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아술...

Azul... (Rubén Darío, 1888)

1888년 · 발파라이소, 칠레

한 문장으로

『아술...』은 니카라과의 젊은 시인 루벤 다리오가 1888년 칠레에서 펴낸 작은 소설·시 모음집으로, 음악처럼 울리는 새로운 스페인어 글쓰기로 ‘모데르니스모’라는 문학 운동의 문을 연 책입니다.

아술...
이미지: Ruben Dario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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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아술(Azul)’은 스페인어로 ‘파란색’이라는 뜻이에요. 하늘과 바다의 색이지요. 이 책을 쓴 사람에게 파란색은 꿈과 예술의 색이었어요.

지은이는 중앙아메리카 니카라과에서 온 젊은이 루벤 다리오예요. 열아홉 살 때 이름을 떨쳐 보겠다는 꿈을 안고 남아메리카의 칠레까지 배를 타고 갔어요. 가난해서 신문사와 발파라이소 항구에서 일했지만, 틈만 나면 글을 썼어요.

1888년, 스물한 살의 다리오는 자기가 쓴 이야기와 시를 모아 얇은 책 한 권을 냈어요. 책에는 요정, 땅속 난쟁이 그놈, 반은 사람 반은 염소인 사티로스,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꿈의 베일을 씌워 주는 요정 여왕이 나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어요. 부두에서 일하다 다친 소년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도 있고, 봄·여름·가을·겨울을 따라가는 시도 있어요.

이 책이 특별했던 까닭은 소리에 있어요. 다리오는 화가가 물감을 고르듯 낱말을 고르고, 음악을 짓듯 문장을 배열했어요. 많은 독자가 스페인어를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지요.

처음에는 알아본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스페인의 유명한 작가가 신문에서 이 책을 칭찬했고, 곧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의 젊은 작가들이 다리오의 문체를 따라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작고 파란 책이 스페인어 문학의 새 장을 열었다고 말해요.

한눈에 보기

지은이
루벤 다리오(본명 펠릭스 루벤 가르시아 사르미엔토, 1867~1916), 니카라과 시인
초판
1888년 칠레 발파라이소, 엑셀시오르 인쇄소(Imprenta y Litografía Excelsior). 7월 말 인쇄 완료
재판
1890년 과테말라시티. 새 단편, 소네트, 프랑스어 시, 작가 주석을 더한 개정·증보판
형식
산문 단편, 산문 스케치(‘칠레에서’), 시(‘서정의 해’, 재판에서 소네트 추가)를 묶은 복합 모음집
언어
스페인어. 당대 프랑스 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음
문학 운동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모데르니스모의 출발점이 된 책으로 널리 평가됨
주목한 독자
스페인 소설가·비평가 후안 발레라. 1888년 10월 마드리드 신문 『엘 임파르시알』에 두 편의 공개 편지로 서평을 씀

쉬움

『아술...』은 어떤 책인가

『아술...』은 루벤 다리오의 단편소설, 산문 스케치, 시를 모은 책으로, 1888년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두꺼운 책도 아니었고, 거의 아무도 모르는 작가가 지방 항구 도시에서 찍어 낸 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이 책은 스페인어 문학사의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제목은 ‘파랑...’이라는 뜻입니다. 뒤에 붙은 말줄임표는 생각이 꿈속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다리오는 훗날 파랑이 자신에게 “꿈의 색, 예술의 색, 헬라스(그리스)적이고 호메로스적인 색”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색은 잿빛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가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책이 가장 유명한 것은 문체 때문입니다. 다리오는 스페인어 산문과 운문이 당대 최고의 프랑스 문학만큼 다채롭고 음악적이며 세련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드물고 귀한 낱말, 보석·꽃·백조·대리석 같은 눈부신 이미지, 뜻밖의 형용사, 공들여 균형을 맞춘 리듬을 썼습니다. 비평가들은 곧 이 문체를 ‘모데르니스모’라고 불렀고, 이는 이 책이 이끈 문학 운동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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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니카라과에서 온 젊은 시인

루벤 다리오는 1867년 1월 18일 니카라과의 작은 마을 메타파(지금의 시우다드다리오)에서 펠릭스 루벤 가르시아 사르미엔토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시를 쓴 신동으로, 고국에서는 ‘소년 시인’으로 유명했습니다. ‘다리오’라는 성은 집안의 별명에서 온 것으로, 그는 이를 필명으로 삼았습니다.

