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밀레토스의 탈레스

Θαλῆς ὁ Μιλήσιος (Thalēs ho Milēsios)

기원전 624–546년 · 밀레토스

한 문장으로

탈레스는 약 2,600년 전 무역 도시 밀레토스에 살았던 그리스의 사상가로, 신들의 이야기 대신 자연 안에서 원인을 찾아 세계를 설명하려 했기 때문에 최초의 철학자로 기억됩니다.

밀레토스의 탈레스
이미지: Wilhelm Meye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위에서부터 읽으면 쉬운 설명으로 시작하고, 아래로 갈수록 더 깊은 내용과 학술적 논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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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설명

약 2,600년 전, 지금의 튀르키예 해안에 밀레토스라는 북적이는 항구 도시가 있었어요. 그곳에 탈레스라는 사람이 살았지요. 이집트에서, 페니키아에서, 그리스 곳곳에서 배들이 드나들며 물건과 소식과 새로운 생각을 실어 날랐어요.

탈레스는 쉬워 보이지만 아주 큰 질문을 던졌어요. ‘세상 모든 것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비, 강, 바다, 그리고 물이 있어야 자라는 식물들. 그리고 대담하게 대답했어요. ‘모든 것은 물에서 나왔다!’ 정답은 아니었지만, 그는 다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자연 속의 한 가지를 찾으려 한 거예요.

사람들은 그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어요. 이집트 피라미드의 높이를 그림자만 보고 쟀대요. 바다 위 배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도 계산해 냈대요. 그리고 달이 해를 가려 낮이 캄캄해지는 일식을 미리 알아맞혀서, 싸우던 두 나라 군대가 너무 무서워 전쟁을 멈췄다고도 해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어요. 탈레스가 별을 올려다보느라 우물에 빠졌는데, 한 하녀가 “발밑도 못 보면서 하늘을 알려고 하네요!” 하고 웃었대요. 또 날씨를 읽는 지식으로 올리브가 풍년이 들 것을 미리 알고, 올리브 짜는 기계를 모두 빌려 두었다가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생각하는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요.

탈레스가 쓴 책은 남아 있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아는 것은 모두 나중 사람들이 그에 관해 쓴 글에서 나왔어요. 하지만 그가 ‘왜?’라고 묻고 자연 속에서 답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렀고, 사람들은 흔히 그를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러요.

한눈에 보기

생몰
기원전 624/623년경 ~ 548/545년경(고대 연대 계산에 따름. 정확한 연대는 불확실)
지역
소아시아 서해안 이오니아의 그리스 도시 밀레토스(오늘날 튀르키예 발라트 근처)
알려진 까닭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철학의 창시자로 꼽음.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주장
그 밖의 주장
땅은 물 위에 떠 있다. 자석에는 영혼이 있다. 만물은 신들로 가득하다
과학과 수학
전통적으로 일식 예언(기원전 585년)과 초기 기하학 정리들이 그의 업적으로 전한다
저술
남은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든 내용은 후대의 전언
명예
고대 그리스 7현인의 한 사람
후계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 함께 ‘밀레토스학파’로 불린다

쉬움

탈레스는 누구인가

밀레토스의 탈레스는 전통적으로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로 여겨지며, 자연을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하려 한 사람으로 이름이 알려진 세계 최초의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기원전 6세기 초 소아시아 해안의 번영한 그리스 도시 밀레토스에서 살았습니다.

2백여 년 뒤에 글을 쓴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를 만물의 근본 원리를 찾는 철학의 창시자라고 불렀습니다. 탈레스는 모든 것의 근원이 물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합니다. 이 대답 뒤에는 새로운 종류의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신이 세상을 만들었나?’가 아니라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고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입니다.

