가 — 종교와 왕권
이집트인에게 왕은 신과 인간을 잇는 존재였다. 왕이 죽으면 신들과 합류해, 하늘로 올라 태양신 라와 함께 여행하고 북쪽 천구의 극 주위를 도는 ‘지지 않는 별들’ 사이에 자리 잡는다고 믿었다. 피라미드는 이 변화를 일으키는 장치였다. 왕의 몸을 지키고 제물과 의례로 그의 영원한 삶을 떠받치는 곳이었다.
피라미드 모양에는 태양과 관련된 뜻이 담겼을 것이다. 천지 창조 때 물에서 솟아오른 언덕과 연결되는 신성한 돌 ‘벤벤’을 떠올리게 하고, 땅으로 퍼져 내리는 햇살을 나타냈을 수도 있다. ‘쿠푸의 지평선’이라는 이름은 왕을 해가 뜨고 지는 자리와 잇는다. 다만 왕의 승천을 묘사하는 주문인 ‘피라미드 텍스트’는 약 두 세기 뒤인 제5왕조 말부터 피라미드 안에 새겨졌으므로, 이를 근거로 쿠푸의 피라미드를 설명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피라미드는 왕권의 선언이기도 했다. 그것을 짓기 위해서는 나라 전체에 걸쳐 식량과 배, 도구, 노동력, 지식을 조직해야 했다. 일부 역사가는 피라미드 공사 자체가 막대한 규모로 계획하고 세고 기록하고 물자를 대는 일을 강요함으로써 이집트 국가 행정을 만들어 냈다고 본다.
중급
쿠푸 이후 — 도굴꾼, 여행자, 과학자
피라미드는 아마 고대에 이미 도굴되었을 것이다. 안에서 쿠푸의 매장품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기원전 5세기의 헤로도토스를 비롯한 그리스·로마 작가들이 피라미드를 묘사하고 이집트 안내인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모았다. 중세 아랍 작가들도 이를 기록했으며, 전승은 오늘날 방문객 대부분이 드나드는 굴을 820년 무렵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마문이 뚫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흰 외장석 상당수는 1303년의 큰 지진으로 헐거워졌고, 이후 카이로의 건축 자재로 뜯겨 나갔다. 14세기 술탄 하산 모스크·마드라사도 그 가운데 하나다. 피라미드가 지금 거칠고 계단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과학적 연구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1798~1801)에 동행한 학자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1837년 하워드 바이스 대령과 존 페링은 화약으로 위쪽 하중 분산실에 들어가 쿠푸의 작업조 이름이 적힌 붉은 표시와 낙서를 찾아냈다. 플린더스 페트리는 1880~82년에 정밀한 측량으로 피라미드를 새롭게 쟀다. 1954년 이집트 고고학자 카말 엘말라크는 남쪽의 구덩이에서 해체된 채 묻힌 길이 40m가 넘는 삼나무 배, 곧 ‘쿠푸의 배’를 발견했다. 배는 다시 조립되었고 뒤에 대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피라미드는 19세기의 ‘피라미드학’부터 사라진 문명이나 외계인을 내세우는 요즘의 주장까지, 수많은 비주류 이론도 끌어들였다. 고고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채석장, 도구, 일꾼 마을, 무덤, 낙서, 파피루스가 함께, 피라미드가 쿠푸 시대에 이집트인들이 지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중급
오늘의 피라미드 — 유산, 관광, 커져 가는 도시
1979년 기자의 피라미드들은 ‘멤피스와 네크로폴리스 — 기자에서 다흐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대’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고원은 이집트 문화재 당국이 관리하며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는다.
유적은 현대의 압력에 놓여 있다. 커져 가는 카이로 도시, 교통과 오염, 지하수 변화, 수많은 방문객이 남기는 마모다. 피라미드에 오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고원 가까이 문을 연 대이집트 박물관이 쿠푸의 배를 전시하는 것도, 기자의 유산을 보호하면서 세계에 보여 주려는 더 넓은 노력의 일부다.
심화
학술 논쟁과 열린 질문
연대. 쿠푸의 재위는 기원전 26세기 초중반으로 보지만, 이집트 연대기마다 수십 년씩 차이가 난다. 피라미드 모르타르 속 유기물로 얻은 방사성 탄소 연대는 역사적 연대보다 다소 이르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건설자들이 오래된 나무를 태웠거나 옛 재료를 다시 썼다면 시료가 더 오래되어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 있다. 메레르의 일기는 쿠푸 재위 후반에도 피라미드 관련 공사가 진행 중이었음을 확인해 준다.
