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마샤두 지 아시스

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

1839–1908년 ·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제국의 수도, 1889년부터 공화국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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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가 쓰고 Codex(gpt-6.1-sol)가 공개 출처와 대조해 사실·연대·인용과 영어·한국어판을 독립 검수했습니다. 사람 전문가의 검토는 거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AI 검수: 2026-10-03. 찾아서 고친 문제 22건.

한 문장으로

마샤두 지 아시스(1839–1908)는 아프리카계와 포르투갈계 혈통을 함께 지닌 브라질 작가로, 리우데자네이루의 가난한 집에서 자라 대부분 독학으로 공부했으며,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의 초대 회장이 되었으며, 『브라스 쿠바스의 사후 회고록』과 『동 카즈무후』처럼 아이러니와 장난기가 가득한 소설로 오늘날 세계에서 읽힌다.

마샤두 지 아시스
이미지: Unknown author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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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무덤 너머에서 자기 일생을 농담을 섞어 가며 들려주는 거예요.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책인데, 마샤두 지 아시스라는 사람이 1881년에 책으로 펴냈어요.

마샤두는 1839년 리우데자네이루라는 도시의 언덕에서 태어났어요. 집은 가난했어요. 아버지의 부모님은 노예였다가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었고, 어머니는 대서양에 있는 포르투갈의 아소르스 제도 출신이었어요. 학교는 거의 다니지 못했지만 책을 무척 좋아해서 혼자 공부했어요.

십 대 때는 인쇄소에서 일하며 작은 금속 글자를 한 줄씩 늘어놓아 책장을 찍었어요. 나중에는 신문에 글을 쓰고, 30년 넘게 나라의 관청에서 일했어요. 시와 희곡, 단편소설, 신문 칼럼, 그리고 장편소설 아홉 권을 썼어요.

그의 소설 『동 카즈무후』에서는 질투심 많은 남편이 자기 결혼 이야기를 들려줘요. 남편은 아내 카피투가 바람을 피웠다고 굳게 믿지만, 진짜 증거는 끝내 내놓지 못해요. 독자들은 지금도 다퉈요. 정말 그랬을까, 아니면 이야기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를 속이고 있는 걸까?

마샤두가 살던 때 브라질에는 아직 노예제가 있었고, 1888년에야 없어졌어요. 그는 여러 혈통이 섞인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많은 사진과 이야기가 그를 백인처럼 보이게 만들었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그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눈에 보기

생애
1839년 6월 21일 – 1908년 9월 29일, 리우데자네이루(당시 브라질 제국의 수도, 1889년부터는 공화국의 수도)
출신
모후 두 리브라멘투 출생. 아버지는 노예에서 해방된 부모를 둔 칠장이, 어머니는 아소르스 제도 출신 세탁부
정체성
아프리카계와 포르투갈계 혈통이 섞인 사람으로, 브라질식 분류로는 ‘파르두(pardo)’. 그런데 사망 증명서에는 ‘백인’으로 적혔다
직업
견습 식자공, 교정원, 기자·비평가. 1867년부터 공직에 있었고, 1873년부터 농업·상업·공공사업부와 그 후신 부처에서 일했다
대표작
『브라스 쿠바스의 사후 회고록』(1881), 『킨카스 보르바』(1891), 『동 카즈무후』(1899), 『에사우와 야곱』(1904). 단편 「정신과 의사」, 「한밤의 미사」, 「아버지 대 어머니」
기관
1897년 출범한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Academia Brasileira de Letras)의 초대 회장, 사망 때까지 재임
언어
포르투갈어(브라질)
특징
믿을 수 없는 화자, 아이러니, 여담, 독자에게 직접 말 걸기

쉬움

마샤두 지 아시스는 누구인가?

조아킹 마리아 마샤두 지 아시스는 리우데자네이루 출신 작가로, 흔히 브라질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그는 19세기 작가가 쓸 수 있던 거의 모든 형식으로 글을 썼다. 시와 희곡, 연극·문학 비평, 번역, 수백 편의 단편소설, ‘크로니카(crônica)’라 불리는 수백 편의 신문 칼럼, 그리고 장편소설 아홉 편이다.

그의 삶은 남달랐다. 노예제가 아직 합법이던 시절 아프리카계와 포르투갈계가 섞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인쇄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생애 말에는 고위 공무원이자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의 초대 회장이 되어 있었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1880년 이후에 쓴 장편들이다. 이 소설들의 화자는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고, 농담하고, 스스로 말을 끊으며, 늘 믿을 만하지는 않다. 웃음 뒤에는 노예제와 연줄 위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던 리우데자네이루 부유층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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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리브라멘투 언덕의 소년

마샤두는 1839년 6월 21일 리우데자네이루 항구 근처의 언덕 모후 두 리브라멘투에서, 부유한 미망인 마리아 조제 지 멘동사 바호주 페레이라의 농장 저택에서 태어났다. 이 미망인은 그의 대모가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을 이 저택에서 보냈다.