탈레스는 기술자, 천문학자, 수학자, 정치 조언자로서도 뛰어났다고 기억되었고, 초기 그리스의 현자들인 ‘7현인’의 한 사람으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글을 남기지 않았고, 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은 후대 저자들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역사 속의 탈레스와 전설 속의 탈레스를 가려내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1][2][3]

쉬움

밀레토스: 교차로의 도시

밀레토스는 당시 가장 부유한 그리스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리스인이 소아시아 해안을 따라 정착한 이오니아 지방, 마이안드로스강 어귀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항구들은 밀레토스가 많은 식민 도시를 세운 흑해, 그리고 그리스인이 나우크라티스에서 교역하던 이집트와 도시를 이어 주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리디아 왕국이 있었습니다. 알리아테스와 크로이소스 같은 리디아 왕들은 강하고 부유했으며, 리디아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주화를 쓴 곳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더 동쪽에는 메디아가, 곧이어 페르시아가 있었습니다. 남쪽과 동쪽에는 수백 년의 천문 기록과 실용 수학을 지닌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있었습니다.

교역과 여행, 그리고 오래된 문명과의 접촉이 뒤섞인 밀레토스는 새로운 생각이 싹트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고대 저자들은 탈레스가 이집트를 여행했다고 전하고, 많은 학자는 바빌로니아 천문학과 이집트 기하학이 어떤 형태로든 그에게 닿았으리라고 봅니다. 다만 그가 얼마나 빌려 왔고 얼마나 새로 만들었는지는 논쟁 중입니다.

[2][1]

쉬움

생애: 고대 저자들이 전하는 이야기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연대학자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탈레스는 제39회 올림피아기 첫해(기원전 624/623년)에 태어나 제58회 올림피아기(기원전 548~545년)에 78세로 죽었습니다. 경기를 구경하다 더위에 쓰러졌다고 합니다. 부모의 이름은 엑사미에스와 클레오불리네로 전합니다. 헤로도토스는 탈레스가 ‘페니키아계 혈통’이라고 했는데, 학자들은 이 말을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헤로도토스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도 두 가지 전합니다. 페르시아가 이오니아를 정복하기 전, 탈레스는 이오니아 그리스인들에게 이오니아 한가운데 있는 테오스에 하나의 평의회를 두고 나머지 도시들은 각자의 법을 유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일종의 연방을 이루자는 이른 제안이었습니다. 또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할리스강을 건너지 못하자 탈레스가 강물을 두 갈래로 돌렸다고 말하는 그리스인들도 있었습니다. 헤로도토스 자신은 이를 의심하고 크로이소스가 다리를 이용했다고 보았습니다.

유명한 두 일화는 후대 그리스인이 그를 어떻게 상상했는지 보여 줍니다.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에서 탈레스는 별을 보다가 우물에 빠지고, 재치 있는 트라키아 출신 하녀는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고 싶어 하면서 발밑은 보지 못한다고 그를 놀립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가난하다고 조롱받던 탈레스는 별에 관한 지식으로 올리브 풍년을 내다보고, 겨울에 밀레토스와 키오스의 올리브 압착기를 모두 빌려 두었다가 큰돈을 법니다. 철학자도 원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1][2][8]

중급

‘만물은 물이다’: 최초의 자연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제1권에서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오고 다시 거기로 돌아가는 질료적 원리(아르케)를 찾은 앞선 사상가들을 살펴봅니다. 그는 “이런 철학의 창시자인 탈레스는 그것이 물이라고 말한다”고 씁니다. 또 탈레스가 땅이 나무토막처럼 물 위에 떠 있다고 보았다고 전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인정하며 자신의 추측을 내놓습니다. 모든 것의 양분은 축축하고, 열 자체도 습기에서 생겨나 습기로 유지되며, 모든 것의 씨앗은 축축한 본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현대 학자들은 다른 가능성도 덧붙입니다. 물이 고체·액체·기체로 모두 존재할 수 있다는 점, 범람하는 나일강과 비의 역할, 그리고 세계가 태초의 바다에서 나왔다는 근동의 널리 퍼진 신화들입니다.