10대 때 한동안 엘살바도르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 시인 프란시스코 가비디아가 그에게 프랑스 시, 특히 빅토르 위고를 소개하고 프랑스 시의 형식을 스페인어로 옮겨 보자는 생각을 심어 주었습니다.

1886년 6월, 열아홉 살의 다리오는 당시 스페인어권 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하고 국제적인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칠레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산티아고의 신문, 특히 『라 에포카』와 발파라이소의 신문에 글을 썼고, 한동안 항구의 세관 감시원으로 일했습니다. 칠레 대통령의 아들이자 젊은 작가였던 페드로 발마세다 토로와 친구가 되었는데, 그 역시 프랑스적인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이런 친구들을 통해 그는 최신 프랑스 책과 잡지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다리오는 늘 돈이 부족했지만, 칠레에서 보낸 이 시절이 『아술...』을 쓸 수 있는 독서와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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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책 속에는 무엇이 있나

초판은 칠레의 부유한 문학 후원자 페데리코 바렐라에게 바치는 헌사와 칠레 시인 에두아르도 데 라 바라의 긴 서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다음은 세 부분입니다. 첫째 ‘산문 이야기(Cuentos en prosa)’에는 단편 아홉 편이 실렸습니다. 둘째 ‘칠레에서(En Chile)’는 발파라이소와 산티아고를 그린 짧은 산문 그림들로, ‘항구 앨범’과 ‘산티아고 앨범’으로 나뉘며 이야기와 산문시의 중간쯤에 있습니다. 셋째 ‘서정의 해(El año lírico)’는 계절을 따라 배열한 시들로, ‘봄의 노래(Primaveral)’, ‘여름의 노래(Estival)’, ‘겨울의 노래(Invernal)’ 등이 들어 있습니다.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마브 여왕의 베일」에서는 가난한 조각가, 화가, 음악가, 시인 네 사람이 신세를 한탄하자, 조그만 요정 여왕이 그들에게 꿈의 베일을 씌워 늘 희망을 품게 해 줍니다. 「루비」에서는 파리의 화학자가 인공 루비를 만들었다는 소식에 땅속 난쟁이들이 코웃음을 칩니다. 「태양의 궁전」에서는 창백하고 슬픈 소녀가 마법 같은 사랑의 경험으로 병이 낫습니다.

날카롭고 사실적인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부르주아 왕」은 예술이 아니라 사치만 사랑하는 부자 왕의 궁전에 들어간 굶주린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시인은 정원에서 손풍금 손잡이를 돌리라는 명령을 받고, 결국 눈 속에서 얼어 죽습니다. 「짐짝」은 발파라이소 부두의 늙은 하역 노동자가 배에서 짐을 부리다 무거운 짐짝에 깔려 죽은 아들을 떠올리는 이야기입니다. 「황금의 노래」는 부자들의 저택 앞에서 거지 시인이 부르는 반어적인 찬가입니다.

사실적인 이야기조차 똑같이 세련되고 음악적인 문체로 쓰여 있어 묘한 이중 효과를 냅니다. 언어의 아름다움이 가난과 잔혹함과 불의에 맞세워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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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역사적 배경: 칠레, 시장, 그리고 작가

1880년대 칠레는 초석(질산염)과 구리 수출로, 특히 태평양 전쟁(1879~1884)에서 페루와 볼리비아에 승리한 뒤 부유해지고 있었습니다. 발파라이소는 태평양에서 가장 붐비는 항구 가운데 하나로, 배와 외국 상인과 유럽 상품으로 가득했습니다. 산티아고의 상류층은 유행, 가구, 책을 모두 파리에서 찾았습니다. 이런 부와 수입 사치품의 분위기는 『아술...』 곳곳에 찬탄과 비판을 함께 받으며 나타납니다.