아버지 프란시스쿠 조제 지 아시스는 건물 칠과 도금을 하는 장인이었고, 그의 부모는 노예였다가 해방된 사람들이었다. 어머니 마리아 레오폴지나 마샤두 다 카마라는 아소르스 제도 출신 세탁부였다. 마샤두는 어린 시절에 여동생을, 이어서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는 나중에 재혼했다.

정규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다. 전기 작가들은 그를 대부분 독학으로 공부한 끈질긴 독서가로 묘사하며,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비공식적으로 배웠다는 이야기를 전하지만 그 세부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열다섯 살에 첫 시를 발표했고, 1856년 열일곱 살 무렵 국영 인쇄소인 임프렌사 나시오나우의 견습 식자공이 되었다. 작가들이 모이던 프란시스쿠 지 파울라 브리투의 서점 겸 인쇄소에도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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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움

독자와 놀이를 하는 이야기

마샤두의 가장 유명한 소설 『브라스 쿠바스의 사후 회고록』은 농담으로 시작한다. 화자는 자신이 ‘죽은 작가’가 아니라 ‘작가가 된 죽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제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으니, 자기의 이기적이고 안락했던 삶에 대해 모든 진실을 말하겠다고 주장한다.

『동 카즈무후』는 나이 든 벤투 산티아구가 이웃집 소녀 카피투와의 어린 시절 사랑,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는 아들이 절친한 친구 이스코바르를 닮았다고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은 벤투의 말뿐이다. 이 책이 유명한 까닭은 카피투가 정말 배신했는지, 아니면 그의 질투가 배신을 지어냈는지를 독자가 판단하게 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도 그만큼 영리해서, 한 번은 재미로 읽고, 다시 읽으며 권력과 돈과 진실에 관한 질문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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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식자공에서 기자로, 그리고 공무원으로

인쇄소를 거친 마샤두는 언론계로 옮겨 갔다. 1858년에는 신문 『코헤이우 메르칸칠』의 교정원으로 일했고, 1860년에는 『디아리우 두 히우 지 자네이루』 편집진에 들어가 기사와 연극 비평, 칼럼을 썼다. 1860년대에는 시집 『크리살리다스』(1864)와 희곡을 펴냈고, 빅토르 위고의 『바다의 일꾼들』을 번역했다(1866).

글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웠기에, 당시 많은 브라질 작가처럼 그도 공직에서 안정을 찾았다. 1867년 관보 『디아리우 오피시아우』의 국장 보좌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 뒤 1873년 농업·상업·공공사업부에 임용되었다. 이후 제정과 공화정을 거치며 30년 넘게 부처에서 일했고 고위 행정직까지 올랐다.

1869년 11월 12일 그는 친구인 시인 파우스치누 샤비에르 지 노바이스의 누이로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카롤리나 아우구스타 샤비에르 지 노바이스와 결혼했다. 자녀는 없었지만 결혼 생활은 35년 동안 이어졌고,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을 매우 가까운 부부로 기억했다. 카롤리나는 1904년 10월 20일에 세상을 떠났고, 큰 충격을 받은 마샤두는 그 뒤로 4년을 더 살았다.

전기 작가들과 의학 연구자들은 마샤두가 뇌전증을 앓았고 말년에 증세가 심해졌다는 데 의견이 같다. 말을 더듬고 수줍음이 많았다는 기록도 있다. 1870년대 말에는 큰 병으로 오래 쉬어야 했는데, 많은 비평가는 그 뒤 그의 글이 달라진 것을 이 위기와 연결한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석이다.

1896–97년 루시우 지 멘동사를 중심으로 한 작가들이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를 세웠다. 마샤두는 1897년 1월 회장으로 뽑혔고, 1897년 7월 20일 공식 출범식을 주재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카데미를 이끌며 거의 모든 회의에 참석했고, 군주제 지지자와 공화주의자, 낭만주의자와 자연주의자를 수완 있게 한데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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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낭만주의 소설에서 ‘원숙기’의 마샤두로

비평가들은 보통 마샤두의 장편을 두 무리로 나눈다. 처음 네 편, 『부활』(1872), 『손과 장갑』(1874), 『엘레나』(1876), 『야야 가르시아』(1878)는 흔히 낭만주의 시기 작품으로 불린다. 사랑 이야기와 유산 문제, 결혼을 두고 협상하는 젊은 여성들이 등장하지만, 신분 상승의 욕망과 후원자에 대한 의존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이 이미 엿보인다.