새로운 것은 물이 근원이라는 생각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이집트·그리스 신화에도 비슷한 이미지가 있었으니까요. 새로운 것은 탈레스가 그 생각을 사용한 방식이었던 듯합니다. 신들이 행동으로 세계를 만드는 이야기 대신, 그는 토론하고 의심하고 고칠 수 있는 설명으로 하나의 자연적 물질을 내놓았습니다. 후계자들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물 대신 ‘무한정한 것(아페이론)’을,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내세웠습니다.

[9][1][4][7]

중급

자석, 영혼, 신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론』에서 두 가지 생각을 더 전합니다. 첫째, 탈레스는 자석(천연 자철석)이 쇠를 움직이므로 영혼을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후대 저자들은 문지르면 가벼운 것을 끌어당기는 호박(琥珀)도 덧붙입니다. 탈레스에게 영혼은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이었고, 따라서 다른 것을 움직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살아 있다고 여긴 듯합니다.

둘째,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이들이 영혼이 우주 전체에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마도 그래서 탈레스는 만물이 신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탈레스가 자연에서 신성을 단순히 몰아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오히려 그는 생명과 신적인 힘이 자연 세계 안에 깃들어 있다고 보았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견해를 흔히 ‘물활론(物活論)’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전언은 탈레스를 순수하게 ‘과학적’인 사상가로만 그리는 데 조심해야 함을 알려 줍니다. 그의 생각은 자연주의적 설명과 세계가 살아 있고 신성하다는 감각을 함께 품고 있었습니다. 신화와의 단절은 실제로 있었지만, 그것은 점진적이고 부분적이었습니다.

[1][2][4]

중급

기원전 585년의 일식

탈레스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헤로도토스에게서 나옵니다. 리디아와 메디아는 5년째 전쟁 중이었습니다. 6년째 되던 해 전투가 한창일 때 갑자기 낮이 밤으로 바뀌었습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탈레스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이오니아인들에게 미리 알리며 그해를 짚었습니다. 양쪽 군대는 크게 놀라 싸움을 멈추고 화평을 맺었습니다.

현대 천문학자들은 이 사건을 기원전 585년 5월 28일 소아시아에서 볼 수 있었던 개기일식으로 봅니다. 탈레스가 정말 이를 예언했다면 고대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과학적 성취의 하나일 것이며, 이 날짜는 그리스 철학의 상징적 출발점으로 자주 쓰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요? 오토 노이게바우어, D. R. 딕스 등 많은 천문학사가들은 기원전 6세기에 쓸 수 있던 어떤 방법으로도 특정 장소에서 일식이 보일지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빌로니아 천문학자들은 18년 주기의 ‘사로스’ 같은 주기를 이용해 일식이 일어날 수 있는 때를 예측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어떤 해에 일식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야기가 사건 뒤에 생겨났다거나, 본디 다른 현상을 가리켰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5][8][1]

중급

기하학과 천문학

5세기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프로클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에우데모스가 쓴 지금은 사라진 『기하학의 역사』에 기대어, 탈레스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기하학을 들여왔고 여러 가지를 발견했다고 전합니다. 지름은 원을 이등분한다,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같다, 두 직선이 만나 생기는 맞꼭지각은 같다, 한 변과 그 양 끝 각이 같은 두 삼각형은 합동이다. 에우데모스는 탈레스가 바다 위 배의 거리를 구할 때 마지막 정리를 썼을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저술가 팜필레를 인용해 탈레스가 처음으로 원에 직각삼각형을 내접시켰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반원에 내접하는 각은 직각이라는 정리를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탈레스 정리’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전언에 따르면 그는 사람의 그림자가 키와 같아지는 시각을 기다렸다가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재어 높이를 알아냈습니다.