건설 방법. 어느 한 경사로 이론도 모든 증거를 설명하지 못한다. 곧은 경사로는 엄청난 양의 재료가 필요하고, 나선형 경사로는 측량에 필요한 모서리를 가리며, 내부 경사로는 직접적 확증이 없다. 지금은 높이에 따라 여러 기법을 섞어 썼다고 보는 연구자가 많다. 왕의 방의 무거운 화강암 들보를 어떻게 들어 올렸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내부 구조. 공사 도중 계획이 바뀌었을까? 미완성 지하실과 왕비의 방은, 설계가 바뀌면서 버려진 이전 단계의 매장실로 해석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의례 기능을 가진 처음부터의 단일 계획의 일부로 해석되기도 한다. 1993년 루돌프 간텐브링크의 로봇이 탐사한 왕비의 방 통로는 구리 부속이 달린 작은 돌 ‘문’에서 끝나는데, 그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숨은 공간. 뮤온 영상을 쓰는 스캔피라미드 프로젝트는 2017년 대회랑 위에서 길이 30m 이상의 거대한 빈 공간을 발견했다고 발표했고, 2023년에는 북쪽 입구 위 ㅅ자형 돌 뒤에서 길이 약 9m의 통로를 확인했다. 거대한 빈 공간이 무게를 덜기 위한 공간이나 공사용 회랑 같은 건축적 요소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심화
증거와 방법
쿠푸 당대의 문자 증거는 드물지만 결정적이다. 하중 분산실에 칠해진 작업조 이름, 메레르 파피루스, 주변 묘지에 묻힌 관리와 왕족의 무덤 비문이 그것이다. 중왕국 시대의 이야기나 헤로도토스 같은 후대 텍스트는 쿠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아니라 이집트인과 그리스인이 그를 어떻게 기억했는지를 알려 준다.
취락 고고학은 이 분야를 바꾸어 놓았다. 일꾼 마을과 묘지 발굴, 동물 뼈·빵틀·토기 분석, 유골 연구는 이 사업이 일꾼을 어떻게 먹이고 재우고 돌보았는지 보여 주었다. 고원과 채석장, 항구의 조사와 지도 작성은 석재 공급의 물류를 드러낸다.
과학적 방법의 역할도 크다. 정밀 레이저 측량,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석재 산지를 추적하는 지질학, 옛 나일강 물길을 복원하는 퇴적층 시추, 뮤온 단층 촬영 같은 비파괴 영상 기법이 쓰인다. 실험 고고학은 돌을 어떻게 자르고 옮길 수 있었는지 시험한다. 이 모든 접근은 피라미드를 하나의 기념물일 뿐 아니라 한 사회 전체가 만들어 낸 결과물로 이해해야 함을 보여 준다.
핵심 개념
- 왕릉이자 부활의 장치
- 피라미드는 왕의 몸을 지키고 신과 별들 사이에서 누릴 영원한 삶을 떠받쳤다.
- 지평선
- ‘아케트 쿠푸’라는 이름은 왕을 해가 뜨고 지는 자리와 잇는다.
- 국가 조직
- 피라미드를 짓는 데는 이집트 전역에 걸친 계획, 식량 공급, 운송, 기록이 필요했다.
- 정밀 공학
- 수평인 밑변, 정사각형 평면, 1도의 몇 분의 1까지 정확한 방위.
- 대가를 받는 조직된 노동
- 일꾼 마을, 무덤, 낙서는 노예 무리가 아니라 조직된 작업조를 보여 준다.
- 계단에서 진정한 피라미드로
- 약 한 세기 만에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쿠푸의 매끈한 거대 피라미드로 나아갔다.
- 신화보다 증거
- 채석장, 도구, 파피루스, 취락은 피라미드를 누가 지었는지에 대한 비주류 이론을 반박한다.
기록
- 약 기원전 2600년 — 쿠푸의 아버지 스네프루가 다흐슈르에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를 짓는다.
- 약 기원전 2589년 — (널리 쓰이는 연대기로) 쿠푸가 즉위하고 기자의 피라미드 공사가 시작된다.
- 약 기원전 2563년 — 쿠푸 재위 27년 무렵, 메레르의 팀이 투라 석회암을 기자로 실어 나른 일이 그의 일기에 기록된다.
- 약 기원전 440년 —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방문해 케옵스와 그의 피라미드 이야기를 기록한다.
- 약 820년 — 전승에 따르면 칼리파 알마문이 피라미드에 굴을 뚫는다.
- 1303년 — 큰 지진으로 외장석이 헐거워지고, 이후 상당수가 카이로에서 다시 쓰인다.
- 1837년 — 하워드 바이스와 존 페링이 위쪽 하중 분산실을 열고 쿠푸의 이름이 담긴 낙서를 찾는다.