1880년 잡지 『헤비스타 브라질레이라』에 연재되고 1881년 책으로 나온 『브라스 쿠바스의 사후 회고록』은 뚜렷한 단절을 보여 준다. 160개의 짧은 장이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건너뛰고, 어떤 장은 두 연인의 ‘대화’를 점과 문장부호만으로 적어 놓았으며, 화자는 독자와 자기 자신을 함께 조롱한다. 책은 씁쓸한 결산으로 유명한 마지막 문장으로 끝난다. “나는 자식이 없었고, 어떤 피조물에게도 우리의 비참함을 물려주지 않았다.”

1886년부터 잡지 『아 이스타상』에 연재되고 1891년 책으로 나온 『킨카스 보르바』는 괴짜 철학자 킨카스 보르바의 재산을 물려받았다가 리우 사교계에서 몰락하는 시골 교사 후비앙의 이야기다. 킨카스 보르바의 엉터리 철학 ‘인간주의(Humanitismo)’는 그 잔인한 논리를 “승자에게는 감자를!”이라는 구호로 요약하는데, 당시 유행하던 사회진화론과 실증주의를 비꼰 것이다.

『동 카즈무후』(1899)는 브라질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소설 가운데 하나이자 카피투를 둘러싼 끝없는 논쟁의 출발점이다. 『에사우와 야곱』(1904)은 하나는 군주제를, 하나는 공화제를 지지하며 왕정이 무너지는 시기 내내 다투는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로, 은퇴한 외교관 아이르스 고문관의 공책을 통해 전해진다. 아이르스는 마샤두의 마지막 소설 『아이르스의 비망록』(1908)에서 일기를 쓰는 화자로 다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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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단편소설과 크로니카

마샤두는 200편이 넘는 단편을 썼다. 대부분 먼저 신문과 잡지에 실렸다가 『흩어진 글들』(1882), 『날짜 없는 이야기들』(1884), 『여러 이야기』(1896), 『모은 글들』(1899), 『옛집의 유물』(1906) 같은 단편집으로 묶였다. 비평가들은 흔히 그에 이르러 브라질 단편소설이 새로운 가능성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O Alienista)」(1881–82 연재)는 과학의 권위를 풍자한다. 시망 바카마르트 박사의 정신병원 ‘카자 베르지’는 이타구아이 마을 사람 대부분을 삼켜 버리고, 결국 박사는 진짜 비정상인 사람은 자기 혼자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한밤의 미사(Missa do Galo)」(1894)에는 줄거리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한 남자가 열일곱 살이던 크리스마스이브, 서른 살 여성과 밤늦게 나눈 대화를 떠올리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옛집의 유물』(1906)에 실린 「아버지 대 어머니(Pai contra Mãe)」는 노예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야기는 노예제가 사라지면서 일부 노예에게 씌우던 양철 가면 같은 직업과 도구도 함께 사라졌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서 도망 노예를 잡아 생계를 잇는 가난한 남자 칸지두 네베스가 갓난 아들을 고아원에 버리러 가던 길에, 현상금을 노리고 임신한 도망 노예 아르민다를 붙잡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르민다는 유산하고, 그는 자기 아이를 지킨다. 소설은 소름 끼치는 아이러니가 담긴 한 줄로 끝난다. “모든 아이가 다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마샤두는 논평과 일화, 허구를 섞은 짧은 신문 칼럼인 크로니카의 대가이기도 했다. 신문 『가제타 지 노치시아스』에 실린 연재 「좋은 아침!(Bons Dias!)」(1888–89)과 「한 주(A Semana)」(1892–97, 일요일마다 실린 주간 칼럼)는 노예제 폐지, 공화국, 금융 투기, 도시 생활을 다루었다. 노예제 폐지 엿새 뒤인 1888년 5월 19일 칼럼에서 화자는 법보다 먼저 자기 노예 판크라시우를 해방했다고 자랑하고는, 쥐꼬리만 한 품삯으로 그를 다시 부리며 계속 폭력을 휘두른다. 옛 노예주들의 자화자찬을 꼬집은 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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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믿을 수 없는 화자, 아이러니, 그리고 독자

마샤두의 화자들은 ‘믿을 수 없는 화자’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힌다. 브라스 쿠바스와 벤투 산티아구는 1인칭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이 드러내는 자기 모습은 의도와 다를 때가 많다. 독자는 빈틈과 모순, 자기 합리화를 알아차리도록 초대받고, 읽기는 일종의 탐정 일이 된다.

중요한 장치는 독자에게 직접 말 걸기다. 화자는 끊임없이 ‘독자’에게 말을 건네며 그를 추어올리거나 모욕하고, 반론을 미리 짐작하고, 몇 장을 건너뛰라거나 앞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브라스 쿠바스』 첫머리의 ‘독자에게’는 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가락 튕기기 한 번으로 값을 치르고, 안녕”이라는 약속으로 끝난다. 이 장난 뒤에는 진지한 질문이 있다. 독자가 매력적인 목소리를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는지 보여 주는 것이다.