천문학에서는 페니키아인처럼 작은곰자리를 보고 항해하라고 뱃사람들에게 권했고, 하지와 동지를 연구했다고 합니다. 몇몇 고대 저자는 『항해 천문서』를 그의 저작으로 보았지만, 이미 고대에도 이를 의심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현대 학자들은 신중합니다. 이런 전언은 수백 년 뒤에 나왔고, 고대 저자들은 발견을 유명한 이름에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는 그리스인들이 탈레스를 자기들의 수학·천문학 전통의 출발점으로 기억했음을 보여 줍니다.

[6][2][1]

중급

왜 이오니아에서 시작되었을까

역사가들은 이런 새로운 사고방식이 왜 다른 곳이 아니라 기원전 6세기 밀레토스에서 나타났는지 오랫동안 물어 왔습니다. 모두가 받아들이는 단 하나의 답은 없지만, 흔히 거론되는 몇 가지 요인이 있고 아마도 이들이 함께 작용했을 것입니다.

접촉과 비교. 이오니아 도시들은 그리스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리디아인, 페니키아인, 이집트인, 그리고 이들을 통해 메소포타미아와 날마다 접촉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접한 여행자라면 어느 쪽이 참인지 묻고, 어느 한 민족의 신들에게 기대지 않는 설명을 찾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단일한 종교 권위의 부재. 그리스 종교에는 경전도, 세계의 기원에 관한 가르침을 통제하는 사제 계급도 없었습니다. 신화는 여러 판본으로 존재했고,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같은 시인은 존경받았지만 교리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자기 나름의 설명을 내놓을 여지가 있었습니다.

도시국가. 그리스 폴리스에서는 법과 결정이 점점 더 공개적으로 토론되었습니다. 프랑스 역사가 장피에르 베르낭은 이런 공개 논쟁의 정치 문화가, 다른 이들 앞에서 이유를 들어 주장을 방어해야 하는 새로운 철학을 빚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탈레스가 이오니아 연방 평의회를 제안했다는 전언은 정치적 사고와 이론적 사고가 얼마나 가까이 이어질 수 있었는지 보여 줍니다.

부, 문자, 화폐. 교역은 번영과 여가를 가져왔고, 알파벳은 생각을 기록하고 퍼뜨리기 쉽게 했으며, 리디아와 그리스의 새 주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추상적 가치 척도에 사람들을 익숙하게 했습니다. 리처드 시퍼드는 이런 화폐 경험이 모든 것의 바탕에 하나의 실체가 있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설명들은 논쟁 중이지만, 함께 놓고 보면 탈레스를 외로운 천재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의 일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4][2][10]

중급

영향과 유산

탈레스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그가 시작한 비판적 토론의 전통일 것입니다. 그의 제자이자 친척이라고 전하는 아낙시만드로스, 그리고 아낙시메네스는 사물의 근원에 관한 그의 질문을 이어받아 다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이들을 함께 ‘밀레토스학파’라고 부릅니다. 한 사상가가 이론을 내놓고 다음 사상가가 이를 비판하고 고치는 이 방식은 흔히 철학과 과학 모두의 씨앗으로 여겨집니다.

후대 그리스 저자들은 탈레스를 현자의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그는 아테네의 솔론, 프리에네의 비아스, 미틸레네의 피타코스와 함께 7현인 목록에 오르며, ‘너 자신을 알라’ 같은 유명한 격언이 때로 그의 말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다른 현인의 말로도 전합니다). 플라톤은 우물 이야기로 사회 속 철학자의 자리를 성찰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철학사의 첫머리에 두었습니다. 역사가들은 그 뒤로 줄곧 이 배치를 따라 왔습니다.

