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고구려
B.C. 37년부터 668년까지 존재했던 한국의 고대 국가
- 이 경계의 기간
- 기원전 37년 – 668년
- 성립
- 기원전 37년
- 멸망·해체
- 668년
- 수도
- 졸본, 국내성, 평양시
- 정치 체제
- 군주제
- 언어
- 고구려어
- 종교
- 불교
- 이전 나라
- 부여
- 다음 나라
- 통일신라당나라
개요
고구려(高句麗)는 오늘날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존재했던 삼국 시대 한국의 고대 왕국으로, 국성은 고씨(高氏)이다. 본래의 국호는 고구려였으나 당시의 금석문과 역사 기록을 토대로 장수왕대에 고려(高麗)로 개칭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왕건이 건국한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로 통칭되고 있다.
기원전 37년 부여의 주몽이 졸본 지역에 나라를 건립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고구려는 이후 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를 정복하였고, 이 과정에서 후한, 위, 후연 등 중국 여러 왕조와 말갈, 동예, 옥저 등 주변국들과 전쟁을 치렀다. 동천왕 시기 수도인 국내성이 위나라에 함락되기도 하고, 이후 고국원왕 때 다시 수도가 함락되고 고국원왕은 백제의 대외정복 전쟁 중 평양성에서 전사하는 등 3세기에서 4세기 사이 고구려의 국력은 위축되기도 하였으나 소수림왕 시기에 내치를 다짐으로써 국력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5세기에 남진 정책을 추진하여 수도를 국내성에서 지금의 평양성으로 옮겼고, 5세기 후반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를 함락하고 백제, 가야, 신라를 공격하여 큰 성과를 올렸다. 이 시기 고구려는 오늘날 평안도, 랴오닝성, 지린성을 주무대로 삼으며 한반도 중부와 남부, 만주 일대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았다.
6세기부터 정치적 불안정과 주변 국가들의 성장으로 쇠퇴하였고, 7세기 수나라 및 당나라와 전쟁을 겪으면서 국력이 더욱 쇠퇴했다. 668년 정치 세력의 내분과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역대 통치자 (28명)
- 동명성왕기원전 37–19년
- 유리명왕기원전 19년 – 18년
- 대무신왕18–44년
- 민중왕44–48년
- 모본왕48–53년
- 태조대왕53–147년
- 차대왕147–165년
- 신대왕165–179년
- 고국천왕179–197년
- 산상왕197–227년
- 동천왕227–248년
- 중천왕248–270년
- 서천왕270–292년
- 봉상왕292–300년
- 미천왕300–331년
- 고국원왕331–371년
- 소수림왕371–384년
- 고국양왕384–391년
- 광개토왕391–413년
- 장수왕413–492년
- 문자명왕492–520년
- 안장왕520–531년
- 안원왕531–545년
- 양원왕545–559년
- 평원왕559–590년
- 영양왕590–618년
- 영류왕618–642년
- 보장왕642–668년
기록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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