마샤두는 자신의 본보기를 숨기지 않았다. 『브라스 쿠바스』 초판에서 화자는 “스턴이나 램, 드 메스트르의 자유로운 형식”을 택했다고 말한다.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 찰스 램, 그리고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후 판본에는 스턴과 드 메스트르만 남는다. 나중에 쓴 서문은 포르투갈 작가 알메이다 가헤트를 덧붙인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자기 방을, 가헤트는 자기 나라를, 스턴은 남의 나라를 여행했다.” 세르지우 파울루 후아네 같은 학자들은 여담, 깨진 시간, 웃음과 우울의 혼합을 특징으로 하는 이 ‘섄디풍’ 형식을 마샤두의 작품 전체에서 추적한다.

브라스 쿠바스는 자기 책을 “조롱의 펜과 우울의 잉크로” 썼다고 말한다. 겉은 가볍고 속은 어두운 이 이중의 어조야말로 원숙기 마샤두의 문체를 가장 짧게 요약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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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노예제, 인종, 그리고 ‘백인화’

마샤두는 생애 대부분을 노예제 사회에서 살았다. 브라질의 노예제는 그가 마흔아홉 살을 앞둔 1888년 5월 13일, ‘황금법(Lei Áurea)’으로 비로소 끝났다. 공무원이던 1870–80년대에 그는 노예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자유인으로 규정한 1871년 ‘태내자유법’의 시행을 맡은 농업부 부서의 책임자였다. 역사학자 시드니 샬루브는 기록 보관소 자료에서, 마샤두가 이 자리에서 자유를 얻으려는 노예에게 유리한 법 해석을 찾으려 했음을 밝혀냈다.

그의 소설에서 노예제는 연설보다는 일상의 배경으로, 그리고 충격적일 만큼 무심한 순간으로 나타난다. 『브라스 쿠바스』의 화자는 어린 시절 노예 소년 프루덴시우를 말처럼 타고 다녔던 일을 떠올린다. 훗날 그는 아버지가 해방해 준 프루덴시우가 자기가 산 노예를 채찍질하며, 예전에 브라스가 자기에게 퍼붓던 바로 그 말을 외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브라스는 섬뜩할 만큼 담담하게, 그것이 프루덴시우가 자기가 맞은 매를 남에게 넘겨 털어 내는 방식이었다고 논평한다.

마샤두는 자기 피부색에 대해 공개적으로 쓴 적이 거의 없고, 그를 어떻게 묘사하느냐는 묘사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졌다. 친구인 비평가 조제 베리시무는 추도문에서 그를 ‘물라토’라고 불렀는데, 외교관 조아킹 나부쿠는 베리시무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라면 그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 말이 경멸적이라고 하고 삭제를 요청했다. 사망 증명서에는 백인으로 기록되었고, 가장 잘 알려진 사진들 상당수는 조명과 인쇄 과정에서 얼굴이 밝게 보이도록 처리되었다고 후대 비평가들은 주장한다.

이 ‘백인화’의 역사는 21세기 들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2011년 9월 국영 은행 카이샤 이코노미카 페데라우는 창립 150주년 텔레비전 광고에서 백인 배우가 마샤두를 연기한 것에 대해 연방 인종평등증진특별부(SEPPIR)와 시민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광고를 내리고, 작가를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으로 그리지 않은 데 대해 사과했다. 2019년에는 흑인 학생 교육에 중점을 둔 상파울루의 줌비 두스 파우마리스 대학(Faculdade Zumbi dos Palmares)이 ‘진짜 마샤두 지 아시스(Machado de Assis Real)’ 캠페인을 벌여 1893년 사진에 색을 입혀 그의 아프리카계 용모를 드러내고 출판사들에 그 사진을 쓰도록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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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그 무렵 세계에서는

마지막 노예 해방들. 브라질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늦게 노예제를 폐지한 나라다. 러시아 제국은 1861년 황제의 칙령으로 지주 소유의 농노를 해방했고, 미국은 1863년 노예 해방 선언에 이어 1865년 수정헌법 제13조로 노예제를 폐지했다. 브라질은 1871년 태내자유법 같은 단계적 조치를 거쳐 더디게 나아갔고, 1888년 단 두 조항뿐인 황금법으로 약 70만 명을 해방했지만 그들에게 땅이나 일자리, 사회 안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조치는 없었다. 1888년 5월 마샤두의 칼럼은 이 순간에 대한 동시대의 반응이며, 판크라시우의 ‘너그러운’ 주인에 대한 풍자는 많은 역사가가 강조하는 문제, 곧 땅도 일자리도 실질적인 보호도 없는 종이 위의 자유를 가리킨다.