근현대에 탈레스는 흔히 ‘과학의 아버지’나 서양 철학의 출발점으로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세계 곳곳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탈레스 정리’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그리스의 출발이 더 넓은 이야기의 일부였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같은 시기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의 저자들이, 중국에서는 공자 같은 사상가들이 세계와 인간 삶에 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7][2][4]

심화

어떻게 아는가: 사료의 문제

탈레스가 쓴 글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며, 그가 무언가를 쓰기는 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습니다. 증거는 모두 간접적이고 여러 층으로 나뉩니다. 가장 이른 것은 헤로도토스(기원전 5세기)와 플라톤의 짧은 언급입니다.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증언은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나오는데, 그 역시 탈레스의 저술을 갖고 있지 않았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마도’ 같은 말로 불확실함을 자주 드러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는 앞선 자연철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한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사라졌지만 후대 학설지(철학자들의 견해를 모은 문헌) 전통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훨씬 뒤의 자료들, 곧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아마도 3세기)나 프로클로스(5세기) 등은 신빙성이 제각각인 일화·연대·업적을 전합니다.

현대 학계는 헤르만 딜스의 자료집, 특히 뒤에 발터 크란츠가 개정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단편집(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1903)을 바탕으로 이 자료를 정리합니다. 표준인 딜스–크란츠 번호에서 탈레스는 11장입니다. 증거가 ‘질료인’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틀을 거쳐 전해지므로, 많은 학자는 아르케를 찾은 최초의 사상가라는 탈레스의 모습이 탈레스 자신의 언어라기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재구성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4][1][10]

심화

논쟁: 최초의 철학자인가, 현자인가, 기술자인가

탈레스는 정말 최초의 철학자였을까요? 19세기와 20세기 초 존 버넷 같은 역사가들은 밀레토스학파의 새로움을 강조하며 그들에게서 합리적 과학의 탄생을 보았습니다. 반면 F. M. 콘퍼드 같은 학자는 초기 그리스 철학이 종교적·신화적 관념에서 자라났고 그것과 깊이 이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는 그 중간에 섭니다. 탈레스의 접근은 토론에 열린 자연적 설명을 찾았다는 점에서 참으로 새로웠지만, 더 오래된 우주론적 이미지에 기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근동의 영향은 얼마나 중요했을까요? 탈레스의 물과 메소포타미아·이집트 창세 신화의 태초의 물 사이의 유사성, 그리고 그의 이집트 여행과 바빌로니아 천문 지식에 관한 전언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그를 더 오래된 지혜의 전달자로 봅니다. 다른 학자들은 그리스의 새로움이 내용보다 방법과 사회적 환경, 곧 경쟁하는 도시국가 문화 속에서 생각을 공개적으로 논증했다는 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철학자’라는 범주 자체를 묻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고대 전언에서 탈레스는 이론가인 만큼 기술자이자 정치가이자 실천적 현자입니다. 그를 이렇게 넓게 보면 후대 그리스인이 왜 그에 관해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초기 그리스 사상이 일상과 떨어져 있지 않고 항해·교역·정치·역법과 얽혀 있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4][1][10]

핵심 개념

아르케
만물의 근원 또는 첫 원리.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이를 물로 보았다고 전한다.
자연적 설명
신들의 행동이 아니라 자연 안의 원인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것. 탈레스는 그 개척자로 기억된다.
일원론
모든 것이 하나의 기본 물질에서 나온다는 견해. 밀레토스학파의 물·아페이론·공기 이론이 그 예다.
물활론
물질이 살아 있거나 영혼을 지닌다는 생각. 자석과 ‘만물은 신들로 가득하다’에 관한 탈레스의 주장이 이를 암시한다.
비판적 전통
후계자가 앞선 이론을 묻고 고치는 관행. 밀레토스학파에서 시작되었다.
연역 기하학
도형에 관한 일반적 진리를 증명하는 것. 그리스 전통은 최초의 정리들을 탈레스에게 돌렸다.
현자 전통
이론뿐 아니라 실천과 정치에도 뛰어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그리스의 이상. 7현인이 그 본보기다.