글쓰기가 직업이 되어 가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시인들은 더는 귀족 후원자에게 기댈 수 없었고, 대부분 기자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아술...』에 실린 다리오의 글 상당수도 1886년 말에서 1888년 중반 사이에 먼저 신문에 실렸습니다. 돈만 중시하는 사회와 예술가의 갈등은 이 책의 중요한 주제이며, 가장 유명한 예가 쓰디쓴 반어로 ‘즐거운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부르주아 왕」입니다.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곳곳에서 다른 작가들도 새로운 문학 언어를 찾고 있었습니다. 호세 마르티의 시집 『이스마엘리요』(1882)와 마누엘 구티에레스 나헤라의 『연약한 이야기들』(1883)은 흔히 모데르니스모의 선구로 꼽힙니다. 『아술...』이 혼자 이 운동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흐름을 특히 인상적이고 영향력 있는 형태로 모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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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문체와 기법: ‘프랑스식으로’ 쓴 스페인어

다리오는 훗날 『아술...』을 고답파(파르나스파)의 책, 따라서 프랑스의 책이라고 하며, 이 책에서 ‘파리풍 이야기’, 프랑스식 형용사, 프랑스식 어법이 처음으로 스페인어에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고답파는 르콩트 드 릴과 테오도르 드 방빌 같은 프랑스 시인들로, 완벽한 형식, 조각 같은 이미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중시했습니다. 다리오는 카튈 망데스, 테오필 고티에, 공쿠르 형제의 산문도 좋아했습니다.

그의 산문은 회화와 음악의 기법을 빌려 왔습니다. 묘사는 색채, 질감, 상아·도자기·진주·대리석·백합 같은 귀한 재료로 짜입니다. 문장은 반복과 절묘하게 놓인 쉼으로 리듬을 타서, 산문이 자주 시처럼 느껴집니다. 『아술...』이 나오기 직전인 1888년 4월에 발표한 글에서 다리오는 ‘퇴폐적’이라고 비난받던 프랑스 작가들을 옹호하며, 작가는 언어의 모든 울림을 동원해야 하고 ‘소리의 색’을 그리려는 시도조차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신화적인 이야기들은 고대 그리스, 동화, 셰익스피어(마브 여왕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왔습니다)에 기댑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에는 근대 도시, 부두, 신문, 과학 뉴스가 함께 나옵니다. 고대와 근대, 이국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 꿈과 사회가 뒤섞이는 이 모습은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모데르니스모의 전형입니다.

운문에서 다리오는 스페인어에서 드물게 쓰이던 운율을 실험했습니다. 재판에는 전통적인 스페인어 11음절 시행 대신 프랑스 시를 본뜬 14음절의 알렉상드랭(알레한드리노)으로 쓴 소네트가 들어갔습니다. 이 혁신은 스페인어 시에 오래도록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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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주요 주제

적대적인 세상 속의 예술가. 시인과 예술가는 되풀이해서 가난하고, 오해받고, 돈에 사로잡힌 사회에 짓밟힙니다. 부르주아 왕은 예술을 장식품으로 삽니다. 「파랑새」에서 머릿속에 파랑새가 산다고 말하던 파리의 젊은 시인은 끝내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새장을 열어 줍니다. 세상이 아름다움을 알아주지 않기에 아름다움은 더욱 귀합니다.

피난처로서의 아름다움과 꿈. 푸른 하늘, 요정의 선물, 님프와 사티로스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날 길을 줍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도피 문학이 아닙니다. 꿈에는 자주 반어, 상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마브 여왕의 베일은 희망의 선물이면서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과 육체. 여러 이야기와 시가 에로틱한 사랑과 몸의 아름다움을 거리낌 없는 이교적 정신으로 찬미합니다. 한 청년의 첫사랑을 다룬 「하얀 비둘기와 갈색 왜가리」가 그 예입니다. 다리오는 자서전에서 이 무렵 자기 안의 금욕주의자는 사라지고 ‘이교도’가 남았다고 썼습니다.

사회적 불의. 「짐짝」과 「황금의 노래」는 가난한 사람, 노동자, 굶주린 사람을 보여 줍니다. 이 이야기들은 흔히 상아탑에 산다고 비판받는 모데르니스모가 주변 사회를 똑바로 볼 줄도 알았음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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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반응: 후안 발레라의 편지

『아술...』은 칠레에서 그리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운명이 바뀐 것은 한 권이 마드리드의 후안 발레라에게 닿으면서였습니다. 발레라는 스페인에서 가장 존경받는 소설가·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이자 스페인 왕립 학술원 회원이었습니다. 다리오가 헌사를 적어 보낸 책은 당시 발파라이소에 외교관으로 있던 발레라의 친척 안토니오 알칼라 갈리아노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발레라는 1888년 10월 22일과 29일 마드리드 신문 『엘 임파르시알』의 월요 문예판에 실은 「아메리카 서한」 두 편에서 이 책을 다루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제목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예술은 창공(azur)이다”라는 빅토르 위고의 말이 떠올라, 다리오도 흔한 위고 모방자가 아닐까 걱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읽고 나서는 책의 재능, 세계를 넘나드는 무대, 문체의 완성도를 칭찬했습니다.