제국에서 공화국으로. 18개월 뒤인 1889년 11월 15일, 데오도루 다 폰세카 원수가 이끄는 군 부대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왕정을 무너뜨렸고, 황제 페드루 2세는 이틀 뒤 유럽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황제에게서 훈장을 받은 공무원이던 마샤두는 새 체제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그는 선언문이 아니라 아이러니로 이 변화를 다루었다. 왕정 몰락기를 배경으로 한 『에사우와 야곱』은 쌍둥이의 요란한 정치적 대립 밑에 더 깊은 닮음이 숨어 있음을 암시하는 소설로 자주 읽힌다.

대서양 건너의 사실주의. 1878년 4월 16일 마샤두는 ‘엘레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리우의 신문 『오 크루제이루』에 포르투갈 작가 에사 지 케이로스의 소설 『사촌 바질리우』를 혹평하는 「사실주의 문학」이라는 글을 실었고, 같은 달 두 번째 글이 뒤따랐다. 그는 이 책의 설득력 없는 줄거리와 관능에 대한 집착을 공격했고, 여주인공 루이자가 플로베르의 엠마 보바리보다 못하다고 평했으며, 이런 책들이 포르투갈어 사실주의를 “요람에서” 질식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것은 기록으로 확인되는 실제 연결이다. 마샤두는 프랑스와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사실주의·자연주의와 자신을 견주었고, 그의 글은 신문 지상에서 떠들썩한 논쟁을 불러왔다. 3년 뒤 『브라스 쿠바스』는 세계를 세밀하게 목록화하는 대신 화자의 정신 위에 세운 소설로 그 나름의 대안을 내놓았다.

두 개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세계. 브라질이 노예제를 폐지한 1888년, 니카라과 시인 루벤 다리오는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푸름…(Azul...)』을 펴내 스페인어권 아메리카의 모데르니스모를 여는 데 한몫했다. 두 문학은 대체로 따로 발전했다. 1990년 수전 손택은 마샤두가 스페인어권 라틴아메리카에서 거의 읽히지 않으며 보르헤스도 그를 읽은 적이 없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후대 독자들은 허구를 가지고 노는 두 사람의 방식을 자주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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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다양한 관점

카피투는 벤치뉴를 배신했는가? 1899년 이후 약 60년 동안 브라질과 외국의 비평가들은 대체로 벤투 산티아구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카피투는 유죄라는 것이다. 1953년 『동 카즈무후』를 처음 영어로 옮겨 펴낸 미국 학자이자 번역가 헬렌 콜드웰은 1960년 『마샤두 지 아시스의 브라질 오셀로』에서, 벤투는 오셀로를 닮은 질투에 사로잡힌 믿을 수 없는 화자이고 그의 증거는 허약하며, 카피투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엘리우 지 세이샤스 기마랑이스가 연구한 편지들을 보면, 콜드웰과 편집자 세실 헴리는 이미 1952년에 이 해석을 두고 논의하고 있었다. 이후 비평가들이 모두 그의 무죄 판정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여전히 유죄를 주장한 이들도 있었고, 많은 이는 오히려 ‘결정 불가능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소설은 벤투의 증언만으로는 이 질문을 풀 수 없도록 짜여 있으며, 오늘날 많은 독자는 질문 자체를 이 작품의 핵심으로 본다.

침묵인가, 암호인가? 마샤두가 죽은 직후인 1908년 11월, 에메테리우 조제 두스 산투스는 『가제타 지 노치시아스』에서 그가 자기 뿌리를 부정하고 노예제 문제를 외면했다고 비난했고, 국가적 현안에서 ‘비켜서 있던’ 작가라는 이미지는 오래 이어졌다. 1930년대의 마리우 카사산타, 1950년대의 R. 마갈량이스 주니오르 같은 비평가들은 잊힌 글들을 근거로 이런 그림을 반박했다. 최근에는 시드니 샬루브가 『역사가 마샤두 지 아시스』(2003)에서 그의 소설을 공직 활동과 나란히 읽었고, 에두아르두 지 아시스 두아르치는 선집 『아프리카계 후손 마샤두 지 아시스』(2007)에 단편과 시, 칼럼을 모아 의도적인 ‘위장의 시학’, 곧 백인 노예주 사회를 향한 아이러니하고 우회적인 비판을 읽어 냈다. 두아르치는 브라스 쿠바스의 죽음까지 정치적으로 읽어, 마샤두가 “노예 해방 8년 전에 노예주를 죽였다”고 말한다. 다른 비평가들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한다. 마샤두가 자신의 흑인성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흑인 작가’나 ‘물라토 작가’ 같은 꼬리표는 그 자신의 자기 인식만큼이나 오늘날의 범주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정전 속 그의 자리는 어디인가? 1990년 『뉴요커』에 글을 쓴 수전 손택은 마샤두를 “라틴아메리카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라 부르고 보르헤스를 그다음으로 꼽았다. 해럴드 블룸은 『천재들』(2002)에서 그를 “지금까지 가장 뛰어난 흑인 문학 예술가”라고 했다. 이런 찬사는 새 독자를 끌어들였지만 비판도 받았다. 비평가 일란 스타반스는 문학은 경쟁이 아니라며 손택의 순위 매기기를 “과장되었다”고 했고, 블룸이 자신의 흑인성을 작품에서 거의 드러내지 않은 마샤두를 잘못 그렸다고 말했다. 브라질에서 특히 영향력 있는 현대적 해석으로는 호베르투 슈바르츠의 것이 있다. 그는 『자본주의 주변부의 거장』(1990, 영어판 2001)에서 화제와 의견, 문체를 제멋대로 바꾸는 화자의 ‘변덕(volubilidade)’이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을 노예제·후견 관계와 함께 지녔던 브라질 지배층의 행태를 문학 형식으로 재현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마샤두는 어쩌다 브라질에 살았던 유럽풍 작가가 아니라, 브라질 사회에서 형식이 자라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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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수용, 번역, 그리고 증거