기록

  1. 약 기원전 624년 — 아폴로도로스의 연대 계산에 따라 탈레스가 밀레토스에서 태어난다(제39회 올림피아기 첫해).
  2. 약 기원전 610년 — 훗날 탈레스의 제자이자 후계자로 전하는 아낙시만드로스가 태어난다.
  3. 기원전 585년 — 개기일식(5월 28일)으로 리디아와 메디아의 전투가 멈춘다. 헤로도토스는 탈레스가 이를 예언했다고 전한다.
  4. 약 기원전 547년 — 리디아의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의 키루스에게 패하고, 이오니아가 곧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는다.
  5. 약 기원전 546년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탈레스가 78세쯤에 죽는다(제58회 올림피아기).
  6. 기원전 494년 — 이오니아 반란 뒤 밀레토스가 페르시아에 함락되어 약탈당한다.
  7. 약 기원전 340년 —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탈레스를 자연철학의 창시자로 꼽는다.
  8. 약 220년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탈레스의 생애를 포함한 『그리스 철학자 열전』을 엮는다.
  9. 약 450년 — 프로클로스가 에우데모스에 기대어 유클리드 주석서에서 탈레스의 기하학 발견을 열거한다.
  10. 1903년 — 헤르만 딜스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자료의 표준 모음집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단편집』을 펴낸다.

용어 풀이

이오니아
소아시아 서해안 중부와 인근 섬들. 밀레토스와 에페소스 같은 그리스 도시가 있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탈레스에서 데모크리토스까지, 소크라테스 이전 또는 동시대의 그리스 사상가들.
밀레토스학파
밀레토스의 초기 자연철학자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7현인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인 현자 모임. 목록에는 언제나 탈레스가 들어 있다.
학설지(doxography)
철학자들의 견해를 요약해 모은 고대 문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의 주된 자료다.
증언(testimonium)
직접 인용(단편)과 달리, 사상가의 생애나 견해를 후대에 전한 보고.
사로스 주기
일식과 월식이 되풀이되는 약 18년의 주기. 바빌로니아 천문학자들이 알고 있었다.
자철석
쇠를 끌어당기는 천연 자성 광물.
탈레스 정리
반원에 내접하는 각은 언제나 직각이라는 정리.
딜스–크란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과 증언에 붙이는 표준 번호 체계.

묻고 답하기

탈레스는 정말 모든 것이 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나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다고 전하지만 이유는 모른다고 인정합니다. 탈레스는 지금 모든 것이 말 그대로 물이라기보다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말했을 수 있습니다.

정말 일식을 예언했나요?

헤로도토스는 그렇다고 하지만, 많은 천문학사가는 당시 누구도 특정 장소의 일식을 예측할 수 없었다고 봅니다.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왜 최초의 철학자라고 부르나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를 자연철학의 창시자로 꼽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화에 기대지 않고 만물 뒤의 자연적 원리를 찾았습니다.

정말 우물에 빠졌나요?

이 이야기는 플라톤에게서 나왔으며, 역사적 기록이라기보다 멍한 학자를 두고 한 농담일 가능성이 큽니다.

탈레스는 어떤 책을 썼나요?

남아 있는 책은 없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모두 후대 저자들에게서 나왔습니다.

탈레스에 관한 증거는 얼마나 믿을 만한가요?

간접적이고 늦으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틀을 거쳐 전해졌기 때문에 학자들은 전언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탈레스는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영향을 받았나요?

교역과 여행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얼마나 빌려 왔고 얼마나 새로웠는지는 논쟁 중입니다.

출처와 더 읽을거리

  1. Patricia O’Grady, Thales of Miletus (c. 620 B.C.E.—c. 546 B.C.E.).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2. Thales of Miletus. Wikipedia
  3. 탈레스. 위키백과
  4. Presocratic Philosoph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5. Eclipse of Thales. Wikipedia
  6. Thales’s theorem. Wikipedia
  7. Anaximander. Wikipedia
  8. 헤로도토스, Herodotus, The Histories. Perseus Digital Library, Tufts University
  9.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Metaphysics. Perseus Digital Library, Tufts University
  10. G. S. Kirk, J. E. Raven and M. Schofield,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2nd edi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함께 보기

위에 적은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새 연구가 나오면 고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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