발레라는 동시에 다리오의 ‘정신적 갈리시즘’, 곧 프랑스인처럼 생각하고 쓰는 습관을 경계했습니다. 스페인 문단의 중심에서 나온 이 칭찬과 비판이 다리오를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리오는 발레라의 편지를 재판의 서문으로 실었고, 그 뒤로 이 편지는 여러 판본에서 책과 함께 실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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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책이 만들어지고 바뀐 과정: 1888, 1890, 1905

초판은 발파라이소의 엑셀시오르 인쇄소에서 찍었고 1888년 7월 말에 인쇄가 끝났습니다. 지금은 칠레 국립도서관의 ‘메모리아 칠레나’ 포털에서 디지털 사본을 볼 수 있습니다. 실린 글 대부분은 1886년 12월(「파랑새」)부터 1888년 6월(「하얀 비둘기와 갈색 왜가리」) 사이에 칠레 신문에 먼저 발표되었습니다. 초판의 수록 작품 수는 자료마다 세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단편 아홉 편, ‘칠레에서’ 스케치, 그리고 몇 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다리오는 1889년 초 칠레를 떠났습니다. 엘살바도르에 머물다 1890년 정변으로 피신해야 했고, 과테말라에 자리 잡은 뒤 그곳에서 같은 해 개정·증보된 재판을 냈습니다. 재판에는 단편 세 편(「중국 황후의 죽음」, 「귀먹은 사티로스」, 「한 별에게」), 칠레 서사시 전통 속 마푸체 전사 지도자를 노래한 「카우폴리칸」과 「비너스」 등이 든 ‘황금 소네트’, 르콩트 드 릴·카튈 망데스·월트 휘트먼 같은 시인들을 그린 소네트 초상 ‘메달’ 여섯 편, 프랑스어 시 세 편, 그리고 작가 주석 34개가 더해졌습니다. 발레라의 편지가 서문이 되었고 데 라 바라의 서문은 발문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뒤의 판본들도 책을 다시 바꾸었습니다. 1905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신문 『라 나시온』이 펴낸 판에서는 헌사, 데 라 바라의 서문, 프랑스어 시, 주석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현대 비판본은 어느 판을 따를지 선택해야 하며, 대부분 1890년 이후의 증보판을 따릅니다. 오늘날 많은 독자가 읽는 책은 발파라이소에서 처음 찍힌 책과 조금 다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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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영향과 유산

『아술...』으로 다리오는 새로운 문학 세대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뒤이은 『세속의 산문』(부에노스아이레스, 1896)과 『삶과 희망의 노래』(마드리드, 1905)는 모데르니스모를 굳혔고, 그는 『라 나시온』 특파원으로 아메리카와 유럽을 두루 다니며 직접 영향을 넓혔습니다.

모데르니스모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태어나 스페인 본국의 문학까지 바꾼 최초의 문학 운동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892년과 1898년 이후의 스페인 방문에서 다리오는 라몬 델 바예잉클란, 마누엘·안토니오 마차도 형제, 후안 라몬 히메네스 같은 스페인 시인·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를 문학의 혁신이 이제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으로 건너간, 식민 시대의 흐름이 뒤집힌 사건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스페인어권 아메리카의 모데르니스모는 T. S. 엘리엇이나 버지니아 울프로 대표되는 뒷날의 영어권 ‘모더니즘’이나, 건축에서의 카탈루냐 ‘모데르니스메’와 다른 것입니다. 대략 1880~1915년에 스페인어 문학의 언어, 리듬,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데 집중한 운동입니다.

니카라과에서 다리오는 국민적 영웅이며, 그가 태어난 마을은 그의 이름을 따르고 있습니다. 「부르주아 왕」과 「마브 여왕의 베일」 같은 이야기는 지금도 스페인어권 곳곳의 학교에서 널리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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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학계의 논쟁

『아술...』이 모데르니스모를 시작했는가? 옥타비오 파스와 앙헬 라마를 비롯한 많은 비평가, 그리고 다리오 자신도 이 책을 운동의 출발점으로 보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호세 마르티, 마누엘 구티에레스 나헤라, 훌리안 델 카살, 호세 아순시온 실바의 앞선 작업을 강조하며, 모데르니스모를 한 권의 책이나 한 천재의 업적이 아니라 작가들의 연결망으로 보려 합니다. 1888년이라는 연도는 상징이 되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문학사가는 1880년대에 점진적으로 등장한 흐름으로 설명합니다.

