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브르타뉴 공국
전 유럽 주권국 939년 ~ 1547년, 당시 프랑스 왕국의 공국
- 이 경계의 기간
- 939–1547년
- 성립
- 939년
- 멸망·해체
- 1547년
- 수도
- 낭트, 렌
- 정치 체제
- feudal monarchy
- 이전 나라
- 브르타뉴 왕국
개요
브르타뉴 공국(브르타뉴어: Dugelezh Breizh, 프랑스어: Duché de Bretagne)은 대략 939년부터 1547년까지 존재했던 중세 봉건 국가이다. 공국의 주요 영토는 유럽의 북서쪽에 있는 브르타뉴반도이었으며, 서쪽으로는 대서양, 북쪽으로는 영국해협, 남쪽으로는 루아르강, 동쪽으로는 노르망디와 다른 프랑스 주들과 경계를 이루었다. 공국은 939년 무렵 이 지역에서 바이킹들을 몰아내고 세워졌다. 10세기에서 11세기 무렵까지 이 지역은 정치적으로 불안하여 브르타뉴 공작의 영향력 행사는 직접 다스리는 영지 이외에서 제한적 이었다. 이웃한 노르망디 공국과는 복잡한 관계였는데, 때로는 동맹을 맺기도 했고, 브르타뉴-노르망디 전쟁과 같이 때로는 전쟁을 불사하기도 했다.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는 12세기 중반에 브르타뉴를 침략하여 브르타뉴 공작 코낭 4세와 강화를 맺고 1158년에 낭트 백작이 되었다. 헨리 2세의 아들 제프리는 세속권을 지닌 콩스탕스와의 혼인을 통하여 브르타뉴 공작이 되었다. 앙주가는 1204년 프랑스 북부에 있는 그들의 제국이 무너질때까지 브르타뉴의 지배권을 유지했다. 이후 13세기의 남은 기간 동안 프랑스의 왕이 브르타뉴에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브르타뉴 귀족들의 지원을 받은 수도원 제도는 11, 12세기 브르타뉴 전역에 퍼졌고 13세기에는 최초의 탁발 수도회가 브르타뉴 주요 도시들에서 세워졌다. 14세기에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지원을 받는 세력들 간에 브르타뉴 계승전쟁이 일어나 공국 지배권을 놓고 계승권자끼리 겨루는 내전이 발발했다.
역대 통치자 (4명)
- Conan IV, Duke of Brittany1156–1166년
- Constance, duchess of Brittany1166–1201년
- 제프리 2세1181–1186년
- Arthur I1196–1203년
기록 (12)
- 843년 — Battle of Blain전투
- 845년 — Battle of Ballon전투
- 851년 — Battle of Jengland전투
- 1064–1066년 — Breton-Norman War전투
- 1066년 — Battle of Segré전투
- 1202–1204년 — French invasion of Normandy전쟁
- 1342–1343년 — Siege of Vannes전투
- 1367년 — Battle of Nájera전투
- 1420년 — Siege of Champtoceaux포위전
- 1485–1488년 — 광기 전쟁전쟁
- 1487–1491년 — French–Breton War전쟁
- 1512년 — 생마티외 전투해전
사실 정보는 Wikidata(CC0)·HCED(CC0)·Cliopatria(CC BY 4.0), 개요는 위키백과(CC BY-SA 4.0) 발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