- 1954년 — 카말 엘말라크가 피라미드 옆 구덩이에서 쿠푸의 배를 발견한다.
- 1979년 — 기자에서 다흐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다.
- 2013년 — 피에르 탈레의 조사단이 와디 알자르프에서 메레르의 일기 파피루스를 찾는다.
- 2017년 — 스캔피라미드 프로젝트가 대회랑 위의 거대한 빈 공간을 발표한다.
- 2023년 — 북쪽 면 뒤에 숨은 통로가 내시경 카메라로 확인된다.
용어 풀이
- 파라오
- 고대 이집트 왕을 가리키는 말. ‘큰 집’을 뜻하는 이집트어 표현에서 왔다.
- 고왕국
- 대략 기원전 2700~2200년의 이집트 역사 시기. ‘피라미드 시대’라고도 한다.
- 왕조
- 같은 가문이나 계보에서 나온 통치자들의 계열. 쿠푸는 제4왕조에 속한다.
- 마스타바
- 관리와 왕족을 위한 윗면이 평평한 직사각형 무덤. 피라미드 둘레에 줄지어 있다.
- 외장석
- 한때 피라미드 겉면을 덮었던, 매끈하고 빈틈없이 맞춘 바깥쪽 돌.
- 내쌓기 천장
- 돌을 한 단씩 안쪽으로 조금씩 내밀어 쌓아 위에서 만나게 한 천장. 대회랑이 그 예다.
- 석관
- 돌로 만든 큰 관. 왕의 방에는 지금도 화강암 석관이 있다.
- 하중 분산실
- 왕의 방 위의 다섯 공간. 위에서 누르는 돌의 무게를 흩어 준다.
- 뮤온 단층 촬영
- 구조물을 통과하는 우주선(宇宙線) 입자를 측정해 거대한 구조물 내부를 영상화하는 방법.
- 파피루스
- 파피루스 식물로 만든 고대 이집트의 필기 재료.
- 재상
- 이집트 정부에서 왕 다음가는 최고위 관리.
묻고 답하기
노예가 피라미드를 지었나요?
증거로 보면 아니에요. 일꾼들은 조직된 마을에 살며 빵과 맥주, 고기와 생선을 받았고, 일부는 피라미드 가까이 명예로운 무덤에 묻혔어요. 많은 사람이 국가에 대한 의무로 교대 근무를 했을 거예요.
짓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쿠푸의 재위 기간과 비슷한 약 20년으로 봐요. 헤로도토스도 20년이라고 했지만, 그의 다른 설명은 덜 믿을 만해요.
안에서 쿠푸의 미라가 나왔나요?
아니요. 탐험가들이 왕의 방에 들어갔을 때 화강암 석관은 비어 있었어요. 아마 고대에 이미 도굴되었을 거예요.
왜 이제는 매끈하고 하얗지 않나요?
1303년 지진 뒤, 중세에 매끈한 석회암 외장 대부분이 떼어져 카이로의 건물에 다시 쓰였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네 면을 그렇게 정확히 북쪽에 맞췄나요?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어요. 천구의 극 둘레를 도는 별이나 해 그림자를 이용했다는 방법들이 제안되었고, 일부는 실험으로 검증되기도 했어요.
2017년에 발견된 ‘거대한 빈 공간’은 무엇인가요?
뮤온 영상으로 대회랑 위에서 길이 30m 이상의 빈 공간이 드러났어요. 모양과 용도는 알 수 없고, 아직 아무도 들어가 보지 못했어요.
방사성 탄소 연대는 얼마나 믿을 만한가요?
모르타르에서 얻은 연대는 대체로 고왕국 시대임을 확인해 주지만, 역사적 연대보다 다소 이르게 나오는 경향이 있어요. 오래된 나무나 재사용 재료 때문일 수 있어서, 문헌·고고학 증거와 함께 판단해요.
대피라미드가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인가요?
아니요. 사카라의 조세르 계단식 피라미드와 스네프루의 피라미드들이 더 오래되었어요. 대피라미드는 가장 큰 피라미드이지 최초의 피라미드는 아니에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 Memphis and its Necropolis – the Pyramid Fields from Giza to Dahshur.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 Great Pyramid of Giza. Wikipedia
- Khufu. Wikipedia
- Giza pyramid complex. Wikipedia
- Diary of Merer. Wikipedia
- Egyptian pyramid construction techniques. Wikipedia
- ScanPyramids. Wikipedia
- Hemiunu. Wikipedia
- Mark Lehner, Zahi Hawass, Giza and the Pyramids. Thames & Hudson, 2017
- Pierre Tallet, Mark Lehner, The Red Sea Scrolls: How Ancient Papyri Reveal the Secrets of the Pyramids. Thames & Hudson, 2021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