브라질에서 마샤두는 살아 있을 때부터 유명했고 정전의 중심에서 한 번도 밀려난 적이 없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오랫동안 ‘작가들이 아는 작가’에 머물렀다. 윌리엄 L. 그로스먼이 옮긴 『브라스 쿠바스』는 1952년 『작은 승자의 묘비명(Epitaph of a Small Winner)』이라는 제목으로 나왔고, 헬렌 콜드웰은 1953년 『동 카즈무후』를, 이후 다른 장편 몇 편을 번역했다. 2018년 마거릿 줄 코스타와 로빈 패터슨은 생전에 나온 단편집 일곱 권 전체를 『마샤두 지 아시스 단편 전집』으로 옮겼다.

2020년에는 『브라스 쿠바스』의 새 영어 번역 두 종이 나왔다. 플로라 톰슨-드보가 번역과 주석을 맡고 데이브 에거스가 서문을 쓴 펭귄 클래식판은 2020년 6월 2일 미국에서 출간되어, 조지 플로이드 살해 이후 시위가 이어지던 가운데 아마존과 반스앤드노블에서 약 하루 만에 종이책 재고가 바닥났다. 브라질 언론이 이 일을 널리 보도했다. 톰슨-드보는 에거스의 서문과 유색인 작가에 대한 관심이 도움이 되었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샤두의 삶에 대해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을까? 증거는 주로 그가 펴낸 글, 신문, 공직 기록, 그리고 많지 않은 편지에서 나온다. 그는 사생활이나 병, 출신에 대해 거의 쓰지 않았다. 초기 전기 가운데 일부는 그의 아프리카계 혈통을 축소했고, 기록끼리도 서로 어긋난다. ‘백인’이라고 적은 사망 증명서, ‘물라토’라고 쓴 친구의 추도문, 조명과 인쇄에 따라 달라 보이는 사진들이 그렇다. 신중한 서술이라면 어느 하나를 단순한 진실로 고르기보다 이 자료들을 나란히 보여 주어야 한다.

연도도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동 카즈무후』의 속표지에는 1899년이 찍혀 있지만 책이 독자에게 닿은 것은 1900년 초였다. 『브라스 쿠바스』와 『킨카스 보르바』는 먼저 연재되었고, 「한밤의 미사」는 처음 잡지에 실린 1894년이 아니라 1893년으로 적히기도 한다(단편집 수록은 1899년). 이 글에서 장편의 연도는 따로 밝히지 않는 한 책으로 처음 나온 해를, 단편의 연도는 처음 발표된 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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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믿을 수 없는 화자
독자가 그 이야기를 온전히 믿을 수 없는 화자. 마샤두의 1인칭 화자, 특히 브라스 쿠바스와 벤투 산티아구는 의도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내므로, 독자는 화자를 거슬러 읽어야 한다.
아이러니와 ‘조롱의 펜’
마샤두는 웃음과 우울을 섞는다. 그의 농담은 설교하지 않으면서 허영과 이기심, 잔인함, 특히 리우의 안락한 상류층의 그것을 드러낸다.
독자에게 말 걸기
화자들은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놀리며 반응을 미리 짐작해, 읽기를 놀이로 바꾸고 설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 준다.
‘자유로운 형식’
스턴,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가헤트에게서 빌려 온 짧은 장, 여담, 깨진 시간 순서. 마샤두는 이를 브라질이라는 무대에 맞게 바꾸었다.
인간주의(Humanitismo)
『킨카스 보르바』에 나오는 엉터리 철학으로, 강자가 약자를 이기는 것을 정당화한다. 사회진화론과 실증주의에 대한 패러디다.
배경 속의 노예제
노예제는 연설보다 일상의 장면과 무심한 폭력 속에 나타나며, 「아버지 대 어머니」와 1888년 칼럼 같은 몇몇 작품에서는 직접 다뤄진다.
모호성
카피투의 유죄 여부나 「한밤의 미사」 속 그 밤의 의미 같은 핵심 질문은 의도적으로 열려 있다.