모방인가, 전유인가? 발레라가 제기한 ‘정신적 갈리시즘’이라는 비판은 모데르니스모가 프랑스 문학의 종속적 복제품인가라는 오랜 논쟁을 낳았습니다. 뒤의 비평가들은 다리오가 모방한 것이 아니라 전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곧 유럽의 형식을 스페인어권 아메리카의 자리에서 가져와 프랑스, 스페인, 고전, 아메리카의 재료를 섞어 새것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논쟁은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종속과 독창성에 관한 더 넓은 물음과 이어집니다.

상아탑인가, 사회 비판인가? 예전에는 모데르니스모를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지상주의적 도피 문학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앙헬 라마의 영향력 있는 연구 『루벤 다리오와 모데르니스모』(1970)는 이를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근대화, 곧 작가가 시장에 작품을 파는 직업인이 된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 읽었습니다. 이 관점에서는 「부르주아 왕」과 「짐짝」 같은 이야기가 책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놓입니다.

어떤 텍스트인가? 다리오가 1890년과 그 뒤에 책을 고치고 재편했으며, 많은 글이 먼저 신문에 실렸기 때문에, 텍스트 연구자들은 신문 판본, 1888년판과 1890년판, 후대 재간본을 비교하며 어느 판본이 특정 시점의 다리오의 의도를 가장 잘 보여 주는지 묻습니다. 라울 실바 카스트로의 『아술...』 생성 연구(1958)는 이 분야의 선구적인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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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자료와 연구 방법

주요 1차 자료는 초판과 재판으로 나온 책 자체, 『라 에포카』와 『엘 에랄도』 같은 칠레 신문에 실린 개별 작품의 신문 판본, 그리고 다리오의 편지입니다. 칠레 국립도서관이 디지털화한 1888년판 덕분에 판본을 꼼꼼히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다리오가 훗날 남긴 기록, 특히 『자서전』과 에세이 「내 책들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지만 비판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유명해진 뒤 수십 년이 지나 쓴 이 글들은 스페인어를 혁신한 고독한 천재라는 전설에 맞추어 젊은 시절을 그려 내기 때문입니다.

발레라의 「아메리카 서한」은 당시 스페인 문단이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문학을 어떻게 보았는지 보여 주는 핵심 수용 자료입니다. 현대 연구는 칠레 신문 자료를 이용해 페드로 발마세다 토로, 에두아르도 데 라 바라, 에두아르도 푸아리에 등 산티아고와 발파라이소에서 다리오를 도운 친구와 후원자들의 관계망도 복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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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모데르니스모
음악적인 리듬, 풍부한 이미지, 세계적인 주제로 시와 산문을 새롭게 한 스페인어권 문학 운동(대략 1880~1915).
파랑(아술)
다리오에게 꿈과 예술과 고전 세계의 색. 제목은 아름다움과 상상으로의 전환을 알린다.
예술가 대 부르주아
이 책의 중심 갈등. 아름다움에 헌신하는 시인과 돈과 쓸모만 따지는 사회의 대립.
세계주의(코즈모폴리터니즘)
고대 그리스, 파리, 중국, 칠레의 무대와 소재를 뒤섞어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문학을 더 넓은 세계의 일부로 만든 태도.
고답파의 영향
완벽하고 조각 같은 형식과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프랑스의 이상. 다리오는 이를 스페인어로 옮겨 왔다.
산문시
운문의 리듬, 이미지, 밀도를 지닌 산문. 『아술...』은 이 기법을 널리 퍼뜨렸다.
운율의 혁신
1890년판에 들어간 알렉상드랭 소네트처럼 스페인어에 새롭거나 되살린 시 형식을 들여온 것.

기록

  1. 1867년 — 1월 18일 니카라과 메타파에서 펠릭스 루벤 가르시아 사르미엔토(루벤 다리오)가 태어남.
  2. 1882년 — 호세 마르티가 『이스마엘리요』를 냄. 흔히 모데르니스모의 초기 신호로 여겨짐.
  3. 1886년 — 다리오가 6월 칠레 발파라이소에 도착해 칠레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함.
  4. 1887년 — 산티아고에서 『가시풀(아브로호스)』을 내고, 페데리코 바렐라가 후원한 칠레 시 공모전에서 공동 수상함.
  5. 1888년 — 『아술...』이 발파라이소에서 인쇄됨(7월). 후안 발레라가 마드리드 『엘 임파르시알』에 서평을 씀(10월).
  6. 1889년 — 다리오가 칠레를 떠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신문 『라 나시온』에 기고하기 시작함.
  7. 1890년 — 과테말라에서 발레라의 편지를 서문으로 한 『아술...』 증보 재판이 나옴.
  8. 1896년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세속의 산문』이 나와 모데르니스모가 절정에 이름.
  9. 1905년 — 마드리드에서 『삶과 희망의 노래』가 나오고, 『라 나시온』이 『아술...』 개정판을 펴냄.
  10. 1916년 — 2월 6일 다리오가 니카라과 레온에서 세상을 떠남.

용어 풀이

모데르니스모
대략 1880~1915년의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문학 운동. 영어권 모더니즘과는 다르다.
고답파(파르나스파)
완벽한 형식, 객관성, 예술을 위한 예술을 중시한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 운동.
상징주의
이미지와 말의 음악으로 분위기와 숨은 뜻을 암시하려 한 프랑스 문학 운동.
알렉상드랭(알레한드리노)
두 부분으로 나뉘는 긴 시행. 프랑스어로는 12음절, 스페인어 셈법으로는 대개 14음절.
소네트
정해진 각운 형식을 지닌 14행의 시.
서문
책 앞에 붙이는 머리글. 흔히 다른 작가가 쓴다.
갈리시즘
프랑스어에서 빌려 온 낱말, 표현, 사고방식.
크로니카
보도, 에세이, 문학적 산문을 섞은 신문 글 장르. 모데르니스모 작가들의 생업이었다.

묻고 답하기

‘아술’은 무슨 뜻인가요?

스페인어로 ‘파란색’이라는 뜻이에요. 다리오는 파랑이 자신에게 꿈과 예술과 고대 그리스의 색이라고 말했어요.

니카라과 사람의 책이 왜 칠레에서 나왔나요?

다리오는 1886년 열아홉 살에 일자리와 문학의 길을 찾아 칠레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책을 쓰고 1888년 발파라이소에서 펴냈습니다.

『아술...』은 시집인가요, 소설집인가요?

둘 다입니다. 단편소설, 산문 스케치, 시가 함께 실려 있고, 산문조차 시의 리듬과 이미지로 쓰여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예술에 관심 없는 왕의 정원에서 시인이 얼어 죽는 「부르주아 왕」이 가장 널리 읽히는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데르니스모와 모더니즘은 같은 것인가요?

아닙니다. 스페인어권 아메리카의 모데르니스모(대략 1880~1915)는 스페인어 문학의 언어와 음악을 새롭게 하는 데 집중했고, 영어권 모더니즘은 그보다 뒤의 다른 운동입니다.

왜 이 책에는 여러 판본이 있나요?

다리오가 1890년 과테말라 재판에서 단편, 소네트, 프랑스어 시, 주석을 더했고, 뒤의 판본들이 다시 일부를 뺐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이 판본들을 꼼꼼히 비교합니다.

『아술...』이 정말 모데르니스모를 시작했나요?

흔히 창시작으로 불리지만, 비평가들은 호세 마르티나 마누엘 구티에레스 나헤라 같은 앞선 작가들도 가리킵니다. 대부분은 이 운동이 1880년대에 점차 나타났고 『아술...』이 그 이정표라고 봅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루벤 다리오. 위키백과
  2. Azul…. Wikipedia(스페인어)
  3. Azul.... Wikipedia(영어)
  4. Rubén Darío. Wikipedia(영어)
  5. Modernismo. Wikipedia(영어)
  6. Azul de Rubén Darío. Memoria Chilena, Biblioteca Nacional de Chile
  7. Azul... (Valparaíso: Imprenta y Litografía Excelsior, 1888) 디지털 사본. Memoria Chilena, Biblioteca Nacional de Chile
  8. Rubén Darío; ed. Arturo Ramoneda, Azul... Edición de Arturo Ramoneda (해설 미리보기). Alianza Editorial, 2022
  9. Ángel Rama, Rubén Darío y el modernismo, 1970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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