기록

  1. 1839년 — 6월 21일 리우데자네이루 모후 두 리브라멘투에서 태어나다.
  2. 1856년 — 임프렌사 나시오나우의 견습 식자공이 되다.
  3. 1869년 — 11월 12일 카롤리나 아우구스타 샤비에르 지 노바이스와 결혼하다.
  4. 1873년 — 농업·상업·공공사업부에 임용되다(공직에 처음 들어간 것은 1867년). 이후 30년 넘게 부처에서 일하다.
  5. 1881년 — 1880년 연재를 거쳐 『브라스 쿠바스의 사후 회고록』이 책으로 나오다.
  6. 1888년 — 5월 13일 황금법으로 노예제가 폐지되다. 마샤두의 칼럼 「좋은 아침!」이 세상의 반응을 풍자하다.
  7. 1897년 — 1월 회장으로 선출된 뒤, 7월 20일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의 공식 출범식을 주재하다.
  8. 1899년 — 『동 카즈무후』(속표지 연도)와 「한밤의 미사」가 실린 『모은 글들』이 나오다.
  9. 1904년 — 『에사우와 야곱』이 나오다. 10월 20일 카롤리나가 세상을 떠나다.
  10. 1908년 — 『아이르스의 비망록』이 나오다. 9월 29일 코즈미 벨류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다.
  11. 1960년 — 헬렌 콜드웰의 『마샤두 지 아시스의 브라질 오셀로』가 카피투의 유죄 문제를 다시 열다.
  12. 2020년 — 『브라스 쿠바스』의 새 영어 번역이 나오고, 펭귄 클래식판이 미국에서 약 하루 만에 품절되다.

용어 풀이

파르두(pardo)
여러 혈통이 섞인 사람을 가리키는 브라질의 분류어로, 인구 조사와 공문서에 쓰인다. 마샤두는 보통 이렇게 분류된다.
크로니카(crônica)
시사에 관한 논평과 일화, 허구를 섞은 짧은 신문 칼럼. 브라질에서 특히 발달한 장르다.
연재소설(folhetim)
책으로 나오기 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나뉘어 실린 소설.
황금법(Lei Áurea)
1888년 5월 13일 두 조항만으로 브라질의 노예제를 폐지한 법.
태내자유법
1871년 9월 28일 제정되어, 그 뒤 노예 여성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를 조건부로 자유인으로 규정한 법.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
1896–9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본떠 세운 40인 회원의 문학 기관.
믿을 수 없는 화자
사건을 편향되게, 잘못, 또는 일부러 오도하며 전할 수 있는 이야기꾼.
백인화(embranquecimento)
아프리카계 사람을 기록과 이미지, 기억 속에서 백인이나 더 밝은 피부로 보이게 만드는 사회적·시각적 과정.
섄디풍 형식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에서 이름을 딴, 여담이 많고 장난스러운 소설 쓰기 방식.

묻고 답하기

죽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책이 왜 그렇게 유명한가요?

브라스 쿠바스는 죽었다는 핑계로 자기 허영과 주변 사회에 대해 놀랄 만큼 솔직하고 우스꽝스럽게 말하기 때문이에요. 이 장치 덕분에 마샤두는 시간과 독자를 가지고 놀 수 있었고, 후대 작가들에게 이는 무척 현대적으로 보였어요.

카피투는 정말 벤치뉴를 배신했나요?

어느 쪽도 증명할 수 없어요. 이야기 전체를 질투심 많은 남편 벤투가 들려주고, 그가 내놓는 증거는 아들이 친구 이스코바르를 닮았다는 점이나 장례식에서 카피투가 이스코바르의 시신을 바라보던 눈빛처럼 이렇게도 저렇게도 읽히는 관찰뿐이에요. 1960년 헬렌 콜드웰의 연구 이후 많은 독자는 이 소설이 질문을 결정할 수 없게 설계되었다고 봐요.

마샤두 지 아시스는 흑인이었나요?

그는 아프리카계와 포르투갈계 혈통이 섞인 사람이었어요.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이었고, 어머니는 아소르스 제도 출신이었어요. 브라질식으로는 파르두였지요. 기록과 사진이 그를 백인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오늘날 그는 아프리카계 브라질 작가로 널리 인정받아요. 다만 학자마다 쓰는 용어는 달라요.

마샤두는 노예제에 반대했나요?

공개적으로 노예제 폐지 연설을 하지는 않았고, 일부 동시대인은 이를 비판했어요. 하지만 그의 칼럼과 소설은 노예주를 풍자하고, 기록 보관소 연구에 따르면 그는 공무원으로서 노예가 자유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법 해석을 찾으려 했어요.

그의 문체에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는 로렌스 스턴,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알메이다 가헤트를 직접 거론했어요(『브라스 쿠바스』 초판에는 찰스 램도 있어요). 비평가들은 고전과 포르투갈·프랑스·영국 문학을 폭넓게 읽은 그의 독서도 지적해요.

왜 같은 시대 유럽 소설가들보다 외국에 덜 알려졌나요?

외국 독자들이 잘 모르는 포르투갈어로 썼고, 좋은 번역이 늦게 나왔기 때문이에요. 수전 손택은 브라질과 라틴아메리카를 얕보는 태도도 한몫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많은 독자가 『동 카즈무후』나 「한밤의 미사」, 「정신과 의사」 같은 단편으로 시작해서 『브라스 쿠바스』로 넘어가요.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Machado de Assis – Biografia. Academia Brasileira de Letras
  2. A liderança de Machado de Assis. Academia Brasileira de Letras
  3. Cronologia da vida de Machado de Assis. Agência Senado, 2008
  4. 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 Encyclopedia.com (Encyclopedia of World Biography)
  5. Machado de Assis. Wikipedia
  6. Robin Patterson and Margaret Jull Costa, On 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s Rise to the Top of Brazilian Literature. Literary Hub, 2020
  7. Machado de Assis. Brasiliana, Brown University Library
  8. Memorias Posthumas de Braz Cubas (Typographia Nacional, 1881). Wikisource
  9. Dom Casmurro. Wikipedia
  10. Esau and Jacob (novel). Wikipedia
  11. Missa do galo (text and publication record). MachadodeAssis.net
  12. Pai contra mãe (text). MachadodeAssis.net
  13. Marta Passos Pinheiro, Machado de Assis cronista: “Bons Dias!” no avesso da República. Revista de Letras (UNESP) 52, no. 2, 2012(2014년 게재)
  14. Forma livre (Machado Hiperlivro). PUC-SP
  15. Sergio Paulo Rouanet, Tempo e espaço na forma shandiana: Sterne e Machado de Assis. Estudos Avançados (USP), 2004
  16. Sidney Chalhoub, Machado de Assis, historiador. Companhia das Letras, 2003
  17. Marisa Lajolo, Review of Eduardo de Assis Duarte, Machado de Assis afro-descendente. Estudos de Literatura Brasileira Contemporânea, no. 31, 2008
  18. Ivan Maciel de Andrade, O mulato Machado de Assis. Tribuna do Norte, 2011
  19. Machado de Assis e o embranquecimento da história. Fundação Perseu Abramo, 2024
  20. Debate acerca da negritude de Machado de Assis segue em pauta. O Tempo, 2019
  21. Depois de reclamações, Caixa tira do ar propaganda que retrata Machado de Assis como branco. Agência Brasil (EBC), 2011
  22. Machado de Assis Real. Universidade Zumbi dos Palmares
  23. 137 anos depois da Lei Áurea, continua a luta da população negra por direitos no país. Rádio Senado, 2025
  24. 13th Amendment to the U.S. Constitution: Abolition of Slavery (1865). U.S. National Archives
  25. Emancipation reform of 1861. Wikipedia
  26. 15 de novembro de 1889 – A Proclamação da República no Brasil. Assembleia Legislativa do Estado de São Paulo
  27. Paulo Franchetti, O Primo Basílio e a batalha do Realismo no Brasil. Convergência Lusíada (Real Gabinete Português de Leitura)
  28. Arnaldo Sampaio de Moraes Godoy, A crítica literária em Machado de Assis. Consultor Jurídico, 2022
  29. Cousin Bazilio. Wikipedia
  30. Azul de Rubén Darío. Memoria Chilena, Biblioteca Nacional de Chile
  31. Carlos Haag, The dilemmas of the Moor of Matacavalos. Revista Pesquisa FAPESP, 2012
  32. Hélio de Seixas Guimarães, Helen Caldwell, Cecil Hemley e os julgamentos de Dom Casmurro. Machado de Assis em Linha, 2019
  33. Helen Caldwell, The Brazilian Othello of Machado de Assis: A Study of Dom Casmurro.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60
  34. Susan Sontag, Afterlives: The Case of Machado de Assis. The New Yorker, 1990
  35. Morten Høi Jensen, Mirth and Melancholy: The Collected Stories of Machado de Assis. Los Angeles Review of Books
  36. Ilan Stavans, Wrestling with Machado. The Yale Review
  37. Roberto Schwarz, trans. John Gledson, A Master on the Periphery of Capitalism: Machado de Assis. Duke University Press, 2001
  38. Livro de Machado de Assis em inglês esgota em um dia nos EUA. Exame, 2020
  39. Nova tradução de Memórias Póstumas de Brás Cubas tem edição esgotada nos EUA. CNN Brasi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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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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